안예지는 긴장을 풀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반크에게 물었다.“어때요?”반크는 턱을 괴며 말했다.“주얼리에 조선 시대의 무늬를 넣는 건 확실히 괜찮은 아이디어야.”첫 번째 목걸이는 옥을 연꽃, 목화 무늬로 조각했고 중간에는 크기가 다른 기타 꽃잎들로 이뤄졌다. 꽃술과 꽃잎은 모두 진주로 되어 액세서리로 만들려면 확실히 목걸이가 가장 어울렸다.두 번째 설계도는 정교하게 생긴 반지였다. 반지의 디자인은 활짝 핀 국화무늬를하고 있는데, 길고 가는 국화 꽃잎의 끝부분은 살짝 휘어져 있었다. 꽃술 중간에 박힌 다이아는 색상이 화려했고, 투명도가 높은 토파즈를 사용해야 그 아름다움을 모두 살릴 수 있었다.국화를 주로 하는 주얼리는 적지 않으나 국화 중에서도 꽃잎이 길고 가는 종류를 사용하는 건 정말 적었다.마지막 설계도도 반지였는데 디자인이 더 교묘했다. 이 디자인의 영감은 조선 시대의 용 무늬였는데 반지의 내부와 외부는 모양이 다르며 에메랄드를 사용해 우아하고 귀해 보였다.강성연은 안예지를 바라보았다.“당신의 고전풍 주얼리에 대한 재능을 알고 있었어요.”반크도 웃었다.“한주만에 이런 수준의 설계도를 내다니, 확실히 대단해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고마워요.”강성연은 설계도를 그녀에게 주었다.“CAD 부문에 보내 왁스 카빙과 모델링을 하라고 해요. 제가 그들더러 전력을 다해 당신의 요구에 맞추라고 지시할게요. 이 세 가지 주얼리는 이번 시즌 soul 주얼리 브랜드의 메인이니 실수하면 안 돼요. 제가 직접 감독하고 도울게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안예지가 나간 후 반크는 웃으면서 말했다.“동림 회사의 아가씨인데 고생도 마다하지 않네. 이 일에 익숙해지면 독자적으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글쎄요.”“왜?”반크는 의아했다.“지금 안예지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피하는 것 같아요.”이건 확실히 심리 문제로 인한 게 아니었다. 필경 그녀는 10년 동안 병상에 누워
“강성연 대표님.”이율이 조급한 얼굴로 강성연에게 다가왔다.“한 여자가 안예지 씨를 찾으러 왔습니다. 지금 로비에 있어요.”이율의 말을 들은 강성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나이가 어떻게 돼 보여?”이율이 대답했다.“서른 남짓해 보여요. 우아하고 명품을 두르고 있어 일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강성연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안예지의 생모.반지훈은 안지성이 선희수 때문에 영황 엔터에서 나온 거라 말해줬다. 안지성과 선희수는 비밀리에 연애했고 지금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선희수는 안예지를 낳았고, 두 사람의 연애는 선희수가 민준혁을 만남에 따라 끝이 났다.안지성은 홀로 안예지를 키웠고 업계의 사람들은 그의 “부인”을 본 적이 없으며 딸 하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심지어 누구도 안지성이 미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반크에게 말했다.“좀 오래 기다리게 될 것 같으니 제가 가 볼게요.”반크는 고개를 끄덕였다.선희수는 로비의 소파에서 주얼리 잡지를 읽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힐 소리가 가까워져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강성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선희수 사모님.”아마 강성연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 게 의아한지 선희수는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잡지를 내려놓았다.“당신은?”“전 soul 브랜드 창시자 강성연입니다.”그녀는 눈을 내리깔면서 웃었다.“선희수 사모님은 오랫동안 서울에 계시지 않아 제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선희수는 천천히 일어섰다.“당신이 바로 반지훈 대표님의 사모님이군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익히 들었어요.”“안예지 씨를 찾으러 오신 건가요?”강성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선희수는 역시 70년대 연예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배우였다. 지금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매력이 넘쳤다.“예지가 절 만나려고 하지 않나요?”선희수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일하고 있어요.” “안지성 딸이 주얼리 회사에서 출근한다고요?”강성연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예지는 동림
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을 하려고 막 로비를 지나던 안예지는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비 직원들은 오후 내내 그러고 있는 그녀를 수상하게 여기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안예지의 모습을 확인한 선희수가 그제야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려던 걸까? 걸어오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예지야.”안예지가 뒤로 물러서면서 그녀를 피했다.“저를 왜 찾으시는 건데요?”“난…”안예지가 확실히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눈치챘지만 그녀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선희수는 철면피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안예지와 가까워져야 했다.“예지야, 네가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선희수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땐 나한테도 사정이 있었어.”안예지의 시선이 선희수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은 거친 일 한번 못 해본 것처럼 곱고 보드라웠다.그녀는 곧바로 선희수의 손을 뿌리쳤다.“그런 사정 따위가 절대 당신이 저랑 아빠를 버리고 떠난 이유가 될 순 없어요.”선희수가 당황했다.안예지가 돌아서자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예지야, 나도 알아. 내가 너랑 너희 아버지한테 큰 빚을 졌다는걸. 넌 날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돼. 하지만 네 아버지는 나한테 이기적이지 않았는 줄 알아?”안예지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선희수가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했다.“너를 가진 건 순전히 사고였어. 그때 난 애를 낳을 준비가 안 됐었다고.”그녀가 안예지 앞으로 돌아가서 말을 이었다.“그때의 난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내 커리어를 다 포기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 들었겠어. 네 아버지는 나한테 아이를 낳을 것을 강요했어.”안예지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그러니까 난 당신이 원치 않았던 아이였다는 말이네요.”그녀는 아무런 답
반준성은 아들의 체면 같은 건 상관없이 되받아쳤다.“네 어머니한테 맞지 않았다면 네가 그 버릇을 고쳤겠니?”반지훈이 자신의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았다.“아빠, 할머니가 예전에 아빠 때렸어요?”강해신이 말의 중점을 콕 찍어 되물었다.반지훈이 고개를 돌려 강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맞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강해신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강성연이 반지훈한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이제 자기 아들한테 협박도 하는 거예요?”반지훈이 짐짓 정색하며 답했다.“아들은 너무 예쁘다 예쁘다 하면 안 돼. 때려야 할 때는 때려야지.”강해신이 억울한 듯이 소리쳤다.“왜 아들만 때려요. 유이는요?”강유이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난 착하잖아.”강해신이 어른 흉내를 내면서 한숨을 쉬었다.“아들은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요. 엄마는 왜 절 여자로 낳지 않았어요?”강성연이 국을 담으며 말했다.“여자애가 되면 나중에 커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걸. 해신이는 아이를 낳고 싶어?”강해신이 머리를 긁적였다.“음… 역시 안 할래요.”아이를 낳는다는 건 아영 이모처럼 커다란 배를 안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힘든 것 같았다.강해신이 갑자기 한창 새우 껍질을 벗기고 있는 강유이를 돌아보았다.“그럼 유이도 나중에 크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해요?”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반준성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나중에 어떤 자식이 우리 유이를 데려갈지 모르겠구나.”반지훈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데려가긴 뭘 데려가요. 감히 누가 아버지 손녀한테 어울릴 급이 된다고요.”반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연이가 너한테 시집올 때, 네 장인어른 마음을 그렇게 생각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를 끝마친 후 강성연은 아이들을 데리고 정원을 산책했다. 강유이가 버블건을 들고 다니며 쏘아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버블이 석양빛을 받아 오색찬란하게 빛났다.강성연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
강유이는 의아해했다.“불편하게 느껴지는 행동이라는 건 어떤 거예요?”옆에 있던 강해신이 입을 열었다.“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런 거겠지. 아빠가 그러셨어.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막 만지면 안 된다고. 예의 없는 일이라고 했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잖아. 그리고 아빠가 그러셨어. 네가 자라면 오빠인 나도 마음대로 널 안으면 안 되고 의심 살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강성연은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반지훈이 교욱 하나는 철저하게 시킨 것 같았다.강유이는 깨달았다는 표정이었다. 어쩐지 예전에는 오빠와 함께 잘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 자야 했다. 그리고 이제 더는 오빠가 자신을 안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그런데 무언가 떠올린 강유이가 물었다.“엄마, 그러면 머리를 쓰다듬는 건요?”강성연은 헛기침했다.“머리를 쓰다듬는 건 지나친 일이 아니야.”“그러면 안거나 뽀뽀하지만 않으면 돼요?”강유이가 또 물었고 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연은 강유이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넌 아직 어려. 네가 성인이 되고 연애할 나이가 되면 안거나 뽀뽀하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야.”강유이가 또 물었다.“그러면 아빠랑 엄마가 끌어안고 뽀뽀하는 건요?”강성연은 이마를 짚었다. 아이에게 이런 방면의 지식을 알려주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강성연은 심호흡한 뒤 말했다.“유이야, 잘 들어. 네가 끌어안고 뽀뽀한 남자아이가 있다면 넌 앞으로 그 애하고만 결혼해야 해. 그러니까 절대 남자아이랑 쉽게 뽀뽀하고 끌어안으면 안 돼. 알겠어?”강유이는 강성연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그러면... 그러면 전 태군 오빠랑도 안았는데 태군 오빠랑 결혼해야 해요?”강성연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다음 날, 안예지는 세수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원에서 아버지의 화가 난 음성이 들었다.“당신이 뭔데 감히 그런 요구를 하는 거야?”안예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문가로 향했다. 그녀는 선희수가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마당에 서 있는 걸
선희수는 좋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당시 그녀는 단호히 딸을 버리면서 다시는 딸과 만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기 아들을 위해 존엄을 내려놓고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아버지.”안예지의 목소리가 정원 안의 분위기를 깨부쉈다. 선희수는 울음을 그치더니 멍한 표정으로 안예지를 바라보았다.안지성이 안예지를 보았다.“예지야, 너 설마 다...”“다 들었어요.”안예지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선희수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그녀의 뒤쪽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할게요.”안지성뿐만 아니라 선희수마저 놀랐다.“예지야, 너...”“제가 도와주는 이유는 우리 아버지 때문이에요.”안예지의 어조는 덤덤했다.“그리고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까요. 그냥 좋은 일 하는 거라고 생각할게요. 골수 검사받고 수술 마치면 다시는 저와 아버지의 삶을 방해하지 마세요.”선희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힘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반지훈은 직접 운전해서 강성연을 주얼리 회사로 데려다줬다. 강성연은 반지훈에게서 소식을 전해 들은 뒤 놀랐다.“안예지 씨가 선희수 씨 아들을 위해 골수를 기증할 거라고 했다고요?”반지훈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본인이 원한 거래.”강성연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선희수가 딸을 찾은 이유는 아들의 골수 검사를 위해서였다. 선희수는 딸은 비정하게 버렸으면서 아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었다.안예지에게 있어 그녀는 무책임한 엄마였지만 결과적으로 안예지는 승낙했다.반지훈은 손을 뻗어 강성연의 손등을 잡았다.“이 일에서 우리는 제삼자야. 그들의 일은 네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어.”“내가 뭘 걱정했다고 그래요?”강성연은 입을 비죽였다.“그리고 안예지 씨는 우리 디자이너예요. 난 그녀의 사장이니까 부하직원을 신경 쓰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는 웃음을 터뜨렸다.“넌 남편인 내게 많이 신경 쓰면 돼.”강성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당신 걱정할
강성연은 웃었다.“성숙해진 거죠. 자기가 선택한 것을 확고히 할 줄 알게 된 거예요.”문이 천천히 열리자 강성연과 손유린은 웃으면서 밖으로 나왔고 때마침 반크가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걸 보았다.그 직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났고 강성연 곁을 지나칠 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안부를 물었다.“안녕하세요.”반크는 강성연과 손유린을 보고 살짝 놀라더니 이내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손유린을 바라보았다.“여기 일부러 온 거예요?”강성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줌마가 아저씨 배고플까 봐 걱정돼서 오셨대요. 사랑이 담긴 도시락까지 챙겨오셨어요.”손유린은 들고 있던 도시락을 그에게 건네며 일부러 불평하듯 말했다.“다음번에는 가져다주지 않을 거예요.”반크는 웃었다.“알겠어요. 다음번에 외출할 때는 도시락 들고나올게요.”그들을 바라보는 강성연은 내심 기뻤다.같은 시각, 병원.선희수는 초조하게 병실 밖을 배회하고 있었다. 골수 검사 성공률이 어느 정도일지 그녀도 알지 못했다. 친부모의 성공률이 아주 높다고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그녀와 민준혁 모두 검사해 봤었지만 두 사람 다 실패했다.그리고 안예지는 선희수가 낳은 딸이었기 때문에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안지성은 벤치에 앉아 줄곧 침묵을 유지했다. 의사가 다가오자 그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선희수가 앞으로 나갔다.“의사 선생님, 어떤가요?”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며 고개를 저었다.“완전히 적합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선희수는 당황했다. 그녀는 의사를 붙잡고 흥분해서 말했다.“완전히 적합한 건 아니라니요? 저랑 아이 아빠도 안 됐어요. 예지는 제 딸인데 왜 제 딸도 안 된다는 건가요?”그녀는 유일한 희망을 안고 안예지를 찾았지만 그 희망마저 부서졌다.하늘이 그녀에게 벌을 주는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 그녀의 업보였다. 그런데 그 벌을 받는 것이 왜 그녀가 아닌 걸까?의사는 곧바로 그녀를 위로했다.“사모님, 진정하세요. 의학적인 각도로 봤을 때
“네,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민서율은 미소를 지었고 안예지는 아이를 보았다. 겨우 11살짜리 남자아이가 병 때문에 입원했으면서도 공부하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안지성은 병실 문을 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안예지는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향했다.“아빠.”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니?”“의사 선생님이 다시 한번 검사 받아보래요. 골수천자 방법으로요.”안예지의 대답에 안지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 방법은 아주 고통스러울 거야. 예지야,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포기해. 아빠는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안예지는 병실 쪽을 보았고 병실 안 남자아이도 그녀를 보았다.*이틀 뒤, 강유이는 운동장 옆 큰 나무 아래 서 있었다. 강유이는 민서율에게 장난감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민서율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강유이는 뺨을 긁적였다.“이상하네. 오빠가 잊은 걸까?”“천사 동생!”한 남자아이가 강유이를 향해 달려오더니 숨을 가쁘게 쉬며 말했다.“서율이 기다리지 마. 걔 아파서 입원했어.”강유이는 당황했다.“아파서 입원했다고요?”강유이는 민서율이 아프다고 했던 걸 기억했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그에게 건넸다.“그러면 저 대신 서율 오빠한테 돌려줘요. 엄마가 서율 오빠가 준 장난감 계속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다음번에 저한테도 장난감 생기면 오빠한테 빌려줄 거예요.”남자아이는 강유이에게서 비눗방울을 건네받았다. 민서율이 이렇게 유치한 물건을 사서 동생에게 놀라고 주다니?그의 다섯 살짜리 여동생도 비눗방울은 놀지 않았다. 인형 같은 걸 줘야 하는 게 아닐까?하지만 천사 동생의 나이에 아직도 인형을 가지고 놀까?*안예지는 골수천자를 통해 조혈모세포를 수집했고 그 뒤로 이틀 동안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밤에 잘 때도 아파서 깨어나기 일쑤였다.안지성은 딸이 무척 고통스러워하자 눈시울을 붉히며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