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명승희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한 달 뒤, 깔끔하게 끝난다면 당연히 좋았다.하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 명승희는 여준우를 자주 보지 못했다. 여준우도 먼저 그녀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일주일간 상처를 치료하고 실밥을 푼 뒤 명승희는 퇴원했다.최민아가 그녀를 마중했다.“그 재벌 남자친구는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재벌 남친?”명승희는 선글라스를 낀 뒤 가방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최민아가 그녀 대신 우산을 들어줬다.“언니는 언니 재벌 남자친구 신분을 모르는 거예요?”명승희는 차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무슨 신분?”“그 사람 Y국 재벌 여씨 일가 여준우예요. 세계 최고 부자라고요. 며칠 전에 기사 났어요. 그 사람은 Z국에 와서 동임 회사랑 페르시아만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대요. 감독님은 그 사람 신분을 알고서는 무척 기뻐하셨어요. 여준우 씨가 감독님 드라마에 투자해서 지금 잘 나가는 배우들이 다 감독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어요.”최민아는 차에 올라탄 뒤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그녀는 뒷좌석에 앉은 명승희의 표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Y국 재벌 여씨 일가?전에 S국에서 모델로 활동했을 때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최고 부자 여준우가 37, 38살의 성숙한 남자였다니!게다가 이제 곧 40대였다.그러나 그녀가 만난 여준우는 기껏해야 그녀와 비슷한 29, 30살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반지훈보다 더 나이가 많다니.심지어 그녀는 예전에 그를 동생이라도 불렀었다.명승희는 퇴원하자마자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감독은 그녀가 돌아온 걸 보고 당황했다.“승희 씨, 며칠 더 쉬지 그랬어요.”“실밥 풀었고 상처도 거의 다 아물었어요. 촬영에 영향 주고 싶지 않아요.”명승희는 일부 유명한 배우처럼 상처 좀 생겼다고 10일에서 보름 정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진도를 맞추려 했기에 감독은 그녀의 태도에 꽤 흡족했다.명지용이 그녀를 꽂아 넣을 때, 그는 명승희가 고생을
명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너무 일찍 은퇴하셨죠.”그녀의 아버지가 배우였을 때 한미영은 데뷔도 하지 않았고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회장도 다른 사람이었다.한미영이 데뷔한 뒤 그녀의 아버지는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일을 시작했다. 곧이어 반지훈의 아버지 반준성이 엘리엇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는데 일부 임원은 원래 회장을 따라 떠났고 오직 그녀의 아버지만이 엘리엇에 남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오늘 이 자리에 앉게 된 건 반준성의 발탁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미영이 반준성과 결혼한 뒤 반준성은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회장 지분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넘겼다.엘리엇 엔터테인먼트가 TG 산하의 산업이 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회장은 그녀의 아버지였다.심훈과 명승희는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나눈 건지 명승희는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고 허벅지를 치며 박장대소했다.여준우는 경호원을 데리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경호원의 손에는 종이봉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감독은 그를 보더니 정중하게 일어섰다.“여준우 씨, 오셨어요.”여준우는 경호원에게 음료수를 내려놓게 했다.“날이 더워서 갈증 좀 풀라고 사 왔어요.”감독은 살짝 놀라더니 웃었다.“고마워요. 수고를 끼쳐서 죄송하네요.”곧이어 감독은 조수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라고 분부했다.여준우는 고개를 돌려 명승희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명승희는 남배우와 아주 가까웠고 두 사람은 휴대전화를 들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듯했다.명승희는 손을 뻗어 상대방의 휴대폰 액정을 터치했다.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고개만 돌리면 입술이 닿을 듯했다.최민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명승희를 살짝 밀었다.명승희는 눈치채지 못했다.“승희 언니.”최민아가 난처한 얼굴로 그녀를 툭툭 쳤다.명승희는 그녀의 손을 치우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잠깐, 아직 안 됐어.”그림자 하나가 그들의 빛을 가렸을 때, 명승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여준우는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까맣게 보였다.명승희는 몸을 바로 했다.“왜 왔어요?”심훈은
명승희는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찔렀다.“저기요, 멀쩡한 거 맞아요?”여준우는 정말 이상했다. 어떤 재수 없는 사람이 그의 신경을 긁기라도 한 걸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여준우는 명승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난 가끔 당신이 진짜 멍청한 건지, 아니면 너무 똑똑해서 그런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명승희는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무 표정도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녀는 조금 멍했다.여준우는 돌아서서 말했다.“계약은 이만 끝내요. 계약서는 사람을 시켜 보내줄게요. 받으면 찢어버려요. 돈도 계좌에 보낼게요. 당신은 내 연극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에요.”저녁. 명씨 일가.식사할 때 명승희는 건성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여준우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그의 연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녀를 찾아와 연기해달라고 하던 사람이 지금은 연기력이 별로라고 그녀를 나무라는 것일까?이렇게 체면을 구기게 만든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명지용과 유진희는 명승희의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명승희가 입맛이 없어 보이자 시선을 주고받았다.유진희가 음식을 집어줬다.“승희야, 너도 더는 어리지 않은데 이제... 결혼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명승희는 시선도 들지 않고 말했다.“서른 넘어서 결혼한 여자들 수두룩해요. 전 안 급해요.”“넌 안 급해도 나랑 네 아빠가 급해. 그리고 서른 넘어 결혼하면 아이는? 그때가 되면 고령 산모가 될 거야.”유진희는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같은 젊은이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명지용은 웃었다.“지금 의학 수준도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했어. 서른 넘어서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괜찮을 거야.”“당신이 여자예요?”유진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말해요?”명지용은 얼른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었다.유진희는 명승희를 보았다.“승희야, 엄마한테 솔직히 얘기해 봐. 너 아직도 육예찬한테 마음이 있는 거니?”명승
명승희는 침대에 앉아 휴대전화에서 여준우의 번호를 찾아냈다. 명승희는 확실히 묻지 않고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가기에는 내키지 않았다. 여준우가 그녀를 가지고 논 게 아니라면 말이다!설마 그녀를 가지고 논 걸까?명승희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꺼져 있었다.명승희는 그가 자신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다.그녀를 이렇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남자는 없었다. 예전의 육예찬을 제외하면 말이다.여준우는 그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호텔 스위트룸.샤워를 마치고 나온 여준우는 타월로 젖은 머리를 닦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은 휴대전화를 보더니 잠깐 멈칫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찬장 안에서 와인잔과 와인을 꺼냈다. 휴대전화가 울려서 보니 해외 번호였다.여준우는 전화를 받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여준우 씨, 언제 귀국해요? 준우 씨 보고 싶어요.”여준우는 그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들의 번호를 단 한 번도 저장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가벼운 만남이었기 때문이다.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얼마나 보고 싶은데?”“너무 보고 싶어서 잠도 안 와요. 나랑 다음 달에 영화 같이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여준우는 와인잔을 들었다.“다음 달에는 시간이 없는데.”“그러면 언제 시간 돼요?”여자는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준우 씨, 설마 새 여자 생겨서 나 잊은 거예요?”여준우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잔을 살살 흔들며 웃었다.“나한테 잊힌 여자가 꽤 많긴 하지.”상대는 아주 억울해 보였다. 여준우는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에게 플러팅하는 건 그의 특기였지만 오늘 밤에는 흥미가 없었다.초인종이 울리자 그의 입술에 닿았던 잔이 잠깐 멈추었다. 곧이어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끊었다.초인종은 몇 번이나 울렸다. 여준우가 문을 열자 명승희가 얼굴을 꽁꽁 감춘 채로 팔짱을 끼고 문 앞에 서 있었다.명승희는 선글라스와
여준우는 발치에 떨어진 200억짜리 수표를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끌어당겼다.“연기 잘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명승희는 팔짱을 두른 채로 턱을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여준우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서더니 허리를 숙여 거리를 좁혔다.“남자의 연인을 연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명승희는 눈살을 찌푸렸고 여준우는 그녀의 턱을 쥐었다.“연인역을 해달라고, 심지어 파트너나 여자친구역을 해달라고 하면서 키스신, 베드신을 찍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명승희는 살짝 멍해졌다.여준우는 그녀의 엄청나게 예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얼굴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안 그러겠죠. 당신은 몸 파는 여자들이랑은 다르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적합하지 않아요.”명승희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여준우는 그녀를 놓아준 뒤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갈 때 문 닫고 가요.”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여준우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소파에 앉았다. 유리에 창밖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췄지만 그마저도 집안의 칙칙하고 쓸쓸한 기운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S국. 동제섬 별장.강성연은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1년도 더 된 지난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반지훈은 뒤에서 그녀를 안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왜 안 들어가?”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더니 또박또박 말했다.“예전 일을 떠올리고 있었어요.”반지훈은 소리 없이 웃더니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 들었다.“그러면 안에 들어가서 추억을 되짚자.”반지훈은 강성연을 소파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강성연은 그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본론부터 얘기해요. 이런 불건전한 건 생각하지 말고.”반지훈은 그녀의 손가락을 잡은 뒤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그는 강성연의 곁에 앉아 그녀를 끌어안았다.“네가 얘기해.”“난 soul 주얼리 브랜드를 센시티에 입점시킬 생각이에요. 온 지 오래돼서 좋은 자리도 찾았어요. 금융가가 지
강성연은 계약서를 꺼낸 뒤 이미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힐을 벗은 뒤 그를 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거기 멈춰! 도둑이야!”남자는 앞으로 돌진했고 강성연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남자는 거만하게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도발하다가 강성연의 옆에서 튀어나온 여자에게 걷어차여 바닥에 넘어졌다.여자가 앞으로 걸어가 가방을 들었다. 남자는 화를 내며 일어서더니 칼을 뽑아 그녀를 찌르려 했다. 그러나 여자는 칼을 피하고 그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곧이어 남자의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남자는 아파하면서 넘어졌고 여자는 그를 잡고 경찰에 신고했다.강성연은 헐레벌떡 뒤쫓아와서 그녀가 건네준 가방을 받았다.“감사합니다.”고개를 든 순간, 강성연은 당황했다. 눈앞의 여자는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 무언가 떠올린 강성연이 놀라서 말했다.“혹시 하정윤 씨?”하정윤은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바라봤다. 그녀도 당황했다.“강성연?”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도둑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하정윤은 강성연과 함께 현장에서 진술하여 기록을 남겼다.경찰차가 떠난 뒤 강성연은 하정윤을 보았다.“고마워요. 정윤 씨를 만나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신분증을 잃어버렸을 거예요.”“별거 아니야.”“내가 밥 사줄게요. 우리 4년 만에 만나는 거잖아요. 그리고 오늘 또 날 도와주기도 했고.”강성연이 밥을 먹자고 했다.하정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승낙했다. 하지만 뭔가 떠올린 강성연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맨발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우선 신발부터 사야겠어요.”하정윤은 강성연과 함께 신발을 사러 간 뒤에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 4년 전, 그들은 훈련 캠프에서 만났었고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정윤은 S국에서 개인 경호원 일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돈이 많았는데 하정윤은 다른 일을 하려고 며칠 전 사직서를 냈다.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에요?”강성연이 물었다.하정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모르겠어
최민아는 그들의 의논 소리를 들은 뒤 명승희를 힐끗 쳐다봤다. 명승희는 듣지 못한 듯했다.최민아는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승희 언니, 대체 그분이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저번에 그 사람이 했던 말 때문에 최민아는 어리둥절했다. 계약은 뭐고 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또 뭘까? 설마 두 사람이 정말 가짜로 사귀었던 걸까?명승희는 고개를 들었다.“뭘 그렇게 궁금해해?”명승희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 허브티를 한 모금 마셨다.“어떻게 됐든 난 솔로야.”최민아는 놀랐다.“그러니까 언니 또 쓰레기 같은 남자를...”쓰레기 같은 남자?명승희는 사실 여준우가 쓰레기 같은 남자란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여자가 확실히 많았다. 하지만 모든 여자를 다 만나본 건 아닐 터였다. 까다로운 성격 탓도 있지만 마지노선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최민아는 명승희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승희 언니, 저희 굿이라도 하러 갈래요? 저 용한 점집 알고 있는데.”명승희는 의아했다.“내가 왜 굿을 해?”“나쁜 기운 털어내야죠.”최민아는 진지한 표정이었다.“생각해 봐요. 처음에는 남시후였다가 그다음에는 여준우 씨잖아요. 한 달 사이에 두 명이나 만났으니 그것도 안 되면 인연이 누군지 알아보러 가요.”명승희는 눈을 흘겼다.“갈 테면 너 혼자 가.”명승희는 몸을 일으켜 촬영장으로 향했다.저녁쯤 되어서야 명승희는 촬영장을 떠났다. 누군가 그녀를 불렀고 명승희는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심훈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심훈 선배, 무슨 일이에요?”심훈이 웃으며 물었다.“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명승희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저녁에 레스토랑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둘만 있는 게 아니라 김나리와 같이 촬영하는 여배우 몇 명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여배우 중 한 명은 심훈이 명승희를 부르자 김나리의 곁에 다가갔다.“심훈 선배가 왜 저 사람을 데려왔지?”김나리는 술을 마실 뿐 대꾸하지 않았다.명
명승희는 고개를 들어 눈을 접으며 웃었다.“역시 나리 언니가 절 잘 아네요.”심훈은 잔을 들었다.“그 얘기는 그만하죠. 음식 다 식겠어요. 먹으면서 얘기해요.”다른 이들도 잔을 들어 부딪혔다. 회식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들은 모두 술을 마셨다. 명승희는 주량이 나쁘지 않았지만 일정한 정도가 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입구로 향할 때 발을 헛디뎌 심훈이 그녀를 부축했다.“취한 거 아니지?”명승희는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요. 멀쩡해요.”심훈은 그녀의 어깨를 부축했다.“내가 바래다줄게.”명승희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그녀를 심훈의 손에서 떼어냈다. 명승희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상대의 품에 안겼다.“당신이 바래다줄 필요 없어요.”명승희는 당황했다. 고개를 들어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자 술이 반쯤 깼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여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경호원에게 가서 차를 가져오라고 분부했다.심훈은 그를 보며 말했다.“여준우 씨는 승희랑 무슨 사이죠?”여준우는 웃으면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글쎄요, 어떤 사이 같아 보여요?”명승희가 버둥거리자 여준우는 그녀의 머리를 꾹 누르면서 그녀를 끌고 갔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명승희는 간신히 그를 밀어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벽에 부딪혔다.“어디 아파요?”여준우는 층수를 누른 뒤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명승희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명승희는 머리가 어지러워 아예 쪼그리고 앉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여준우는 그제야 그녀를 일으켰다.경호원이 차를 끌고 왔고 여준우는 거칠게 그녀를 뒷좌석에 앉혔다. 명승희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여준우 씨, 나 죽이려고 그래요?”“그러고 싶네요.”여준우는 문을 닫은 뒤 경호원에게 운전하라고 분부했다.경호원은 백미러를 힐끗 쳐다봤다.“준우 님, 명승희 씨를 집으로 모셔다드릴까요 아니면...”“데려다줄 필요 없거든요?”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