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명승희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한 달 뒤, 깔끔하게 끝난다면 당연히 좋았다.하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 명승희는 여준우를 자주 보지 못했다. 여준우도 먼저 그녀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일주일간 상처를 치료하고 실밥을 푼 뒤 명승희는 퇴원했다.최민아가 그녀를 마중했다.“그 재벌 남자친구는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재벌 남친?”명승희는 선글라스를 낀 뒤 가방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최민아가 그녀 대신 우산을 들어줬다.“언니는 언니 재벌 남자친구 신분을 모르는 거예요?”명승희는 차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무슨 신분?”“그 사람 Y국 재벌 여씨 일가 여준우예요. 세계 최고 부자라고요. 며칠 전에 기사 났어요. 그 사람은 Z국에 와서 동임 회사랑 페르시아만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대요. 감독님은 그 사람 신분을 알고서는 무척 기뻐하셨어요. 여준우 씨가 감독님 드라마에 투자해서 지금 잘 나가는 배우들이 다 감독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어요.”최민아는 차에 올라탄 뒤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그녀는 뒷좌석에 앉은 명승희의 표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Y국 재벌 여씨 일가?전에 S국에서 모델로 활동했을 때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최고 부자 여준우가 37, 38살의 성숙한 남자였다니!게다가 이제 곧 40대였다.그러나 그녀가 만난 여준우는 기껏해야 그녀와 비슷한 29, 30살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반지훈보다 더 나이가 많다니.심지어 그녀는 예전에 그를 동생이라도 불렀었다.명승희는 퇴원하자마자 촬영장으로 달려갔다. 감독은 그녀가 돌아온 걸 보고 당황했다.“승희 씨, 며칠 더 쉬지 그랬어요.”“실밥 풀었고 상처도 거의 다 아물었어요. 촬영에 영향 주고 싶지 않아요.”명승희는 일부 유명한 배우처럼 상처 좀 생겼다고 10일에서 보름 정도 쉬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진도를 맞추려 했기에 감독은 그녀의 태도에 꽤 흡족했다.명지용이 그녀를 꽂아 넣을 때, 그는 명승희가 고생을
명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너무 일찍 은퇴하셨죠.”그녀의 아버지가 배우였을 때 한미영은 데뷔도 하지 않았고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회장도 다른 사람이었다.한미영이 데뷔한 뒤 그녀의 아버지는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일을 시작했다. 곧이어 반지훈의 아버지 반준성이 엘리엇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는데 일부 임원은 원래 회장을 따라 떠났고 오직 그녀의 아버지만이 엘리엇에 남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오늘 이 자리에 앉게 된 건 반준성의 발탁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미영이 반준성과 결혼한 뒤 반준성은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회장 지분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넘겼다.엘리엇 엔터테인먼트가 TG 산하의 산업이 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회장은 그녀의 아버지였다.심훈과 명승희는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나눈 건지 명승희는 이미지를 신경 쓰지 않고 허벅지를 치며 박장대소했다.여준우는 경호원을 데리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경호원의 손에는 종이봉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감독은 그를 보더니 정중하게 일어섰다.“여준우 씨, 오셨어요.”여준우는 경호원에게 음료수를 내려놓게 했다.“날이 더워서 갈증 좀 풀라고 사 왔어요.”감독은 살짝 놀라더니 웃었다.“고마워요. 수고를 끼쳐서 죄송하네요.”곧이어 감독은 조수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라고 분부했다.여준우는 고개를 돌려 명승희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명승희는 남배우와 아주 가까웠고 두 사람은 휴대전화를 들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듯했다.명승희는 손을 뻗어 상대방의 휴대폰 액정을 터치했다.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고개만 돌리면 입술이 닿을 듯했다.최민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명승희를 살짝 밀었다.명승희는 눈치채지 못했다.“승희 언니.”최민아가 난처한 얼굴로 그녀를 툭툭 쳤다.명승희는 그녀의 손을 치우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잠깐, 아직 안 됐어.”그림자 하나가 그들의 빛을 가렸을 때, 명승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여준우는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까맣게 보였다.명승희는 몸을 바로 했다.“왜 왔어요?”심훈은
명승희는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찔렀다.“저기요, 멀쩡한 거 맞아요?”여준우는 정말 이상했다. 어떤 재수 없는 사람이 그의 신경을 긁기라도 한 걸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여준우는 명승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난 가끔 당신이 진짜 멍청한 건지, 아니면 너무 똑똑해서 그런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명승희는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무 표정도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녀는 조금 멍했다.여준우는 돌아서서 말했다.“계약은 이만 끝내요. 계약서는 사람을 시켜 보내줄게요. 받으면 찢어버려요. 돈도 계좌에 보낼게요. 당신은 내 연극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에요.”저녁. 명씨 일가.식사할 때 명승희는 건성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여준우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그의 연극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녀를 찾아와 연기해달라고 하던 사람이 지금은 연기력이 별로라고 그녀를 나무라는 것일까?이렇게 체면을 구기게 만든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명지용과 유진희는 명승희의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명승희가 입맛이 없어 보이자 시선을 주고받았다.유진희가 음식을 집어줬다.“승희야, 너도 더는 어리지 않은데 이제... 결혼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명승희는 시선도 들지 않고 말했다.“서른 넘어서 결혼한 여자들 수두룩해요. 전 안 급해요.”“넌 안 급해도 나랑 네 아빠가 급해. 그리고 서른 넘어 결혼하면 아이는? 그때가 되면 고령 산모가 될 거야.”유진희는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같은 젊은이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명지용은 웃었다.“지금 의학 수준도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했어. 서른 넘어서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괜찮을 거야.”“당신이 여자예요?”유진희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말해요?”명지용은 얼른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었다.유진희는 명승희를 보았다.“승희야, 엄마한테 솔직히 얘기해 봐. 너 아직도 육예찬한테 마음이 있는 거니?”명승
명승희는 침대에 앉아 휴대전화에서 여준우의 번호를 찾아냈다. 명승희는 확실히 묻지 않고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가기에는 내키지 않았다. 여준우가 그녀를 가지고 논 게 아니라면 말이다!설마 그녀를 가지고 논 걸까?명승희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꺼져 있었다.명승희는 그가 자신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다.그녀를 이렇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남자는 없었다. 예전의 육예찬을 제외하면 말이다.여준우는 그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호텔 스위트룸.샤워를 마치고 나온 여준우는 타월로 젖은 머리를 닦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은 휴대전화를 보더니 잠깐 멈칫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찬장 안에서 와인잔과 와인을 꺼냈다. 휴대전화가 울려서 보니 해외 번호였다.여준우는 전화를 받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여준우 씨, 언제 귀국해요? 준우 씨 보고 싶어요.”여준우는 그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다. 그는 그 여자들의 번호를 단 한 번도 저장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가벼운 만남이었기 때문이다.그는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얼마나 보고 싶은데?”“너무 보고 싶어서 잠도 안 와요. 나랑 다음 달에 영화 같이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여준우는 와인잔을 들었다.“다음 달에는 시간이 없는데.”“그러면 언제 시간 돼요?”여자는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준우 씨, 설마 새 여자 생겨서 나 잊은 거예요?”여준우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잔을 살살 흔들며 웃었다.“나한테 잊힌 여자가 꽤 많긴 하지.”상대는 아주 억울해 보였다. 여준우는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여자에게 플러팅하는 건 그의 특기였지만 오늘 밤에는 흥미가 없었다.초인종이 울리자 그의 입술에 닿았던 잔이 잠깐 멈추었다. 곧이어 여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끊었다.초인종은 몇 번이나 울렸다. 여준우가 문을 열자 명승희가 얼굴을 꽁꽁 감춘 채로 팔짱을 끼고 문 앞에 서 있었다.명승희는 선글라스와
여준우는 발치에 떨어진 200억짜리 수표를 보면서 입꼬리를 살짝 끌어당겼다.“연기 잘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명승희는 팔짱을 두른 채로 턱을 쳐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여준우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서더니 허리를 숙여 거리를 좁혔다.“남자의 연인을 연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명승희는 눈살을 찌푸렸고 여준우는 그녀의 턱을 쥐었다.“연인역을 해달라고, 심지어 파트너나 여자친구역을 해달라고 하면서 키스신, 베드신을 찍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명승희는 살짝 멍해졌다.여준우는 그녀의 엄청나게 예쁘지는 않지만 고급스러운 얼굴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안 그러겠죠. 당신은 몸 파는 여자들이랑은 다르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적합하지 않아요.”명승희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여준우는 그녀를 놓아준 뒤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갈 때 문 닫고 가요.”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여준우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소파에 앉았다. 유리에 창밖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췄지만 그마저도 집안의 칙칙하고 쓸쓸한 기운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S국. 동제섬 별장.강성연은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1년도 더 된 지난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반지훈은 뒤에서 그녀를 안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왜 안 들어가?”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더니 또박또박 말했다.“예전 일을 떠올리고 있었어요.”반지훈은 소리 없이 웃더니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 들었다.“그러면 안에 들어가서 추억을 되짚자.”반지훈은 강성연을 소파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강성연은 그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본론부터 얘기해요. 이런 불건전한 건 생각하지 말고.”반지훈은 그녀의 손가락을 잡은 뒤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그는 강성연의 곁에 앉아 그녀를 끌어안았다.“네가 얘기해.”“난 soul 주얼리 브랜드를 센시티에 입점시킬 생각이에요. 온 지 오래돼서 좋은 자리도 찾았어요. 금융가가 지
강성연은 계약서를 꺼낸 뒤 이미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힐을 벗은 뒤 그를 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거기 멈춰! 도둑이야!”남자는 앞으로 돌진했고 강성연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남자는 거만하게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도발하다가 강성연의 옆에서 튀어나온 여자에게 걷어차여 바닥에 넘어졌다.여자가 앞으로 걸어가 가방을 들었다. 남자는 화를 내며 일어서더니 칼을 뽑아 그녀를 찌르려 했다. 그러나 여자는 칼을 피하고 그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곧이어 남자의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남자는 아파하면서 넘어졌고 여자는 그를 잡고 경찰에 신고했다.강성연은 헐레벌떡 뒤쫓아와서 그녀가 건네준 가방을 받았다.“감사합니다.”고개를 든 순간, 강성연은 당황했다. 눈앞의 여자는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 무언가 떠올린 강성연이 놀라서 말했다.“혹시 하정윤 씨?”하정윤은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바라봤다. 그녀도 당황했다.“강성연?”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도둑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하정윤은 강성연과 함께 현장에서 진술하여 기록을 남겼다.경찰차가 떠난 뒤 강성연은 하정윤을 보았다.“고마워요. 정윤 씨를 만나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으면 신분증을 잃어버렸을 거예요.”“별거 아니야.”“내가 밥 사줄게요. 우리 4년 만에 만나는 거잖아요. 그리고 오늘 또 날 도와주기도 했고.”강성연이 밥을 먹자고 했다.하정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승낙했다. 하지만 뭔가 떠올린 강성연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맨발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우선 신발부터 사야겠어요.”하정윤은 강성연과 함께 신발을 사러 간 뒤에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 4년 전, 그들은 훈련 캠프에서 만났었고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정윤은 S국에서 개인 경호원 일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돈이 많았는데 하정윤은 다른 일을 하려고 며칠 전 사직서를 냈다.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에요?”강성연이 물었다.하정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모르겠어
최민아는 그들의 의논 소리를 들은 뒤 명승희를 힐끗 쳐다봤다. 명승희는 듣지 못한 듯했다.최민아는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승희 언니, 대체 그분이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저번에 그 사람이 했던 말 때문에 최민아는 어리둥절했다. 계약은 뭐고 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건 또 뭘까? 설마 두 사람이 정말 가짜로 사귀었던 걸까?명승희는 고개를 들었다.“뭘 그렇게 궁금해해?”명승희는 손을 뻗어 테이블 위 허브티를 한 모금 마셨다.“어떻게 됐든 난 솔로야.”최민아는 놀랐다.“그러니까 언니 또 쓰레기 같은 남자를...”쓰레기 같은 남자?명승희는 사실 여준우가 쓰레기 같은 남자란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여자가 확실히 많았다. 하지만 모든 여자를 다 만나본 건 아닐 터였다. 까다로운 성격 탓도 있지만 마지노선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최민아는 명승희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승희 언니, 저희 굿이라도 하러 갈래요? 저 용한 점집 알고 있는데.”명승희는 의아했다.“내가 왜 굿을 해?”“나쁜 기운 털어내야죠.”최민아는 진지한 표정이었다.“생각해 봐요. 처음에는 남시후였다가 그다음에는 여준우 씨잖아요. 한 달 사이에 두 명이나 만났으니 그것도 안 되면 인연이 누군지 알아보러 가요.”명승희는 눈을 흘겼다.“갈 테면 너 혼자 가.”명승희는 몸을 일으켜 촬영장으로 향했다.저녁쯤 되어서야 명승희는 촬영장을 떠났다. 누군가 그녀를 불렀고 명승희는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심훈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심훈 선배, 무슨 일이에요?”심훈이 웃으며 물었다.“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명승희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저녁에 레스토랑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둘만 있는 게 아니라 김나리와 같이 촬영하는 여배우 몇 명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여배우 중 한 명은 심훈이 명승희를 부르자 김나리의 곁에 다가갔다.“심훈 선배가 왜 저 사람을 데려왔지?”김나리는 술을 마실 뿐 대꾸하지 않았다.명
명승희는 고개를 들어 눈을 접으며 웃었다.“역시 나리 언니가 절 잘 아네요.”심훈은 잔을 들었다.“그 얘기는 그만하죠. 음식 다 식겠어요. 먹으면서 얘기해요.”다른 이들도 잔을 들어 부딪혔다. 회식은 두 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들은 모두 술을 마셨다. 명승희는 주량이 나쁘지 않았지만 일정한 정도가 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입구로 향할 때 발을 헛디뎌 심훈이 그녀를 부축했다.“취한 거 아니지?”명승희는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요. 멀쩡해요.”심훈은 그녀의 어깨를 부축했다.“내가 바래다줄게.”명승희가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튀어나온 손이 그녀를 심훈의 손에서 떼어냈다. 명승희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상대의 품에 안겼다.“당신이 바래다줄 필요 없어요.”명승희는 당황했다. 고개를 들어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자 술이 반쯤 깼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여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경호원에게 가서 차를 가져오라고 분부했다.심훈은 그를 보며 말했다.“여준우 씨는 승희랑 무슨 사이죠?”여준우는 웃으면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글쎄요, 어떤 사이 같아 보여요?”명승희가 버둥거리자 여준우는 그녀의 머리를 꾹 누르면서 그녀를 끌고 갔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명승희는 간신히 그를 밀어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벽에 부딪혔다.“어디 아파요?”여준우는 층수를 누른 뒤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명승희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명승희는 머리가 어지러워 아예 쪼그리고 앉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여준우는 그제야 그녀를 일으켰다.경호원이 차를 끌고 왔고 여준우는 거칠게 그녀를 뒷좌석에 앉혔다. 명승희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여준우 씨, 나 죽이려고 그래요?”“그러고 싶네요.”여준우는 문을 닫은 뒤 경호원에게 운전하라고 분부했다.경호원은 백미러를 힐끗 쳐다봤다.“준우 님, 명승희 씨를 집으로 모셔다드릴까요 아니면...”“데려다줄 필요 없거든요?”명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