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결국에는 외국인들의 악기예요. 우리나라 사람이 그들의 악기를 배우는 게 체면이 서는 일인가요? 그래서 자랑스럽게 우리나라는 내놓을 만한 악기가 없다고 말할 건가요?”송아영은 자조하듯 웃었다.“해금은 고려 예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개량, 제작되어 사용되었어요. 그리고 거문고는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만든 대표적인 악기로 긴 역사가 있고 많은 사랑을 받았죠. 거문고는 힘 있고 웅장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음색을 띠고 있어요. 또 소리가 크고 우렁차며 강하면서도 부드럽죠. 서양 악기 중 거문고와 비슷한 음색과 가락을 가진 악기가 있나요? 첼로를 거문고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첼로를 배우는 서양 음악 학생이 흠칫하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송아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우리나라 악기는 서양 악기와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 왜 남에게 무시당해야 하죠?”송아영은 무대에서 내려와 두 선생님에게 다가갔다.“서양 악기가 민악보다 더 널리 발전할 수 있던 건 주관적 문화 측면에서 보면 듣기 좋아서고, 객관적 기술 측면에서 보면 과학 기술이 선진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죠. 당신들의 심미는 서양 음악 체계에서 길러졌으니 당연히 민악이 듣기 싫겠죠.”잠깐 뜸을 들인 뒤 송아영은 손가락으로 그 여선생의 어깨를 힘주어 꾹 눌렀다.“그래서 난 모든 사람이 민악을 좋아하길 강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악기를 폄하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여선생은 몸을 살짝 떨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다른 학생들은 넋이 나갔다. 민악과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감탄하자 그 여선생은 정신을 차린 건지 송아영을 밀쳤다.“우리한테 그런 얘기 한다고 뭐가 달라져요? 그렇게 잘났으면 학원이 인정하게 만들어요. 우리 학원은 서양 음악만 중요시하는데 송아영 씨가 말 몇 마디로 그걸 바꿀 수 있을까요?”여선생은 송아영의 어두워진 안색을 보면서 냉소를 흘렸다.“중요한 공연이나 파티에서는 항상 우리 서
말을 마친 뒤 송아영은 그에게서 벗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저런 꼴을 그냥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어. 흥!”육예찬은 볼을 잔뜩 부풀리며 화를 내는 송아영의 뺨을 꼬집었다.“내가 안 왔으면 저 사람들이랑 싸웠을 거지?”송아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바로 그때, 우아한 자태에 긴 치마를 입은 여자가 멀지 않은 곳에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육예찬을 불렀다.“예찬 오빠.”송아영은 육예찬을 힐끗 봤다. 그는 여자 복이 많았다. 다가온 여자는 육예찬의 전 여자친구인 명승희보다는 덜 아름다웠지만 분위기는 명승희에게 지지 않았다.송아영은 그녀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 며칠 전 그 여선생들이 의논하던 남은서라는 사람일 것이다.명승희는 세계적인 모델이라 위풍당당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남은서는 발레를 해서 그런지 물처럼 부드럽고 단아한 느낌이 들었다.육예찬은 남은서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누구시죠?”송아영은 고개를 돌리며 입을 막았다.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육예찬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남은서는 당황하면서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저 남은서예요. 잊었어요?”“아, 너였어?”육예찬은 덤덤하게 반응했다.“무슨 일인데?”남은서는 미소를 지었다.“저 학원으로 돌아왔어요. 오빠가 계속 학원에 있었다고 들어서 한 번 와봤어요.”남은서의 시선이 송아영에게로 향했다.“이분은 누구시죠?”육예찬은 송아영의 어깨를 끌어당겼다.“내 아내야.”남은서는 깜짝 놀랐다.“오빠 결혼했어요?”욱예찬은 눈을 가늘게 떴다.“이상해?”남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아뇨. 그냥 조금 놀라서요. 전...”남은서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전 오빠가 명승희 씨랑 결혼할 줄 알았거든요.”송아영은 팔짱을 둘렀다. 남은서는 순진한 척하는 여우 같아 보였다. 아마 일부러 명승희 얘기를 꺼낸 듯했다.송아영은 육예찬의 팔에 팔짱을 꼈다.“자기야.”‘자기야’
육예찬은 송아영의 ‘연기’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너도 할 수 있잖아.”송아영은 싫은 표정으로 대꾸했다.“난 안 할 거야.”육예찬은 허리를 숙이며 거리를 좁혔다.“조금 전에 날 자기라고 불렀을 때는 그것보다 더 닭살 돋게 불렀잖아.”송아영은 움찔하더니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내가 그랬다고? 난 안 그랬는데.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육예찬은 송아영의 뺨을 꼬집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아닌 척하는 거야, 응?”송아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육예찬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송아영은 당황하며 손을 들어 그를 때렸다.“나쁜 놈, 공공장소에서 또, 읍!”육예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여 그녀의 숨을 빼앗고 그녀의 모든 향기를 소유했다.누군가 지나가는 걸 본 송아영은 다급히 육예찬을 밀어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등을 돌렸고 손부채질하며 열을 식혔다.“육 선생님.”학생이 육예찬에게 인사했고 육예찬은 짧게 대답했다.송아영은 육예찬의 등 뒤에 숨었다. 학생들이 떠난 뒤 송아영이 도망치려는데 육예찬이 그녀를 붙잡았다.“어딜 도망가려고?”송아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갈래.”“돌아가긴. 너 오후에 수업 없잖아.”육예찬이 송아영을 안아 들었다.송아영은 흠칫하더니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그걸 어떻게 알아?”육예찬은 웃었다.“내가 모를 리가 있겠어?”송아영은 얼굴을 붉혔다.“수업 없어도 안 돼!”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육예찬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품 안의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송아영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육예찬을 때렸다.“육예찬, 이 뻔뻔한 자식!”육예찬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처음 안 것도 아니잖아.”육예찬은 직접 운전해 그녀를 데리고 고급 아파트로 향했다. 음악 학원과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였다.송아영은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다음 날, 송아영은 육예찬의 널찍한 티셔츠를 입고 양반다리를 한 채로 소파에 앉아 누군가 옷을 가져오길 기다렸다.초인종 소리를 들은 송아영은 기뻐하면서 문을 열었다.그러나 문밖에 서 있는 여자가 명승희인 걸 확인하자 송아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왜 명승희 씨가 온 거예요?”명승희는 송아영을 훑어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좋네요. 결혼해서 동거 시작한 거예요?”송아영이 문을 닫으려는데 명승희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문을 잡았다.곧이어 그녀는 고가 브랜드 옷을 송아영의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받아요. 예찬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명승희는 웃으면서 선글라스를 끼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송아영은 그곳에 몇 분 동안 굳어 서 있다가 쇼핑백을 바닥에 던지며 씩씩거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육예찬! 널 죽이지 않으면 내 성을 바꾸겠어!”한바탕 화풀이한 뒤 송아영은 말없이 쇼핑백을 주웠다. 옷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았다.차 안으로 돌아온 명승희는 육예찬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육예찬은 옷을 보냈냐고 물었다.“보냈어. 다음번에는 심부름시키지마. 좋은 일 했는데도 좋은 얘기 못 듣고 심지어 오해받을 뻔했잖아.”“제대로 설명 안 했어?”“내 설명이 귀에 들어가겠어? 네가 알아서 달래.”“나 오늘 학원에 일찍 나왔는데.”“미친. 육예찬, 너 내 데이트 방해했어! 네가 돈이라도 줬냐?”“상대방이 입금했습니다.”클릭해 보니 20만 원이 입금되었다.로열 음악 학원.송아영은 비싼 원피스를 입고 학원으로 향했다. 솔직히 얘기해서 그 옷은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하지만 육예찬이 명승희에게 옷을 보내라고 한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빌어먹을 자식, 나만 그곳에 가봤다고 했으면서. 명승희 씨도 그 주소를 알고 있었던 거잖아? 역시 남자의 말은 믿는 게 아니야!”송아영이 민악과 사무실로 향하는데 여선생 몇 명이 그녀의 길을 막았다.“송아영 씨, 송아영 씨 너무 건방진 거 아니에요?”송아영은 의아했다.“무슨 뜻이에요?”
송아영은 바닥에 넘어졌다. 손바닥이 바닥의 자갈에 쓸려서 살갗이 찢어졌다. 송아영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주먹을 쥐었다.그 여선생은 팔짱을 두르며 말했다.“뭘 아픈 척해요? 내가 살짝 밀었다고 넘어진 거예요?”“어머, 육예찬 씨가 봤으면 우리가 괴롭혔다고 하겠네요. 본인이 넘어진 거면서 우리 탓을 하겠어요.”“당신들...”송아영이 화를 내며 반박하려는데 누군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여러분, 미안하지만 제가 조금 전 재밌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 동영상으로 이분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고개를 돌린 송아영은 당황했다. 명승희였다.여선생의 안색이 달라졌다.남은서는 명승희를 보더니 웃어 보였다.“승희 언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남은서는 명승희에게 다가갔다.“승희 언니, 오해하지 마요. 다 오해예요.”송아영이 몸을 일으켰다.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남은서를 바라봤다.“내가 너랑 친했던가?”남은서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부드럽게 말했다.“저 잊으셨어요? 저 남은서예요.”“너 남은서인 거 알아.”명승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휴대전화를 돌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난 너랑 친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남은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명승희가 육예찬과 사귄 건 아주 오래전 일이었고 명승희의 말대로 그때 남은서는 명승희와 친하지 않았다.남은서는 송아영을 힐끗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승희 언니는 예찬 오빠를 찾으러 온 건가요?”명승희는 송아영을 보며 말했다.“육예찬을 손에 넣었으면서 착하고 순진한 척하는 여우는 상대하지 못해요? 게다가 저런 별 볼 일 없는 여자들한테 괴롭힘까지 당하고.”명승희는 팔짱을 둘렀다.“아영 씨는 송씨 집안 딸이고 육씨 집안 며느리예요. 반지훈 씨 아내도 아영 씨 편이고요. 이런 보잘것없는 사람들 상대하는데 아영 씨가 눈치를 봐야 해요?”송아영은 눈을 깜빡였다.여선생들은 화를 냈다.“지금 뭐라고 했어요?”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며 말했다.“나이가 들
남은서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명승희는 가까이 다가갔다.“넌 그 애들이 육예찬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육예찬 옆에 있는 여자들을 다 쫓아버리려고 했었지. 내 아버지가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회장이라고 나한테 아부하지 않았으면 네게 해외에 나가 발레할 기회가 있었겠어?”남은서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송아영은 경악한 표정으로 남은서를 바라보았다.명승희는 남은서의 뺨을 툭툭 쳤다.“넌 네가 순수하다고 생각해? 넌 날 아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내 아버지 주변 사람들을 만났고 자기 몸까지 팔면서 그들이 네가 해외에 나가서 발레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게 했어. 발레를 몇 년 했는데 지금까지 크게 뭘 이뤄낸 것도 아니고, 넌 그냥 그 사람들이 준 돈으로 해외에서 즐기기나 하면서 몇 년 동안 그 사람들 이용했어. 만약 그들이 네 목적을 알아채고 자금을 완전히 끊지 않았더라면 네가 귀국했겠니?”명승희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명승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남은서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졌고 수려한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마치 엄청난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눈물을 머금고 변명했다.“난... 난 그런 적 없어요. 헛소리하지 마세요.”“내가 너 대신 연락해서 물어봐 줄까?”명승희는 휴대전화를 들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남은서가 막으려 하자 그녀의 편을 들던 여선생들은 순간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었다.진실 여부는 증거로 판단해야 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승희가 연락하려는 걸 막으려 하는 건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걸 의미했다. 만약 그녀가 당당하다면, 명승희가 연락해 묻게 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밝히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명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물을까 봐 두려워?”“승희 언니, 난 언니한테 뭘 잘못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왜 날 난처하게 만드는 거예요?”정체가 탄로 나자 남은서의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명승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
“전...”“남은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수작이 통할지 몰라도 육예찬한테는 그런 수작이 통하지 않아.”명승희는 송아영을 보고 말했다.“육예찬이 송아영 씨랑 약혼한다고 했을 때 난 확실히 달갑지 않았어. 6년 동안 만나면서 난 계속 육예찬의 뒤만 쫓았으니까. 6년 동안 육예찬의 마음을 얻지 못했으니 내가 왜 졌는지 알고도 싶었어.”송아영은 명승희를 바라봤고 명승희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웃었다.“그치만 난 송아영 씨한테 진 게 억울하지 않아.”남은서는 악다구니를 썼다.“당신들은 그냥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뿐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졌고,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죠. 난 당신들이랑 다르게 내가 원하는 건 나 스스로 쟁취해야 했어요. 난 내가 당신들 같은 부잣집 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운명이 불공평한 것뿐이죠.”송아영은 남은서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리며 울먹이자 눈빛이 달라졌다.“부모님이 준 거랑 자신이 스스로 쟁취한 게 어떻게 같아요? 만약 내가 뭔가를 요구할 줄만 알았다면 계속 집안에 손만 벌렸겠지, 여기 와서 당신들의 비난을 받았겠어요?”“신분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 같아요. 난 낙하산으로 음악 학원에 들어온 게 아니에요. 육예찬 씨에게 기대지도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이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죠. 그러면 우리는 당신만큼 노력한 적이 없다는 건가요? 다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쟁취해요. 단지 집안이 부유하고 생활 조건이 우월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당신들처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양보해야 하나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 쉽게 사는 사람이 있나요? 청소부 일은 쉬울까요? 음식 배달이나 택배 배송은 쉬울 것 같아요?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쉽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원망한 적이 있나요?”남은서의 울음소리가 그쳤다.송아영은 딴 곳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당신은 왜 부잣집 사람이라면 당신보다 노력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 짓는 거죠?”바람이 나뭇가지에 흔들렸
손해를 봤으니 그곳에 더 있기에는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들은 남은서를 내버려두고 떠나려했는데 명승희가 그들을 불렀다.“남 욕하는 건 그렇게 잘하더니, 사과하는 건 어렵나 봐요?”송아영은 그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걸 보고 말했다.“됐어요. 저 사람들 사과는 필요 없어요.”“필요한지 안 한 지는 아영 씨 일이지만 잘못하면 원래 사과해야 하는 법이에요. 본인들은 사과할 줄도 모른다니, 그런 풍기가 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 어떡해요? 그러고도 교사라고 할 수 있나요? 차라리 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여선생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명승희의 강한 기세에 억눌려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국 송아영에게 사과했고 송아영은 흔쾌히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명승희는 립스틱을 꺼내더니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오래 말해서 힘드네요. 일도 마쳤으니 난 가볼게요.”명승희는 립스틱을 닫은 뒤 몸을 돌려 떠났다. 송아영은 남은서를 신경 쓰지 않고 명승희를 따라갔다.“잠깐만요.”명승희는 송아영이 따라올 줄 알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감사 인사는 됐어요. 아영 씨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니까요.”송아영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면 왜 도와줬어요?”송아영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어찌 됐든 감사 인사는 꼭 해야겠어요.”비록 명승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자신을 도왔으니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명승희는 걸음을 멈춘 뒤 몸을 돌려 웃었다.“정말 나한테 고마워요?”송아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명승희를 바라보았다.명승희는 턱을 매만지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나한테 그렇게 고마우면 육예찬을 양보하지 그래요?”송아영은 당황하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육예찬이 상품도 아니고 양보라니요? 그리고 육예찬은 이미 나랑 결혼했어요. 육예찬 넘보지 말아요.”명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육예찬을 넘본다고 그래요? 누가 들으면 내가 육예찬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