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예찬은 송아영의 ‘연기’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너도 할 수 있잖아.”송아영은 싫은 표정으로 대꾸했다.“난 안 할 거야.”육예찬은 허리를 숙이며 거리를 좁혔다.“조금 전에 날 자기라고 불렀을 때는 그것보다 더 닭살 돋게 불렀잖아.”송아영은 움찔하더니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내가 그랬다고? 난 안 그랬는데.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육예찬은 송아영의 뺨을 꼬집으면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아닌 척하는 거야, 응?”송아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육예찬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송아영은 당황하며 손을 들어 그를 때렸다.“나쁜 놈, 공공장소에서 또, 읍!”육예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여 그녀의 숨을 빼앗고 그녀의 모든 향기를 소유했다.누군가 지나가는 걸 본 송아영은 다급히 육예찬을 밀어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등을 돌렸고 손부채질하며 열을 식혔다.“육 선생님.”학생이 육예찬에게 인사했고 육예찬은 짧게 대답했다.송아영은 육예찬의 등 뒤에 숨었다. 학생들이 떠난 뒤 송아영이 도망치려는데 육예찬이 그녀를 붙잡았다.“어딜 도망가려고?”송아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갈래.”“돌아가긴. 너 오후에 수업 없잖아.”육예찬이 송아영을 안아 들었다.송아영은 흠칫하더니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그걸 어떻게 알아?”육예찬은 웃었다.“내가 모를 리가 있겠어?”송아영은 얼굴을 붉혔다.“수업 없어도 안 돼!”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육예찬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품 안의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송아영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육예찬을 때렸다.“육예찬, 이 뻔뻔한 자식!”육예찬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처음 안 것도 아니잖아.”육예찬은 직접 운전해 그녀를 데리고 고급 아파트로 향했다. 음악 학원과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였다.송아영은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다음 날, 송아영은 육예찬의 널찍한 티셔츠를 입고 양반다리를 한 채로 소파에 앉아 누군가 옷을 가져오길 기다렸다.초인종 소리를 들은 송아영은 기뻐하면서 문을 열었다.그러나 문밖에 서 있는 여자가 명승희인 걸 확인하자 송아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왜 명승희 씨가 온 거예요?”명승희는 송아영을 훑어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좋네요. 결혼해서 동거 시작한 거예요?”송아영이 문을 닫으려는데 명승희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문을 잡았다.곧이어 그녀는 고가 브랜드 옷을 송아영의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받아요. 예찬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명승희는 웃으면서 선글라스를 끼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송아영은 그곳에 몇 분 동안 굳어 서 있다가 쇼핑백을 바닥에 던지며 씩씩거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육예찬! 널 죽이지 않으면 내 성을 바꾸겠어!”한바탕 화풀이한 뒤 송아영은 말없이 쇼핑백을 주웠다. 옷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았다.차 안으로 돌아온 명승희는 육예찬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육예찬은 옷을 보냈냐고 물었다.“보냈어. 다음번에는 심부름시키지마. 좋은 일 했는데도 좋은 얘기 못 듣고 심지어 오해받을 뻔했잖아.”“제대로 설명 안 했어?”“내 설명이 귀에 들어가겠어? 네가 알아서 달래.”“나 오늘 학원에 일찍 나왔는데.”“미친. 육예찬, 너 내 데이트 방해했어! 네가 돈이라도 줬냐?”“상대방이 입금했습니다.”클릭해 보니 20만 원이 입금되었다.로열 음악 학원.송아영은 비싼 원피스를 입고 학원으로 향했다. 솔직히 얘기해서 그 옷은 그녀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하지만 육예찬이 명승희에게 옷을 보내라고 한 걸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빌어먹을 자식, 나만 그곳에 가봤다고 했으면서. 명승희 씨도 그 주소를 알고 있었던 거잖아? 역시 남자의 말은 믿는 게 아니야!”송아영이 민악과 사무실로 향하는데 여선생 몇 명이 그녀의 길을 막았다.“송아영 씨, 송아영 씨 너무 건방진 거 아니에요?”송아영은 의아했다.“무슨 뜻이에요?”
송아영은 바닥에 넘어졌다. 손바닥이 바닥의 자갈에 쓸려서 살갗이 찢어졌다. 송아영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주먹을 쥐었다.그 여선생은 팔짱을 두르며 말했다.“뭘 아픈 척해요? 내가 살짝 밀었다고 넘어진 거예요?”“어머, 육예찬 씨가 봤으면 우리가 괴롭혔다고 하겠네요. 본인이 넘어진 거면서 우리 탓을 하겠어요.”“당신들...”송아영이 화를 내며 반박하려는데 누군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여러분, 미안하지만 제가 조금 전 재밌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 동영상으로 이분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고개를 돌린 송아영은 당황했다. 명승희였다.여선생의 안색이 달라졌다.남은서는 명승희를 보더니 웃어 보였다.“승희 언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남은서는 명승희에게 다가갔다.“승희 언니, 오해하지 마요. 다 오해예요.”송아영이 몸을 일으켰다.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남은서를 바라봤다.“내가 너랑 친했던가?”남은서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가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부드럽게 말했다.“저 잊으셨어요? 저 남은서예요.”“너 남은서인 거 알아.”명승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휴대전화를 돌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난 너랑 친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남은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명승희가 육예찬과 사귄 건 아주 오래전 일이었고 명승희의 말대로 그때 남은서는 명승희와 친하지 않았다.남은서는 송아영을 힐끗 보더니 웃으며 물었다.“승희 언니는 예찬 오빠를 찾으러 온 건가요?”명승희는 송아영을 보며 말했다.“육예찬을 손에 넣었으면서 착하고 순진한 척하는 여우는 상대하지 못해요? 게다가 저런 별 볼 일 없는 여자들한테 괴롭힘까지 당하고.”명승희는 팔짱을 둘렀다.“아영 씨는 송씨 집안 딸이고 육씨 집안 며느리예요. 반지훈 씨 아내도 아영 씨 편이고요. 이런 보잘것없는 사람들 상대하는데 아영 씨가 눈치를 봐야 해요?”송아영은 눈을 깜빡였다.여선생들은 화를 냈다.“지금 뭐라고 했어요?”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며 말했다.“나이가 들
남은서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명승희는 가까이 다가갔다.“넌 그 애들이 육예찬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육예찬 옆에 있는 여자들을 다 쫓아버리려고 했었지. 내 아버지가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회장이라고 나한테 아부하지 않았으면 네게 해외에 나가 발레할 기회가 있었겠어?”남은서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송아영은 경악한 표정으로 남은서를 바라보았다.명승희는 남은서의 뺨을 툭툭 쳤다.“넌 네가 순수하다고 생각해? 넌 날 아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내 아버지 주변 사람들을 만났고 자기 몸까지 팔면서 그들이 네가 해외에 나가서 발레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게 했어. 발레를 몇 년 했는데 지금까지 크게 뭘 이뤄낸 것도 아니고, 넌 그냥 그 사람들이 준 돈으로 해외에서 즐기기나 하면서 몇 년 동안 그 사람들 이용했어. 만약 그들이 네 목적을 알아채고 자금을 완전히 끊지 않았더라면 네가 귀국했겠니?”명승희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명승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남은서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졌고 수려한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마치 엄청난 모욕을 당한 사람처럼 눈물을 머금고 변명했다.“난... 난 그런 적 없어요. 헛소리하지 마세요.”“내가 너 대신 연락해서 물어봐 줄까?”명승희는 휴대전화를 들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남은서가 막으려 하자 그녀의 편을 들던 여선생들은 순간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었다.진실 여부는 증거로 판단해야 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승희가 연락하려는 걸 막으려 하는 건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걸 의미했다. 만약 그녀가 당당하다면, 명승희가 연락해 묻게 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밝히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명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물을까 봐 두려워?”“승희 언니, 난 언니한테 뭘 잘못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왜 날 난처하게 만드는 거예요?”정체가 탄로 나자 남은서의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명승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
“전...”“남은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수작이 통할지 몰라도 육예찬한테는 그런 수작이 통하지 않아.”명승희는 송아영을 보고 말했다.“육예찬이 송아영 씨랑 약혼한다고 했을 때 난 확실히 달갑지 않았어. 6년 동안 만나면서 난 계속 육예찬의 뒤만 쫓았으니까. 6년 동안 육예찬의 마음을 얻지 못했으니 내가 왜 졌는지 알고도 싶었어.”송아영은 명승희를 바라봤고 명승희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웃었다.“그치만 난 송아영 씨한테 진 게 억울하지 않아.”남은서는 악다구니를 썼다.“당신들은 그냥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뿐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졌고,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죠. 난 당신들이랑 다르게 내가 원하는 건 나 스스로 쟁취해야 했어요. 난 내가 당신들 같은 부잣집 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운명이 불공평한 것뿐이죠.”송아영은 남은서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리며 울먹이자 눈빛이 달라졌다.“부모님이 준 거랑 자신이 스스로 쟁취한 게 어떻게 같아요? 만약 내가 뭔가를 요구할 줄만 알았다면 계속 집안에 손만 벌렸겠지, 여기 와서 당신들의 비난을 받았겠어요?”“신분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 같아요. 난 낙하산으로 음악 학원에 들어온 게 아니에요. 육예찬 씨에게 기대지도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이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죠. 그러면 우리는 당신만큼 노력한 적이 없다는 건가요? 다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쟁취해요. 단지 집안이 부유하고 생활 조건이 우월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당신들처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양보해야 하나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 쉽게 사는 사람이 있나요? 청소부 일은 쉬울까요? 음식 배달이나 택배 배송은 쉬울 것 같아요?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쉽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원망한 적이 있나요?”남은서의 울음소리가 그쳤다.송아영은 딴 곳을 바라보았다.“그런데 당신은 왜 부잣집 사람이라면 당신보다 노력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 짓는 거죠?”바람이 나뭇가지에 흔들렸
손해를 봤으니 그곳에 더 있기에는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들은 남은서를 내버려두고 떠나려했는데 명승희가 그들을 불렀다.“남 욕하는 건 그렇게 잘하더니, 사과하는 건 어렵나 봐요?”송아영은 그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걸 보고 말했다.“됐어요. 저 사람들 사과는 필요 없어요.”“필요한지 안 한 지는 아영 씨 일이지만 잘못하면 원래 사과해야 하는 법이에요. 본인들은 사과할 줄도 모른다니, 그런 풍기가 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 어떡해요? 그러고도 교사라고 할 수 있나요? 차라리 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여선생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명승희의 강한 기세에 억눌려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국 송아영에게 사과했고 송아영은 흔쾌히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명승희는 립스틱을 꺼내더니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오래 말해서 힘드네요. 일도 마쳤으니 난 가볼게요.”명승희는 립스틱을 닫은 뒤 몸을 돌려 떠났다. 송아영은 남은서를 신경 쓰지 않고 명승희를 따라갔다.“잠깐만요.”명승희는 송아영이 따라올 줄 알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감사 인사는 됐어요. 아영 씨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니까요.”송아영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러면 왜 도와줬어요?”송아영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어찌 됐든 감사 인사는 꼭 해야겠어요.”비록 명승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자신을 도왔으니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명승희는 걸음을 멈춘 뒤 몸을 돌려 웃었다.“정말 나한테 고마워요?”송아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명승희를 바라보았다.명승희는 턱을 매만지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나한테 그렇게 고마우면 육예찬을 양보하지 그래요?”송아영은 당황하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육예찬이 상품도 아니고 양보라니요? 그리고 육예찬은 이미 나랑 결혼했어요. 육예찬 넘보지 말아요.”명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육예찬을 넘본다고 그래요? 누가 들으면 내가 육예찬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인
육예찬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그게 그렇게 이상해? 난 별별 스타일의 여자들 다 봤어. 겨우 남은서가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송아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남자들이라면 착한 척 여우짓 하는 여자들을 분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송아영은 팔짱을 두르며 의심했다.“강미현의 일에서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육예찬은 송아영이 3년 전 일을 꺼내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강미현한테는 호감조차 없었는데 뭘. 당시 우리 어머니는 증거 때문에 강미현이 내 사촌 여동생이라는 걸 믿었지만 난 내가 그 말을 믿은 적이 있다고는 하지 않았어.”송아영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육예찬은 강미현이 자기 사촌동생이라는 걸 인정한 적이 없었다.송아영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그러면 왜 난 상대 못할거라 생각한 거야?”“너?”육예찬은 팔짱을 두르며 웃었다.“네 머리로도 계략이 있다면 이 세상에 계략 없는 여자는 없을 거니까.”송아영은 불같이 화를 냈다.“그거 인신공격이야!”육예찬은 송아영을 품에 안았고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난 사실을 얘기했어. 하지만 난 너처럼 바보 같은 사람이 좋아. 단순하고 귀엽고 만만하잖아.”송아영은 그를 때렸다. 육예찬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를 껴안았다.“널 괴롭히는 건 나여야만 해. 다른 사람은 안 돼.’’송아영은 눈을 흘겼다.“명승희 씨는 만만하지 않다 이거지?”육예찬은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또 질투하네.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선택하는데 그렇게 많은 이유가 필요해?”완벽한 여자를 선택해 서로를 존경하고 아끼면서 사는 것이 남자들의 꿈일지도 모르지만 육예찬은 그런 게 필요 없었다. 어릴 때부터 우월한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우수한 여자들을 충분히 많이 만나봤었다.그가 명승희 같은 스타일을 선택하지 않은 건 명승희가 별로여서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생활 방식을 갖고 있고 똑같이 자신에게 엄격했기에 두
송아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한숨을 쉬었다.“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걱정이야. 음악 티저에서 우리 민악을 선택했다는데 관중들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이야. 만약 나 때문에 망치게 되면 정말 무안할 것 같아.”강성연은 송아영을 바라봤다.“말만 많이 해 봤자 소용없어.”강성연은 잔을 내려놓더니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자.”송아영은 의아했다.“어딜?”강성연은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쳤다.“좋은 데로 데려가 줄게.”송아영은 부랴부랴 물건을 정리하고 강성연의 뒤를 따랐다.강성연은 차를 한옥마을 대문 밖에 세워뒀고 송아영은 차창 밖을 바라보고 당황했다.“한옥마을?”강성연은 차에서 내렸다. 한옥마을에는 오가는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했다.송아영은 그녀의 곁에서 걸었다. 강성연이 티켓 두 장을 사자 송아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날 데리고 관광하러 온 거야? 너 한가해?”“누가 한가하대?”강성연은 그녀에게 티켓 한 장을 쥐여줬다.“관중들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며? 그러면 버스킹 라이브로 한번 시험해 보자고.”한복을 입은 학생 여럿이 한적한 정원에 서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관광지에서는 자주 보이는 광경이었다. 송아영은 다급히 강성연을 붙잡았다.“성연아, 너 설마 나보고 저 사람들이랑...”강성연은 웃었다.“너한테는 어렵지 않을 거야.”“하지만... 난 저 사람들 알지도 못하는걸. 저 사람들한테 악기를 빌려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송아영은 난처했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돈은 만능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어.”강성연은 그들을 향해 걸어갔고 송아영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항상 검소하던 강성연이 언제부터 이렇게 돈을 낭비할 줄 알게 된 걸까?강성연은 그들과 얘기를 나눈 뒤 몸을 돌려 송아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송아영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학생들은 민악을 사랑하는 학생들이었고 강성연에게서 송아영이 민악을 배우는 사람이란 걸 알고는 그녀를 열정적으로 맞이했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