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천초는 약재를 가지러 갔고 낙청연도 그녀를 따라갔다.그렇게 형제 두 사람은 정원에 남아 얘기를 나눴다.낙청연은 주방으로 향한 뒤 송천초의 옆에 앉아 그녀가 약을 달이는 걸 도와주며 말했다.“진소한이 많이 다친 것 같더구나.”송천초는 마음이 아픈 얼굴로 말했다.“여러 군데는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깊었습니다. 저에게 진귀한 약재가 많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번에 그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당시 상황을 되돌이켜보면 등허리가 서늘했다.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말했다.“사군은 널 보호하는데 진소한을 보호하지는 않는구나. 진소한을 돌려보내는 건 어떻겠느냐? 그는 세자이니 굳이 그를 쫓아가 죽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도 왕부로 이사해 나와 같이 지내면 사군을 두려워할 일도 없고 말이다.”진소한이 처음부터 존재한 건 송천초가 사군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진소한이 없다면 사군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송천초에게 가까이하려 할 것이나 그러면 송천초가 아주 큰 두려움을 겪을 게 분명했다.그러나 송천초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고 웃으며 말했다.“그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진짜 정을 보아낼 수 있다고 하지요. 전 이미 그를 떠날 수 없습니다.”송천초의 미소는 달았다.낙청연은 살짝 놀랐다. 그녀는 송천초가 진짜 진소한에게 마음이 있음을 보아냈다. 송천초는 그를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왕부에서 그대의 처지가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낙월영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그대와 왕야 사이의 가시가 될 겁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굳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사군은 묶여있고 이것은 제 운명입니다. 저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해야지요. 아무도 절 평생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그가 가르쳐준 것입니다.”송천초는 그 말을 하면서 상처를 입었음에도 정원에서 미소 띤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낙청연은 송천초의 눈빛에 빛이 가득한 걸 보아냈다. 누
부진환이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그의 차가운 표정과 눈빛은 마치 칼을 품은 듯했다.낙청연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만 개의 화살이 그녀의 심장을 찔러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몸에 난 구멍을 뚫고 지나간 듯이 몸 전체가 오싹해졌다.“왕... 왕야가 왜 여기 앉아 계시는 겁니까? 깜짝 놀랐습니다.”낙청연은 확실히 깜짝 놀랐다.부진환은 살짝 화가 난 듯한 얼굴로 표정을 굳힌 채로 그녀를 추궁했다.“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것이냐? 부경리가 널 왕부까지 데려다줬는데 그새 또 몰래 나가다니? 왕부에서 널 찾으려고 출동한 사람이 얼마인지 아느냐?”오늘 낙청연이 궁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서방에 있었다. 그는 일을 마친 뒤 류 태비가 그녀를 왜 찾았는지를 물으려고 했는데 그녀를 찾아가 보니 왕부에 없었다.하인에게 물어보니 혼자 나갔다는 말에 부진환은 화가 나서 저녁도 먹지 못하고 그곳에 앉아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절 찾았다고요?”예전에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으면서 말이다.며칠 동안 왕부에 오지 않아도 어디에 갔었는지 묻는 사람이 없었고 돌아올 때마다 그녀의 몸을 걱정하고, 혹시나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건 지초와 등 어멈뿐이었다. 그녀는 몰래 왕부를 빠져나가는 게 습관이 되었고 혼자 나가는 것도 익숙했다. 그런데 오늘 부진환이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키며 그녀를 찾으려 할 줄은 몰랐다.“전...”낙청연이 해명하려 했으나 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널 죽이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그런데 밖에 몰래 나가다니? 왕비가 갖춰야 할 모습은 전혀 없구나!”낙청연은 불만스레 대꾸했다.“지금 저한테 제대로 된 왕비의 모습을 갖추라는 것은 좀 늦지 않았습니까? 전 줄곧 이랬습니다. 그건 왕야께서 제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그 말에 부진환은 말문이 막혀 반박할 수 없었다.“낙청연, 넌 아직 금족 중이다. 지금부터 넌 처소에서 반 발짝도 못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너
부진환도 그곳에 있었기에 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그의 뜻을 물었다.금서는 웃어 보였다.“왕야께서 동행하고 싶으시다면 그래도 됩니다.”부진환은 덤덤히 대꾸했다.“그럼 가지.”그렇게 부진환과 낙청연은 금서를 따라 궁으로 향했고 수희궁에 도착했다.전각 안에는 차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태후는 오늘 소탈한 차림이었는데 일거수일투족에서 위엄이 흘러넘쳤다.“부부 두 사람이 함께 이곳에 오는 건 드문 일이구나. 다들 편히 있거라.”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태후는 곧장 낙청연에게 물었다.“청연아, 내가 저번에 너에게 주었던 약을 왕야에게 먹였느냐?”부진환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시선을 들어 낙청연을 바라보았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긴 채로 태후를 보고 있었는데 태후의 자애로운 미소를 보니 다른 속셈이 있는 듯했다.“약이라니요? 무슨 말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낙청연은 정중하게 대답했다.“너도 참,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다니. 그럼 한 가지 물으마. 두 사람 요즘에...”태후는 그 말과 함께 부진환을 힐끗 쳐다보고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환아, 넌 밖에 나가서 좀 걷고 있거라. 여인들끼리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다.”부진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고 낙청연은 깜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부진환을 불러 세우려 했다.부진환이 떠난다면 이 능구렁이의 구역에서 전혀 안전감이 없었다.부진환이 막 밖으로 나가자 태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청연아, 아직 손을 쓰지 않은 것이냐?”손힘이 얼마나 억센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낙청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전 태후 마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태후는 그녀를 놓아주는 대신에 몸을 기울이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더없이 날카로운 눈빛과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낙청연에게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거의 붙을 듯했다.“청연아, 내가 약조했던 일은 꼭 지키마! 네가 손을 쓴다면 네가 뭘 원하
낙청연은 있는 힘껏 반항하며 두 궁녀에게서 벗어나더니 손을 들어 금서를 힘껏 밀쳤다.낙청연은 현재 상처가 다 나은 상태라 궁녀들은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약 그릇이 바닥에 떨어졌고 낙청연은 입 안의 탕약을 뱉어냈다.약에는 독이 없었으나 아주 자극적이었고 탕약이 코안으로 들어가서 코안이 뜨거웠다. 그리고 뜨거운 무언가가 천천히 흘러내렸다.금서는 다시 일어나 낙청연을 잡으려 했다.바로 그때,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금서의 손을 덥석 잡더니 그녀를 힘껏 밀쳤다.금서는 눈앞의 사람을 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섰다.살기가 가득한 부진환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태후를 직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했다.“태후 마마께서는 일부러 절 밖에 나가게 하셨지요. 이번에는 또 낙청연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한 겁니까?”태후는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이 태연한 얼굴로 덤덤히 대꾸했다.“난 그저 왕비가 하루빨리 아이를 가지길 바랄 뿐이다. 왕비가 얌전히 약을 마시려 하지 않으니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부진환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저희 부부의 일이니 태후 마마께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너희의 일이라니? 너희는 황가의 사람이다. 그러니 이것은 황족의 일이지! 혼인을 올린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이는 황실 선조에 대한 불효다!”부진환의 미간에 서늘한 기색이 어렸다. 그는 약간의 위협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이유에서든 다음번에 태후 마마께서 다시 한번 낙청연에게 약을 들이붓거나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것을 먹이려 한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부진환은 곧장 낙청연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그에게 끌려 밖으로 달려 나가면서 다른 한 손으로 끝없이 코피를 닦았다.수희궁을 나온 뒤 부진환이 고개를 돌려봤을 때 낙청연의 반쪽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그는 깜짝 놀랐다.“왜 그런 것이냐?”그는 다급히 손수건을 꺼내 낙청연의
부진환의 낮은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난 멍청하지 않다. 태후는 내게 나가라고 했는데 전각밖에는 아무도 없더구나. 나에게 엿들을 기회를 준 것이지. 그런데 듣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 말들은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그 말에 낙청연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여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벼운 얼굴로 턱을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드디어 저를 한 번 믿어주시네요.”부진환은 그 말에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다.그는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고 낙청연은 깜짝 놀라며 곧장 몸을 일으켜 그를 따라갔다.“가시려면 먼저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기다려주세요.”낙청연은 부진환을 따라 출궁할 생각이었다.이미 저녁이 되었고 그들이 막 궁문에 도착했을 때쯤 등 뒤에서 다급한 부름이 들려왔다.“왕야! 왕비 마마!”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단희 고고가 황급히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단희 고고.”단희 고고는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왕비 마마, 류 태비 마마를 구해주십시오.”낙청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태비 마마께 무슨 일 있으신가?”단희 고고는 애가 탔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저를 따라와 보시며 알게 될 겁니다.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부진환을 보며 말했다.“7황자는 어제 저에게 태비 마마를 살펴봐 달라고 했습니다. 한 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부진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겨 단희 고고와 함께 류 태비의 침궁으로 향했다.세 사람은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황궁은 원래도 아주 컸고 류 태비가 지내는 곳은 편벽한 곳이라 그곳에 도착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다급히 침궁 안으로 들어가보니 눈에 들어온 것은 정원에서 꽃에 물을 주는 뒷모습이었다.단희 고고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 그녀는 겁에 질린 듯 보였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갔다.세 사람은 류 태비의 등 뒤에 도착했으나 그녀는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듯이 계속 물을 주면서 독
바닥에는 물고기들이 가득했는데 전부 잘게 찢긴 사체들이었다.“왕비 마마, 이것 좀 보십시오! 이 물고기들은 전부 태비 마마께서 아끼는 것들입니다. 태비 마마께서는 매일 반 이상의 시간을 이 정원에서 보내며 물고기에게 밥을 주고 꽃에 물을 주며 자주 물고기들과 대화를 하셨죠.”“여기 있는 물고기들에는 전부 이름이 있습니다.”“하지만 오늘, 태비 마마께서 갑자기 귀신이라도 들린 듯이 이 물고기들을 잡아 가위로 베었습니다!”“그때 태비 마마의 눈동자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무척이나 무자비하여 섬뜩할 정도였습니다!”“전 왕비 마마께서 태후 마마를 보러 갔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태비 마마께서 갑자기 이러셔서 즉시 왕비 마마를 떠올렸지요. 그래서 궁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돌아오니 다시 정상이 됐을 줄은 몰랐습니다.”“태비 마마께서 잠시 뒤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왕비 마마, 제발 태비 마마를 살려주세요!”단희 고고는 그 말과 함께 무릎을 털썩 꿇었다.낙청연은 잠시 바닥을 관찰했다. 물고기들은 전부 잘게 베어져 있었는데 얼마나 큰 증오를 품고 있기에 이런 짓을 벌였을까?가위는 아직 계단 위에 있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묻은 발자국이 정원 밖으로 향해 있었다.발자국은 아주 매끈하고 혼잡스럽지 않았다. 류 태비는 아주 평온하게 걸어 나간 듯했는데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했다.만약 정신을 차렸었더라면 바닥에 널브러진 사체에 당황해서 떠나는 발걸음이 혼잡했을 것이다.낙청연은 그 발걸음을 따라갔다.놀라운 것은 발걸음이 류 태비가 꽃에 물을 주는 곳으로 향했다는 것이다.전 과정이 평온했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더니 고개를 들어 방 안에서 부진환과 웃는 얼굴로 얘기를 나누는 류 태비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등허리가 서늘했다.“왕비 마마, 무언가 보아내셨습니까?”단희가 긴장한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낙청연은 그녀를 끌고 구석으로 갔다.“태비 마마께서 줄곧 정신 상태가 좋지 않으셨나
7황자는 그녀를 여러 차례 도왔고 류 태비는 7황자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으니 응당 도와줘야 했다.오늘 밤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면 류 태비는 몸이 안 좋은 것일 수 있었으니 약을 먹어 치료해야 했다.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류 태비를 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단희는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왕비 마마! 지금 바로 왕야와 왕비 마마를 위해 침구를 정리하고 방을 준비하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곧장 떠났다.낙청연은 그녀를 부르고 싶었으나 미처 붙잡지 못했다.그녀는 남겠다고 했지만 부진환이 남으려고 할지는 알 수 없었다.그와 류 태비는 7황자와 류 태비처럼 감정이 깊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사람인데 부진환이 이곳에서 묵으려 할지는 미지수였다.낙청연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부진환과 류 태비는 할 말이 별로 없었고 잠시 뒤 부진환이 걸어 나왔다.류 태비는 경서를 읊으러 불당으로 향했다.“해결됐느냐? 이젠 가도 되겠지?”부진환이 뒷짐을 진 채로 걸어오며 말했고 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일이 좀 복잡한 것 같아 오늘 밤 여기 남을 생각입니다.”“여기에 남는다고?”부진환은 미간을 구겼다.“왕야께서도 여기에 남으시렵니까?”미간을 구긴 부진환은 머리가 지끈거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은 다른 사람의 저택에 묵은 적이 없다.”“그러면 왕야께서는 먼저 돌아가시지요. 내일 아침 사람을 보내 절 데리러 오시면 됩니다.”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궁전 안에서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단희가 물고기 사체를 깔끔히 정리했다고 하나 짙은 피 냄새는 흩어지지 않았다.냄새가 심했지만 정원의 경치는 아주 아름다웠다. 저녁때쯤 석양이 정원에 드리워지고 산들바람에 꽃이 미약하게 흔들리면서 은은한 꽃향기가 피 냄새를 대신했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노을빛 속에서 등장했다.낙청연은 살짝 놀란 얼굴로 걸어오는 부진환을 바라보았다.“왕야께서는 돌아가시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본 부진환은 류 태비가 처마 아래 서서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았다.두 사람은 처마 아래 서 있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류 태비는 그곳에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넋이 나간 얼굴로 앞으로 걸어가더니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완전히 의식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너무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구나.”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며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류 태비는 갑자기 걸음에 박차를 가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고 표정도 점점 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부진환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고 그의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깃들었다.한차례 광풍이 몰아치자 낙청연의 품속에 있던 나침반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낙청연은 미간을 구기더니 류 태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무언가 있었다니.”그녀의 눈동자에 곤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아침에 이 궁전을 관찰했을 때는 아무런 사악한 기운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밤이 되자 이렇게 큰 인기척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여기에 계속 있던 게 아니라 갑자기 이곳에 온 듯했다.“내보내 줘! 내보내 줘!”류 태비는 복도에서 뛰어다니며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덜덜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무언가에 갇힌 듯, 아무리 해도 나갈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낙청연은 복도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류 태비는 아마 꿈을 꾸고 있거나 환각을 보는 듯했다.광풍이 불어왔고 하늘은 먹을 칠한 듯 캄캄했는데 얼마나 어두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커다란 동굴처럼 사람을 빨아들일 듯했다.궁전은 얼마나 조용한지 오직 류 태비가 다급하게 뛰어다니며 고함을 지르는 소리만 들려왔다.바로 그때, 낙청연의 방에 있던 촛불이 바람에 꺼졌고 창문이 별안간 닫혔다.깜짝 놀란 부진환은 몸을 일으켜 가보려 했는데 낙청연이 그를 덥석 잡으며 낮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