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나 지났지만 사저를 찾지 못했다. 사저, 정말 저를 두고 떠난 겁니까?사부님도 떠나고, 사저도 떠나면 저 혼자 어떡하란 말입니까.”글씨에는 묵이 번진 흔적으로 가득했다.낙요는 마음이 아팠다.온심동이 정녕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 쓴 것이라면, 한 장 한 장 가득 찬 눈물 자국은 대체 무엇일까?낙요는 천천히 펼쳐보았다. 안에는 온심동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낙요를 찾은 흔적으로 가득했다.온심동은 심지어 여국을 떠나 천궐국의 도성에 갔고, 만족에도 가보았으나 결국 성과 없이 돌아왔다.꿈에도 그리던 사저를 찾지 못하고 말이다.그러나 낙요는 더욱 충격이었다. 온심동이 자신과 그렇게 가까운 천궐국의 도성에 있었다니.여기까지 읽은 낙요는 그제야 이 필기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거짓이 아닌,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여기에 기록된 천궐국의 곳은 모두 실제도 존재하는 곳이었으며, 천궐국에 가지 않았다면 지어낼 수 없는 얘기였다.그러니 온심동은 정말 오랫동안 낙요를 찾아 헤맸다.아주 오랫동안.낙요는 한 장 한 장 펼칠 때마다 가슴이 더욱 아려왔다.온심동은 무려 반년 동안 낙요를 찾아다녔다.그러나 훗날, 낙요를 찾아다닌 기록은 사라졌다.“멀쩡한 사람이 어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 더는 찾아다닐 수 없다.사저, 정말 살아있다면 제발 빨리 돌아오세요.금일 조정에서 대제사장을 다시 선발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여국에는 대제사장이 없으면 민심이 뒤숭숭해진다면서 말이다.사람들은 모두 대제사장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고, 나는 절대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 없다.그 자리는 사저의 자리니까.난 대제사장이 되어 사저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아무도 사저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여기까지 본 낙요는 책장을 꽉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것 때문에 대제사장이 된 것일까?낙요는 계속 읽었다.“난 실력도 사저보다 못하고, 대제사장의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도 모두 반대했지만, 그들도 결국 자신의
“며칠 전 낙청연을 보았다. 침서가 데려온 여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대제사장의 자리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겠다.”“난 그 여인에게서 사저를 보았다. 사저 다음으로 난 그렇게 실력이 강한 풍수사를 만난 적은 없다. 만약 사저가 계셨다면 그녀와 친우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아쉽지만 그 낙청연이라는 자는 대제사장의 자리를 빼앗으러 온 것이니 우리의 적이 될 수밖에. 아무도 우리 사저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거기까지 본 낙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어쩐지 엄청난 비밀이 곧 수면 위로 드러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불안감이 커져만 갔다.낙요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낙청연이 사저의 나침반을 꺼내며 자기가 바로 사저라고 말했다. 난 정말로 믿었다. 이 세상에 사저 같은 실력을 가진 사람은 절대 없을 테니까.”“하마터면 그 여인에게 속을 뻔했다. 난 침서의 별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사저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여인들을 보았다. 난 사저가 실종된 뒤 침서가 줄곧 사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사저의 움직임과 표정, 말투를 따라했다. 낙청연도 침서가 훈련시킨 것이겠지. 하지만 확실히 낙청연은 수많은 여인들 중 가장 특출난 여인이었다. 그녀가 가장 닮았다. 침서가 그녀를 데리고 도성으로 온 이유를 알았지. 아마 내 대제사장의 자리를 탐낸 것이겠지.”“사저의 나침반이 낙청연의 손에 들어갔다는 건 사저가 사고를 당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겠지. 분명 침서와 낙청연이 사저를 해쳤을 것이다. 난 낙청연을 죽일 것이다.”거기까지 본 낙요는 깜짝 놀랐다.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것처럼 숨이 막혔다.당시 그녀는 온심동에게 자신이 낙요라고 얘기한 적 있었고 온심동도 그녀의 말을 믿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온심동은 그녀를 속여서 천기당으로 데려온 뒤 혼향으로 그녀를 죽이려 했다.그때 낙요는 예전에 천기당에서 죽었을 때가 떠올라 온심동이 자신을 죽인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온심동이 적은 내용을 보니 무너져 내릴 것
여기까지 왔는데.낙요는 책자 위 내용을 살피느라 계진이 찾은 밀실을 발견하지 못했다.그 말을 들은 낙요는 몸을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곧이어 그녀는 그곳으로 걸어가 기관을 찾았다. 그 밀실에도 기관쇄가 하나 있었다.이내 기관이 열렸다.밀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에 돈 상자가 즐비한 것이 보였다. 그곳은 재물을 두는 창고였다.선반에도 엄청난 값어치의 물건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두 사람은 밀실 안을 살폈고 낙요는 이내 구석 자리에서 바구니를 하나 발견했다.안에는 병들이 아주 많이 놓여 있었고 병마다 부적이 붙어 있었다. 병 안에는 들어있는 건 전부 혼백이었다.낙요는 깜짝 놀랐다.병을 든 그녀는 위에 번호와 이름, 성별이 적힌 걸 보았다. 낙요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침서는 이 혼백들을 수집해서 뭘 하려던 걸까?그녀는 아래쪽을 뒤져봤고 그 아래에도 똑같이 병만 있을 뿐 다른 건 없었다.제홍.익숙한 이름이었다.그녀가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상자를 열자 안에서 한 사내가 나와 천천히 낙요의 앞에 나타났다.그의 용모를 본 순간 낙요는 미간을 구겼다. 확실히 그녀가 본 적이 있는 사내였다.사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오랫동안 잠들어있은 듯했다.“제홍?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그녀를 바라보는 제홍의 눈빛은 낯설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본 뒤 물었다.“여긴 어디지?”낙요는 기억이 서서히 떠올랐다.제홍은 모원원이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원원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반대하여 모원원을 저택에 가두었었다.그것은 낙요가 낙청연의 신분으로 여국에 온 뒤로 처음 처리했던 사건이었다.그 뒤에 모원원과 제홍은 그녀의 도움을 받고 도망쳐서 도성을 떠났다.그러나 며칠 뒤 낙요는 모원원의 시체를 보았다.당시에 길에서 온심동을 만나기도 했었다.모원원의 혼백을 찾았을 때, 모원원은 이미 혼향이 되어 있었다.그리고 혼향을 만든 사람의 기억을 통해 그녀는 온심동의 과거를 보았다.그래서 모원언이 온심동에게 죽임당했을 거라고 확신했다.당시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온심동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낙요는 계속해 제홍에게 물었다.“제가 묻겠습니다. 당시 침서가 모원원을 죽일 때 또 무슨 짓을 했습니까?”“내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자 그는 날 이 병 안에 가둬두었다.”“내가 얼마나 갇혀있었던 것이지?”제홍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병 안에 갇힌 뒤로 그는 강제로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고 모든 기억과 의식을 금지당했다.낙요는 주먹을 꽉 쥘 뿐, 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이때 계진이 다가왔다.“대제사장님.”낙요는 우선 제홍의 병을 닫은 뒤 그 병을 옷소매 안에 넣었다.계진은 낙요를 데리고 선반 옆으로 갔다. 그곳에는 기관 상자가 하나 있었다.그것을 열어보자 안에 혼향이 잔뜩 들어있는 게 보였다.낙요는 순간 몸이 굳었다.제홍과 다른 이들의 혼백을 혼향으로 만들려던 걸까?낙요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계진, 침서와 오랫동안 같이 있었을 텐데 그가 혼향을 만들었던 일을 알고 있었느냐?”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오래전부터 혼향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6, 7년은 된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낙요는 심장이 철렁했다.“모원원이라는 자를 아느냐?”계진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전 대제사장이 모원원의 이름을 말했을 때 이미 기억이 났었다.“침서가 제게 모원원을 조사해 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당시 낙청연이 모씨 가문에서 액을 쫓을 때 침서가 제게 가보라고 했었습니다. 혹시 무슨 상황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라고 했습니다.”그 말을 듣자 낙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러니 모원원의 죽음 뒤에는 확실히 침서가 있었고 또 온심동에게 누명을 씌웠다.“가자, 도성으로.”낙요는 그녀와 온심동이 원수가 된 것이 침서가 벌인 짓인지 확인할 셈이었다.낙요는 곧바로 도성으로 돌아갔다.-황궁.어서방.부진환과 진익은 강화 상황을 보고했고 부진환은 월아진을 이전하고 재건해야 하고 또 자금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황제는 동의했고 부진환과 진익 두 사람을 칭찬했
부진환은 황급히 거절해다.“안 됩니다, 폐하.”“김 현령의 딸은 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전 그저 그녀를 친우로 생각하고요. 억지로 묶어놓는다면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김 현령의 부탁을 어긴 것이 되겠지요.”“김 현령의 딸은 제가 잘 보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부진환은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그런데 이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침서가 천천히 걸어온 것이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세자와 김현령의 딸이 반드시 혼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건 세자의 개인적인 감정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세자는 김 현령 먼저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어긴다면 사람들이 세자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어쩌면 안 좋은 소문이 돌면서 폐하까지 험담을 들을지도 모릅니다.”“게다가 김 현령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엄청난 공로를 세운 셈이지요.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소원마저 이루어주지 못한다면 백관들이 실망하지 않겠습니까?”“앞으로 그 누가 조정을 위해 일하겠습니까?”“이건 세자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 세자는 당연히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침서는 말을 마치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부진환을 보았다.부진환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는 침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일리 있구나.”“세자, 이 일은 사양하지 말거라. 짐이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할 것이다.”부진환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황제는 그와 김옥한을 반드시 혼인시킬 생각이었다.부진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어서방에서 나왔고 진익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세자, 울상 할 필요 없소. 김 현령의 딸은 온화하고 세심하며 다정하지. 세자와 혼인한다고 해도 겨우 명분일 뿐이오. 몇 년 지난 뒤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핑계를 찾아 헤어지면 되지.”부진환은 대답하지 않고 어두운 안색으로 계속해 앞으로 걸었다.진익이 계속해 말했다.“난 세자가 김 현령의 딸과 그런 약속을 했는 줄은 몰랐소. 그날 비가 크게 내려 두 마디만 듣고 떠났었소.
그러나 안으로 들어갔다가 때마침 침서에게 차를 가져다주던 고묘묘와 마주쳤다.고묘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낙요의 앞길을 막았다.“여긴 웬일이오? 누가 들어오라고 했소?”고묘묘는 곧이어 문 앞에 서 있던 호위를 향해 호통을 쳤다.“앞으로 내 명령이 없으면 이 여인을 들여보내지 말거라!”그녀는 낙요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나가시오!”낙요는 고묘묘를 차갑게 바라보더니 개의치 않고 그녀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원래도 화가 나 있던 고묘묘는 무시를 당하자 낙요의 팔을 덥석 잡으며 그녀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그러나 낙요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고묘묘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밀쳤다.낙요는 고묘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당신을 찾아온 것은 아니오. 그러니 자꾸 들러붙지 마시오.”낙요의 머릿속은 온심동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오늘 제대로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고묘묘는 더욱 화가 났다. 그녀는 침서가 강화로 간 것이 낙요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고묘묘는 원래도 그 일로 원망이 가득했는데 낙요가 직접 찾아와서 기고만장하게 굴 줄은 몰랐다.“낙요, 이곳이 누구의 구역인지 모르는 것 같군!”고묘묘는 씩씩거리면서 긴 채찍을 빼내더니 낙요를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그러나 낙요가 채찍을 잡고 힘껏 고묘묘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아주 빠르게 채찍으로 고묘묘의 목을 졸랐다.그녀는 깔끔하고 민첩하게 고묘묘의 목과 두 손을 묶었다.마지막에 고묘묘의 목에 쉽게 풀 수 없는 매듭을 지었다.고묘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아무리 버둥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옆에 있던 계집종에게 호통을 쳤다.“얼른 이걸 풀지 않고 뭐 하느냐?”고묘묘는 무척 놀랐다. 그동안 안 본 사이 낙요는 또 무공이 늘었다.고묘묘는 이를 악물었다낙요는 무공도 늘었는데 자신은 그 자리에 멈춰 있으니 말이다. 모든 게 괘씸한 난희 때문이었다. 매일 그녀와 저택에서 싸워야 했으니까.낙요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름에 침서가 손에 힘을 주어 찻잔을 산산조각 냈다.정신을 차린 그는 부서진 조각들을 털어냈다. 손바닥이 조각에 긁혀 피가 나는데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침서는 천천히 일어난 뒤 낙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왜 온심동을 묻는 것이냐?”“너도 알다시피 온심동은 죽었다.낙요는 침서의 반응을 보고 그가 켕기는 게 있음을 깨달았다.낙요는 화를 내며 장검을 빼들고 그것으로 침서를 가리켰다.“온심동의 책자를 보았습니다. 날 죽인 사람은 온심동이 아니었습니다.”“침서, 당신이 날 속였습니다!”침서는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구기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낙요야...”낙요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들고 있던 장검으로 침서의 목을 겨누었다.“당신이 한 짓이 아닙니까?”침서는 낙요의 반응에 사실을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낙요야, 우선 검을 내려놓거라. 내가 천천히 설명하겠다.”“이 일은 네가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낙요는 무척 화가 난 건지 두 눈이 벌게져서 핏발이 섰다.“그러면 얘기해 보시지요!”분노하며 고함을 지르자 목소리가 갈라졌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낙요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그 장면에 침서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안색이 급변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낙요야, 왜 그러는 것이냐? 낙요야!”그는 손을 뻗어 낙요의 뺨을 두드렸다.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낙요가 눈을 번쩍 떴다.동시에 그녀는 검을 움켜쥐고 침서의 머리를 내리쳤다.침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전혀 경계하지 않았던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낙요는 곧바로 일어나서 나침반을 들고 침서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았다.그녀는 침서가 사실을 얘기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기에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비록 사람의 기억을 본다고 해도 상대방의 가장 인상 깊은 기억만 보인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그녀가 본 기억은 그녀가 보고 싶었던 기억이 아닐 수도 있었다.그러나 낙요는 포기하지 않았다.눈을 감자 낙요의 눈앞에 침서의 기억이 떠
하령은 그녀에게 후회할 거라고 했다.그리고 낙요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그 뒤로 낙요는 침서의 기억 속에서 온심동에 관한 기억을 보았고 모든 것은 그녀의 추측과 똑같았다.낙요와 온심동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두 사람이 적이 된 건 모두 침서 때문이었다.침서는 그들을 서로 대립되는 입장으로 만들어 서로를 죽이게 만들었다.큰 충격을 받은 낙요는 더 이상 기억을 찾아보 수가 없었다.처음에는 머리만 아팠는데 이제는 가슴까지 아팠다.그러다 결국 피를 왈칵 내뿜었다.낙요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차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이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낙요는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분사검을 들어 바닥에 누운 침서를 찌르려 했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고묘묘가 안색이 돌변하며 매섭게 호통을 쳤다.“그만!’낙요의 장검이 침서를 찌를 뻔했을 때, 정신을 차린 침서가 재빨리 몸을 비켰다.침서는 격렬하게 기침하면서 피를 토했다.그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낙요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금방 알게 되었다.머릿속의 기억들이 혼란스러워져서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낙요가 다시금 검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고묘묘가 제때 들이닥쳐 낙요를 말렸다.“미쳤군! 아무리 당신이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조정의 중요한 관리를 죽이려하는 것은 큰 죄오!”“죽고 싶은가 보군!”고묘묘는 무척 화가 나서 곧바로 낙요와 싸우기 시작했다.이때 낙요는 두 눈이 벌게져 있었고 핏발이 선 눈동자에서는 아주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고묘묘는 이미 낙요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분사검이 고묘묘의 팔을 찔렀고 낙요는 고묘묘를 걷어찼다.고묘묘는 벽에 부딪혀 바닥에 쓰러진 뒤 피를 토했다.이때 침서가 일어섰다.낙요는 살기 가득해서 기세등등하게 그를 공격했고 침서는 곧바로 손을 들어서 막았다.두 사람은 방 안에서 격렬히 싸웠고 이때 침서는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진지하게 대응했다.“낙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