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연 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곧이어 마당에 불청객이 찾아왔다.침서였다.“멀리서부터 향기가 나길래 와봤더니 대제사장 저택에서 나는 향기일 줄이야.”침서가 천천히 걸어왔다.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멈추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낙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침서는 곧장 다가와 그녀의 곁에 앉았다.“볼일이 없으면 너랑 술 한잔하러 올 수도 없는 것이냐?”“적어도 우리는 하마터면 부부가 될 뻔했는데 말이다.”침서의 어조가 차가워졌다.부진환이 여국에 남는다는 얘기를 들은 침서는 낙요가 다시 자신과 혼인하려 하지 않는 이유가 부진환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게 분명했다.침서는 술을 두 잔 따른 뒤 그중 한 잔을 낙요에게 건넸다.“낙요야, 나와 한잔하자꾸나.”낙요는 술잔을 받지 않았다.옆에서 손을 뻗어 그 잔을 빼앗아 갔다. 그는 낙요의 앞에 서면서 낙요와 침서 사이에 끼어들었다.“술을 마시려는 것이오? 그러면 내가 침서 장군과 한잔하겠소. 침서 장군의 신혼을 축하하오. 장군과 공주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길 바라고, 일찍 자식을 보길 바라오!”부진환은 약간 차가운 어조로 덤덤히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조롱이 보였다.침서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세자, 하하, 수완이 좋구려. 이렇게 바로 내 눈앞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니 말이오.”침서의 차가운 눈동자에서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부진환은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이건 침서 장군 덕분이지. 날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방법을 생각지 못했을 테니 말이오.”자극을 받은 침서는 순식간에 화가 치솟았다.그가 입을 열려는데 누군가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부군, 대제사장 저택에서 술을 마실 거면서 왜 저를 부르지 않으셨습니까?”고묘묘는 화려한 차림새로 천천히 걸어왔다. 화색이 도는 그녀의 얼굴에서 의기양양함이 보였다.그러나 그녀는 자리에 앉아있는 백서에게 시선을 두더니 백
고묘묘는 침서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곧바로 기어올랐다. 그녀는 거만한 표정으로 백서를 향해 손가락질했다.“대제사장과 따지지는 않겠소. 이 노예를 내게 넘기면 그냥 넘어가 주겠소!”고묘묘는 침서가 낙요를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노예를 목표물로 삼았다.낙요는 생각하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꿈도 꾸지 마시오!”“오늘 우리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에 난 당신을 초대하지 않았소. 제멋대로 찾아와서 내 사람을 때려놓고 또 멋대로 내 사람을 처벌하겠다고? 대제사장 저택이 당신 집인 줄 아시오?”“여단청, 손님을 배웅하거라!”여단청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앞으로 나서며 손짓을 했다.“공주마마, 돌아가시지요.”고묘묘는 화가 났는지 여단청에게 발길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넌 또 뭐냐? 비키거라!”그 모습을 본 낙요는 안색이 확 달라졌다.그녀는 앞으로 나서며 고묘묘의 팔을 잡았다.“비켜야 할 사람은 당신이오!”“가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밖까지 배웅해 주지!”고묘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당신이 대제사장이면 뭐 어때서? 감히 내게 손을 대려는 것이오? 죽으려고!”이미 상황이 틀어졌으니 고묘묘는 가차 없이 낙요를 공격했다.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고묘묘는 원래 낙요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이내 그녀에게 목을 졸렸다.이때 침서가 다가와서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놓거라!”이때 부진환이 침서를 막아서며 단호히 말했다.“부부라면, 장군 역시 공주와 함께... 꺼지시오!”부진환의 눈빛이 살기로 가득 찼다.두 사람은 격렬히 싸우기 시작했고, 랑목도 곧바로 싸움에 껴들었다.낙요는 부진환을 도우러 갈 생각이었지만 고묘묘가 빈틈을 노려 기습했다. 그녀는 채찍을 뽑아 들고 부진환을 급습하려 했다.낙요는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단번에 그녀의 채찍을 틀어쥐고 다른 손으로 고묘묘의 목을 졸랐다.고묘묘는 화가 난 얼굴로 낙요를 노려보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낙요는 이내 채찍을 쥐어 고묘묘를 묶었고 그녀의 멱살을 잡고 그녀
고묘묘의 흉악하던 표정이 그 순간 억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침서, 구해주세요!”그러나 침서의 시선은 낙요에게로 향해 있었다.“낙요야, 내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물으마.”“내가 고묘묘를 내쫓으면 나와 혼인할 것이냐?”낙요는 망설이지 않았다.“이미 지나간 일입니다.”“침서, 우리에게 부부의 연은 없습니다.”침서는 가슴이 아팠다.눈빛 또한 삽시에 차가워졌다.“그래, 알겠다.”말을 마친 뒤 그는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고묘묘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의 몸을 묶은 채찍을 풀었다.비록 다정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묘묘는 무척 감동했다.낙요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말했다.“문을 닫거라.”여단청은 곧바로 대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었다.다시 마당으로 돌아와 보니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차게 식어있었다.“밤이 깊었으니 다들 돌아가서 쉬거라.”“계진, 백서. 내일 성 밖으로 가서 주락 일행을 데려오거라.”“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된다.”두 사람이 정중하게 대답했다.“네!”다른 이들은 바삐 움직이며 마당을 정리했다.낙요는 부진환이 가슴팍에 손을 올린 채 기침하는 모습을 보고 다급히 다가갔다.“왜 그러십니까? 침서 때문에 다친 겁니까?”부진환은 고개를 저었다.“별거 아니다.”마음이 놓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부진환을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부진환의 맥을 짚었다.부진환은 그녀의 안색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 몸이 어떤지 나도 잘 알고 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난 죽지 않을 것이다.”낙요는 암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장은 죽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처투성이라 어떻게 해야 몸이 좋아질지 모르겠습니다.”부진환이 대답했다.“그냥 놔두거라.”“난 목숨이 질기니 말이다.”낙요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세상은 아주 큽니다. 전 반드시 당신을 낫게 해줄 약을 찾을 겁니다. 어떤 방법이든 다 시험해 볼 겁니다.”“저희는
장군저택.고묘묘와 침서는 장군 저택으로 돌아갔다. 고묘묘는 침서의 팔에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말했다.“장군, 밤이 깊어졌으니 장군께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방문이 닫혔다.침서는 몸을 홱 돌리더니 고묘묘의 목을 조르며 그녀를 방문으로 몰아붙였다.고묘묘는 겁을 먹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드리워진 표정으로 침서를 바라봤다.“장군...”침서의 눈빛이 매서웠다.“낙정은 어디 있느냐?”고묘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낙... 낙정이 어디 있는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다음 순간, 고묘묘의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렬한 질식감에 고묘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지만 소용이 없었다.침서의 살기 가득 찬 눈동자를 본 순간 두려움이 급습했다.침서는 정말로 그녀를 죽일지도 몰랐다.고묘묘는 입을 뻐끔거리며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침서는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고묘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전 정말로 낙정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침서가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누가 꾸민 짓이냐?”“감히 거짓말을 한다면 지금 당장 죽여버릴 것이다!”침서는 여전히 고묘묘의 목에 손을 올려놓고 위협하는 어조로 말했다.고묘묘가 대답했다.“낙정이 꾸민 짓입니다. 그녀는 낙요를 잡을 생각이었습니다.”“가면도 그자가 준 것이고 대신 시집가라고 했던 것도 그녀입니다. 전 그저 그날 대제사장 저택으로 가서 낙요인 척한 것뿐입니다.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모릅니다.”“낙정은 심지어 제게서 돈을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전 낙요가 왜 황궁에 갇혀있었는지 모릅니다. 낙정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이미 돈을 들고 도망쳤는지도 모릅니다.”그렇게 많은 돈이라면 낙정은 여생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침서는 그 말을 듣자 미간에 살기가 어렸다.고묘묘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장군, 이제 손을 놓아주겠습니까?”침서는 정신을 차
그러나 침서는 별로 흥이 나지 않아 보였다.고묘묘가 열심히 추고 있을 때 난희가 호위 몇 명을 데려와 편청 안에 앉았다.고묘묘는 당황하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난희를 노려봤다.“넌 왜 여기 왔느냐?”난희가 설명하려는데 침서가 그녀를 불렀다.“난희야, 이리 오거라.”난희가 천천히 다가갔다.“장군.”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침서가 그녀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겼다. 난희는 다소 당황스러운 듯 보였다. 그녀가 일어나려는데 침서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침서는 아주 다정히 난희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와 술을 마시자꾸나.”난희는 순간 황홀해져 침서와 함께 술을 마셨다.그녀는 침서의 품에 기대어 그에게 과일을 먹여줬다.고묘묘는 그 광경을 보자 마음속 불길이 활활 타올라 침서와 난희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침서는 그녀가 춤을 추지 않자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날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춤을 추라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안 할 생각이라면 당장 장군 저택에서 나가거라. 괜히 눈에 거슬리게 굴지 말고.”고묘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주변에 호위 몇 명이 앉아있는 걸 보면 침서는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이 분명했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장군 저택을 떠나게 말이다.고묘묘는 참고 또 참으며 불쾌한 듯 말했다.“침서, 당신은 제가 알아서 이 혼인 관계를 끊어내길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야 당당히 낙요와 다시 혼인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전 당신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뒤 고묘묘는 계속해 춤을 추었다.항상 거만하던 공주가 지금은 장군 저택에서, 많은 사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부군은 품에 다른 여인을 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공주로서의 존엄 따위는 이미 짓밟혔다.침서는 술을 마셨고 과감히 움직였다.그의 큰 손이 난희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의자 위 두 사람의 행동과, 이따금 들려오는 소리에 고묘묘는 화가 가득 찼다.난희는 거칠게 숨을 쉬면서 침서의 손을 잡
난희는 생각할 새도 없이 황급히 옷을 잡아당겨 몸을 가렸다.그런데 고묘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으며 악랄하게 말했다.“겨우 무희 따위가 감히 날 욕보여? 죽고 싶은가 보구나!”난희는 아파서 발버둥 치면서도 황급히 옷으로 몸을 가렸다. 그러나 고묘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채 그녀를 방에서 끌어냈다.어젯밤 일이 있은 뒤로 난희는 이미 고묘묘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그러나 그녀는 장군이 절대 고묘묘가 제멋대로 굴게 놔두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공주마마, 잊지 마세요. 어젯밤 춤을 추라고 한 건 장군이십니다. 절 다치게 한다면 장군은 절대 공주마마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고묘묘는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난희의 턱을 움켜잡았다.“넌 아직 내 수단을 본 적이 없지.”“겨우 무희 따위가. 침서가 정말 널 신경 쓴다고 생각하느냐?”“그는 그저 널 이용해 나와 헤어지려 하는 것뿐이다.”“내가 알려주마. 앞으로 장군 저택에 내가 있으니 넌 필요 없다!”말을 마친 뒤 고묘묘가 호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여봐라, 이 천박한 것을 청루에 팔아버리거라!”고묘묘는 장군 저택에 시집왔을 때 자신의 호위들을 데려왔다. 이때 그들이 앞으로 나서며 난희를 끌고 갔다.난희는 조금 전 가까스로 옷을 입었다. 그는 곧바로 손을 써서 호위들을 물러나게 했다.그녀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아주 비참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매섭게 고묘묘를 노려보고 있었다.“공주마마, 여기는 장군 저택이지 공주마마의 저택이지 아닙니다!”“장군 저택의 사람을 벌할 생각이라면 장군께 물어보셔야지요!”고묘묘는 예전부터 화를 참고 있었다. 그런데 무희 따위가 자신을 도발하자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그녀는 채찍을 꺼내 난희를 때렸다.“제기랄, 무희 따위가 감히 기어오르려고 해?”그러나 채찍이 난희를 향해 날아들고 있을 때, 손 하나가 나타나 채찍을 쥐었다.다음 순간, 침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고묘묘, 이곳은 장군 저택이다.”“네가 멋대로 굴 수 있는
난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생겼다.침서가 이렇게 고묘묘를 싫어할 줄은 몰랐다. 고묘묘가 장군 저택에 있더라도 그녀에게는 아마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고묘묘는 방 안으로 끌려갔고, 잠시 뒤 난희가 그녀에게 약을 가져다줬다.“공주마마,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장군 저택에서는 적당히 하셔야 할 겁니다.”난희가 다가가 고묘묘의 상처를 치료해 주러 했다.그러나 고묘묘가 매섭게 따귀를 때리며 악랄하게 그녀를 노려보았다.“꺼지거라!”“내가 지내는 곳을 더럽히지 말거라!”’난희는 뺨을 부여잡고 원망을 참으며 고묘묘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제가 더럽다고요? 그러면 공주마마는 얼마나 깨끗하십니까?”말을 마친 뒤 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고묘묘는 화가 치밀었다.“멈추거라!”그러나 난희는 그녀를 무시하고 떠났다.고묘묘의 계집종이 방 안으로 들어가 팔의 상처를 치료하려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공주마마, 시집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다치시다니요.”“황후마마께 말씀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황후마마께서 꼭 편을 들어주실 겁니다!”그 말을 들은 고묘묘는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계집종의 뺨을 때렸다.계집종은 바닥에 쓰러졌다.고묘묘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위협했다.“모후에게 얘기하라고? 그러면 내가 장군 저택에 계속 있을 수 있겠느냐?”“감히 이 일을 모후에게 알리는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릴 것이다!”계집종은 겁을 먹고 덜덜 떨다가 뺨을 부여잡고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네.”-그날, 계진과 백서는 주락 일행을 데려왔다.마대를 뒤집어쓰고 있던 사람도 낙요의 방 안으로 들려왔다.낙요는 그녀를 밀실 안에 가둬놓았다.“오는 길에 순조로웠소? 누군가에게 발각당하지는 않았겠지?”낙요의 질문에 주락은 고개를 저었다.“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러면 됐소.”두 사람이 방 안에서 나오자 멀지 않은 곳에서 부진환이 다가왔다.“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냐?”그는 주락
진익이 앞으로 나서며 부진환과 낙요의 사이에 서서 말했다.“당신은 이젠 세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는지 아시오?”“이렇게 계속 대제사장 저택에서 지내는 것은 좋지 않소.”“세자 저택은 있을 게 다 있으니 챙길 건 없소. 바로 가면 되오!”“내가 주루에 음식을 한 상 시켰소. 오늘은 대제사장과 함께 가서 축하합시다!”부진환이 거절하려는데 진익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황급히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난 이번에 사람들을 많이 불렀소. 안 가면 안 되오.”“내 체면을 봐줘야지.”“이번뿐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 매일 이런 연회에 참석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이 도성의 여러 세력을 알고 싶지 않소?”“이 사람들은 평소 한곳에 모이기 어렵소. 이번에는 다들 당신을 보러 오는 것이오.”“당신은 이제 막 세자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밉보이면 안 되지.”그 말을 들은 부진환은 망설여졌다. 확실히 단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이곳은 여국이지 천궐국이 아니니 말이다.그들과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하더라도 밉보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청연의 발목을 잡을 것이니 말이다.그러나 그는 낙요를 바라보았다.“대제사장, 어떻게 생각하시오?”낙요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가시지요.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여국의 세자가 되었고,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지요.”낙요는 가벼운 어조로 말하며 생글 웃었고 부진환은 긴장이 풀렸다.그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걸렸다.“좋소.”진익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난 먼저 가보겠소. 저녁에는 시간 맞춰 도착하시오.”말을 마친 뒤 진익은 떠났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저녁이 되기 전, 낙요는 부진환과 함께 진익이 예약해 둔 주루로 향했다.그들은 일찍 도착한 편이라 먼저 도착한 손님은 없었다.마차에서 내린 뒤 두 사람은 주루로 들어섰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