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가인가?” 진태위는 몹시 긴장해서 물었다.낙청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이번은 진천리의 겁수(劫数)입니다. 만일 진천리의 구체적인 위치를 찾으려면 그의 육친의 심장혈(心頭血)이 필요합니다. 이건 아주 흉험합니다.”심장혈이 있어야만 진천리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심장혈을 취하는 것은 아주 흉험한 일이다.진 태위는 깜짝 놀라더니 막 입을 열려고 했다.그때 갑자기 아주 굳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하겠습니다!”두 사람은 모두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진백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말했다: “저의 심장혈을 취하십시오!”진태위는 몹시 놀랐다. “안 된다! 이건 아주 흉험한 일이다. 내가 하겠다! 나는 이제 곧 땅에 들어갈 사람이니,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미 살만큼 살았다.”하지만 진백리는 즉시 반박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조정의 중신입니다. 나라는 아버지가 필요하고 백성들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이 못난 자식이 좀 쓸모 있는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백리!” 진 태위는 마음속으로 감동했다.진백리는 확고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의 심장혈을 취하십시오!”낙청연은 한마디 일깨워줬다: “진천리의 명격은 완전치 않습니다. 이번에 설사 난관을 넘겼다고 할지라도 또 이런 일이 있을 것이고 다 다음번에 또 있을 것입니다.”“제가 이번에 그를 구하는 것은 명을 바꾸어 놓은 행위이므로 당신들은 아마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진백리는 아주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하겠습니다.”“좋습니다. 그럼 준비하시고 시작합시다.” 낙청연은 진백리의 심장혈을 취하고 나면 진백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그녀는 원래 진백리와 온계람을 먼저 만나게 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진천리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 진 태위와 진백리는 모두 몹시 조급해하고 있었다.그래서 먼저 취혈하고 진천리
진백리는 갑자기 울컥 피를 토했다.그 모습에 류훼향은 혼비백산했고 긴 침을 반쯤 빼내었던 손은 허공에 멈췄다.“부군, 부군! 왜 그러십니까? 절 놀라게 하지 마세요, 부군!”류훼향은 당황한 얼굴이었다.낙청연은 그녀를 밀어내더니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레 침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가 난 음성으로 말했다.“멍청하군요! 이렇게 하면 당신의 부군은 당신의 손에 죽게 될 것입니다!”위험천만한 상황인데 류훼향은 침을 뽑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 침은 아주 가느다랗고 길었기에 혹시라도 부주의로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면 심맥을 다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류훼향은 얼빠진 얼굴을 하더니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반박했다.“당신이죠! 왕비께서 그러신 것 아닙니까?”바로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진 태위는 하인에게서 류훼향이 이곳으로 쳐들어왔고 두 하인을 다치게 했다는 것을 알고는 씩씩거리며 이곳으로 향했다.뒤늦게 도착한 그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진백리를 보는 순간 진노했다.“네가 왜 여기 들어온 것이냐?”진 태위는 성을 내며 류훼향을 호되게 꾸짖었고 류훼향은 겁을 먹어 움찔 몸을 떨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 낙청연을 이곳으로 들여보내다니요. 두 사람이 같은 방에 단둘이 있다니, 이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제 부군의 평판이 나빠질 것입니다.”진 태위가 화가 난 이유는 류훼향이 진백리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고 이곳에 왔기 때문인데 류훼향이 걱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평판이었다.“평판! 평판이라! 네가 섭정왕부에서 지랄발광할 때는 왜 평판에 신경 쓰지 않았느냐?”“여봐라! 부인을 류씨 저택으로 모시거라!”진 태위의 명령에 사람들은 류훼향을 데리고 나가려 했고 류훼향은 깜짝 놀랐다.“아버님, 절 저희 친가로 내쫓으실 생각이십니까?”류훼향의 반항에도 진 태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인 몇 명이 류훼향을 억지로 잡으면서 그녀를 방에서 끌고 나갔다.진 태위는 얼른 진백리에게 다가섰으나 감히 너무 가까이 다
진 태위는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류훼향이 자신의 친아버지까지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방 안으로 들어온 류 상서는 심각하게 다친 진백리를 보고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다급히 그에게 달려들었다.“우리 사위가 왜 이렇게 된 것이냐? 누가 널 이렇게 만든 것이냐?”류훼향도 침상 위에 고꾸라지면서 울부짖었다.“부군! 부군! 부군께서는 무사하셔야 합니다. 부군께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전 어떡합니까…”진 태위는 머리가 지끈거려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그만! 울 테면 나가서 울거라!”류 상서는 진 태위를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백리는 사돈의 친아들이 아닙니까? 어찌 자신의 아들이 다른 간악한 인간에게 당하는 걸 지켜만 볼 수 있으십니까?”“왕비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반드시 왕비에게 따져 물어야겠습니다!”류 상서는 역정을 냈고 진 태위는 하마터면 그대로 화를 터뜨릴 뻔했다.바로 그때, 문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있습니다. 저에게 뭘 물어보시려는 겁니까?”진 태위는 그녀가 나타나자 갑자기 긴장감이 들었다.“왕비 마마, 이 일은…”낙청연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면서 그에게 지도를 건넸다.진 태위는 지도 위에 그려진 표식을 보고는 얼굴을 환히 밝히며 급히 밖으로 나가 사람에게 서신을 전해라 일렀다. 그는 그곳에서 진천리를 찾을 생각이었다.진 태위는 너무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미처 낙청연을 챙기지 못했고 류 상서는 일부러 낙청연에게 시비를 걸려 했다. 그는 뒷짐을 지면서 낙청연을 훑어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그래도 승상의 적녀인데 예의를 이렇게나 모르다니. 왕비가 되어서는 다른 사내와 단둘이 방 안에 있고, 그것도 모자라 옷차림도 단정치 못하니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승상 대감께서 그렇게 감추려고 애쓴 이유가 있었군요.”낙청연은 냉소를 흘렸다.“류 상서께서는 제가 단정치 못한 옷차림으로 진 공자와 단둘이 방 안에 있는 걸 보셨습니까? 증거도 없이 사람을 모함하려 하시다니요.”류
류훼향은 죽을힘을 다해 낙청연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고 낙청연은 유유자적한 태도로 싸늘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료 태의가 재차 입을 열었다.“다행히도 제때 약을 복용해 심맥을 보호했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낙청연을 향해 예를 갖췄다.“왕비 마마, 사전에 다른 의원을 찾은 적이 있습니까?”료 태의는 아주 놀랐다. 그는 어떤 고명한 의술을 갖춘 의원이 목숨까지 위협했던 상처를 약만으로 억눌렀는지 궁금했다.낙청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류훼향을 흘겨보더니 차갑게 그녀를 밀쳐내며 료 태의의 질문에 답했다.“내가 처방한 것이오.”류훼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그녀의 대답에 료 태의는 눈을 빛냈다.“왕비 마마께서 이렇게 고명한 의술을 갖추시다니, 소신, 어떤 처방을 내린 건지 한 번 확인해봐도 괜찮겠습니까?”“당연하지. 처방은 진 태위께 드렸네. 잠시 뒤 진 태위께 부탁해 찾아보게.”료 태의는 그녀의 말에 얼굴이 환해졌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그리고 그는 곧 류 상서에게 말했다.“진 공자께서는 상처가 심각하시지만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닙니다. 왕비 마마께서 준비하신 약을 계속 복용한다면 상태가 호전될 것입니다. 소신이 계속 여기 있어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그들의 싸움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료 태의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새파랗게 질린 류 상서의 낯빛을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일부러 태의까지 데리고 와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셨는데, 결국 바라시던대로 료 태의가 증언해주지는 않았군요.”“대체 누가 진 공자를 다치게 한 건지는 진 공자께서 깨어나면 자연히 알 수 있겠지요.”“류 상서께서 저를 폐하께 고할 생각이시라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낙청연의 서늘한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녀의 말에 류 상서와 류훼향은 문득 겁이 났다.하인에게 서신을 보내라고 분부하러 갔던 진 태위가 때마침 돌아왔고 우연히 료 태의와 마주쳐 그의 진단 결과를 알게 되었다. 료 태의의 말을 듣고 난 뒤
일의 경위를 들은 진 태위는 등골이 오싹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자신의 며느리와 손자가 그림에 갇혀 매일 밤 불에 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는 말에 진 태위는 가슴께를 부여잡았다.“어찌! 어찌 사람이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 것인지!”“누가,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입니까?”낙청연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배후가 누군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류훼향과 큰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하지요.”진 태위는 그 말에 경악했다. 그는 겨우 평정을 되찾고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어쩐지 섭정왕부 문 앞에 가서 난리를 치더니…”현재 진 태위는 등허리가 서늘했다. 류훼향이 이렇게 악랄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진 태위는 분노를 다스리면서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왕비 마마, 왕비 마마는 신통한 능력을 갖췄으니 저희 며느리와 손자를…”진 태위는 헛된 희망을 안고 물었으나 낙청연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합니다.”“하지만 그들이 전하고 싶은 말들을 전해 생전에 미련이 남았던 일들을 해결할 수는 있지요.”진 태위는 실망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가슴을 두드리며 발을 굴렀다.”이렇게 큰일을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계람이 제 손자를 데리고 다른 남정네와 도망쳤다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니. 정말 몹쓸 인간은 저입니다.”“배후의 사람을 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진 태위의 눈빛에 살기가 담기면서 예리하게 번뜩였다.낙청연은 그에게 더는 묻지 않았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갈 생각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진백리가 깨어난 다음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 진 태위에게 일렀고 진 태위는 사람을 시켜 그녀를 섭정왕부까지 바래다주었다.왕부로 돌아오고 나서 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가 작은 물건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온계람은 그녀의 곁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은공, 제 부군께서는 별일 없으시겠지요?”낙청연은 다소 엄숙해진 말투로 말했다.”진천리를 구할 것을 선택했으니 몸이 성치 않을 것이
소서가 떠난 뒤, 소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저는 왕비 마마께서 남경의 일을 알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 태위를 도와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그 말에 부진환은 다시 한번 멈칫했다.그의 눈동자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만약… 누군가 그녀에게 남경의 일을 얘기해준 것이라면?”소유는 깜짝 놀랐다.“다른 사람 말입니까? 저희도 방금 안 소식인데 누가 저희보다 더 빨리 이 소식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궁.”부진환은 계속해 붓을 놀렸다. 내리뜨린 그의 시선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소유는 그의 말에 경악했다.그의 말대로 이러한 소식은 맨 처음 궁으로 전해지니 궁에서 가장 먼저 알 것이었다.그리고 오황자는 최근 며칠간 계속 입궁했었다.그러니 어쩌면 오황자가 왕비에게 알려준 걸지도 몰랐다.—낙월영은 낙청연이 진씨 일가의 마차를 타고 위신 있게 돌아왔다는 걸 전해 듣고는 화가 나다 못해 온몸을 벌벌 떨었다.겨우 화를 억눌러 물건을 부서뜨리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가위를 들어 정원에 있는 꽃과 풀들을 사정없이 잘랐다.“낙청연! 천한 것!”낙청연이 기대는 권세가들이 많아질수록 낙월영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녀를 막고 싶었지만 얼굴을 치료하지 못해 밖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그러나 이번 일로 그녀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낙월영은 옷을 갈아입고 면사포를 쓴 다음 저택을 나섰다.“둘째 아씨, 어디 가십니까?”장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집에 가서 물건 좀 가져올 테니 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낙월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결연히 떠났다.이번엔 꼭 일을 신속히 처리해버려 절대 낙청연에게 승승장구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낙청연은 이틀의 시간을 이용해 정교한 영롱구(玲瓏球)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작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고 뒷면에는 부문이 적혀있
분위기가 삽시에 어색해졌다. 낙청연은 부운주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 건지 자신을 청연이라고 부르고 또 하필 부운주가 그걸 들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역시나, 부진환은 몸을 돌리면서 한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인제 보니 다섯째 너는 낙청연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 못했나 보구나.”“본왕이 기억하게 해주랴?”그 말에 부운주는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더니 고개를 숙이며 해명했다.“최근 초상화를 한 폭 그렸는데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 형수님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마음이 급한 바람에 호칭을 잘못 불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형님.”그 말을 들은 낙청연은 부운주의 손에 들린 초상화를 발견했고, 고개를 숙인 부진환도 그것을 발견했다.그는 초상화를 가로채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모르는 게 있다면 본왕에게 물어보거라.”부진환은 그 말과 함께 화폭을 펼쳤고 그림을 보는 순간 부진환의 동공이 떨렸다.초상화 안에 있는 여인은 살집이 있는 편이었고 붉은색 혼례복을 입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려서 보이는 얼굴 반쪽이 낙청연과 제법 닮아있었다.그 순간 부진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갑자기 어두워진 부진환의 안색을 확인한 낙청연은 화폭에 뭐가 그려져 있길래 부진환이 이토록 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화폭을 보려는데 부진환이 돌연 화폭을 거두면서 눈에 살기를 띠었고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이 보기에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잘 그린 것 같구나.”“본왕이 이것이 누구인지를 몰라볼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냐?”찌직—부진환의 차가운 손가락이 가차 없이 화폭을 찢었고 부운주는 창백해진 얼굴로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형님!”부운주는 바닥에 털썩 꿇어앉았다.“형님, 찢지 말아 주십시오!”부진환은 가차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찢었다.낙청연은 그것이 마음 아파 부진환을 말리려 했다.“그림일 뿐인데 이렇게 화를 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그림이 뭐
부진환은 심각하게 화가 난 상태로 발길질했고 그의 발밑에 깔려있던 것은 그의 발길질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나뭇조각과 빨간 술(穗子: 가마·기·띠·끈이나 여자의 옷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 줄이 함께 날아갔고 주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부스러기들이 낙청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얼굴에서 피가 났다.그녀의 나비 날개와도 같은 속눈썹 아래에는 노여움이 가득 담긴 눈동자가 있었다.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더니 씩씩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왕야, 저와 오황자가 사통한다고 의심하는 것이면 차라리 수세를 써주세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부진환은 더없이 싸늘한 얼굴로 몸을 약간 숙이며 낙청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곧이어 음산한 목소리가 낙청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렇게 쉽게 떠날 생각이었느냐? 꿈 깨거라.”말을 마친 부진환은 단호히 몸을 돌려 떠났고 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깊숙이 차오른 분노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처참히 부서진 영롱구를 보는 낙청연은 마음이 칼로 에는 듯 아팠다.부진환에게 밟힌 것은 영롱구가 아니라 그녀의 자존심이었다.낙청연이 허리를 숙여 술을 주우려고 할 때 뼈마디가 분명한 손이 먼저 술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고개를 들어보니 오황자의 미안함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저 때문에 곤욕을 치르셨군요.”부운주는 가슴 아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낙청연은 술을 건네받으면서 그를 위로했다.“그대 탓이 아닙니다.”“왕야는 원래도 감정 기복이 심하신 분이라 언제 역정을 내실지 모릅니다. 이미 익숙한 일인걸요.”낙청연은 눈동자에 담겨있던 노여움을 거두면서 평온하게 대꾸했다.그러나 오황자는 여전히 자책하고 있었다.“이건 어디서 산 것입니까? 제가 배상해드리겠습니다.”“제가 직접 만든 것이라 배상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값어치가 없거든요.”낙청연은 돌돌 말린 작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주워들었다.종이는 밟혀 꾸깃꾸깃해졌고 뒤에 적힌 부문도 더러워져 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