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나온 지 꽤 됐으니 아주 바쁘겠지.”“참, 우리가 가보았던 그 풍경은 누가 찾은 것이냐?”낙청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소서가 대답했다.“모두 왕야께서 찾은 겁니다.”“사실 왕비 마마께서 계양으로 오겠다고 하기 전에 이미 준비하셨습니다.”“그동안 왕야께서는 정말 바삐 뛰어다니셨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흠칫했다.부진환은 일찍 준비하고 있었다.이렇게 많은 일을 한 건 전부 그녀를 기쁘게 만들기 위해서였을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송천초가 방문 앞에 다다랐다.“청연, 아직 잠이 들지 않았군요.”송천초의 긴장한 기색에 낙청연은 살짝 놀라며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왜 그러느냐?”낙청연은 밖을 내다보았다. 어쩐지 사군의 기운이 느껴졌다.“그가 또 온 것이냐? 내가 널 도와 그를 내쫓으마!”송천초가 낙청연의 손을 잡았다.“그러지 마십시오.”“조금 전 우리는 주루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겁니다. 홀로 있었던 걸 생각하면 조금 불쌍하기도 하네요.”송천초는 당시 초경을 보았다.낙청연은 살짝 의아했다.“너...”송천초는 한숨을 쉬었다.“이미 그에게 사과했습니다. 전 예전에 그가 부도덕한 짓을 했다고 오해했습니다.”“제가 그에게 편견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제가 술 두 병을 가져왔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면 저와 함께 정자에서 한잔하시렵니까?”송천초가 술병을 들고 말했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좋다.”낙청연은 하인에게 음식 몇 가지를 시켰다.송천초의 근심 가득한 모습을 보니 고민이 있는 듯했다.“고민이 있는 것이냐? 진소한 때문이냐?”낙청연이 떠보듯 물었고 송천초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몇 번이나 재촉했습니다. 사실 시간을 끄는 것은 그가 아니라 저입니다.”“제 상황은 조금 특별합니다. 저 뱀은 평생 절 따라다닐 겁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으니...”“그건 앞으로 세 명이 함께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전 도저
그 말에 부진환이 미간을 구겼다.그는 그녀가 일부러 자신을 유인했음을 깨달았다.“난 관심 없소.”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나려 했고 낙정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진짜 관심 없습니까?”“오늘 낙정의 모습이 아주 익숙하지 않습니까?”부진환의 발걸음이 멈칫했다.낙정은 그가 걸음을 멈추자 그가 이 일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낙청연이 만족 진영에 한 번 갔다가 돌아온 뒤로 랑심이 저렇게 됐지요. 그래서 전 일부러 만족 진영에 가서 조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발견했습니다.”“왕야의 모비가 여국 공주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야께서는 낙청연의 어머니가 여국 대제사장이라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부진환은 그 말에 흠칫하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낙정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낙청연이 그 사실을 왕야께 알리지 않은 모양이군요.”“두 분 겉보기에는 서로 은애하지만 서로에게 감추는 것이 아주 많은듯하군요.”“사람을 조종하는 물건은 낙청연의 어머니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낙청연의 어머니와 만족 왕은 과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비밀을 만족 진영에 숨겨두었지요.”“그래서 낙청연이 만족 왕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왕야, 이제 아시겠지요?”“낙청연이 천궐국으로 돌아온 건 왕야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독을 계속해 연구하기 위해서입니다.”“랑심은 그녀의 실험품입니다.”“그리고 왕야 또한 마찬가지지요.”“또 한 가지 있습니다. 낙청연의 어머니와 탁성은 아주 친한 사이입니다.”“한때 왕야의 모비와 낙청연의 어머니께서도 왕래가 잦았습니다. 동족이니까요.”“왕야께서는 낙청연의 어머니가 왕야의 모비를 해쳤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까?”“왕야께서 독에 조종당하는 것도 어쩌면 낙청연의 어머니가 한 짓일지 모릅니다.”일련의 말에 부진환은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그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노발대발했다.“닥치시오!”“내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건 본왕과 낙청연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겠지.”“
부운주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낙청연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 것이오.”엄내심은 웃었다. 그녀는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5황자는 낙청연을 아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낙청연이 마음에 둔 사람은 섭정왕이군요.”“5황자가 이렇게 자신을 숨기는 건 뭔가 목적이 있는 거겠지요. 저와 연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면 전 제가 원하는 것을 얻고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그녀가 원하는 건 당연하게도 지고지상의 권력과 지위다.엄내심은 어릴 때부터 통제당하는 삶을 살았고 태어날 때부터 가문의 도구로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태후와 그녀의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린다면 그녀의 청춘이 다 지나갈 것이니 의미가 없었다.그동안 참았던 걸로 충분했다. 앞으로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통제당하지 않고 반대로 다른 이들을 통제하는 삶을 살 생각이다.엄내심은 타인의 생명을 통제하는 감각을 즐겼다.부운주는 미간을 구기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관심 없소.”“아니, 관심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참아왔는데 억울하지 않습니까?”“분명 당신이 먼저 낙청연을 좋아하게 됐는데 왜 낙청연은 부진환과 함께 평생을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낙청연이 부진환과 은애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지 않습니까? 저였으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그리고 만약 부진환이 또 낙청연을 이용하는 거면 어찌합니까?”“다들 알다시피 부진환은 낙월영을 몹시 사랑합니다.”엄내심의 말은 부운주가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화를 불러일으켰다.“그만!”“경고하는데 낙청연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죽여버리겠소!”말을 마친 뒤 부운주는 화를 내면서 떠났다.그러나 엄내심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겼다.낙청연의 뒤를 밟으면서 뜻밖의 수확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렇게 생각하면서 엄내심은 곧바로 그를 따라갔다.
낙청연은 손을 들어 그를 안으며 그의 가슴에 뺨을 붙였다.“도망갈까 두렵습니다.”부진환은 작게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이 어디로 도망가겠느냐?”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가볍게 웃었다.“그건 그렇습니다. 뛰어봤자 벼룩이지요.”아름다운 미소에 부진환은 애정 가득한 손길로 그녀의 콧잔등을 긁었다.하지만 머릿속에 문득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계양에 며칠 더 머무르고 싶으냐?”낙청연이 대답했다.“왕야께서는 할 일이 많으시겠지요. 며칠 시간을 지체했으니 내일 바로 돌아가는 건 어떻습니까?”부진환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연등회를 보러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데 벌써 돌아간다는 말이냐?”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살짝 웃었다.“아름다웠던 건 연등회가 아니라 길가의 풍경이었습니다.”“그래. 그러면 내일 떠나자꾸나.”부진환은 말하면서 낙청연을 품에 꼭 안았다.다음 날 아침 일찍 그들은 낙랑랑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경도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가는 길 내내 사람이 많아 떠들썩했고, 그들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경도로 돌아갔다.그래서 속도가 아주 늦었다.낙청연은 기회를 찾아 단둘이 초경을 만났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혼자 말없이 따라다니며 송천초를 보호하고 있었다.그를 만나러 갈 때 낙청연은 술 두 병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나무 아래 기대앉아 있던 초경은 술병을 건네받은 뒤 술을 한 모금 마셨다.“천초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날 설득하러 온 것이냐?”낙청연은 한숨을 쉬면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그래. 천초가 진소한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괴롭지 않으냐?”초경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또 한 번 술을 마셨다.“술은 고맙다. 다음번에는 더 잘 숨으마.”“최대한 자제하겠다.”초경은 씁쓸했다.낙청연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설득했다.“어젯밤 너도 들었겠지만 천초와 진소한은 이제 곧 혼인할지도 모른다.”“앞으로 셋이 함께 지낼 수는 없지 않으냐?”“그중 한 사람
점심이 되고 낙청연은 섭정왕부로 돌아왔다.막 돌아왔는데 소유가 부랴부랴 달려와 보고해야 할 게 많다면서 부진환과 함께 서방으로 향했다.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낙청연은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휴식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지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큰일입니다, 왕비 마마. 지초가 목을 매달았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우리가 없던 사이 목을 매달았던 적이 있느냐?”지초는 고개를 저었다.낙청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낙월영은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목을 매단 것이다.“내가 가보겠다.”낙청연이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나섰다.도착했을 때 낙월영은 사람들에게 구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안색이 아주 파리한 것이 죽은 사람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낙월영은 허약하지만 화가 난 얼굴로 낙청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겁니다!”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더니 벽을 향해 돌진했다.낙청연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으면서 덤덤히 말했다.“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이냐?”“난 네가 죽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낙월영은 벽에 부딪히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분노한 얼굴로 원망스레 낙청연을 노려보았다. 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인과응보가 무섭지도 않습니까?”“언니가 제게 한 일을 왕야는 아십니까? 왕야는 언니가 이렇게 지독한 사람인 걸 알고 계십니까?”낙청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떠냐? 너랑은 상관없는 일일 텐데 말이다.”“죽고 싶으면 죽어라. 네 시체를 거두어줄 사람은 없을 거다.”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그녀는 호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다음번에 또 자결하려 한다면 구하지 않아도 된다.”호위가 대답했다.“네!”낙청연이 걸음을 옮겼고 낙월영은 분한 듯 이를 악물더니 낙청연을 향해 덤벼들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낙청연의 목을 졸랐고 낙청연은 그에 반격하기
그 광경을 본 낙청연은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만 부진환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롭지 않을 수 있었다.부진환의 품에 안긴 낙월영은 마침내 속으로 기뻐했다.낙월영은 부진환을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했다.“왕야, 드디어 왕야를 뵙습니다.”“왕야께서는 제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시겠지요.”“왕비께서 매일 제 피를 뽑고 있습니다. 전 평생 왕야를 만나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부진환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나고 머리가 아팠다.“왕야, 제 편을 들어주세요.”낙월영은 끊임없이 울었다.“먼저 의원을 불러주마.”부진환은 그 힘에 반항하지 않고 최대한 낙월영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했다.“네.”낙월영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속으로 기뻐했다.엄내심의 말은 사실이었다.-낙청연은 방 안에 앉아 있었고 지초가 약을 들고 낙청연의 뺨에 약을 살살 발라주었다.지초는 마음 아픈 얼굴로 말했다.“왕야와 왕비 마마께서는 화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갑자기 또 왕비 마마를 때리셨답니까?”“왕야도 고충이 있다.”낙청연은 한숨을 쉬었다.부진환은 낙월영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낙청연은 문득 낙월영의 손목에 있는 상처가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어딘가 이상했다.일부러 그렇게 많은 상처를 내다니, 설마 낙월영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지초야, 최근 저택에 별일 없었느냐?”낙청연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지초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무엇이 궁금하십니까?”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우리가 떠나있는 동안 낙월영 쪽에 이상은 없었는지 등 관사에게 조사해보라고 하거라.”“네.”약을 바른 뒤 낙청연은 부진환에게 가볼 생각이었으나 잠시 망설였다.그녀가 찾아간다면 부진환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부진환이 낙월영의 말에 따른다면 두통이 발작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이미 대응 방법을 장악하고 있었다.-의원을 불러 치료한 뒤 낙월영은 여
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이것저것 달라고 하셨고 왕야께서는 전부 주셨습니다.”“심지어 왕야께 왕비 마마를 내쫓고 엄벌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왕야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화를 내신 뒤 방 안에 들어가셨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낙월영이 왕야께 날 내쫓고 엄벌을 내리라고 했다고?”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낙월영은 자신이 부진환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넌 먼저 가보거라. 내가 왕야의 곁을 지키겠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소유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피했다.낙청연은 처마 아래로 걸어갔을 뿐 문을 열지는 않았다.그녀는 벽에 기대선 채 안에서 들려오는 억눌린 신음을 들었다.순간 마음이 저려온 낙청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벽에 등을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두 사람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정적 속에서 부진환의 고통을 참는 소리가 귀에 또렷하게 들렸고, 낙청연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감히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침상 아래로 몸을 숨긴 부진환은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면서 피를 토했다. 통증은 한 시진 넘게 이어졌다.부진환은 밖에 나가지 않았고 낙청연은 문밖의 벽에 기대어 밤새 앉아있었다.날이 밝을 때쯤에야 낙청연은 그곳을 떠났다.지초가 때마침 낙청연을 찾으러 왔다.“왕비 마마, 알아냈습니다. 등 관사가 계집종들에게 물었는데 왕비 마마께서 계양으로 떠나기 이틀 전, 낙월영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계집종이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정신을 차려 보니 낙월영이 도망가지 않아서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얘기하지 않았답니다.”“그리고 등 관사가 당직이던 호위에게 물었는데 그들도 두 번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 다 깨어나 보니 낙월영이 여전히 있었다고 합니다.”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달라졌다.“이렇게 큰일을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다니.”“아무 이유 없이 정신을 잃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낙월영은 그들이 정신을 잃은 틈을 타 몰래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보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엄 태사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엄 태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낙청연을 노려보았다.“섭정왕비는 본인이나 잘 챙기시지!”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엄 태사는 말을 하는 것도 기력이 없고 소모가 커 보였다. 최근 일어난 일들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리는 없었다.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전 그저 좋은 마음에 얘기해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엄 태사의 모습을 보니 내부 소모가 큰 것 같고 또 중독된 증상도 보이는 듯합니다. 엄 태사께서는 의술 좋은 의원을 불러 치료를 받는 게 좋을 듯합니다.”“아직 승부가 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쓰러져서는 아니 되지요.”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싱긋 웃었다.엄 태사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쓸데없이 참견하지 마시오!”말을 마친 뒤 그는 쌀쌀맞게 소매를 휘날리며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착잡한 심정으로 부랴부랴 떠나는 엄 태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엄 태사의 상황은 아주 갑작스러웠다.낙청연은 돌아간 뒤 천명 나침반을 꺼내 점을 보았고 엄씨 집안 근처에 가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엄 태사는 병의 기운이 심했으나 엄씨 가문의 기운은 큰 타격을 입은 뒤 하락세가 지속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세가 보였다.무엇 때문일까?또 천궐국은 은근히 혼란스러운 국면이 엿보였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이런 혼란이 야기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게다가 현재로서는 그 어떤 전환점도 찾을 수 없었기에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천궐국의 혼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섭정왕부의 혼란이 먼저 시작됐다.내원에 들어서자마자 낙월영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이런 것들로 날 속일 생각은 말거라. 내가 원한 건 운예각의 새 옷이다. 왕야께서 허락하신 일인데 감히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것이냐?”낙월영은 턱을 쳐들고 거만하게 계집종을 혼냈다.계집종은 바닥에 꿇어앉아 빌었다.“낙 낭자, 운예각에서는 최근 새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