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손을 들어 그를 안으며 그의 가슴에 뺨을 붙였다.“도망갈까 두렵습니다.”부진환은 작게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이 어디로 도망가겠느냐?”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가볍게 웃었다.“그건 그렇습니다. 뛰어봤자 벼룩이지요.”아름다운 미소에 부진환은 애정 가득한 손길로 그녀의 콧잔등을 긁었다.하지만 머릿속에 문득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계양에 며칠 더 머무르고 싶으냐?”낙청연이 대답했다.“왕야께서는 할 일이 많으시겠지요. 며칠 시간을 지체했으니 내일 바로 돌아가는 건 어떻습니까?”부진환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연등회를 보러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데 벌써 돌아간다는 말이냐?”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살짝 웃었다.“아름다웠던 건 연등회가 아니라 길가의 풍경이었습니다.”“그래. 그러면 내일 떠나자꾸나.”부진환은 말하면서 낙청연을 품에 꼭 안았다.다음 날 아침 일찍 그들은 낙랑랑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경도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가는 길 내내 사람이 많아 떠들썩했고, 그들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경도로 돌아갔다.그래서 속도가 아주 늦었다.낙청연은 기회를 찾아 단둘이 초경을 만났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혼자 말없이 따라다니며 송천초를 보호하고 있었다.그를 만나러 갈 때 낙청연은 술 두 병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나무 아래 기대앉아 있던 초경은 술병을 건네받은 뒤 술을 한 모금 마셨다.“천초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날 설득하러 온 것이냐?”낙청연은 한숨을 쉬면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그래. 천초가 진소한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괴롭지 않으냐?”초경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또 한 번 술을 마셨다.“술은 고맙다. 다음번에는 더 잘 숨으마.”“최대한 자제하겠다.”초경은 씁쓸했다.낙청연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설득했다.“어젯밤 너도 들었겠지만 천초와 진소한은 이제 곧 혼인할지도 모른다.”“앞으로 셋이 함께 지낼 수는 없지 않으냐?”“그중 한 사람
점심이 되고 낙청연은 섭정왕부로 돌아왔다.막 돌아왔는데 소유가 부랴부랴 달려와 보고해야 할 게 많다면서 부진환과 함께 서방으로 향했다.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낙청연은 목욕한 뒤 옷을 갈아입고 휴식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지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큰일입니다, 왕비 마마. 지초가 목을 매달았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우리가 없던 사이 목을 매달았던 적이 있느냐?”지초는 고개를 저었다.낙청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낙월영은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목을 매단 것이다.“내가 가보겠다.”낙청연이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나섰다.도착했을 때 낙월영은 사람들에게 구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안색이 아주 파리한 것이 죽은 사람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낙월영은 허약하지만 화가 난 얼굴로 낙청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더는 이용당하지 않을 겁니다!”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더니 벽을 향해 돌진했다.낙청연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으면서 덤덤히 말했다.“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이냐?”“난 네가 죽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낙월영은 벽에 부딪히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분노한 얼굴로 원망스레 낙청연을 노려보았다. 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인과응보가 무섭지도 않습니까?”“언니가 제게 한 일을 왕야는 아십니까? 왕야는 언니가 이렇게 지독한 사람인 걸 알고 계십니까?”낙청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떠냐? 너랑은 상관없는 일일 텐데 말이다.”“죽고 싶으면 죽어라. 네 시체를 거두어줄 사람은 없을 거다.”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그녀는 호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다음번에 또 자결하려 한다면 구하지 않아도 된다.”호위가 대답했다.“네!”낙청연이 걸음을 옮겼고 낙월영은 분한 듯 이를 악물더니 낙청연을 향해 덤벼들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낙청연의 목을 졸랐고 낙청연은 그에 반격하기
그 광경을 본 낙청연은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만 부진환이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롭지 않을 수 있었다.부진환의 품에 안긴 낙월영은 마침내 속으로 기뻐했다.낙월영은 부진환을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했다.“왕야, 드디어 왕야를 뵙습니다.”“왕야께서는 제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시겠지요.”“왕비께서 매일 제 피를 뽑고 있습니다. 전 평생 왕야를 만나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부진환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나고 머리가 아팠다.“왕야, 제 편을 들어주세요.”낙월영은 끊임없이 울었다.“먼저 의원을 불러주마.”부진환은 그 힘에 반항하지 않고 최대한 낙월영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했다.“네.”낙월영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속으로 기뻐했다.엄내심의 말은 사실이었다.-낙청연은 방 안에 앉아 있었고 지초가 약을 들고 낙청연의 뺨에 약을 살살 발라주었다.지초는 마음 아픈 얼굴로 말했다.“왕야와 왕비 마마께서는 화해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갑자기 또 왕비 마마를 때리셨답니까?”“왕야도 고충이 있다.”낙청연은 한숨을 쉬었다.부진환은 낙월영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낙청연은 문득 낙월영의 손목에 있는 상처가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어딘가 이상했다.일부러 그렇게 많은 상처를 내다니, 설마 낙월영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지초야, 최근 저택에 별일 없었느냐?”낙청연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지초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무엇이 궁금하십니까?”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우리가 떠나있는 동안 낙월영 쪽에 이상은 없었는지 등 관사에게 조사해보라고 하거라.”“네.”약을 바른 뒤 낙청연은 부진환에게 가볼 생각이었으나 잠시 망설였다.그녀가 찾아간다면 부진환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부진환이 낙월영의 말에 따른다면 두통이 발작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이미 대응 방법을 장악하고 있었다.-의원을 불러 치료한 뒤 낙월영은 여
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이것저것 달라고 하셨고 왕야께서는 전부 주셨습니다.”“심지어 왕야께 왕비 마마를 내쫓고 엄벌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왕야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화를 내신 뒤 방 안에 들어가셨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낙월영이 왕야께 날 내쫓고 엄벌을 내리라고 했다고?”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낙월영은 자신이 부진환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넌 먼저 가보거라. 내가 왕야의 곁을 지키겠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소유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피했다.낙청연은 처마 아래로 걸어갔을 뿐 문을 열지는 않았다.그녀는 벽에 기대선 채 안에서 들려오는 억눌린 신음을 들었다.순간 마음이 저려온 낙청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벽에 등을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두 사람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정적 속에서 부진환의 고통을 참는 소리가 귀에 또렷하게 들렸고, 낙청연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감히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침상 아래로 몸을 숨긴 부진환은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면서 피를 토했다. 통증은 한 시진 넘게 이어졌다.부진환은 밖에 나가지 않았고 낙청연은 문밖의 벽에 기대어 밤새 앉아있었다.날이 밝을 때쯤에야 낙청연은 그곳을 떠났다.지초가 때마침 낙청연을 찾으러 왔다.“왕비 마마, 알아냈습니다. 등 관사가 계집종들에게 물었는데 왕비 마마께서 계양으로 떠나기 이틀 전, 낙월영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계집종이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정신을 차려 보니 낙월영이 도망가지 않아서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얘기하지 않았답니다.”“그리고 등 관사가 당직이던 호위에게 물었는데 그들도 두 번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 다 깨어나 보니 낙월영이 여전히 있었다고 합니다.”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달라졌다.“이렇게 큰일을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다니.”“아무 이유 없이 정신을 잃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낙월영은 그들이 정신을 잃은 틈을 타 몰래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보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엄 태사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엄 태사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낙청연을 노려보았다.“섭정왕비는 본인이나 잘 챙기시지!”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엄 태사는 말을 하는 것도 기력이 없고 소모가 커 보였다. 최근 일어난 일들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리는 없었다.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전 그저 좋은 마음에 얘기해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엄 태사의 모습을 보니 내부 소모가 큰 것 같고 또 중독된 증상도 보이는 듯합니다. 엄 태사께서는 의술 좋은 의원을 불러 치료를 받는 게 좋을 듯합니다.”“아직 승부가 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쓰러져서는 아니 되지요.”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싱긋 웃었다.엄 태사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쓸데없이 참견하지 마시오!”말을 마친 뒤 그는 쌀쌀맞게 소매를 휘날리며 자리를 떴다.낙청연은 착잡한 심정으로 부랴부랴 떠나는 엄 태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엄 태사의 상황은 아주 갑작스러웠다.낙청연은 돌아간 뒤 천명 나침반을 꺼내 점을 보았고 엄씨 집안 근처에 가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엄 태사는 병의 기운이 심했으나 엄씨 가문의 기운은 큰 타격을 입은 뒤 하락세가 지속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세가 보였다.무엇 때문일까?또 천궐국은 은근히 혼란스러운 국면이 엿보였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이런 혼란이 야기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게다가 현재로서는 그 어떤 전환점도 찾을 수 없었기에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천궐국의 혼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섭정왕부의 혼란이 먼저 시작됐다.내원에 들어서자마자 낙월영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이런 것들로 날 속일 생각은 말거라. 내가 원한 건 운예각의 새 옷이다. 왕야께서 허락하신 일인데 감히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것이냐?”낙월영은 턱을 쳐들고 거만하게 계집종을 혼냈다.계집종은 바닥에 꿇어앉아 빌었다.“낙 낭자, 운예각에서는 최근 새
낙청연은 허리를 숙이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넌 그저 섭정왕부에서 기르고 있는 약 노예에 불과하다.”말을 마친 낙청연은 낙월영의 손목을 덥석 잡은 뒤 죽 그어서 피를 냈다.낙월영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낙청연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피를 한 그릇 받아낸 뒤에야 낙월영을 놓아주었다.그리고 계집종까지 챙겨서 떠났다.낙청연은 해독약을 연구하는 속도를 높일 생각이었다. 낙월영이 살아있다면 점점 더 선 넘는 요구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왕부는 잠잠할 날이 단 하루도 없을 터였다.떠나는 길에 낙청연은 계집종에게 당부했다.“운예각에 가서 옷을 가져다주거라. 내가 원한 것이라고 한다면 운예각이 내줄 것이다.”“알겠습니다.”낙청연이 또 당부했다.“뭐든 낙월영의 뜻에 따라서 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고생하게 될 거다.”“네.”저녁이 되고 낙청연은 섭정왕부에서 멀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곧 마차가 도착했고 낙청연은 부랴부랴 마중 나갔다.마차에 타고 있던 부진환은 그녀가 다가오자 다급히 마차에서 내렸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낙청연을 품에 안았다.“본왕이 보고 싶었느냐?”낙청연은 그를 밀어냈다.“돌아가지 말고 별원에서 지내라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그 말에 부진환의 미소가 굳었다.“무엇 때문이냐? 내가 뭘 잘못했느냐? 내가 네 기분을 상하게 하였느냐?”낙청연이 해명했다.“지금 간다면 낙월영이 왕야를 찾아 또 난리를 피울 겁니다. 왕야께서 머리가 아플까 걱정됩니다.”부진환은 심각한 얼굴로 낙청연의 손을 잡았다.“괜찮다. 네가 말한 방법을 쓴다면 아프지 않다.”낙청연은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속아줬다.저번에 그는 두통 때문에 바닥을 뒹군 적이 있었다.“제 말대로 별원에 머무르세요! 오늘 당장 옮기세요!”낙청연의 태도는 강경했고 부진환은 주저하다가 물었다.“며칠 동안 머물러야 하느냐?”“그건 다음에 얘기하시지요. 일단 옮기세요.”“왕부로 돌아오지 마세요. 소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라고
그런데 오히려 손을 잡혀서 품속에 쏙 안겼다.낙청연은 그제야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익숙한 향기에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왜 여기에 계십니까?”부진환은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별원이 너무 춥다.”낙청연은 그를 억지로 밀어냈다.“그렇지요. 추울 뿐만 아니라 뱀도 있습니다.”낙청연도 한때 별원에서 지냈다.그때 그녀의 처지는 부진환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부진환도 과거 그녀가 겪었던 일을 떠올린 건지 마음 아픈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청연아, 그때 내가 널 매우 힘들게 했구나.”“내가 미안하다.”어둠 속에서 낙청연은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이미 지나간 일이니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습니다.”“별원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겠습니까?”부진환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와 떨어져 있는 걸 견디지 못하겠다.”낙청연은 살짝 설레면서 마음이 약해졌다.“왕야가 별원에서 지내지 않는다면 왕부에서 괴로운 건 저와 왕야입니다.”“날이 밝으면 돌아가마.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어도 되겠느냐?”부진환은 밤새 경도로 돌아왔다.별원에 도착해 과거 그녀가 지냈던 곳을 바라보니 힘겹게 버텼어야 했을 그때 그 겨울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곳까지 찾아와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알겠습니다.”낙청연은 결국 동의했다.그의 품에 안기니 안도감이 들었고 낙청연은 이내 쏟아지는 잠기운에 잠이 들었다.어두운 밤, 부진환은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그의 얼굴에는 애틋함이 역력했다.-날이 밝고 낙청연이 깨어났을 때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이불 안에서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침상에서 일어난 낙청연은 문 앞으로 걸어가 기지개를 켰고 지초가 옷을 가져와 그녀에게 걸쳐줬다.“왕비 마마, 이제 가을이라 공기가 찹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날이 좋으니 밖에 나가서 걸어야겠다.”이제 막 정원을 나섰는데 낙월영이
송천초는 손을 닦은 뒤 궤를 열고 서신을 꺼냈다.낙청연은 서신을 열어보았고 내용을 확인한 뒤 안색이 달라졌다.송천초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왜 그러십니까? 그대의 도움을 바라는 겁니까?”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협박 서신이다.”서신에는 낙청연이 현산 제자를 사칭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 자신과 협력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만약 낙청연이 그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진짜 현산 제자를 모셔 와서 진실을 밝히고 그녀의 명성이 떨어지게 할 것이라 했다.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기꾼이라는 걸 알릴 것이라 했다.송천초는 서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구일까요? 오래전부터 그대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낙청연은 미간을 좁힌 채로 잠시 사색에 잠겼다.“날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너도 당분간 조심하거라.”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전 괜찮습니다. 그대도 조심하세요. 오랫동안 그대를 지켜본 듯합니다. 그대가 현산 제자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낙청연이 막 점을 치기 시작했을 때 유명세가 필요해 현산 제자의 이름을 빌린 적이 있었다.서신을 쓴 사람은 적어도 그녀가 언제 경도에 나타났는지 알고 있었다.-밤이 되고 낙청연이 자려고 준비하는데 지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왕비 마마, 후원에서 누군가 왕비 마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낙청연은 송천초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원에 가보니 부진환이 보였다.그는 흰색 옷을 입고 조용히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그의 어깨 위로 달빛이 쏟아졌고 부진환은 달빛 아래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왜 또 돌아왔습니까?”부진환은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은 뒤 그녀를 이끌고 후문으로 나갔다.“너랑 갈 곳이 있다.”낙청연은 그가 자신을 데리고 만복루로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평소라면 떠들썩했어야 할 만복루가 아주 조용했다.2층에 올라가니 만복루의 요리사가 오랫동안 그들을 기다린 듯했다.탁자 위에는 엄청난 양의 식재료가 놓여있어 2층 전체가 주방이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
“정말인 것이냐? 동하국에는 나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동하국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 그럴만하다.”고옥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정말 단호하구나.”말을 마치고 고옥서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부 태사에게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인내심이 없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거라.”부진환이 천천히 몸을 돌려 불쾌한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고옥서는 어쩔 수 없이 답했다.“내 동생을 구하러 왔다.”“동하국 왕자, 고강해.”“너에게 잡힌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이냐?”부진환은 놀라지 않았다.“얼마 전에 그를 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다들 실패했는데, 너라고 성공할 거라 생각한 것이냐?”고옥서가 가볍게 웃었다.“확신이 없다면 어찌 왔겠느냐? 청주성에서 순찰하는 청주군도 많지 않은 듯한데, 다들 바닷가로 갔나 보구나.”“동하국의 배가 부담을 준 것이냐?”부진환이 담담하게 그녀를 힐긋 보고 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이구나.”말을 마치고 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다.부진환의 반응을 본 고옥서는 전쟁의 상황이 부 태사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막사마저 사라졌을 것이라 추측했다.그렇지 않으면 부 태사가 어찌 안색을 바꾸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한 고옥서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철문을 바라보았다.감옥에서 나간 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부소가 와서 그를 부른 것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부소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왜 그리 넋을 놓고 있소? 여러 번 불러도 도통 반응이 없었소.”“심문하러 간 동하국 여인은 어떻게 되었소? 안색이 좋지 않소.”부진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청주성에 들어와 동하국 왕자이자 그녀의 동생 고강해를 구하러 왔다고 순순히 말했소.”부소가 깜짝 놀랐다.“고강해 말이오?”“그런 뜻으로 말했소. 하지만 고옥서라는 이름을 들으니, 고옥언과의 관계가 궁금해졌소.”“나이를 보니
“모든 것이 예전처럼 회복될 것입니다.”차강남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황량한 이한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다 잘될 것이다.”그는 이한도를 예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이라 믿는다.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저녁이 되자 바닷가의 막사는 고요함을 되찾았다. 전쟁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깨끗이 청소되었다.옥에 갇힌 고옥서는 아직도 동하국의 병사들이 매복을 당해 전쟁에서 지고 도망친 것을 모르고 있다.그녀는 옥에 끌려간 후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계속 그를 찾지 못했다.지하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죄수를 수감하는 곳 같았다.그녀는 철문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다.위치가 적합하니, 기회만 생기면 동생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늦게까지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감옥에 온 사람은 부진환이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다.“부 태사?”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바로 동하국의 공주구나.”“몇 번 교전할 때, 네가 지휘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용기에 비해 계략이 부족하더구나.”“홀로 청주성에 들어오다니. 정말 청주군의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옥서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문 앞까지 걸어가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는 역시 대단하구먼.”“중독된 사람들과 달리 아직도 멀쩡하게 기운이 남아도는구먼.”“바깥 상황은 어떠하냐? 부 태사의 막사는 지켜낸 것이냐?”고옥서는 일부러 그를 비웃으려 득의양양하게 비꼬았다.하지만 부진환은 표정 변화 없이 그냥 싸늘하게 그녀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고옥서는 그의 뜻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했다.하지만 청주성은 아직 뚫리지 않은듯하다.“이름이 무엇이냐? 동하국에 내세울 사람이 없는 것이냐? 어찌 여인을 보내 전쟁을 지휘하게 하는 것이냐?”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고옥서는 입꼬리를 올렸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소식을 누설한 지 3일이 지나자 동하국에서 다시 대거 공격을 퍼부었다.그들은 배를 타고 해안가로 접근해 막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단숨에 청주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명을 따르라. 청주군의 주의를 끌면, 내가 작은 배를 타고 사람을 구하러 갈 것이다!”고옥서는 매서운 눈빛으로 막사를 바라보았다.“예!”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국의 배는 점점 해안가에 가까워졌고 청주를 단번에 공격하려는 기세로 다가왔다.적군이 가까이 오자 몰래 숨어있는 청주군은 저도 몰래 손에 든 무기를 꽉 틀어잡고 장군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부진환은 조급해 하지 않고 암암리에서 관찰하고 있었다.이내 적군이 폭발을 일으켰고 막사에 이따금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막사는 공격을 받아 폭파되었고 허공에는 날아가는 돌멩이와 먼지가 자욱했다.막사에 남아 있던 일부 병사들이 황급히 도망쳤다. 그들은 적군의 배가 해안가에 곧 도착한 것을 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려 도망쳤다.청주군이 사방으로 뿔뿔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고옥서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녀는 줄곧 이 독이 여국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고 말했었다.곧 막사는 텅 비었고 동하국 사람도 배를 세운 후 잇달아 배에서 내렸다.고옥서는 작은 배를 타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향해 조용히 뭍으로 올라갔다.그녀의 계획에 따라 7일 후 누군가 이곳에 데리러 올 것이다. 오늘 청주를 공격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그녀는 배도 암초 뒤에 숨기고 조심스레 육지로 올라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고옥서는 육지로 올라온 뒤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일반 백성 차림으로 가장해 청주성으로 들어갔다.청주성에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잡히고 말았다.많은 동하국 사람이 배에서 내리자,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청주군은 부진환의 명에 따라 어두운 곳에서 뛰쳐나와 살기를 내뿜으며 적을 찔렀다.이미 7~8척의
“청주로 가는 동안 풍경을 구경할 수도 있으니, 급해하지 마시오.”“어쩌다 여국으로 왔는데 여국의 여제로서 잘 챙겨줘야지 않겠소? 어찌 오자부터 전쟁터로 내민다는 말이오?”“일단 궁에 며칠 묵으시오.”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저희도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어야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습니다.”-청주.병사들은 모두 해독하였지만 동하국은 또 바다에 새로운 독을 넣기 시작했다.바다에 갑작스레 떠다니는 시체가 늘어났고 해안가로 떠밀려와 악취를 풍겼다.시체 주위의 바닷물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끈적끈적한 액체도 묻어 있었다.그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바다 위의 참혹한 광경에 다들 마음이 무겁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들은 바로 동하국을 없애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태사, 공격합시다! 저 자식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더 비열한 짓을 할 것입니다!”부진환은 사색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동안 맑던 하늘에도 이날 밤 폭우가 쏟아지고 번개가 쳤다.방 안의 촛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부진환은 문과 창문을 굳게 닫고 다시 촛불을 켜서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비추었다.“하늘이 노하고 백성들이 노하니, 동하국은 분명 죽음을 자초할 것이오.”부진환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이번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계속 독을 쓰는 것으로 보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오.”“이미 해독한 일을 오랫동안 숨겼으니, 이젠 이 점을 이용해야 할 때오.”“다시 독을 썼으니, 중독으로 인해 전투력을 잃었다고 상대를 속여 전력을 다해 공격하도록 유도해야 하오.”“박가는 기관선을 이끌고 인근 해역에 기관을 설치하시오. 일단 그들이 오기만 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하오.”“그와 동시에 부소는 천궁도와 제사장족 제자를 데리고 여국 대진을 찾아 대진을 복구할수 있는지 확인하시오.”“부 대인은 향 장군과 함께 사람을 데리고 지도의 길에 따라 동하국의 구체적인 위치를 찾으십시오.”“주로 적
또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서월 일행은 독약과 해독약을 만들어 바닷가 막사에 있던 청주군이 먼저 복용하게 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바로 궁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중요한 일이니, 절대 누설될 수 없기에 낙요에게만 편지를 전했다.겨울이 추워지자, 낙요는 푹신푹신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며 편지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우유가 상황을 보고 궁금한 듯 물었다.“부 태사의 편지냐?”“청주에서 좋은 소식이 온 것이냐?”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바다의 독을 억제할 법을 찾았다.”“다만 동하국에서 알게 되면 대응을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이 소식은 발설하지 않았다.”그 말을 듣고 우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정말 다행이구나.”“지난번 동하국에서 전쟁에서 패한 후, 여태껏 잠잠한 것으로 보아 제사장족의 술법을 두려워하는 것 같구나. 보아하니 동하국은 겨울이 지난 후 다시 공격하려는 것 같구나.”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겨울에 전쟁하는 것은 본디 우리의 열세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우세가 되었다.”우유가 웃으며 말했다.“그 아이들이 이번에 큰 공을 세웠구나.”낙요가 웃으며 답했다.“아이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 의외였다.”“그들이 돌아오면 상을 줘야겠구나.”-시간이 흘러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더니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날씨가 따뜻해지자, 낙요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 벗을 만났다.송천초와 초경이 여국에 찾아왔다.게다가 특별히 많은 약재를 갖고 왔다.“동하국과 싸운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아프셔서 산장의 일로 바빠 줄곧 올 수 없었습니다.”“요즘 한가해지자마자 이렇게 약재를 주러 왔습니다. 이 약재는 제가 오랫동안 모은 약재로, 전부 해독에 좋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재들입니다. 아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송천초가 흥미진진하게 말했다.낙요가 관심 어리게 물었다.“아버지의 건강은 어떻소? 무슨 병인 것이오? 심각하오?”송천초가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오래된 병입니다.”
책자에는 이미 그녀가 복용한 수백 가지가 넘는 해독 약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부진환은 못내 그 내용을 보고 감탄했다.“백여 종의 독이 있는 것이냐?”서월이 설명했다.“짧은 시일 내에 만들어낸 독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독인 듯하옵니다.”“독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잔여물들을 모아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독은 흔히 볼 수 있는 경증을 동반하고 있고 치명적이지 않지만, 전투력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게다가 해독에 필요한 시일도 오래 걸려 완쾌하기 어렵습니다. 보아하니 동하국에 독을 쓰는 고수가 있는 듯합니다.”“하지만 독에 강한 고수가 있는 데에 불과하고 왜 치명적인 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독을 섞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부진환이 미간을 찌푸렸다.“이 일은 동하국을 공격한 후에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정신을 차린 후 부진환이 물었다.“그러면 지금 얼마나 걸려야 해독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냐?”서월은 대답할 수 없었다.“이미 수백 가지가 되는 해독약을 복용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해독법으로는 해독약을 만들어낼 가망이 없을 것입니다.”“저에게 위험한 생각이 있습니다.”“바로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것입니다.”“저는 항상 독을 만들며 독을 다루기 때문에 이미 저에게 효능을 잃은 독도 많습니다. 그런 독은 저에게 영향을 그다지 미치지 않고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만약 더 강한 독을 복용한 후 일정량의 해독약으로 통제한다면 동하국의 독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서월이 자세히 설명했다.담 신의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다소 의아했다.“그렇습니다. 독으로 독을 물리치는 방법은 저도 생각한 적 있지만 독에 정통하지 않으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아가씨의 방법은 아마 효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담 신의도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을 듣고 부진환이 답했다.“좋다. 일단 네가 말한 대로 작은 범위에서 시도해 보거라.”서월은
앞으로 며칠 동안 동하국은 아주 잠잠했다.차강남은 의관에서 거의 한 달을 머물렀다. 이한도 제자 박소의 상처도 이미 대부분 회복되었다. 지금 사람도 깨어났고 통증도 많이 감소하여 부상 회복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차강남은 그동안 고통을 겪으며 많이 초췌해졌다.강여는 특별히 그를 위해 삼계탕을 끓여주었다.삼계탕을 마신 후 차강남이 말했다.“동하국에서 공격을 했다고 들었다. 나도 도우러 가겠다.”강여는 단번에 차강남을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적은 이미 지고 물러갔습니다. 지금 도우러 가도 죽일 적이 없습니다.”“그냥 박소와 함께 치료하십시오.”“제사장족과 현학서원에서 도우러 왔으니, 일손은 부족하지 않습니다.”“담 신의를 찾으러 가야 하니,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리고 강여는 담 신의가 지내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아주 큰 진전이 있었다.서월은 독을 복용한 후 책자에 수십종의 독을 적었다. 그리고 수십종의 해독약을 복용해 보았고 모두 효과가 있었다.담 신의가 감탄했다.“아가씨, 그렇게 약을 마시니 몸이 걱정되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해독약을 먹으면 몸이 견딜 수 없을 것이오. 천천히 하시오.”서월은 몸이 불편한 것을 애써 참으며 독약과 해독약을 적는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이 독은 강한 독은 아니지만 종류가 다양합니다. 증상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제때 기록하지 않으면 해독약 약재를 놓쳐 해독약의 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줄곧 독을 쓰던 터라 이미 습관 되었습니다. 괜찮습니다.”강여도 그 말을 듣고 감탄하며 방해하지 않으려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았다.-막사에서 부진환은 낙요의 서신을 받았다.편지에는 일상적인 문안도 있었고 대제사장이 알아낸 동하국의 위치와 지도도 첨부되어 있었다.편지를 다 읽자마자 강소풍이 빠르게 달려왔다.“태사! 방금 서신을 전하는 비둘기 한 마리를 쐈습니다!”강소풍은 감격에 겨워 전서를 들고 왔다.부진환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비둘기를 건네받았다. 역시 편지 하나가 있었다.편지
상황을 보고 고옥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명을 내렸다.“공격하거라!”“어서 광풍이 몰아친 곳에서 벗어나거라!”고옥서는 비록 술법을 쓸 줄 모르지만, 알아본 적 있었다. 사람의 힘은 어디까지나 제한이 있으니, 비바람을 잠시 조종할 순 있어도 오랫동안 술법을 쓸 수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공격은 멈출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이번에 배에 탄 사람이 두 배로 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동하국 배가 애써 광풍이 몰아치는 구역을 벗어나면 청주 배들이 다시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그들을 광풍 구역으로 들어가도록 통제했다.폭탄과 화살의 공격으로 여러 척의 배가 빠르게 파괴되었다.배가 부서지자 다들 저도 몰래 바다로 뛰어들어 살길을 도모하려 했다.하지만 바닥에 뛰어들자마자 바다가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바다에 뛰어든 동하국 사람은 수면 위로 떠올라 숨을 쉬지 못해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그 모습을 보고 고옥서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어찌...”제사장족 제자와 천궁도 제자의 호흡은 아주 잘 맞았다. 그들이 함께 힘을 쓰니, 그만큼 공격도 어마어마했다.다른 배들도 최선을 다해 그들이 타고 있는 기관선을 지켜주었다. 비록 적군의 공격을 받았지만 다치거나 죽은 자는 없었다. 그들은 빠르게 전술을 바꾸고 상황을 역전시켰다.부진환은 해안에 가까운 배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수시로 진형과 전술을 바꾸게 지휘했다.날이 어슴푸레 밝았을 때 동하국은 이미 공격을 버텨내지 못했다.바다 위에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했다.고옥서는 이렇게 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부하가 철수해야 한다고 거듭 제안했지만, 고옥서는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조금 더 버티거라. 그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시간을 끌면 분명 우리가 이길 것이다!”하지만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을 끌다 보니 동하국은 십여 척의 배를 잃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다에 빠진 후 한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