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환도 살짝 놀랐다.곧이어 그는 소유에게 사람을 파견해 관청에 보고한 사람들의 배경을 알아보라고 시켰다.그리고 직접 방문해서 더욱 많은 소식과 실마리를 알아볼 셈이었다.낙청연도 직접 방문해서 상황을 더 파악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그녀가 막 대문을 나서자 거지 같은 차림의 어린아이가 그녀에게 달려오더니 그녀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준 뒤 곧바로 도망갔다.“어머!”낙청연은 미처 아이를 부르지 못했다.그녀는 손에 들린 쪽지를 펼쳐보았다.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엄씨 가문이 절 죽여서 입막음하려고 합니다. 섭정왕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모든 증거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자시, 유양진(柳楊鎮) 용수 아래서 기다리겠습니다. 혼자 오십시오!”“왜 그러느냐?”부진환이 다가왔고 낙청연은 곧바로 쪽지를 그에게 건넸다.부진환은 그것을 보고 살짝 놀라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곧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왕청이 쓴 것이구나.”“그는 주홍의 부하라 많은 기밀을 알고 있을 것이다. 주홍이 실종된 뒤로 진 태위는 왕청을 중점적으로 알아보려 했다.”낙청연이 물었다.“오늘 밤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저랑 함께 가시지요.”낙청연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부진환은 거절할 생각이었으나 저 신산의 말을 떠올렸다.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을 말이다.낙청연은 왕부에 시집온 지 오래됐지만 그녀의 뜻대로 한 일은 거의 없었다. 매번 부진환이 그녀에게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면서 그녀를 저지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앞으로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할 셈이었다.“그래.”낙청연은 약간 놀랐다. 그녀는 부진환이 이렇게 흔쾌히 허락할 줄은 몰랐다.“송천초도 데려가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낙청연이 또 물었고 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거라.”낙청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러면 가서 준비하겠습니다.”어젯밤 송천초는 낙청연에게 이 안건을 조사할 때 자신을
“이... 것이 왕청은 아니겠지요?”송천초가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부진환은 허리를 숙이고 살펴보다가 바닥에서 영패 하나를 주웠다.그것은 호부의 영패였다.“왕청인 것 같소.”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곧바로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 곧이어 손끝에서 부문이 타기 시작했다.부문이 전부 타버리자 일월경 위에 흰옷이 나타났고 동시에 아주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낙청연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이 근처였다!그녀는 재빨리 남쪽으로 향했고 경공을 써서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부진환은 깜짝 놀라며 즉시 그녀를 따라갔다.-어두운 밤, 낙청연은 마을 밖까지 따라갔고 바람을 타고 나뭇가지 사이를 헤치고 나갔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부문쇄를 시야에 들어온 흰옷을 향해 휘둘렀고 상대는 경계하며 몸을 피하려 했지만 낙청연이 그를 가로막았다.낙청연은 몸을 날리며 상대의 목을 향해 비수를 휘둘렀다.달빛 아래 사내의 눈빛에 놀라움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의 등 뒤로 갑자기 꼬리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의 몸을 지탱해 공중으로 솟아오르게 했고 그렇게 낙청연의 공격을 피했다.그 순간 낙청연은 깜짝 놀라 공격을 멈췄다.“사군?”낙청연은 그가 이미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그런데 기운이 왜 이렇게 혼잡한 것일까?남자의 긴 꼬리가 사라지고 그는 천천히 착지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지. 난 지금 초경(楚鏡)이니 사군이라고 부르지 말거라.”낙청연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이렇게 빨리 인간의 형태를 갖출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의 정기를 흡수해 수련한 것이냐?”“최근 경도에 많은 사람이 죽었던데 전부 네가 한 짓이냐?”초경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그랬다.”낙청연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왜 이 길을 선택한 것이냐?”“네가 이 세간의 화근이 될 줄 알았더라면 널 일찍 죽였을 것이다!”낙청연은 비수를 들고 그를 맹렬히 공격했고 두 사람은
바로 그때, 숲속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초경은 흠칫 놀라더니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몸을 돌려 떠났다.그는 뱀으로 변해 풀숲에 들어간 뒤 자취를 감추었다.이내 부진환이 그곳까지 쫓아왔다.낙청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부진환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에는 혼자 앞서지 말거라. 아주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낙청연은 살짝 멍해졌다.“쫓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 그랬습니다.”부진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따라잡았느냐?”“도망쳤습니다.”낙청연은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그러면 그냥 도망가게 놔두거라. 너만 무사하면 됐다.”부진환은 여전히 미간을 잔뜩 구기고 있었고 반대로 낙청연의 입꼬리는 올라갔다.세 사람은 그렇게 다시 마당으로 돌아왔다.자세히 살펴봤으나 왕청이 남긴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오직 백골뿐이었다.“다른 단서는 없습니까? 이게 끝입니까?”낙청연이 캐물었다.부진환은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그녀를 위로했다.“더 있을 것이다.”“일단 돌아가자꾸나. 본왕이 사람을 보내 처리하겠다.”-왕부로 돌아온 뒤 부진환은 또다시 바빠졌다.왕청이 죽었기 때문에 얼른 다른 단서를 알아봐야 했다.이미 엄씨 가문이 적과 내통했다는 증거를 장악했지만 엄씨 가문의 명령에 따라 일을 처리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기 시작했다.만약 이 안건에 관련된 사람의 증언이 전혀 없다면 엄씨 가문의 죄를 묻기가 어려워진다.부진환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고 낙청연도 그 점을 보아냈다. 하지만 부진환은 일부러 낙청연의 앞에서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겁을 먹은 송천초는 잠시 왕부에서 지내기로 했다.방 안에서 낙청연은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이미 그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냐? 그래서 나를 따라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려 한 것이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많은 사람이 사악한 것을 내쫓아달라고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도 갑자기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으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저는 은근히 그의 존재를
“예전에 저희 집안은 장사를 했습니다. 제 부군은 저희 집안의 데릴사위가 되었고 혼인하기 전에는 번듯한 척 행세했지만, 혼인한 뒤에는 본성을 드러내며 밖에서는 여색과 주색에 빠져 살고 장사하여 번 돈을 청루에 썼습니다.”“저희 부모님은 그 일을 알고 그를 내쫓으려 했으나 한 달도 안 돼 부모님 두 분 모두 병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저희 부모님은 줄곧 건강했습니다! 분명 제 부군이 그들을 해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전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그는 저희 집안의 재산을 차지했고 매일 저를 때리면서 관청에 보고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그녀의 얘기를 들은 낙청연은 마음이 아파 물었다.“관청에 보고했소?”“몰래 관청에 보고한 적이 있는데 그 빌어먹을 짐승 새끼가 절 청루에 팔아넘겼습니다!”“그러면서 제게 협박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전 매일 두려움에 떨면서 살았고 그가 죽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그러다가 능산(陵山)의 토지묘(土地廟)에 소원을 비는 것이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소망과 비통한 사연을 그곳에 적고 10일 동안 향을 피운다면 반드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그래서 그곳에 갔습니다!”“그리고 돌아온 지 사흘 만에 그 짐승은 죽고 백골만 남았습니다!”“토지신이 절 도운 겁니다!”낙청연은 그 말을 들은 뒤 깜짝 놀랐고 송천초도 놀랐다.다른 두 사람도 자신의 사연을 털어놨다.비록 사연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모두 사기를 당했고 죽은 자들은 재물을 탐내어 남의 목숨까지 해친 사람들이었다.그리고 그들 모두 능산 토지묘에 가서 향을 피웠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자들이 백골이 되었다고 한다.“왕비 마마께서는 아량이 넓으시니 저희의 처지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사람을 시켜 당신들이 겪은 일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죄를 묻지 않겠소.”“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왕비 마마!”세 사람은
“주 부인, 알아야 할 건 다 알게 되었으니 당신을 그저 보내줄 수도 있소. 대신 당신에게 성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겠소.”주 부인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낙청연과 송천초와 함께 후원으로 돌아왔다.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주 부인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사람들 앞에서 그는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아들도 딸도 낳지 못했지만 그는 저를 내쫓지 않았고 첩을 들이지도 않았지요.”“하지만 그가 오래전부터 외도했다는 건 아무도 모릅니다. 심지어 그 상대는 제 친동생입니다.”“그들은 아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딸까지 있습니다.”“그가 집에 가져오는 건 봉록뿐이지만 제 여동생에게는 훨씬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그리고 한참 뒤에야 그에게 그곳이 진짜 집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저는 그저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한 아내일 뿐입니다. 그가 그전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 건 사실이지만 그 말을 제게 한 건 아니었습니다.”“전 그가 의심스러워 몰래 그를 미행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그가 십여 년 동안 제게 숨긴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는 집안사람들과 함께 경도에서 도망치겠다고 했고 우선 돈부터 빼돌릴 것이라고 했습니다.”“경도 쪽은 주부가 있고, 저 주 부인이 있으니 아무도 그가 도망갔다는 걸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요.”“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은애하는 모습은 그저 연기에 불과했습니다. 절 방패막이로 쓰기 위해서였지요!”“제가 지금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 것도 그가 오랫동안 제게 약을 먹여서입니다!”“대체 왜!”“전 이 집안을 오랫동안 꾸려왔고 세심히 살폈습니다.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이 없으니 공로가 없다고 했고 그동안 고생한 것은 사실입니다.”“그런데 왜 사건이 터지니 맨 처음 대신 칼을 맞는 사람이 제가 되어야 합니까!”주 부인은 분개하여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편히 경도를 떠나는 모습을 제가 어떻게 지켜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단서를 조금 알아냈습니다. 저와 황 부인 단둘이 얘기하게 해주세요.”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인 뒤 사람을 데리고 마당을 나갔다.낙청연은 자리에 앉은 뒤 흐느끼는 황 부인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황 부인, 당신의 상황은 이미 조사했소.”“당신은 그저 내게 누가 능산 툐지묘에 소원을 빌면 영험하다는 걸 알려줬는지만 얘기해주면 되오.”그 말에 황 부인의 안색이 돌변했다.그 말은 곧 낙청연이 그녀가 부군을 살해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시오. 난 주 부인을 봐주었소. 그리고 당신도 봐줄 것이오. 대신 내게 진실을 얘기하시오.”황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류씨 집안의 첩인 류영아(柳瑩兒)가 알려준 것입니다.”낙청연의 안색이 달라졌다.송천초가 물었다.“한 사람씩 말을 전하다가 소문이 퍼진 것은 아닐까요?”낙청연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계속 조사해야겠다.”두 사람은 마당을 나섰고 부진환은 무척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벌써 끝났느냐? 무슨 얘기를 하더냐?”낙청연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그에게 알려주었고 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기면서 사색에 잠겼다.“우연은 아닐 것이다.”“우리가 조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부 실종되었다.”낙청연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천명 나침반에 근거하면 엄씨 가문은 아직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많은 증거들의 단서가 끊겼다.이번에 엄씨 가문을 뒤엎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다음은 류씨 집안의 첩 류영아입니다. 그녀가 엄씨 가문과 관련이 있을까요?”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함께 가보자꾸나.”류씨 집안도 마찬가지로 시체를 찾지 못했고 류씨 집안의 첩도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낙청연은 어쩔 수 없이 직접 물으러 갔고 류영아는 그제야 사실을 얘기했다.그렇게 낙청연과 부진환은 하루 사이 대여섯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물었다.-밤이 되고 낙청연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왕부
엄내심!“그녀였다니! 전에 그녀는 엄 태사의 영패를 훔쳐서 네가 병력을 이동할 수 있게 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엄씨 가문을 돕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가 없구나!”부진환은 난처했다.낙청연은 고개를 저으며 사색에 잠겼다.“만만치 않은 여인인 듯하니 경계해야겠습니다.”“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몸을 돌리는데 부진환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았다.낙청연은 살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조심하거라.”“걱정하지 마십시오.”낙청연은 그곳을 떠난 뒤 우선 엄내심의 처지를 알아보았고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을 궁리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엄내심이 낙청연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여전히 검은색의 너른 망토를 걸치고 얼굴을 반쯤 덮고 있었다.“꽤 일찍 왔군.”엄내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와 섭정왕이 날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오래전부터 널 찾아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잘됐구나. 오늘 날 데리고 섭정왕을 만나러 가줬으면 좋겠다.”낙청연은 살짝 당황했다.“부진환을 만나겠다고? 나와는 얘기할 수 없는 일이냐?”엄내심은 턱을 쳐들면서 망토 아래 감추어진 얼굴을 드러내며 가볍게 웃었다.“뭘 무서워하는 것이냐?”“그를 만나려는 건 협력에 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이번은 너희에게 아주 좋은 기회다. 하지만 내 도움이 필요할 거다.”자신감이 넘치는 엄내심의 말에 낙청연은 살짝 흔들렸다.결국 낙청연은 엄내심을 데리고 후문으로 들어가 섭정왕부에 도착했다. 낙청연은 그녀를 데리고 부진환의 서방에 들어갔다.방문이 닫히자 엄내심은 망토를 벗었고 부진환은 그녀를 보자 살짝 놀랐다.하지만 그들이 묻기 전에 엄내심이 먼저 자발적으로 해명했다.“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낙청연이 무진에 갔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그는 이미 만족과 연락했었던 사람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지요.”“그러니 능산의 토지묘를 이용해 입막음하려던 건 제 생각이 맞습니다.”“그래서 당신들이
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저렇게 자신 있는 모습을 보니 왕야가 자신을 찾아 협력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합니다.”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고민했다.“야망도 있고 독기도 있는 사람이다. 친아버지도 팔아넘길 수 있는 사람이니 분명 바라는 것이 엄청날 거다. 그자와 협력하는 것은 성가신 일을 자초하는 것이지.”낙청연은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엄씨 가문을 쓰러뜨릴 수 없습니다.”“태상황의 병은 하루아침에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후가 독을 썼다는 증거도 없을 것입니다.”부진환은 그녀의 걱정 가득한 모습에 서서히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했다.“엄씨 가문을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그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낙청연은 놀라며 의아한 얼굴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방법이 있는 것입니까?”부진환은 뒷짐을 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그 사람들이 죽어 그들의 자백을 얻지 못하게 됐다.”“하지만 전부 죽었으니 더욱 의심스러운 일이지.”“엄씨 일당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엄씨 가문을 위해 일한 자들이니 그들의 목숨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다.”“본왕은 이번 기회를 빌려 그 사람들이 엄씨 가문에 등을 돌리게 설득할 것이다.”“엄씨 가문의 세력이 예전만 못하다면 증거가 없어도 언젠가는 그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보아하니 그녀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그날, 엄 태사는 엄수심을 조정으로 끌고 갔다.조사해보니 자신의 영패를 훔친 사람이 바로 엄수심이라면서 말이다.한바탕 가슴 아픈 얼굴로 딸 교육을 잘못했다면서 연기했고 자발적으로 한 달 동안 엄수심에게 금족령을 내렸으며 직접 엄수심을 옥까지 보내 자신의 혐의를 완전히 없애버렸다.그런데 하필 옥에서 심문받을 때가 되니 엄수심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이튿날 옥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낙청연은 그 얘기를 들은 뒤 마음이 착잡했다.그건 분명 엄내심이 꾸민 짓일 거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