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안.강하영은 의자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남자와 여자 형사를 바라보았다.두 형사는 아까부터 1시간 동안이나 강하영을 심문했는데, 실질적인 증거도 없으면서 여전히 강하영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강하영은 아이들이 걱정돼 형사들에게 물었다.“아직 문제가 남았습니까?”“죄송하지만 아직은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여자 형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얘기했지만 강하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방금 모든 질문에 대답했는데, 아직도 의심할 게 남았나요?”5년 전, 소예준이 강하영을 위해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줬다.해외에 있는 친구에게 강주희라는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의 모든 자료를 부탁했다.그래서 강하영이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경찰서에 앉아 있는 것이다.남자 형사는 한참 동안 자료와 취조기록을 살펴보더니, 확실히 문제가 없어 보이자 여자 형사와 상의하기 시작했다.“별문제 없는 것 같네. 그냥 닮은 사람인 것 같은데 그냥 보내줘도 괜찮을 것 같아.”“잊은 게 하나 있잖아?”“뭔데?”여자 형사의 물음에 남자 형사가 되물었다.“혈액검사가 남았잖아!”여자 형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하영을 바라보았고,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강하영의 온몸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신분은 위조할 수 있지만 혈액형은 위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여자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저랑 혈액 검사하러 가시죠. 별문제 없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강하영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 일어서며 입술을 깨물었다.“알겠습니다…….”아크로빌.두 귀여운 아이들은 경찰서 CCTV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강세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큰일 났어. 엄마가 긴장하고 계셔.”“그래?”정희민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강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입술을 깨무는 습관이 거의 없는데, 그렇다는 건 긴장한 표현이야. 세희도 알고 있어.”그 사실을 몰랐던 정희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희민이는 엄마 곁에 없어서 이런 사실들을 몰랐지만, 엄마가 입술을
곧이어 여자 형사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국장님?”강하영이 형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는 몸매가 조금 뚱뚱하고 초조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고, 남자의 뒤에는 아름답고 차분한 얼굴이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강하영의 손이 움찔하며,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정유준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야? 출장 갔다고 했잖아!’국장님은 여자 형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김지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얼른 보내드리지 않고!”“국장님, 이 사람은 예전에 출산으로 돌아간 살인자와 똑같이 생겼습니다…….”“똑같긴 뭐가 똑같아! 이분은 정 대표님의 여자친구인데 그게 무슨 헛 소리야!”김 형사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정유준을 바라보더니 다시 국장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국장님, 예전에 강하영이라 살인자도 정 대표님과 관련된 인물이었어요. 국장님은 정 대표가 살인자를 감싸준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증거 있어? 증거 내놔봐.”국장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김 형사는 손에 든 혈액검사 결과 보고서를 움켜쥐었다.“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습니다.”“그럼 얼른 보내드려!”국장은 귀찮다는 듯 낮은 소리로 명령했고, 김 형사는 강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가보셔도 좋습니다.”강하영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습니다.”그리고 정유준 곁을 지날 때 남자가 갑자기 하영의 팔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당겨 어쩔 수 없이 정유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남자의 차분하고 힘찬 심장 박동 소리가 하영의 귀에 들려오더니, 이어 그의 무뚝뚝한 말투가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국장님이 저랑 함께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면 저의 여자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쓸 뻔했네요.”국장은 어색한 몸짓으로 몸을 돌려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정 대표님. 김 형사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정유준은 피식 웃고 강하영을 껴안은 채 몸을 돌려 병원을 떠났다.퍼뜩 제정신을 차린 강하영이
강하영의 두 눈이 떨리더니 빠르게 정유준의 품에서 벗어나 싸늘하고 경계심이 가득 찬 눈으로 정유준을 바라보았다.“정 대표님! 자중하시죠!”익숙한 말투에 정유준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강하영이 급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정 대표님’이라고 불러 이미 철저히 들통났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정유준도 강하영을 더 난처하게 하지 않고 몸을 곧게 펴고 허시원을 보며 말했다.“아크로빌로 출발해.”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화를 내며 정유준을 돌아봤다.“지금 내 뒷조사를 한 거야??”“맞아.”“비열한 자식! 당신은 예의란 게 뭔지 몰라?”하영의 말에 정유준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식기 시작하며 정유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몰라도 돼! 내가 아는 건 너를 5년이나 찾아다녔다는 거야!”“찾지 않아도 돼!”“강하영! 이제 적당히 해!”강하영의 딱딱한 말투에 정유준이 눈가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내가 찾아 달라고 빌었어?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도 내 인생에 이런 오점은 남기지 않았을 거야!”“내가 너한테 교도소에 가라고 지시했어?”“당신이 양다인 말을 믿고 나한텐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잖아!”강하영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체할 수 없이 분노를 터뜨렸다.“당신이 조금만 나를 믿고, 내 말을 들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거야!”정유준의 심장이 옥죄어왔다. 이 부분은 확실히 그가 잘못했기 때문이다.만약 좀 더 빨리 원장님을 찾았더라면 양다인에게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결국엔 하영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말았다.정유준은 화를 거두고 어두운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미안하다.”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피식 웃었다.“내가 당신을 죽이고 미안하다고 사과해도 돼?”“그동안 못 해줬던 거 다 해줄게.”“필요 없어요! 다시는 내 인생을 방해하지만 않아도 고맙겠네요!”강하영의 무정한 말에 정유준의 가슴이 욱신거렸다.“양다인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아?”“내가 알아서 해,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운전하고 있던 허
강하영이 많은 사람 앞에서 정유준을 꾸짖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이내 강하영을 흘겨보았다.“내 동의도 거치지 않고 멋대로 내 아이를 데려갔으면서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미리 얘기하지 못한 건 미안해! 하지만 아빠로서 다짜고짜 애한테 물으면 애가 겁먹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희민이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그럴수록 더 관심하고 따뜻하게 대해야지.”강하영의 말에 정유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내 아이 일인데 네가 왜 흥분하고 그래?”“…….”‘큰일 났네. 방금 희민이 생각만 하느라 정유준이 아직 나와 희민이 사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강하영은 바로 말을 돌렸다.“그냥 아이한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거야.”정유준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강하영한테 다가갔다.“내 아들한테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궁금해지내. 양다인한테 복수할 방법이 없으니까 지금 아이한테 접근해 친하게 지내면서 복수할 계획이야?”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정유준을 노려보았다.‘대체 머리에 뭐가 들어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아이한테 손을 댈 정도로 비겁해 보였어?’“내가 네 생각을 알아맞혀서 대답할 수 없는 거야?”“정 대표님!”그때 부진석이 앞으로 나서며 강하영을 자기 뒤에 세운 뒤 정유준의 시선과 마주하고 차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부디 우리 하영이 의도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희민이가 양다인한테 학대받으며 아이 심리에 문제가 조금 생겼으니 지금은 많이 관심해 줘야 할 시기여서 하영이가 희민이를 데리고 놀러 온 것도 치료 방법중의 하나입니다.”정유준이 턱을 치켜 올리며 부진을 무시했다.“그쪽은 아직 나와 얘기할 자격이 없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허시원이 서둘러 앞으로 다가와 부진석에게 얘기했다.“부 선생님, 부디 대표님과 강하영 씨 일에 끼어들지 마시죠.”“나쁜 놈!!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강하영 곁에 서 있던 강세희가 어느새 정유준 앞으로 돌진하
“오랫동안 함께 지낼수록 서로 닮는다는 거 몰라? 세준이가 너를 닮았다고? 눈이 잘못된 거 아니야?”“얘들아 집에 가자!”강하영은 정유준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쏘아붙이더니 두 아이를 보며 말했다.하영은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의심이 많은 정유준이 분명 이상한 점을 느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하영은 아직 정유준과 아이 문제로 다툴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기고 싶었다.강하영이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에 정유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희민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서 노는 게 좋아?”“네.”정희민이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와 강하영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혹시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렵지 않아?”정유준은 비록 양다인에게는 아무 감정이 없지만 아들만큼은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정희민의 안위가 걱정됐다.지금 중요한 문제는 강하영이 무슨 속셈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찌 됐든 강하영이 5년이나 참다가 돌아왔으니 말이다.만약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 강하영을 도울 생각이지만 아들만큼은 절대 휘말리게 할 수 없는 게 정유준의 마지막 한계였다.정희민은 혹시나 정유준이 다시는 놀러 가지 못하게 할까 바 얼른 고개를 들고 초조핞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좋은 분이에요!”희민의 대답에 정유준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고작 짧은 시간의 접촉만으로 희민이가 강하영이 좋은 사람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럴수록 정유준은 강하영의 행동이 더욱 의심스러웠는데, 이때 허시언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대표님, 강하영 씨는 절대 아이한테 손댈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강하영에 대해 잘 알아?”정유준의 반문에 허시원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그저 대표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강하영 씨를 그리워하셨으니 어떤 분인지는 대표님께서 잘 아시겠죠. 만약
강하영은 쓰린 심장을 움켜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리고 방문을 나서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가 곤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강하영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은 뒤 아이들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세준과 세희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그들을 품에 안았다.이 꿈은 요즘 아이들에게 소홀한 자신을 일깨워 주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귀국한 뒤로 양다인에게 복수할 생각만 하면서 아이들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으니, 요즘 기회를 봐서 경호원을 들여 아이들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강하영이 눈을 감자 강세준이 졸린 눈을 떴다.‘엄마가 웬일이지? 왜 갑자기 우리 방에 들어와 주무시는 걸까?’세준은 나쁜 아빠가 별장 입구에서 양다인이라는 사람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엄마와 원한 관계라도 되는 걸까?’강세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내일 당장 양다인에 대해 알아봐야겠어.’일요일.강하영은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어 어젯밤에 발생한 일과 경호원을 들이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확실히 아이들한테 소홀한 것 같아. 경호원은 내가 알아볼 테니, 정유준 쪽은 내가 최대한 그가 아이들을 조사할 수 없게 막아볼게.”“오빠.”그때 강하영이 소예준의 말을 끊었다.“양다인을 막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야. 정유준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껏해야 아이들을 데려가겠지.”“그래 알았어. 내가 사람을 시켜 양다인을 주시하도록 당부할게. 하영아, 너도 조심하고, 회사 일이 너무 바쁘면 나한테 얘기해.”“그래, 알았어.”이때 계단에서 두 아이가 난간에 매달려 강하영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강세준이 강세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세희야, 지금 임부를 수행해.”강세준은 아침에 강세희한테 어떻게든 엄마가 아래층에 계시도록 당부했다.그 사이에 세준은 엄마의 서재에 가서 컴퓨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젯밤 세준은 컴퓨터에서 비밀 파일을 발견했다.강세희가 몸을 곧게 펴고 대답했다.“알았어! 오빠!”말을 마친 강세희가 토끼를 안고 아래
강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양다인은 분명 하영을 찾으러 유치원에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겁 없이 돌아올 때는 언제고 차에서 내리는 건 못 하겠어? 왜, 겁먹은 거야?”양다인의 초조한 모습에 강하영은 알 것 같았다. 어제 형사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마 양다인의 신고 때문이었겠지.하영에게 차에서 내려 자신이 강하영인 것을 인정하기라도 하면 녹음을 해서 경찰서에 신고할 생각인 것 같은데 하영은 아직 그런 속임숙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그저 말다툼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을 풀 수는 없으니 굳이 차에서 내릴 필요도 없었다.강하영이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자, 경호원들이 빠르게 차에서 내려 양다인의 미친 행동을 제지하기 시작했다.양다인이 미친년처럼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강하영은 회사로 차를 출발시켰다.회사에 도착하자 비서인 소라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오늘 일정을 강하영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강 대표님, 오늘 오전에 회의가 있고, 오후에는 공장에 다녀와야 합니다. 새로운 기계가 이미 도착했습니다.”비서의 말에 강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혹시 잊을 수도 있으니 이따가 다시 한번 얘기해 줘.”오전에 강하영은 회의를 마치고 공장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면서 카페에 들려 캐리가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실수로 누군가와 부딪쳤는데, 그때 손에 든 커피도 상대방 옷에 전부 쏟아버리고 말았다.“정말 죄송합니다…….”고개를 들며 급히 사과하던 강하영은 깜짝 놀라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지금 하영의 앞에 구겨진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는 바로 배현욱이었다.“괜찮아요.”배현욱은 몸에 묻은 커피 얼룩을 손으로 툭툭 털며 고개를 들었다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선글라스를 쓴 강하영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통해 강하영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순간 배현욱이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란 듯 소리 질렀다.“강하영 씨?!”“사람을 잘못 보셨
배현욱은 강하영이 말을 끊을 틈을 주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정유준에 관한 일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강하영은 커피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나를 위해 2년 동안 술을 마셨다고?’5년 동안 자신을 찾아다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2년 동안 술에 빠져 살았던 건 믿기지 않았다.“유준이 왜 양다인 씨와 파혼했는지 알아?”배현욱이 강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배 대표님, 저는 두 사람 사이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강하영 씨 때문이야. 당시 자신을 구한 사람이 하영 씨라는 것을 알았거든. 그래서 술만 마시면 하영 씨한테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닌데, 만약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다 내줄 거라고 참회하기 시작했어.”강하영은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정유준이 그 사실을 알았구나…….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 건데? 이미 벌어진 일인데 5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강하영은 괴로움을 삼키며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 저와 유준 씨 사이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어요.”강하영의 말에 배현욱의 표정도 약간 차갑게 변했다.“정말 유준이한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아?”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다시 정유준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배 대표님, 저와 유준 씨 사이는 한두 마디 말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유준 씨가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는 알겠지만,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잖아요.”말을 마친 강하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따가 누군가 옷을 보내올 겁니다. 먼저 가볼게요.”강하영은 배현욱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카페를 나섰다.배현욱은 쓸쓸해 보이는 강하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리고 곧바로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배현욱은 정유준을 비웃었다.“유준아, 이제부터 너의 고생길이 열렸구나.”“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나 방금 강하영 씨를 만났어. 내가 지난 2년 동안 너의 눈부신 업적을 얘기해 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