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 바닥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저 다소 부드럽게 돌려 말하면서 어떤 부분을 살짝만 고치면 더 나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그러나 상대방은 그 업무를 그녀에게 떠넘겼다.오타나 문법이 안 맞는 것을 고치기는 쉬웠지만, 각본의 내용을 고치는 건 순전히 창작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차미주는 당연히 그 업무를 받지 않으려 했다.그러나 상대가 그녀의 실력이 좋다며 칭찬하면서 잘만 고치면 바로 그녀에게 대작을 넘겨줄 거라고 했다.그 말을 들은 차미주는 바로 마음이 흔들렸다.다른 사람이 쓴 각본 어시스트를 맡으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작품의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진정한 각본가가 될 거라 꿈꿔왔다.그리고 현재 그녀의 앞에 각본가가 될 기회가 차려졌기에 당연히 마음이 흔들렸다.이윽고 그녀는 하던 일들을 전부 제쳐두고 그 각본을 수정하는 일에 몰두하였다.그렇게 보름이 넘도록 그녀는 매일 같이 밤을 새웠고 드디어 각본 수정을 마친 그녀는 바로 각본 주인에게 보냈다.그녀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심사를 기다렸고 자신의 이름도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각본을 읽어본 상대는 그녀가 수정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원래의 스토리가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차미주는 아주 크게 실망했다. 비록 괴로웠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건 그녀의 실력이 부족했다는 뜻이었으니까.이 일이 이렇게 끝을 내렸다면 괜찮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틀 뒤에 일어난 일로 그녀는 기분이 더러웠다.그녀가 수정한 각본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어느 한 영화 제작사에 팔렸고 올해 안으로 촬영할 거라고 했다.차미주는 평소에도 이런저런 단톡방에 가입해 있었다. 그랬기에 무명 배우나 신인 배우들과 아주 친했다.며칠 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단톡방에서 채팅을 나누고 있었고 누군가가 단톡방에 좋은 소식이 있다며 올렸다.그 배우는 자신이 곧 어느 드라마의 서브 여주로 출연한다며, 출연료가 전
“연예인 하라고?”차미주는 턱을 매만지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녀는 휴대폰 액정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내 미모로 사극에 나오는 중전마마나 돈 많은 대표님의 아방한 인턴사원도 괜찮을 것 같아. 지금 이렇게 공격적인 얼굴이 유행이잖아? 최근 몇 년간 웹 드라마 찍은 배우들의 미모가 나랑 비슷하잖아. 이젠 새로운 유행이야. 그러니 어쩌면 나도 올해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배우로 뜰 수 있을 거야.”“... 화장실 갔다가 올래?”차미주는 그를 째려보면서 말했다.“화장실을 왜 가?”한성우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가서 세수나 좀 하고 와.”차미주의 입꼬리가 순간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이내 다리를 들어 그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너 나 세수하고 와! 세수하다가 세숫물에 익사해버려!”한성우는 바로 러그로 궁둥이를 옮기면서 즐거운 듯 웃었다.이내 팔을 소파 위로 탁 올리고 그윽한 눈길로 말했다.“우리 회사로 와. 우리 회사로 와서 내 비서 해. 다른 일은 할 필요 없고 그냥 매일 나한테 밥만 해주면 돼. 월급도 1000만 원 줄게. 주말 휴식에 명절 휴가, 그리고 4대 보험까지 있어. 어때, 올래?”“안 가.”차미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그냥 도우미 아줌마를 회사로 불러.”한성우는 믿을 수가 없었다.“너 전에 각본을 고치면서 이 정도 벌어봤어?”“아니.”한성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럼 왜 안 하겠다는데?”차미주는 휴대폰을 보면서 말했다.“내 인생의 가치는 음식 만드는 것에만 있는 거 아니야. 정말 그랬다면 난 일찌감치 식당을 차렸을 거야. 나한테도 꿈이란 게 있어.”“네 꿈은 뭔데?”그의 말에 차미주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엄청 대단한 시나리오를 쓰고 엄청 대단한 상을 받는 거야. 그리고 엄청난 남자랑 자는 거지.”“... 마지막 한 마디는 지워버려도 되겠네. 넌 이미 엄청난 남자랑 자봤으니까.”차미주는 바로 발을 들어 그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차미주는 그를 째려보았다.“통증 없는 인공 유산 광고를 본 적이 있어?”“뭐?”“어떤 여자가 무통 인공 유산하러 갔지. 전전긍긍하며 의사에게 물었지. ‘시작했어요?'라고 그러자 의사가 답했어. ‘이미 끝났어요.'라고.”한성우는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그걸 왜 나한테 말해주는 건데?”차미주가 말했다.“그날 밤, 내가 딱 그 느낌이었어.”한성우의 표정이 굳어버렸다.시작했어요? 이미 끝났어요.빠를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감각도 없었단 소리였다.한성우는 믿기지 않았고 심지어 다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는 강한서를 비웃어도 상관없었지만 그를 비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가 변명했다.“그건 네가 그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거여서 그래. 아무런 감각도 못 느낀 것도 네 기억이 끊겨서 그래.”차미주가 그를 째려보았다.“비록 난 경험이 없었지만 그래도 할 때는 느낌이라는 게 있을 거 아냐. 주사를 맞아도 고통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날은 정말 난 아무것도 못 느꼈다니까. 며칠 동안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는 건, 그건 네가... 네가 문제가 있다는 거야.”그녀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의 하반신을 힐끗 쳐다보며 대놓고 암시를 했다.한성우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미주는 그런 한성우의 모습을 보니 꽤 즐거웠다. 그녀는 이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설마 여태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어봤다면서 누구도 너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야?”한성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아, 알겠다. 그 사람들은 네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한 거구나. 그래서 너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야. 어쩌면 일부러 대단하다고 말해준 거일 수도 있어. 그렇게 너한테 착각을 심어준 거지.”말을 마친 그녀는 한성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아니었다면 넌 평생 몰랐을 거잖아.”한성우는 이를 갈면서 그녀의 손을 쳐냈다.“고맙긴 뭐가 고마워!”
“제가 시발, 그동안 수습해준 대본만으로도 부족했어요? 사극을 쓸 능력이 없으면 제발 쓰지 마세요. 본인이 쓴 사극 대본을 보기나 했어요? 사극에 자신이 없으면 제발 ‘암행어사'나 ‘태조 왕건' 좀 보세요. 조금만 신경 쓰고 열심히 대본을 쓰면 될 것을 왜 굳이 저한테 찾아와서 수정해달라고 하는 거죠? 제가 그쪽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쓴 건 줄 알고 수정을 해요? 그리고 본인이 쓴 글도 못 알아봐요? 도대체 글을 얼마나 휘갈겨 쓰면 본인이 쓴 글도 못 알아봐요?”단톡방은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고 안 작가만이 씩씩대며 말했다.“차미주 씨! 언행에 주의하세요!”“주의하긴 뭘 주의해요! 주의할 가치가 있어요? 대본도 제대로 못 쓰면서 회의는 어찌나 하던지. 회의할 때마다 저희 어시스트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거 모르고 있을 줄 알았어요? 대본을 개판으로 써놓고 항상 뒤처리는 어시스트한테 맡기잖아요!”“그래요, 수정하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어차피 저희가 하는 일이 대본을 수정하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사람 취급은 해주셔야죠. 저희가 매일 밤을 새우며 대본 수정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와이프랑 영화 보러 다녔잖아요! 그리고 대본을 팔아 거액을 돈을 받고 저희한테는 대본값을 절반이나 월급으로 나눠줬다고 하셨죠. 그런데 대본값이 10억이었더라고요? 10억을 받아놓고 저희한테는 기껏해야 400만 원을 월급으로 주셨죠.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요? 수영 씨가 전에 작가님한테 쪼잔하다고 말했더니 바로 다음 날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해버렸잖아요. 왜요, 수영 씨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어요?”“이 대표님께서 6시 정각에 퇴근하라고 하셨는데 작가님은 항상 5시 50분에 저희한테 회의할 거라고 말했죠. 전 물론 당연히 솔로라 언제 퇴근하든 상관은 없었는데 유정 씨와 새롬 씨에겐 아이가 있어요. 유정 씨와 새롬 씨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안 작가님은 항상 쓰잘머리 없는 회의를 밤 9시까지 열었었죠. 심지어 회의
유현진이 옷을 다 입기도 전,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강한서는 바로 이불을 유현진의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강한서를 발견했다. 바닥에는 여자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고 침대 위의 이불은 부풀어 올랐는데, 누가 보아도 그 안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록 강한서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목과 쇄골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누구든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한성의 도련님이 어젯밤 여자와 함께 어떤 호텔에 있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강한서가 이혼한 소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 기자들에게 그는 여전히 기혼 신분으로 비치고 있었다. 연예기자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낼 뿐만 아니라 한주 시의 유명 인사들의 찌라시를 캐내는 일에도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 한성과 같은 최고의 명문가들을 말이다. 한성의 도련님이 다른 사람과 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이런 뉴스는 어떤 스타의 스캔들보다 더 강력했다. 그러니 한 무리의 기자들은 들이닥치자마자 바로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강한서를 향해 사진을 찍어댔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질문했다. “강 대표님, 침대 위에 있는 여성분과 불륜이신 건가요?”“두 분은 어떤 사이인가요? 이분도 강 대표님이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대표님께서 다른 분과 호텔에 있는 사실을 사모님께서 알고 계신가요?”...강한서의 사생활은 아주 깨끗한 편이었다. 한주의 유명인사 중 많은 가문의 도련님들은 거의 대부분 크고 작은 열애설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강한서의 사촌 동생 강현우의 전 여자 친구들로는 신인 스타, 슈퍼모델 그리고 명문가의 규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 두 여자가 남편을 뺏는 장면도 등장했는데, 두 여자는 남자 하나를 위해 크게 싸웠고, 그 남자는 그저 옆에서 방관하기만 했었다. 그의 이런 뉴스는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언론사를 먹여 살렸는지 모를 정도였다. 강한서는 누구나
‘이건 제보랑 다르잖아?’기자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강한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온 이후로 침대 위는 여자는 계속 이불속에 숨어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고 누워만 있었다. 게다가 그 사람이 사모님이라는 것은 그저 강한서의 말뿐이었으니, 그 말이 진짜인지 누가 알겠는가?“정말 사모님이 맞다면,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누군가가 강한서의 말에 빠르게 대처했다. 꼭 강한서의 불륜 현장을 찍어야만 특종인 것은 아니었다. 침대에 있는 것이 정말 강한서의 아내라면, 그것 또한 빅뉴스였다. 4년 전, 강한서는 페이스북에 당당하게 결혼한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내의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4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강한서는 아내의 개인 정보를 매우 잘 지켜줬다. 누군가 염탐을 하려고 하면 바로 한성 그룹의 업계 경고를 받았다. 내부에서는 강한서와 송민영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고 그의 아내가 송민영이라는 찌라시가 돌았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명령하에 강제로 삭제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한성에 직접 전화해 진실을 알아보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강한서 아내의 정체에 대해 더 궁금해했다. 만약 이번에 그의 아내의 정체를 밝혀낸다면, 이곳까지 온 보람은 있을 터였다. 기자의 말을 들은 유현진은 소름이 돋았다.‘이 파파라치들, 미친 거야?’‘강한서가 누구랑 호텔에 오든 말든, 지들이 무슨 상관이야!’ ‘당장 거절하고 쫓아내!’하지만 다음 순간, 이불 너머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이프 의견을 먼저 구해야 해서요.”유현진: ...강한서는 몸을 숙여 이불의 한 귀퉁이를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현진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당장 내보내!”이미 옷을 입고 있는 유현진을 발견한 강한서는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초조한 얼굴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내쫓으면 점수 줄
‘이게 무슨 스타일이지?’‘페이스키니?’유현진은 깜짝 놀라면서도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행히 강한서의 대처가 빨라 가방을 그녀에게 집어넣어 줬고, 가방 안에는 위장할 수 있는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얼굴은 기자들의 카메라에 노출되어 배우의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날 뻔했다. 사람들은 유현진의 페이스키니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강한서가 갑자기 이불을 잡아끈 사람의 손을 잡고 뒤로 비틀었다. 상대방은 비명을 지르더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한서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사람들을 냉랭한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제가 너무 매너 있게 대해드렸죠?”그의 분노가 더욱 끓어올랐고, 검은 아우라가 그를 감쌌다. 평온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말에 대답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기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강한서는 강현우와 달랐다. 강현우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기사를 써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강한서는... 그는 파파라치계의 1순위였던 바나 미디어를 파산할 정도로 고소했던 당사자였다. 업계를 휩쓸었던 바나 미디어의 편집장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도 전부, 강한서의 작품이었다.그들 언론사는 어느 곳 하나도 바나 미디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곳들이었다. 그런데 감히, 주제도 모르고 강한서의 역린을 건드리다니.그깟 포상금이, 그들이 이런 리시크를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이 강한서에게 애원하던 그때, 꽁꽁 싸맨 여자가 입을 열었다. “당장 내보내, 안 그럼 점수 깎을 거야!”사람들은 불같이 화를 내던 강한서가 여자의 말에 카리스마를 거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언짢은 듯 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게 왜 내 탓이야?”“자꾸 쓸데없는 소리할래?”강한서는 입을 닫고 잔뜩 불쌍한 태도로 말했다. “알았어.”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은 또 냉랭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잡고 있던 사
유현진은 가볍게 대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갑자기 비틀거리자 강한서가 깜짝 놀라 얼른 그녀를 부축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유현진은 어쩐지 조금 말문이 막힌 듯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 돼지 타고 걷는 것 같아?”강한서: ...그는 어젯밤 절제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괜히 어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얼굴을 가리면 다른 사람들이 너인 줄 모를 거야.”유현진이 침묵했다. 그녀는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았다. 비슷한 것이 분명했다. 화장실에 찬물이 나오지 않아 강한서는 옆방을 예약하라고 했다. 두 사람이 샤워를 마치자, 민경하가 준비해 둔 차도 마침 도착했다. 차가 출발하자, 유현진은 그제야 이젠 두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과 강한서의 사이가 이런 식의 진전을 가져올 줄 몰랐기에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계획은, 최소한 일이 안정되어야만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강한서의 사업은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강한서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패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강한서의 첫 번째 결혼이 실패한 원인은 서로에 대한 의심은 둘째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경제적 지위의 차이도 한몫했다. 그런 커다란 갭은 자꾸만 시시콜콜 따지게 했고, 자신이 강한서의 곁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반문하게 했다. 하지만 늘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침대에서 자고 관계까지 가진 이 시점에, 강한서에게 단순히 약 때문에 그와 잔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걸까?그 말은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주둥이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말이었다!그녀는 어젯밤 왜 자신이 참지 못한 것인지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강한서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어야 했다. 창피한 건 창피한 거고, 이렇게 난처하기보다는 나았을 테니까. “어젯밤… 그건 사고야.”유현진이 아직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