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는 그를 째려보았다.“통증 없는 인공 유산 광고를 본 적이 있어?”“뭐?”“어떤 여자가 무통 인공 유산하러 갔지. 전전긍긍하며 의사에게 물었지. ‘시작했어요?'라고 그러자 의사가 답했어. ‘이미 끝났어요.'라고.”한성우는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그걸 왜 나한테 말해주는 건데?”차미주가 말했다.“그날 밤, 내가 딱 그 느낌이었어.”한성우의 표정이 굳어버렸다.시작했어요? 이미 끝났어요.빠를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감각도 없었단 소리였다.한성우는 믿기지 않았고 심지어 다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는 강한서를 비웃어도 상관없었지만 그를 비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가 변명했다.“그건 네가 그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거여서 그래. 아무런 감각도 못 느낀 것도 네 기억이 끊겨서 그래.”차미주가 그를 째려보았다.“비록 난 경험이 없었지만 그래도 할 때는 느낌이라는 게 있을 거 아냐. 주사를 맞아도 고통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날은 정말 난 아무것도 못 느꼈다니까. 며칠 동안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는 건, 그건 네가... 네가 문제가 있다는 거야.”그녀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 그녀는 일부러 그의 하반신을 힐끗 쳐다보며 대놓고 암시를 했다.한성우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미주는 그런 한성우의 모습을 보니 꽤 즐거웠다. 그녀는 이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설마 여태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많은 여자친구를 사귀어봤다면서 누구도 너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야?”한성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아, 알겠다. 그 사람들은 네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한 거구나. 그래서 너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야. 어쩌면 일부러 대단하다고 말해준 거일 수도 있어. 그렇게 너한테 착각을 심어준 거지.”말을 마친 그녀는 한성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내가 아니었다면 넌 평생 몰랐을 거잖아.”한성우는 이를 갈면서 그녀의 손을 쳐냈다.“고맙긴 뭐가 고마워!”
“제가 시발, 그동안 수습해준 대본만으로도 부족했어요? 사극을 쓸 능력이 없으면 제발 쓰지 마세요. 본인이 쓴 사극 대본을 보기나 했어요? 사극에 자신이 없으면 제발 ‘암행어사'나 ‘태조 왕건' 좀 보세요. 조금만 신경 쓰고 열심히 대본을 쓰면 될 것을 왜 굳이 저한테 찾아와서 수정해달라고 하는 거죠? 제가 그쪽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쓴 건 줄 알고 수정을 해요? 그리고 본인이 쓴 글도 못 알아봐요? 도대체 글을 얼마나 휘갈겨 쓰면 본인이 쓴 글도 못 알아봐요?”단톡방은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고 안 작가만이 씩씩대며 말했다.“차미주 씨! 언행에 주의하세요!”“주의하긴 뭘 주의해요! 주의할 가치가 있어요? 대본도 제대로 못 쓰면서 회의는 어찌나 하던지. 회의할 때마다 저희 어시스트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거 모르고 있을 줄 알았어요? 대본을 개판으로 써놓고 항상 뒤처리는 어시스트한테 맡기잖아요!”“그래요, 수정하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어차피 저희가 하는 일이 대본을 수정하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사람 취급은 해주셔야죠. 저희가 매일 밤을 새우며 대본 수정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와이프랑 영화 보러 다녔잖아요! 그리고 대본을 팔아 거액을 돈을 받고 저희한테는 대본값을 절반이나 월급으로 나눠줬다고 하셨죠. 그런데 대본값이 10억이었더라고요? 10억을 받아놓고 저희한테는 기껏해야 400만 원을 월급으로 주셨죠.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요? 수영 씨가 전에 작가님한테 쪼잔하다고 말했더니 바로 다음 날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해버렸잖아요. 왜요, 수영 씨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어요?”“이 대표님께서 6시 정각에 퇴근하라고 하셨는데 작가님은 항상 5시 50분에 저희한테 회의할 거라고 말했죠. 전 물론 당연히 솔로라 언제 퇴근하든 상관은 없었는데 유정 씨와 새롬 씨에겐 아이가 있어요. 유정 씨와 새롬 씨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안 작가님은 항상 쓰잘머리 없는 회의를 밤 9시까지 열었었죠. 심지어 회의
유현진이 옷을 다 입기도 전,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강한서는 바로 이불을 유현진의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강한서를 발견했다. 바닥에는 여자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고 침대 위의 이불은 부풀어 올랐는데, 누가 보아도 그 안에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록 강한서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목과 쇄골에는 너무나도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누구든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한성의 도련님이 어젯밤 여자와 함께 어떤 호텔에 있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강한서가 이혼한 소식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 기자들에게 그는 여전히 기혼 신분으로 비치고 있었다. 연예기자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낼 뿐만 아니라 한주 시의 유명 인사들의 찌라시를 캐내는 일에도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 한성과 같은 최고의 명문가들을 말이다. 한성의 도련님이 다른 사람과 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이런 뉴스는 어떤 스타의 스캔들보다 더 강력했다. 그러니 한 무리의 기자들은 들이닥치자마자 바로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강한서를 향해 사진을 찍어댔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질문했다. “강 대표님, 침대 위에 있는 여성분과 불륜이신 건가요?”“두 분은 어떤 사이인가요? 이분도 강 대표님이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나요?”“대표님께서 다른 분과 호텔에 있는 사실을 사모님께서 알고 계신가요?”...강한서의 사생활은 아주 깨끗한 편이었다. 한주의 유명인사 중 많은 가문의 도련님들은 거의 대부분 크고 작은 열애설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강한서의 사촌 동생 강현우의 전 여자 친구들로는 신인 스타, 슈퍼모델 그리고 명문가의 규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 두 여자가 남편을 뺏는 장면도 등장했는데, 두 여자는 남자 하나를 위해 크게 싸웠고, 그 남자는 그저 옆에서 방관하기만 했었다. 그의 이런 뉴스는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언론사를 먹여 살렸는지 모를 정도였다. 강한서는 누구나
‘이건 제보랑 다르잖아?’기자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강한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온 이후로 침대 위는 여자는 계속 이불속에 숨어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고 누워만 있었다. 게다가 그 사람이 사모님이라는 것은 그저 강한서의 말뿐이었으니, 그 말이 진짜인지 누가 알겠는가?“정말 사모님이 맞다면,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누군가가 강한서의 말에 빠르게 대처했다. 꼭 강한서의 불륜 현장을 찍어야만 특종인 것은 아니었다. 침대에 있는 것이 정말 강한서의 아내라면, 그것 또한 빅뉴스였다. 4년 전, 강한서는 페이스북에 당당하게 결혼한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아내의 신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4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강한서는 아내의 개인 정보를 매우 잘 지켜줬다. 누군가 염탐을 하려고 하면 바로 한성 그룹의 업계 경고를 받았다. 내부에서는 강한서와 송민영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고 그의 아내가 송민영이라는 찌라시가 돌았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명령하에 강제로 삭제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한성에 직접 전화해 진실을 알아보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다는 대답이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강한서 아내의 정체에 대해 더 궁금해했다. 만약 이번에 그의 아내의 정체를 밝혀낸다면, 이곳까지 온 보람은 있을 터였다. 기자의 말을 들은 유현진은 소름이 돋았다.‘이 파파라치들, 미친 거야?’‘강한서가 누구랑 호텔에 오든 말든, 지들이 무슨 상관이야!’ ‘당장 거절하고 쫓아내!’하지만 다음 순간, 이불 너머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이프 의견을 먼저 구해야 해서요.”유현진: ...강한서는 몸을 숙여 이불의 한 귀퉁이를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현진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당장 내보내!”이미 옷을 입고 있는 유현진을 발견한 강한서는 조금 실망하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초조한 얼굴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내쫓으면 점수 줄
‘이게 무슨 스타일이지?’‘페이스키니?’유현진은 깜짝 놀라면서도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행히 강한서의 대처가 빨라 가방을 그녀에게 집어넣어 줬고, 가방 안에는 위장할 수 있는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얼굴은 기자들의 카메라에 노출되어 배우의 커리어가 완전히 끝장날 뻔했다. 사람들은 유현진의 페이스키니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강한서가 갑자기 이불을 잡아끈 사람의 손을 잡고 뒤로 비틀었다. 상대방은 비명을 지르더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한서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사람들을 냉랭한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제가 너무 매너 있게 대해드렸죠?”그의 분노가 더욱 끓어올랐고, 검은 아우라가 그를 감쌌다. 평온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말에 대답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기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강한서는 강현우와 달랐다. 강현우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기사를 써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강한서는... 그는 파파라치계의 1순위였던 바나 미디어를 파산할 정도로 고소했던 당사자였다. 업계를 휩쓸었던 바나 미디어의 편집장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도 전부, 강한서의 작품이었다.그들 언론사는 어느 곳 하나도 바나 미디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곳들이었다. 그런데 감히, 주제도 모르고 강한서의 역린을 건드리다니.그깟 포상금이, 그들이 이런 리시크를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들이 강한서에게 애원하던 그때, 꽁꽁 싸맨 여자가 입을 열었다. “당장 내보내, 안 그럼 점수 깎을 거야!”사람들은 불같이 화를 내던 강한서가 여자의 말에 카리스마를 거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언짢은 듯 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게 왜 내 탓이야?”“자꾸 쓸데없는 소리할래?”강한서는 입을 닫고 잔뜩 불쌍한 태도로 말했다. “알았어.”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은 또 냉랭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잡고 있던 사
유현진은 가볍게 대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갑자기 비틀거리자 강한서가 깜짝 놀라 얼른 그녀를 부축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유현진은 어쩐지 조금 말문이 막힌 듯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나, 돼지 타고 걷는 것 같아?”강한서: ...그는 어젯밤 절제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괜히 어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얼굴을 가리면 다른 사람들이 너인 줄 모를 거야.”유현진이 침묵했다. 그녀는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았다. 비슷한 것이 분명했다. 화장실에 찬물이 나오지 않아 강한서는 옆방을 예약하라고 했다. 두 사람이 샤워를 마치자, 민경하가 준비해 둔 차도 마침 도착했다. 차가 출발하자, 유현진은 그제야 이젠 두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과 강한서의 사이가 이런 식의 진전을 가져올 줄 몰랐기에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계획은, 최소한 일이 안정되어야만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강한서의 사업은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강한서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실패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강한서의 첫 번째 결혼이 실패한 원인은 서로에 대한 의심은 둘째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경제적 지위의 차이도 한몫했다. 그런 커다란 갭은 자꾸만 시시콜콜 따지게 했고, 자신이 강한서의 곁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반문하게 했다. 하지만 늘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침대에서 자고 관계까지 가진 이 시점에, 강한서에게 단순히 약 때문에 그와 잔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걸까?그 말은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주둥이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말이었다!그녀는 어젯밤 왜 자신이 참지 못한 것인지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강한서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어야 했다. 창피한 건 창피한 거고, 이렇게 난처하기보다는 나았을 테니까. “어젯밤… 그건 사고야.”유현진이 아직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
강한서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유현진도 꾸물거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강한서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강한서가 요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는 노력들을 그녀는 쭉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도 언제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강한서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좋은 감정이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차라리 더 당기는 것이 나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요즘은 동거해 보고 결혼하는 게 유행이잖아. 우리도 정식 연애 전에 테스트를 해보는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남자친구 인턴 기간을 줄게. 만약 네가 잘하면, 정식 남자친구가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강한서는 얼른 유현진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게 아닌 건 없어. 난 분명히 만점짜리 답안지를 낼 거니까.”유현진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찾았다. “너무 앞서가지 마. 나 아직 요구도 얘기 안 했어.”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귀담아듣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내 요구는 단 하나야. 인턴 기간엔, 우리 둘 사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의심받지 않게 행동해. 알겠어?”유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랑 연애하는 게 창피해?”유현진이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차버렸다. “재혼이 안 부끄러워?"강한서: …비록 마음에 무척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재혼”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강한서가 물었다. “그럼 정식 남자친구가 되고 나면?”유현진이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앞서 가지 마. 인턴 기간이나 끝내고 말해.”잠시 생각하던 강한서가 말했다. “그럼 인턴 기간 내에는 커플이 하는 일은 우리도 다 할 수 있는 거야?”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서가 가까이 다가오며 목소리를 잔뜩 깔더니 물었다. “어젯밤 일
정비사는 수도꼭지를 틀었고 이어서 샤워기와 욕조의 수도꼭지도 틀어보았지만 전부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망가졌어도 한 번에 전부 다 망가졌을 리가 없잖아. 설마 밖에 있는 메인 배관이 망가진 건가?’‘하지만 다른 방에서 찬물이 안 나온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장비사는 점검구를 열고 밸브를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가 손을 뻗어 밸브를 돌리자 욕실의 모든 수도꼭지에서 물이 “쏴아아”하고 흘러내렸다. ...‘대체 누가 밸브를 잠근 거야!’신씨 가문.신미정은 어젯밤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또 일이 잘못되어 강한서에게 들킬까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온밤을 기다린 그녀는 이른 아침, 전 여사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고 밤새 방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했다.그 소식에 신미정은 일이 성사되었다고 생각해 얼른 언론사에 연락을 돌렸다. 그녀는 이제 언론사에서 소식을 터뜨려 강한서와 송가람의 관계를 인증해 주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하지만 눈이 빠지게 기다려 점심 11시가 다 되어서도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신미정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막 아이들을 학원에서 데려온 신표의 아내는 거실을 배회하는 신미정과 아직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있는 어젯밤 먹다 남은 간식과 야식 봉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 순간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층으로 올려보내고 내려와 신미정 앞에 섰다. 그녀는 성질을 죽이고 말했다. “형님, 저 나갈 때, 여기 좀 치워달라고 부탁했잖아요. 왜 아직도 그대로예요?”신미정은 이 올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씨 가문이 만약 가세가 기울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절대 자신의 동생이 이런 평민과 결혼하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둘째 치고, 요즘 신표를 꼬드겨 자신을 내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요즘 집안의 사정으로는, 자신의 도움 없이 그들이 이렇게 편안한 삶을 누릴
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하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의 말에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돌을 막아줬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 아니라면, 그에게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너무 상처 되는 말을 하긴 했어.’여전히 고민하는 한열의 귓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한열이 멍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신하리가 배를 끌어안은 채 폭소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린 그녀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똥강아지, 너 솔직하게 얘기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신하리의 얼굴엔 슬픔이라곤 전혀 없이 온통 장난기뿐이었다. 그제야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명훈도 운전석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촌 누나 앞에서만 순한 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열을 길들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낌 한열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신하리를 물어버릴 것처럼 말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은 신하리 씨가 손가락 다 사용해도 부족할 거예요!”“소꿉놀이 같은 연애 말하는 거야?”신하리가 야유 섞인 말투로 한열을 놀렸다. “설마 첫 키스 상대가 나였던 거 아냐?”순간 뜨끔한 한열의 몸이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열을 놀리려던 신하리는 그의 반응에 당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 나야?!”한열이 창피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하지만 한열은 거짓말엔 너무 소질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하리에게 이렇게 빨리 모태 솔로라는 사실을 들켰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소용없다는 것을 인식한 한열이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제가 신하리 씨와 전에 했던 건 첫키스 아녜요. 제가 일부러 신하리 씨 기분 더럽게 하려고 한
한열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신하리 씨와 공개 연애를 선택한 건 신하리 씨가 저에게 감독님을 소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계약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신하리 씨를 도와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하리 씨는 이번에 저 때문에 진짜로 다쳤어요. 이건 제가 신하리 씨에게 빚 진 거예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멈칫한 신하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탑 아이돌을 쳐다보았다. ‘이 바닥에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자식이 있었어?’아무리 신하리가 한열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연애는 한열에겐 이득보단 손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하고 싶다면 사촌 형인 송민준에게 부탁해도 충분했다. 굳이 신하리와 엮일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 한열의 SNS 댓글은 눈에 띌 정도로 악플이 늘었다. 여자친구인 신하리도 공개 연애 후 수많은 악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죽은 쥐과 칼날과 함께 넣어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한열 쪽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신하리가 한열 대신 돌을 맞은 건 그가 얼굴을 다쳐 연예계 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죄책감 때문에 한열에게 이렇게라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자식, 정말 멍천한 거였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신세를 졌다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다니. 이런 멍청해서야 대체 어떻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던 거야?’‘고담시 한씨 가문은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가잖아. 그런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눈치 빠르고 꿍꿍이가 많은 사촌 누나와 형에, 심지어 12살짜리 막내 동생도 쟤보다는 똑똑하겠어.’잡혀가서도 인질범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한열의 모습에 신하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한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