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차미주에 강한서는 한성우에게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다시 정신을 차린 강한서는 휴대폰을 넣었다.“바로 온대.”그는 말하면서 유현진을 옆으로 끌어당겼다.“안 추워?”유현진은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더운 날씨였던 터라 비가 내리면 당연히 땅의 온도도 내려갈 거로 생각했지만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비에 살짝 추워 나기 시작했다.고개를 저은 그녀는 바로 재채기를 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고 몸을 휙 돌리더니 그녀를 품에 가뒀다.유현진이 나직하게 말했다.“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 나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강한서는 고개를 떨구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이미 남편으로서는 실격했지만 남자친구로서는 더는 실격하지 않을 거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후에야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100점 되기엔 아직 멀었어.”강한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럼 추가점수 줄 거야?”유현진은 생각하더니 말했다.“가산점 50점 줄게.”“500점으로 해줘. 내가 이따 돌아가서 이 옷을 입어줄게.”그는 비닐봉지에 담긴 망사옷을 가리키며 말했다.순간 유현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누가 본대!”강한서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내가 입고 싶어서 그래.”“... 네가 보기엔 네가 하려는 행동이 음탕하다고 생각되지 않아?”“너도 전에 스스로 입은 적이 있으니까, 이번엔 내 차례잖아.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강한서가 말한 “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날 밤의 기억은 그녀의 머릿속에 아주 생생했고 그녀는 어떻게든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왜 굳이 이런 일로 공평해지려고 하는 거야?”“이런 일이니까 공평해야 하지 않겠어?”강한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혹시라도 우리 유현진 사모님께서 나의 그 방면에 어떤 질병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떡해. 계속 나한테 병원 예약해 주려고 했잖아.”“...그만해. 네 말발이 대단하다는 거 알고
순간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고 머릿속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그 열기는 하반신으로 집중되어 갑자기 참기 힘들어졌다.목이 마른 느낌에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할짝댔고 입을 벌리던 순간 차미주가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조 선생님께서는 큰 거 좋아하는지, 작은 거 좋아하는지 모르겠네.”“...”그녀의 한마디는 순식간에 찬물이 되어 그에게 확 뿌려졌다.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뿐만 아니라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민망해졌다.그는 침대 위에 있던 담요를 차미주에게 덮어주고는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나갔다.강한서와 유현진은 그곳에서 10분 동안 기다리고 있었고 그제야 우산을 가지고 오는 한성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그는 고작 우산을 두 개 가져왔다. 하나는 이미 그가 쓰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강한서와 유현진에게 전해주려고 가지고 온 것이었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하나야?”한성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이 바보 같은 자식, 도대체 어떻게 유현진 씨의 마음을 얻겠다고 생각한 거지?'한성우가 말했다.“도둑이 취해서 두 개 밖에 못 찾았어. 그러면 네가 혼자 써. 나랑 형수님이 같이 쓸 테니까.”그의 말을 들은 강한서의 안색이 파래졌고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이 답했다.“난 그래도 괜찮아.”“...”한성우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강한서가 멍해져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방금까지 차미주에게 농락당했던 그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그는 계속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형수님, 여긴 물웅덩이가 깊으니까 제가 업어드릴게요.”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지난번 캠핑에서 돼지 한 마리도 들지 못한 주제에 가능하겠냐?”유현진은 눈을 치켜뜨더니 이내 강한서를 쳐다봤다.강한서는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도 모른 채 계속 한성우를 공격하고 있었다.한성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거랑 같아? 형수님이 어떻게 돼지 한 마리보다 무겁겠냐?”강한서는 여전히 자신이 한성우에게 말려들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현진이는 55kg이
황급히 쫓아가 봤지만 그래도 붙잡지 못했다. 유현진은 이미 아파트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강한서는 집까지 쫓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유현진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옆에서 구경하던 한성우가 입을 열었다.“됐어, 그만해. 여자들은 몸무게에 제일 민감해. 아마 오늘 밤까지는 형수님의 화가 풀릴 것 같진 않네.”강한서는 기가 찬 듯 그를 노려봤다.“너 뻔뻔하게 그런 말이 나오냐!”한성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이것도 봐준 거야. 네가 예전에 내 앞에서 얼마나 형수님이 싸준 도시락과 새 옷을 자랑해 댔는데? 겨우겨우 나와 같은 솔로가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다시 마음을 얻으면 내가 짜증이 나잖아.”강한서의 안색이 파래졌다.'도대체 그동안 나한테 뭘 알려준 거야?'집으로 돌아온 유현진은 바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샤워실에서 나오자마자 그녀는 차미주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차미주는 곤히 자고 있었고 아직도 빗발이 세게 내리고 있었기에 그녀는 직원에게 내일 아침에 와서 그릇을 수거해 가라고 연락했다.하지만 한참이나 연락을 했지만 받는 사람이 없어 그녀는 하는 수없이 문자를 남겼다.머리를 말리고 잠을 잘 준비를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유현진은 그릇을 수거해 가는 직원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문밖에 있던 사람은 바로 신미정이었다.그녀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옆에는 중년 남성이 있었고 그녀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그가 바로 신미정의 동생이자 강한서의 삼촌인 신표였다.신미정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지만 메이크업으로 커버했다.밖에 빗발이 세게 내렸지만, 그녀의 몸은 젖은 곳 하나도 없었고 머리도 엉망이지 않았다.유현진은 신미정을 보자마자 바로 문을 닫으려고 했다.그러나 신미정은 이미 그녀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얼른 손을 뻗어 문을 확 열어젖혔다.유현진은 문과 부딪치더니 이내 비틀비틀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여긴 무슨 일이시
신미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유현진, 주제 넘게 굴지 마!”유현진은 가소롭게 웃었다.“첫째, 강민서와 전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제가 강민서와 시누이로 지낸 그 몇 년 동안이 어땠는지 모른 척하진 않겠죠. 둘째, 걔가 저한테 뜨거운 물을 붓는 데 성공했든 아니든 이미 사람을 해쳤습니다. 그런 애를 제가 미쳤다고 도와줍니까? 셋째, 이 집은 우리 회사 대표님께서 마련해준 집입니다. 당신 아들과는 상관이 없어요. 가서 따지고 싶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넷째...”유현진은 뜸을 들이더니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말했다.“절 평생 임신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 제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그녀가 조목조목 말할 때마다 신미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신미정은 유현진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유현진이 이혼하고 난 후 유씨 가문과도 연을 끊으며 지내는 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유현진은 그녀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더 잘살고 있었다.너무 잘살고 있었던 나머지 그녀의 앞에선 꼼짝을 못 하던 유현진이 지금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다!신미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내가 어떻게 하면 도와줄 건데?”유현진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몇 년간 그녀의 며느리로 살면서 유현진은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허영심이 가득 찬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눈앞의 이익을 중시하며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상대와 친해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못하는, 유현진과 유씨 가문 같은 사람에게는 항상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었고 더욱이 치밀어 오르는 화까지 참으면서 부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평소와 다른 그녀의 행동이 그녀가 강민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신미정의 이런 자식 지키기는, 유현진은 그녀가 강한서에게조차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생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날 협박하는 거지?'강한서가 정말로 이 일에서도 강민서를 감싸준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강한서를 고려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했을 것이었다.유현진은 고개를 들고 신미정을 주시하였다.“도와 드릴 순 있어요.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신미정의 눈이 반짝거렸다.“말해봐.”유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가서 자수하세요. 저에게 평생 임신을 못 하는 약을 탔다고. 그러면 저도 한열 씨에게 찾아가 민서를 봐달라고 부탁해 보죠.”신미정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지금 날 놀리는 거니?”“그럴 리가요.”유현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기회를 드리는 거잖아요. 딸을 구할 수 있는 기회 말이에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민서를 위해 이런 희생도 못 해주나요?”신미정은 눈앞에 있는 곱디고운 유현진의 얼굴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고 손을 들어 유현진의 뺨을 내리치려고 했다.먼저 예상하고 있었던 유현진은 바로 뒤로 물러났고 신미정은 헛스윙을 날리게 되었다.그러나 반대편에서 손이 날라오더니 유현진의 뺨을 철썩 때렸다.그녀의 귓가엔 이명 소리가 들렸고 신표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누나, 내가 말했잖아. 이런 년은 그냥 먼저 때리고 시작하는 게 더 빠르다고!”말을 마친 그는 다시 손을 올려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신표는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었고 성인 남자도 그의 주먹을 받아 내지 못했기에 유현진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견뎌낼 리가 없었다.그녀는 그의 주먹에 맞으면 아마 치아도 부러지게 되리라 생각했다.그래서 신표가 팔을 들자마자 유현진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바로 팔을 뻗어 상대의 급소를 가격했다. 신표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고 바로 허리를 구부리며 급소를 감쌌다.놀란 신미정이 얼른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신표야, 괜찮아?”유현진은 살기 위해 이미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가격한 것이었다. 신표는 자신의 급소가 마치 터진 것 같아 고통에 안색이 창백해졌고 허리를 펴지 못했다.유현진은 이미 휴대폰을 들고 신고하
신표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의자를 잡던 손에 힘을 풀었고 비틀거리면서 뒤통수를 만졌다. 그러자 그의 손엔 피가 흥건했고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신표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은 본 신미정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신표의 이름을 부르면서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유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얼른 차미주 손에 들린 꽃병을 빼앗았다.“네가 왜 나왔어?”바닥에 있는 피를 본 차미주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나... 나 설마 사람 죽인 거야?”유현진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넌 술 마셨고 꽃병은 내가 들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일단 신고부터 하자.”“그래, 그래. 일단 신고부터.”차미주는 허둥지둥 집 안을 돌아쳤고 휴대폰을 들고 경찰이 아닌 한성우에게 연락했다.그 시각 902호.강한서는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었고 한성우는 소파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두 판이나 했지만, 연속 진 상태였다.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오늘 상태가 왜 이래? 무슨 일 있어?”한성우는 평소에도 게임 친구들이랑 별로 소통하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그는 어차피 게임 속 친구이니 현실에선 만날 일도 없겠다 생각하며 오늘 일을 말해주기로 했다.“내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 최근에 여자랑 밥도 같이 먹고 게임도 같이하면서 매일매일 뭐든 같이 했었어. 그리고 그 친구는 여자를 여사친으로만 생각했고. 하지만 여자가 다른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대. 도대체 왜 그런 걸까?”게임 속 친구가 대답했다.“친구가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네. 안 그럼 다른 이유가 없잖아?”한성우는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걔는 그 여자랑 자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데?”상대는 한참 지나서야 대답을 했다.“친구, 너 혹시 연애 못 해 봤냐?”한성우가 바로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해명했다.“나 말고 내 친구 얘기라니까.”“그럼 네 친구는 연애해 본 적이 없냐?”
“그럼 그렇게 생각해. 그 여자가 연애하고 결혼할 때쯤엔 네 증상도 사라지게 될 거야.”게임 속 친구가 계속 말을 이었다.“계속 놀 거야?”한성우가 대답하려던 순간, 차미주에게서 연락이 왔다.한성우는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바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한성우는 후회했다. 그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휴대폰 너머로 차미주의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개자식아, 어떡해. 나 사람 죽인 것 같아...”한성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무슨 일인데, 천천히 말해봐.”차미주는 더듬거리며 방금 있었던 일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그녀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가 유현진을 때리려고 했고 그녀가 꽃병으로 사람을 내리쳐 유현진이 지금 대신 뒤집어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비록 그녀는 뒤죽박죽으로 말했지만, 한성우는 잘 알아듣고 있었다.옆집에서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그는 일단 차미주를 안심시키며 욕실에 있던 강한서를 끌어내 왔다.옷도 입지 못한 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뭔데?”“형수님 큰일 났어! 누가 형수님 집으로 침입해서 폭행하고 있대!”강한서는 옷 입을 겨를도 없이 얼른 샤워 가운을 입고 한성우와 함께 901호로 왔다.두 사람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신표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옆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있었다. 그리고 신미정이 신표 옆에서 통곡하고 있었고 꽃병을 든 유현진은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강한서의 등장에 신미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서야, 유현진이 미쳤어! 쟤가 네 삼촌을 이렇게 만든 거야! 얼른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해!”“...”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신미정이 차미주를 잡아가라고 소리칠까 봐 걱정했지만 이제 보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강한서를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유현진에게 다가갔다.가까이에서 본 유현진의 얼굴이 부어있는 것을 발견한 강한서는 표정이 어두워졌다.“삼촌이 때렸어?”“응.”유현진은 짧게 대답하더니 말을
“걔랑 민서랑 같아?”신미정은 바로 반박에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표정을 한껏 구기며 말했다.“유현진이 네게 말했니? 걔 말을 그렇게 쉽게 믿어? 그때 나도 거기에 있었고 쟤가 방을 잘못 들어간 거라고!”“그래요?”강한서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왜 할머니께 알리지 말라고 하셨죠?”신미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다 네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니냐! 신혼 첫날밤부터 아내가 바람피웠다는 소문이 돌면 치욕스럽지도 않니?”신미정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강한서는 그녀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환상까지 깨져버렸다.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전 현진이 때문에 치욕스러운 게 아니라 어머니 때문에 더 치욕스럽네요.”신미정의 표정이 확 변했다.“강한서! 난 네 엄마야!”강한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신씨 가문을 그렇게나 신경 쓰고 있으셨으니 오늘부터 강씨 가문에서는 나가시죠. 강씨 가문은 낡아빠진 가문도 아니고 더는 아버지를 위해 제사를 올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혼자 홀로 사시든 재혼을 하시든 마음대로 하세요. 노후 자금은 제가 알아서 제때 보낼 겁니다. 만약 재혼을 하신다면 그럼 전 강씨 가문을 대표해서 어머니께 재혼 선물을 보내드리죠.”신미정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한껏 일그러뜨렸다.“강한서!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강한서는 더는 그녀와 입씨름을 하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구경하고 있던 한성우에게 말했다.“구급차 불렀어?”한성우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당연한 거 아니야?”신미정이 계속 소란을 피우려고 하는 모습에 한성우가 말했다.“아주머니, 얼른 지혈부터 하세요. 이따 구급차 오기 전에 삼촌께서 과다출혈로 돌아가시면 안 되잖아요.”사실 신표의 출혈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에게선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고 기껏해야 그가 뒤통수를 만지며 손에 묻은 피가 다였다.그 꽃병은 차미주가 인터넷에서 아주 저렴하게 주고 산 꽃병이었다. 예쁘긴 했지만 저렴한 탓에 꽃병의 두께가 두껍지 않았고 무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