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란 정인월이 얼른 호숫가의 산책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어 주변의 스피커에서 판소리의 장단이 울려 퍼졌다. 젊은 사람 중에는 판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판소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들은 이 상황을 한주 강씨 가문에서 준비한 이벤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이 장단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 장단은 판소리 “백화정”의 시작 부분이 아닌가? 그리고 이 창법, 한 소절뿐이었지만, 부드러운 음색에 오랫동안 판소리를 들어온 사람이라면 부르는 사람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은영 선생님이 부르는 판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정인월이 국악 팬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유명 인사는 없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은영 선생님의 창법이었다. 사실 정인월뿐만 아니라 한주시 유명 인사 중에도 많은 팬이 있었다. 하지만 은영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떤 장소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려고 하든, 아는 지인들을 다 동원해도 은영 선생님은 쉽게 원칙을 깨지 않았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에는, 유명해지지 못했던 그때에도, 하루 7, 8회차씩, 담배값도 안되는 티켓값을 받고도 단 한 회도 빠짐없이 공연을 했다. 하지만 그가 부르지 않는다고 할 때는 그 어떤 가격을 제시해도 그는 절대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또 이런 원칙주의의 성격 덕분에 사람들은 더욱 은영 선생님에게 국악가로서의 풍격이 있다며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창법이 같다고 느끼면서도 정말로 은영 선생님일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한주시 강씨 가문이 뭐라고, 은영 선생님은 국보급 국악가였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시녀 분장을 한 배우들이 온통 녹색으로
신미정은 듣자마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다니, 미리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송민희도 은영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은영 선생님은 굳이 송민희의 부탁을 들어주면서까지 자기에게 미움을 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미정은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어차피 누구도 은영 선생님을 모셔 올 수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자기를 나타낼지는 각자의 역량이었다. 하지만, 은영 선생님이 오실 줄이야!신미정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전 여사를 쳐다보았다.전 여사 역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 처리를 확실히 하지 못한 그녀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도 전 여사는 신미정을 위로했다. "미정 언니, 은영 선생님께서는 송민희 씨가 불러서 오신 건 절대 아닐 거예요. 송민희 씨를 위해 윤 여사님이 오랜 동창인 저와 껄끄러워질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 학교 다닐 때 사이가 꽤 좋았어요.""송민희가 아니면 누가 모셔 왔다는 거예요?"신미정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고작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해요?"전 여사는 욱 화가 치밀었다.'고작? 이 일이 고작이라고?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모셔 오던지.'부탁하는 신세면서, 불평이라니. 전 여사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 일들을 신미정에게 의지해야 했다. 그 때문에 전 여사는 눈을 내리깔고 불만을 억누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음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신미정은 여전히 정색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민희도 미간을 찌푸렸다. 강현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엄마, 저분을 어떻게 모신 거예요?""내가 모신 게 아니야."송민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윤 여사님에게 문전박대당해서 은영 선생님을 뵙지도 못했어."강현우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엄마가 아니면 누구예요?"신미정은 전혀 표정관리를 못 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은영 모신 것이라면 절대 저런 표정을
비록 차미주가 내뱉은 말은 굉장히 예의없었지만 그 말은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큰 파동을 일으켰다. “설마 유현진 말하는 거야?”“설마! 유현진이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왜 강한서와 결혼하겠어? 장난하지 마.”“하지만 여기에 현진이란 이름이 유현진 말고는 없잖아.”“금방 말한 사람, 유현진 옆에 있던 그 여자애 같아.”“정말 유현진이 한 건가 봐…”…신미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유현진이 은영 선생님을 모셔 왔을 줄은 그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은영 선생님의 출연으로 정인월이 저렇게 행복해하니, 그녀가 준비한 것들은 큰 기대를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 그녀가 자신을 보여 줄 기회를 유현진이 전부 뺏어갔다!유현진이 강씨 가문에 있을 때도 정인월은 유현진을 제일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혼한 지금도 여전히 자기 일을 망치다니!신미정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유현진을 바로 보았다. 유현진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일이 마치 그녀에게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유현진이 모셔왔다는 말을 들은 정인월이 깜짝 놀라며 얼른 유현진을 불렀다. “현진아, 어떻게 된 일이야?”유현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인월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드리는 생신 선물이에요. 은영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백화정” 꼭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나야 듣고 싶지. 근데 어떻게 모셔 온 거야?”유현진이 대답했다. “은영 선생님께서 워낙 좋으신 분이니까요. 할머니가 은영 선생님 골수팬이라고 하니까 바로 할머니 생신 때 오시기로 약속해 주셨어요.”은영 선생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솜씨 하나는 좋은 유현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벌써 날마다 은영 선생님이 매일 차를 마시던 찻집에서 기다렸던 걸 잊은 건가?부끄러운 줄 모르고 새장을 들어주고 물심부름이나 하면서 아무리 쫓아도 절대 굴하지 않아 귀찮음을 한 몸에 받았었다. 하지만 은영 선생님을 오게 만든 건 단순히 유현진이 계속 뻔뻔하게
차미주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우리 현진이 능력이야 대단하죠. 하려고 마음먹은 건 꼭 해내니까요.”그녀는 강한서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남자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요!”강한서: ...한성우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그는 차미주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네 친구가 그렇게 대단한데 넌 왜 아직도 그렇게 하찮은 일이나 하면서 지내는 거야?”차미주는 어깨에 올려진 한성우의 손을 떼어내며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네 친구들은 20대에 이미 상장회사의 CEO에 한주시 모범청년이었는데 넌 서른이 되어도 유흥 업계 1위는커녕 아직도 하루 종일 여자들과 놀아나고 있으면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한성우가 입술을 움찔 떨었다. 차미주가 내뱉은 말은 유현진 못지않게 날카로웠다. 오히려 유현진보다 더 날이 섰다. 말을 마친 유현진은 음식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쟤같이 입에 칼이라도 문 것처럼 독한 소리만 해대는 여자를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어!”한성우는 차미주 흉을 보려고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강한서는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강한서는 유현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의 끝엔 유현진과 함께 있는 송민준도 있었다. 그에 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송민준 저건 파리 새끼처럼 또 현진이한테 말을 걸어?’강한서가 굳은 얼굴로 한성우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송민준이 나보다 잘난 게 뭐야?”“잘난 거라... 당연히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거겠지, 넌 재혼이잖아.”강한서: ...강한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진지하게 묻는 거야!”그러자 한성우가 대답했다. “나도 진지하게 대답한 거야. 아직 총각이라는 거, 중요하잖아.”강한서가 얼굴을 굳혔다. “송민준한테는 오빠라고 불렀어. 나한테는 아직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 없는데!”‘고작 그런 일에 이렇게 화를 낸다고?’한성우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강한서를 위로하며 말했다. “화내지 마, 화내지 마. 너도 오빠 맞아. 넌… 전남편 오
전 여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욕을 지껄였다. “너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유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전 여사님, 전 의원님께서 굳이 여사님더러 용호를 저에게 빌려주라고 했던 일, 기억하시죠?”전 여사의 얼굴이 어두워진 걸 보니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당시 유현진이 용호를 빌리려 하자 전 여사는 신미정의 말대로 용호를 이미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는 이유로 유현진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용호의 대여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유현진의 부탁을 거절하고 돌려보냈는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잘했다는 칭찬할 줄 알았던 남편은 오히려 그녀를 나무랐다. 전 의원을 그녀를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른다며 욕했고 그녀에게 신미정과 유현진의 고부갈등에 끼어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강씨 가문은 언젠가 강한서의 것이 될 테고 유현진에게 미움을 사는 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 여사는 그 말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이도 낳지 못하는 유현진이 강씨 가문의 손주며느리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전 의원은 버럭 화를 내며 어떤 이유든 무조건 용호를 유현진에게 빌려주라고 강조했다. 전 여사의 인품이야 어떻든 그녀는 전 의원에게만큼은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전태평이 화를 내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결혼 이삼십 년 동안 얼굴을 붉히며 싸운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태평의 입장은 확고했기에 전 여사는 어쩔 수 없이 용호를 유현진에게 빌려 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론 빌려주기도 전에 유현진의 집안에 일이 생기면서 강한서와 이혼하는 바람에 생일 연회를 준비하는 일은 그녀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실은 전 여사도 전태평이 예전에는 늘 신미정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라고 당부하더니, 왜 갑자기 이번 일에 끼어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현진은 어떻게 전태평이 자기에게
전 여사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자기를 위해 무슨 일까지 했는데, 날 이렇게 대해!”전 여사가 자신이 기대하던 반응을 보이자 유현진은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유현진은 그 틈을 타 손에 묻은 케이크를 전 여사의 드레스에 문질렀다. “본인 처지도 좀 생각하세요. 따님도 세 분이나 계시는데.”그리곤 다시 접시를 들고 케이크를 가지러 갔다. 자신이 던진 작은 돌멩이에 괴로워하는 전 여사는 내버려 둔 채. 이렇게 하지 않고 전 여사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신을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전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들린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진태평이 순리롭게 승진할 수 있었던 건, 전 여사의 내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더러운 일이든 전부 그녀가 직접 나서서 그를 도왔다. 그녀는 늘 자신은 정략결혼을 한 다른 사모님들과는 다르다고 여겼었다. 그녀와 남편인 전태평은 연애결혼이었고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부부로 지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처음과 같이 변함이 없었고 진태평은 기념일마다 그녀에게 직접 고른 선물을 건네주어 사모님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오랜 결혼 생활 중에도 한결같은 남편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그녀의 결혼 생활 중 유일한 오점은 최지영이었다. 전 여사가 이 일을 알게 된 건 8년 전 일이었다. 당시 진태평은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것이라며 끊임없이 사과하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녀가 최지영을 떼어낼 것을 제안하자 전태평도 망설임 없이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녀는 최지영을 떼어내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신미정에게 사정을 설명해 가며 돈을 빌렸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 혼자만 모두에게 속고 있었다. 신미정은 그녀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미 전태평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때 신미정이 자신을 위로하던 말들을 떠올린 전 여사는 순간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토하고 싶어졌다. 신미정은
강한서가 케이크를 받아 들자 드디어 두 손이 자유로워진 유현진이 저린 손가락을 툭툭 털었다. 그녀는 강한서를 흘겨보았다. “케이크 앞에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봐봐. 다 먹고 다시 갈 때쯤엔 위에 맛있는 과일은 이미 다 뺏기고 없을걸.”그 말에 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탑을 쌓아오면 어떡해? 어린애들이랑 같이 뺏으면 창피하지 않아?” 유현진이 망고를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뭐가 창피해? 애들이 너보다는 착해. 한 사람이 한 번씩 떠준 거야. 아니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쌓았겠어?”강한서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유현진의 말을 받아치려는데 한 어린아이가 사탕을 안고 다가왔다. 케이크를 먹고 있는 유현진을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언니, 케이크 아저씨 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유현진: …강한서: ???힘겹게 케이크를 삼킨 유현진이 마른기침을 했다. “언니가 거짓말한 거 아니야. 케이크 아저씨 주려던 거 맞아. 언니는 그냥 맛만 본 거야.”그러더니 숟가락을 들어 강한서의 입가에 가져갔다. “그렇지, 아저씨?”강한서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아이가 유현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으며 말했다. “아저씨 불치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케이크 한 입만 먹어보고 싶어 한다고 했잖아요.”‘이 아저씨가 어딜 봐서 불치병에 걸렸다는 거야’아이의 말에 유현진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맞아. 너희들이 준 케이크를 먹었더니 이렇게 기적이 일어났어.”강한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제 갓 여섯 일곱 살 난 아이는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유현진의 사람 속이는 연기가 탁월했고 강한서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서 있어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어린아이는 반신반의하며 유현진의 말을 받아들였고 손에 있던 사탕을 강한서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 이거 줄게요. 빨리 나아요.”유현진이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가 아저씨 대신 받을게. 고마워,
차미주의 말에 유현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헛소리 하지마!”차미주는 이제껏 읽었던 로맨스 소설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굴렸다. “강한서가 너에게 고백하면 절대 받아주지 마. 음... 너무 빨리 대답하지말고, 조바심이 나게 만들어야 해. 알게 해줘야 지. 넌 그 사람 없이도 살 수 있지만 그 사람은 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말이야.”유현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한서가 누구 하나 없다고 못 살 사람이야?”“너는 그 사람 없이는 못 사는 줄 알았어. 얼마나 콩깍지가 씌였었는지, 강한서랑 싸우고 우리집에 찾아와서는 같이 실컷 욕했잖아. 난 당장 이혼하라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넌 그 다음 날 강한서 전화 한 통에 바로 돌아가버렸잖아.”유현진: ...‘그런 창피한 일을 얘는 왜 이렇게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거야?’“하지만 지금은 너도 이제 조금은 성숙해졌잖아. 오히려 강한서가 완전히 달라졌고. 널 보겠다고 그 자식이랑 날 납...”차미주가 갑자기 멈칫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런 개자식은 처음 봤다니까!”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유현진이 자세히 물으려는데 한 줄기 밝은 빛이 밤하늘을 가로더니 곧 공중에서 폭발하며 반짝반짝 빛났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한주시에서 몇년 전부터 불꽃놀이와 폭죽을 금지했다. 유현진은 이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신미정이 마이크를 들고 당당한 태도로 사람들 앞에 섰다. 그녀는 정인월의 생신을 축하드리고 또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는 집안 사모님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송민희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바로 이때, 폭죽 하나가 사람들 속으로 날아들어와 터졌다. 불꽃이 여기저기 튀었고 그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리고 곧 또 하나의 폭죽이 날아들어왔다. 유현진은 얼른 정인월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아직 제대로 확인도 못했는데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끌어당기는 힘을 따라 몇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