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누군가가 물었다.“유현진 씨 오늘 뭘 선물했는지 아시는 사람 있나요?”“모르겠는데요. 유현진 씨가 저쪽에서 등기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으니 아마 대충 다른 사람에게 묻혀서 들어온 거 아닐까요?”“대박, 빈손으로 온 거예요? 정말 뻔뻔하네요. 심지어 선물까지 받아냈잖아요.”...주아름의 눈빛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때 유현진은 휴대폰을 꺼내 몰래 확인하자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그녀는 얼른 차미주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던 차미주는 그녀의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그녀는 차미주에게 카톡을 보냈다.“너 지금 어디야?”카톡을 보내자마자 현장은 갑자기 술렁이더니 이내 누군가가 소식을 전해왔다.선물을 보낸 사람을 적어두었던 회계장부에 실수로 술잔을 쏟았다는 것이었다.진 씨는 얼른 그 소식을 정인월에게 전했고 정인월은 미간을 찌푸렸다.선물을 보낸 사람들을 적은 회계장부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누가 무엇을 선물했는지 자세하게 적고 나중에 그 회계장부대로 선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현재 회계장부가 젖어버렸으니 글씨는 이미 알아볼 수가 없었고 페이지도 찢어져 무엇을 적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신미정과 송민희 더욱 조급해졌다. 그 두 사람은 이 팔순 잔치에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었고 그 두 사람은 각자 초대장을 보내 지인들을 초대했기에 선물들도 각자 알아서 나눠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회계장부가 손상되었으니 누가 뭘 선물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일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술잔도 제대로 안 치우고 뭐 한 거죠?”신미정은 바로 불만을 드러냈다.송민희의 안색도 좋지 않았지만 회계장부를 적는 회계사는 정인월이 아끼는 이미 회사에서 퇴직한 집사였다. 그녀는 분노를 꾹꾹 참으면서 말했다.“어머님, 사람들이 아직 이곳에 있으니까 얼른 다시 적어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인원수와 맞지 않으면 제가 사람을 시켜 다시 알아보라고 할게요.”
깜짝 놀란 정인월이 얼른 호숫가의 산책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어 주변의 스피커에서 판소리의 장단이 울려 퍼졌다. 젊은 사람 중에는 판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판소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들은 이 상황을 한주 강씨 가문에서 준비한 이벤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이 장단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이 장단은 판소리 “백화정”의 시작 부분이 아닌가? 그리고 이 창법, 한 소절뿐이었지만, 부드러운 음색에 오랫동안 판소리를 들어온 사람이라면 부르는 사람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은영 선생님이 부르는 판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정인월이 국악 팬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유명 인사는 없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은영 선생님의 창법이었다. 사실 정인월뿐만 아니라 한주시 유명 인사 중에도 많은 팬이 있었다. 하지만 은영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떤 장소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려고 하든, 아는 지인들을 다 동원해도 은영 선생님은 쉽게 원칙을 깨지 않았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에는, 유명해지지 못했던 그때에도, 하루 7, 8회차씩, 담배값도 안되는 티켓값을 받고도 단 한 회도 빠짐없이 공연을 했다. 하지만 그가 부르지 않는다고 할 때는 그 어떤 가격을 제시해도 그는 절대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또 이런 원칙주의의 성격 덕분에 사람들은 더욱 은영 선생님에게 국악가로서의 풍격이 있다며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창법이 같다고 느끼면서도 정말로 은영 선생님일 것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한주시 강씨 가문이 뭐라고, 은영 선생님은 국보급 국악가였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음악 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시녀 분장을 한 배우들이 온통 녹색으로
신미정은 듣자마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다니, 미리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송민희도 은영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은영 선생님은 굳이 송민희의 부탁을 들어주면서까지 자기에게 미움을 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미정은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어차피 누구도 은영 선생님을 모셔 올 수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 자기를 나타낼지는 각자의 역량이었다. 하지만, 은영 선생님이 오실 줄이야!신미정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전 여사를 쳐다보았다.전 여사 역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 처리를 확실히 하지 못한 그녀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도 전 여사는 신미정을 위로했다. "미정 언니, 은영 선생님께서는 송민희 씨가 불러서 오신 건 절대 아닐 거예요. 송민희 씨를 위해 윤 여사님이 오랜 동창인 저와 껄끄러워질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 학교 다닐 때 사이가 꽤 좋았어요.""송민희가 아니면 누가 모셔 왔다는 거예요?"신미정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고작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해요?"전 여사는 욱 화가 치밀었다.'고작? 이 일이 고작이라고?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모셔 오던지.'부탁하는 신세면서, 불평이라니. 전 여사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 일들을 신미정에게 의지해야 했다. 그 때문에 전 여사는 눈을 내리깔고 불만을 억누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음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신미정은 여전히 정색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민희도 미간을 찌푸렸다. 강현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엄마, 저분을 어떻게 모신 거예요?""내가 모신 게 아니야."송민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윤 여사님에게 문전박대당해서 은영 선생님을 뵙지도 못했어."강현우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엄마가 아니면 누구예요?"신미정은 전혀 표정관리를 못 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은영 모신 것이라면 절대 저런 표정을
비록 차미주가 내뱉은 말은 굉장히 예의없었지만 그 말은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큰 파동을 일으켰다. “설마 유현진 말하는 거야?”“설마! 유현진이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왜 강한서와 결혼하겠어? 장난하지 마.”“하지만 여기에 현진이란 이름이 유현진 말고는 없잖아.”“금방 말한 사람, 유현진 옆에 있던 그 여자애 같아.”“정말 유현진이 한 건가 봐…”…신미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유현진이 은영 선생님을 모셔 왔을 줄은 그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은영 선생님의 출연으로 정인월이 저렇게 행복해하니, 그녀가 준비한 것들은 큰 기대를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 그녀가 자신을 보여 줄 기회를 유현진이 전부 뺏어갔다!유현진이 강씨 가문에 있을 때도 정인월은 유현진을 제일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혼한 지금도 여전히 자기 일을 망치다니!신미정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유현진을 바로 보았다. 유현진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일이 마치 그녀에게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유현진이 모셔왔다는 말을 들은 정인월이 깜짝 놀라며 얼른 유현진을 불렀다. “현진아, 어떻게 된 일이야?”유현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인월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드리는 생신 선물이에요. 은영 선생님께서 부르시는 “백화정” 꼭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나야 듣고 싶지. 근데 어떻게 모셔 온 거야?”유현진이 대답했다. “은영 선생님께서 워낙 좋으신 분이니까요. 할머니가 은영 선생님 골수팬이라고 하니까 바로 할머니 생신 때 오시기로 약속해 주셨어요.”은영 선생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솜씨 하나는 좋은 유현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벌써 날마다 은영 선생님이 매일 차를 마시던 찻집에서 기다렸던 걸 잊은 건가?부끄러운 줄 모르고 새장을 들어주고 물심부름이나 하면서 아무리 쫓아도 절대 굴하지 않아 귀찮음을 한 몸에 받았었다. 하지만 은영 선생님을 오게 만든 건 단순히 유현진이 계속 뻔뻔하게
차미주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우리 현진이 능력이야 대단하죠. 하려고 마음먹은 건 꼭 해내니까요.”그녀는 강한서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남자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요!”강한서: ...한성우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그는 차미주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네 친구가 그렇게 대단한데 넌 왜 아직도 그렇게 하찮은 일이나 하면서 지내는 거야?”차미주는 어깨에 올려진 한성우의 손을 떼어내며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네 친구들은 20대에 이미 상장회사의 CEO에 한주시 모범청년이었는데 넌 서른이 되어도 유흥 업계 1위는커녕 아직도 하루 종일 여자들과 놀아나고 있으면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한성우가 입술을 움찔 떨었다. 차미주가 내뱉은 말은 유현진 못지않게 날카로웠다. 오히려 유현진보다 더 날이 섰다. 말을 마친 유현진은 음식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쟤같이 입에 칼이라도 문 것처럼 독한 소리만 해대는 여자를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어!”한성우는 차미주 흉을 보려고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강한서는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강한서는 유현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의 끝엔 유현진과 함께 있는 송민준도 있었다. 그에 강한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송민준 저건 파리 새끼처럼 또 현진이한테 말을 걸어?’강한서가 굳은 얼굴로 한성우에게 물었다. “네가 보기에 송민준이 나보다 잘난 게 뭐야?”“잘난 거라... 당연히 아직 결혼을 안 했다는 거겠지, 넌 재혼이잖아.”강한서: ...강한서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진지하게 묻는 거야!”그러자 한성우가 대답했다. “나도 진지하게 대답한 거야. 아직 총각이라는 거, 중요하잖아.”강한서가 얼굴을 굳혔다. “송민준한테는 오빠라고 불렀어. 나한테는 아직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 없는데!”‘고작 그런 일에 이렇게 화를 낸다고?’한성우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강한서를 위로하며 말했다. “화내지 마, 화내지 마. 너도 오빠 맞아. 넌… 전남편 오
전 여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욕을 지껄였다. “너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유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전 여사님, 전 의원님께서 굳이 여사님더러 용호를 저에게 빌려주라고 했던 일, 기억하시죠?”전 여사의 얼굴이 어두워진 걸 보니 기억이 난 모양이었다. 당시 유현진이 용호를 빌리려 하자 전 여사는 신미정의 말대로 용호를 이미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는 이유로 유현진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용호의 대여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유현진의 부탁을 거절하고 돌려보냈는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잘했다는 칭찬할 줄 알았던 남편은 오히려 그녀를 나무랐다. 전 의원을 그녀를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른다며 욕했고 그녀에게 신미정과 유현진의 고부갈등에 끼어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강씨 가문은 언젠가 강한서의 것이 될 테고 유현진에게 미움을 사는 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 여사는 그 말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이도 낳지 못하는 유현진이 강씨 가문의 손주며느리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전 의원은 버럭 화를 내며 어떤 이유든 무조건 용호를 유현진에게 빌려주라고 강조했다. 전 여사의 인품이야 어떻든 그녀는 전 의원에게만큼은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전태평이 화를 내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결혼 이삼십 년 동안 얼굴을 붉히며 싸운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태평의 입장은 확고했기에 전 여사는 어쩔 수 없이 용호를 유현진에게 빌려 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론 빌려주기도 전에 유현진의 집안에 일이 생기면서 강한서와 이혼하는 바람에 생일 연회를 준비하는 일은 그녀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실은 전 여사도 전태평이 예전에는 늘 신미정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라고 당부하더니, 왜 갑자기 이번 일에 끼어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현진은 어떻게 전태평이 자기에게
전 여사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자기를 위해 무슨 일까지 했는데, 날 이렇게 대해!”전 여사가 자신이 기대하던 반응을 보이자 유현진은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유현진은 그 틈을 타 손에 묻은 케이크를 전 여사의 드레스에 문질렀다. “본인 처지도 좀 생각하세요. 따님도 세 분이나 계시는데.”그리곤 다시 접시를 들고 케이크를 가지러 갔다. 자신이 던진 작은 돌멩이에 괴로워하는 전 여사는 내버려 둔 채. 이렇게 하지 않고 전 여사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신을 괴롭힐 것이 분명했다.전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들린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진태평이 순리롭게 승진할 수 있었던 건, 전 여사의 내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더러운 일이든 전부 그녀가 직접 나서서 그를 도왔다. 그녀는 늘 자신은 정략결혼을 한 다른 사모님들과는 다르다고 여겼었다. 그녀와 남편인 전태평은 연애결혼이었고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부부로 지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처음과 같이 변함이 없었고 진태평은 기념일마다 그녀에게 직접 고른 선물을 건네주어 사모님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오랜 결혼 생활 중에도 한결같은 남편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그녀의 결혼 생활 중 유일한 오점은 최지영이었다. 전 여사가 이 일을 알게 된 건 8년 전 일이었다. 당시 진태평은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것이라며 끊임없이 사과하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녀가 최지영을 떼어낼 것을 제안하자 전태평도 망설임 없이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녀는 최지영을 떼어내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신미정에게 사정을 설명해 가며 돈을 빌렸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 혼자만 모두에게 속고 있었다. 신미정은 그녀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미 전태평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때 신미정이 자신을 위로하던 말들을 떠올린 전 여사는 순간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토하고 싶어졌다. 신미정은
강한서가 케이크를 받아 들자 드디어 두 손이 자유로워진 유현진이 저린 손가락을 툭툭 털었다. 그녀는 강한서를 흘겨보았다. “케이크 앞에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봐봐. 다 먹고 다시 갈 때쯤엔 위에 맛있는 과일은 이미 다 뺏기고 없을걸.”그 말에 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탑을 쌓아오면 어떡해? 어린애들이랑 같이 뺏으면 창피하지 않아?” 유현진이 망고를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뭐가 창피해? 애들이 너보다는 착해. 한 사람이 한 번씩 떠준 거야. 아니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쌓았겠어?”강한서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유현진의 말을 받아치려는데 한 어린아이가 사탕을 안고 다가왔다. 케이크를 먹고 있는 유현진을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언니, 케이크 아저씨 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유현진: …강한서: ???힘겹게 케이크를 삼킨 유현진이 마른기침을 했다. “언니가 거짓말한 거 아니야. 케이크 아저씨 주려던 거 맞아. 언니는 그냥 맛만 본 거야.”그러더니 숟가락을 들어 강한서의 입가에 가져갔다. “그렇지, 아저씨?”강한서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아이가 유현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으며 말했다. “아저씨 불치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케이크 한 입만 먹어보고 싶어 한다고 했잖아요.”‘이 아저씨가 어딜 봐서 불치병에 걸렸다는 거야’아이의 말에 유현진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맞아. 너희들이 준 케이크를 먹었더니 이렇게 기적이 일어났어.”강한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제 갓 여섯 일곱 살 난 아이는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유현진의 사람 속이는 연기가 탁월했고 강한서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서 있어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어린아이는 반신반의하며 유현진의 말을 받아들였고 손에 있던 사탕을 강한서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 이거 줄게요. 빨리 나아요.”유현진이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가 아저씨 대신 받을게. 고마워,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
구내식당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한현진은 넘버 S 오일이 뭔지 몰랐지만 깔린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넘버 S 오일은 혼합 오일이었다. [인 드림] 같은 고급 향수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였다. 넘버 S 오일의 재고는 100mL 밖에 없었다. 서해금이 우연히 제조해 낸 오일이라 각 오일의 성분과 비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넘버 S 오일은 한정판이 되어버렸다. 이 오일은 줄곧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 고급 향수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었다. 넘버 S 오일은 깔린느 전체에 단 한 병뿐이었다. 그것이 깨진다면 넘버 S 오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월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해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따라가려는 한현진을 은서하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제 일은 됐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한현진이 은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지 않을 거예요. 서하 씨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서하 씨를 만만하다고 여기고 더 심하게 굴 거예요. 서하 씨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서하 씨를 괴롭히려고 할 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거예요.”은서하가 멍해졌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주세은은 덜렁대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귀중한 원료는 보통 일반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세은이 그 오일을 깨뜨렸을 리가 없었다. 한현진이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일 보관실에 모여있었다. 주세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를 에워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범인을 심문하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은은 하얗게 질린 얼굴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