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라고 소문났는데 꽃다발을 주며 축하해 주게?'한성우는 다급히 강한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일단 꽃 사지마. 너 안 봤어? 네 와이프한테 사건 터졌다고!"강한서는 멈칫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한성우는 일의 자초지종을 강한서에게 말해주었다."유상수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어? 너와 이혼하자마자 현진 씨 내쳤네, 내쳤어!현진 씨 덕분에 너한테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데, 쓸모없어지니까 바로 매몰차게 내쳤어. 강아지를 키워도 정이 생길 텐데 어쩜 저래? 현진 씨를 한주시에서 매장시키려는 게 틀림없어.현진 씨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찍힌 사진 보니까, 눈도 다 빨개졌더라고. 재판이 끝나고 아마 펑펑 울었을 거야."강한서는 표정이 굳어졌다."재판은 어디서 열렸어?""한주 대법원이지, 뭐. 오늘 이 소송도 강운이한테 의뢰했더라고."여기까지 말한 한성우는 멈칫하다가 계속 말했다."강운이가 말 안 했어?"강한서는 한성우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바로 옷을 집어 들었다."끊는다. 나중에 연락할게.""잠깐!"한성우가 강한서를 불렀다."현진 씨 찾으러 가려고? 나도 같이 가. 너 혼자 가면 집에 들어도 못 가."'그 강도 같은 여자 힘이 얼마나 센데. 강한서 혼자 가면 현진 씨 얼굴도 보기 힘들 걸."20분 뒤, 민경하는 강한서와 한성우를 태우고 차미주의 아파트 단지로 왔다.이곳은 주차가 불편해 민경하는 어쩔 수 없이 수시로 차를 빼기 위해 차에서 기다렸다.강한서와 한성우는 바로 엘리베이터에 탔다.강한서가 자연스럽게 9층을 누르자 한성우는 의아했다."네 와이프 어디 사는지 알아?"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에게는 친한 친구가 차미주밖에 없다. 두 사람이 싸우고 난 뒤에 유현진은 매번 이곳으로 왔다.한 번은 차미주 집에서 술을 마시다, 술에 떡이 된 상태로 강한서에게 데리러 오라고 술주정을 부렸었다.물론 주소도 본인 입으로 말했다.강한서가 왔을 때는 차미주도 술에
유현진은 키를 꺼내며 말했다."대우가 좋은 만큼 실적에 대한 요구도 높아.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차미주는 곰곰이 생각했다."하긴, 근데 송 대표님 진짜 잘생겼더라고.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니까. 얼굴 잘생겼지, 착하지. 꼭 어디서 본 것처럼 호감이 간단 말이야."유현진은 문을 열고 슬리퍼를 찾으며 말했다."너 벌써 마음이 변했어? 조 선생님은 패스야?""에잇, 송 대표님은 그저 멋지다는 거지. 다른 건 없어. 게다가 내가 가당키나 해? 그래도 조준 씨가 최고지. 직업도 의사라 얼마나 멋진데. 나랑 어울리기도 하고."차미주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문을 닫고 들어갔다.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자기를 잡고있는 한성우를 향해 물었다."왜 막아?"한성우가 말했다."현진 씨가 너 만나기 싫다고 그러면 차미주 씨는 분명 널 들어도 못 가게 할 거야. 아파트에 사람도 많은데 혹시라도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목격하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생기면 현진 씨는 널 더 안 만나려고 할 수도 있어."한성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초조해했다."그러면 어떡해?""나만 믿어."한성우는 휴대폰을 꺼내 민경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성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몇 마디 한 뒤에 전화를 끊고 다시 강한서를 향해 말했다."기다려 봐."차미주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씻으려고 할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경비실에서 걸려 온 전화다. 그녀는 이내 통화버튼을 눌렀다."907번 맞으시죠? 혹시 375568의 스쿠터 본인 거 맞으세요?""네, 맞아요. 근데 무슨 일로?""왜 다른 차주의 주차 자리에 주차하신 거죠? 차 좀 빼주세요.""그런 적 없는데요?"차미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차미주는 며칠간 스쿠터를 탄 적이 없으며 스쿠터는 전용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번호도 맞는 데 아니라고요? 빨리 빼주세요. 이러다 주차 자리 주인이 내려오면 곤란해요.""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내려갈게요."전화를 끊은 차미주는 욕실을 향해 큰
그녀는 욕을 내뱉으면서 발버둥을 쳤다. 한성우는 도무지 그녀를 이길 수가 없었다."이 썩은 오이. 넌 내가 남자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는 사람으로 보여? 내가 확실하게 얘기하는데! 조 선생님을 홀라당 벗겨준대도 나 안가. 강한서 당장 나오라고 해. 현진이 털끝이라고 다치기만 해봐. 두 사람 아주- 우웁-"말도 끝나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한성우는 아예 자기의 입술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차미주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들을 그대로 삼켜버렸다.마침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했던 주민들은 이 광경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그들은 분분히 길을 비키며 두 사람의 키스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시야에 사람이 전부 사라지자 그제야 한성우는 입술을 떼고 깊은숨을 내쉬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 너 허락받으려는 거 아니야. 너 오늘 무조건 가야 해! 가기 싫어도 가야 해."강제 키스를 당한 차미주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한성우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바람에 반격도 하지 못했다.강도 같은 여자가 잠잠해지자 한성우는 그녀의 통통한 볼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 말 잘 들으면, 조준 씨와 팍팍 밀어줄게."'볼살이 아주 말랑말랑하네. 재밌어.'"쳇! 강한서 그 개자식이 현진이 건드리기만 해봐. 나 너부터 죽이고 강한서 죽인다!"한성우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말은 독하게 하지만 의리가 넘치는 여자네.'"걱정하지 마. 한서가 현진 씨 얼마나 아끼는데."한성우는 차미주의 손을 놓고 그녀의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가자, 데이트하러."차미주는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잠옷 차림으로 뭔 데이트이야?"한성우는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이 오빠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벌 사줄게."한성우는 차미주를 택시에 태우며 말했다.차미주가 나가고 얼마 안 돼 초인종이 울렸다.유현진은 얼굴의 거품을 씻어내며 소리쳤다."키 안 가지고 나갔어?"번호 키가 고장 난 지 꽤 되었지만 집주인이 고쳐주지 않아 유현진과 차미주는 늘 키를 가지고 다녔다.
문이 열리자 강한서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눈이 마주치는 순간, 유현진은 강한서의 눈빛에서 가소로움을 느꼈다.'이혼 전에는 왜 표정 연기가 저렇게 잘 되는 줄 몰랐지?'엘리베이터가 울리고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문 앞에 앉아있는 강한서와 문고리를 잡고있는 유현진을 곁눈질했다.유현진은 하는 수 없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들어와!"강한서는 몸을 일으켰지만 너무 오래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서 비틀거렸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문을 잡고 바로 선 강한서를 보며 후회했다.강한서도 후회했다.'문 잡지 말걸.'유현진은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강한서는 문을 닫고 총총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유현진이 머리를 돌려 보니 강한서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슬리퍼로 갈아신어!"강한서는 현관으로 돌아가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찾아보았지만 남성용 슬리퍼는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 강한서는 이내 신발을 벗고 양말 차림으로 들어왔다.차미주의 월셋집은 원룸으로 싱글 침대만 있었다. 유현진은 소파에서 잠을 잤다.다행히 차미주의 소파는 접이형이라 낮에는 소파로 사용하고 밤에는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유현진은 침구를 모두 소파 끝에 쌓아 놓았다.거실과 주방은 연결되어 있었으며 총 10평 정도로 강한서 집의 화장실보다 더 작았다.'손님방에도 욕조가 없다고 투덜대던 사람이 여기서는 어떻게 지낸대?'유현진은 작은 걸상을 밟고 올라서 사물함에서 약상자를 꺼내려고 했다.팔을 위로 뻗는 순간 티셔츠도 같이 올라가 하얀 허리가 드러났다.강한서는 멈칫했다.유현진이 아무리 팔을 뻗어도 전혀 닿을 수 없었다.'차미주는 유현진보다도 키가 작은데 어떻게 올려놓았지?'그녀는 까치발을 들어서야 겨우 약상자의 모서리에 손이 닿았다. 이때 갑자기 걸상 다리가 삐걱거리더니 그녀는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위급한 순간에 강한서는 재빨리 뛰어와 그녀의 허리를 받
유현진은 약상자안에서 소독밴드와 면봉을 찾았다. 하지만 의료용붕대는 찾지 못했다.차미주의 덜렁대는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약상자도 할인세일할때 샀었던 거였다.안에 들어있는 약들은 모두 평소에 감기가 걸렸을때 먹고 남은것들이였다, 모두 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였다.일회용 밴드랑 소독용 알콜을 찾을수 있는건 강한서의 운이 좋다고 할수 있겠다.그녀는 면봉을 소독용 알콜에 적신후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유현진은 팩을 아직 떼어내지 않았었기에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늘어뜨린 눈동자에서 강한서는 마음이 또 한 번 약해졌다.차미주의 약상자에 들어있는 면봉은 그런 커다란 의료용 면봉이 아니라 평소 화장할때 쓰는 끝에 면이 적은 면봉이라 상처에 바를때 살짝 아팠다.통증에 한 번만 닦았는데도 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유현진은 그를 한 번 쳐다봤을뿐 굳이 말을 하진 않았다.강한서는 입술을 만지며 물었다."그런 부드러운 면봉은 없어?"유현진은 눈이 떨리더니"도련님, 여긴 당신 집이 아니거든. 왜 이렇게 투덜대? 내가 문을 열어준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지? 계속 불평할거면 집으로 돌아가!"강한서는 할수없이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유현진은 소독을 끝낸후 일회용 밴드를 들고 강한서의 손등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가로로 그의 손등에서 돌출된 뼈부분에 두장 붙히니 완벽하게 모든 상처를 덮을수 있었다.강한서의 이마에 삼지창처럼 주름이 생겼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테이프부분도 상처에 붙었어.""아하."유현진은 약상자를 닫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내가 다친것도 아닌데 뭐, 조금만 참어."강한서는 하마트면 사레가 들릴뻔 했다.그녀는 이 모든게 귀찮고 짜증이 났다.강한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약상자를 직접 탁자에 올려다놓았다.그가 몸을 돌려 뒤를 돌아봤지만 유현진은 이미 마사지팩을 떼러 화장실로 가고 없었다.강한서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차 세트에 놓인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어린 왕자' 였다.
강한서는 밀당의 고수도 아니였고 상냥함과도 거리가 멀었었지만 거칠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키스는 유현진으로 하여금 뭐가 진짜 거친 키슨지 톡톡히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다.그는 깨물듯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날렸고, 고삐 풀린 말처럼 그녀의 입술을 범했다.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유현진은 저항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행동에 깜짝 놀랐고 밀려오는 수치와 분노에 홧김에 콱 물어버리려고 했다.강한서는 그녀한테 몇번이나 골탕을 먹은적이 있었기에 이것도한 예상을 했던지라 그녀가 이빨을 드러내자마자 강한서는 그녀의 턱을 잡았다.유현진의 한 손은 잡혀있었고 다른 한 손엔 물이 들려있었기에 그녀는 생각도 않고 컵에 담겨있던 물을 강한서의 얼굴에 뿌렸다.강한서는 그냥 멈칫 할뿐 미동도 않았다.그의 눈썹에 달려있던 물방울은 코대를 타고 코끝에 맺혔다.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코끝에 달려있던 물방울은 유현진의 입술에 떨어졌다.모든 행동이 느려지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유현진은 얼굴을 붉힌채 컵을 꽉 쥐고는 강한서의 머리를 쳐다보며 몇초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의 어깨에 내리쳤다.이에 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풀어줬다.그는 손으로 그녀 얼굴에 맻혀있는 물방울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내가 당신을 아내로 맞이한건 어느 가문의 귀한 딸이라서가 아니야, 그런건 상관 없어."유현진은 그한테 턱을 잡혀있었기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분노를 삼키며 손을 풀라고 지시했다.강한서는 그제서야 손을 거두었다.유현진은 현관에 걸려있는 먼지털이를 손에 들고 마구 패기 시작했다."내가 그런것까지 알아야돼? 당신이 아까 말한건 뭔데? 누가 당신보고 키스하라고 허락했어?"그녀는 자비없이 내리쳤다, 강한서는 되받아치지 않고 그저 팔로 다가오는 공격들을 막고 있었다.먼지털이가 그의 팔꿈치에 닿자 강한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이에 유현진은 멈칫 하더니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아픈 척하면 내가 그만할줄 알고?"강한서
(차 하나 옮기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걸리는 거야?)유현진은 핸드폰을 꺼내 차미주한테 전화르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이 되었다."미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거 아니야?"전화저편에서 걸려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한성우의 목소리였다."형수님, 미주는 지금 저랑 같이 있어요."유현진은 이에 눈썹을 찌푸리며"걔가 당신이랑 같이 있다고요?""조 선생님이 같이 나와서 놀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부끄러워서 저를 불렀어요."유현진은 이해를 할수가 없었다.(미주가 언제부터 한성우랑 이렇게 친해졌던거지?)차미주는 잠옷바람으로 집밖을 나갔어서 데이트를 그런 의상으로 갈꺼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미주한테 전화 바꿔주실수 있나요? 몇마디 잠시 하려고요.""그래요."한성우는 알았다고 한뒤로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전화 저편에서 차미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현진아, 나 오늘 좀 늦게 들어갈것 같아."유현진은 놀라면서 물었다."진짜로 조 선생님이랑 데이트하러 갔어?"하지만 돌아오는건 차미주의 애매한 대답이였고 뒤이어 낮은 목소리로"걱정 안 해도 돼, 실컷 놀고 돌아갈테니까.""알았어, 일찍 들어와.""응응."전화를 끊고 차미주는 옷으로 가슴을 가리고 두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이제 됐지? 빨리 여기에서 꺼져!"한성우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익살스럽게 대답했다."옷은 마음대로 골라도 돼, 이 오빠가 몇벌 정도 사줄게. 데이트는 무조건 성공할거야."차미주는 바로 달려가서 이 개자식의 얼굴을 헤집어 놓고 싶었다.(이 양아치같은 개자식!)유현진은 전화를 끊기 무섭게 뭔가가 타고 있는 냄새를 맡았다.그녀가 주방으로 다가가보니 천쪼각들이 이미 강한서의 손에 의해 누렇게 변해있었다.그녀는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가스를 잠그고 그의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서는 유현진이 어디에선가 소형난로를 가져와 셔츠를 그위에 놓고 베란다에서 말리고 있는걸 볼수 있
"괜찮아."유현진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이 안건은 내가 이미 주 변호사한테 맡겼어, 중간에 변호사를 바꾸는건 말도 안돼. 내가 변호사를 바꾸면 주 변호사님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마도 내가 주 변호사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죽어도 말 못해."이에 강한서는"당신이 말할 필요없어, 내가 대신 말할게.""당신이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야?"유현진은 약간은 감정이 섞인 말투로"이미 돈도 다 냈어. 이제와서 다시 돌려달라고는 할수 없잖아.""그게 뭐 어때서?"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걔가 그 돈이 모자랄까봐?""그게 아니라 체면 깎는 일이잖아."유현진은 그를 째려보면서 말을 계속해 이어갔다."그래서 말인데. 내 일에 신경 좀 꺼줄래?"강한서는 이에 인상을 쓰고 한 마디 더 하려고 했으나 유현진이 바로 말을 가로챘다."한 번 더 언급하면 집에서 쫓아내버릴거야."강한서는 할수없이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국내에서 저명한 산부인과 교수한테 당신 몸상태를 얘기했어, 다음달에 한주시에 와서 강연한다고 하니까 당신이 한 번 가서 봐봐."유현진은 주먹을 불끈 쥐였다.몇분이 지나고 강한서는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채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그 뒤로 셔츠 한 벌이 던져졌다.......- - - -"조 선생님."차미주는 손을 턱에 받치고 눈은 반달모양을 한채 취기를 빌려 물었다."선생님은 이상형이 뭐예요?"조준은 잔에 담겨있던 술을 마신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전에 생각해봤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런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다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 아닐까 싶어요.""그거 좋네요."차미주는 바보같이 웃었다."제 이전의 이상형은 권상우였거든요, 하지만 선생님을 만난뒤로는 저도 그런게 다 의미없다고 여겨졌어요."조준은 작은 소리로 웃음을 내었다.그는 눈앞의 아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
한현진이 민경하를 살펴보았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얼마 전 야근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신제품 발표회도 마무리 됐으니 이젠 좀 쉬게 해줘야지. 민 실장님이 쓰러지면 나중에 너만 고생할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내가 부하 직원 생사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대표 같아? 민 실장이 쉬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휴가 줄 거야.”그 말에 민경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모님. 저 건강해요. 휴가 필요 없어요.”만약 평소였다면 휴가를 주겠다는 강한서의 말에 당연히 쉬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상황을 겪고 나니 지금의 민경하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민경하가 강민서와 밤낚시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게 된 강한서는 한현진과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나 갔을까,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밤낚시... 몇 명이 가는 거예요?”민경하가 말했다. “밤낚시 모임이 있어요. 아마 20명 정도 있을 거예요. 다들 스케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을 땐 8명에서 10명 정도 모여요. 적을 땐 4, 5명이 만날 때도 있고요.”“그래요.”단답으로 대답한 강한서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민경하에게 물었다. “밤새 낚시하면 피고하지 않아요?”민경하가 말했다. “텐트가 있어서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면 돼요.”강한서가 또 다시 “그래요”라며 단답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가 또 물었다. “두 사람... 같은 텐트에서 자요?”“...”그 질문에 민경하는 바짝 긴장했다. 어쩐지 그 어떤 대답도 목숨을 걸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4, 5명이면 텐트 2개를 사용해요. 피곤한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쉬고요.”강한서는 더는 말이 없었다. 5분 후. “두 사람 같이 쉰 적 있어요?”“...”‘같이 잤냐고 묻는 일만 남았네.’민경하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누워서 얘기만 좀 나눴어요.”“그래요.”10분 후. “얘기만 조금 나눈게 전부예요?”민
남자는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서해금이 또 말을 이었다. “당신이 뿌리를 제대로 뽑지 못해 이렇게 큰 후환을 남기지만 않았다면 우리 가람이 처지도 지금처럼 어렵진 않았을 거야.”서해금이 말한 후환은 당연히 한현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현진 말이 나오자 남자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그 여자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일은 그 역시도 송씨 가문에서 한현진을 데려오기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당시 그 여자가 품에 안아 보여주던 여자 아이는 애초부터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다른 곳에서 죽은 아이를 안아와 한아람의 딸이라고 그를 속였던 것이다.친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그는 곧 자신의 친딸에게 인생을 빼앗길 아이를 마주했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그는 심지어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기만 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포섭당한 사람 중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한현진이 죽지 않았으니 송씨 가문이나 한씨 가문에서는 기필코 당시 분만실에서 있었던 일을 밝히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서해금은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화근을 남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그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거나 도망간 상태였기에 아무리 쥐 잡듯이 뒤져도 그 해의 진실은 알아내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남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니.”서해금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한현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해서 괜한 의심 사지 마. 걔는 걔 엄마랑 똑같아. 의리가 치명적인 약점이거든. 잠깐만 조용히 지내.”잠시 멈칫하던 서해금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 지시 없이 함부로 회사에 나타나지 마. 회사는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아. 조그만 실수라도 있었다간 우리 가족 전부 끝장이라고.”우리 가족이라는 두 단어에 남자는 그만 멍해졌다. 그의 눈빛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가
시선을 거둔 서해금이 물었다. “아래층은 불 켜졌어요?”누군가 대답했다. “네. 우리 층만 정전인 것 같아요.”머리 위의 CCTV를 확인한 서해금이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 불러서 확인해 보라고 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자리도 돌아가요.”말하며 서해금이 송가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돌아가. 내가 보내 준 자료는 꼭 봐. 검사할 거야.”송가람이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애교 부렸다. “알겠어, 엄마.”모든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해금이 입을 꾹 다물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계단엔 창문이 없었다. 복도에선 은은하게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선세등이 켜지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다. 비상계단 복도로 들어선 서해금은 계단 위에 서서 벽에 기대어 담배를 쥐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비상계단의 문을 닫으며 목소리를 낮춘 채 호통 쳤다. “여긴 회사야. 여기서 이런 짓을 하다니, 미친 거야?”“내가 정전 안 시켜서 CCTV에 찍혔으면 네가 이 상황을 해명할 수는 있고?”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상대방의 말투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당신 마음대로 여기 들어올 땐, 내 의견을 묻긴 했어?”남자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저 우리 딸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화가 치민 서해금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음에도 분노를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 “내가 동영상 보내줬잖아. 사진도 보내줬잖아. 지금 당신이 어떤 신분인지, 당신이 몰라서 이래?”“사진이나 동영상은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잖아. 목소리를 듣고 싶고,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게 너무 한 거야?”“이게 너무한게 아니면 뭐야?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신분인지 몰라?”스산하게 비추는 불빛에 남자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해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움찔 떠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해금. 네가 원하던 걸 전부 이루니까 이제 난 필요 없다 이거야?
송가람의 목소리가 비통함에 잠기기 시작했다. “엄마, 설마 아빠 아직도 나한테 화 난 거야?”송가람이 이윤하에게 맞아 입원했을 당시 송병천은 매일 같이 병원에 왔었다. 하지만 송가람을 마주한 송병천은 어린 시절 한없이 다정다감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색함과 냉담함만이 더해졌다. 신미정에게 속은 건 결국 송가람이 아직도 강한서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송병천이 그런 송가람의 마음을 눈치 채고 이미 한 번의 주의를 주었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니 송병천은 그녀에게 철저히 실망했을 것이다. 강한서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송가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잘못은 한현진이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20여년이 지난 일인데, 왜 그대로 흘려버리지 않은 걸까? 왜 굳이 돌아와 그녀의 아빠와 오빠를 빼앗으려 하는 걸까?한현진이 없던 송가람의 네 식구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이라는 존재가 나타남으로 인해 부모님은 전처럼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오빠의 마음은 완전히 친동생에게 기울었다. 아빠는 더 이상 전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엄마는 그저 지분과 재산 생각으로 가득 차 전보다 더 계산적으로 굴었다. 그 혈연관계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한현진이 등장한 후 그녀의 가족을 갈라놓았다. 송가람은 반항이라도 하듯 강한서를 좋아하면서도 송병천과 송민준이 전처럼 예뻐해 주길 발랐다. 서해금이 시선을 올려 송가람을 바라보았다. “네가 한현진에게서 강한서를 빼앗으려고 결정했을 때부터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네 아빠가 마음을 대해 널 20여년 간 키워주고 진심으로 예뻐한 건 사실이지만 한현진은 친딸이야. 게다가 간절히 바랐었지만 결국 잃어버렸던 아이야. 그런 애가 유씨 가문에서 그런 치욕을 당하며 살아왔어. 네 아빠가 조금만 조사하면 한현진이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금방 알 수 있어. 그럼 네 아빠가 모든 걸 걸고 한현진에게 보상해주려고 하지 않겠어?”“피로연에서 그저 조금 떠봤을 뿐인데 네 아
서해금 사무실. “내가 널 어쩌면 좋겠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널 지켜보고 있는데 고작 은서하가 한현진 옷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너스를 삭감해?”밖에선 꾹 참고 있던 서해금은 사무실에 도착하자 더는 화를 감추지 못했다. 송가람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엄마. 은서하는 재무팀 직원이야. 감히 내 앞에서 한현진의 선물을 받았어. 그건 엄마에게 창피를 주는 것과 다를 거 없잖아.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직원들도 은서하와 똑같이 했을 거야. 난 그저 엄마 대신 주의를 준 것뿐이야.”“주의?”서해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작 옷 한 벌로 주의? 너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애야? 은서하가 한현진 옷 선물을 받았을 때, 왜 그 이유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어? 은서하는 가족 병원비 때문에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어. 만약 이런 타이밍에 네가 은서하를 도와줬다면 걔가 그 은혜를 평생 기억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네가 얼마나 아량이 넓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거야.”“하지만 네가 한 짓을 봐! 보너스를 삭감으로 은서하 상황만 더 안 좋게 했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네 곁에 있던 멍청이에게 비난을 받아야 했어. 그런 식으로 은서하를 조롱하면 네가 뭐라도 돼 보일 것 같아? 멍청한 것! 네가 그럴수록 사람들은 네가 속이 좁다고 생각할 뿐이야. 고작 그런 일로 복수나 하는 아량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 누가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을 것 같아?”멍해졌던 송가람은 잠시 당황했지만 여전히 고집스레 말했다. “그땐... 그땐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어. 그렇게 멍청하게 한 번도 인사팀에 묻지 않을 줄은 몰랐지. 그리고 내가 걔 집안 사정을 어떻게 알아...”변명을 늘어놓던 송가람은 조금 전 한현진이 대신 나서줬음에도 끝내 한현진 편에 서지 않던 은서하를 떠올리고는 곧바로 자신 있게 말했다. “엄마, 조금 전 한현진이 도와주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 봤잖아. 엄마는 어떻게 은서하가 배은망덕한 머리 검은 짐승이 아닐 거라 확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부업으로 회사 청소를 하시면서 실수가 있으셨고 그걸 바로 저에게 보고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덜미를 잡혔어요. 만약 오늘 세은이가 오일 제조에 실패했다면 기사님이 얼마나 큰 책임을 떠안아야 했는지 알고는 계세요?”“마지막 이유는, 제 사무실 앞에 꿇어앉아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어야 하셨어요. 무릎을 꿇는 이유가 사과든 반성이든,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어서든 그건 제가 싫어하는 방식이거든요.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자존심도 전부 내려놓는 행위이니까요. 부모님과 은인 앞이 아닌 이상,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고용관계잖아요. 게다가 기사님은 저보다 한참 연장자이시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기사님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바라는 행동을 전 용서를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주혁은 차마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도 조금씩 하얗게 질려갔다. 한현진의 논리정연한 말에 주혁은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창백해진 얼굴로 겨우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입술을 짓이기며 말이 없던 한현진은 잠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선택해요. 월급은 제가 최대한 인사팀과 협의해 볼게요.”한참을 잠자코 있던 주혁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제가 다시 대표님 운전기사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한현진은 이번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현진은 진심으로 주혁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물론 그가 부업을 하려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틈만 나면 사고를 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등에 칼을 꽂을지도 몰랐다. 한현진에게는 다른 사람을 동정할 여유가 없었다. 면접을 봤던 그날 주혁이 구해준 은혜는 다른 방식으로 보답할 생각이었다. 무릎을 꿇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한현진은 그런 이유로 더 참아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