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자 강한서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눈이 마주치는 순간, 유현진은 강한서의 눈빛에서 가소로움을 느꼈다.'이혼 전에는 왜 표정 연기가 저렇게 잘 되는 줄 몰랐지?'엘리베이터가 울리고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문 앞에 앉아있는 강한서와 문고리를 잡고있는 유현진을 곁눈질했다.유현진은 하는 수 없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들어와!"강한서는 몸을 일으켰지만 너무 오래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다리가 저려서 비틀거렸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문을 잡고 바로 선 강한서를 보며 후회했다.강한서도 후회했다.'문 잡지 말걸.'유현진은 뒤돌아 집으로 들어갔다.강한서는 문을 닫고 총총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유현진이 머리를 돌려 보니 강한서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슬리퍼로 갈아신어!"강한서는 현관으로 돌아가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찾아보았지만 남성용 슬리퍼는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 강한서는 이내 신발을 벗고 양말 차림으로 들어왔다.차미주의 월셋집은 원룸으로 싱글 침대만 있었다. 유현진은 소파에서 잠을 잤다.다행히 차미주의 소파는 접이형이라 낮에는 소파로 사용하고 밤에는 침대로 사용할 수 있다. 유현진은 침구를 모두 소파 끝에 쌓아 놓았다.거실과 주방은 연결되어 있었으며 총 10평 정도로 강한서 집의 화장실보다 더 작았다.'손님방에도 욕조가 없다고 투덜대던 사람이 여기서는 어떻게 지낸대?'유현진은 작은 걸상을 밟고 올라서 사물함에서 약상자를 꺼내려고 했다.팔을 위로 뻗는 순간 티셔츠도 같이 올라가 하얀 허리가 드러났다.강한서는 멈칫했다.유현진이 아무리 팔을 뻗어도 전혀 닿을 수 없었다.'차미주는 유현진보다도 키가 작은데 어떻게 올려놓았지?'그녀는 까치발을 들어서야 겨우 약상자의 모서리에 손이 닿았다. 이때 갑자기 걸상 다리가 삐걱거리더니 그녀는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위급한 순간에 강한서는 재빨리 뛰어와 그녀의 허리를 받
유현진은 약상자안에서 소독밴드와 면봉을 찾았다. 하지만 의료용붕대는 찾지 못했다.차미주의 덜렁대는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약상자도 할인세일할때 샀었던 거였다.안에 들어있는 약들은 모두 평소에 감기가 걸렸을때 먹고 남은것들이였다, 모두 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였다.일회용 밴드랑 소독용 알콜을 찾을수 있는건 강한서의 운이 좋다고 할수 있겠다.그녀는 면봉을 소독용 알콜에 적신후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유현진은 팩을 아직 떼어내지 않았었기에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늘어뜨린 눈동자에서 강한서는 마음이 또 한 번 약해졌다.차미주의 약상자에 들어있는 면봉은 그런 커다란 의료용 면봉이 아니라 평소 화장할때 쓰는 끝에 면이 적은 면봉이라 상처에 바를때 살짝 아팠다.통증에 한 번만 닦았는데도 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유현진은 그를 한 번 쳐다봤을뿐 굳이 말을 하진 않았다.강한서는 입술을 만지며 물었다."그런 부드러운 면봉은 없어?"유현진은 눈이 떨리더니"도련님, 여긴 당신 집이 아니거든. 왜 이렇게 투덜대? 내가 문을 열어준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지? 계속 불평할거면 집으로 돌아가!"강한서는 할수없이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유현진은 소독을 끝낸후 일회용 밴드를 들고 강한서의 손등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가로로 그의 손등에서 돌출된 뼈부분에 두장 붙히니 완벽하게 모든 상처를 덮을수 있었다.강한서의 이마에 삼지창처럼 주름이 생겼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테이프부분도 상처에 붙었어.""아하."유현진은 약상자를 닫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내가 다친것도 아닌데 뭐, 조금만 참어."강한서는 하마트면 사레가 들릴뻔 했다.그녀는 이 모든게 귀찮고 짜증이 났다.강한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약상자를 직접 탁자에 올려다놓았다.그가 몸을 돌려 뒤를 돌아봤지만 유현진은 이미 마사지팩을 떼러 화장실로 가고 없었다.강한서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차 세트에 놓인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어린 왕자' 였다.
강한서는 밀당의 고수도 아니였고 상냥함과도 거리가 멀었었지만 거칠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키스는 유현진으로 하여금 뭐가 진짜 거친 키슨지 톡톡히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다.그는 깨물듯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날렸고, 고삐 풀린 말처럼 그녀의 입술을 범했다.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유현진은 저항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행동에 깜짝 놀랐고 밀려오는 수치와 분노에 홧김에 콱 물어버리려고 했다.강한서는 그녀한테 몇번이나 골탕을 먹은적이 있었기에 이것도한 예상을 했던지라 그녀가 이빨을 드러내자마자 강한서는 그녀의 턱을 잡았다.유현진의 한 손은 잡혀있었고 다른 한 손엔 물이 들려있었기에 그녀는 생각도 않고 컵에 담겨있던 물을 강한서의 얼굴에 뿌렸다.강한서는 그냥 멈칫 할뿐 미동도 않았다.그의 눈썹에 달려있던 물방울은 코대를 타고 코끝에 맺혔다.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코끝에 달려있던 물방울은 유현진의 입술에 떨어졌다.모든 행동이 느려지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유현진은 얼굴을 붉힌채 컵을 꽉 쥐고는 강한서의 머리를 쳐다보며 몇초동안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의 어깨에 내리쳤다.이에 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풀어줬다.그는 손으로 그녀 얼굴에 맻혀있는 물방울을 닦아주면서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내가 당신을 아내로 맞이한건 어느 가문의 귀한 딸이라서가 아니야, 그런건 상관 없어."유현진은 그한테 턱을 잡혀있었기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분노를 삼키며 손을 풀라고 지시했다.강한서는 그제서야 손을 거두었다.유현진은 현관에 걸려있는 먼지털이를 손에 들고 마구 패기 시작했다."내가 그런것까지 알아야돼? 당신이 아까 말한건 뭔데? 누가 당신보고 키스하라고 허락했어?"그녀는 자비없이 내리쳤다, 강한서는 되받아치지 않고 그저 팔로 다가오는 공격들을 막고 있었다.먼지털이가 그의 팔꿈치에 닿자 강한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이에 유현진은 멈칫 하더니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아픈 척하면 내가 그만할줄 알고?"강한서
(차 하나 옮기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걸리는 거야?)유현진은 핸드폰을 꺼내 차미주한테 전화르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이 되었다."미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거 아니야?"전화저편에서 걸려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한성우의 목소리였다."형수님, 미주는 지금 저랑 같이 있어요."유현진은 이에 눈썹을 찌푸리며"걔가 당신이랑 같이 있다고요?""조 선생님이 같이 나와서 놀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부끄러워서 저를 불렀어요."유현진은 이해를 할수가 없었다.(미주가 언제부터 한성우랑 이렇게 친해졌던거지?)차미주는 잠옷바람으로 집밖을 나갔어서 데이트를 그런 의상으로 갈꺼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미주한테 전화 바꿔주실수 있나요? 몇마디 잠시 하려고요.""그래요."한성우는 알았다고 한뒤로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전화 저편에서 차미주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현진아, 나 오늘 좀 늦게 들어갈것 같아."유현진은 놀라면서 물었다."진짜로 조 선생님이랑 데이트하러 갔어?"하지만 돌아오는건 차미주의 애매한 대답이였고 뒤이어 낮은 목소리로"걱정 안 해도 돼, 실컷 놀고 돌아갈테니까.""알았어, 일찍 들어와.""응응."전화를 끊고 차미주는 옷으로 가슴을 가리고 두 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이제 됐지? 빨리 여기에서 꺼져!"한성우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익살스럽게 대답했다."옷은 마음대로 골라도 돼, 이 오빠가 몇벌 정도 사줄게. 데이트는 무조건 성공할거야."차미주는 바로 달려가서 이 개자식의 얼굴을 헤집어 놓고 싶었다.(이 양아치같은 개자식!)유현진은 전화를 끊기 무섭게 뭔가가 타고 있는 냄새를 맡았다.그녀가 주방으로 다가가보니 천쪼각들이 이미 강한서의 손에 의해 누렇게 변해있었다.그녀는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가스를 잠그고 그의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서는 유현진이 어디에선가 소형난로를 가져와 셔츠를 그위에 놓고 베란다에서 말리고 있는걸 볼수 있
"괜찮아."유현진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이 안건은 내가 이미 주 변호사한테 맡겼어, 중간에 변호사를 바꾸는건 말도 안돼. 내가 변호사를 바꾸면 주 변호사님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마도 내가 주 변호사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죽어도 말 못해."이에 강한서는"당신이 말할 필요없어, 내가 대신 말할게.""당신이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야?"유현진은 약간은 감정이 섞인 말투로"이미 돈도 다 냈어. 이제와서 다시 돌려달라고는 할수 없잖아.""그게 뭐 어때서?"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걔가 그 돈이 모자랄까봐?""그게 아니라 체면 깎는 일이잖아."유현진은 그를 째려보면서 말을 계속해 이어갔다."그래서 말인데. 내 일에 신경 좀 꺼줄래?"강한서는 이에 인상을 쓰고 한 마디 더 하려고 했으나 유현진이 바로 말을 가로챘다."한 번 더 언급하면 집에서 쫓아내버릴거야."강한서는 할수없이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국내에서 저명한 산부인과 교수한테 당신 몸상태를 얘기했어, 다음달에 한주시에 와서 강연한다고 하니까 당신이 한 번 가서 봐봐."유현진은 주먹을 불끈 쥐였다.몇분이 지나고 강한서는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채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그 뒤로 셔츠 한 벌이 던져졌다.......- - - -"조 선생님."차미주는 손을 턱에 받치고 눈은 반달모양을 한채 취기를 빌려 물었다."선생님은 이상형이 뭐예요?"조준은 잔에 담겨있던 술을 마신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전에 생각해봤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런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다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 아닐까 싶어요.""그거 좋네요."차미주는 바보같이 웃었다."제 이전의 이상형은 권상우였거든요, 하지만 선생님을 만난뒤로는 저도 그런게 다 의미없다고 여겨졌어요."조준은 작은 소리로 웃음을 내었다.그는 눈앞의 아
차미주는 몇번이나 몸부림을 치다가 조용해졌다, 그녀는 한성우의 품에 안겨있었다.조준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진짜 친척이 맞아?""당연하지."한성우는 거짓말을 눈도 깜짝 안 하고 했다."먼 친척이야."조준은 이에 미소를 짓더니"남자친구 사귄적이 없대, 깨끗하네."한성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똑같은 남자로써 그는 숨은 말뜻을 알수가 있었다.남자친구를 사귄적이 없다 = 처녀조준같이 여자를 많이 만나본 사람일수록 여자쪽이 처녀인지 아닌지에 큰 신경을 썼다.한성우는 전에는 별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취미가 어떻든 그와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하지만 방금 들었던 말에서 뭔가 형용할수 없는 불쾌함이 밀려왔다.비록 차미주가 처음을 그한테 주긴 했지만 그건 사고였었기에 그녀가 깨끗하지 않은건 아니였다.한성우는 그를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우리 사촌동생은 순수해서 만약 너가 이상한 짓이라도 한다면 내가 가만 안둬."이에 조준은 가볍게 웃으며"이런 꼬맹이한테는 흥미가 없어."한성우는 더 이상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차미주를 안고 룸을 벗어났다.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차미주는 새벽 한시에 한성우가 바래다 주었었고 지금까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유현진은 굳이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내일은 할머니 생신 날이라 그녀는 선물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생신잔치 날이 다가왔다.생신잔치은 저녁에 진행하고 불꽃놀이가 있어서 저녁에 관람하는게 적합했다.이 생신잔치는 유현진이 책임을 맡았으나 할머니생신이 오기도 전에 강한서랑 이혼을 하고 말았다.신미정은 첫째 며느리라는 명분을 통해 책임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며 모든 일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송민희도 당연하게 지지 않으려고 발 벗고 나섰다.신미정은 장소를 마련했고 송민희는 프로그램을 설계했다.할머니께서 누가 맡아야된다고 말을 꺼내지 않은 이상 너도나도 고물 좀 얻으려
신미정의 안색은 아니나다를까 훨씬 나아졌다.그녀 마음속의 며느리는 바로 송가람같은 명문 아가씨였다, 그녀는 원래부터 유현진의 출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오늘날 유현진이 하현주가 바람을 피워 낳은 사생녀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마음속은 더욱더 혐오로 가득찼다.다행히도 한서랑 이혼을 했고 이후에 송가람과의 혼사가 성공되었을경우 송씨 가문을 뒷백으로 쓸수도 있고 한서도 자신의 깊은 뜻을 알아줄날이 올거라 생각했다."불꽃놀이 준비도 다 했겠지?"전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특제 폭죽을 준비했어, 큰 사모님 자화상이랑 축사. 이정도면 충분하죠, 큰 사모님께서 아주 좋아하실꺼예요.""그래도 너가 일을 잘해."전여사는 고개를 숙이고 순종하는듯한 말투로 답했다."미정 언니가 예전에 날 많이 도와줬었잖아. 이건 보답하는거야. 근데 그 일에 대해선......"신미정은 멈칫 하더니 답을 냈다."한서가 최근에 이혼한지 얼마 안돼서 그 건에 대해선 말을 꺼내기가 좀 그래.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이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내가 해결해줄게."실제론 강한서가 그녀의 매달마다의 월급을 끊은것도 모자라 전에 진행했던 신씨 가문쪽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겨 수입이 눈에 띄게 준 상태였다.하지만 신미정은 이 모든게 잠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강한서가 유현진이랑 결혼한지 3년이고 개를 키워도 3년이면 정이 드는데 화가 나는건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만 지나면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했다.그녀는 신분이 낮은 여자 한명에 대한 감정이 그들의 혈육의 정을 뛰어넘을수 없으리라 생각했다.전여사는 신미정을 말을 듣고서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민서야, 최근에 좀 살이 빠진것 같네."강민서는 공주머리를 하고서 레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전에 유현진한테 맞았던 상처가 요양을 통해 조금 정도는 진정이 된것같았다.오늘날 상처가 낫고 살도 많이 빠진탓에 얼굴에 살집도 많이 빠졌다. 오관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기에 신미정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송가람은 청순계라 그녀한테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가 군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런 행동 없이도 뼛속까지 새겨져있는 고귀함이 드러났다.강민서는 신미정이 당부한 말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 말을 걸었다."가람 언니."송가람은 고개를 돌리고 강민서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민서야, 오랜만이야.""가람 언니, 몸은 좀 어때요?"강민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전에 있었던 일은 제가 죄송해요."송가람이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마도 강한서한테 꾸지람을 들었을꺼라고 생각했다.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답했다."한서 오빠가 이미 저한테 사과했어, 민서 너도 일부러 한건 아니니까."강민서는 놀랐다.그녀는 오빠가 자신의 편을 들어줬을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송가람에 대한 호감이 갑자기 샘솟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그 유현진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형수가 될 사람이였기에 열정을 내서 대화를 나눴다."가람 언니, 오늘 입고 온 드레스 너무 예뻐요. 어디서 사셨어요?""이거 말하니?"송가람은 입꼬리를 올렸다."이건 내가 직접 디자인한거야."이에 강민서는 놀람을 금치 못하며"손재주가 정말 좋으세요, 언니랑 정말 찰떡궁합이네요. 어느 유명한 곳에서 주문제작한건줄 알았어요."강민서가 입을 열자 뒤에 서있던 그녀의 친구들도 따라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송씨 가문의 아가씨, 비록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체면는 차려줘야 했다.송가람은 이런 상황은 이미 수도없이 겪어봤었다, 처세술에 능통한 그녀는 아주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모두들 대화속에서 그녀의 고풍스러운 교양과 명문가문의 긍지를 느낄수 있었다.이와 같은 시각, 강한서는 이미 아파트1층에서 유현진을 한시간이나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했다.이에 한성우가 막아서며"인내심이 이렇게나 없는데 어떻게 너 와이프 마음을 돌리려고 그래?""저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
구내식당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한현진은 넘버 S 오일이 뭔지 몰랐지만 깔린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넘버 S 오일은 혼합 오일이었다. [인 드림] 같은 고급 향수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였다. 넘버 S 오일의 재고는 100mL 밖에 없었다. 서해금이 우연히 제조해 낸 오일이라 각 오일의 성분과 비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넘버 S 오일은 한정판이 되어버렸다. 이 오일은 줄곧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 고급 향수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었다. 넘버 S 오일은 깔린느 전체에 단 한 병뿐이었다. 그것이 깨진다면 넘버 S 오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월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해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따라가려는 한현진을 은서하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제 일은 됐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한현진이 은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지 않을 거예요. 서하 씨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서하 씨를 만만하다고 여기고 더 심하게 굴 거예요. 서하 씨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서하 씨를 괴롭히려고 할 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거예요.”은서하가 멍해졌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주세은은 덜렁대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귀중한 원료는 보통 일반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세은이 그 오일을 깨뜨렸을 리가 없었다. 한현진이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일 보관실에 모여있었다. 주세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를 에워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범인을 심문하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은은 하얗게 질린 얼굴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