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주는 몇번이나 몸부림을 치다가 조용해졌다, 그녀는 한성우의 품에 안겨있었다.조준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진짜 친척이 맞아?""당연하지."한성우는 거짓말을 눈도 깜짝 안 하고 했다."먼 친척이야."조준은 이에 미소를 짓더니"남자친구 사귄적이 없대, 깨끗하네."한성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똑같은 남자로써 그는 숨은 말뜻을 알수가 있었다.남자친구를 사귄적이 없다 = 처녀조준같이 여자를 많이 만나본 사람일수록 여자쪽이 처녀인지 아닌지에 큰 신경을 썼다.한성우는 전에는 별로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취미가 어떻든 그와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하지만 방금 들었던 말에서 뭔가 형용할수 없는 불쾌함이 밀려왔다.비록 차미주가 처음을 그한테 주긴 했지만 그건 사고였었기에 그녀가 깨끗하지 않은건 아니였다.한성우는 그를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우리 사촌동생은 순수해서 만약 너가 이상한 짓이라도 한다면 내가 가만 안둬."이에 조준은 가볍게 웃으며"이런 꼬맹이한테는 흥미가 없어."한성우는 더 이상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차미주를 안고 룸을 벗어났다.이튿날 아침, 유현진은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차미주는 새벽 한시에 한성우가 바래다 주었었고 지금까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유현진은 굳이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내일은 할머니 생신 날이라 그녀는 선물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생신잔치 날이 다가왔다.생신잔치은 저녁에 진행하고 불꽃놀이가 있어서 저녁에 관람하는게 적합했다.이 생신잔치는 유현진이 책임을 맡았으나 할머니생신이 오기도 전에 강한서랑 이혼을 하고 말았다.신미정은 첫째 며느리라는 명분을 통해 책임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며 모든 일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송민희도 당연하게 지지 않으려고 발 벗고 나섰다.신미정은 장소를 마련했고 송민희는 프로그램을 설계했다.할머니께서 누가 맡아야된다고 말을 꺼내지 않은 이상 너도나도 고물 좀 얻으려
신미정의 안색은 아니나다를까 훨씬 나아졌다.그녀 마음속의 며느리는 바로 송가람같은 명문 아가씨였다, 그녀는 원래부터 유현진의 출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오늘날 유현진이 하현주가 바람을 피워 낳은 사생녀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마음속은 더욱더 혐오로 가득찼다.다행히도 한서랑 이혼을 했고 이후에 송가람과의 혼사가 성공되었을경우 송씨 가문을 뒷백으로 쓸수도 있고 한서도 자신의 깊은 뜻을 알아줄날이 올거라 생각했다."불꽃놀이 준비도 다 했겠지?"전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특제 폭죽을 준비했어, 큰 사모님 자화상이랑 축사. 이정도면 충분하죠, 큰 사모님께서 아주 좋아하실꺼예요.""그래도 너가 일을 잘해."전여사는 고개를 숙이고 순종하는듯한 말투로 답했다."미정 언니가 예전에 날 많이 도와줬었잖아. 이건 보답하는거야. 근데 그 일에 대해선......"신미정은 멈칫 하더니 답을 냈다."한서가 최근에 이혼한지 얼마 안돼서 그 건에 대해선 말을 꺼내기가 좀 그래.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이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내가 해결해줄게."실제론 강한서가 그녀의 매달마다의 월급을 끊은것도 모자라 전에 진행했던 신씨 가문쪽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겨 수입이 눈에 띄게 준 상태였다.하지만 신미정은 이 모든게 잠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강한서가 유현진이랑 결혼한지 3년이고 개를 키워도 3년이면 정이 드는데 화가 나는건 일시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만 지나면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했다.그녀는 신분이 낮은 여자 한명에 대한 감정이 그들의 혈육의 정을 뛰어넘을수 없으리라 생각했다.전여사는 신미정을 말을 듣고서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민서야, 최근에 좀 살이 빠진것 같네."강민서는 공주머리를 하고서 레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전에 유현진한테 맞았던 상처가 요양을 통해 조금 정도는 진정이 된것같았다.오늘날 상처가 낫고 살도 많이 빠진탓에 얼굴에 살집도 많이 빠졌다. 오관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기에 신미정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송가람은 청순계라 그녀한테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가 군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런 행동 없이도 뼛속까지 새겨져있는 고귀함이 드러났다.강민서는 신미정이 당부한 말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 말을 걸었다."가람 언니."송가람은 고개를 돌리고 강민서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민서야, 오랜만이야.""가람 언니, 몸은 좀 어때요?"강민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전에 있었던 일은 제가 죄송해요."송가람이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마도 강한서한테 꾸지람을 들었을꺼라고 생각했다.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답했다."한서 오빠가 이미 저한테 사과했어, 민서 너도 일부러 한건 아니니까."강민서는 놀랐다.그녀는 오빠가 자신의 편을 들어줬을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송가람에 대한 호감이 갑자기 샘솟기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도 그 유현진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형수가 될 사람이였기에 열정을 내서 대화를 나눴다."가람 언니, 오늘 입고 온 드레스 너무 예뻐요. 어디서 사셨어요?""이거 말하니?"송가람은 입꼬리를 올렸다."이건 내가 직접 디자인한거야."이에 강민서는 놀람을 금치 못하며"손재주가 정말 좋으세요, 언니랑 정말 찰떡궁합이네요. 어느 유명한 곳에서 주문제작한건줄 알았어요."강민서가 입을 열자 뒤에 서있던 그녀의 친구들도 따라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송씨 가문의 아가씨, 비록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체면는 차려줘야 했다.송가람은 이런 상황은 이미 수도없이 겪어봤었다, 처세술에 능통한 그녀는 아주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모두들 대화속에서 그녀의 고풍스러운 교양과 명문가문의 긍지를 느낄수 있었다.이와 같은 시각, 강한서는 이미 아파트1층에서 유현진을 한시간이나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했다.이에 한성우가 막아서며"인내심이 이렇게나 없는데 어떻게 너 와이프 마음을 돌리려고 그래?""저
강한서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한성우에게로 향했다."조수석에 가."한성우는 이에 혀를 차면서 한심한 눈길로 그를 한 번 쳐다봤다."너는 내가 편하자고 뒤에 앉은줄 알어? 내가 뒷좌석에 앉지 않으면 이제 벌어질일들을 알려줄까? 형수님은 아마도 너랑 같이 있는게 싫어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앉을걸?"한편으론 강한서를 잡아끌며 말했다."여기 중간에 앉어."그리고는 손을 뻗어 뒤에 놓여있던 물병이라던가 베개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조수석에 던져버렸다. 뒤이어 민경하한테"민경하, 내려서 문 열어드려."라고 지시했다.이에 민경하는 안전벨트를 푼후 차에서 내렸다.민경하는 강한서의 곁에서 몇년동안이나 같이 일을 했었지만 매번마다 사모님의 미모에 깜짝깜짝 놀라곤한다.그녀의 화장은 언제나 그때그때 알맞춤했다.그는 왜서 강 대표님이 사모님을 외부활동에 잘 데려가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것 같았다.한 벌의 예쁜 옷은 입지 못해서 안달이 나겠지만 희대의 보석들은 감추고 자신만 누리려고 하는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유현진이 가까이 다가오자 민경하는 미소를 지으며"사모님, 안녕하세요."유현진은 예의있게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리고 민경하는 대신 차문을 열어주었다."사모님, 안으로 드세요."유현진은 치미자락을 손으로 잡은후에 뒷좌석에 앉아있는 강한서와 한성우를 보고는 그만 굳어버렸다.한성우는 고개를 빼들고 강한서를 피해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형수님, 안녕하세요."유현진은 입꼬리를 내리더니 고개를 돌려 민경하한테 말했다."저는 앞에 앉을게요, 뒷좌석은 자리가 없어서."강한서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한성우가 한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을줄 생각도 못했었다.민경하는 이에 죄송한 얼굴로"사모님, 조수석은 물건들로 꽉 찼습니다, 그중엔 큰 사모님께 드리는 선물도 있어서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햇빛가리개도 없어서 피부에 안 좋습니다."한성우는 유현진의 시선이 닿지 않는곳에서 민경하를 향해 엄지를 날렸다.유현진이 확인해보니 진짜로 조수석엔
유현진이 차문을 열려고 하자 강한서가 유현진의 손목을 잡았다."잠깐만!"유현진은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봤다.그러자 강한서는 정교한 벨벳 박스 하나를 내놓았다.유현진이 벨벳 박스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강한서가 박스를 열었다.박스 안에는 눈이 부실만큼 빛이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었다. 목걸이는 낱개로 1캐럿이 넘어보이는 다이아몬드들을 꿰어서 만들었고, 펜던트의 메인은 레드 다이아몬드였는데, 그 주변에는 엄청 많은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박혀있었다.유현진은 목걸이의 화려함과 촌스러움에 놀랐다."할머니께서 연세가 있으신데, 이 목걸이를 어떻게 착용해?"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답했다. "할머니께 드리는 거 아냐. 당신 잊었어? 나더러 어떤 선물을 해달라고 했는지?"유현진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내가 언제 선물을 달라고 했어? 게다가 내가 이렇게 촌스러운 목걸이를 달라고 했을 리 없잖아."강한서는 표정이 굳었다. "당신 머리는 뭘로 만든 거야? 기억력이 왜 그 따위야?"강한서는 유현진이 목걸이를 보는 순간 엄청 감동하는 장면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기대와는 멀었다.게다가 촌스럽다고 한다!강한서는 유현진의 대뇌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안에는 과연 뭐가 들어차 있는지?유현진이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지금 막 반격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흐릿한 기억이 떠올랐다.[나도 별로 요구가 높지 않아. 1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108개에 백금으로 된 목걸이를 주면 돼. 굵으면 굵을 수록 좋아.]유현진......눈앞의 목걸이는 다이아몬드 108개가 맞는 것 같았다.강한서는 자신이 함부로 던진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목걸이를 만들었던 것이다.유현진은 이상야릇한 감정이 들었다.그는 순간 강한서가 바보 같았다. 누가 그렇게 많은 다이아몬드로 목걸이를 만드냐고?유현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굳이 내 말대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이 촌스러움은 뭐냐
강한서와 유현진이 이혼한 데 대해서 사모님들 사이에서도 의논이 분분했다.다들 유현진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유현진이 어머니를 여의자마자 이혼을 한 데 대해서는 강씨 집안에서 너무했다고 생각했다.신미정은 줄곧 "착한 시어머니"이미지를 애써 부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들의 이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을 뿐더러 둘째네 가족과 생신 잔치 주최권을 둘러싸고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미정이 기존에 세웠던 이미지와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자 다들 이에 대해 수군거렸다."두 사람이 살림을 차리기까지 쉬운 일이 아니죠. 그것도 다 인연이 닿으니 가능한 일이고요. 항상 한서에게 이렇게 타일렀는데, 그건 부모들의 생각이더라고요.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일단 마음을 먹으면 그 누구도 그 결정을 바꾸지 못해요. 한서야 제가 설득을 해볼 수 있지만 현진이가 고집을 피운다면 누구도 말리지 못해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아마 현진이와 제가 고부 인연이 깊지 않은가 봐요."이 말은 교묘하게 이혼의 책임을 유현진에게로 돌렸다.그 말인즉, 우리는 이혼하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유현진이 이혼을 제기했고, 나도 설득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그 때 한 사모님이 말했다. "복이 없는 사람은 복이 넘치는 집에 들어갈 자격이 없죠. 제가 보기에는 이혼을 잘한 것 같아요. 유현진 봐요. 예쁘장하게 생겨가지고, 사생아인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이건 강씨 집안에 먹칠하는 거나 다름 없잖아요.""다행히 자신의 주제를 알고 스스로 물러나서 망정이지, 아니면 계속해서 한서에게 들러붙어 있으려고 하면 어떡해요.""맞아요. 이혼한 게 천만다행이에요. 한서 조건으로는 비슷한 집안의 아가씨랑 결혼해야죠.""누가 말하던데, 한세 한식당에서 유현진을 봤는데, 한서를 쫓아다닌다고 하더라고요.""이혼하고 나서 자신이 사생아인 걸 알았으니 후회가 됐겠죠."신미정은 한숨을 쉬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현진이도 이혼하고 혼자라 힘들 거예요. 다들 나중에 만나면 잘 대해줘요."
신미정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어머님이 현진이 너를 초대한 거야 알지. 그저 너희 집에 큰 일이 일어나서 네가 어머님 생신에 못 올 줄 알았지. 내가 너의 심리 조절 능력을 과소평가했구나."유현진은 신미정을 응시했다. 그냥 뻔뻔하다고 말하지, 뭘 그렇게 에둘러서 말하냐고."그러게요. 올 정신이 없었는데, 한서 씨가 매일마다 저에게 전화를 해대서 귀찮아서 왔어요. 부부였던 사이인데 사모님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한서 씨 체면을 고려해야죠."신미정은 바로 시선을 강한서에게 보냈다.강한서는 한마디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현진의 말은 사실이 되어버렸다.신미정은 속이 탔다. 못난 놈!"한서는 이렇게 좋은 날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그런 거지."그 말인즉, 전화를 한 건 할머니를 위함이지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유현진은 입꼬리를 스윽 올리더니 말했다. "그래요. 한서 씨의 효심이 어찌나 극진하던지 제가 행여나 안 올까 봐 저에게 목걸이까지 선물했지 뭐예요."말하면서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펜던트를 만지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백억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유혹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강한서는 유현진을 흘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렴 당신만 기쁘다면 마음껏 지껄여도 돼.신미정은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다.그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모님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유현진의 목걸이가 진짜 다이아몬드인지 귓속말로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격까지 바로 터뜨리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게다가 그 목걸이는 강한서가 선물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혼을 했다면서, 이건 하나마나잖아.그리고 이혼 후의 유현진의 모습은 이혼 전과는 완연히 달랐다.예전에는 신미정의 옆에 위축된 모습으로 서서는 신미정의 말이라면 한마디도 토를 달지 못했었다.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방금 전에 유현진이 했던 말들은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신미정
강한서는 입술을 깨물더니 외투를 유현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당신이 이걸 걸치면 갈게."유현진은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강한서는 봉건 시대에서 건너왔나? 등이 좀 파인 걸 가지고 이토록 집착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여자의 등을 난생처음 보는 것 마냥 왜 이렇게 오버냐고?유현진은 외투를 건네받아 어깨에 걸치고는 짜증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이제 됐어?"강한서는 그제야 시름이 놓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갔다 올게."그러고는 자리를 떴다.물론 가기 전에 신미정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신미정은 화나서 낯빛이 푸르뎅뎅해졌다.강한서는 민경하 앞으로 다가가서 민경하가 들고 있던 외투를 입고는 단추를 채우면서 당부했다. "현진이가 괴롭힘 당하지 않게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요."강한서가 떠나자 신미정의 눈빛은 바로 냉랭해졌다. 그는 유현진을 흘겨보면서 말했다. "한서가 네 주변을 맴돌게 하는 것 보니 수단이 만만치가 않구나."유현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칭찬 고마워요."신미정은 굳은 표정으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현진, 너무 기뻐하지마. 한서가 너랑 이혼하는 순간, 네가 다시 강씨 집안에 발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야. 네가 현재 태생도 불분명한 데다가 아이를 못 낳는 것만으로도 굳이 내가 말리지 않더라도 어머님이 너를 한서랑 다시 재혼시키지는 않을 거야."유현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신미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재혼에 대해 관심이 없거니와,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재혼하기 전에 한서 씨더러 우선 당신을 강씨 집안에서 쫓아내게 해야죠."신미정은 홧김에 웃었다. "나를 위협하는 거야?"유현진은 눈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위협이 아니라 경고예요."신미정이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강씨 집안 사모님이라는 신분밖에 없었다.남편도 없고, 한성에서 직분도 없기에 강씨 집안에서 쫓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강한서의 어머니라는 신분 때문에 최대한 존중했었다.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
한현진이 민경하를 살펴보았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얼마 전 야근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신제품 발표회도 마무리 됐으니 이젠 좀 쉬게 해줘야지. 민 실장님이 쓰러지면 나중에 너만 고생할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내가 부하 직원 생사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대표 같아? 민 실장이 쉬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휴가 줄 거야.”그 말에 민경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모님. 저 건강해요. 휴가 필요 없어요.”만약 평소였다면 휴가를 주겠다는 강한서의 말에 당연히 쉬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상황을 겪고 나니 지금의 민경하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민경하가 강민서와 밤낚시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게 된 강한서는 한현진과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나 갔을까,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밤낚시... 몇 명이 가는 거예요?”민경하가 말했다. “밤낚시 모임이 있어요. 아마 20명 정도 있을 거예요. 다들 스케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을 땐 8명에서 10명 정도 모여요. 적을 땐 4, 5명이 만날 때도 있고요.”“그래요.”단답으로 대답한 강한서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민경하에게 물었다. “밤새 낚시하면 피고하지 않아요?”민경하가 말했다. “텐트가 있어서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면 돼요.”강한서가 또 다시 “그래요”라며 단답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가 또 물었다. “두 사람... 같은 텐트에서 자요?”“...”그 질문에 민경하는 바짝 긴장했다. 어쩐지 그 어떤 대답도 목숨을 걸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4, 5명이면 텐트 2개를 사용해요. 피곤한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쉬고요.”강한서는 더는 말이 없었다. 5분 후. “두 사람 같이 쉰 적 있어요?”“...”‘같이 잤냐고 묻는 일만 남았네.’민경하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누워서 얘기만 좀 나눴어요.”“그래요.”10분 후. “얘기만 조금 나눈게 전부예요?”민
남자는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서해금이 또 말을 이었다. “당신이 뿌리를 제대로 뽑지 못해 이렇게 큰 후환을 남기지만 않았다면 우리 가람이 처지도 지금처럼 어렵진 않았을 거야.”서해금이 말한 후환은 당연히 한현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현진 말이 나오자 남자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그 여자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일은 그 역시도 송씨 가문에서 한현진을 데려오기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당시 그 여자가 품에 안아 보여주던 여자 아이는 애초부터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다른 곳에서 죽은 아이를 안아와 한아람의 딸이라고 그를 속였던 것이다.친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그는 곧 자신의 친딸에게 인생을 빼앗길 아이를 마주했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그는 심지어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기만 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포섭당한 사람 중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한현진이 죽지 않았으니 송씨 가문이나 한씨 가문에서는 기필코 당시 분만실에서 있었던 일을 밝히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서해금은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화근을 남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그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거나 도망간 상태였기에 아무리 쥐 잡듯이 뒤져도 그 해의 진실은 알아내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남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니.”서해금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한현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해서 괜한 의심 사지 마. 걔는 걔 엄마랑 똑같아. 의리가 치명적인 약점이거든. 잠깐만 조용히 지내.”잠시 멈칫하던 서해금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 지시 없이 함부로 회사에 나타나지 마. 회사는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아. 조그만 실수라도 있었다간 우리 가족 전부 끝장이라고.”우리 가족이라는 두 단어에 남자는 그만 멍해졌다. 그의 눈빛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가
시선을 거둔 서해금이 물었다. “아래층은 불 켜졌어요?”누군가 대답했다. “네. 우리 층만 정전인 것 같아요.”머리 위의 CCTV를 확인한 서해금이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 불러서 확인해 보라고 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자리도 돌아가요.”말하며 서해금이 송가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돌아가. 내가 보내 준 자료는 꼭 봐. 검사할 거야.”송가람이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애교 부렸다. “알겠어, 엄마.”모든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해금이 입을 꾹 다물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계단엔 창문이 없었다. 복도에선 은은하게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선세등이 켜지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다. 비상계단 복도로 들어선 서해금은 계단 위에 서서 벽에 기대어 담배를 쥐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비상계단의 문을 닫으며 목소리를 낮춘 채 호통 쳤다. “여긴 회사야. 여기서 이런 짓을 하다니, 미친 거야?”“내가 정전 안 시켜서 CCTV에 찍혔으면 네가 이 상황을 해명할 수는 있고?”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상대방의 말투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당신 마음대로 여기 들어올 땐, 내 의견을 묻긴 했어?”남자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저 우리 딸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화가 치민 서해금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음에도 분노를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 “내가 동영상 보내줬잖아. 사진도 보내줬잖아. 지금 당신이 어떤 신분인지, 당신이 몰라서 이래?”“사진이나 동영상은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잖아. 목소리를 듣고 싶고,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게 너무 한 거야?”“이게 너무한게 아니면 뭐야?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신분인지 몰라?”스산하게 비추는 불빛에 남자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해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움찔 떠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해금. 네가 원하던 걸 전부 이루니까 이제 난 필요 없다 이거야?
송가람의 목소리가 비통함에 잠기기 시작했다. “엄마, 설마 아빠 아직도 나한테 화 난 거야?”송가람이 이윤하에게 맞아 입원했을 당시 송병천은 매일 같이 병원에 왔었다. 하지만 송가람을 마주한 송병천은 어린 시절 한없이 다정다감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색함과 냉담함만이 더해졌다. 신미정에게 속은 건 결국 송가람이 아직도 강한서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송병천이 그런 송가람의 마음을 눈치 채고 이미 한 번의 주의를 주었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니 송병천은 그녀에게 철저히 실망했을 것이다. 강한서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송가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잘못은 한현진이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20여년이 지난 일인데, 왜 그대로 흘려버리지 않은 걸까? 왜 굳이 돌아와 그녀의 아빠와 오빠를 빼앗으려 하는 걸까?한현진이 없던 송가람의 네 식구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이라는 존재가 나타남으로 인해 부모님은 전처럼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오빠의 마음은 완전히 친동생에게 기울었다. 아빠는 더 이상 전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엄마는 그저 지분과 재산 생각으로 가득 차 전보다 더 계산적으로 굴었다. 그 혈연관계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한현진이 등장한 후 그녀의 가족을 갈라놓았다. 송가람은 반항이라도 하듯 강한서를 좋아하면서도 송병천과 송민준이 전처럼 예뻐해 주길 발랐다. 서해금이 시선을 올려 송가람을 바라보았다. “네가 한현진에게서 강한서를 빼앗으려고 결정했을 때부터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네 아빠가 마음을 대해 널 20여년 간 키워주고 진심으로 예뻐한 건 사실이지만 한현진은 친딸이야. 게다가 간절히 바랐었지만 결국 잃어버렸던 아이야. 그런 애가 유씨 가문에서 그런 치욕을 당하며 살아왔어. 네 아빠가 조금만 조사하면 한현진이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금방 알 수 있어. 그럼 네 아빠가 모든 걸 걸고 한현진에게 보상해주려고 하지 않겠어?”“피로연에서 그저 조금 떠봤을 뿐인데 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