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는 입술을 깨물더니 외투를 유현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당신이 이걸 걸치면 갈게."유현진은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강한서는 봉건 시대에서 건너왔나? 등이 좀 파인 걸 가지고 이토록 집착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여자의 등을 난생처음 보는 것 마냥 왜 이렇게 오버냐고?유현진은 외투를 건네받아 어깨에 걸치고는 짜증이 섞인 어투로 말했다. "이제 됐어?"강한서는 그제야 시름이 놓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갔다 올게."그러고는 자리를 떴다.물론 가기 전에 신미정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신미정은 화나서 낯빛이 푸르뎅뎅해졌다.강한서는 민경하 앞으로 다가가서 민경하가 들고 있던 외투를 입고는 단추를 채우면서 당부했다. "현진이가 괴롭힘 당하지 않게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요."강한서가 떠나자 신미정의 눈빛은 바로 냉랭해졌다. 그는 유현진을 흘겨보면서 말했다. "한서가 네 주변을 맴돌게 하는 것 보니 수단이 만만치가 않구나."유현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칭찬 고마워요."신미정은 굳은 표정으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현진, 너무 기뻐하지마. 한서가 너랑 이혼하는 순간, 네가 다시 강씨 집안에 발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야. 네가 현재 태생도 불분명한 데다가 아이를 못 낳는 것만으로도 굳이 내가 말리지 않더라도 어머님이 너를 한서랑 다시 재혼시키지는 않을 거야."유현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신미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재혼에 대해 관심이 없거니와,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재혼하기 전에 한서 씨더러 우선 당신을 강씨 집안에서 쫓아내게 해야죠."신미정은 홧김에 웃었다. "나를 위협하는 거야?"유현진은 눈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위협이 아니라 경고예요."신미정이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강씨 집안 사모님이라는 신분밖에 없었다.남편도 없고, 한성에서 직분도 없기에 강씨 집안에서 쫓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강한서의 어머니라는 신분 때문에 최대한 존중했었다.
"곧 한라국제에서 너랑 같이 살 걸 생각하니 전혀 힘들지 않아."그러면서 "부자 되더라도 나를 잊지마"라는 이모티콘을 한 장 보내왔다.유현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유현진이 지금 한창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모님들이 작은 소리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강 사모님이 송 사모님과 저렇게 친한 사이인줄 몰랐네.""강 사모님이랑 송 사모님 동문이야. 친한 것도 정상이지.""그래? 송 사모님은 들어본 적 없어서.""그건 예전에 송 사모님이 저 사람이 아니여서 그렇지."이 말에 유현진의 귀가 번쩍 열렸다. 뒷담화의 신경이 갑자기 활발해졌다."외도? 애인에서 부인이 된 거야?"한 사람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그건 아니고, 예전의 송 사모님이 난산으로 돌아가서, 송 회장님이 5,6년이 지나서야 다시 재혼을 했다고 들었어.""그럼 송씨네 아들은 저 사모님 친아들이 아니겠네?""의붓아들이지. 송씨네 딸도 송병천의 친딸이 아니야. 저 사모님이 데리고 들어간 딸이지. 친딸은 아니지만 송씨네 집에서 그 딸에 대해서는 엄청 지극정성이라고 들었어. 팔자가 좋은 사람들은 시집을 잘 가니 전 남편이랑 낳은 딸도 함께 호강하잖아.""아무리 팔자가 좋더라도 명이 길어야 말이지. 송씨네 첫 번째 사모님 봐봐. 얼마 누리지도 못하고 갔잖아.""송씨네 첫 번째 사모님은 어떤 사람이야?""한주 사람은 아니고 새현시에서 조향사를 했었고, 엄청난 미인이었대. Caline의 전신인 [향적]의 창립자이기도 하고. 그 브랜드 중 가장 유명한 향수도 그 사모님이 만든 거라고 하더라고. 지금까지도 엄청 인기가 많잖아."Caline은 운해그룹 산하의 향수 기업이었다. Caline은 당사의 향수 시리즈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의 수요에 따라 맞춤형 향수도 만들어서 큰 도시에서는 꽤 인기가 많았다.유현진의 욕실에 놓여있는 오일도 바로 Caline에서 만든 것이었다.세상이 참 좁네. 욕실에서 애용하는 제품이 송씨 기업의 제품이라니.지금 생각해보면 송민준의 차에서 맡았
송가람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민서야, 그만해."여자의 쑥스러움이 언행 간에 묻어났다.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절하면 될 텐데,송가람은 쑥스러움이 섞인 어투로 "그만해."라고 했다. 이건 강한서라는 남편감에 대해 전혀 반감이 없다는 뜻이었다.이에 유현진은 마음이 불편했다.그는 갑자기 며칠 전에 한성우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이 떠올랐다. 강한서 이 자식 술김에 송가람한테 뭐라 헛소리해서 상대방이 오해하게 만든 거 아냐?아니면 예쁜 아가씨가 이혼한 아저씨를 좋아할 리 없잖아.유현진은 테이블 위에 놓은 수박을 쥐더니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신미정은 송가람의 반응을 보더니 뭔가 희망이 보였다.진 여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민서 말이 맞아. 남녀 모두 싱글인데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진 여사 그건 아니지. 둘 다 싱글이라 하지만 남자는 돌아온 싱글인데, 가람 씨에게 소개하는 건 너무 하지."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송민희가 가볍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 옆에는 강현우가 있었다.이를 보자 신미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진 여사는 교제에 엄청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웃으면서 말했다. "민희 언니, 지금 우리 때와 달라요. 애만 없으면 초혼이나 재혼이나 별로 차이 없어요. 재혼이면 경험이 있어서 아내를 더 잘해준다잖아요."그러자 송민희가 웃었다. "진 여사의 생각이 그렇다면 당시 우리 조카랑 혼담을 제안했을 때 왜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진 여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신미정이 최근 들어 일을 처리하는 효율이 낮아, 진 여사는 송민희와 가깝게 지내려고 했었다.그런데 송민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진 여사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진 여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작은 선물에 감동을 먹을 사람이 아니었다.진 여사는 남편을 도와 프로젝트를 끌어들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송민희에게서 교훈을 톡톡히 받았다.송민희는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조카를 진 여사의 딸에게 소개하면서 혼사만 성사된
유현진은 딸기를 먹으면서 흥미진진하게 눈앞의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 등뒤가 갑자기 따뜻해지더니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당신더러 외투를 벗으라고 했어?"유현진은 손에 쥔 딸기를 한입 베어물고 말했다. "오늘 한주시의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다잖아."강한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없다.유현진은 나머지 딸기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은 다음 넘기고는 말했다. "이혼한 신분으로 좀 더 노출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부잣집 딸들과 경쟁해서 젊은 남성들의 주목을 받아?"강한서는 얼굴이 시커매졌다.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재혼할 상대를 찾아?"유현진은 강한서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당신 어머님이 당신을 위해서 이미 새 사람을 물색해놨는데, 나도 빨리 움직여야지. 재혼이 당신보다 늦을 수는 없잖아."강한가 지금 막 따지려고 할 때, 신미정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마침 잘 왔어. 가람이 데리고 주위 한바퀴 돌고 오렴. 친구들에게 소개도 시켜주고."강한서는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저 여기 잘 몰라요. 현우더러 함께 돌아보라고 해요."신미정은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용호에서 행사만 해도 여러 차례 치뤘는데, 잘 모른다는 게 말이나 돼?강현우는 기꺼이 대신하려고 적극 나섰다. "가람 씨 여기요."송가람은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현우 오빠, 다음에요. 곧 생신 잔치도 시작할 텐데 우선 할머니께 생신 축하 드리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요."강현우도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웃었다. "네, 나중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유현진은 볼 것을 다 봤으니 이제는 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서가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한테 보여줄 게 있어.""싫어."유현진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거절했다.강한서도 말이 필요없이 아예 유현진을 끌고 갔다.유현진이 지금 막 벗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신미정의 날카로운 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얼른 강한서의 팔짱을 끼고 신미정을 향해 도발하듯
그는 강아지가 이렇게나 잘 컸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토실토실한 엉덩이로 바닥에 털썩 엎드리는 모습을 보니 평소에도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은 듯하였다.강아지는 사람들에 의해 잘 키워진 듯하였다.유현진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관리인들이 아주 잘 키워주고 있었나 봐. 용호에서 항상 행사를 여니 아마 밥도 잘 주나 보네. 나도 볼래.”강한서는 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너무 많이 먹어서 곧 정수기 생수통 될 것 같아.”유현진은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정수기 생수통이 이렇게 귀여운 거 봤어?”강한서는 살짝 웃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뻥 아니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녀는 그제야 강한서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강아지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강한서와 대판 싸웠었다. 물론 그녀가 일방적으로 강한서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기꾼이라고 욕한 것이었지만 강한서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냈다면서 믿든 말든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었다.유현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그때 당시에 왜 나한테 안 보여줬어?”“당시에.”강한서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갔어.”아직 젖을 떼지 않은 강아지는 키우기 쉽지 않았고 게다가 발견 당시에 강아지는 이미 이런저런 세균에 감염되어 있던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렇기에 강한서는 큰 기대 없이 돈을 지불하고 일단 이곳에 남겨 치료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었다.하지만 강아지의 생명이 이렇게나 완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치료를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강아지는 기적같이 완치되었다.강한서가 다시 강아지를 보러 왔을 때 이곳의 사람들은 강아지를 다시 데려가려는 줄 알고 살짝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강한서도 물론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는 동물 털 알레르기력가 있었다. 알레르기만 아니었다면 복슬복슬한 것을 좋아하는 유현진이 이미 집에 강아지랑 고양이를 데려와 키웠을 것이다
강한서는 한숨을 내쉬었다.“20억도 없으니 그러면 그냥 그대로 살아. 언제 당신한테 20억이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명의 양도해도 되니까.”유현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지금 이거 막무가내 아닌가?’강한서는 유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에게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이런 돈 낭비가 될 게 뻔한 일에 돈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유현진은 살림살이를 아주 잘하는 편이었고 집에 있는 옷들도 전부 할인 행사할 때 한꺼번에 사둔 것이었으며 심지어 옷마다 디자인도 다 달랐다.유현진은 이를 갈며 말했다.“강한서, 내 손에 당신의 400억이 있다는 거 잊지 마. 내 성질 건들면 그 돈 전부 기부해 버릴 거야!”강한서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당신이 즐거우면 됐어. 어차피 400억은 며칠이면 다시 벌어올 수 있거든.”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이게 지금 사람이 할 소리야?’한창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성우가 곧 잔치가 시작하니 얼른 오라고 연락해 왔다.정인월의 팔순 잔치는 아주 상당히 성대하였다.신미정과 송민희의 표정은 각기 달랐고 10년 전의 칠순 잔치보다 더욱 성대하게 열렸다.한주시의 유명 인사 절반이 이미 잔치 현장에 도착하여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그림을 선물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골동품, 그리고 보석을 선물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잔치 현장의 한편엔 이미 선물로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몇십 명의 직원들이 정리를 해주고 있었다.유현진은 강한서와 결혼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런 큰 잔치 행사는 처음 보았다.강씨 가문은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정인월의 인맥도 한몫한 것 같았다.강씨 가문의 모처럼 잔치 행사에 정인월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주 즐거워 보이는 듯했다.강현우는 모든 사람들이 정인월에게 선물과 인사를 다 나눈 것 같아 보이자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할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할머니께서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복 받으시면서 장수하길 바랍니다!”정인
한주시에서 드론 개발하는 것은 강한서의 단순한 개인 흥취였다.그는 기계와 비행 물체 같은 것들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지만 한주시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중시하지 않았다. 강한서가 이런 것들을 만드는 것도 사실은 시중에 나와 있는 드론이 그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연구하기 시작했다.결국은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보아도 진척이 없었다.드론의 기술은 그가 연구하고 있던 칩보다 훨씬 빠른 혁신이었다.한주시에서 론칭한 아이븐 시리즈 드론은 시중에 나오자마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그들이 만든 최신형 스텔스 드론 기술은 심지어 윗사람들의 인정까지 받아 드론 전투기 연구 개발 계약서에 사인까지 하게 되었다.자신이 고생해서 연구한 드론을 다른 사람이 가로채 축하 공연으로 사용했으니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강한서는 덤덤하게 평가하고 있었다.“아주 잘 날고 있네.”한성우는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한성우는 그런 강한서를 정신을 차리게 해주길 바라며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바라보았지만 유현진은 태연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순간 한성우의 눈가가 떨려왔다.‘혹시 지금 나만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멀지 않은 곳에서 송민준이 신미정과 마주 서 있는 유현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옆에 있던 서해금이 연신 감탄하면서 말했다.“이 드론 쇼 정말 아주 창의적이네요. 현우가 아주 잘 만들었네요. 사모님께서는 정말 좋으시겠네요.”정인월이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현우 녀석은 어릴 때부터 아주 똑똑한 아이었네.”송민희가 웃으면서 맞장구쳤다.“현우는 잔머리만 아주 좋거든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요. 그래도 재주 하면 역시 가람이죠. 가림이가 예전에 비엔나에서 열린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따냈다면서요.”옆에서 듣고 있던 송가람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상을 받지 못해서 부끄럽네요.”송민희가 칭찬을 하면서 말했다.“그래도 얘, 콩쿠르까지 나갔다는 건 실력이 아주 대단하다는 거야
현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전 여사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말했다.“제 기억에 유현진 씨도 피아노 잘 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한 곡 연주해 보실래요?”음식을 먹고 있던 유현진은 순간 동작을 멈추었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지난 생에 무조건 전 여사에게 원한을 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여사가 왜 번마다 그를 건드리겠는가.정인월은 깜짝 놀랐다.“현진이도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유현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 여사가 말을 가로챘다.“그렇다니까요. 현진 씨 피아노 엄청 잘 쳐요. 지난번 유람선에서 아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니까요.”유현진은 전 여사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손에 든 음식을 꽉 쥐면서 낮게 말했다.“어머 전 여사님, 너무 과찬이세요. 전 피아노 제대로 칠 줄 몰라요. 지난번에는 그저 흥미로 쳐봤을 뿐 이런 자리에서 칠 정도는 아니랍니다.”“여기서도 흥미로 쳐 보면 되잖아요. 어차피 즐거우면 되니까 가람 씨랑 같이 이중주 해보세요.”유현진은 정말로 그 자리에서 전 여사의 입을 꿔매 버리고 싶었다.그녀의 미미한 피아노 실력으로 송민영을 이기는 것은 가능했지만 송가람을 이기기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송가람은 이중주에 흥미를 보이는 듯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현진 언니만 괜찮으시면 저도 같이 쳐 드릴 수 있어요.”유현진의 난처한 모습을 보아낸 송민준이 입을 열려던 찰나에 강한서가 말했다.“손가락 다쳐서 피아노 칠 수 없습니다.”유현진과 송민준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아니 말을 지어낼 거면 성의 있게 지어 내든가!’‘손가락에 붕대 감은 흔적도 없는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사람들은 일제히 유현진의 손가락에 시선을 돌렸다.유현진은 왼손에 힘을 주며 웃으면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손가락 건초염이에요.”전 여사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유현진 씨 손가락 건초염은 하필이면 이럴 때 걸리셨네요.”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말이었다.실력이 부족하니 망신당하기 싫어서 그저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
구내식당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한현진은 넘버 S 오일이 뭔지 몰랐지만 깔린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넘버 S 오일은 혼합 오일이었다. [인 드림] 같은 고급 향수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였다. 넘버 S 오일의 재고는 100mL 밖에 없었다. 서해금이 우연히 제조해 낸 오일이라 각 오일의 성분과 비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넘버 S 오일은 한정판이 되어버렸다. 이 오일은 줄곧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 고급 향수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었다. 넘버 S 오일은 깔린느 전체에 단 한 병뿐이었다. 그것이 깨진다면 넘버 S 오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월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해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따라가려는 한현진을 은서하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제 일은 됐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한현진이 은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지 않을 거예요. 서하 씨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서하 씨를 만만하다고 여기고 더 심하게 굴 거예요. 서하 씨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서하 씨를 괴롭히려고 할 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거예요.”은서하가 멍해졌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주세은은 덜렁대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귀중한 원료는 보통 일반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세은이 그 오일을 깨뜨렸을 리가 없었다. 한현진이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일 보관실에 모여있었다. 주세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를 에워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범인을 심문하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은은 하얗게 질린 얼굴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