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52화

Author: 은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이 그림은 바로 용재휘의 작품이다.

두 사람의 처음 만남이 바로 유채구가 뿌려진 흰 셔츠로부터 시작되었다.

용재휘는 망가진 옷임에도 불구하고 버리지도 않고 심지어 입고 다니기까지 했었다.

그러던 그가 이 셔츠를 작품으로 만들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해 넋이 나간 것이다.

한쪽에 있던 해설원은 용재휘의 작품을 보고 넋이 나간 유시아를 발견하게 되는데.

해설원은 옆으로 바짝 다가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 작품은 청년 작가 용재휘 님의 작품이에요. 혹시 이 작품이 고객님 마음에 드셨나요?”

유시아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입가에 미소를 일었다.

“아니요. 그냥 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나한테는 과분한 사람이야.’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비관적인 유시아와 달리 용재휘는 봄날의 햇살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그의 삶에 그 어떠한 ‘흐림’도 가져다줘서는 안 된다.

바로 이때 뒤에서 임재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에 들면 그냥 사.”

말하면서 임재욱은 유시아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넋 놓고 한참이나 보던데?”

사인은 본디 알아보기 어렵게 디자인하는 편이다.

미대생의 사인은 더더욱 그러하여 인장 위에 새겨진 이름을 알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오른쪽 가장 하단에 자그맣게 찍혀 있어 임재욱은 누구의 작품인지 순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에요. 사고 싶은 만큼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어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이 상황이 뜬금없기만 한 임재욱은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했다.

‘왜 갑자기 화를 내는 거지? 내가 너무 귀찮게 굴렀나?’

멀어져 가는 유시아의 뒷모습을 보고 임재욱은 의문을 품은 채 일단 쫓아갔다.

전시회에서 나오니 마침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임재욱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유시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창가 위치에 앉은 두 사람 앞으로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지고 다가왔다.

종업원은 주저 없이 여성분인 유시아에게 먼저 건네주었다.

메뉴판을 받으려고 하던 찰나 유시아의 외투에서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3화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아인데, 정유라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유시아는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편애를 받는 자는 이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법이다.임재욱은 더더욱 그러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태어난 그는 이성의 사랑에 목말라 본 적이 없다.신서현을 제외하고 자신을 추구하는 여성에 대해 단 한 번도 자비를 베푼 적도 없다.5년 전, 임재욱은 직접 유시아를 감옥으로 보내 온갖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5년 후, 임재욱은 정유라에게 자기 피가 섞인 아이를 직접 처리하라고 했다.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마지막 양심마저 잃어버린 듯이.독한 마음과 망설임 없는 결정에 간담이 절로 서늘해지는 정도다.정유라가 좋은 건 아니지만 이 순간 그녀가 안쓰러운 유시아이다.만약 정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있지 않다면, 임태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지 않다면, 자기보다 더더욱 험한 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맞은편에 앉아 있는 임재욱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덤덤한 모습으로 유시아의 접시로 채소를 집어 주었다.사색에 잠긴 유시아를 보고 평온하게 입을 여는데.“무슨 생각해?”“아니에요.”유시아는 거의 조건 반사로 대답하고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임재욱의 입가에 웃음이 일었다.“속으로 내 욕하고 했지? 독한 놈이라고?”유시아는 고개를 들지 않고 비굴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대답했다.“제가 어찌 감히 재욱 씨를 욕하겠어요...”대놓고 욕하는 것도 속으로 욕하는 것도 모두 살이 떨리는 일이다.함께 자고 있을 때도 유시아는 행여나 잠결에 무심코 헛소리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해한다.일단 그에게 꼬투리라도 잡힌다면 그날이 곧 지옥이 될 테니.그저 듣기만 하고 속으로 한숨 정도만 내쉬는 정도일 뿐이다.유시아도 정유라도 임재욱의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 그 누구도 신서현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그 말인즉슨, 두 사람은 서로 물어뜯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임재욱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4화

    유시아는 그 말을 듣고서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지금 그 고양이를 위해 저한테 이렇게까지 부탁하시는 거예요?”“약속해 주실 수 있나요? 유시아 씨.”순순히 승낙하지 않는 유시아를 바라보며 임재욱은 계속 고개를 숙였다.“저녁에 올 때 네가 좋아하는 치즈 케익 사 올게. 제발 뭉치 좀 그만 괴롭혀.”부탁하는 임재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이 차마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유시아는 끝끝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알았어요. 어서 가서 일 봐요. 그리고 저 동물 학대하는 그런 나쁜 습관 없어요.”임재욱은 자기 부탁을 들어준 유시아에게 가볍게 포옹하고서 이마에 뽀뽀까지 했다.연인처럼 헤어지기 전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차를 몰고 떠났다.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보고 나서야 유시아는 몸을 돌려 별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그때 와인 컬러의 랭글러가 한쪽에서 질주해 오면서 그대로 유시아 앞을 가로막고 멈췄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시아는 흠칫 놀라면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차 문이 열리고 흰색 코트 안의 베이지 샤스커트를 휘날리며 정유라가 차에서 내려왔다.차가운 눈빛으로 유시아를 노려보며 정유라는 입을 여는데.“시아 씨, 다 같은 여자끼리 왜 이러시는 거죠? 왜 저를 이렇게까지 난처하게 만드시는 거죠?”조금 전 정유라는 한쪽에 숨어서 모든 걸 목격했다.유시아를 품에 안고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다가 이마에 뽀뽀까지 하고 간 임재욱의 모든 사랑이 넘치는 행동을.그토록 부드럽고 다정한 모습을 정유라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 사랑을 느껴본 적도 없다.자기도 느껴보지 못한 걸 유시아가 무슨 자격으로 누리고 있는지무슨 배짱으로 감히 자기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다투고 있는지.정유라는 이 모든 게 화가 났다.“죄송합니다...”순간 놀라서 사색이 되어 버린 유시아는 힘없는 해명을 하려 했으나.“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유라는 그녀의 뺨을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5화

    임씨 가문 증손자에 관한 일이라 유시아는 감히 지체할 수 없었다.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응급차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차가 달려왔고 의료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정유라를 응급차에 실었다.시름이 놓이지 않은 유시아는 어쩌면 자기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따라서 차에 올랐다.응급차 안에서 의료진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고 유시아는 긴장되기 시작했다.“괜찮은 거 맞죠? 배 속에 아이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제발 아이만은 꼭 지켜 주세요. 절대 그 어떤 일도 있어서는 안 되거든요. 아이한테...”다들 정신없이 환자를 챙기느라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돌아오는 답이 없어도 유시아는 어느 정도 마음에 답이 생겼다.정유라의 스커트에 묻어 있는 선명한 핏자국을 보고서.임재욱과 정유라 사이의 아이, 정유라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 어쩌면 이대로 두 사람의 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내가... 죽인 거야? 아이를?’‘내가? 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무릎을 꿇은 채 유시아는 지금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그러던 그때 차가운 손이 갑자기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는데.유시아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안색이 창백한 정유라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정유라는 손에 힘을 더하면서 입꼬리도 천천히 올렸다.전보다 한껏 냉혹해진 웃음과 더불어 음모가 실현된 뒤에 뿌듯함도 보였다.“유시아 씨, 그때 왜 재욱 씨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 거죠? 재욱 씨를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 네?”폭풍우처럼 밀려온 이 모든 상황에 유시아는 이미 정유라의 표정 따위를 판단할 능력을 잃었다.그녀의 말에 그저 가볍게 고개만 저으며 중얼거리기만 할 뿐.“아니요...”그때 정유라가 수표를 들고 찾아왔을 때, 떠나지 않은 이유는 임재욱을 사랑해서가 아니다.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임재욱은 이미 자기 집안과 어울리는 가문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했고 유시아 역시 자기에게 어울리는 생활 패턴을 찾았었기 때문이다.그렇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6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유시아는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렸다.어둡고 날카로운 임태훈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까지 숙이게 되었다.“어르신, 죄송해요. 제가 실수로 그만 유리 씨를 밀쳤어요...”“뭐?”순간 임태훈은 미간이 찌푸려졌다.이글이글한 두 눈을 뚫고 벌컥 용솟음친 노여움이 유시아를 삼킬 것만 같았다.“임신한 애를 밀쳤다고? 어떻게 네가 감히!”이때 응급실의 불이 꺼지면서 병상에 누운 정유라가 의사의 도움으로 밖으로 밀려 나왔다.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정유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배 속의 애물단지를 처리했으니, 그녀의 미션은 이로써 끝나게 된 것이다.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임태훈이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렇다. 임태훈은 절대 임씨 가문의 증손자를 죽인 범인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의사 선생님...”임태훈은 지팡이를 짚고 황급히 다가갔다.“어떻게 됐어요?”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사무적인 소리로 운을 떼기 시작했다.“죄송합니다만 아이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환자분 몸도 아주 허약하니 몸조리에 특히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측에서 전문 간호사를 붙여 간호할 생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사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아이가... 끝내는...’유시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창백하기 그지없는 정유라가 아무런 생기도 없이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만 보았다.그 또한 잠시 의료진이 병상을 밀고 유시아의 곁으로 지나가 버렸다. “탁!”얼굴에 통증이 밀려오면서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도 들었다.순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잡고 유시아는 고개를 들었다.그러자 노기등등한 임태훈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데.“빌어먹을 년!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의 증손자가 죽었어! 너 때문에! 내가 기필코 네년의 목을 베고 말 것이야!”...급하게 연락을 받고 대우 그룹으로 달려간 임재욱.다행히도 큰일은 아니었다.회사 사이트에 해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7화

    마침내 정신을 차린 정유라, 깨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처음으로 품은 아이고 작은 생명이 배 속에서 조금씩 커지는 것을 몸소 느꼈다.신기하고 미묘한 느낌으로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도 많았었지만 직접 두 손으로 없앨 수밖에 없었다.자기에게도 아이에게도 잔인한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하지만 이로써 유시아의 목숨을 맞바꿀 수 있다면 그래서 임재욱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모님만 옆에서 위안을 해줄 뿐이었고 임태훈이 임재욱에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그는 오지를 않았다.마치 유산되어 버린 아이가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이에 명품으로 도배한 고미숙이 언짢아하며 말했다.“너무 하는 거 아니야? 아이가 유산됐다는 데 어떻게 와서 보지도 않아? 대체 일이 중요한 거야 처자식이 중요한 거야?”성질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정건호마저도 얼굴을 붉히고 있다.아내의 넋두리에도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침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기에.부부 사이에 아무리 다툼이 있었다고 한들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유산까지 했는데, 그것도 제삼자의 손에 유산이 되었는데 찾아오지도 않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이놈이 우리 딸을 뭐로 보는 거야!’바로 그때 임태훈이 병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재욱이한테 방금 전화했었는데 급히 볼 업무가 있다면서 처리하고 바로 온다고 했어요.”“할아버님...”정유라는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저 괜찮아요. 재욱이 편히 일보게 오지 말라고 하세요.”“편히 일을 봐? 너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이런 상황에서도 임재욱의 편을 드는 딸이 언짢아 고미숙이 한마디 했다.이윽고 그녀는 임태훈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데.“어르신, 우리 집 귀한 딸을 그쪽 집안으로 보냈으면 좀 아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체 그동안 그 댁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네요. 아이까지 유산된 이상 그 파렴치한 년을 어떻게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8화

    고미숙은 점점 이성의 끈을 놓기 시작했고 임재욱을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임재욱, 너 또한 같은 인간이야! 남의 가정 파탄 내는 빌어먹을 그 여자만큼 뻔뻔하다고!”임재욱의 아내로 정유라가 임씨 가문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정씨 가문 사람들은 임재욱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의 형인 임진욱보다 훨씬 못났기 때문이다. 출신이며 살아온 경력이며.임진욱은 어릴 적부터 귀족 교육을 받아왔으므로 매사에 교양이 넘치고 여성을 대함에 있어서 늘 존중을 앞세웠으며 정유라에 대해서도 지극정성이었다.그와 반대로 임재욱은 그의 아버지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가장 명확한 ‘증거’다.엄마라는 사람은 어느 술집 출신 여자로 천하기 그지없고.임재욱은 생후 3일 만에 달랑 편지 하나와 함께 몰래 보육원 앞으로 버려졌다.그 편지에는 그의 이름과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적혀 있었다.만약 임재욱 아빠와 형이 갑작스럽게 죽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평생 입에 풀칠할 정도로 살았을 것이다.임씨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지도 못하고 금지옥엽으로 키운 자기 딸과도 절대 만날 리가 없었을 것이다.홧김에 뱉은 고미숙의 말 속의 ‘빌어먹을 그 여자’가 과연 임재욱의 생모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유시아를 가리키는 것인지 순간 가늠이 되지 않았다.임재욱은 차가운 눈빛으로 고미숙을 흘겨보더니 곧 정유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설마 그쪽이 정말로 내 아내라고 착각한 건 아니죠?”이에 정유라는 사색이 되면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미안해요. 재욱 씨.”아랫입술을 살포시 물더니 정유라는 잠시 생각하고서 입을 여는데.“아빠, 엄마, 우리 혼인 신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결혼식만 올린 거예요...”정유라는 자초지종을 있는 그대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모든 걸 알고 난 정유라의 부모님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아주 폼 나게 온갖 정성을 다해 시집을 보냈건만, 그 모든 게 연기란 말인가?“아이를 가졌을 때도 할아버님께서 일단 아이를 낳고 혼인 신고를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럼, 그냥 지나

  • 사랑이라는 죄로   제359화

    다 같은 임씨 가문의 핏줄이지만, 이 집안에서만큼은 신분에 귀천이 있다.그 말인즉슨, 대우 그룹 대표 자리에 임재욱이 앉았다고 한들 그 전제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임진욱이 세상을 떠나면서 임씨 가문에 더 이상 상속자가 없어서 하는 수없이 그를 앉힌 거란 말이다.만약 임진욱이 살아 있다면 임태훈은 절대 그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혼외 자식인 임재욱을 임씨 가문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임태훈이 자기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임재욱은 입가에 헛웃음이 일었다.“할아버지, 증손자를 잃으셔서 슬프신 가 봐요? 근데 정유라 씨 배 속에 있던 아이가 꼭 임씨 가문 핏줄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시죠? 제 아이라고 또 어떻게 단언하실 수 있으시냐 말이에요.”“...”임태훈은 순간 말 문이 턱 막혔다.정건호 생일 그날에 정유라와 어울려 지면서 순리대로 아이를 품게 된 줄 알았다.그때 임태훈은 심지어 손주며느리인 정유라의 수단이 제법이라며 내심 ‘감탄’까지 했었다.그러나 이제 와서 임재욱이 다른 소리를 하고 있으니...정유라 부모님도 갑작스러운 그의 주장에 어리둥절해졌다.내내 흐느끼고 있던 정유라마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 눈물 자국이 선명한 채 무척이나 가녀린 모습으로.“재욱 씨, 지금 그게 무슨 뜻이에요? 제가 설마 바람이라도 폈다는 거예요? 재욱 씨 아이가 아니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죠?”정유라는 차갑게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전에 우리가 했던 약속 엎으려고 해도 상관없고 저 책임지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근데 그런 식으로 저 모욕하지 마세요. 저는 재욱 씨처럼 혼인에 배신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랑 자지도 않았어요.”‘네 아이인지 아닌지 확인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거든.’본래 아이가 아직 배 속에 있다면 이맘때쯤 양수로 DNA 검사를 할 수 있다.임재욱이 자기를 의심하면서 DNA 검사까지 하게 될까 봐 이 타이밍에 아이를 유산해 버린 것이다.더 이상 DN

  • 사랑이라는 죄로   제360화

    그들이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정유라는 아이의 DNA를 빼고는 모든 증거를 내세울 수 있었다.빈틈 하나 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끝내는 임재욱의 손에 잡힐 줄은 몰랐다.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니.임태훈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기만이라는 것을 정유라는 잘 알고 있다.특히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증손자의 일로 속였으니, 앞으로 다시는 자기를 믿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미친!”화가 치밀어 오른 임태훈은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치고는 두말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떠났다.그가 떠나고 병실에 남은 네 사람 중 지금 그나마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은 정건호였다.임재욱의 손에서 복사물을 가져오며 가장 먼저 입을 여는데.“재욱아, 좋은 일도 아니고 네가 더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으면 한다.”만약 외부인들이 알게 된다면 정유라는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고 얼굴 들고 살날이 없을 것이다.고미숙 또한 바락바락 화내던 모습을 거둔 채 한껏 차분해졌다.오직 정유라만이 미동도 없이 병상에 앉아 있는데 모든 음모가 간파되면서 그녀는 악이 치밀어 올랐다.“재욱 씨...”정유라는 고개를 들어 임재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하셨겠어요? 마침내 모든 게 드러나고 모든 게 끝났으니 인제 당당하게 저 버리고 그 여자한테 달려가서 오붓하게 살 수 있으니 아주 속이 후련하죠?”“그 누구도 정유라 씨 강박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아주 폼나게 나갈 수 있게 제안했건만 싫다면서요. 그래서 굳이 이런 사달까지 낸 거 아니에요? 탓하라면 이 모든 걸 자초한 정유라 씨 자신을 탓하시죠.”임재욱은 복사물을 도로 가져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3일 안팎으로 우리 이혼 소식 내보낼 거예요. 그리고 비서 통해 계좌로 위로금 들어갈 테니 확인하고요.”할 말을 다 하고서 임재욱 역시 임태훈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병실을 떠났다.정유라에 대해서 이미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 버린 임재욱이다.그 어떠한 일로도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고 말조차

Latest chapter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5화

    늦은 밤, 유시아의 카카오톡을 받았을 때 임재욱은 병원에 있었다.신시연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동안에 임재욱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늦은 밤의 사립 병원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당직을 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외에 거의 사람이 없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임재욱은 복도를 한참이나 누비다가 의자에 걸터앉았다.유시아를 병원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길에 신시연의 전화를 받고서 오게 된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아프다고.신시연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여러 번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그러한 몹쓸 짓을 당하며 우울증과 부인병이 있는 외에 다른 수치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그 말인즉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신시연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임재욱 하나뿐이니 어찌 됐든 그녀를 잘 지켜야 하는 마음뿐이었다.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게끔.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여 임재욱은 그녀를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확답을 듣고 나야만 마음이 놓일 수 있다.애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유시아가 보낸 카카오톡인데,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보고 싶어요.]임재욱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 내용을 거듭 곱씹으며 유시아 사진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올라갔다.‘내가 보고 싶어? 별거한 지 하루 만에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시아 이제 제법 솔직하네.’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도우미 김향화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신시연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신시연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한 데님 스커트를 입었고 윤기가 별로 없어 보이는 머리를 돌돌 말아 묶어 올렸다.무척이나 초췌해 보이는 것이 가여운 느낌도 물씬 풍기고 있어 기고만장했던 그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4화

    유리 구두를 품속에 꼭 안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임재욱은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달래기 쉬운 여자라는 것을.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주 살짝만 잘해주어도 유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늘 임재욱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자기를 낮은 위치에 놓는 데 습관 되어 있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뽀뽀했다.“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예쁜 유리 구두 선물해 줄게. 어때?”“좋아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아주 유치하게 그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백화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일단 화실로 향했다.새로 구매한 공예품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유시아의 제안으로 이채련의 병원까지 바래다주었다.유시아는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타입이라 이채련과 이미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했다.하물며 자식도 없는 이체련에게 마지막 이 시간들이 더더욱 외로울 것이다.외부인들이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외롭다.임재욱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채련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보내주었다.차는 곧 사립 병원 앞에 멈춰 섰고 임재욱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차창에 대고 거듭 강조했다.“유리 구두랑 드레스들 옷방에 고이 모셔두도록 해요. 마구 놓지 말고요.”“알았어.”임재욱은 말하고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확 잡고서 찐한 키스를 남기고 나서야 순순히 놓아 주었다.“얼른 가 봐.”“조심해서 가요.”임재욱은 조수석에 앉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서야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가는 길에 갑자기 신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병실로 돌아와 보니 이채련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재미가 일도 없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유시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채련은 놀라고도 기뻤다.“시아야,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유시아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3화

    쇼핑은 늘 설레는 일이다.유시아는 자기 취향대로 화실 장식품으로 쓰일 공예품을 골랐다.이윽고 임재욱은 또 유시아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지난번에 두 사람은 함께 쇼핑하면서 많은 옷을 샀었지만, 신서현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면서 유시아는 그 모든 옷을 모조리 청소 아주머니에게 줘 버렸다.그때의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임재욱은 또다시 쇼핑하려고 한 것이다.게다가 다음 주면 대우 그룹 상장 20주년이다.정식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유시아를 자기 아내 신분으로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이브닝 파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와 신발을 살 예정이다.드레스는 그럭저럭 큰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유시아는 그 신발이 마음에 들었다.은백색의 하이힐로 예쁜 보석들로 가득 박혀 있어 매점 불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신데렐라 동화에 나올 법한 유리 구두 같았다.매점 직원은 유시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다가왔다.“손님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이 제품은 저희 디자이너 선생님의 최신 디자인으로 지금 딱 한 켤레만 있습니다. 만약 이 신발을 신고 나가신다면...”임재욱은 갑자기 직원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미 결혼했고요. 이 사람은 제 아내예요.”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는데,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따라서 웃었다.“맞아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매점 직원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베스트 쇼핑 가이드다운 실력을 드러냈다.“어머, 어쩐지 너무 어울리신다 했어요...”직원의 칭찬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이윽고 매점 직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며 유리 구두에 대해 더욱 디테일한 설명을 첨부하기 시작했다.“이 제품의 새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착용감이 엄청 좋으실 거예요. 하루 종일 신고 걸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이 즉흥으로 만들어내신 작품이라 절대 똑같은 제품을 시중에서 보실 수 없을 거예요.”한 켤레일 뿐만 아니라 사이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2화

    한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뭐?”“한서준 씨는 당당해요?”유시아는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임씨 가문에 접근한 그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재욱 씨 그리고 나까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청아 씨만이 한서준 씨를 사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쭉 모르는 척을 하며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한서준 씨 역시 청아 씨를 이용한 게 아닌가요?”마지막 한 마디에 한서준은 침묵하고 말았다.그렇다. 임청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유시아가 ‘스파이’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고 거절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임씨 가문 천금을 노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임청아 대한 마음은 모략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띠고 다가왔던 임청아가 어두운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따라서 한서준은 임청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츰 생기게 된 것이다.임태훈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꼭 자기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청아 씨 지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에요.”“만약 청아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려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택시에 오른 유시아는 긴 망설임 끝에 끝내는 더 스케치 화실 주소를 운전 기사에게 알렸다.차는 화실 맞은 편에 세워졌고 유시아는 화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화실 안의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경호원들이 임태훈을 사이에 두고 화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임태훈은 벤틀리에 올라 강한 기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화실로 향해 달려갔다.화실 안과 밖은 겉은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1화

    전화를 마치고 유시아는 혼자 밖에 없는 휴게실을 보고서 깊은 번뇌에 잠겼다.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임태훈처럼 막무가내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인이 있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태훈이 끔찍이 여기는 임청아를 유시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자기 화실을 닫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집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스스로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남한테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권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다.유시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고 불안함도 점점 커졌다.지금 운영하고 있는 더 스케치 화실도 용재휘가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와 더불어 학생들까지 모두 함께 넘겨주었는데, 만약 이대로 화실을 망쳐버린다면 용재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임재욱과 임태훈이 어느 정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실이 그들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그렇게 한참이나 심장을 조이고 있었지만, 걸려 오는 전화는 없었다.유시아는 일이 어느 정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채팅방에 오늘 갑자기 일이 있다며 수업을 뒤로 미룬다고 알렸다.언제 다시 수업을 시작할지는 소식을 기다리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톡을 보내고서 유시아는 더 이상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바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병원 대문을 나오자마자 한서준이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유시아.”유시아는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보게 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났다.직감이 알려주건대, 절대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화실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한서준은 쉽사리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다.“물어볼 일이 있어.”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지프차를 가리켰다.“차에 타서 얘기 하자.”“그쪽이랑 할 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0화

    유시아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집사의 바람대로 타이르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많이 허약해요.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하거든요. 일이 어찌 됐든 일단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임청아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건강 회복되면 할아버지한테 잡혀가서 집에 감금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어찌 됐든 할아버지 마음은 한결같을 거예요. 청아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요.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임청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이 낳고 나면 할아버지도 서준이도 원한을 내려놓고 행복만 할 수 있다고요.”“근데 이렇게 몸도 아끼지 않고 점점 더 막무가내로 나가면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점점 더 짙어질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도우미 손에서 보신탕을 가져와 천천히 불며 임청아의 입가로 가져갔다.임청아는 생각 밖으로 무척이나 순순하게 유시아의 말을 따랐고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보신탕을 받아 마셨다.도우미와 집사는 두 사람이 티키타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임청아가 뭐라도 먹기 시작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으며 자리까지 비켜주려고 했다.두 사람이 마음 편히 말할 수 없을까 봐 눈치껏 일어서려는 것이다.“작은 사모님, 아가씨와 천천히 얘기하고 계세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네, 가보세요.”도우미 일행이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한서준 씨는 알고 있어요?”임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런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아요.”요즘 임태훈뿐만 아니라 한서준도 눈을 부라리고 임청아를 찾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아파트도 호텔도 들어갈 수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유시아 화실에 몸을 숨기고 지낸 것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9화

    임청아 이름 석 자가 임재욱의 입에서 나오자, 유시아는 순간 청천벽력을 맞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청아 씨가 왜 병원에 있는 거죠?”임청아는 임신한 것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걸음 하나도 천천히 옮겼었다.게다가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여 해외로 떠날 준비까지 마쳤다고 했었다.그런데 관건이 되는 순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할아버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임재욱은 말하면서 차갑게 웃었다.“네 화실에 청아 숨겨 놓았잖아. 할아버지께서 그걸 과연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오늘 화실로 청아 데리러 갔었는데, 가지 않겠다고 청아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그렇다면 아이를 유산했을지도 모른다.임태훈의 습관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 화살은 결국 유시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임재욱이 그렇게 경고하였건만 유시아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약해지는 마음에 언젠가는 구렁이에 빠지게 될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임재욱은 한숨을 내쉬며 꾸짖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병원 주소 보내줄 테니 얼른 가 봐.”말을 마치고 임재욱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고 운전 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같은 시각, 병원 안에서.임청아는 이미 수술을 마쳤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이미 가문의 집사와 간호인이 옆에 있었고 병실 문 앞에는 임태훈이 보낸 경호원도 있었다.다만 경호원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유시아가 아니라 한서준이다.따라서 유시아는 별다른 막힘없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상에 누워 있는 임청아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주 공손하게 유시아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8화

    조금 전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임재욱은 멈칫거리고 말았다.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별거하자는 뜻이야?”“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머리가 아픈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으로 시연이한테 집중해도 되잖아요. 나도 마침 어머님 곁에 좀 있어드리고... 서로에게 지금 이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낙담한 모습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하자.”말을 마치고 그는 계속 밥을 먹었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아련하게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튿날 아침, 유시아는 임재욱이 출근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상복 몇 벌과 일상용품을 챙겨 작은 트렁크 안에 놓고 바로 이채련한테 가려고 했다.허씨 아주머니는 트렁크를 들고 내려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사모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설마... 가출하려는 건 아니죠?”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를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친척분이 좀 위독하신데 제가 옆에서 좀 챙겨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고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트렁크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이채련이 지내고 있는 병실이 VIP 병실로 널찍한 객실까지 갖춰져 있다.유시아는 간호사에게 접이식 침대와 이불을 요구했고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잘 자리가 아늑하게 마련되었다.이채련은 더 이상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얼굴도 하도 여위어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그전에도 유시아는 이채련에게 이곳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이채련은 행여나 자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흠이 생기게 될까 봐 동의하지 않았었다.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갖은 풍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7화

    임재욱은 핸들을 꼭 움켜쥐고서 앞만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고통과 망연함이 가득했다.“시연이 해외에 있을 때, 몹쓸 짓을 당했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거야.”유시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볼륨까지 높아졌다.“어머, 어떡해요!”평소에 신시연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다.여자에게 있어서 그런 몹쓸 짓을 당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과 치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부모님의 일까지 더해지니 조금 전 식당에서 봤던 신시연의 모습이 이해되었다.임재욱은 말하면서 후회와 자책하는 빛을 드러냈다.“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는 시연이를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그때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낯선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임재욱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신시연이 이제 갓 20살을 넘은 꽃다운 여자아이라는 것이다.해외에는 불안정 요소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게다가 젊은 나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도 아주 위험하고 말이다.신시연 곁에 사람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24시간 동안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유시아와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신시연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지금 임재욱은 신서현에게 미안할 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하지만 그가 말한 본의와 달리 듣고 있는 유시아는 또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유시아의 기억으로는 신시연이 해외로 보내진 이유는 이러하다.그때 신시연은 정운시 대학교 교내 사이트에 유시아를 먹칠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유시아로 하여금 학업을 이어갈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게 악한 상황을 만들었었다.마침 그 일을 소현우가 알게 되면서 유시아에게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