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은 그때의 일을 다시 한번 더 떠올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병이 갑자기 악화된 게 나 때문일 까봐 두려워.”시만자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이 알아챘다면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사실 연왕비께서는 모르고 계셨는데 측비 김씨가 일부러 알렸어. 연왕비께서 그걸 듣고 나서 바로 피를 토하셨고. 그 후로 병증이 더 악화됐어. 이 일은 운익각에서 들은 게 아니라 홍작이 이야기해 줬어. 너한테 말을 해줄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하더라.”“그럴 줄 알았어.”송석석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 혼사는 이모님이 중매를 서 주셨어. 비록 이모님이 추천한 사람이지만 내 모친도 알아 보긴 했었어. 그 당시, 장군부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어. 게다가 민씨가 무능하고 연약했거든. 내가 그 집에 들어 가고 나서도 큰 형님한테 받는 압박은 없었어. 큰 집안과 작은 집안 사이도 그저 겉으로 화목할 뿐이었지.”“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청목암에서 연왕비를 만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시만자는 위로에 탁월하지 않았다.어떤 일이든 해결하려면 당사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연왕비는 본처이지만 김씨는 결국 첩이었다. 본처가 힘이 없다고 해도 본처는 결국 본처이기 마련이었다.첩이 자식을 낳았다고 할지라도 첩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그래.”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왕야와 혼인했다는 사실을 아시면 좀 나아지실지도 몰라.”“그래.”시만자는 등에 방석을 받쳤다. 그녀의 외투의 목덜미 부분에는 하얀 여우의 털이 달려있었다. 그 덕에 외모를 한껏 더 올려 주었다. 송석석은 그녀를 보고는 다시 물었다.“내가 또 모르는 게 있어?”“아니, 내 일 때문에 그래.”시만자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무 일도 아니야.”“집안 일이야?”“우리 고모가 인사하러 온대. 게다가 그 선비까지 데리고 말이야.”시만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사실 예전에는 고모를 엄청 싫어했어. 우리 시씨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렸
시만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는 송석석의 어깨에 기대어 울먹거렸다.“그 선비가 고모를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면서 평생동안 후회하면서 살기 바랬어.”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진심이 아니잖아.”“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착하지 못해. 너만 모르는 거야.”“나 말고, 우리 가문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려고도 하지 않아. 오래된 하인도 두 사람만 보면 욕하기 바쁘고.”“왜 돌아오신 거야?”“할머니가 아프셔. 문안 오면서 가족도 보러오신 거지. 근처에 집을 빌려 살면서격일마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계셔. 계속 버티다 보면 할머니가 봐주실 줄 아셨던 거지. 하지만 우리 조부모님은 기쁘게 고모를 맞이하지 않으셔. 오히려 집안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시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또 시끄러워 질지도 모르거든.”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시만자의 고모 한 명 때문에 시씨 가문의 모든 여인들이 혼사에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미워하는 이유도 충분했다. 설령 시만자의 할머니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송석석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이어서 위로를 해주려 하자 시만자가 등을 곧게 세웠다.“괜찮아. 너희 이모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고모가 잠시 떠오른 것뿐이야. 너희 이모는 왕실 집안에 시집가서 연왕비가 되셨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모보다 못한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그리고 너랑 전북망도 결국 그런 결말을 맞이했잖아.”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모두 각자의 인연이라는 게 있겠지.”그녀는 청목암에서 연왕비를 보고 나서야 시만자의 마음을 이해했다.2-3년이 지나서 만난 연왕비는 삐적 마른 나무처럼 살이 빠져 있었다.온몸은 힘없이 푹 늘어져있었고 볼살은 푹 들어가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두껍게 덮고 있었다. 아무리 방 안에 온돌을 펴 두어도 몸을 덜덜 떨었다.연왕비는 송석석을 알
송석석의 혼사 때문에 시만자가 집으로 돌아갔다.돌아가서 적염 동료들에게 그녀를 꾸며 줄 것을 부탁했다.한 달 전 일이다.하지만 연왕이 직접 청혼하러 왔다는 가정을 하고, 연주에서 강남의 시 가 집안까지 거리를 계산했다. 곧이어 시 가 집안을 떠나 적염문으로 갔을 때로 짐작했다. 게다가 집안 사람들은 송석석에게 화장을 해주기 바빴고,시만자는 적염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성으로 나가야 했다. 경성에서 만난 집안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눈치였다.시만자가 벌떡 일어났다.“연왕께서 나이가 얼만데 그런 짓을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그리고 이혼장은 또 언제 보내셨습니까?어쩌면 먼저 청혼하고 이혼장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더러운 자식,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반복되는 ‘연왕’이라는 말에 연왕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곧이어 힘없는 눈빛에 점점 생기가 돌더니, 송석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석석을 알아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심장 찢길 것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곧이어 기침을 하고는 이불에 피를 잔뜩 쏟았다.옆에 있던 송석석은 깜짝 놀랐다.서둘러 연왕비의 등을 살짝 두드려 주었다.그녀가 아무리 피를 닦아도 연왕비는 계속 피를 토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는 거의 기절한 채로 쓰러졌다.한편, 청작과 국춘은 당황한 기색이 없다.그리고 익숙하게 연왕비를 눕히고 침을 놓았다.약제를 갈아서 억지로 먹였다.하녀들은 바닥을 닦거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송석석은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두 손에는 모두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하녀가 손 새척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시만자는 송석석을 두드렸다.“가서 손부터 씻어. 일단 침은 놓고 상황 보자.”송석석은 그제야 두 손을 물에 담갔다.몸은 울분에 이기지 못해 벌벌 떨렸다.연왕비가 아픈 건 알고 있었지만 심각한 상태 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서서히 서늘함과 두려움이 그녀를 감쌌다.이 느낌은 다름 아닌 가족을 잃는 두려움이다.
연왕비가 다시 흥분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청작이 그녀에게 침을 두었다.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도 같이 먹였다.시만자는 이혼장을 훑고는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청목암의 하인들이 다과를 대접했다, 곧이어 청작이 사람을 시켜 그들을 측원으로 안내했다.청작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청목암의 주지는 착한 사람이다.연왕비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동정하기 때문이다.방해도 받지 않고, 먹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살생과 육식을 금하고 있다. “고기 국물도 한 입도 못 마시는 게 말이 됩니까?”송석석이 걱정하며 말했다.“드려도 드시지 않아요.”청작이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값싼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밖에는 두꺼운 면 외투를 입었다.“황실에서도 잘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기 냄새만 맡으면 손사래를 치셨어요,채식을 하신 지 오래되셨습니다.”그녀가 말한 것과 시만자가 말한 것은 다름이 없었다. 연왕비 슬하에는 아들 한 명, 딸 두 명이 있다.마음으로 낳은 아들은 은혜를 베푸는 중이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하지만 직접 낳은 딸들의 행실은 불효가 확실하다. 연왕비가 왕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자신의 모친을 버리고 측비 김 씨를 따랐다. 김 씨는 그들에게 화려한 의복,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며,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주었다.혼사도 그러하다.두 사람은 모두 현주로 봉해졌지만 군주로는 아니다.게다가 연주에서 김 씨 집안은 그들의 모친의 집안보다 한 수 위다.연왕비는 한평생 ‘선’을 쫓은 사람이다.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연약한 사람일지 모른다.심지어 자신의 딸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춘이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옥영 현주는 왕비를 무시하는 게 대다수입니다,심지어 황실에서도 몇 번 온 적 없지요.반대로 옥청 현주는 가끔 와서 왕비를 돌보러 옵니다, 하지만 왕비의 약이 자신의 옷을 더럽히면 화를 참지 못하십니다.”“게다가 원래 왕비를 모셨던 시녀와 하녀들은 모두 측비 김 씨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 온 시
송석석이 고개를 들어 청작에게 물었다. “다른 진료 방법은 없는지요, 당신의 사부는요?”청작이 답했다.“당연히 오셨지요. 그저 아씨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입니다.사부께서는 왕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만약 약이 끊기면 하루 이틀도 버거울 수 있다고도 하셨고요.”송석석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약이 끊겨서는 절대 안됩니다.”청작은 안타까운 듯 대답했다.“약을 먹어도 연말을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15일이 고비입니다.”송석석은 눈물을 흘러내렸다.그녀는 연왕비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단 신의와 홍작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약과 침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진통을 낮출 뿐입니다.”청작이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청작이 떠나보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연왕비에게는 각별한 안타까움을 표했다.얼마나 재수가 없으면 남편도 모자라 자신의 두 딸에게 버림을 받았을까.처갓집도 힘이 없고, 먼 곳에서 지내는 바람에 왕비를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평생 ‘선’을 쫓던 사람에게 어찌 이러한 결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만자야, 너는 내일 경성으로 돌아가거라.난 여기서 이모를 지킬 거야.”송석석이 눈물을 닦은 채 계속 말을 이었다.“이모를 쓸쓸히 두고 싶게 하지 않아.”하지만 시만자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다.“나도 여기서 있을 게. 하지만 몽동이는 저 나무집에서 지내게 해. 남자 손님을 위한 방이기도 해.”“하지만 이제 곧 설이야.외롭고, 조용해서 힘들 수도 있어.”“힘든 건 전쟁터에서 다 겪었어.”송석석은 손수건을 쥐면서 그녀의 말에 잠시 멍을 때렸다.‘연왕이 시만자와 혼인하려는 이유가 그녀가 전쟁에 참여 해서가 아닐까.’하지만 금방 생각을 가다 듬었다.만약 병권을 가진 왕이 그러한 생각을 가진 다면 이해가 가능하지만, 연왕의 부대는 병사가 고작 500명 밖에 없다.게다가 황제도 그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 반역을 계
“연왕부에 몰래 들어가서 해치워 버릴까 봐.”시만자가 뒤척이다가 한마디 뱉었다.“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폐하를 사살하면 네 가족 전체가 다 죽어.”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에서 혼사를 진행할까 봐 걱정인 거야?”시만자가 두 손을 머리 뒤로 두었다.“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부친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거야. 할아버지도 나를 예뻐하셔서 역시 동의하지 않으실 거고. 하지만 우리 가문은 명성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혼사가 필요해.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두 분을 설득할까 봐 두려워.”“하지만 두 분께서 동의한다고 해도 혼인하지 않을 거잖아.”“응, 안해.”시만자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하지만 내가 혼인을 하지 않으면 다른 집안 여인이 혼인하게 될 거야.나 때문에 희생하는 거잖아. 내가 그 꼴을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어? 특히 그 사람이 우리 집안이라면 더더욱 말이야.”그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보는 게 어때?"송석석이 물었다.“그러고 싶긴 한데 가진 않을 거야. 너의 선배가 사람을 두고 갔잖아. 홍현를 보내서 상황을 알아보게 하면 돼.”“그래.”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아침이 되자 송석석은 직접 죽을 끓여서 연왕비에게 가져갔다. 그녀가 먹여 준 덕에 어느새 연왕비는 반 공기를 해치웠다.국춘이 말했다.“이 정도는 많이 드신 편입니다. 평소에는 두어 입 드시고는 더 이상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인삼탕과 여러 귀한 약재가 아니었으면 벌써 세상을 떠나셨을 지도 모릅니다.”“대공자와 두 현자께서 오시면 금세 회복하실지도 모르는데...”“됐습니다. 대공자는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두 현자는 김씨한테 대들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청작이 말했다.그의 말에 송석석은 화가 나서 잠시 자리를 떴다.시만자가 그런 그녀를 보고 물었다.“어디가?”시만자는 외투를 껴입었다. 하얀 여우 털이 그녀의 턱을 가린
보름 안에 황제가 직접 제천단에 참여해 성문, 시민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관람할 예정이었다.그리하여 황제와 조정들을 위해 경위와 순방영을 준비 시켜 놓고, 불꽃놀이를 바로 볼 수 있게 성루 외곽에 높은 대좌를 설치해야 했다.연왕비와 인사를 나눈 후, 송석석과 사여묵은 작은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몽동이가 하룻 밤 묵었지만 이불 배게 정리가 확실하게 되어 있었고 탁자와 의자도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송석석은 연왕비의 상황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이혼장 이야기에 사여묵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황당하오. 아들이 없고 질투심이 많다는 게 이혼 사유 라니. 누가 이 터무니없는 말을 믿어 주겠소?”“하지만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납득만 할 이유입니다.”송석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다.“그리고 시만자와 혼인을 하려 하다니, 연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소이다.”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비상적인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송석석과 마찬가지로 만약 진짜 일이 일어난다면 연왕의 권력은 곧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시씨 가문은 강남의 유명 집안이다. 비록 진성에서 관직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각 지방 관료는 적지 않았다. 게다가 시씨 가문은 장사를 크게 했다. 나라의 부와 맞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상국 제일의 부유 집안은 확실했다. 그러나 오로지 재물만 보면 측비 김씨가 훨씬 우위였다.그가 시씨 집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지 금전만은 아니었다. 정확히 시만자를 고른 이유도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유의 하겠소.”사여묵이 잠시 멈칫했다. 그는 자신도 황제에게 경계 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더 떠올렸다.“그저 은밀히 살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송석석은 그가 남강전쟁에서 겪었던 고난을 떠올렸다. 모두가 찬양했지만 사실상 폐하의 의심을 받아 병권마저 뺏겼었다. 만약 그가 연왕을 조사하다가 들키면 폐하에게 또 의심을 사게 된다.그녀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차라리
연왕비는 세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밖을 잠시 바라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명심하거라. 그 사람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야. 아마 장공주랑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야.”송석석이 깜짝 놀랐다.“네?”그녀는 하인들을 급히 내보내고 시만자를 시켜 문을 지키도록 부탁했다. “이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연왕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어서 나오는 말투에는 두려움과 서늘함이 섞여있다.“수년 동안 연주에서 몰래 군사를 모으고 있었어. 그 군자금은 장공주와 측비 김 씨가 대주고 있고. 지금 군사들을 옹현에 숨겨 두었을 것이야.”송석석은 옹현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장공주의 봉지이자 선제가 준 혼수였다.“절대로 그의 눈에 띄어서는 안 돼. 또한 그와 적이 되어서도 안 되느니라.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야.”말을 끝내자 연왕비의 기운이 약해졌다. 어쩌면 많이 두려웠던 모양이다.“요 몇 년 동안 그가 첩을 아끼고 본처를 싫어한다는 소문은 들어 봤겠지? 사실 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나쁜 평판을 일부로 만들었던 것이야.”송석석은 등이 서늘했다.사실 모두가 연왕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황제가 아무리 사람을 보내 감시한다고 하여도 장공주의 봉지인 옹현을 주의 깊게 볼 리가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장공주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강한 이유를 찾아냈다.그렇게 연왕비는 말을 끝내고 다시 잠에 들었다.섣달 스무여드레가 되던 날에 연왕비의 정신이 유난히 또렷했다. 점심으로 반 공기 가량의 죽을 드시고, 저녁도 반 공기를 먹었다. 도중에 그릇에 죽을 추가하기도 했다.송석석은 연왕비의 병세가 나아진 줄 알고 기뻐했다. 그녀는 왕비의 손을 잡고는 겨울이 지나면 다시 오겠다고 전했다.그 말에 연왕비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그렇게 하려무나.”송석석은 기쁜 마음에 젖어 청작과 국춘의 한숨은 보지 못했다.어느덧, 밤이 되었고 국춘이 문을 두드렸다. 동시에 울먹거리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