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85화

Author: 유애
송석석이 답했다.

“병에 걸리셔서 청목암으로 옮기신 겁니다. 첫째는 깨끗한 환경에서 몸을 간호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는 청목암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기 위함입니다.”

한녕 공주는 이해가 돠지 않았다.

“병에 걸리셨으면 더욱 연황실에 있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적어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하인들이 곧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한녕 공주도 아는 도리를 연왕이 모를 리가 있으랴. 연왕이 다스리는 지역은 연주였다.

하지만 송석석은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청목암과 진성이 연주에서 많이 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병 치료를 위함이라면 진성으로 보내는 게 더 좋지, 적어도 진성에는 태의나 단신의가 보살필 수 있는데.’

단신의가 국춘과 청작을 보내 왕비를 보살피지만 주위에 친한 지인도 없어 외로움이 극에 달할 것이다.

송석석이 답했다.

“그럼 저는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께 서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나한테 맡기거라.”

혜 태비는 송석석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발 벗고 나섰다. 그 모습에 한녕 공주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저 먹을 것만 생각하고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다. 하여 자신의 새언니가 자리를 뜨자마자 서둘러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새언니를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하셨습니까?”

혜 태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여운 사람이야, 집안사람은 겨우 서우 하나밖에 안 남았어. 내가 시어머니이니 며느리를 딸처럼 대해야 하지 않겠느냐?”

한녕 공주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궁에 있을 때는 그렇게 말씀하신 적 없으셨잖아요. 제가 말렸어도 항상 들은 척도 안 하셨던 것 아닙니까.”

“내가 언제 안 들었다고 그러느냐? 그저 행동이 조금 느린 것뿐이야.”

한녕 공주는 모친의 행동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송석석한테 잘 해주면 그만이었다.

한편, 송석석은 외출했다.

몽동이에게 말을 맡기고, 그녀와 시만자는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하인들도 데려가지 않았다. 시만자는 그제야 운익각에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86화

    송석석은 그때의 일을 다시 한번 더 떠올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병이 갑자기 악화된 게 나 때문일 까봐 두려워.”시만자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이 알아챘다면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사실 연왕비께서는 모르고 계셨는데 측비 김씨가 일부러 알렸어. 연왕비께서 그걸 듣고 나서 바로 피를 토하셨고. 그 후로 병증이 더 악화됐어. 이 일은 운익각에서 들은 게 아니라 홍작이 이야기해 줬어. 너한테 말을 해줄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하더라.”“그럴 줄 알았어.”송석석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 혼사는 이모님이 중매를 서 주셨어. 비록 이모님이 추천한 사람이지만 내 모친도 알아 보긴 했었어. 그 당시, 장군부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어. 게다가 민씨가 무능하고 연약했거든. 내가 그 집에 들어 가고 나서도 큰 형님한테 받는 압박은 없었어. 큰 집안과 작은 집안 사이도 그저 겉으로 화목할 뿐이었지.”“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청목암에서 연왕비를 만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시만자는 위로에 탁월하지 않았다.어떤 일이든 해결하려면 당사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연왕비는 본처이지만 김씨는 결국 첩이었다. 본처가 힘이 없다고 해도 본처는 결국 본처이기 마련이었다.첩이 자식을 낳았다고 할지라도 첩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그래.”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왕야와 혼인했다는 사실을 아시면 좀 나아지실지도 몰라.”“그래.”시만자는 등에 방석을 받쳤다. 그녀의 외투의 목덜미 부분에는 하얀 여우의 털이 달려있었다. 그 덕에 외모를 한껏 더 올려 주었다. 송석석은 그녀를 보고는 다시 물었다.“내가 또 모르는 게 있어?”“아니, 내 일 때문에 그래.”시만자가 미간을 찌푸렸다.“아무 일도 아니야.”“집안 일이야?”“우리 고모가 인사하러 온대. 게다가 그 선비까지 데리고 말이야.”시만자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사실 예전에는 고모를 엄청 싫어했어. 우리 시씨 가문의 명성을 떨어뜨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87화

    시만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녀는 송석석의 어깨에 기대어 울먹거렸다.“그 선비가 고모를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면서 평생동안 후회하면서 살기 바랬어.”송석석은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진심이 아니잖아.”“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착하지 못해. 너만 모르는 거야.”“나 말고, 우리 가문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려고도 하지 않아. 오래된 하인도 두 사람만 보면 욕하기 바쁘고.”“왜 돌아오신 거야?”“할머니가 아프셔. 문안 오면서 가족도 보러오신 거지. 근처에 집을 빌려 살면서격일마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계셔. 계속 버티다 보면 할머니가 봐주실 줄 아셨던 거지. 하지만 우리 조부모님은 기쁘게 고모를 맞이하지 않으셔. 오히려 집안에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게 하시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또 시끄러워 질지도 모르거든.”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시만자의 고모 한 명 때문에 시씨 가문의 모든 여인들이 혼사에 애를 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미워하는 이유도 충분했다. 설령 시만자의 할머니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송석석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이어서 위로를 해주려 하자 시만자가 등을 곧게 세웠다.“괜찮아. 너희 이모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고모가 잠시 떠오른 것뿐이야. 너희 이모는 왕실 집안에 시집가서 연왕비가 되셨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모보다 못한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그리고 너랑 전북망도 결국 그런 결말을 맞이했잖아.”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모두 각자의 인연이라는 게 있겠지.”그녀는 청목암에서 연왕비를 보고 나서야 시만자의 마음을 이해했다.2-3년이 지나서 만난 연왕비는 삐적 마른 나무처럼 살이 빠져 있었다.온몸은 힘없이 푹 늘어져있었고 볼살은 푹 들어가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두껍게 덮고 있었다. 아무리 방 안에 온돌을 펴 두어도 몸을 덜덜 떨었다.연왕비는 송석석을 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88화

    송석석의 혼사 때문에 시만자가 집으로 돌아갔다.돌아가서 적염 동료들에게 그녀를 꾸며 줄 것을 부탁했다.한 달 전 일이다.하지만 연왕이 직접 청혼하러 왔다는 가정을 하고, 연주에서 강남의 시 가 집안까지 거리를 계산했다. 곧이어 시 가 집안을 떠나 적염문으로 갔을 때로 짐작했다. 게다가 집안 사람들은 송석석에게 화장을 해주기 바빴고,시만자는 적염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성으로 나가야 했다. 경성에서 만난 집안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눈치였다.시만자가 벌떡 일어났다.“연왕께서 나이가 얼만데 그런 짓을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그리고 이혼장은 또 언제 보내셨습니까?어쩌면 먼저 청혼하고 이혼장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더러운 자식,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반복되는 ‘연왕’이라는 말에 연왕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곧이어 힘없는 눈빛에 점점 생기가 돌더니, 송석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석석을 알아보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심장 찢길 것처럼 소리를 내며 울었다. 곧이어 기침을 하고는 이불에 피를 잔뜩 쏟았다.옆에 있던 송석석은 깜짝 놀랐다.서둘러 연왕비의 등을 살짝 두드려 주었다.그녀가 아무리 피를 닦아도 연왕비는 계속 피를 토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는 거의 기절한 채로 쓰러졌다.한편, 청작과 국춘은 당황한 기색이 없다.그리고 익숙하게 연왕비를 눕히고 침을 놓았다.약제를 갈아서 억지로 먹였다.하녀들은 바닥을 닦거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송석석은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두 손에는 모두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하녀가 손 새척에 필요한 물을 가져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시만자는 송석석을 두드렸다.“가서 손부터 씻어. 일단 침은 놓고 상황 보자.”송석석은 그제야 두 손을 물에 담갔다.몸은 울분에 이기지 못해 벌벌 떨렸다.연왕비가 아픈 건 알고 있었지만 심각한 상태 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서서히 서늘함과 두려움이 그녀를 감쌌다.이 느낌은 다름 아닌 가족을 잃는 두려움이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89화

    연왕비가 다시 흥분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청작이 그녀에게 침을 두었다.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도 같이 먹였다.시만자는 이혼장을 훑고는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청목암의 하인들이 다과를 대접했다, 곧이어 청작이 사람을 시켜 그들을 측원으로 안내했다.청작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청목암의 주지는 착한 사람이다.연왕비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동정하기 때문이다.방해도 받지 않고, 먹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살생과 육식을 금하고 있다. “고기 국물도 한 입도 못 마시는 게 말이 됩니까?”송석석이 걱정하며 말했다.“드려도 드시지 않아요.”청작이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값싼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밖에는 두꺼운 면 외투를 입었다.“황실에서도 잘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기 냄새만 맡으면 손사래를 치셨어요,채식을 하신 지 오래되셨습니다.”그녀가 말한 것과 시만자가 말한 것은 다름이 없었다. 연왕비 슬하에는 아들 한 명, 딸 두 명이 있다.마음으로 낳은 아들은 은혜를 베푸는 중이지만 아직 연락이 없다,하지만 직접 낳은 딸들의 행실은 불효가 확실하다. 연왕비가 왕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자신의 모친을 버리고 측비 김 씨를 따랐다. 김 씨는 그들에게 화려한 의복,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며,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주었다.혼사도 그러하다.두 사람은 모두 현주로 봉해졌지만 군주로는 아니다.게다가 연주에서 김 씨 집안은 그들의 모친의 집안보다 한 수 위다.연왕비는 한평생 ‘선’을 쫓은 사람이다.하지만 타인의 눈에는 그저 연약한 사람일지 모른다.심지어 자신의 딸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춘이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옥영 현주는 왕비를 무시하는 게 대다수입니다,심지어 황실에서도 몇 번 온 적 없지요.반대로 옥청 현주는 가끔 와서 왕비를 돌보러 옵니다, 하지만 왕비의 약이 자신의 옷을 더럽히면 화를 참지 못하십니다.”“게다가 원래 왕비를 모셨던 시녀와 하녀들은 모두 측비 김 씨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 온 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90화

    송석석이 고개를 들어 청작에게 물었다. “다른 진료 방법은 없는지요, 당신의 사부는요?”청작이 답했다.“당연히 오셨지요. 그저 아씨에게 알리지 않았을 뿐입니다.사부께서는 왕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만약 약이 끊기면 하루 이틀도 버거울 수 있다고도 하셨고요.”송석석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약이 끊겨서는 절대 안됩니다.”청작은 안타까운 듯 대답했다.“약을 먹어도 연말을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15일이 고비입니다.”송석석은 눈물을 흘러내렸다.그녀는 연왕비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단 신의와 홍작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약과 침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진통을 낮출 뿐입니다.”청작이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청작이 떠나보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연왕비에게는 각별한 안타까움을 표했다.얼마나 재수가 없으면 남편도 모자라 자신의 두 딸에게 버림을 받았을까.처갓집도 힘이 없고, 먼 곳에서 지내는 바람에 왕비를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평생 ‘선’을 쫓던 사람에게 어찌 이러한 결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만자야, 너는 내일 경성으로 돌아가거라.난 여기서 이모를 지킬 거야.”송석석이 눈물을 닦은 채 계속 말을 이었다.“이모를 쓸쓸히 두고 싶게 하지 않아.”하지만 시만자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다.“나도 여기서 있을 게. 하지만 몽동이는 저 나무집에서 지내게 해. 남자 손님을 위한 방이기도 해.”“하지만 이제 곧 설이야.외롭고, 조용해서 힘들 수도 있어.”“힘든 건 전쟁터에서 다 겪었어.”송석석은 손수건을 쥐면서 그녀의 말에 잠시 멍을 때렸다.‘연왕이 시만자와 혼인하려는 이유가 그녀가 전쟁에 참여 해서가 아닐까.’하지만 금방 생각을 가다 듬었다.만약 병권을 가진 왕이 그러한 생각을 가진 다면 이해가 가능하지만, 연왕의 부대는 병사가 고작 500명 밖에 없다.게다가 황제도 그를 감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 반역을 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91화

    “연왕부에 몰래 들어가서 해치워 버릴까 봐.”시만자가 뒤척이다가 한마디 뱉었다.“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폐하를 사살하면 네 가족 전체가 다 죽어.”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집안에서 혼사를 진행할까 봐 걱정인 거야?”시만자가 두 손을 머리 뒤로 두었다.“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부친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거야. 할아버지도 나를 예뻐하셔서 역시 동의하지 않으실 거고. 하지만 우리 가문은 명성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혼사가 필요해. 집안의 다른 사람들이 두 분을 설득할까 봐 두려워.”“하지만 두 분께서 동의한다고 해도 혼인하지 않을 거잖아.”“응, 안해.”시만자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하지만 내가 혼인을 하지 않으면 다른 집안 여인이 혼인하게 될 거야.나 때문에 희생하는 거잖아. 내가 그 꼴을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어? 특히 그 사람이 우리 집안이라면 더더욱 말이야.”그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보는 게 어때?"송석석이 물었다.“그러고 싶긴 한데 가진 않을 거야. 너의 선배가 사람을 두고 갔잖아. 홍현를 보내서 상황을 알아보게 하면 돼.”“그래.”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아침이 되자 송석석은 직접 죽을 끓여서 연왕비에게 가져갔다. 그녀가 먹여 준 덕에 어느새 연왕비는 반 공기를 해치웠다.국춘이 말했다.“이 정도는 많이 드신 편입니다. 평소에는 두어 입 드시고는 더 이상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인삼탕과 여러 귀한 약재가 아니었으면 벌써 세상을 떠나셨을 지도 모릅니다.”“대공자와 두 현자께서 오시면 금세 회복하실지도 모르는데...”“됐습니다. 대공자는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두 현자는 김씨한테 대들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청작이 말했다.그의 말에 송석석은 화가 나서 잠시 자리를 떴다.시만자가 그런 그녀를 보고 물었다.“어디가?”시만자는 외투를 껴입었다. 하얀 여우 털이 그녀의 턱을 가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92화

    보름 안에 황제가 직접 제천단에 참여해 성문, 시민들과 함께 불꽃놀이를 관람할 예정이었다.그리하여 황제와 조정들을 위해 경위와 순방영을 준비 시켜 놓고, 불꽃놀이를 바로 볼 수 있게 성루 외곽에 높은 대좌를 설치해야 했다.연왕비와 인사를 나눈 후, 송석석과 사여묵은 작은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몽동이가 하룻 밤 묵었지만 이불 배게 정리가 확실하게 되어 있었고 탁자와 의자도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송석석은 연왕비의 상황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이혼장 이야기에 사여묵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황당하오. 아들이 없고 질투심이 많다는 게 이혼 사유 라니. 누가 이 터무니없는 말을 믿어 주겠소?”“하지만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납득만 할 이유입니다.”송석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다.“그리고 시만자와 혼인을 하려 하다니, 연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소이다.”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비상적인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송석석과 마찬가지로 만약 진짜 일이 일어난다면 연왕의 권력은 곧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시씨 가문은 강남의 유명 집안이다. 비록 진성에서 관직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각 지방 관료는 적지 않았다. 게다가 시씨 가문은 장사를 크게 했다. 나라의 부와 맞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상국 제일의 부유 집안은 확실했다. 그러나 오로지 재물만 보면 측비 김씨가 훨씬 우위였다.그가 시씨 집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지 금전만은 아니었다. 정확히 시만자를 고른 이유도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유의 하겠소.”사여묵이 잠시 멈칫했다. 그는 자신도 황제에게 경계 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더 떠올렸다.“그저 은밀히 살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송석석은 그가 남강전쟁에서 겪었던 고난을 떠올렸다. 모두가 찬양했지만 사실상 폐하의 의심을 받아 병권마저 뺏겼었다. 만약 그가 연왕을 조사하다가 들키면 폐하에게 또 의심을 사게 된다.그녀는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차라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393화

    연왕비는 세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밖을 잠시 바라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명심하거라. 그 사람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야. 아마 장공주랑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야.”송석석이 깜짝 놀랐다.“네?”그녀는 하인들을 급히 내보내고 시만자를 시켜 문을 지키도록 부탁했다. “이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연왕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어서 나오는 말투에는 두려움과 서늘함이 섞여있다.“수년 동안 연주에서 몰래 군사를 모으고 있었어. 그 군자금은 장공주와 측비 김 씨가 대주고 있고. 지금 군사들을 옹현에 숨겨 두었을 것이야.”송석석은 옹현을 알고 있었다. 그곳은 장공주의 봉지이자 선제가 준 혼수였다.“절대로 그의 눈에 띄어서는 안 돼. 또한 그와 적이 되어서도 안 되느니라.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야.”말을 끝내자 연왕비의 기운이 약해졌다. 어쩌면 많이 두려웠던 모양이다.“요 몇 년 동안 그가 첩을 아끼고 본처를 싫어한다는 소문은 들어 봤겠지? 사실 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나쁜 평판을 일부로 만들었던 것이야.”송석석은 등이 서늘했다.사실 모두가 연왕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황제가 아무리 사람을 보내 감시한다고 하여도 장공주의 봉지인 옹현을 주의 깊게 볼 리가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장공주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강한 이유를 찾아냈다.그렇게 연왕비는 말을 끝내고 다시 잠에 들었다.섣달 스무여드레가 되던 날에 연왕비의 정신이 유난히 또렷했다. 점심으로 반 공기 가량의 죽을 드시고, 저녁도 반 공기를 먹었다. 도중에 그릇에 죽을 추가하기도 했다.송석석은 연왕비의 병세가 나아진 줄 알고 기뻐했다. 그녀는 왕비의 손을 잡고는 겨울이 지나면 다시 오겠다고 전했다.그 말에 연왕비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그렇게 하려무나.”송석석은 기쁜 마음에 젖어 청작과 국춘의 한숨은 보지 못했다.어느덧, 밤이 되었고 국춘이 문을 두드렸다. 동시에 울먹거리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

Latest chapter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1화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90화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9화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8화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7화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6화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5화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4화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83화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