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은 송석석과 대결에서 패배한 뒤, 많은 병사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이방의 편을 들었던 것 때문에 같이 곤장을 맞게 된 여러 장군은 이방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다행히 그녀 휘하의 병사들은 여전히 그녀를 존경했다. 특히 그녀와 함께 공을 세웠던 300명의 병사의 충성심은 남달랐다.녹분성의 공로로 병사들도 상금을 받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들만큼은 이방에게 충성할 것이다.게다가 그들 사이에는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공통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충격에 이틀 꼬박 앓아누웠던 이방은 서서히 기운을 차렸다.그녀에게는 아직 남편이 있다. 그녀는 공을 세울 수 없는 처지지만, 전북망은 달랐다. 그가 공을 세우면 이들 부부의 영광이 된다. 그때가 되면 그녀는 군을 이끌고 전북망이 적을 죽이고 공을 세울 수 있게 도울 것이다. 전북망이 공을 세운 뒤, 이방을 살려달라고 청하면 된다.흥분에 겨운 이방이 전북망에게 황급히 말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제가 군을 이끌고 따라갈게요. 당신을 도와 적을 처단할 겁니다. 당신이 공을 세운 뒤, 황제 폐하께 절 살려달라고 간청해주세요. 북명왕의 손이라면 하늘을 가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한참 동안 침묵하던 전북망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장군.” 기운 없어 보이는 전북망을 발견한 이방은 미간을 찌푸렸다. “후회되세요?”전북망이 물었다. “무엇을 후회한단 말이오?”“저와 혼인한 것을 후회하세요?”전북망이 서둘러 이방의 눈빛을 피했다. “아니요.”이방은 그의 어깨를 잡아 시선을 마주했다. 전북망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제가 송 장군보다 미천한 출신이고, 뛰어난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명망 높은 가족도 없지요. 귀한 국공부 금지옥엽 아씨가 기어코 이런 전쟁터에서 고통을 겪는 절 무시하는 거예요. 자기보다 잘난 것 없는 절 깎아내려 서방님께서 저랑 혼인한 것을 후회하게 하려는 겁니다. 그러니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세요.”“알았소.” 전북망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긴장한 마음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송석석도 연일 진법(陣法) 훈련에 몰두했다. 1만 5천 명의 현갑군은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공격(進攻)하고 한 조는 수비(防守) 한다. 각 조는 10개의 소대(小隊)로 나뉘어, 수비조와 공격조를 합치면 총 20개 소대였다.송석석이 세운 작전은 다음과 같다. 먼저 5개 공격 소대가 행동을 개시하면 5개의 수비 소대가 신속하게 교대하고, 수비가 안정되자마자 즉시 순환 공격 작전을 펼치며 진공하는 것이다.며칠간의 훈련은 효과가 있었다.이젠 무기도 갖추어졌다. 방어하는 사람은 방패(盾牌)와 단도(短刀)를 공격하는 사람은 창(長矛)을 들었다.원수는 곧 공격을 개시할 거라고 모두에게 알렸다. 현갑군은 선두부대로 공성작전(攻城方案)을 일일이 준비해야 했다. 전북망은 이 과정에 협력하기로 했다. 1만 명이 사다리를 올리고 투석기(投石機)를 미는 과정을 총괄했다. 그리고 전쟁 전에 원수와 협조사항을 논의했다.사실 현갑군은 그렇다할 의견이 없었다. 대체적으로 원수가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야지에서 훈련을 하며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는 형식이었다.전북망은 송석석이 무공이 뛰어난 여인인 줄은 알았으나 훈련 과정에서 직접 목격한 그녀의 모습에 그는 깜짝 놀랐다. 송석석은 전술병법(戰術兵法)을 상상 이상으로 잘 만들었고 일부 미세한 문제점은 신속하게 방안을 생각해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전북망은 그녀가 진지하게 계획을 짜는 모습을 회의 도중 여러 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일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첫 만남 때보다 훨씬 예뻤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전북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후회라는 두 글자가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요동쳤는지 모른다.회의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난 송석석은 다시 평소처럼 차갑게 변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의견이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해주시지요.”전북망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연결된 얼굴선을 바라보던 그가 낮은 목소
전북망이 담담하게 물었다. “나랑 혼인을 한 건, 날 진심으로 좋아해서요, 아니면 그대 모친께서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이오?”“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알고 싶소.”송석석이 눈썹을 찡그렸다. “장군은 지조가 없나 봅니다. 제 서방이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 장군의 부군이 된 지금도 여전하네요.” 그윽하게 송석석을 바라보던 이방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러니까 한 번도 날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군. 부모님 바람대로 내게 시집을 왔단 것이군. 첩을 들이겠다는 말에 곧장 궐에 가 이혼을 요구했잖소. 내게 아무 감정이 없었던 거로군. 매정한 것은 그대인데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저버렸다고 여기잖소.”송석석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장군부에 들어선 순간부터 전 시댁 부모님을 섬겼지요. 단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예를 갖추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출정 전엔 내게 기다리라고 당부하더니 1년 뒤 공을 세워서 돌아오자마자 첩을 들인다고 했지요.”“전 며느리로서, 부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했습니다. 장군부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올 때 까지 단 한 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할 수 있나요? 우리가 한 약조를, 우리 어머니에게 한 약조를 저버린 게 부끄럽지 않아요?”전북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송석석은 얼빠진 표정에 숨 막히는 기분이 들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전북망은 전쟁에 대해 얘기를 하는 줄 알았으나 상상 밖의 얘기를 꺼냈다. 송석석은 지나간 과거를 들추는 그를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 자리를 벗어났다.전북망은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저 여인을 탓해? 무슨 자격으로 애정을 요구하지?’이미 지난 일이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다. 이제 와서 옳고 그름을 따져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그녀 말대로 전북망은 지금 이방의 부군이고 그녀를 신경 쓰며 행동해야 한다. 송석석은 남이다. 이방을 저버리면 안
공성작전은 잔혹했다. 그들은 시몬 성벽 위에서 궁노기로 아래에 있는 병사들에게 겨누었다. 이전의 작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경공(輕功)이 뛰어난 사람이 성벽 위로 날아갔다. 그러나 시몬은 성벽을 보강했고 전보다 많이 높아졌다. 사국 국민은 불과 10일 만에 성벽을 높게 쌓아올렸다. 결국 높은 성벽까지 날아갈 수 있는 사람은 사여묵, 송석석, 시만자, 신신뿐이었다.방 장군(方將軍)도 처음엔 날지 못했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적군의 창이 휘청거리는 방 장군에게 향했고 방 장군은 아래로 떨어졌다. 보다못한 시만자가 한쪽 발로 채찍을 던졌고 처음에도 날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여러 차례 날아갔지만, 적의 창을 굳게 서지 못하여 곧장 아래로 넘어갔고, 시만자는 그 모습을 보고 적을 한 발로 차서 채찍을 던져 방 장군의 몸통을 묶은 뒤 끌어올렸다.시만자는 방 장군을 구하기 위해 빈틈을 보였고 신신은 즉시 그녀를 엄호해 날아오는 창을 막았다. 송석석과 사여묵은 적군의 궁노기 두 개를 파괴했다. 송석석이 현갑군에게 외쳤다. “투석기를 던져!”필명이 명령을 전했다. “투석기를 던져라!”전북망의 군대가 가지고 온 무기도 당도했다. 현갑군과 전북망은 무기를 인계받았다. 필명은 눈앞의 익숙한 형체에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관찰했다. 무기와 함께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방이었다.‘이 장군은 후방에 있기로 한 거 아니었던가?’‘공격을 개시할 때, 이 장군이 병력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고 송 장군께서 말했었는데... 전 장군과만 협력하고 후방 대오는 무기 운송만 책임진다고 했는데...’그러나 필명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투석기를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커다란 바위가 성루 위로 날아가 부딪혔고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현갑군은 신속하게 사다리를 올렸다. 전에 훈련한 대로 사다리를 앞뒤로 나눈 뒤 첫 번째 방패 수비대가 먼저 올라갔고, 적군의 창을 방패로 막은 뒤 힘겹게 올라가야 했다.일정한
아래에서 돕고 있던 전북망은 이방이 병사들을 이끌고 온 것을 발견했다. 잠시 멍을 때린 전북망이 다급히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오? 원수님께서 목 장군(穆將軍)과 같이 후방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소?”“말했잖아요, 당신이 공을 세울 수 있게 돕겠다고요.” 이방의 눈에 살기가 느껴졌다. “이 성문을 먼저 뚫는 사람이 공을 세우게 될 겁니다. 송 장군에게 이 자리를 빼앗길 수 없어요. 나중에 병부와 황제 앞에서 내 얘기를 꺼낼 좋은 기회잖아요.”“하지만 군령을 거역하면 안 되오.” 전북망은 화가 살짝 났다.“당신이 공만 세울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요.”이방은 앞날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곤장은 맞아야 한다. 사여묵은 절대 그녀를 죽일 정도로 때리지 못한다. 그녀는 태후가 직접 호명한 제일 여장군이며 여자들의 위상을 올려준 사람이다.게다가 전북망과 송석석은 훈련을 한다는 명목으로 단둘이 오랫동안 있었다. 이방은 불안했다.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그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그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송석석이 아무리 능력 있어도 전북망이 공을 세우도록 돕지 않을 것이다.전북망은 이방에게 화가 났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현갑군에게 협조하라는 명만 내렸다.그러나 이방은 자신의 병사들에게 현갑군과 함께 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녀의 휘하에 있던 300명의 병사에게 내린 명령이다.자신의 병사들에게 앞으로 돌진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방에게 화가 난 전북망은 그녀를 홱 잡아당겼다. “제정신이오? 우리의 공성작전엔 계획과 절차가 있소. 당신 마음대로 움직인 건 쓸데없는 희생을 초래할 뿐이오.”“언제 그런 걸 신경 써요? 송 장군에게 공을 빼앗기지 않을 생각만 하세요.”이방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검을 치켜들고 소리켰다. “오라버니, 사람들을 데리고 저랑 같이 공격해요.”이진흥은 그녀의 휘하였기에 그녀의 명에 따랐다. 병사들은 앞다투어 사다리로 올라갔다.필명은 이 광경을
그녀의 발언에 전북망은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그들의 희생은 필요 없소. 현갑군이 성을 공격하고, 우리가 보조하면 되오. 정말 날 따르고 싶다면 병사들을 죽음에 내모는 게 아니라, 투석기에 돌을 싣게 하는 방법도 있단 말이오.” 그러나 필명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현갑군은 계속해서 사다리에 올라라. 현갑군이 아닌 자들이 사다리에 있으면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도 된다.”얼빠진 표정을 짓던 현갑군은 다시 사다리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다리에서 현갑군이 아닌 자들을 만나면 모두 잡아당기거나 걷어차서 아래로 떨어뜨렸다.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은 다칠지 언정 창에 심장이 관통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전북망은 이방을 옆으로 밀쳐냈다. “계속 울 거면 저쪽으로 가시오.”전북망은 빠르게 투석기 앞으로 달려갔다. “계속해서 돌을 투석하라.”이방은 눈물을 훔치며 진정했다. 그녀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자신의 병사들을 뒤로 물러나게 한 뒤 성이 뚫리길 기다렸다가 성문이 열리는 즉시 안으로 뛰쳐들어가 싸우기로 했다. ‘반드시 내 병사들이 공을 세워야 해. 송석석에게 빼앗길 수 없어.’‘서방님 후회하실 거예요.’한편, 사여묵과 송석석은 사다리 쪽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 그들은 활과 화살영을 파괴하려 했다. 하지만 수란키는 충분한 인력과 활을 준비했다. 하나를 파괴해도 또 다른 하나가 왔다. 화살이 밀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사여묵은 기회를 찾아 성문을 열어야 한다. 반드시 엄호가 필요했다. 적수가 많은 상황에서 혼자 나아갈 수 없었다.그리고 성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사여묵과 송석석 둘뿐이다. 시만자와 몽둥이는 혼자 성문을 열 능력이 되지 않았다.시몬의 성문은 아주 두터웠다. 철로 주조된 성문은 두 겹으로 보강되어 있었다. 3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 고리 모양의 벽체에서 수많은 화살이 쏟아졌다. 성문을 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사여묵은 송석석 혼자 이렇게 큰 모험을 감수하게 할 수 없었다. 궁수들이 교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여묵은 송석석의
전쟁은 시몬성 안에서 시작됐고 백성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였다.사국의 병사들이 여기 침입했을 때, 수많은 백성이 노예가 되었다. 아녀자들은 겁박과 모욕을 피할 수 없었다. 백성은 성이 뚫리는 게 얼마나 대규모적인 전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또 마음속 한편으론 북명군이 사국인들을 몰아내기를 바랐다.싸움이 한창 진행될 무렵, 이방은 대군을 데리고 성내로 진격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 전쟁터에 있는 여인이 그녀 혼자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여성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병부가 특별히 그녀를 위해 만든 것이다.그녀의 투구(盔甲)에는 빨간 두건이 있었다. 남자 병장들 못지않다는 상징이기도 했다.혼란스러운 전쟁 속에서 그녀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수란키도 그녀를 발견했다. 서경의 많은 병사도 그녀를 발견했다.그녀에게 맞서는 책략은 이미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싸우다가 도망을 치면 승부욕이 강한 이방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당장 쫓아가 그들을 죽이려 할 것이다. 이게 그들의 책략이다.전북망은 이방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장군, 쫓지 마시오!” 전북망은 이상 낌새를 알아차렸다. 양군은 시몬 시내에서 싸웠다. 도시 전체가 전쟁터로 변했다. 승패는 결정되지 않았고 적군은 후퇴한다는 나팔을 불지 않았다. 결국 앞으로 나아가며 싸울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후퇴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적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들은 서경 출신의 병사들이다. 전북망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경인들이 이방에게 적대심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릉관 협정 때문이라고 어림짐작했다. 입으론 이방을 믿는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론 이방을 의심했다.“이 장군, 돌아오시오!” 전북망은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쫓아가려 했으나 적군들 사이에 얽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싸움을 하면서 이방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이방도 전
수란키와 빅토르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채 높은 곳에 서서 지켜보았다.도체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희생당한 병사들의 피로 도시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이 전쟁의 대다수는 서경 병사들과 사국 병사들이다. 이 전쟁에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뿐, 어떤 전술도 소용이 없었다. 빅토르는 조만간 남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짐작했다. 시몬에게 패배할 것이다. 서경인들이 도우러 온 것은 상국인을 한 명이라도 더 처단하기 위한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이방이라는 여장군을 죽이는 것도 포함된다.그들은 상국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더욱이 사국과 남강의 분할을 바라지 않았다. 이곳에 온 대다수는 분풀이하기 위해서다.빅토르는 화가 났다. 서경인이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일찍이 패배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래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무수한 장병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빅토르가 수란키에게 싸늘하게 말했다.“분풀이하러 온 거면 도시 전체에 분풀이하는 게 어떻소?”그는 수란키가 상국인을 이토록 증오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성릉관 전쟁에 관해 들은 적 있다. 그 전쟁에서 서경 녹분성의 어느 마을이 몰살당했다고 했다.수란키가 분노에 차서 말했다. “전쟁은 백성에게 있어서 집이 풍비박산 나고 도처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큰 재앙이오. 그게 짐승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오? 설령 적국의 백성이라도 백성을 학살하는 건 똑같소.”빅토르는 멀리서 병사들이 핏물에 쓰러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마음 한구석이 초조했다. 더는 어떤 전술도 내놓을 수 없었다.“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소.” 빅토르는 살을 에는듯한 바람을 맞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백성이 죽어나는데, 당신은 상대에게 자비를 베푸는구려.”“진정한 무장은 전쟁을 싫어하오.” 수란키는 하늘에서 휘날리는 눈꽃을 바라보았다. “눈이 오는군. 승패는 이미 결정됐소. 더 많은 병력과 장군을 잃고 싶지 않으면 철수하시오.”빅토르가 물었다. “죽이고자 했던 사람은 죽였소?”수란키의 입가에 잔잔한
말을 하고 있을 때, 영태비가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을 초대했다. 송석석은 태후마마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그곳으로 향했다. 영태비는 문엄 황제의 빈이라 아들을 따라 봉지에 가서 복을 누려야 했지만 지금은 궁궐의 외딴곳에 홀로 남아 생활을 했다. 송석석이 고 공공을 따라 영수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설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몇 개의 전각이 아닌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되자 영태비의 병세가 악화되어 연왕의 아들인 사여령이 진성에 남았는데 오늘 입궁해서 조모의 곁을 지켰다. 송석석이 온 것을 보자 사여령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왕비님, 오셨습니까?”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큰 도련님도 계셨군요.” “네, 조모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 여령은 송석석 앞에서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고, 송석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태비께 인사를 올렸다. 영태비는 등에 비단 베개 두 개를 받치고 침대에 기대 있었는데 안색이 노란 데다 푸르스름했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풀어헤친 채 계속 누워있었던 탓에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송석석에게 말했다. “왕비, 어서 앉게.” 영태비는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힘이 없었다. 궁녀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자 고 공공이 말했다. “왕비님, 앉으십시오. 태비마마께서 몸이 허약해서 말소리가 크지 않으니 가까이 앉으셔야 들을 수 있습니다.” 송석석은 태비마마께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낫지 않을 것이다.” 영태비는 말을 하며 입술에 립밤을 좀 발랐는데 혈색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창백해 보였다. 송석석은 영태비를 위로했다. “잘 치료한다면 금방이라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전 중의 숯불은 아주 따뜻하게 타올라서 송석석은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태우는데도 연기 한 점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아 좋은 숯임을 알 수
혜태비는 궁에 들어오자마자 덕귀태비와 제귀테비를 찾아가 정원을 노닐었다. 혜태비는 홍보석 장신구가 오늘 피부색을 잘 받쳐주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태후마마에게 문안을 드리러 태후전에 들어갔는데 많은 명부들 또한 때를 지어 태후에게로 왔다. 마침 방시원의 어머니인 오수인도 태후에게 인사를 드리러 궁으로 들어왔는데, 태후가 이렇게 많은 명부들 앞에서 방시원의 혼사를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았다. 오수인은 마음속으로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감히 태후 앞에서 하소연하지는 못했다. “태후마마, 혼인을 조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시원이 고생이 많구나. 이유 없이 이런 일에 연루되고, 너희 집안은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데 하필이면 그 사람들 때문에 발칵 뒤집히다니.” 오수인은 그제야 태후께서 왜 갑자기 그 말을 물으셨는지 알았다. 알고 보니 방시원과 방 씨 가문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복이 천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거라. 그는 우리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자 황은을 받들고 있는데 복이 천박하다니? 그의 운명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예, 태후마마께서 좀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다소 조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었는데, 지금 현장에 있던 명부들의 오수인을 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하지만 태후께서 말씀을 하시니 상황이 달라졌다. 태후는 방시원을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라고 평가했다. 여태껏 조정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방시원을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총명한 사람이기에, 태후의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러니 앞으로 아무도 감히 방 씨 가문을 무시하지도, 함부로 입에 담지도 못할 것이다.태후마마께서는 방시원의 얘기를 길게 하지 않고 다른 가문의 일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보이지 않자
제황후는 그녀에게 대황자와 공주를 데리고 나가 놀라고 하고 제자예의 어머니인 경 씨를 불러들였다. 경 씨는 방시원의 일을 듣고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황후마마, 그는 자예보다 나이도 훨씬 많아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광릉후의 향삼랑이 젊은 나이에 능력까지 있어 벌써 거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비록 작위를 물려받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능력에 제 씨 가문의 추대를 더하면 반드시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삼랑은 풍채가 넘치는 데다 올해 열아홉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작년에 과거에 진급했으니 진사에 급제를 하기만 하면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 경 씨의 말이 끝나자 란주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부인, 제 씨 가문의 아들 중 출세한 사람이 많습니까?” 그러자 경 씨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많지요. 우리 제 씨 가문의 아들들 중에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셋째 집이 가장 모자라지만 제수찬도 공주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셋째 삼촌은 모자란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탓에 그런 것 입니다. 머리를 다치기 전엔 아주 총명했답니다. 우리 제 씨 가문엔 모자란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큰 가문에 아들들은 모두 뛰어나고 이미 벼슬에 들어간 사람과 곧 벼슬에 들어갈 사람도 적지 않지요. 그렇다면 외가에 의해 올라온 향삼량이 무슨 좋은 벼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무심한 듯 계속 말했다. “사위가 아들과 앞길을 다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황후의 말을 들은 경 씨의 표정이 순간 엄숙하게 변했다. 그러자 란주가 말했다. “맞습니다. 부인, 사람은 많고 벼슬은 한계가 있으니 차라리 아가시의 사위는 제 씨 가문과 달리 다른 길을 개척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시원의 나이가 좀 만긴 하지만 벌써 삼 품 총병까지 올라갔고 어머니도 고명을 받았으니 아가씨께서 시집을 가 고명을 받으면 젊은 나이에
동지 날, 궁에서 단합연회를 열기 전에 내외 명부들이 입궁하여 문안인사를 올렸다. 태후께서는 평소에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이 날은 명부들의 방문을 허락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황후는 먼저 와서 함께 있다가 다시 장춘궁으로 돌아가 친정 식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정어머니인 제대부인은 입궁하지 않고 오히려 숙모와 사촌 여동생들이 몰려왔다. 물어보니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바람을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입궁을 하면 황태후께 문안을 드려야 할 텐데 태후에게 병을 전염시키면 큰일이라 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황후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번에 어머니가 공방의 일을 말했는데 거절을 한 탓에 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황후는 실망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고 란주에게 몇 마디와 효심을 전하라고 분부했다. 번잡한 예절이 끝난 후, 황후는 작은 사촌 여동생을 남겨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자예는 여학에서 주 장군의 손녀인 주창우와 광릉후의 막내딸인 향회옥과 함께 소란을 피워 안여옥을 못살게 굴었던 사람이다. 한바탕 혼쭐이 난 후부터는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가끔씩 안여옥을 격분시켜 다른 사람에게 성격이 조급하다는 말을 듣게 하려고 했다. 그해서 여학의 명성에도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제자예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사촌 언니, 국태부인은 너무 무섭습니다. 심 선생도 저를 엄하게 꾸짖었으니 나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둡시다. 태후에게까지 알려지면 언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황후는 몸을 반쯤 기울인 채 담담하게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여학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느냐? 황제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여학이 설립되었을 때 황제는 송석석의 형세가 너무 세 질까 봐 걱정했단다. 다만 여학이 태후의 뜻이었기에 공개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워 수단을 써서 여학의 명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태후가 원망을 하더라도 송석석이 훈장 노릇
고 공공은 울면서 무릎을 꿇고 공주를 부르더니 땅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치매에 걸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고 공공은 한바탕 울고 나서야 찬합에서 떡 한 접시를 꺼냈고 유은이 검사해 보겠다고 하자 만소가 말렸다. “왕야께서 떡은 검사할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 공공은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 한 입만 드십시오. 이건 영태비께서 특별히 저에게 부탁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공주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떡입니다. 아직 많이 있으니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사온은 영태비의 이름을 듣고서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드러웠으며, . 눈가에도 검푸른 색깔이었지만 눈시울은 붉어졌다. “내려놓거라.” 그녀는 이가 없어 발음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옷도 한 벌 가져왔는데 제가 입혀드리겠습니다.” 고 공공은 옷을 받들고 와서 더러운 사온의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를 일으켜 부축해서 들어갔다. 그러자 유은은 다급하게 만소와 고 씨 유모를 보며 물었다. “들아가보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옷을 바꾸게 둡시다.” 만소는 말하며 떡 한 조각을 소매 속에 숨겼다. 유은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왕야님과 왕비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상관하지 않았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고 공공은 사온을 업고 나왔다. 사온은 옷을 갈아입었는데 몸이 너무 말라서 옷이 헐렁해 보였다. 고 공공이 그녀를 떡 옆에 내려놓자 그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때 만소가 말했다. “자, 이제 유 대인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십시오.” 고 공공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사온을 보더니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사온은 고 공공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문이 닫히고 나서야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만소는 떡을 들고 약왕당에서 청작을 찾아 독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왕야와 왕비에게 보고를
염선생 측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 몇몇 용의자를 특정했고, 사람을 시켜 그들의 동태를 밀착 감시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무상은 연주로 돌아간 후 회왕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시씨 가문에도 방문하지 않아 정말로 깊이 숨어서 들어간 것 같았다.현재 들어온 단서에 의하면, 사병들은 한때 옹현에 있었으나 이후 매우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 과정에서 많은 물건을 남겨두고 갔다.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연주 지역은 본래 분열되어 있었으나, 무상이 돌아간 이후 세력이 다시 결집되었다. 지방 관료들은 연황실을 자주 드나들며 잔치를 즐기고 술자리를 벌이며 매우 즐겁게 지냈다.이 명단은 사여묵의 손을 거쳐 숙청제에게 전달되었다.그러나 여전히 그곳은 군주가 없는 상태로 보였다. 그렇다고 회왕과 무상을 군주로 볼 수도 없었다.숙청제는 사여묵과 논의한 끝에 연왕을 서둘러 연주로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왕은 적어도 현재 무상의 세력을 억제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무상이 연왕의 손에서 권력과 자원을 완전히 빼앗으려면 그곳에 연왕이 없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연왕이 연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쌓아온 인맥과 자원은 여전히 연왕의 손에 있기 때문에, 무상이 그것을 차지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숙청제는 연왕에게 부상을 회복했으니 연주로 돌아가라는 교지를 내렸다.연왕은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그는 연주의 상황을 심히 걱정했고, 시씨 가문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깊이 고민해왔다.교지가 내려지자 그는 영태비께 작별 인사를 드릴 겨를도 없이 짐을 싸서 가족들과 함께 바로 진성을 떠났다.그는 신체에 장애를 입었고 그 방면에서도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한동안 침체된 시간을 보낸 후 오히려 투지가 되살아났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망을 품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어느 정도 명예를 중시했기에 세상을
사여묵이 말했다. “맞다, 전에 최씨 부인이 부탁한 일 말이오, 오사형이 동의했소?”송석석이 대답했다. “오사형에게 이야기했는데 생각해보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아요.”"내 생각엔 그에게 이 일을 알려서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좋겠소. 그가 예전에도 최씨 부인이 내놓은 점포들을 산 적이 있는 걸로 보아 평서백부를 도울 의향이 있었던 걸로 보이오."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평서백부를 돕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저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돕고 싶었던 것뿐이겠죠.”며칠간 많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송석석은 점점 과거 노부인이 왕전의 계획에 관여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 한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오사형을 찾아갔고, 오사형이 불에 타 죽은 것을 발견하자 왕전에게 분노를 돌린 것 같았다. 분명 이 죄책감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이는 그녀가 오사형을 만나고 나서 이야기를 지어내어 용서를 구했지만, 정작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였다. 심지어 오사형에게 보상하겠다고 말한 후에도 사람을 보내 소식을 묻지도 않았다.그녀는 단지 마음의 안정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녀 곁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에게는 왕표나 왕청여처럼 깊은 감정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그럼 제가 오사형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송석석이 말했다.왕이장은 송석석의 말을 듣고 차갑게 욕을 퍼부었다.“뭐라고? 남강에서 첩이랑 호강하며 지내고 있다고? 애까지 배서 부인 행세를 하고 있다니, 그럼 진성에 있는 본처는 뭘로 보는 것이냐? 식모 취급하는 거냐?” “아마 최씨 부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탁을 한 거죠. 오사형, 이제 오사형이 어떻게 하실 건지에 달려있어요.”왕악장은 더 이상 두말하지 않고 말했다."최씨 부인에게 전해. 내일부터 바로 시작하라고. 넘길 수 있는 건 전부 넘기라고 해. 이 일을 굳이 조용히 처리할 필요는 없어. 백부 쪽에서 지출이 너무
다음 날, 전북망은 소위 합동 훈련이라는 것이 병력 배치나 전술 훈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9월은 겨울 밀을 심기에 적기였다. 남강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지역으로, 물자가 여전히 부족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인구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에 병사들이 농사를 돕게 된 것이다. 밀 외에도 배추, 무, 과일 등을 심기도 했다.방천허는 전북망이 마침 좋은 시기에 도착했다며 서둘러 가서 합류하라고 말했다.전북망은 하루 종일 농사일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필명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진성에서 전북망의 편지를 받은 필명은 편지를 본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우리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가?' 편지에는 자잘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어 무려 3장이나 되었다. 대부분은 전에 전북망이 술에 취해 늘어놓았던 말들과 비슷했다.전북망은 원수부에서의 생활을 적으며 원수부가 얼마나 호화롭고 웅장한지 왕실조차 능가할 정도라고 표현했다.그는 원수부에 하인들이 구름처럼 많고 임신한 주모를 모시고 있으며, 그녀가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사치스러워 천금에 맞먹는다고 묘사했다.또한 농번기로 인해 현재 병사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가 끝난 뒤에야 훈련이 시작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병사들의 피부는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원수는 돼지처럼 하얗다고 비꼬기도 했다.뒤죽박죽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은 뒤, 평서백 부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그 말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고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이어갔다.편지를 읽던 필명은 전북망이 왜 이런 말을 적었는지 눈치챘다. 평서백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그녀가 마음 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필명은 전북망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평서백 부인처럼 현명한 사람이 왕표의 상황을 모를 리가 있나?'그러나
왕표는 전북망이 자신의 위엄을 충분히 보도록 한 뒤에야 그를 불러들였다.남강에 머문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왕표는 살이 많이 쪘다. 비록 과도한 비만 상태는 아니었지만, 호랑이 가죽이 깔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턱 밑의 주름이 겹겹이 드러났다.그는 높은 자리에서 전북망을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너와 왕청여의 일은 이미 들었다. 그래, 너같이 평범하고 포부도 없는 자는 내 여동생과 어울릴 자격도 없지."전북망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 없이 한마디 대꾸만 하고 입을 닫았다.왕표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꾸짖었다."네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 현철위 부사령관이었지만 결국 관직에서 쫓겨났으니. 장군부는 정말 무능한 자들로만 가득 찼구나. 네 조부께서 하늘에서 너희 같은 무용지물을 보고 계신다면 눈을 감지 못하실 거다."전북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는 핏줄이 드러났다."불만이면 어쩔 거냐? 너희 장군부에서 나온 인간들이 대체 어떤 꼴이 났는지 봐라. 그리고 너 자신만 봐도 여자 하나한테 휘둘려 이 지경이 됐으니. 앞뒤로 세 명의 여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지 않냐……쯧,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다 구겨놨다!”왕표는 지금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그의 곁에는 절세미인이 있었고, 그 미인은 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 이전에도 왕표는 남강에서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 손에 넣었다.언제나 여자들이 그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을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전북망을 깔보았다.위세를 충분히 떨친 뒤 왕표는 물었다."진성 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이냐?"전북망은 대답했다."큰일은 없습니다."왕표는 의자 팔걸이를 매만지며 입가에 냉소를 띠고 말했다."그래? 그럼 여기로 오기 전에 최씨를 본 적이 있나?"전북망은 고개를 들고 답했다."원수께서 말씀하신 게 평서백 부인 입니까?"왕표는 그의 의도적인 물음 속 뜻을 간파하고 냉소를 지었다."왜? 내가 내 여자를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