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남준은 상황을 보더니 숨기지 못하고 솔직하게 말했다.“회장님께서 점심에 바쁘시다 보니 식사를 못 하셔서 위병이 도졌어요….”말미에는 여준재의 경고하는 눈빛 때문에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물론, 고다정도 두 사람 사이의 작은 눈짓을 놓치지 않고, 화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그녀는 여준재를 노려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자기 몸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남준 씨가 고자질 하는 건 싫은가 봐요?”“몸을 돌보지 않은 게 아니라, 오늘 바빠서 잊었을 뿐이에요.”여준재가 다급하게 변명했지만 고다정이 들을 리 없었다.그녀는 여준재에게 대꾸하지 않고 남준에게 말했다.“오늘 밤 수고하셨어요. 늦었으니 여기서 하룻밤 묵으세요. 게스트룸은 다 정리해놨어요.”“알겠습니다.”남준도 거절하지 않았다. 확실히 늦은 시각이라 차로 돌아가려면 반 시간이나 걸릴 것이다.남준을 방에 안내한 뒤 고다정은 여준재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먼저 씻고 나와요, 난 침을 가져올게요. 잠시 후에 치료해줄게요.”“고마워요, 우리 마누라. 고생이 많아요.”여준재가 고다정을 끌어안고 입술에 짧게 뽀뽀했고 고다정은 눈에 힘을 준 채 가볍게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수작 부리지 말아요. 오늘 일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요!”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약방으로 향했다.몇 분 뒤, 침과 한 병의 약을 들고 돌아왔고 이미 여준재는 씻고 난 뒤 샤워가운을 입고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그녀의 발걸음 소리에 여준재는 지친 눈을 뜨며 말했다.“왔어요?”불편해 보이는 여준재의 모습에 고다정의 화는 걱정으로 바뀌었다.최근 며칠 동안 여준재는 YS그룹의 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우 하이테크를 도와주느라 바빴다.게다가 아이들과 놀러 갔을 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산을 오르고 나무를 타 댔으니...“약 먹어요. 앞으로 매일 식후 한 알씩 먹어야 해요.”말하면서 고다정은 손에 든 약병을 건네주었고 여준재는 더 긴말 없이 약병에서 약 한 알을 꺼내 먹었다.고다정은 그런 여준재를 바
말을 할수록 고다정이 점점 더 화를 내는 것 같아 보이자, 여준재는 급히 사과했다.“잘못했어요, 앞으로는 몸을 잘 돌볼게요.”“그 말, 벌써 몇 번이나 들었어요. 하지만 매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잖아요.”고다정은 여준재의 사과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여준재는 그녀의 반응을 보더니 더욱 민망해져 다시 약속했다.“이번에 마지막일 거에요.”고다정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고 이에 여준재도 더욱 민망해져 말했다.“각서라도 쓸까요?”왠지 모르게 그의 말을 듣고 고다정의 머릿속에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서재에서 각서를 쓰는 여준재의 모습이 떠올랐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웃었으니 화가 풀렸다는 거죠!”여준재는 고다정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안도했고 고다정은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천만에요. 각서는 면제되지 않아요, 한 시간 뒤에 각서를 갖고 와야 할거에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오만한 태도로 자리에 앉아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오늘 회사에 가기는 글렀기 때문에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집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여준재는 고다정이 전화하는 것을 보고 방해하지 않았고, 눈길을 계단에서 내려오며 웃음을 참는 남준에게로 옮겼다.분명 그들의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웃어?”여준재는 불쾌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고 남준은 자신의 상사인 여준재의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하며 등이 서늘해졌고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전혀요. 위층으로 가서 펜과 종이를 가져오겠습니다.”그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고 여준재는 피식 웃으며 결국 그를 막지 않았다.한 편, 전화를 끝낸 고다정은 옆에 앉은 여준재를 바라보며 어젯밤 미처 말하지 못했던 협력 제안을 꺼냈다.“아 참 준재 씨, 어제 회사의 기술 담당자가 이전 회사 제품에서 한 봉인된 연구 프로젝트를 찾아냈어요. 자료 분석에 따르면, 이 연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수익이 상당할 것 같아요. 하지만 신우 하이테크는 그 정도의 자금을 조달하기
여준재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한 것을 말했다.“이 연구 프로젝트 정말 괜찮네요. 두 회사가 협력한다면 분명히 서로에게 윈윈일 겁니다. 전 초기에 2천억을 투자할 생각이고, 수익 분배는 50:50으로 하죠.”“안 돼요, 50:50은 동의할 수 없어요.”고다정은 여준재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신우 하이테크는 자금도 없고 기술 인력도 없어요. 이런 분배는 YS 그룹에 너무 손해예요.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도 없어요. 저한테도 조금은 돈이 있으니까요.”“이 프로젝트는 큰 자금이 소요돼요. 2천억은 많은 게 아니에요. 기술 인력이 없다고 했지만, 그것도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는 사람을 뽑을 수 있잖아요."여준재는 고다정과 50:50으로 분배하겠다는 마음을 굳혔고 그의 말에 고다정은 기술 인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다만 고다정은 여전히 50:50 분배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여준재는 어떤 말을 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그녀를 설득하기까지 했다. “이 프로젝트, 사실 어젯밤 남준이 저한테 말했어요. YS 그룹의 팀이 평가해봤는데, 50:50으로 해도 YS 그룹은 손해 보지 않을 거예요. 이 프로젝트가 완전히 개발된다면, 수익은 최소한 2조 원에 달할 거예요.”“그렇게 많아요?!”고다정은 여준재가 말한 수익에 놀라 감탄했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여준재가 말한 정보를 간과했다.여준재는 그녀의 놀란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결국, 당신 아버지가 진짜 보물을 알아보지 못한 거군요. 당신이 그렇게 큰 이득을 얻게 될 줄은 몰랐을 거에요.”고다정은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고경영은 보물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시야로 인해 이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를 봉인해버렸다.이런 생각에 그녀는 더는 여준재와 수익 분배에 대해 논쟁하지 않았다.다음 날, 두 회사는 공식적으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계약이 공식적으로 효력이 발생한 후, 여준재는 준비한 2천억을
다음날, 신우 하이테크에는 많은 젊고 활기찬 사람들이 찾아왔다.이들은 여준재의 조언에 따라 고다정이 회사로 불러 면접을 보러 온 지원자들이었다.현장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질서가 잘 유지되었고, 모두들 차례를 기다리며 면접을 준비했고 기다리는 동안, 지원자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하지만 면접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엄격했다.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고다정 뿐만 아니라, 여준재도 면접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면접을 보러 온 지원자들은 여준재와 고다정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로 두 사람의 지위가 남다름을 알 수 있었다.특히 여준재를 '여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업계에서는 신우 하이테크 YS 그룹과의 관계가 잘 알려져 있었고, '여 대표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역시나 이로 인해 면접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고 여준재는 고다정과 함께 여러 인재들을 선별했다. 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막 졸업한 사람들이었지만, 학습 능력과 실제 작업 능력은 매우 탁월했으며, 잠재력이 컸다.관리직 인재들에 대해서도 여준재는 고다정에게 두 명을 추천했다.거의 퇴근 시간이 되어갈 무렵, 면접이 마무리되었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와 말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네요, 이제는 연구 개발을 시작해야겠어요. 좋은 길일을 정해서 시작할까요?”“프로젝트를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이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리게 하고 나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여준재는 고다정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계획을 제시했고 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며 말했다. “우리가 이 사람들과 비밀 유지 계약을 맺었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게다가 이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인재들이고, 모두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중요해요.”고다정은 그의 말에 동의하며 그의 제안대로 하기로 결정했다.그 결과, 신우 하이테크는 한 달이 지
“오늘 이 기자회견을 개최한 이유는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신우 하이테크는 한 혁신적인 기술을 발견했으며, 현재 이미 절반 정도 완성된 상태입니다. 이 기술이 개발 완료되면, 미래의 전자 시스템에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입니다...”대형 TV 화면에서는 고다정이 새로운 제품의 발표회를 진행하고 있었다.자신감 넘치고 능숙한 그 여성을 보며, 고다빈은 질투심에 가득 차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어졌다.“왜 저런 천한 년은 운이 항상 그렇게 좋은 거야?!”그녀는 히스테리하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답변할 수 없었고 주변의 하인들은 그녀가 다시 날뛰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멀리 피했다.고다빈만큼이나 화가 난 사람은 심여진이었다.특히 심여진은 한때 자신에게 짓밟혔던 고다정이 이제는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며 더욱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강수지의 딸이 왜 우리 모녀보다 잘살고 있는 거야!고경영도 고다정이 신제품 발표회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파산 직전의 회사를 살려내고 새로운 제품까지 개발한 것에 대해 질투심을 숨길 수 없었다.하지만 곧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그의 생각에, 회사를 관리하는 것은 고다정이 아니라 뒤에서 조종하는 여준재였고 결국 고다정이 회사를 경영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새로운 제품에 대해서도, 그는 YS 그룹의 기술자들이 도와 개발했을 것으로 추측했다.그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누군가 사무실의 문을 노크했다.“들어와.”“회장님.”고경영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공손하게 보고했다. “이동수가 회사에 왔습니다. 긴급하게 회장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고경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동수를 만나기로 했다. “들여보내.”몇 분 후, 비서는 이동수를 데리고 들어오고는 바로 사무실을 떠났고 이제 사무실 안에는 이동수와 고경영만 남았다.고경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중요한 일이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지?”“고 회장님, 오늘 인터넷에 올라온 신우 하이테크의 신제
한편, 신우 하이테크의 신제품 발표회는 계속 진행되었다.고다정은 개회사를 마치고 뒤로 물러나 진행자와 기술부서의 사람들에게 자리를 넘겨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여준재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당연히도 현장의 많은 언론인들은 그들 둘을 보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진행자와 기술부서 직원들이 제품 성능을 소개하고, 현장의 기자들이 질문하는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은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고 회장님, 여 대표님, 개인적인 질문 몇 개 해도 될까요?”“죄송하지만, 오늘은 회사의 제품 발표회이기 때문에, 회사 제품과 관련 없는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이미 현장 기자들이 그들의 사적인 사항에 대해 질문할 것을 예상하고 사전에 대비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고 회장님, 좀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최대 세 가지 질문만 하겠습니다.”“안됩니다!”고다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여준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는 방금 말한 기자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더는 취재하고 싶지 않다면, 당장 보안 요원을 불러 당신을 내보내게 하겠습니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안 요원이 그 기자 쪽으로 다가갔고 기자는 보안 요원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급히 사과했다. “여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인배의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다음번은 없을 겁니다.”여준재는 그를 한 번 냉랭하게 쳐다보고는 보안 요원에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고 신호를 보냈다.고다정은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여준재에게 다가가며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 말이 맞았네요, 상상 밖으로 이 기자들 정말 집요하네요.”원래 두 사람이 세운 계획은 고다정이 기자의 질문에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천사’를, 기자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질문한다면 여준재가 나서 '악마'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아마도 방금 보인 여준재의 위엄
병원 VIP 병실 안.고경영의 이마에는 흰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붉은 피가 서서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병상에 앉아 옆에 있는 심 여진에게 물었다. “이동수는 어디 있어?”그 개 같은 이동수가 자신을 때렸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심여진은 그의 불편한 표정을 보며 다소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에 신고했으니 그가 도망갈 수는 없을 거예요.”이 말을 듣고 고경영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지만, 곧 다시 불쾌해졌다. “내가 사고를 당했다는데, 왜 당신 혼자 온 거야?”“다빈이랑 시목이는 이미 오는 중이에요."”심여진은 고경영의 뜻을 알아채고 서둘러 자신의 딸을 변호했다.고경영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고다빈에게만 알리고, 고다정은?”말을 하며 그는 갑자기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어쨌든 자신은 다정의 친아버지인데, 아비가 사고를 당한 걸 알면서, 딸로서 고다정은 왜 자신을 보러 오지 않는 걸까?하지만 심여진은 고경영의 생각을 알아채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다정이는 항상 우리를 싫어했잖아요. 전화해도 안 올 거예요.”“전화도 안 했으면서 어떻게 올지 안 올지 알아? 걔한테 내가 다쳤으니 보러 오라고 전해, 오지 않으면 기자에게 그녀의 불효를 말해버릴 거야. 여 씨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면, 나를 보러 오게 해.”고경영은 자신의 생각이 좋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아무리 그가 과거에 고다정에게 어떻게 했든, 그는 부모이며, 그녀에게 생명을 준 은인이었으니 고다정은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다정이 오면, 그는 어떻게든 고다정으로부터 새 프로젝트를, 아니, 신우 하이테크를 받아낼지 생각할 것이다. 고다정이 거절한다면, 크게 망신을 줄 계획이었다.심여진은 고경영이 마음을 굳힌 것을 보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꺼내 고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전화는 통하지 않았다.“고다정이 날 차단한 것 같아요. 전화가 안 돼요.”심여진이 휴대전
“누군가 아버지의 성과를 훔쳤다고요? 이게 무슨 말이죠?”고다빈은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심여진도 놀란 얼굴로 고경영에게 걱정스럽게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고경영은 숨김없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신우 하이테크에 대해 알고 있지, 그건 고다정이 내 손에서 빼앗아 간 거야. 그들이 오늘 발표한 제품은 사실 내가 기술진에게 개발하도록 했던 거야.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결국 봉인해야 했지. 이동수가 신우를 떠날 때 그 제품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 결국, 고다정이 그걸 발견했더라고.”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은 제품을 몰라보고 봉인했다는 사실을 숨겼다.그 말에 고다빈과 심여진은 듣고 나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어쨌든 그건 수조 원의 가치가 있는 제품이었으니, 그들은 차라리 폐기할지언정 고다정 그 년만 좋은 일을 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고다정이 어떻게 감히?!”“우리 고다정을 절도 혐의로 고소해요!”모녀는 입을 모아 말했다.고경영은 눈을 치켜올리며 두 모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준재가 있는데, 우리가 이길 수 있겠어?”그 말이 나오자 모녀는 침묵했다.하지만 고다빈은 불쾌함에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고다정이 우리 것을 가져다 돈을 벌도록 놔둬야 하나요?”“그럴 수는 없지!”고경영은 망설임 없이 반박했고, 잠시 침묵한 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사건에 여준재가 관여하고 있어. 우리가 제품을 되찾으려면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해.”그 말을 듣고 고다빈은 자신의 아버지가 분명 여준재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느꼈다.더군다나, 그녀는 고다정이 계속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다.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갑자기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아빠, 우리 굳이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그 제품은 우리 기술진이 개발한 거라고요. 우리가 직접 고다정에게 돌려달라고 하면 되죠. 원래 우리 것이니까.”“그 일이 네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아. 이 프로젝트에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