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VIP 병실 안.고경영의 이마에는 흰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붉은 피가 서서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병상에 앉아 옆에 있는 심 여진에게 물었다. “이동수는 어디 있어?”그 개 같은 이동수가 자신을 때렸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심여진은 그의 불편한 표정을 보며 다소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에 신고했으니 그가 도망갈 수는 없을 거예요.”이 말을 듣고 고경영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지만, 곧 다시 불쾌해졌다. “내가 사고를 당했다는데, 왜 당신 혼자 온 거야?”“다빈이랑 시목이는 이미 오는 중이에요."”심여진은 고경영의 뜻을 알아채고 서둘러 자신의 딸을 변호했다.고경영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고다빈에게만 알리고, 고다정은?”말을 하며 그는 갑자기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어쨌든 자신은 다정의 친아버지인데, 아비가 사고를 당한 걸 알면서, 딸로서 고다정은 왜 자신을 보러 오지 않는 걸까?하지만 심여진은 고경영의 생각을 알아채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다정이는 항상 우리를 싫어했잖아요. 전화해도 안 올 거예요.”“전화도 안 했으면서 어떻게 올지 안 올지 알아? 걔한테 내가 다쳤으니 보러 오라고 전해, 오지 않으면 기자에게 그녀의 불효를 말해버릴 거야. 여 씨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면, 나를 보러 오게 해.”고경영은 자신의 생각이 좋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아무리 그가 과거에 고다정에게 어떻게 했든, 그는 부모이며, 그녀에게 생명을 준 은인이었으니 고다정은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다정이 오면, 그는 어떻게든 고다정으로부터 새 프로젝트를, 아니, 신우 하이테크를 받아낼지 생각할 것이다. 고다정이 거절한다면, 크게 망신을 줄 계획이었다.심여진은 고경영이 마음을 굳힌 것을 보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꺼내 고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전화는 통하지 않았다.“고다정이 날 차단한 것 같아요. 전화가 안 돼요.”심여진이 휴대전
“누군가 아버지의 성과를 훔쳤다고요? 이게 무슨 말이죠?”고다빈은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심여진도 놀란 얼굴로 고경영에게 걱정스럽게 시선을 돌렸다.하지만 고경영은 숨김없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신우 하이테크에 대해 알고 있지, 그건 고다정이 내 손에서 빼앗아 간 거야. 그들이 오늘 발표한 제품은 사실 내가 기술진에게 개발하도록 했던 거야.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결국 봉인해야 했지. 이동수가 신우를 떠날 때 그 제품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 결국, 고다정이 그걸 발견했더라고.”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은 제품을 몰라보고 봉인했다는 사실을 숨겼다.그 말에 고다빈과 심여진은 듣고 나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어쨌든 그건 수조 원의 가치가 있는 제품이었으니, 그들은 차라리 폐기할지언정 고다정 그 년만 좋은 일을 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고다정이 어떻게 감히?!”“우리 고다정을 절도 혐의로 고소해요!”모녀는 입을 모아 말했다.고경영은 눈을 치켜올리며 두 모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준재가 있는데, 우리가 이길 수 있겠어?”그 말이 나오자 모녀는 침묵했다.하지만 고다빈은 불쾌함에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고다정이 우리 것을 가져다 돈을 벌도록 놔둬야 하나요?”“그럴 수는 없지!”고경영은 망설임 없이 반박했고, 잠시 침묵한 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사건에 여준재가 관여하고 있어. 우리가 제품을 되찾으려면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해.”그 말을 듣고 고다빈은 자신의 아버지가 분명 여준재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느꼈다.더군다나, 그녀는 고다정이 계속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다.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갑자기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아빠, 우리 굳이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그 제품은 우리 기술진이 개발한 거라고요. 우리가 직접 고다정에게 돌려달라고 하면 되죠. 원래 우리 것이니까.”“그 일이 네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아. 이 프로젝트에
고경영은 고다정의 고고한 태도를 보고 이미 화가 난 마음에 불붙인 듯 폭발해버렸다.“왜, 난 여기에 올 수 없다는 거야?”그는 기분 나쁜 듯 소리쳤고, 자기 마음대로 소파에 앉았지만, 티테이블에 차가 없는 것을 보고 얼굴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불쾌하게 말했다. “차는 어딨어, 이리 와서 나한테 차 한 잔 따라줘!”그는 방금 아래층에서 보안 요원들과 시끄럽게 다투느라 목이 아파졌다.하지만 고다정은 그의 무례한 태도를 보며 화가 나 헛웃음이 터졌다.“우선, 나는 당신을 여기에 초대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스스로 왔으니 차를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나요?”고다정이 턱을 들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당신의 목적이나 밝혀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당신에게 10분만 내줄 수 있겠네요.”이 말을 듣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고경영은 불같이 화를 냈다.“고다정, 이게 무슨 태도야?”“당신에게는 이런 태도밖에 보여줄 게 없어요. 불만이 있으면 직접 나가세요!”고다정이 비웃으며 바라봤다.하지만 아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고경영은 떠날 수 없었다.말없이 서 있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고다정은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더니 참을성이 점점 바닥났고, 다시 재촉했다. “이미 3분이 지났어요. 시간을 낭비하고 싶나요?”고경영은 이 말을 듣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억눌렀다.“내가 여기 온 목적은 간단해. HT 시스템 비용을 정산하러 왔어.”HT 시스템은 고다정의 회사가 새로 개발한 제품이다.그러나 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는 놀란 기색 없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녀와 여준재가 HT 시스템 개발을 결정한 후, 고경영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기에 그녀는 피식 비웃었다. “뭘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 HT 시스템은 우리 신우 하이테크가 개발한 건데, 당신이 어떤 신분으로 이 HT 시스템 비용을 정산받으려 하나요?”“잘못 알긴 무슨. 이 HT 시스템은 내 기술팀이 개발한 거야. 그들이 떠날 때 이것을 가져가지 않
별장으로 돌아온 후, 여준재는 고다정을 에스코트해 차에서 내렸다.“당신 먼저 들어가요. 나는 잠깐 남준에게 일을 지시할게요.”“알겠어요, 그럼 이야기 나눠요.”고다정은 의심하지 않고 돌아섰다.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여준재는 남준에게 고개를 돌리고 지시했다. “GS가 요즘 너무 한가한 것 같아. 고경영에게 좀 일을 만들어 줘.”“알겠습니다.”남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한편, 고경영은 클럽에서 한 고객과 접대 자리를 갖고 있었다.연말이 다가오고 있어, 그는 이 고객과 내년 거래를 확정하려 했다.“방 회장님, 내년 거래는 저희에게 많이 부탁드려요. 한 잔 올리겠습니다.”고경영은 잔뜩 아부하는 말투로 방 회장에게 술을 따랐다.방 회장은 고경영의 아첨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 “주문은 문제없어. 내년에 주문량을 이만큼 줄게. 이걸로 당신 큰딸 결혼식 선물이라고 해두면 좋겠어. 결혼식에 날 초대해야겠지?”그는 타 지역의 사업가로 고경영과 고다정의 사정을 잘 몰랐지만, YS 그룹의 대표와 약혼할 것으로 알려진 고 씨 가문의 장녀와의 관계를 통해 여 씨 가문과의 인맥을 쌓고자 했다.고경영은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곧 표정을 관리했다.그는 손에 들어온 좋은 기회를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물론이죠, 방 회장님, 말씀 안 하셔도 청첩장을 보내드릴 겁니다.”“하하하, 그러면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네.”방 회장은 기쁘게 웃으며 고경영에게 건배 제스처를 취했고 고경영은 서둘러 술잔을 들어 화답했다.그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방 회장의 비서가 양해를 구하고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비서는 급히 방 회장에게 다가가 몇 마디 속삭였고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웃음을 띠고 있던 방 회장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의미심장하게 고경영을 쳐다봤고 고경영은 그 시선을 느끼고는 회장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내심 불안해졌다.그는 비서가 떠나자 바로 떠보듯 물었다. “무
여준재는 고다정의 말을 피하려는 시도를 보아내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냥 재미있는 일을 봤어요, 고경영과 관련된 거죠.”“고경영?”고다정은 다소 놀랐지만, 곧이어 다시 물었다. “그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죠?”이에 여준재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숨기지 않고 간단히 설명했다.마지막으로 그는 고경영의 그날 저녁 일에 대해 말했다. “두 명의 중요한 고객을 연달아 잃은 것에 화가 난 고경영이 벽을 차서 화풀이하다가 다쳐 병원에 입원했대요.”고다정은 이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어제 이미 맞아서 병원에 갔었죠?”“맞아요, 그랬죠.”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에는 흥미롭다는 눈빛이 가득했다.고다정도 그 표정을 읽어냈고 자신도 고경영이 그런 결과를 맞이한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너무 잘된 일이다, 아마 며칠 동안은 평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이후 이틀 동안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고다정은 낮에는 회사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고 여준재의 치료를 도왔다. 바쁘지만 충실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고다정과 달리 고경영은 하루하루가 괴로웠다.고다정과 여준재의 결혼 소식이 알려진 후, 그가 고생 끝에 확보한 투자자들이 모두 회사와 협력을 중단했고 심지어 발목이 부러져 많은 일을 처리하기 어려워졌다.회사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고경영은 어쩔 수 없이 고다정에게 고개를 숙이겠다고 결심했지만 고다정이 그를 차단했기 때문에, 별수 없이 여준재에게 연락했다.여준재는 고다정을 회사에 데려다주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여 대표님, 앞으로 다정이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넓은 마음으로 고 씨 가문을 용서해주실 수 있나요?”전화 속에서 고경영은 간절히 여준재에게 애원했다.여준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입니다. 다시 한번 제 약혼녀를 괴롭히면, 고 씨 가문은 임 씨 가문처럼 될 겁니다.”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다정은 그들의 대화를
심여진은 말할수록 화가 났다.‘고다정을 혼내지 못하는데, 진씨 저택에 가서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안 되나?’“안 되겠어. 내가 지금 진씨 저택에 가서 어떻게 너한테 그럴 수 있냐고 따져야겠어.”“내가 진씨 집안에서 아직 덜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와서 소란을 피워요.”고다빈이 전화에 대고 바락바락 화를 냈다.이 말에 당장 떠나려던 심여진은 마지못해 걸음을 멈추었다.전화에서 들려오는 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서글펐다.특히 고다정이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꾸렸다고 생각하니 더욱 질투가 났다.그러나 현재 중요한 것은 딸을 위로하는 것이다.“알았어. 가지 않을 테니 울지 마.”이 말을 듣고 조금 진정된 고다빈은 몇 초간 흑흑 흐느끼더니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너랑 시목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심여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아무 핑계나 대서 얼버무렸다.자기 딸이 이렇게 불행한데, 고다정이 잘살고 있다는 말까지 들으면 이성을 잃고 무슨 일을 낼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그녀가 묻지 않아도 고다빈은 신우하이테크의 일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 몰랐다.“저와 진시목은 그냥 그래요. 참, 아버지가 고다정한테 찾아가 HT시스템을 되찾아 오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 되돌려받았어요?”고다빈이 궁금해하며 묻자 심여진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되돌려받지 못했어. 이건 아빠가 알아서 처리하시니까 넌 신경 쓰지 마.”“엄마, 저한테 뭘 숨기고 있죠?”고다빈은 이내 심여진의 말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엄마 성격에 방치해둘 리 없기 때문이다.이 말을 들은 심여진은 딸에게 숨기지 못할 것을 알고 한숨을 쉬더니 결국 털어놓았다.“HT시스템 문제에 여준재가 개입했어. 그리고 요 며칠 네 아버지 회사가 여기저기서 난관에 부딪혔고 심지어 어렵게 따낸 투자도 여준재가 망쳐버렸어. 네 아버지는 정말 방법이 없어 HT시스템을 포기한 거야.”“그건 수조대 프로젝트인
여준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고다정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말했다.“괜찮아요. 그냥 좀 놀랐어요.”그녀가 놀란 원인은 자기 차가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바로 앞에 있는 흰색 승용차에 누군가가 페인트로 쌍년이라는 두 글자를 써놓았고, 여기저기 긁히고 심지어 프런트 범퍼까지 휘어졌다.고다정의 설명을 들은 여준재는 더욱 걱정됐다.“지금 어디예요? 안전해요? 내가 지금 바로 갈게요.”“회사 주차장인데,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안전할 거예요.”고다정은 주변을 살피고는 전화에 대고 여준재에게 말했다.그런데도 여준재는 시름을 놓지 못했다.“내가 곧 도착하니까 먼저 사무실에 가 있어요.”고다정은 알았다고 대답한 후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20분도 안 돼서 여준재가 구남준과 함께 나타났다.그는 먼저 고다정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정말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CCTV는 돌려보라 했어요? 누가 차를 긁었는지 알아냈어요?”“경비원에게 돌려보라 했더니 몇 사람을 발견하긴 했는데 위장해서 얼굴을 볼 수 없대요.”고다정이 기다리는 동안 알아본 내용을 말해주자, 여준재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다.“얼굴이 안 보여도 괜찮아요. 영상만 있으면 돼요.”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지시했다.“경비실에 가서 CCTV 영상을 카피해서 그 사람들을 찾아내.”“네.”구남준이 지시받고 자리를 떴다.순간 사무실에는 고다정과 여준재만 남았다.여준재는 고다정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일단 집에 가서 소식을 기다려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조금 뒤, 두 사람은 빌라에 도착했다.고다정이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쌍둥이와 외할머니가 걱정스레 물었다.“엄마, 괜찮아요?”“아까 준재가 급하게 나가던데, 무슨 일이 있어?”관심을 받고 있자니 마음속이 따뜻해진 고다정은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차가 고장 난 것뿐이에요.”“그래?”강말숙은
여준재는 일 처리 속도가 매우 빨랐다.이튿날 이른 아침, 구남준이 그의 지시에 따라 경호원을 데리고 빌라에 나타났다.여준재가 고다정을 껴안으며 소개했다.“앞으로 당신을 따라다닐 애들이에요. 자기소개를 해봐.”뒤의 한마디는 앞에 있는 두 여성 경호원에게 한 것이다.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기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제 이름은 소담이고, 특기는 격투기와 사격입니다.”“제 이름은 소민이고, 특기는 역추적, 근접전과 해킹입니다.”두 사람의 소개를 들은 고다정이 궁금해하며 물었다.“둘 다 소씨면 자매인가요?”소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제가 언니이고 얘가 동생입니다.”“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고다정은 두 사람에게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소담이 사교적이라 그런지 이번에도 그녀가 고다정과 대화를 나누고 소민은 옆에 멋있게 서 있었다.고다정은 개의치 않고 한참 인사를 나눈 후 여준재를 따라 차에 올랐다. 쌍둥이도 학교에 보내야 하니까.오히려 쌍둥이가 처음 본 소담 자매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특히 하윤이는 소민에게 무척 관심을 보였다.“엄마, 나 학교 끝나고 소민 이모한테 놀러 가도 돼요?”하윤이는 고개를 쳐들고 간절한 눈빛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고다정과 여준재가 다소 의아해하며 하윤이를 건너다보았다.“넌 소민 이모가 좋아?”“좋아요. TV에 나오는 여자 협객처럼 멋있어요.”하윤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딸에게 여자 협객이 되고픈 마음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고다정과 여준재는 뜻밖이라 웃음이 터졌다.하지만 고다정은 딸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나중에 소민 이모한테 물어볼게. 이모가 널 데리고 놀겠다고 해야 놀러 갈 수 있어. 알았지?”“알아요. 그리고 내가 이렇게 귀여운데 소민 이모가 무조건 저랑 놀고 싶어 할 거예요.”하윤이가 고개를 쳐들며 자신 있게 말했다.하윤이의 도도한 모습에 고다정과 여준재, 그리고 하준이는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네 식구는 웃고 떠들며 유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