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안.심해영과 여진성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하윤과 하준은 공손하게 옆에 앉아 있었다.“오빠, 아저씨 엄마, 아빠가 우리를 안 좋아하시는 거 같아.”하윤은 소리 없이 눈빛으로만 하준과 대화했다.하준은 그녀의 눈빛을 알아차린 뒤, 얌전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심해영과 여진성이 두 아이들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었다.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이 두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거실의 분위기는 어색하고 고요했다.이상철은 그 냉랭한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빨리 도련님이 돌아오시기만을 묵묵히 기도만 할 수 밖에 없었다.이때 심해영은 아이들에게 질문했다.“너희들은 몇 살이니?”“할머니, 저희는 5살이에요.”하윤은 작은 손을 내밀며 씩씩하게 대답했다.심해영은 할머니라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나는 너희의 할머니가 아니란다. 그냥 사모님이라 불러.”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어린 하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그녀는 주눅이 들어 오빠에게 다가가 몸을 기댔다.하준도 그들이 자신과 여동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순간 하준은 여동생을 데리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아무 인사없이 갑자기 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어도 준재 에게 인사는 하고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때마침, 여준재가 급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부모님은 소파에 앉아 신문이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두 아이들은 불편한 자세로 허공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준재는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이때 이상철은 준재가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즉시 알렸다.“도련님 오셨습니다.”이 말을 들은 심해영과 여진성은 신문과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 바로 현관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두 아이들도 반가운 마음에 준재를 간절히 바라보았다.준재는 두 아이들에게 달려가 가벼운 인사를 한 뒤,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밥 먹었어?”“아직이요,
준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부모를 바라보았다.“저는 고 선생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의사의 오래된 환자로서 그녀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 누구보다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고 선생님의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요. 이전 의사에게 받았던 그 어떤 치료보다 더 낫다고요.”“…….”심해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가 한 말은 모두 진실이었기 때문이다.결국 그녀는 다정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타일렀다.“그래 좋아, 더 이상 실력을 운운하지 않을게. 그럼 너희 둘은 어떤 사이니?”그녀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준재가 끼어들었다.“그건 제 개인적인 일이니 상관하지 말아주세요.”여준재는 단호하게 말했다.심해영은 그의 대답에 화가 났다.그녀는 도대체 왜 자기 아들이 집안 좋은 여자들을 다 무시하고, 자식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갑자기 아까 본 두 아이들이 떠올라 참지 못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알겠어, 이젠 개인적인 일에는 참견하지 않을게. 하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거야? 너 지금 남의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로 작정한 거니?”준재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을 아꼈다.어머니의 노발대발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내가 말하는데, 난 절대 그 아이들 받아줄 생각 없다. 걔네 들은 우리 여씨 집안의 아이가 아니잖니!”“네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다. 여준재, 너는 지금까지 나를 실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다고 믿으마.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너와 그 고 선생님은 공통점이 전혀 없어. 신분이든 가치관이든 모두 다르다.”여진정은 그를 타일렀다.준재는 부모님의 생각과 다르다.하윤과 하준은 자신의 아이가 맞다. 원래 결혼은 집안과 권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느낌을 보고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부모님께 알릴 생각은 없다.만약 그가 솔직하게 말한다 해도 부모
이 말을 듣고 임초연은 놀랐다.“뭐라고? 그 두 아이들이 쫓겨나지 않았다고?”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네,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들은 서로 언성만 높이다가 집을 나오셨다 합니다.”임초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여준재가 무조건 자신의 어머니의 말은 순순히 들을 줄 알았다.‘그럼, 여준재가 고다정을 진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건가?’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녀는 고다정에 대한 분노가 더 격해졌다.‘고다정, 걔가 뭔데?’……다음날 아침, 마운시티 별장.여준재는 두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밥을 먹다 도중에 하준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저씨, 오늘 우리 엄마 보러 가면 안돼요?”“엄마 보고싶어요.”하윤도 그가 대답하기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준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 학교 마치고 아저씨랑 엄마 만나러 갈까?”“네, 아저씨 감사합니다.”하준은 간단한 미소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지만, 아직은 서툴러 보였다.준재는 그의 어색함을 알아차린 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어제 부모님을 만난 이후부터 하준의 태도가 변했다.항상 살갑게 대하던 하윤조차 많이 변했다.준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결국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밥만 먹고 회사로 갔다.며칠 동안 회사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오후쯤, 구남준이 문을 두드린 후, 들어왔다.그는 여준재 에게 상황을 보고했다.“대표님, 병원 쪽에서 이동철의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다행이 고비를 넘겼지만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이 말을 듣고 여준재는 즉각 구남준 에게 지시했다.“차를 대기시켜줘, 병원에 가야겠어.”“네, 대표님.”구남준은 차를 대기시키기 위해 얼른 나섰다.30분 뒤 두 사람은 병원에 도착한 후, 할머니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문 앞에서 그들은 의사가 누군가에게 호통치는 것을 들었다
할머니 주춘자 여사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여준재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이동철은 그의 물음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본 후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다.“우리 어머니는 이미 여기 입원하셨어요! 그런데, 진짜 가짜가 어디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빨리 나가세요! 괜히 우리 어머니 쉬시는 데 방해하지 말고 말예요!”그는 할 수만 있다면 여준재를 밖으로 쫓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준재는 그를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어르신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사고로 고 선생님은 지금 경찰에 구금되었습니다.”준재는 말하면서 주춘자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그의 낮은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제가 들은 바로는, 고 선생님은 어르신의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어르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약재를 처방해 주었고, 치료도 무료로 해 드렸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네…….”주춘자가 어렵게 입을 뗐다. 그녀의 얼굴에서 양심의 가책이 묻어났다.이동철의 어머니의 말을 듣고 얼굴색이 변하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경고하는데 더는 여기서 허튼소리 지껄이지 마! 우리 어머니가 늙었다고 속이기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이번 일은 그 돌팔이 의사 때문에 일어난 거야. 당신이 정말 그 여자를 구하고 싶으면 10억을 가져와! 당신은 큰 회사 대표라면서? 그깟 10억은 아무 것도 아니잖아!”“아무것도 아닌 건 맞지만, 그 돈을 양심 없는 인간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준재는 냉담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그는 당당하고 위엄 있었다. 눈빛 역시 매의 눈빛처럼 날카로웠다. 순간, 이동철은 깜짝 놀라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탐욕은 결국 두려움을 이겼다.“누가 양심 없는 놈이라는 거야! 한 번만 더 허튼소리 하면 경찰에 신고해 버릴 거야!”그는 말을 마치자 마자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향해
여준재와 아이들이 떠난 지 얼마 안 돼 임은미와 육성준이 찾아왔다.두 사람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고다정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너희들 왜 그래, 싸웠어?”“싸우긴 누가 싸웠다고 그래? 너무 화가 나서 그래!”은미가 이를 갈았다.“살면서 그렇게 뻔뻔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정말 사람이 늙어가면서 더 뻔뻔해지는 건가?”다정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너희들도 그 할머니를 만나러 간 거야?”“응, 그 분 진짜 대단하더라! 네가 좋은 마음으로 도와줬는데도 오히려 널 모함하다니 말야. 어떻게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마음이 더 나빠질 수 있니?”은미는 할머니를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씩씩거렸다.성준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다정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호의를 베푼다고 했던 일의 결과가 이렇듯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준은 다정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며 위로했다.“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내가 단서를 찾아냈어.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고마워.”다정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같은 시각 병원.이동철은 병실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그의 어머니 주춘자 여사는 마치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단식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드시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배고픈 건 제가 아니니까요.”그는 어머니를 향해 쏘아붙이고는 먹던 음식을 한 쪽으로 치워 놓은 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주춘자는 침대에 누운 채 머리 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심이 찔려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 않는가!이때 이동철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얼른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환성 형님, 어쩐 일이세요? 아직 돈 갚을 날도 되지 않았는데요.”“지금 네 집에 와 있어. 30분 안에 오도록 해.”정환
“엄마, 제가 이러는 건 엄마가 사랑하는 손자랑 같이 잘 살려고 그러는 거예요. 너무 원망하지 마세요.”이동철은 주춘자의 산소마스크에 손을 가져갔다.그 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챘다. 어느새 여준재와 구남준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당신들?!”그는 준재 일행을 보고 안색이 변하며 화를 냈다.“당신들이 왜 여기 있어!?”준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준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토끼를 잡으려면 토끼 굴 앞에서 기다려야지! 그런데 당신이 돈 때문에 어머니를 죽일 줄은 몰랐는데?”“누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그는 눈을 부라리며 부인했다.남준은 휴대전화를 꺼내니 녹음중인 화면을 보여주었다.그리고는 이동철이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재생버튼을 눌렀다.곧바로 그가 했던 말이 병실 가득 울렸다.준재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이 사람을 경찰서로 보내. 경찰이 수사하도록 말이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춘자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제발 그러지 마세요…….”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제발, 내 아들을 놔주세요. 제가…… 고 선생님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요.”준재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어르신께 이미 기회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그는 말을 마치고는 병실을 떠났다.남준은 이동철을 결박한 채 경찰서로 향했다.……다음날 아침, 준재는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다정을 만나러 갔다.그가 먼저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이동철이 잡혔어요. 살인미수 혐의로.” “살인미수요? 그게 무슨?”다정은 놀란 얼굴이었다.준재는 이동철이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의 눈에 동철을 향한 증오심이 가득했다. “우리가 제때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에게 절대 저항하지 않았을 거예요.”“도대체 왜……?”다정은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런
이동철은 경찰의 말을 들으며 이를 부인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당시 약을 샀던 한약방은 교외의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그런 곳에 CCTV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경찰이 보여주는 CCTV 화면을 보고 자신은 이제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경찰은 그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취조를 계속했다. “증거가 다 나온 마당에 아직도 변명할 게 있나요?”“알면서 뭘 물어요?”그는 더는 변명거리가 없었지만,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이 물었다.“이동철 씨가 인정한다는 뜻입니까? 본인이 사향을 구입한 것이 맞나요?”“내가 산 거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데요?”“이유가 뭡니까? 대체 왜 그런거에요?”경찰은 그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것을 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30분이 지난 후 경찰이 취조실을 나왔다. 준재와 신수 노인은 얼른 달려가 물었다.“어때요? 인정했어요?”“이동철 씨가 자신이 사향을 사서 고다정 씨를 모함한 것을 인정했습니다. 자기에게 10억 정도의 빚이 있는데, 고다정 씨 집안이 돈이 있는 것을 알고 그 돈은 취하려 한 모양입니다.”경찰이 취조 결과를 설명했다. 준재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신수 노인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구남준도 잔뜩 화가 났다. “뭐 그런 사람이 있죠? 고 선생님은 좋은 마음으로 그의 어머니를 도와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준재는 남준을 흘겨보더니 경찰에게 물었다.“정황이 드러났으니 이제는 고다정 씨를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네, 하지만 아직 밟아야 할 절차들이 있습니다.”경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경찰과 함께 떠났다.10여 분쯤 후, 다정은 멍한 얼굴로 경찰서에서 나왔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준재를 보고는 안심이 됐다. “여 대표님…….”“이제 나왔으니 됐어요. 할 말이 많겠지만 일단 돌아가요. 가서 다시 이야기해요.”그가 다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다정했다. 다정은 자기도
다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난 분명히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다정은 준재의 품에 안겨 억울한 듯 울먹였다.준재는 그녀가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남준은 두 사람이 안고 있는 것을 보더니 눈치 있게 차 안의 커튼을 쳤다.차 안에는 다정의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했다.준재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사람들 마음이 각박해진 거지.”하지만, 다정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쑥스러운 얼굴로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준재의 옷이 젖은 것을 보고 얼굴이 붉어졌다.“미안해요. 제가 여 대표님의 옷을 더럽혔어요.”“괜찮아요.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준재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정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훨씬 편해지긴 했지만, 괴로운 건 여전해요.”이런 일을 당하면 누구라도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 준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돌렸다.“전에 고 선생 외할머니가 충격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연세가 많으시니 뇌출혈로 쓰러질 수도 있다면서요.”“네, 앞으로 제가 더 신경을 쓸게요. 이번 일도 정말 고마워요. 여 대표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제가 이렇게 빨리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다정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준재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이번에는 신수 선생님과 문성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두 분이 저보다는 더 애쓰셨는 걸요.”“모두들 고마워요.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제가 감사 인사 제대로 드릴게요.”다정이 웃으며 약속했다.그 사이 차는 준재의 집 제란원에 도착했다.거실에 있던 강말숙과 아이들은 차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다정아!”강말숙은 쉰 목소리로 다정을 부르며 달려갔다.두 꼬마도 짧은 다리로 힘껏 달리며 엄마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