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 그룹, CEO사무실.임초연은 다정이 무죄로 석방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저 여자 대체 뭐야?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맘대로 되지 않잖아!”그녀는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여러차례 심호흡 하며 진정하려 애썼다.그녀는 컴퓨터 화면에 뜬 다정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 난 반드시 이 여자를 망쳐 놓을 거야. 그래서 뒤도 안 보고 운산을 떠나게 만들 거야!’고다빈 역시 임초연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이 재수 없는 여잔 왜 매번 운 좋게 이런 상황을 빠져나가지?”그녀는 화를 참을 수 없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얼굴에 질투심과 불쾌감이 가득했다.그녀는 심지어 임초연까지 미워졌다.“임씨 집안 아가씨라더니 하나도 쓸데없잖아? 그녀가 내 놓은 방법은 별로 효과가 없어. 역시 복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해!”물론 다정은 알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잠에서 깬 그녀는 이미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과 아이들이 곁에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베개 옆에 있는 휴대전화를 살펴보니 전화와 문자가 많이 와 있었다. 모두 절친 절친 임은미와 육성준에게서 온 것들이었다. 그녀가 답장을 하려고 할 때 성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공주님께서 드디어 전화를 받는군. 지금 어디에 있어? 왜 집에 안 간 거야?]그는 다정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해댔다.다정은 그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고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여 대표님 댁에 있어. 우리 집은 아직 치우질 못해서 말이야. 오늘 여기 머물다가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갈 거야.”[아, 지금 여 대표님 댁에 있구나…… 뭐? 잠깐만, 어디 있다고?]성준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는 다그치기 시작했다. [왜 여 대표님 집에 있는 거지? 솔직히 말해! 너, 여 대표와 도대체 무슨 사이야?]“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우린 그냥 친
다음날 아침, 고다정은 아침을 먹은 뒤 강말숙과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준재가 그들을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아파트 입구를 지나려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는 언론기자도 있었다.“무슨 일이지?”강말숙은 궁금한 얼굴로 창밖을 쳐다보았다.다정과 두 아이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준재는 눈살을 찌푸리고 차를 길가에 세우고 안전띠를 풀었다.“내가 내려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줘요.”“저도 같이 갈게요.”다정도 얼른 안전띠도 풀고 차에서 내렸다.준재가 막을 겨를도 없었다. 두 사람을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다가갔다. 다정이 무슨 일인지 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쳤다.“저 분은 고씨 집안 큰아가씨 아닌가요? 할머니, 할머니가 찾으시는 분이 돌아왔어요!”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고 선생님이 여기 있어요!”“고 선생님, 드디어 돌아왔군요.”“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선생님이 안계시면 할머닌 돌아가시고 말 거예요.”다정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어리둥절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준재를 바라보았다.그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흥분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자신의 뒤쪽으로 잡아당겨 보호했다. 다정은 그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양 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저 멀리서 이동철의 어머니 주춘자가 어린아이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다정은 그녀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주춘자는 그런 다정의 얼굴은 보지 못한 듯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고 선생님,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저도 우리 아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들 하나 밖에 없어요. 우리 아들이 감옥에 가면 저와 우리 손자는 어떻게 해요?”다정은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다정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조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준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절 보호해 주셔서 고마워.”“별 거 아닌데요, 뭘. 참! 아까 일은 마음에 두지 말아요.”준재가 다정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강말숙과 아이들도 그녀의 기분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그들은 주춘자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엄마, 그런 사람 때문에 화내지 마세요. 엄마의 귀염둥이들을 보세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하윤은 다정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다정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딸 때문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녀는 딸의 포동포동한 얼굴을 만지며 뽀뽀해주었다.“우리 딸 말이 맞아. 그런 사람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괜히 시간 낭비야. 쓸데없는 일이고. 엄만 우리 귀염둥이들이나 많이 볼래!”“히히…….”하윤이 웃으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하준도 그걸 보더니 얼른 다가와 안겼다. 준재는 옆에서 부러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봣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에게도 의지했으면 하고 바랐다. 곧 성공할 것 같았는데 부모님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다정은 준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그녀는 아이들과 웃고 떠들다가 그가 자기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쑥스러웠다.“미안해요, 여 대표님. 제가 대표님에게 신경 쓰지 못했네요.”“괜찮아요. 고 선생과 아이들이 이렇게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저도 좋아요.”준재는 미소를 지었다.그때, 다정의 눈에 집안 풍경이 들어왔다. 전에 이동철 때문에 파괴된 가구와 심지어 벽까지 원상복구가 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다정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 대표님께서 제 대신 우리 집을 이렇게 잘 정리해 주셨는데, 아직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네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얼마나 드셨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돈을 보
밤, 시내에 있는 한 클럽.정환성이 부하들과 함께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경찰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벽을 보고 앉아!”경찰 중 우두머리가 무기를 든 채 소리쳤다.그들은 혼비백산하며 그의 지시에 따랐다. ……다음날, 준재는 회사에 출근해 구남준으로부터 경찰 측이 전해온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 사채업자를 체포해 취조했지만, 그는 자신이 이동철을 사주해 고 선생님을 모함한 일을 부인했습니다.”“부인했어?”준재가 차가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차를 준비하도록 해. 지금 경찰서로 갈 거야.”그는 직접 정환성을 만난 생각이었다.경찰서에 도착하자 경찰은 곧장 그를 만나게 해 주었다. 취조실에 들어간 준재는 자리에 서서 정환성을 내려다보았다. 한편, 그는 준재가 누군인지 잘 알지 못했다.그는 준재를 사복을 입은 경찰쯤으로 생각하고는 힐끔 쳐다보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준재는 얼굴이 굳은 채 그에게 물었다. “무엇때문에 이동철을 부추겨 고다정을 모함하려고 했지?”“…….”정환성은 대답이 없었다.준재는 상관없다는 듯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넌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십년 이상 감옥에 있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네 아내가 출소일까지 기다릴 수 있을런지 모르겠군.”그 말에 정환성의 안색이 싹 변했다.그는 매서운 눈으로 준재를 노려보았다.“내 아내를 찾아갔어?”그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아직은 아니지만, 네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곧 그렇게 되겠지!”정환성은 오랫동안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준재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마치 힘이라도 겨루는 듯했다.그러나 결국 정환성이 지고 말았다. 그는 마침내 사실대로 자백했다.“맞아, 내가 이동철을 부추겨 고다정을 모함한 거야.”“왜 그랬지?”준재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나도 다른 사람에게 사주를 받았어. 그 사람은 이 일만 잘
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두 아이가 예의 바르게 준재에게 인사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안녕.”준재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아이들은 전처럼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그가 절대 자신들을 멀리하지 않을 것을 보여주면 되는 거다. 다정 역시 아이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어리둥절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그녀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물어보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들어 준재를 바라보았다.“여 대표님, 볼 일이 있어서 오신 거예요?” “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준재가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잠시 망설였다.좋은 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은 그런 그를 보더니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들, 딸! 외증조할머니에게 가서 같이 있을래?”하준과 하윤은 불만인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방안에는 다정과 준재만 남았다.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말씀하셔도 돼요.”“다름 아니라, 이번 사건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하지만 추적해보니 외국에서 사용한 걸로 보이는 메일 주소 하나만 얻을 수 있었어요. 더 이상 다른 정보는 없었구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외국에 살면서 다정씨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나요?”준재가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다정은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번 사건이 이동철이 돈에 눈이 어두워 저지른 일인줄로만 알았었기 때문이었다. 숨겨진 내막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준재가 이메일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이걸 보세요. 생각나는 게 없어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일 주소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메일 주소였다. “전 처음 보는
고다정은 이틀 간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가끔씩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는 비록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지만 마음은 아직 회복이 되질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살 수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병이 났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그나마 준재가 찾아오면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보며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임은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임은미는 다정을 만나러 왔다가 두 아이에게 떠밀려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무슨 일이야?”은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아이들은 최근 자신들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엄마가 요즘 항상 우울해요. 준재 아저씨가 왔을 때만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엄마가 다시 기분이 좋아질까요?”“그럼 준재 아저씨가 엄마랑 놀러 나가는 건 어떨까? 여행도 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엄마 기분이 좋아지고 아저씨랑 엄마 사이도 더 가까워질 거야.”은미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망설였다.특히 하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은미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우리 귀여운 쌍둥이들이 왜 이럴까? 설마 너희들 이제 준재 아저씨가 싫은 거야?”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아이들이 준재 이름만 들어도 너무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보니 너무 이상했다. 하윤은 작은 입을 비쭉거리며 말했다.“아저씨를 싫어하는 게 아녜요. 아저씨 가족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은미는 그 말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여 대표님은 아이들을 정말 귀여워하던데 말이야.’‘잠깐만, 가족이라고?’“얘들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모에게 자세히 좀 말해봐. 이모가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은미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침대 위에 앉았다.
준재가 치료하러 간다는 말에 심해영은 핑계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질 못했다. 결국 자신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럼 내일 저녁이 안 되면 모레 저녁은 어떠니?”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거절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입만 아픈 일이었다. 어차피 그는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심해영은 모르고 준재가 갈 줄 알았는데 바로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다음날, 준재는 회사 일을 처리한 후 바로 다정의 집으로 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두 꼬마의 열정적인 환영을 받았다.“아저씨, 오셨어요!”그는 자신의 곁으로 달려와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멍한 표정이 됐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저씨 왔어. 너희들 잘 지냈어? 엄마는 어디 계셔?”“엄마는 외증조할머니랑 같이 약재를 거두어들이러 가셨어요.”하윤이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준재는 그 말에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아저씨도 가서 도와주면 엄마가 빨리 오실 수 있을 것 같아. 둘이서 집에 잘 있을 수 있지?”그때, 막 떠나려는 그를 하준이 붙잡았다. “아저씨, 잠깐만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뭔데?”그가 뒤를 돌아보았다.하지만, 하준은 대답 대신 자기 방으로 달려가더니 저금통 하나를 가져와 그 앞에 내밀었다. “아저씨, 저랑 여동생이 용돈을 모아 저축한 거예요. 혹시 이걸로 아저씨가 엄마랑 외출하면 안 될까요? 우리 엄마가 기분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부탁드릴게요.”그는 하준이 내민 귀여운 저금통을 보고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랬구나!’‘오늘 아이들이 갑자기 내게 친절하다 했더니 이런 부탁을 하려고 그랬던 거구나?’‘나도 바라는 바야.’‘마침 부모님이 주선한 맞선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좋은 방법이 생겼어.’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하준에게서 저금통을 건네받았다. “그래. 너희들 부탁을 들어줄게.”아이들은
다정이 준재의 치료를 마친 건 삼십 분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뻐근한 허리를 문질렀다. 그리고는 화장대 위의 물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셨다.준재는 그녀의 행동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다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아이들이 했던 행동이 생각나 웃으면서 그를 바라봤다. “여 대표님, 혹시 아이들이 드린 저금통을 다시 주실 수 있나요? 여행 비용은 제가 따로 대표님에게 드릴게요.”‘안 돼요.’준재는 속으로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건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기에게 준 물건이었다. 그는 그것을 잘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간절한 그녀의 눈빛을 보고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분명 자신과 같은 이유로 저금통을 돌려받길 원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는 쓰린 마음을 참으며 다정에게 저금통을 양보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내일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헤어졌다.……다음날 아침, 다정은 일찍 일어나 짐을 쌌다.두 꼬마는 흥분해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어나 그녀를 도왔다. 8시가 다 되는 시각, 준재는 다정의 집에 도착했다.그는 바닥에 놓인 짐들을 보며 물었다.“잘 챙겼어요?”“네, 다 챙겼어요. 언제든지 출발할 준비됐어요.”다정은 빙그레 웃으며 준재를 바라보았다.눈치 빠른 구남준이 얼른 나서 짐을 들었다. 다정은 집을 나서기 전 강말숙에게 신신당부했다.“제가 집에 없는 동안, 외할머니도 몸 잘 챙기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하시고요. 아셨죠?”사실 그녀는 강말숙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하도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알았어, 너희들도 항상 조심해. 외국이 위험하다던데.”그녀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정에게 신신당부했다.준재가 그 말을 듣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무 일 없도록 잘 돌볼게요.”강말숙은 진지한 얼굴의 준재를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두 아이도 나서며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