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난 분명히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다정은 준재의 품에 안겨 억울한 듯 울먹였다.준재는 그녀가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남준은 두 사람이 안고 있는 것을 보더니 눈치 있게 차 안의 커튼을 쳤다.차 안에는 다정의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했다.준재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사람들 마음이 각박해진 거지.”하지만, 다정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쑥스러운 얼굴로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준재의 옷이 젖은 것을 보고 얼굴이 붉어졌다.“미안해요. 제가 여 대표님의 옷을 더럽혔어요.”“괜찮아요.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준재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정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훨씬 편해지긴 했지만, 괴로운 건 여전해요.”이런 일을 당하면 누구라도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 준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돌렸다.“전에 고 선생 외할머니가 충격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연세가 많으시니 뇌출혈로 쓰러질 수도 있다면서요.”“네, 앞으로 제가 더 신경을 쓸게요. 이번 일도 정말 고마워요. 여 대표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제가 이렇게 빨리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다정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준재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이번에는 신수 선생님과 문성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두 분이 저보다는 더 애쓰셨는 걸요.”“모두들 고마워요.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제가 감사 인사 제대로 드릴게요.”다정이 웃으며 약속했다.그 사이 차는 준재의 집 제란원에 도착했다.거실에 있던 강말숙과 아이들은 차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다정아!”강말숙은 쉰 목소리로 다정을 부르며 달려갔다.두 꼬마도 짧은 다리로 힘껏 달리며 엄마를 불렀다
YM 그룹, CEO사무실.임초연은 다정이 무죄로 석방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저 여자 대체 뭐야?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맘대로 되지 않잖아!”그녀는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여러차례 심호흡 하며 진정하려 애썼다.그녀는 컴퓨터 화면에 뜬 다정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 난 반드시 이 여자를 망쳐 놓을 거야. 그래서 뒤도 안 보고 운산을 떠나게 만들 거야!’고다빈 역시 임초연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이 재수 없는 여잔 왜 매번 운 좋게 이런 상황을 빠져나가지?”그녀는 화를 참을 수 없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얼굴에 질투심과 불쾌감이 가득했다.그녀는 심지어 임초연까지 미워졌다.“임씨 집안 아가씨라더니 하나도 쓸데없잖아? 그녀가 내 놓은 방법은 별로 효과가 없어. 역시 복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당사자가 직접 해야 해!”물론 다정은 알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잠에서 깬 그녀는 이미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과 아이들이 곁에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베개 옆에 있는 휴대전화를 살펴보니 전화와 문자가 많이 와 있었다. 모두 절친 절친 임은미와 육성준에게서 온 것들이었다. 그녀가 답장을 하려고 할 때 성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공주님께서 드디어 전화를 받는군. 지금 어디에 있어? 왜 집에 안 간 거야?]그는 다정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해댔다.다정은 그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고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 여 대표님 댁에 있어. 우리 집은 아직 치우질 못해서 말이야. 오늘 여기 머물다가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갈 거야.”[아, 지금 여 대표님 댁에 있구나…… 뭐? 잠깐만, 어디 있다고?]성준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는 다그치기 시작했다. [왜 여 대표님 집에 있는 거지? 솔직히 말해! 너, 여 대표와 도대체 무슨 사이야?]“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우린 그냥 친
다음날 아침, 고다정은 아침을 먹은 뒤 강말숙과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준재가 그들을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아파트 입구를 지나려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는 언론기자도 있었다.“무슨 일이지?”강말숙은 궁금한 얼굴로 창밖을 쳐다보았다.다정과 두 아이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준재는 눈살을 찌푸리고 차를 길가에 세우고 안전띠를 풀었다.“내가 내려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줘요.”“저도 같이 갈게요.”다정도 얼른 안전띠도 풀고 차에서 내렸다.준재가 막을 겨를도 없었다. 두 사람을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다가갔다. 다정이 무슨 일인지 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쳤다.“저 분은 고씨 집안 큰아가씨 아닌가요? 할머니, 할머니가 찾으시는 분이 돌아왔어요!”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고 선생님이 여기 있어요!”“고 선생님, 드디어 돌아왔군요.”“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선생님이 안계시면 할머닌 돌아가시고 말 거예요.”다정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어리둥절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준재를 바라보았다.그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흥분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자신의 뒤쪽으로 잡아당겨 보호했다. 다정은 그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양 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저 멀리서 이동철의 어머니 주춘자가 어린아이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다정은 그녀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주춘자는 그런 다정의 얼굴은 보지 못한 듯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고 선생님,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저도 우리 아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들 하나 밖에 없어요. 우리 아들이 감옥에 가면 저와 우리 손자는 어떻게 해요?”다정은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다정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조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준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절 보호해 주셔서 고마워.”“별 거 아닌데요, 뭘. 참! 아까 일은 마음에 두지 말아요.”준재가 다정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강말숙과 아이들도 그녀의 기분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그들은 주춘자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엄마, 그런 사람 때문에 화내지 마세요. 엄마의 귀염둥이들을 보세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하윤은 다정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다정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딸 때문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녀는 딸의 포동포동한 얼굴을 만지며 뽀뽀해주었다.“우리 딸 말이 맞아. 그런 사람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괜히 시간 낭비야. 쓸데없는 일이고. 엄만 우리 귀염둥이들이나 많이 볼래!”“히히…….”하윤이 웃으며 그녀의 품에 안겼다.하준도 그걸 보더니 얼른 다가와 안겼다. 준재는 옆에서 부러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봣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에게도 의지했으면 하고 바랐다. 곧 성공할 것 같았는데 부모님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다정은 준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그녀는 아이들과 웃고 떠들다가 그가 자기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쑥스러웠다.“미안해요, 여 대표님. 제가 대표님에게 신경 쓰지 못했네요.”“괜찮아요. 고 선생과 아이들이 이렇게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저도 좋아요.”준재는 미소를 지었다.그때, 다정의 눈에 집안 풍경이 들어왔다. 전에 이동철 때문에 파괴된 가구와 심지어 벽까지 원상복구가 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다정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 대표님께서 제 대신 우리 집을 이렇게 잘 정리해 주셨는데, 아직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네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얼마나 드셨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돈을 보
밤, 시내에 있는 한 클럽.정환성이 부하들과 함께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경찰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벽을 보고 앉아!”경찰 중 우두머리가 무기를 든 채 소리쳤다.그들은 혼비백산하며 그의 지시에 따랐다. ……다음날, 준재는 회사에 출근해 구남준으로부터 경찰 측이 전해온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 사채업자를 체포해 취조했지만, 그는 자신이 이동철을 사주해 고 선생님을 모함한 일을 부인했습니다.”“부인했어?”준재가 차가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차를 준비하도록 해. 지금 경찰서로 갈 거야.”그는 직접 정환성을 만난 생각이었다.경찰서에 도착하자 경찰은 곧장 그를 만나게 해 주었다. 취조실에 들어간 준재는 자리에 서서 정환성을 내려다보았다. 한편, 그는 준재가 누군인지 잘 알지 못했다.그는 준재를 사복을 입은 경찰쯤으로 생각하고는 힐끔 쳐다보더니 눈을 감아버렸다. 준재는 얼굴이 굳은 채 그에게 물었다. “무엇때문에 이동철을 부추겨 고다정을 모함하려고 했지?”“…….”정환성은 대답이 없었다.준재는 상관없다는 듯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넌 네가 저지른 일 때문에 십년 이상 감옥에 있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네 아내가 출소일까지 기다릴 수 있을런지 모르겠군.”그 말에 정환성의 안색이 싹 변했다.그는 매서운 눈으로 준재를 노려보았다.“내 아내를 찾아갔어?”그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아직은 아니지만, 네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곧 그렇게 되겠지!”정환성은 오랫동안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준재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마치 힘이라도 겨루는 듯했다.그러나 결국 정환성이 지고 말았다. 그는 마침내 사실대로 자백했다.“맞아, 내가 이동철을 부추겨 고다정을 모함한 거야.”“왜 그랬지?”준재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나도 다른 사람에게 사주를 받았어. 그 사람은 이 일만 잘
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두 아이가 예의 바르게 준재에게 인사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안녕.”준재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아이들은 전처럼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그가 절대 자신들을 멀리하지 않을 것을 보여주면 되는 거다. 다정 역시 아이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어리둥절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그녀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물어보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들어 준재를 바라보았다.“여 대표님, 볼 일이 있어서 오신 거예요?” “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준재가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잠시 망설였다.좋은 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은 그런 그를 보더니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아들, 딸! 외증조할머니에게 가서 같이 있을래?”하준과 하윤은 불만인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방안에는 다정과 준재만 남았다.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말씀하셔도 돼요.”“다름 아니라, 이번 사건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하지만 추적해보니 외국에서 사용한 걸로 보이는 메일 주소 하나만 얻을 수 있었어요. 더 이상 다른 정보는 없었구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외국에 살면서 다정씨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나요?”준재가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다정은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번 사건이 이동철이 돈에 눈이 어두워 저지른 일인줄로만 알았었기 때문이었다. 숨겨진 내막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준재가 이메일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이걸 보세요. 생각나는 게 없어요?”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일 주소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메일 주소였다. “전 처음 보는
고다정은 이틀 간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가끔씩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는 비록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지만 마음은 아직 회복이 되질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살 수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병이 났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그나마 준재가 찾아오면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보며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임은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임은미는 다정을 만나러 왔다가 두 아이에게 떠밀려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무슨 일이야?”은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아이들은 최근 자신들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엄마가 요즘 항상 우울해요. 준재 아저씨가 왔을 때만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평소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엄마가 다시 기분이 좋아질까요?”“그럼 준재 아저씨가 엄마랑 놀러 나가는 건 어떨까? 여행도 하면서 말이야. 그러면 엄마 기분이 좋아지고 아저씨랑 엄마 사이도 더 가까워질 거야.”은미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망설였다.특히 하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은미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우리 귀여운 쌍둥이들이 왜 이럴까? 설마 너희들 이제 준재 아저씨가 싫은 거야?”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아이들이 준재 이름만 들어도 너무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망설이는 것을 보니 너무 이상했다. 하윤은 작은 입을 비쭉거리며 말했다.“아저씨를 싫어하는 게 아녜요. 아저씨 가족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은미는 그 말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여 대표님은 아이들을 정말 귀여워하던데 말이야.’‘잠깐만, 가족이라고?’“얘들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모에게 자세히 좀 말해봐. 이모가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은미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침대 위에 앉았다.
준재가 치료하러 간다는 말에 심해영은 핑계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질 못했다. 결국 자신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럼 내일 저녁이 안 되면 모레 저녁은 어떠니?”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거절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입만 아픈 일이었다. 어차피 그는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심해영은 모르고 준재가 갈 줄 알았는데 바로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다음날, 준재는 회사 일을 처리한 후 바로 다정의 집으로 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두 꼬마의 열정적인 환영을 받았다.“아저씨, 오셨어요!”그는 자신의 곁으로 달려와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며 멍한 표정이 됐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저씨 왔어. 너희들 잘 지냈어? 엄마는 어디 계셔?”“엄마는 외증조할머니랑 같이 약재를 거두어들이러 가셨어요.”하윤이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준재는 그 말에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아저씨도 가서 도와주면 엄마가 빨리 오실 수 있을 것 같아. 둘이서 집에 잘 있을 수 있지?”그때, 막 떠나려는 그를 하준이 붙잡았다. “아저씨, 잠깐만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뭔데?”그가 뒤를 돌아보았다.하지만, 하준은 대답 대신 자기 방으로 달려가더니 저금통 하나를 가져와 그 앞에 내밀었다. “아저씨, 저랑 여동생이 용돈을 모아 저축한 거예요. 혹시 이걸로 아저씨가 엄마랑 외출하면 안 될까요? 우리 엄마가 기분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부탁드릴게요.”그는 하준이 내민 귀여운 저금통을 보고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랬구나!’‘오늘 아이들이 갑자기 내게 친절하다 했더니 이런 부탁을 하려고 그랬던 거구나?’‘나도 바라는 바야.’‘마침 부모님이 주선한 맞선을 어떻게 피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좋은 방법이 생겼어.’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하준에게서 저금통을 건네받았다. “그래. 너희들 부탁을 들어줄게.”아이들은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