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각, 그들은 바비큐 파티를 끝내고 돌아가서 휴식할 준비를 했다.이때, 고다정이 임은미를 불렀다.“은미야, 속이 더부룩해서 그러는데 나와 함께 화원에 가서 좀 걷자.”“화원? 좋지.”임은미는 고다정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미간을 찌푸리고 알 수 없다는 듯이 고다정을 바라봤다.여준재의 의아한 표정을 본 고다정은 그의 곁으로 가서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은미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준이와 윤이 데리고 먼저 방에 가 있어요. 금방 돌아올게요.”엄숙한 표정으로 말하는 고다정을 본 여준재는 더는 묻지 않았다.“그럼 빨리 돌아와요.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말을 마친 그는 피곤해하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떠났다.임은미도 남자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성휘 씨도 돌아가요. 나와 다정이는 소화도 시킬 겸 좀 걷다가 들어갈게요.”“...”채성휘는 어이가 없었지만 흥이 나 있는 여자친구를 보며 별말 하지 않았다.그들이 떠난 뒤, 정원에는 임은미와 고다정만이 남게 됐다.임은미는 다정하게 고다정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소화시키러 가자.”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화원으로 걸어갔다.가는 길에 임은미는 가볍게 뛰며 고요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감탄했다.“그러고 보니 우리 이렇게 밖에서 산책한 지 오래됐네.”“그러네. 한동안 걷지 않았었네.”고다정이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내 그녀는 자신이 임은미를 왜 불러냈는지 생각하고는 걸음을 멈추고 임은미에게 말했다.“손 줘봐.”“왜 그래?”임은미는 의아했지만 고분고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고다정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맥을 짚어봤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갔고 임은미는 엄숙한 고다정의 표정을 보며 불안해했다.“다정아, 나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거야?”“저쪽 손도 줘봐.”고다정은 바로 대답해 주지 않고 임은미에게 다른 한쪽 손도 달라고 말했다.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임은미는 다른 한쪽
채성휘는 발그레해진 임은미의 볼을 보고 관심하며 물었다.“열나는 거예요? 얼굴이 빨개요.”“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나갔다 왔다고 열이 나진 않죠.”임은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그도 약사지만 남다른 의학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채성휘는 모르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걱정이 기본 상식을 잊게 만든 것이었다.“열나는 게 아니면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아휴, 더 이상 물어보지 말아요. 나 성휘 씨에게 할 말이 있어요.”임은미가 쑥스러워하며 화제를 돌렸다.설마 고다정이 맥을 짚어본 뒤 그녀에게 절제하라고 한 얘기를 채성휘에게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채성휘는 갑자기 화를 내를 그녀를 보며 의아하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좋게 말했다.“알았어요. 물어보지 않을게요. 나에게 말하려고 하는 게 뭐예요?”“나...”임은미는 머뭇거리다가 채성휘의 의아한 눈빛을 보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말을 꺼냈다.“나 임신했어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안은 고요해졌다.임은미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 남자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왜 말이 없어요? 이 아기 지우고 싶은 거예요?”그녀의 말을 들은 채성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아니요. 난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은미 씨 깊게 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방금 너무 놀랐어요.”“진짜예요?”임은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채성휘도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그녀를 침대에 앉히며 말했다.“그럼요. 진짜예요. 방금 나가서 걷다가 와서 피곤하죠? 내가 뜨거운 물을 받아 올 테니 발 좀 담가요. 임산부들이 밤에 편히 자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아 참, 내일 다정 씨에게 임신 기간에 어떤 걸 조심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그리고 여기서 돌아가는 대로 양가 부모님들을 찾아 봬야 할 것 같아요. 빨리 결혼식 준비를 해야겠어요. 은미 씨 배가 불러온 뒤에 드레스를 입으면 예쁘지 않잖아요.”그녀는 말하면서 한편으로 뜨거운 물을 준
성씨 가문의 사당은 저택의 제일 안쪽에 있는 남북으로 통하는 정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주변에 있는 건물들도 깨끗해 보이는 것이 매년 정성 들여 관리를 한 것 같았다.고다정이 도착했을 때 정원에는 적지 성씨 가문의 사람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대부분이 적손이 아닌 사람들이었고 적손인 사람들로는 고다정과 그녀의 스승 그리고 성재호뿐이었다.고다정은 성재호의 원망 가득한 눈빛을 무시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성시원의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그렇게 그들이 몇 분을 더 기다리자 성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제서야 성시원은 부한에게 다음 절차를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사당 문을 열겠습니다.”부한의 말이 떨어지자 도우미들이 굳게 닫혀 있던 사당 문을 열었다.이를 본 부한이 계속 이어 말했다.“주인님은 앞으로 나가서 향에 불을 붙이고 조상님들께 인사해 주세요.”복잡한 예의 절차로 인해 제사는 반 시간이나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 다음으로는 배사의식이 시작되었다.“오늘 사당 문을 열고 조상님들을 찾아뵌 건 두 가지 일 때문입니다.”성시원이 계단 위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첫 번째는 여기 계신 모든 분께서 알다시피 성민준과 제 제자가 시합을 했었습니다. 성민준이 진다면 그들은 성씨 가문에서 분가해서 나가 따로 가문을 세우기로 했었습니다. 이에 승복하시나요? 성재호 씨, 이의 있습니까?”“분가하는 건 이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아들이 중독된 사실에 대해서는 가주께서 해명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성재호가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시합은 되돌릴 수 없는 방법이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다정이 성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는 게 못마땅했다.그는 바로 무릎을 꿇고 성시원의 뒤에 있는 조상님들의 위패를 보며 소리쳤다.“스승님들께서 세운 규칙이 동문 간에 서로 해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었습니까? 제 아들이 시합에서 진 건 인정합니다. 이에 불만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
사용인은 고다정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급히 쫓아왔다.“사모님, 지금 하윤 아가씨와 하준 도련님을 찾으러 가시는 거라면 제가 마지막에 있었던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안다고요? 그럼 빨리 앞장서요.”아이들이 위험에 빠지면 어쩌지? 머릿속에 이 생각밖에 없는 고다정은 사용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소담과 화영도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들도 고다정과 마찬가지로 쌍둥이가 몹시 걱정됐다.그들은 심지어 쌍둥이가 실종된 것이 큰 집의 음모와 연관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사용인을 따라 점점 더 외진 곳으로 갔다.주변에 널린 폐가를 보고 끝내 이상함을 눈치챈 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렸다.깔끔한 성격인 준이와 윤이는 절대 이렇게 황폐한 곳에 놀러 올 리가 없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고다정은 급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소담과 화영은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작은 사모님, 왜 그러세요?”이때 사용인은 고다정이 근처의 작은 문 앞에서 멈춰 선 것을 발견하고 급히 고다정을 불렀다.“작은 사모님, 빨리 오세요. 이 문을 나가면 하윤 아가씨와 하준 도련님이 실종된 곳에 도착합니다.”“아까 준재 씨가 사람을 보내 두 아이를 찾고 있다 하지 않았어요? 왜 오는 길에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했죠?”고다정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용인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사용인의 표정이 확 변했다.그녀가 변명하려 할 때 고다정이 재차 질문했다.“그리고 준이, 윤이가 실종됐다고 했다가 또 실종된 곳을 안다고,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말해요. 누가 보냈어요?”이 말을 들은 사용인은 한참 동안 고다정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갑자기 비아냥거렸다.“반응이 빠르네요. 이렇게 빨리 수상한 점을 감지하다니. 그런데 아쉽지만 알아채도 이미 늦었어요.”그녀는 우쭐거리며 손뼉을 두 번 쳤다.고다정은 그녀의 동작을 보고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우리 돌아가요.”소담과 화영이 즉시 그녀의 손을 잡고 되돌아가려 했다.
전화를 끊은 후 성시원은 연이어 몇 개 명령을 내렸다.그는 큰 집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CCTV를 돌려본 후 고다정이 없어진 지점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여준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저택 전체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손님들은 뜰에 끊임없이 경호원이 드나드는 것을 보고 어렴풋이 무슨 일이 생겼음을 눈치챘다.“무슨 일이 있어요? 성씨 가문의 개인 경호원까지 출동했던데?”“글쎄요. 방금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더니 별일 없다네요.”“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건데. 성씨 가문에서 우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가 봐요.”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여진성 부부도 여준재에게 전화해 물었다.“밖에 무슨 일이 있어? 마당에 경호원들이 몇 번 왔다 가고, 더러는 남고.”“너 우리한테 숨기면 안 돼.”부모님이 묻고 다그치자 여준재는 사실대로 알렸다.“다정 씨가 실종됐어요. 아직 저택을 떠났는지, 다정 씨만 목표인지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서 어르신과 제가 신변 보호를 위해 경호원을 보낸 거예요.”“뭐? 다정이가 실종됐다고?”심해영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그녀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지자 여준재가 주의를 주었다.“어머니, 목소리를 낮추세요. 다정 씨 외할머니와 준이, 윤이가 들으면 안 돼요. 그 세 사람은 아직 몰라요.”“오, 알았어. 지금 다정이 소식은 있어?”심해영이 목소리를 낮추고 다급히 물었다.“이 일은 오래 숨기지 못해. 오후 배사의식 전에 찾지 못하면 어르신은 틀림없이 알게 될 거야. 그때 가서 놀라는 건 똑같아.”“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 전에 다정 씨를 찾을 수도 있잖아요.”여진성이 다른 의견을 내놓자, 여준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이때 밖에서 들어온 구남준이 공손한 말투로 보고했다.“대표님, 소담과 화영을 찾았습니다.”이 말을 들은 여준재는 급히 부모님과 한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단서가 나와서 먼저 끊을게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휴대폰을 내려놓고 여준재는 무거운 표정으로 구남준을 바라보
부한의 말을 들은 성시원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마당은 왜 분리되어 나갔어?”“어르신, 지금 그걸 조사할 때가 아니에요. 그자들이 다정 씨를 어디로 데리고 나갔는지 알았으니 사람을 파견해 추격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여준재는 성시원의 말을 자르고 불만스레 한마디 했다.성시원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뭐가 중요한지 알아. 단지 이 마당을 이렇게 나눈 것이 이상해서 그냥 한마디 물어본 거야.”이때 부한이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입을 열었다.“기억났습니다. 10년 전 저택 보수 공사를 할 때 김창석이 작은 나리께서 저택을 재구성하고 너무 낡은 곳은 저택 범위에 넣지 말라고 하셨다며 설계도를 내밀었습니다. 그때 그 설계도에 따라 일부 낡은 마당의 CCTV를 제거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성시원의 안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이건 김창석이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퇴로인 게 분명하다.“젠장, 다정이를 잡아간 게 그놈이었네.”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지시를 내렸다.“경호팀을 전부 내보내서 아가씨를 반드시 찾아내도록 해. 교통경찰에 연락해 태산시에서 밖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봉쇄해달라고 부탁하고.”그런데도 오후까지 고다정 실종에 관한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배사의식 시간이 임박하자 성시원은 어쩔 수 없이 날짜 변경 통지를 내렸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구경하러 온 손님들은 전부 어리둥절해졌다.“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날짜를 변경하지?”“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그런 거 같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임은미와 강말숙도 이 소식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왜 갑자기 취소한 거죠?”임은미가 턱을 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채성휘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아니면 다정 씨한테 전화해 봐요.”이 말이 나오자 강말숙과 쌍둥이는 모두 임은미를 쳐다보았다.시선을 한 몸에 받은 임은미는 눈을 깜박이더니 말했다.“그러면 내가 전화해 볼게요.”
김창석의 말을 듣고 손건우는 안색이 돌연 어두워졌다.바보가 아닌 이상 김창석의 뜻을 모를 리 없다. 다른 누군가가 고다정을 노리고 있는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결실을 낚아채고 죄는 그들에게 덮어씌우려 한다는 것이다.“X발,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 내가 기어코 죽여버릴 거야. 감히 나를 갖고 꿍꿍이를 꾸며?”손건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김창석은 화나서 펄펄 뛰는 그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지금 중요한 건 앞으로 닥칠 일에 어떻게 대응하냐는 거예요.”“어떻게 하긴요? 고다정이 손에 있는 것처럼 성시원과 협상해야죠.”손건우가 이를 악물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설마 성시원과 여준재에게 고다정이 우리 손에 없으니 살려달라고 말할 작정인가요? 그들이 믿을 거라고 생각해요?”이 말을 들은 김창석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다시 판을 짜야 해요.”여준재는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그들은 하루 종일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강말숙과 쌍둥이는 고다정이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불안에 빠졌다.임은미도 너무 걱정되어 찾아 나설 생각까지 했지만 채성휘가 말렸다.“사람 찾는 일은 여 대표님과 성시원 선생님이 알아서 하실 거예요. 도움이 되고 싶으면, 여 대표님을 도와 어르신과 두 아이나 잘 달래요. 초조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게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아이를 가졌고 상태도 불안정한데, 사람 찾으러 나간다면 돕는 것이 아니라 여 대표님께 폐를 끼치는 거예요.”이 말에 마음이 울적했지만 그녀도 채성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여 대표와 고다정을 도와 쌍둥이와 외할머니를 잘 돌보는 것뿐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강말숙을 보러 갔다.“외할머니, 방에 계셔요?”“응.”강말숙이 대답한 후 쌍둥이를 시켜 문을 열었다.방문이 열리고 임은미의 눈에 바로 들어
고다정이 몇 번 소리쳐서야 만만찮아 보이는 우람한 체격의 외국인 남성이 들어왔다.“누구세요?”그를 본 고다정이 긴장하며 물었지만 남자는 그녀와 말을 섞을 의향이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힐끗 보고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아가씨한테 위층 여자가 깨어났다고 전해.”아가씨?고다정은 그 말의 핵심을 포착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아가씨가 누굴까?하지만 그녀가 묻기 전에 그 남자는 문을 닫고 가버렸다.고다정은 의문을 뒤로 하고 냉정해지려 애썼다.그 사람이 아가씨한테 통지했다면 조만간 만날 수 있겠지.사실상 확실히 그랬다. 그 남자가 떠나고 5분도 안 돼서 문밖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몇 초 후 방문이 열리고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문 앞에 나타났다.“임초연?”“오랜만이야, 고다정, 나를 보고 놀랐어?”임초연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띄운 채 오만한 자태로 침대 옆에 다가와 고다정을 내려다보았다.고다정은 이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임초연이 나타난 것이 절대 우연은 아닐 것이다.“나를 잡아 온 게 너였어?”고다정이 나지막이 캐물었다.임초연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무슨 뜻이야?”고다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임초연은 그녀를 뚫어지게 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누가 너더러 그렇게 많은 사람한테 미움을 사래? 네가 잘되는 걸 못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단지 그 사람들이 직접 나설 수 없어 내가 온 것뿐이야.”그녀는 고다정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사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 얼굴로 여준재를 유혹했지? 진짜 이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어.”고다정은 말장난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을 졸였다.지금 온몸에 힘이 없는 그녀는 임초연이 무슨 짓을 해도 반항할 방법이 없다.그녀가 자구책을 고민하고 있을 때 임초연이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꿰뚫어 봤는지 피식 웃었다.“쫄긴. 걱정하지 마. 네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그건 너무 쉬운 벌이야. 나는 네가 죽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