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데스크에서 강세헌의 병실 위치를 알아내지 못해 의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꼭대기 층에 있는 VIP 병실을 찾아갔는데 마침 임지훈이 주치의와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임 비서님.”송연아가 그를 불렀다. 임지훈은 송연아인 것을 확인하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모, 사모님.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그는 다급하게 걸어왔다. 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제가 오면 안 돼요?”임지훈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너무 갑작스럽게 오셔서, 왜 미리 전화 안 하셨어요?”송연아는 살짝 미간을 치켜들었다.“제가 온 게 시기적절하지 못했나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송연아는 그를 지나서 의사한테로 갔다. 강세헌은 계속 자신에게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에 당연히 지금 그의 상태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선생님 안녕하세요. 강세헌 씨의 눈은 언제쯤 완치가 될 수 있을까요?”의사는 송연아를 보면서 물었다.“당신은...”“그의 아내입니다.”송연아가 대답했다.“아.”의사는 알아차렸다.“그때 저한테 연락하셨던 분이군요.”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얼마 안 걸립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의사의 말에 송연아가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송연아에게는 강세헌이 다시 빛을 볼 수 있다면 시간이 좀 걸려도 상관없었다. 의사는 다른 일이 있어서 송연아에게 몇 마디 주의사항을 부탁한 뒤 자리를 떴다. 송연아는 고개를 돌려 임지훈을 보았다.임지훈은 난처해하며 멋쩍은 미소를 띠었다.“사모님.”강세헌이 송연아가 따라오지 못하게 한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위험에 처할까 봐서였고 다른 하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송연아도 강세헌이 아마 고민이 되었을 것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그가 어떤 모습이든 그녀는 다 좋아할 것이다.“저를 세헌 씨의 병실로 데려다주세요.”임지훈이 물었다.“아니면 제가 먼저 가서 강 대표님
송연아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자신을 임지훈으로 착각하고 있다.하긴, 송연아가 계속 소리를 내지 않았으니. 그리고 또 이렇게 갑작스럽게 왔으니 지금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강세헌으로서는 당연히 쉽게 송연아라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조금 놀라워하는 강세헌의 표정을 보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변조해서 말했다.“저는 임지훈 씨가 강 대표님을 보살펴달라고 보낸 사람이에요.”“...”말하며 송연아는 일부러 이불을 들쳐서 손을 그의 가슴에 얹었다...“임지훈!”강세헌은 크게 소리를 쳤는데 밖에 있는 임지훈마저 소리를 듣고 놀라서 들어왔다.임지훈이 들어왔을 때 송연아는 강세헌의 옷 단추를 제대로 잠그지 못해 가슴이 살짝 보였다. 임지훈은 강세헌의 모습을 보고 송연아의 무고한 표정을 보며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오랜만에 만난 신혼부부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의외는 아닌데 제일 의외인 것은 강세헌이 왜 자기를 부르냐 이거였다.그는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당장 네가 데려온 이 사람 돌려보내!”강세헌의 말투는 거의 화가 난 말투였다.“...”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누가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 송연아는 손짓을 하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세헌 씨가 오해했어요.”임지훈은 머리를 끄적였다.“대표님, 그... 저는 방해하지 않을게요.”“임지훈!”강세헌은 화를 내며 일어났다. 송연아는 바로 부축해주었지만, 강세헌은 그녀를 밀어냈다. 송연아는 갑자기 밀려나며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이제 두 발자국 옮긴 임지훈은 뒤돌아 이 모습을 보았다. 속으로는 저도 모르게 욕을 한마디 했다.강세헌이 언제 이렇게 송연아를 대한 적이 있었는가? 하지만 임지훈은 이번에는 재치있게 빠르게 생각이 돌았다. 송연아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강세헌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임지훈은 더 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부부 사이의 정취에 본
송연아는 강세헌이 손을 드는 것을 보며 망설이다가 그래도 다가와서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렸다. 강세헌은 손가락을 접어서 가볍게 힘을 주어 손을 단단히 잡았는데 팔뚝에 핏줄이 섰다.“온다고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강세헌은 송연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송연아는 그의 품에서 애교를 부렸다.“내가 만약 미리 온다고 말했다면 당신은 무조건 나를 못 오게 했을 거예요.”강세헌은 한숨을 쉬었다.“나는 단지 당신이 내 지금 모습을 보지 말았으면 해서 그래.”“당신은 내 남편이에요.”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말했다.“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나는 다 좋아할 거예요.”말하며 송연아는 먼저 다가와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강세헌은 온몸의 근육에 긴장이 되어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 몸에는 다 약 냄새야.”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이건 몸에 밴 약 냄새 때문이 아니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주도권을 잡지 못해서 항상 도도했던 사람이 마음의 평형을 잡지 못한 것이다. 송연아가 웃었다.“내가 싫어하지 않는데 뭐가 걱정이에요?”강세헌이 웃었다. 송연아는 강세헌의 가슴을 베고 누워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나를 돌아가라고 하지 말고 여기 남아서 당신을 보살필 수 있게 하면 안 돼요?”강세헌은 침묵하다가 작게 대답했다.“좋아.”송연아는 큰 눈을 뜨고 속눈썹을 살짝 떨며 말했다.“이슬 언니의 평온한 생활이 또 깨졌어요. 명섭 씨한테 사고가 생겼는데 아주 엄중해서 지금 생사를 모른대요. 나 이슬 언니의 성격을 잘 아는데 아마 명섭 씨가 희생되었을 확률이 높아요. 아니면 절대 아이를 재경 선배한테 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언니와 재경 선배는 예전에 그렇게 사랑했고 학교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커플이었는데 지금, 이 지경까지 와버리고 영원히 함께 일수 없을 거라는 걸 보면서 내가 다 아쉬워요.”송연아는 강세헌을 꼭 안고 말했다.“나는 우리는 이 두 사람처럼 아쉬움이 남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당신이랑 함께 이고 싶어요. 영원
분명히 송연아가 먼저 시작했는데...또 송연아가 빌고 있다.“당신의 눈은 아직 낫지 않았는데...”송연아는 강세헌의 가슴을 밀어냈다.“나 눈이 안 보이는 것이지 몸이 안 되는 게 아니야...”강세헌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을 잡고 진하게 키스했다.두 사람이 아주 오래 함께 있지 않아서 그는 그녀가 정말 보고 싶었다. 육체적으로는 더 그리웠다. 문밖에서는 임지훈이 지키고 있었기에 아무도 감히 들어와서 방해하지 못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송연아는 강세헌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잠이 덜 깬 와중에 그녀는 강세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임지훈더러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송연아는 눈을 떴다.“당신 배고파요?”강세헌이 말했다.“당신 배고플까 봐. 몇 시인 줄 알아?”송연아는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미 저녁때가 되었다. 송연아는 분명 오전에 왔는데 말이다.‘참나, 이렇게 하루를 붙어먹었네.’송연아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씻어줄까요?”송연아가 물었다. 강세헌은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혼자서 씻을 수 없어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강세헌은 작게 대답했다.“좋아.”송연아는 웃으며 물었다.“당신 보이지 않는 게 이제는 신경 안 쓰여요?”강세헌은 아직 신경이 쓰이지만 한 번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나서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송연아의 앞에서 눈이 안 보이는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전에는 사실 걱정 많이 했었다.송연아는 그를 부축하여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갔다.아마도 부부가 너무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않아 씻으면서 또다시 붙어먹었다. 하여 다 씻고 나오니 이미 두 시간 후의 일이었다. 임지훈이 먹을 것을 사 오고 송연아가 강세헌에게 먹여주었다. 강세헌이 말했다.“나 혼자 먹을 수 있어...”송연아는 거절하고 본인이 직접 먹여줬다.“내가 해줄게요.”...양명섭이 죽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산 채로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 몸도 온전하지 못했다. 안이슬이 아이를 보낸 이유는 아이
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임지훈이 강세헌을 부축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바로 핸드폰을 놓고 앞으로 가서 강세헌을 임지훈의 손으로부터 부축했다.“의사가 뭐래요?”송연아가 물었다.“회복이 아주 잘 되었대요.”이 말은 임지훈이 한 말이다. 송연아는 기쁜 나머지 안이슬의 일에 대해 잊어버렸다. 모든 신경이 강세헌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눈을 감싸고 있던 면포는 이미 벗어버렸는데 아직은 사물을 완전히 뚜렷하게 보지 못해서 조금 희미했다.하지만 의사가 얘기하길 며칠 더 지나면 거의 다 회복된다고 했다. 송연아는 아주 기뻤다.“내가 여기 온 지도 오래 지났는데 어제 찬이가 전화 와서 언제 오느냐고 묻더라고요. 세헌 씨가 다 나으면 우리 돌아갈 수 있겠네요.”강세헌이 그렇다고 말했다.말하자면 송연아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심재경이 있어서 집안을 돌봤는데 지금은 심재경에게 아이가 생겨서 그의 모든 신경은 아이에게로 집중되어 있어야 했다. 진원우도 다쳐서 구애린과 함께 미국으로 갔고 임지훈도 여기에 있다. 집에는 이영만 있었지만 두 아이 때문에 송연아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송연아는 강세헌한테 물었다.“내가 너무 제멋대로 인 것 아니에요?”아이 쪽은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오고 싶다고 그냥 왔다. 강세헌은 그녀에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빠른 시일 안에 돌아갈 수 있었다. 모든 위험이 다 해결되었기에 소란이 없을 것이다.송연아는 단지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매번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렇게 험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세헌의 눈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마음이 철렁했다. 행여나 또 무슨 사고가 생길까 봐.“뭐 먹고 싶어? 내가 데리고 갈까?”강세헌이 물었다. 일부러 그녀를 위로하는 것도 있었다. 송연아는 강세헌의 품에 기대 있었다.“나는 먹는 데 대해서 그렇게 큰 요구가 없으니 당신이 정해요!”하여 강세헌은 송연아를 데리고 외식을 나갔다. 환경이 아주 좋은 레스토랑이었는데 강세
한혜숙은 언짢았다.“우리 찬이랑 윤이가 어디가 어때서요?”심재경이 다급하게 해명했다.“안 좋다는 게 아니라요. 아직 어리니까 결혼이니 뭐니 하는 게 이르다는 얘기죠.”심재경은 송연아가 강세헌이 딸을 좋아한다고 했던 거로 기억하고 있다. 강세헌은 평생 딸이 있을 가능성이 없었다. 강세헌이 돌아오면 아이가 생겼다고 그것도 딸이라고 한바탕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혜숙은 심재경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눈치채고 말했다.“아들도 부모의 따뜻한 담요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어요.”심재경이 웃었다.“그래요, 그래요. 심재경은 담요가 두 개나 있으니 다 두르면 더워서 죽겠네요.”“...”...송연아와 강세헌은 병원에 있었다. 어차피 병실은 아주 컸고 외부인들이 없었다. 돌아오기 전날 저녁 송연아는 구애린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강세헌의 상황을 물었는데 강세헌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는 언제 돌아가는지 물었다. 송연아가 말했다.“내일 티켓을 샀어요...”구애린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하려다가 또 말았다. 송연아가 말했다.“할 얘기 있으면 하세요.”구애린이 말했다.“저 원우 씨랑 여기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어요. 올 거예요?”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강세헌을 보았다. 그는 지금 눈 회복치료를 받고 있다. 구애린과 진원우의 결혼식인데 송연아와 강세헌은 꼭 갈 것이다. 다만...“언제예요?”“다음 주 토요일이에요.”구애린이 대답했다. 송연아는 시간을 보았는데 이제 수요일이니 다음 주 토요일이면 아직 열흘이 넘어 남았다.“우리 꼭 갈 거예요.”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므로 그들은 돌아가서 아이를 보고 오려고 했다.“네.”몇 마디 더 하고 송연아는 강세헌의 곁으로 가서 손을 들어 눈 안마를 해주었다.“방금 애린 씨한테서 전화가 왔어요.”강세헌은 눈을 감고 있어도 귀는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애린 씨가 원우 씨랑 결혼식이 할거래요.”송연아가 이 정도까지 말하면 강세헌은 아마 이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송연
심재경이 말했다.“그래, 너 부럽잖아. 나는 딸이 있는데 너는 없으니까.”강세헌이 웃었다.“네 딸은 지금은 네 딸이 맞는데 커서도 네 딸이 맞을지 장담 못 하지만 내 아들은 내 아들이 맞고 커서도 내 아들이야.”“...”지금 강세헌의 말은 무슨 뜻인가? 심재경의 딸은 크면 그의 딸이 아니라는 뜻인가?웃긴 얘기다. 심재경의 딸은 언제라도 심재경의 딸이다. 어떻게 컸다고 그의 딸이 아닌 게 되겠는가?하지만 심재경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강세헌의 뜻을 알아채고 미간을 찌푸렸다.“강세헌!”심재경이 앞까지 쫓아왔다.“너, 너 아들 간수 잘해. 네 아들이 우리 딸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해.”강세헌은 품 안에 있는 작은 아들을 보면서 웃었다.“그러니가 쓸데없이 나대지 마. 그렇게 나대다가 내 것이 될 수도 있어.”“...”자신이 조심스럽게 키운 딸애가 앞으로 커서 다른 사람의 여자 친구가 되고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특히 강세헌의 말은 유독 사람을 돋구었다.‘자신의 것이 된다니? 내 딸은 네 아들이 눈에 차지 않을 건데?’“망상이나 하고 앉았네.”심재경은 콧방귀를 꼈다. 자기 딸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강세헌은 그와 더 왈가불가하기 귀찮았다. 이제 금방 딸이 생겼는데 그새 딸바보가 되었는가?“그럼 딸을 곁에 두고 칠순 팔순까지 살아.”“...”그건 싫다. 딸은 언젠가 시집을 가야 한다. 앞으로 재능이 넘치고 잘생긴 청년한테 시집을 보낼 것이다. 어떻게 자신의 곁에 두고 노처녀로 늙게 하겠는가?곰곰이 생각해보니 만약 강세헌의 아들한테 시집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강세헌은 돈이 그렇게 많고 생긴 것도 못생기지 않았고 송연아도 괜찮게 생겼으니 아이가 두 사람을 닮으면 당연히 꿀리지는 않을 것이다.거기다가 심재경은 두 아이를 어릴 때부터 관찰할 수 있었고 누가 더 우수하면 딸을 누구한테 주면 된다. 강세헌의 아들이니 그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게 아닌가?자신의 딸이 만약 강세헌의
강세헌은 바로 심재경의 속셈을 알아챘다. 본인의 아들이 경호원도 아니고 왜 무술을 배워서 심재경의 딸을 보호해줘야 하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속에 있는 것 같다.송연아는 다가와서 심재경을 놀렸다.“선배 딸은 아직 포대기에 싸여있는데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네요.”심재경은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딸이 있으면 언젠가는 마주할 일인데 다른 사람일 바에는 나는 네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너랑 세헌이는 내 딸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더 보살펴줄 거잖아. 네가 만약 내 딸의 시어머니가 된다면 무조건 안이슬을 봐서 내 딸한테 잘해줄 거잖아!”“...”송연아는 아직 아주 젊다. 시어머니가 된다는 것은...그건 아주 먼 이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알겠어요.”송연아가 말했다.“세헌 씨의 눈이 금방 나아서 좀 휴식하게 두세요.”심재경이 물었다.“네 뜻은 내가 지금 강세헌을 귀찮게 한다는 거야?”“...”그가 일부러 한 게 아니더라도 강세헌을 쫓아다니며 아이들 얘기를 하고 아들이 이제 금방 걸음마를 떼었는데 결혼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선배 생각에는요?”송연아가 되물었다.“...”심재경도 자신이 너무 갔다고 느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말이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딸이 생겨서 내가 너무 들떴나 봐.”송연아는 안이슬이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가 생각나서 한마디 물었다.“이슬 언니가 선배한테 전화 왔었어요?”심재경은 고개를 저었다. 송연아는 안이슬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의 아이는 보고 싶을 텐데?“시간 나면 이슬 언니한테 연락해 줘요.”송연아가 말했다. 심재경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심재경은 안이슬이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물론 지금 양명섭한테 일이 좀 생겼지만 말이다. 그의 신분으로 더 안이슬에게 연락하는 게 안 좋을 것 같았다. 조금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양명섭이 괜찮아지면 두 사람도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데 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심재경이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