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도 몰라요.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대학교 바로 졸업하고 나서일 수도 있고,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일 수도 있죠. 졸업하고 난 강북 한의원에서 인턴을 했고,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레지던트가 됐고, 또 얼마 안 돼서 한의과 부교수가 됐거든요.”“반면 남자 친구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러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해도 이런 저러한 이유 때문에 레지던트로 되지 못했어요.”여기까지 들었을 때, 마침 거의 다 먹은 나는 더 이상 들어줄 심정도 아니라 곧바로 끼어들었다.“그러면 충격이 컸겠네요.”내 말에 지은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봤다.“그러니까 지금 그 자식이 바람피운 이유가 정당하다는 뜻이에요?”“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갓 졸업하고 그렇게 많은 역경에 부딪혔으니 충격이 컸을 거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자 친구가 너무 대단하니 자격지심도 느꼈을 거고.”“그런데 난 내 노력으로 레지던트가 된 거잖아요. 근데 그 자식은 내가 가족 백으로 됐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뭐라고 하든 믿어주지 않았어요!”“그러면 나중에는요? 주식은 왜 갑자기 했대요?”“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니까 아예 다른 쪽으로 일자리 알아봤거든요. 그래서 내가 마침 의료 기기 판매하는 일을 소개해 줬어요. 일 잘하면 수익도 괜찮아 보이니까.”“그런데 얼마 안 하고 또 그만두더라고요. 동료들이 따돌리고 상사가 괴롭힌다면서. 그리고 혼자서 일자리 찾을 수 있다면서 나더러 찾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관계하지 않았죠. 그런데 허구한 날 일자리를 바꿨어요.”“대학 졸업하고 지금까지 5년이 흘렀는데 반년 이상 다녀 본 곳이 없을 지경이라고요. 내가 이유를 물을 때면 온갖 변명을 댔어요. 항상 남 탓만 하고 본인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그러다가 주식에 빠졌는데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싸우고, 물건도 집어 던지고 했는데 나중에 배신까지 하더라고요.”지은은 지난날을 생각하자 너
“안 좋은 일 겪고 정신 차렸다고요? 난 내 청춘을 잃었어요. 내가 그동안 진심을 바쳤던 건 그저 없었던 셈 치라고요?”지은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힘없이 말했다.나는 순간 지은이 왜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계속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면 너무 힘들 거다.밥을 얻어먹는 입장에서 나는 지은을 위로했다.“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중에 아플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봐요. 아직 살날은 많잖아요, 40년, 50년 심지어는 60년일 수도 있고. 그 몇십 년 동안 후회 속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을 거잖아요.”“미래에 비하면 지난 몇 년 동안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래를 정말 멋지게 살면 적어도 이번 인생을 멋지게 산 거로 되잖아요.”지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의외로 다시 봤어요.”‘이거 칭찬받은 건가?’나는 순간 너무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사실 나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쪽이 계속 색안경을 끼고 나를 봐서 그렇지.”“그게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그쪽이 너무 경망스럽게 굴었잖아요. 그게 왜 내 탓이에요?”화제가 다시 돌아가자 나는 다급히 말했다.“그만해요. 예전 일은 우리 얘기하지 말아요.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고 있는 것도 인연인데, 지난 일은 평화롭게 그만두고 밥 먹어요. 되죠?”나는 정말 이 여자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제 곧 병원을 떠날 텐데, 서로 좋은 인상을 남겨두는 것도 좋은 거 아닌가?게다가 이렇게 풍성한 한 끼를 제대로 즐기지도 않으면 너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은은 갑자기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바라봤다.“사실대로 말해요. 정말 나랑 자고 싶은 거 아니에요?”나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 거야?’너무 가슴이 쿡쿡 찔려 침을 꿀꺽 삼키고 난 뒤 말했다.“그날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그저 단순히 농담하고 싶어서 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눈을 뒤집었다.“호의를 몰라주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어요.”“안 도와주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어디서 먹어요? 여기 들어오고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먹었으면서.”지은은 진작 내 마음을 간파한 모양이었다.하지만 나 역시 들켰다는 난처함이 하나도 없었다. 지은과 이렇게 말싸움하는 게 습관된 것처럼.나는 뻔뻔하게 히죽거렸다.“그쪽이 나한테 부탁했잖아요. 그래서 왔는데.”“아!”지은이 갑자기 내 다리를 차버리는 바람에 너무 아파 비명이 새어 나왔다.그러자 지은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은이 웃으니 너무 예뻤다. 워낙 예쁜 데다 이런 식사까지 대접받았으니 나는 지은을 용서하기로 했다.그렇게 배불리 먹고 마셨을 때, 지은이 갑자기 나를 불러 계산하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그 순간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지금 나 놀리는 거예요? 나한테 돈이 어디 있다고.”“요즘 출근했으니 벌었을 거 아니에요. 28만 정도.”“여기 음식 32만 원이잖아요.”나는 순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방금 너무 기쁘게 음식을 먹었는데 순간 너무 괴로워졌다.심지어 먹었던 음식을 모두 토해내고 싶었다.그때 지은이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내가 돈 낼 테니 가서 계산만 하라는 거예요. 여기 와서 식사하는 사람들 대부분 커플이라는 거 못 느꼈어요? 남자가 대부분 계산하고. 그런데 내가 계산하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이런 깊은 뜻이. 놀라 죽는 줄 알았잖아.’지은은 카톡으로 돈을 보내겠다며 친구 추가를 하자고 폰을 내밀었다.이에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지만 카톡을 켠 순간 지은과 이미 친구로 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런데 다시 추가하면 들통날 건 뻔하다.다행히 나한테 카톡 아이디가 하나 더 있어 나는 곧바로 지은을 다른 계정으로 추가했다.그걸 모르는 지은은 나를 바로 친구로 추가했다.“한의 문화를 널리 알리자? 프로필 이름 너무 어이없는 거 아니에요?”지은은 내 프로필 아이디를 보더니
“그럼 8만 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 거 아니에요? 아깝지도 않나?”‘아깝지 않을 리가! 살점이 뜯겨 나가는 것처럼 아픈데.’“제발 그만 말할래요? 이번 한 번은 그냥 지르려는 거니까.”내가 뒤돌아서 떠나는 순간 지은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의외네, 조금 찌질한 건 있지만 그렇게 미운 사람은 아니네.”지은의 평가에 나는 너무 어이없었다.‘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중식당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다시 돌아갈 준비를 했다.일이 없으니까 어깨에 짊어진 부담도 덜어진 것처럼 홀가분했다.한의원에 있는 동안은 즐거운 줄 모르고 생활했었다.쓸모 있는 건 배우지도 못하고 매일 부민규 같은 사람을 상대해야 해서 너무 스트레스도 받았고.나는 서로 속고 속이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이다.단지 의술을 더 한층 증진하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봐요, 정수호 씨!”내가 가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지은이 나를 불러 세웠다.‘뭐야? 이미 떠난 거 아니었나?’“왜요?”내가 답답해서 묻자 지은이 다가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오후에 출근하기 싫으니 같이 쇼핑하러 가줘요.”“네?”‘지금 장난하나? 밥도 같이 먹어줬는데 쇼핑도 하겠다고? 설마 나한테 들러붙으려는 건가?’게다가 이 여자의 소비 수준은 딱 봐도 엄청난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니다.이에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안 돼요. 오후에 일이 있어 같이 갈 수 없어요.”내가 바로 거절하자 지은은 바로 화를 냈다.“같이 쇼핑 좀 하자는 게 뭐 어렵다고, 누가 잡아먹겠대요? 왜 그렇게 두려워해요?”“당연히 두렵죠. 밥 한번 먹는데 20만 원도 넘게 썼는데, 쇼핑 한번 하면 또 얼마나 많이 쓰겠어요? 나 이제 땡전 한 푼 없으니까 더 이상 그쪽 괴롭힘 당해낼 수 없어요.”나는 핸드폰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쥐었다. 그 안에 있는 돈은 내 앞으로의 생활비이기에 절대 써버릴 수 없다.지은은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정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돈 쓰라는 말 안 해요. 그냥 같이 가 주
“그래서 나한테 그런 쓸데없는 얘기하지 마요. 다시 한번 물을게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젠장, 나더러 어떻게 선택하라는 거야?’나는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뒤돌아서 떠나려 할 때, 지은이 마치 공주라도 되는 것처럼 득의양양해서 따라왔다.결국 나는 불쌍하게 기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그것도 지은하네 단단히 코 꿰인 상태로.“어디 가요?”“말투가 그게 뭐예요? 다시 물어봐요. 공주님, 어디 가세요? 이렇게요.”지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흉내 내며 시범을 보였다.이런 의외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원래는 지은이 나를 놀리려 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내가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대박, 공주님 이렇게 다정하게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네요?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 말해줄래요?”“이제부터 내가 공주니까 내 말 따라요.”“네, 공주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렇게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다 보니 우리의 분위기는 처음으로 무척 조화로워졌다.그러다 보니 지은에게 느꼈던 거부감도 조금 사라졌다.어차피 나는 그만뒀으니 할 일도 없던 참에 좋은 일 한다고 치면 되는 거니까.지은도 기분이 나아졌는지 화장하고 자기를 꾸미기 시작했다.아마 예쁜 모습으로 쇼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차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해 너무 놀라웠다.지은은 속옷만 남긴 채 매력적인 몸매를 내 앞에 그대로 드러냈다.그걸 보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내가 있는 것도 안 보이나?’“제발 좀 조심하면 안 돼요? 나도 남자인데, 앞에서 이렇게 훌렁훌렁 벗어버리면 어떡해요?”지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내 눈에 그쪽은 남자가 아니거든요.”“젠장, 내가 남자가 아니면 뭐예요?”“그저 순한 양이죠. 내가 아예 완전히 벗어도 쳐다도 못 볼 거잖아요.‘누가 그런다는 거지? 지금도 너무 괴로워 당장이라도 자빠뜨리고 싶은데.’하지만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일부러
“그리고...”지은은 말하다가 갑자기 일부러 멈추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눈빛에 나는 너무 불안해졌다.“그리고 뭐요? 하던 말 계속하지 왜 그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그때 지은이 갑자기 내 다리 위에 손을 올려 놓아 나는 흠칫 놀랐다.순간 심장이 철렁하고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이 여자가 왜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행동하지?’‘너무 무서운데?’나는 다급히 거절했다.“함부로 굴지 마요. 나 점잖은 사람이에요.”사실 나는 내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점잖긴 무슨, 단정한 척하는 거 아니에요? 그날 아주 섹시하게 입은 여자랑 복도에서 속닥속닥 잘도 말하더만.”지은은 말하면서 내 다리를 쓰다듬었다.그 순간 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흘러들어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나도 왜 지은한테 갑자기 이렇게 예민한 건지 의아했다.나는 다급히 지은의 손을 쳐냈다.“이러지 마요. 운전 중이니까.”지은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다행히 이번에 나한테 손을 대지는 않았다.오히려 팔짱을 낀 채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래요, 안 만질게요. 그럼 솔직하게 말해요.”“그쪽이 내 여자 친구도 아닌데, 내가 왜 솔직히 말해야 하죠?”나는 절대 지은의 꿰임에 들지 않았다.“점잖은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면 그걸 증명해야죠. 잊지 마요, 내 인상 속에 그쪽은 절대 점잖은 사람 아니에요.”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건 그쪽 사정이지 나랑 무슨 상관있어요? 난 그딴 이미지 신경 안 써요.”말이 끝나자마자 지은이 내 허리를 꼬집었다.“또 뭐 하는 거예요?”그러고는 내가 묻자 화를 내며 말했다.“난 알고 싶어요. 말할 거예요? 말 거에요?”“말 안 해요.”나는 너무 언짢았다. 같이 쇼핑하자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사생활까지 영탐하려 하다니.‘대체 뭐 하자는 거지?’지은은 아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말
“그 누나가 나를 좋아한다고만 말했지, 뭘 했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점잖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나는 불만 섞인 투로 반박했다.그랬더니 지은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그 여자한테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고요? 그날 그 여자를 안는 걸 분명 봤는데.”“그건 자꾸 놀려대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예요.”나는 내가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계속 부인했다.“흥, 아닌 건 아닌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사람은 한 일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해요.”지은이 계속 나에게 원망을 퍼부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한테 생트집을 잡는 것 같아서.하지만 내가 무시했는데도 지은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혹시 여자 친구 있어요? 연애는 해 봤어요? 여자와 스킨십해 본 적 있어요? 만져는 봤어요?”문제가 하나같이 너무 어이없는 것들이라 나는 점점 더 참기 어려워 안절부절못 했다.급기야 지은에게 눈길조차 하지 않았다.특히 검은 스타킹을 신은 예쁜 다리가 나에게는 너무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운전하는 데 집중하는데 말 좀 그만하면 안 돼요?”‘오늘따라 왜 또 말이 이렇게 많은 거야?’나는 순간 함께 쇼핑하러 나온 게 후회되었다.하지만 지은은 여전히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기분이 꿀꿀해서 함께 쇼핑하러 가자고 한 건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만 있을 거면 왜 나왔어요?”“알았으니까 낯부끄러운 질문 좀 하지 말아줄래요? 정상적인 대화를 나눠요, 우리.”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 여자가 너무 이상한 거라 대답하기 싫은 거다.그때 지은이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그래요, 그럼 다른 질문할게요. 혹시 원나잇 해본 적 있어요?”‘젠장...’‘이게 질문을 바꾼 건가?’‘정말 감당을 못하겠어.’“없어요.”나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했었어요.”지은은 이번에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그 순간 내 심장도 따라서 철렁
‘지금 나더러 나를 찾으라는 건가?’그게 가능할 리가.나는 다급히 거절했다.“싫어요. 이미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더 이상 그런 부탁하지 마요.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안 되죠. 안 그러면 친구도 못 사귀어요.”나는 병원을 떠난 뒤 이 여자와 완전히 관계를 쫑내려고 했는데 다시는 엮일 리 없다.때문에 깔끔하게 거절했다.그러자 지은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개 같은 놈.”“아니, 왜 사람을 욕해요?”“내가 언제 욕했어요?”지은은 끝까지 부인했다.“개라고 욕했으면서 욕한 게 아니라고요?”“생긴 게 개 같아서 그런 건데 뭐가 문제 있어요? 그저 비유법일 뿐이에요.”‘이건 대체 무슨 궤변이지? 분명 욕했으면서 인정하지도 않고. 정말 너무하네.’나는 지은의 예쁜 다리를 보며 어떻게 하면 이 여자에게서 제대로 받아낼까 생각했다.‘나를 협박하고 욕했다 이거지?’차는 어느새 세기 쇼핑몰에 도착했다.그 순간 나는 지은의 기분이 빨리 풀려, 나도 한시 빨리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를 바랐다.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여자랑 쇼핑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인 것 같다.끝도 없이 피곤함도 모른 채 계속 돌아다니는 바람에 나는 다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이봐요, 좀 휴식하면 안 돼요? 나 정말 걷지 못하겠어요.”나는 휴식하는 의자에 앉아 한 걸음도 내딛고 싶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다리가 돌멩이처럼 떡 굳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에 반해 지은은 마치 힘이 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무슨 상황이에요? 어쩜 하이힐 신은 나도 뭐라 하지 않는데 남자라는 게 힘들다고 난리예요?”나도 답답했다. 하이힐을 신은 지은은 대체 어떻게 버티는지.‘발은 안 아픈가? 다리는 힘 빠지지 않나?’내가 궁금한 걸 묻자 지은이 말했다.“안 힘들어요. 발 아픈 줄도 모르겠고. 그래서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돼요.”“이봐요, 나 거짓말 아니거든요. 다리가 단단해졌어요. 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