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한테 그런 쓸데없는 얘기하지 마요. 다시 한번 물을게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젠장, 나더러 어떻게 선택하라는 거야?’나는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뒤돌아서 떠나려 할 때, 지은이 마치 공주라도 되는 것처럼 득의양양해서 따라왔다.결국 나는 불쌍하게 기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그것도 지은하네 단단히 코 꿰인 상태로.“어디 가요?”“말투가 그게 뭐예요? 다시 물어봐요. 공주님, 어디 가세요? 이렇게요.”지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흉내 내며 시범을 보였다.이런 의외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원래는 지은이 나를 놀리려 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내가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대박, 공주님 이렇게 다정하게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네요?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 말해줄래요?”“이제부터 내가 공주니까 내 말 따라요.”“네, 공주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렇게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다 보니 우리의 분위기는 처음으로 무척 조화로워졌다.그러다 보니 지은에게 느꼈던 거부감도 조금 사라졌다.어차피 나는 그만뒀으니 할 일도 없던 참에 좋은 일 한다고 치면 되는 거니까.지은도 기분이 나아졌는지 화장하고 자기를 꾸미기 시작했다.아마 예쁜 모습으로 쇼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차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해 너무 놀라웠다.지은은 속옷만 남긴 채 매력적인 몸매를 내 앞에 그대로 드러냈다.그걸 보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내가 있는 것도 안 보이나?’“제발 좀 조심하면 안 돼요? 나도 남자인데, 앞에서 이렇게 훌렁훌렁 벗어버리면 어떡해요?”지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내 눈에 그쪽은 남자가 아니거든요.”“젠장, 내가 남자가 아니면 뭐예요?”“그저 순한 양이죠. 내가 아예 완전히 벗어도 쳐다도 못 볼 거잖아요.‘누가 그런다는 거지? 지금도 너무 괴로워 당장이라도 자빠뜨리고 싶은데.’하지만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일부러
“그리고...”지은은 말하다가 갑자기 일부러 멈추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눈빛에 나는 너무 불안해졌다.“그리고 뭐요? 하던 말 계속하지 왜 그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그때 지은이 갑자기 내 다리 위에 손을 올려 놓아 나는 흠칫 놀랐다.순간 심장이 철렁하고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이 여자가 왜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행동하지?’‘너무 무서운데?’나는 다급히 거절했다.“함부로 굴지 마요. 나 점잖은 사람이에요.”사실 나는 내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점잖긴 무슨, 단정한 척하는 거 아니에요? 그날 아주 섹시하게 입은 여자랑 복도에서 속닥속닥 잘도 말하더만.”지은은 말하면서 내 다리를 쓰다듬었다.그 순간 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흘러들어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나도 왜 지은한테 갑자기 이렇게 예민한 건지 의아했다.나는 다급히 지은의 손을 쳐냈다.“이러지 마요. 운전 중이니까.”지은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다행히 이번에 나한테 손을 대지는 않았다.오히려 팔짱을 낀 채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래요, 안 만질게요. 그럼 솔직하게 말해요.”“그쪽이 내 여자 친구도 아닌데, 내가 왜 솔직히 말해야 하죠?”나는 절대 지은의 꿰임에 들지 않았다.“점잖은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면 그걸 증명해야죠. 잊지 마요, 내 인상 속에 그쪽은 절대 점잖은 사람 아니에요.”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건 그쪽 사정이지 나랑 무슨 상관있어요? 난 그딴 이미지 신경 안 써요.”말이 끝나자마자 지은이 내 허리를 꼬집었다.“또 뭐 하는 거예요?”그러고는 내가 묻자 화를 내며 말했다.“난 알고 싶어요. 말할 거예요? 말 거에요?”“말 안 해요.”나는 너무 언짢았다. 같이 쇼핑하자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사생활까지 영탐하려 하다니.‘대체 뭐 하자는 거지?’지은은 아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말
“그 누나가 나를 좋아한다고만 말했지, 뭘 했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점잖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나는 불만 섞인 투로 반박했다.그랬더니 지은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그 여자한테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고요? 그날 그 여자를 안는 걸 분명 봤는데.”“그건 자꾸 놀려대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예요.”나는 내가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계속 부인했다.“흥, 아닌 건 아닌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사람은 한 일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해요.”지은이 계속 나에게 원망을 퍼부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한테 생트집을 잡는 것 같아서.하지만 내가 무시했는데도 지은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혹시 여자 친구 있어요? 연애는 해 봤어요? 여자와 스킨십해 본 적 있어요? 만져는 봤어요?”문제가 하나같이 너무 어이없는 것들이라 나는 점점 더 참기 어려워 안절부절못 했다.급기야 지은에게 눈길조차 하지 않았다.특히 검은 스타킹을 신은 예쁜 다리가 나에게는 너무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운전하는 데 집중하는데 말 좀 그만하면 안 돼요?”‘오늘따라 왜 또 말이 이렇게 많은 거야?’나는 순간 함께 쇼핑하러 나온 게 후회되었다.하지만 지은은 여전히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기분이 꿀꿀해서 함께 쇼핑하러 가자고 한 건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만 있을 거면 왜 나왔어요?”“알았으니까 낯부끄러운 질문 좀 하지 말아줄래요? 정상적인 대화를 나눠요, 우리.”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 여자가 너무 이상한 거라 대답하기 싫은 거다.그때 지은이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그래요, 그럼 다른 질문할게요. 혹시 원나잇 해본 적 있어요?”‘젠장...’‘이게 질문을 바꾼 건가?’‘정말 감당을 못하겠어.’“없어요.”나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했었어요.”지은은 이번에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그 순간 내 심장도 따라서 철렁
‘지금 나더러 나를 찾으라는 건가?’그게 가능할 리가.나는 다급히 거절했다.“싫어요. 이미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더 이상 그런 부탁하지 마요.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안 되죠. 안 그러면 친구도 못 사귀어요.”나는 병원을 떠난 뒤 이 여자와 완전히 관계를 쫑내려고 했는데 다시는 엮일 리 없다.때문에 깔끔하게 거절했다.그러자 지은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개 같은 놈.”“아니, 왜 사람을 욕해요?”“내가 언제 욕했어요?”지은은 끝까지 부인했다.“개라고 욕했으면서 욕한 게 아니라고요?”“생긴 게 개 같아서 그런 건데 뭐가 문제 있어요? 그저 비유법일 뿐이에요.”‘이건 대체 무슨 궤변이지? 분명 욕했으면서 인정하지도 않고. 정말 너무하네.’나는 지은의 예쁜 다리를 보며 어떻게 하면 이 여자에게서 제대로 받아낼까 생각했다.‘나를 협박하고 욕했다 이거지?’차는 어느새 세기 쇼핑몰에 도착했다.그 순간 나는 지은의 기분이 빨리 풀려, 나도 한시 빨리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를 바랐다.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여자랑 쇼핑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인 것 같다.끝도 없이 피곤함도 모른 채 계속 돌아다니는 바람에 나는 다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이봐요, 좀 휴식하면 안 돼요? 나 정말 걷지 못하겠어요.”나는 휴식하는 의자에 앉아 한 걸음도 내딛고 싶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다리가 돌멩이처럼 떡 굳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에 반해 지은은 마치 힘이 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무슨 상황이에요? 어쩜 하이힐 신은 나도 뭐라 하지 않는데 남자라는 게 힘들다고 난리예요?”나도 답답했다. 하이힐을 신은 지은은 대체 어떻게 버티는지.‘발은 안 아픈가? 다리는 힘 빠지지 않나?’내가 궁금한 걸 묻자 지은이 말했다.“안 힘들어요. 발 아픈 줄도 모르겠고. 그래서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돼요.”“이봐요, 나 거짓말 아니거든요. 다리가 단단해졌어요. 믿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내가 너무 마음이 켕겨 대답하자 지은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차갑게 말했다.“거짓말, 아까 내 가슴 본 거죠?”“정말 아니에요.”나는 끝까지 잡아뗐다.그러자 지은이 일부러 내 앞에서 허리를 숙여 일부러 내 쪽으로 가슴을 들이밀었다.심지어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은은한 체향이 코끝에 전해졌다.내가 너무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며 지은은 그 방향으로 따라오고 다른 쪽으로 또 고개를 돌리면 또 그쪽으로 따라왔다.결국 나는 침지 못하고 화를 냈다.“지금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그냥 표정이 어떤지, 정말 군자가 맞는지 보려는 거예요.”나는 진작 이 여자가 일부러 나를 시험할 줄 알았다.하지만 하필이면 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반응해 버렸다.결국 마지못해 손으로 그곳을 가리고 지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안 그러면 분명 끝없이 추궁할 게 뻔하니까.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의 이 행동이 마침 지은에게 들키고 말았다.“그곳은 왜 막고 그래요? 손 좀 비켜요.”나는 지은의 말을 무시했다.하지만 사람들도 많은 곳에서 이렇게 마구 행동하는 걸 보니 너무 심장이 철렁했다.“그만 좀 하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 줄 알 거잖아요.”나는 너무 어이없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봤더니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지은은 상관없다는 듯 내 손을 쳐냈다.“훔쳐보지 않았다면서요? 그럼 그곳 좀 보여줘 봐요. 정상인지 아닌지. 정상이면 용서해 줄게요. 하지만 정상이 아니면 거짓말했다는 증거잖아요.”“내가 거짓말했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거짓말했다고 하면 그게 뭐 의미가 달라져요?”내 반박에 지은이 강조했다.“당연하죠. 그쪽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거든요.”우리 두 사람의 행동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지은의 손을 잡고 떠났다.그렇게 손을 잡은 채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보고 싶
지은의 그 모습을 보니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음식에 대한 욕구와 성에 대한 욕구는 사람의 본성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그때 지은이 내 그곳을 빤히 쳐다보며 농담조로 말했다.“얼씨구, 또 흥분했네요? 이런데 뭘 더 망설여요? 얼른 해요.”지은은 말하면서 치마를 들어 올렸다.그 행동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심지어 당장이라도 지은을 자빠뜨리고 마음껏 취하고 싶었다.하지만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정말이에요? 지금 나 속이는 거 아니죠?”“내 상태를 봤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지은이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로 말하니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대담하게 행동했다.“정말이죠? 그럼 나도 안 봐줘요.”나는 말하면서 지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지은이 갑자기 하하 웃기 시작했다.그 순간 나는 제대로 속았다는 걸 알아챘다.“이러고도 마음이 없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지금 이건 뭐죠?”나는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는 한편 슬프기도 했다.‘이 여자는 나를 갖고 노는 게 재밌나? 이러면 내 자존심이 얼마나 깎일지 모르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곧바로 뒤돌아 떠났다.그러면서 속으로 이번에 지은이 뭐라 하든 절대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단숨에 세기 쇼핑몰을 달려 내려와 대문 앞에 섰을 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확인해 보니 지은이 걸어온 음성통화였다.나는 두말없이 전화를 꺼버렸다.잠시 뒤, 지은이 또다시 전화를 걸어오니 또 꺼버렸다.“흥, 뭐라고 말하든 절대 안 돌아가!”나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바로 떠나려 했다.지은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게 지은이 보낸 메시지라는 걸 알기에 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보냈을지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확인했다.하지만 지은이 보낸 문자를 본 순간 나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그도 그럴 게 지은이 나한테 ‘그쪽 물건 나한테 있는데 안 가질래요?’라는 문자를
“형수한테 목걸이 주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한다지만 형수 친구한테 주는 건 또 뭐예요?”나는 귀찮아서 대충 설명했다.“그냥 주고 싶어 주는 것도 안 돼요? 뭘 그렇게 많이 참견해요? 이건 그쪽과 상관없는 거잖아요.”내가 화를 내자 지은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선물 두 개를 나한테 건넸다.“됐어요, 안 물어볼게요. 나 바래다주는 것 정도는 괜찮죠? 나 짐 이렇게 많은데 택시 타라고 하는 건 아니죠?”난 가끔 내 성격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마음 약하고 귀가 얇은 거.지은이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애원하는 눈빛 한번 보내왔다고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내가 착해서 도와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쪽이 죽든 말든 상관 안 했을 거예요.”나는 말하면서 지은의 짐을 들어주었다.‘정말 돈 많네. 몇백만 원짜리 물건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구매하다니.’돌아가는 길에 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가 내가 동네에 차를 세우자 갑자기 물었다.“수호 씨도 여기 살아요?”나는 그제야 지은이 아직 우리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걸 모른다는 걸 인식했다.이에 곧바로 설명했다.“형과 형수가 이 주변에 사는데 잠깐 얹혀살아요.”“그런데 내가 여기 사는 줄은 어떻게 알아요?”지은은 여전히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바라봤다. 하지만 나도 지은의 질문을 진작 생각해 둔 적이 있기에 침착하게 대답했다.“출근할 때 한 번 봤어요.”“아.”나는 주차하고 나서 지은의 짐을 차에서 하나하나 내렸다.그때 짐을 보던 지은이 머리 아픈 듯 말했다.“물건이 너무 많아요. 혼자 들고 갈 수 없으니 좀 도와줘요.”“그래요. 한번 도와주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도와줘야죠. 오늘이 지나면 보지 못할 테니까.”지은을 도와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있으니 왠지 내가 지은의 부하직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하지만 아까 실수한 경험이 있던 지라 앞에서 걷지 않고 지은이 길을 안내하게 했다.우리는 곧바로 지은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지은이 문을 열며
“네?”‘내가 남기고 간 물건이라고? 뭐지? 왜 기억이 없지?’나는 갑자기 너무 불안했다.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은이 방에서 양말 한 짝을 가져왔다.그 양말은 내 것이 틀림없었다. “이 양말 알아요?”지은의 질문에 나는 가슴이 콕콕 찔렸다.“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렇게 평범한 건 널리고 널렸어요. 게다가 지금 사람들은 자기 옷을 자기 집에 걸어두는데 누가 어떤 걸 신었는지 어떻게 알아요?”“하긴, 내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어요.”지은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정말 여기에 있기 싫었다. 계속 있으면 언젠가 들통날 것만 같으니까.“저기, 혹시 다른 일 있어요?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요.”나는 변명을 대며 곧바로 이곳에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지은이 갑자기 말했다.“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입을 탁 쳤다.‘왜 그런 말을 해서는.’“왜요? 싫어요?”“솔직히 말하면 마음속으로는 싫어요,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니까 말한 대로 하다는 심정으로 하는 거예요. 말해요, 뭘 도와줄까요?”지은은 커다란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나 오늘 침구 세트를 샀잖아요. 그걸 펴줘요.”지은이 침구 세트를 산 건 나도 안다, 그것도 32만 원 넘는, 가격도 어마어마한 거로.하지만 지은은 이런 가격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돈 많은 사람은 역시 달라. 생활할 줄 아네.’그에 반하면 나는 생활하기 바빠 매일 뛰어다녀야 한다.나는 쇼핑백 네 개를 들고 지은이 가리키는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여기예요?”“맞아요. 바로 그 방이에요.”나는 침실에 도착해 낡은 침구 세트를 모두 새것으로 갈아주었다.새로 산 침구 세트는 너무 예뻤다. 따뜻한 분위기에 편안해 보이는 재질, 한눈에 봐도 즐거웠다.‘여기서 자면 어떤 느낌일지.’그때 지은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느껴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으면 누워 봐요.”“아니에요.”절대 그렇게 할 수 없지.만약 더럽히기라도 하거나 냄새라도 묻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