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은의 쓰레기 전남친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계속 지은을 괴롭혔다.“그래, 내가 너한테 미안한 짓 했고, 너도 나한테 미안한 짓 했으니 이제 쌤쌤이겠네?”남자의 말을 들으니 지은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나 또한 너무나도 내 가치관을 벗어나는 말을 들으니 놀라웠다.‘와,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이건 너무 말도 안 되잖아.지은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 시선을 돌려보니 아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심지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웃느라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그걸 본 준휘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헤실 웃으며 말했다.“지은아, 지금 나 용서해주는 거지? 역시 너밖에 없어.”짝!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지은은 준휘의 손을 쳐내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용서? 웃기고 자빠졌네! 난 네가 싫고 역겹고 짜증 나서 네가 가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아예 세상에서 사라져서 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다고.”준휘는 얼굴색이 어두워졌다.“꼭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거야?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야?”“됐으니까 그만 말하고 당장 꺼져. 더 이상 너 보고 싶지 않으니까.”지은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었는지 귀찮은 듯 말했다.그때 준휘가 지은의 손을 덥석 잡았다.“너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 그놈 때문이지?”“내가 누구랑 만나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당연히 상관 있지. 우리 아직 정식으로 헤어진 거 아니야. 그럼 넌 아직도 내 여자 친구인 거고.”“저기 비켜. 누가 내 남자 친구라는 거야? 네가 나한테 뭘 해줬는데? 물질적인 걸 해줬어? 사랑을 줬어? 아니면 옆에 있어주길 했어? 뭐 하나 나한테 해준 거 있어?”지은은 말하면서 점점 흐느끼기 시작했다.“여준휘, 애초에 너를 좋아한 것 자체가 내 눈이 삐었던 거야. 인성은 쓰레기에 여자 등골이나 빼먹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일자리를 몇 번이나 바꿨는지 알아? 바뀔 때마다 내가 너 뒷바라지했어. 그동안 내가 뭐든 해주니까 습관 됐지? 당연한
지은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람을 피우는 것조차 이 남자의 끝이 아니었다. 이 남자는 애초에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우웩!”그녀는 너무 역겨운 나머지 속마저 뒤번저졌다.하지만 준휘 안타까워하기는커녕 눈치 없이 물었다.“왜 그래? 설마 임신한 건 아니지? 설마 그놈 거야?”결국 지은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지은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 준휘한테 복수한 건 맞지만 안전하게 조치했다.이건 임신이 아니라 준휘가 너무 역겨워서 생긴 생리 반응이다.그런데 그 반응을 보고 또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말을 하다니.지은은 준휘한테서 벗어나려고 거짓말을 했다.“그래, 맞아. 나 임신했어. 네 아이 아니야. 너 남의 자식 기르고 싶지 않지? 싫으면 꺼져.”그 말을 들은 준휘는 갑자기 웃었다.“그래, 좋아. 그럼 나한테 돈 줘, 바로 사라져 줄게.”“무슨 염치로 돈 달라는 거야? 네가 나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나도 이런 방식으로 너한테 복수하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밖에서 좀 논 거 갖고 그런 것도 못 하게 하면 나중에 나더러 어떻게 큰일을 하라는 거야?”“큰일 하는 거랑 바람피우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면 좀 염치가 있어. 너도 대학 나왔잖아. 그동안 배운 건 어디 던져버렸어?”지은은 준휘와 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준휘가 이기적인 사람인 데다 무식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그동안 자신이 완전히 눈이 삐어 사람을 잘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에 반해 준휘는 저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마음대로 말해. 난 그딴 거 상관없으니까. 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이제 와서 누굴 탓해? 내가 계속 일자리 바꾼 건 더 나은 걸 찾기 위해서야. 그리고 내가 뒷바라지해달라고 했어? 네가 스스로 했으면서 왜 나를 탓해?”“난 네가 마음 쓰여서 돈 줬던 거였어. 그런데 이제는 그게 내 탓이라고?”“그래, 네 탓이지! 네가 자꾸 뒤에서 밀어주고 잘났으니까 나도 계속 더 우수하고 너랑 어울
“윤 쌤, 주치의가 오라고 해요.”나는 지은을 빨리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고 거짓말을 했다.그때 준휘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차갑게 물었다.“넌 또 뭐야?”“남성 비뇨기과 인턴인데요.”“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인턴이 의사 가운도 안 입었다고?”“오늘부터 일하기 시작한 거라 아직 옷 갈아입지 못했어요.”“오늘부터 일한 사람한테 이런 심부름을 시킨다고?”‘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렇게 논리적이라고?’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러자 준휘가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위아래로 훑었다.“설마 네가 그놈은 아니지?”내가 대답하려 할 때 지은이 갑자기 대답했다.“맞아, 이 사람이야.”그 순간 나는 너무 어이없어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그저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러 온 사람을 물고 늘어진다고?’나는 이 더러운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 설명하려고 했지만 준휘는 나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주먹부터 날렸다.“젠장, 네 놈이 내 여자 친구와 바람피운 상대라고? 너 오늘 죽었어.”준휘가 달려들자 나는 결국 손쓸 수밖에 없었다.나는 순식간에 퍽 하고 준휘의 팔에 있는 혈 자리를 눌러 팔을 마비시켰다.그러고는 상대가 힘이 빠지자 솔직하게 말했다.“저 사실 한의과 인턴이에요. 윤 쌤하고는 아는 사이라 도와주려고 나선 거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젠장! 난 그런 거 다 상관없다고. 나 때렸으면 배상해!”‘이젠 나한테까지 돈 뜯어내려고 용쓰네? 이 자식 아주 돈독에 빠진 미친놈이네.’“그저 혈 자리 누른 거예요. 가해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돈 뜯어낼 생각을 한다고요?”그때 지은이 차갑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가요. 이 자식은 주식 하면서 미쳤으니까.”‘주식 하면서 미쳐 버린 거였어? 어쩐지 생긴 건 멀쩡한데 인간답지 않게 행동한다 했네.’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은과 함께 떠났다.하지만 준휘가 갑자기 달려들었다.“안돼. 가면 안 되지. 손해배상 내놔.”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비원한테
“미쳤어요? 아까 내가 도와줬는데 아직도 이런다고요?”“나를 도와주려고 그랬다고요? 내 처참한 꼴 비웃으려고 그런 거잖아요.”지은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안 순간 나는 화가 나 지은을 째려봤다.“마음대로 생각해요. 설명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맹세하라는 건 절대 따라줄 수 없어요.”“맹세도 못 하겠다면서 어떻게 믿어요?”“그건 그쪽 일이죠. 의심 많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 믿지 못하면서, 내가 왜 그쪽 요구를 들어주려고 기분 나쁜 일까지 해야 하죠?”나는 기분이 너무 나빴다.방금 분명 도와주려는 마음에 나섰는데 이런 취급을 받으니 좋은 일을 하고 오해받았다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난 남자 못 믿어요. 그게 누구라도. 이 세상 남자는 다 쓰레기예요. 하나도 빠짐없이!”지은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지은이 쓰레기 남친한테 너무 상처를 받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기에 결국 말투를 누그러뜨렸다.“세상 모든 남자가 그렇게 이기적인 건 아니에요. 좋은 남자도 많아요. 하지만 다음번에 남자 만날 때는 사람 제대로 보고 신중하게 만나요.”“다시는 남자 친구 안 만들 거예요. 평생 혼자 사는 한이 있더라도 또다시 이런 짓은 안 해요.”지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지은의 감정이 점차 누그러지는 것을 보니 나는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내가 이제 막 두 걸음 걸었을 때 지은이 바로 눈치챘다.“거기 서요!”“또 왜요? 난 그래도 그쪽 존중해주는 마음에 떠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아까처럼 그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어찌 됐든 내가 남자이기에 떠나고 싶다면 지은의 체격으로 나를 막을 수는 없다.“기분이 꿀꿀해서 그러니 같이 점심 먹지 않을래요?”“네?”나는 지은이 나한테 점심을 같이 하자는 요구를 제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두려워 났다.“왜요? 싫어요? 그쪽 거기 내가 고쳐줬다는 거 잊지 마요.”“그래요, 안 싫어요. 좋아요, 됐죠? 어디서 먹을 건데요? 구내식당이요? 아니면 밖이
우리는 결국 중국집에 도착했다.하지만 전에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이 중식당은 1인당 소비가 16만 원 정도라 나한테는 너무 비싸다.이번에 정산받은 월급이 고작 28만 원이니까.이거로는 턱도 없다.“우리 다른 데로 옮기는 게 어때요?”내가 조용히 제안했다.주요하게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아무리 따로 낸다고 해도 나한테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으니까.밥 한 끼에 16만 원을 낸다는 건 내 살을 도려내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그때 지은이 나를 째려봤다.“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먹기만 해요.”말을 마친 지은은 2인석으로 향하더니 한 상 가득 음식을 시켰다.하지만 이 음식들을 보니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지은은 내가 움직이지 않자 화가 난 듯 말했다.“말했잖아요. 돈 낼 필요 없다고. 먹기만 하라고. 그러니까 목석처럼 앉아만 있지 말래요?”“정말 돈 낼 필요 없는 거 맞죠?”지은은 테이블 위에 탁하고 제 카드를 올려 놓았다.“나 여기 회원이라 30% 할인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돈은 다 이 카드로 빠져나갈 거예요.”지은의 말을 들으니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먹기 시작했다.솔직히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게다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끝없이 먹기만 했다.그러자 지은이 발로 나를 툭툭 찼다.“좀 천천히 먹으면 안 돼요? 배고파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체통 좀 지켜요.”“아무 걱정하지 말고 먹기만 하라면서요? 말도 하지 말라고 하니 먹을 수밖에 있어요?”“내 일에 대해 궁금한 거 없어요?”묻지도 않은 말을 지은이 먼저 꺼내자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안 궁금해요. 외국 속담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있대요. 난 죽고 싶지 않아요.”내 말이 끝나자마자 지은은 내 발을 차버렸다.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나는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 아파 죽을 뻔했잖아요.”나는 지은이 찬 다리를 문지르며 억울한 듯 말했다.‘내가 궁금하지 않다는데, 그게 잘못인가? 이건 무슨 논리지?’그때 지은이 화가 난 듯
지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도 몰라요.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대학교 바로 졸업하고 나서일 수도 있고,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일 수도 있죠. 졸업하고 난 강북 한의원에서 인턴을 했고,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레지던트가 됐고, 또 얼마 안 돼서 한의과 부교수가 됐거든요.”“반면 남자 친구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러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해도 이런 저러한 이유 때문에 레지던트로 되지 못했어요.”여기까지 들었을 때, 마침 거의 다 먹은 나는 더 이상 들어줄 심정도 아니라 곧바로 끼어들었다.“그러면 충격이 컸겠네요.”내 말에 지은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봤다.“그러니까 지금 그 자식이 바람피운 이유가 정당하다는 뜻이에요?”“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갓 졸업하고 그렇게 많은 역경에 부딪혔으니 충격이 컸을 거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자 친구가 너무 대단하니 자격지심도 느꼈을 거고.”“그런데 난 내 노력으로 레지던트가 된 거잖아요. 근데 그 자식은 내가 가족 백으로 됐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뭐라고 하든 믿어주지 않았어요!”“그러면 나중에는요? 주식은 왜 갑자기 했대요?”“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니까 아예 다른 쪽으로 일자리 알아봤거든요. 그래서 내가 마침 의료 기기 판매하는 일을 소개해 줬어요. 일 잘하면 수익도 괜찮아 보이니까.”“그런데 얼마 안 하고 또 그만두더라고요. 동료들이 따돌리고 상사가 괴롭힌다면서. 그리고 혼자서 일자리 찾을 수 있다면서 나더러 찾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관계하지 않았죠. 그런데 허구한 날 일자리를 바꿨어요.”“대학 졸업하고 지금까지 5년이 흘렀는데 반년 이상 다녀 본 곳이 없을 지경이라고요. 내가 이유를 물을 때면 온갖 변명을 댔어요. 항상 남 탓만 하고 본인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그러다가 주식에 빠졌는데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싸우고, 물건도 집어 던지고 했는데 나중에 배신까지 하더라고요.”지은은 지난날을 생각하자 너
“안 좋은 일 겪고 정신 차렸다고요? 난 내 청춘을 잃었어요. 내가 그동안 진심을 바쳤던 건 그저 없었던 셈 치라고요?”지은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힘없이 말했다.나는 순간 지은이 왜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계속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면 너무 힘들 거다.밥을 얻어먹는 입장에서 나는 지은을 위로했다.“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중에 아플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 봐요. 아직 살날은 많잖아요, 40년, 50년 심지어는 60년일 수도 있고. 그 몇십 년 동안 후회 속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을 거잖아요.”“미래에 비하면 지난 몇 년 동안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래를 정말 멋지게 살면 적어도 이번 인생을 멋지게 산 거로 되잖아요.”지은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의외로 다시 봤어요.”‘이거 칭찬받은 건가?’나는 순간 너무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사실 나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쪽이 계속 색안경을 끼고 나를 봐서 그렇지.”“그게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그쪽이 너무 경망스럽게 굴었잖아요. 그게 왜 내 탓이에요?”화제가 다시 돌아가자 나는 다급히 말했다.“그만해요. 예전 일은 우리 얘기하지 말아요.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고 있는 것도 인연인데, 지난 일은 평화롭게 그만두고 밥 먹어요. 되죠?”나는 정말 이 여자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제 곧 병원을 떠날 텐데, 서로 좋은 인상을 남겨두는 것도 좋은 거 아닌가?게다가 이렇게 풍성한 한 끼를 제대로 즐기지도 않으면 너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지은은 갑자기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바라봤다.“사실대로 말해요. 정말 나랑 자고 싶은 거 아니에요?”나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 거야?’너무 가슴이 쿡쿡 찔려 침을 꿀꺽 삼키고 난 뒤 말했다.“그날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그저 단순히 농담하고 싶어서 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눈을 뒤집었다.“호의를 몰라주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어요.”“안 도와주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어디서 먹어요? 여기 들어오고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먹었으면서.”지은은 진작 내 마음을 간파한 모양이었다.하지만 나 역시 들켰다는 난처함이 하나도 없었다. 지은과 이렇게 말싸움하는 게 습관된 것처럼.나는 뻔뻔하게 히죽거렸다.“그쪽이 나한테 부탁했잖아요. 그래서 왔는데.”“아!”지은이 갑자기 내 다리를 차버리는 바람에 너무 아파 비명이 새어 나왔다.그러자 지은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은이 웃으니 너무 예뻤다. 워낙 예쁜 데다 이런 식사까지 대접받았으니 나는 지은을 용서하기로 했다.그렇게 배불리 먹고 마셨을 때, 지은이 갑자기 나를 불러 계산하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그 순간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지금 나 놀리는 거예요? 나한테 돈이 어디 있다고.”“요즘 출근했으니 벌었을 거 아니에요. 28만 정도.”“여기 음식 32만 원이잖아요.”나는 순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방금 너무 기쁘게 음식을 먹었는데 순간 너무 괴로워졌다.심지어 먹었던 음식을 모두 토해내고 싶었다.그때 지은이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내가 돈 낼 테니 가서 계산만 하라는 거예요. 여기 와서 식사하는 사람들 대부분 커플이라는 거 못 느꼈어요? 남자가 대부분 계산하고. 그런데 내가 계산하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이런 깊은 뜻이. 놀라 죽는 줄 알았잖아.’지은은 카톡으로 돈을 보내겠다며 친구 추가를 하자고 폰을 내밀었다.이에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지만 카톡을 켠 순간 지은과 이미 친구로 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런데 다시 추가하면 들통날 건 뻔하다.다행히 나한테 카톡 아이디가 하나 더 있어 나는 곧바로 지은을 다른 계정으로 추가했다.그걸 모르는 지은은 나를 바로 친구로 추가했다.“한의 문화를 널리 알리자? 프로필 이름 너무 어이없는 거 아니에요?”지은은 내 프로필 아이디를 보더니
나는 흠칫 놀라 뒤돌아 도망치면서 다급히 해명했다.“서나연 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서나연 씨 병은 침술로 치료해야 하는데, 침술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해요...”서나연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찌르려고 달려들었다.심지어 서광진도 막지 못했다.“아빠, 아빠는 상관하지 마요. 내가 이렇게 크는 동안 내 앞에서 이런 사람 한 명도 없었어요. 오늘 저 사람 가만 내버려두면 울분을 삭일 수 없어요.”나는 서나연이 나를 쫓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서나연의 속도는 나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다만 반항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만약 서나연을 다치게 하기라도 하면 수천 수백억으로도 배상할 수 없을까 봐 가장 두려웠다.문 앞까지 도망간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서 회장님, 서나연 씨가 오늘 치료받을 상태가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할게요.”“다음번이라니?”그때 밖에서 문이 열리더니 서지예가 가위를 쥐고 나를 베려고 하는 언니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언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지예는 다급히 내 앞에 막아섰다.그러자 서나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저 사람한테 물어봐.”“우리 언니한테 무슨 짓 한 거야?”서지예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그 질문에 나는 억울하기만 했다.“치료하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니까 저래요. 옷 안 벗고 침 어떻게 놔요?”서지예는 내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바로 언니한테 그렇게 말했어?”“그럼요. 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요?”나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우리 언니는 엄청 보수적인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언니 앞에서 그렇게 가벼운 말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사전에 고지하지도 않았잖아요...”“지금 고지했잖아.”서지예는 말을 마친 뒤 서나연에게 다가갔다.“언니, 나도 의사야. 저 사람 말 못 믿는다 쳐도 내 말도 못 믿어? 한의학에서의 침술은 확실히 옷을 벗어야 해. 저 사람이 언니를 상대로 뭘 해보려는 게 아니야. 게다가 저
윤지은은 이애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정수호가 아까 나한테 그랬는데, 화 안 나요?”그 말에 이애교가 오히려 반문했다.“내가 왜 화내야 해요?”“질투 안 나요? 속 안 불편해요? 정수호는 애교 씨 남자 친구잖아요.”윤지은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 말에 이애교가 설명했다.“수호 씨는 아직 젊어서 연애를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나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해요.”“애교 씨 마인드는 참 이상하네요.”윤지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하자 이애교가 싱긋 웃으며 반박했다.“그건 지은 씨가 젊어서 아직 단순해서 그래요. 나처럼 실패한 결혼을 경험하면 사람을 잘 보게 돼요.”윤지은은 그 말을 동의할 수 없었다.“그건 아니라고 봐요. 젊다는 건 단지 개념일 뿐이에요. 난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난 지은 씨와 실랑이 벌이러 온 거 아니라 병문안 온 거예요. 지은 씨가 수호 씨 좋아하면 쟁취해도 돼요. 내 감정을 개의치 않아도 돼요.”이애교는 덤덤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그 말에 윤지은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지금 장난해요? 자기 남자를 남한테 밀어주는 거예요?”“난 경쟁하는 거 안 좋아해요. 내 사람이라면 누가 끼어들든 나한테 돌아올 거고, 내 사람이 아니라면 강요해도 소용없잖아요. 그리고 난 이제 개방적이에요. 전에 소유했었다는 거면 충분해요. 안 그래요?”윤지은은 이애교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전에는 분명 내성적이고 보수적이라던 사람인데, 대화해 보니 이게 어떻게 보수적이고 내성적인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오히려 너무 선진적인 마인드였다.윤지은은 순간 자기가 오히려 보수적인 사람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윤지은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지 절대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다.윤지은은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확신했다.“밖에 누구 있어? 나 퇴원 절차 밟아.”윤지은은 갑자기 자기 결정을 바꾸었다....나는 아래층으로 도망쳐 내려온 뒤에도
윤지은은 내가 사운 음식을 보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먹어. 버려.”“왜요?”‘내가 뭘 또 잘못했지?’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내가 또 심기 건드렸나?’내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윤지은은 이상야릇한 말투로 말했다.“왜긴 왜야? 입 맞이 없어.”“입맛이 없다고요? 설마 임신한 거 아니죠?”나는 말하면서 다급히 윤지은의 맥을 짚어 보았다.“아쉽지만 아니에요.”“아쉬워?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임신이 아니면 책임질 필요 없이 네 애교 누나랑 같이 있을 수 있잖아.”윤지은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지은 씨가 임신하면 난 윤씨 가문 사위로 단번에 신분 상승하는 건데 얼마나 좋아요. 직접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어렵게 선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사람 진짜 뻔뻔하네!”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이에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진짜 뻔뻔하면 지은 씨랑 애교 누나를 모두 내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겠죠. 안 그래요?”“꿈 깨. 네가 뭐 왕인 줄 알아? 한꺼번에 몇 면과 결혼하게?”“그러니까 뻔뻔하다고 하는 거잖아요. 자, 죽 먹어요.”나는 그 틈에 윤지은에게 죽을 건넸다.그러자 윤지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먹긴 뭘 먹어? 안 먹어.”“나 뻔뻔한 사람이에요. 안 먹으면 강제로 먹일 수밖에 없어요. 회진하던 의사 선생님이 그걸 보면 병원 전체에 소문날 텐데. 난 이 병원을 그만둬서 괜찮지만 지은 씨는 다르잖아요. 앞으로 이곳에서 일도 해야 할 텐데.”나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윤지은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결국 윤지은이 나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정수호, 너 아주...나는 그 틈에 윤지은의 입가에 뽀뽀했다.“협박뿐만 아니라 입도 맞출 건데요. 지은 씨만 괜찮다면 난 두렵지 않아요.”윤지은은 단번에 목덜미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윤지은은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말로 기분을 형용할 수 없었다.그저 너무 당
요즘은 너무 평화로워 나도 오랜만에 긴장을 풀었다.게다가 나 역시 현성과 주선영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현성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고, 주선영은 단순한 사람이라 만약 사귀게 된다면, 현성은 분명 주선영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 줄 거다.나 혼자 운전해서 월세방으로 돌아와 보니 민우도 집에 없었다.생각하지 않아도 임설아를 만나러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젠장, 결국 오늘은 나 혼자 외로이 남게 되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윤지은이었다.요즘 너무 바빠 병원에도 들르지 못해 윤지은의 상처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태다.현재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나는 윤지은이 잠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요즘 어떤지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웬걸? 윤지은은 내 카톡을 차단해 버렸다.나는 이제 이런 일에 익숙했기에 이번에는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문자는 차단하지 않은 모양이었다.그 시각 한창 핸드폰을 보고 있던 윤지은은 갑자기 뜬 문자를 클릭해 확인했다.[요즘 어때요?]윤지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했다.[안 죽어.]보아하니 다시 익숙한 윤지은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나는 얼른 웃으며 답장했다.[카톡은 왜 또 차단했어요? 내가 언제 또 지은 씨 심기를 거슬렀는데요?][차단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이유가 필요해?][요즘 보러 안 갔다고 삐진 거죠?][누가 삐졌다는 거야? 자기애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넌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나도 어린애 아니고. 쉽게 안 속아.][알았어요. 지은 씨 말이 다 맞아요. 난 매너 있는 남자니까 여자랑 안 싸워요. 내일 보러 갈 건데, 뭐 먹고 싶어요? 챙겨 갈게요.][먹고 싶은 거 없어. 올 필요도 없고. 네 얼굴 보기 싫어.]‘또 반대로 말하네.’나는 이제 윤지은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다 파악한 상태다. 윤지은과 대화할 때는 대부분 말을 바꾸어 이해해야 한다.[알았어요. 안 물어볼게요. 내일 내가 알아서 할게요.]윤지은이 한창 나와 대화하고 있을 때, 서지예가 밖에
“우리는 돈이 없고, 저 영감은 돈이 있는데, 저 영감을 찾아오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가겠어요?”“서 사장님과 돈을 벌면서 본인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고 하더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우리가 뜯어낸 돈은 저 사람이 번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어요.”나는 당연하다는 듯 반박했다.내 대답을 조용히 듣던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으로 내 어깨를 둘렀다.“돈은 받아 가요. 하지만 난 다른 걸 원해요.”“뭘 원하는데요?”나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왠지 여자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때 여자가 내 몸에 기대더니 귓가에 소곤거렸다.“난 당신을 원해요.”나는 눈이 휘둥그레서 여자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지? 장난하나?’“미쳤어요?”내 안색은 단번에 어두워졌다.그러자 여자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나 미쳤어요. 의사가 그러는데 내가 많이 아프대요. 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건장한 사내를 찾아 양기를 제대로 보충해야 한대요.”나는 이제야 여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지난번에 여자가 나한테 달라붙어 나를 꼬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주광덕이 평소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니 여자는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날 생각이었다.남자만 바람피운다는 법은 없다.주광덕은 자기가 이 여자한테 완전히 놀아났다는 걸 아마 모를 것이다.나는 현성을 앞으로 밀었다.“얘랑 예기해 봐요. 이 자식 아다라 활력이 넘칠 거예요.”현성은 어리둥절해서 나를 봤다.“수호야, 이러면 안 되지. 난 못 해. 나 아직 선영이 마음도 못 얻었다고.”나는 얼른 현성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난 정말 안 돼. 여자 친구가 나 단속하거든. 너도 알잖아. 내 여자 친구 아버지가 강북시 부시장인 거. 만약 내가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걸 들키면 끝장이야.”현성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네가 몸 함부로 굴리고 다닌 게 처음도 아니고. 이번 한 번 더한다고 티도 안 나.
그런데 오늘 현성만 잡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때문에 지금으로서 주광덕에게 선택지라고는 나와 서윤기와 척지거나 진술을 바꾸거나 두 가지뿐이었다.잠시 속으로 저울질하던 주광덕은 결국 전 자를 선택했다.“아니에요. 이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이 둘이 한패예요. 난 이 두 사람 몰라요.”현성은 나를 보며 어떡하냐는 눈빛을 보냈다.나도 주광덕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다급히 주광덕의 혈자리를 누르며 다시 물었다.“삼촌, 내 얼굴 제대로 봐요. 나 정말 몰라요?”주광덕은 혈자리가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방에서 요염한 여자가 걸어 나와 이상한 눈빛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그 틈에 주광덕은 몸을 버둥대며 나를 밀어냈다.“이 사람이 내 아내예요. 여보, 자기가 말해 봐. 이 사람들 강도 맞지?”나와 현성은 순식간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하지만 여자는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 내 팔짱을 끼며 놀라운 대답을 했다.“여보, 이 사람 당신 조카잖아요. 잊었어요?”여자의 답변에 나와 현성마저 어리둥절해졌다.다행히 경찰의 고비는 넘겼다.두 경찰은 주광적을 훈계조치하고 바로 떠났다.경찰이 떠난 뒤 주광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왜 그래? 저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바보예요? 상대가 돈을 돌려줬는데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하루 정도 잡혀 있다 바로 풀려날 텐데. 나중에 저 사람들이 나오면 그땐 어떡하려고요?”여자는 주광덕보다 더 주도면밀했다.주광덕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네. 그래도 어떻게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 저 사람들이 맨날 와서 돈 뜯어내는 거 난 더 이상 못 참아.”“오늘 가게 매출 바닥 났다고. 내가 뭐 부자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저 사람들한테 돈 갖다 바쳐?”주광덕은 가게 매출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뒤도 생각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그 말에 여자가 주광덕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설마 성공해도 남 덕분, 실패해도 남
“수호야. 방금 왔는데 또 어디 가려고?”샤워를 마치고 온 민우는 내가 다시 나가려고 하자 걱정스레 물었다.나는 신발을 신는 와중에 민우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일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 너 먼저 자. 기다릴 필요 없어.”“알았어. 일찍 돌아와.”민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우리 셋은 늘 이렇게 잘 맞다. 서로 믿기 때문에 묻지 말아야 할 건 눈치껏 묻지 않지만 정말 일이 있을 때는 모두 함께 하는 게 우리 사이의 국룰이다.나는 얼른 차를 몰고 주광덕이 사는 동네로 향했다.동네에 도착해 경찰차를 본 순간 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주광덕은 역시나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기다렸던 거였다.나는 현성의 상황을 몰랐지만, 현성의 차가 아직 아래에 있는 걸 봐서 이미 위층으로 올라갔다는 뜻이었다.나는 현성에게 문자를 보내 절대 위협을 가하거나 돈을 빼앗았다는 걸 인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그러고는 나도 이미 아래층에 도착해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그 시각, 현성은 위층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현성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내 문자를 보자 서서히 걱정을 내려놓았다.“다시 묻겠습니다. 이 2천만 원은 어디서 났죠?”현성은 가슴을 쭉 펴고 큰 소리로 말했다.“저 사람이 준 거예요.”“그런 일 없어요. 난 저 사람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큰돈을 그냥 주겠어요? 형사님, 저 사람은 강도예요. 당장 잡아가세요.”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현성은 당장 반박했다.“강도요? 당신이 직접 문 열어준 거 잊었어?”“그리고 보시다시피 제 몸에 문을 따고 들어올 만한 도구가 있나요? 없잖아요. 도구도 없는데 어떻게 강도예요?”주광적이 말했다.“나를 협박한 거잖아. 나는 나이 많은 늙은이고 그쪽은 건장한 젊은이니까 나를 해칠가 봐 돈을 준 거라고.”“형사님, 나 정말 저 사람 몰라요. 제발 잡아가세요.”주광덕은 진작 함정을 파고 우리를 기다렸다. 그런데 현성은 정말 그 함정에 빠지고 만 거였다.현성은 얼굴이
“두 번째도 있어?”연승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계속 그러면 세 번째, 네 번째도 있어.”“너... 알았어. 말해. 두 번째는 뭔데?”연승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너도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우리 두 가게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을까?”연승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협력?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왜 안 되는데?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많이 먹으면 몸이 안 좋아질 수 있잖아. 그럴 때 우리 한약과 너희 레스토랑 음식을 조합해서 먹게 하면 얼마나 좋아. 너도 그렇게 세트로 팔면 더 좋지 않아?”“그러면 너희 레스토랑도 장사가 더 잘 될 테고 고객들 건강도 좋아지고 서로 좋잖아. 심지어 이걸 너희 가게 특색으로 밀 수도 있잖아!”연승호가 비록 세상 물정 모르고 귀하게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기에 바로 반박했다.“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너희 좋은 짓이잖아. 난 싫어.”“싫다면 너희 가게 손해지. 난 상관없어. 네가 협력 안 하면 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 그만이니까.”나는 질척거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놈은 돌려줄게. 첫 번째 요구만이라도 잘 기억해. 두 번째는 생각해 보고. 우리 천수당 문은 언제든 열려 있으니까.”말을 마친 뒤 나는 민우와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레스토랑을 나섰다.우리 손에는 연승호의 범죄 증거가 있기에 걱정될 건 없었다.게다가 두 번째는 사실 내가 현장에서 바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돈 벌 루트가 있는데 벌지 않는 건 바보나 다름없다.인정하기 싫지만 푸른솔 레스토랑은 평판이 좋아 고객이 꽤 많다. 만약 우리의 한약과 이곳 음식을 결합한 음식이 나온다면 그건 분명 이곳 특색이 될 수 있을 것이다.푸른솔 레스토랑에서 나온 민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 쉽게 저 자식을 주무를 수 있단. 너무 쉬운 거 아니야?”“아직 경계를 늦추긴 일러. 연승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여준휘도 사실 무서웠다.우리한테 증인과 물증 모두 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연승호에게 또 혼나는 건 당연했다.결국 여준휘는 연승호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도련님, 전 안 돼요. 저는 힘도 없고 백도 없는데 정수호 저놈이 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도련님이 나서주세요.”연승호는 당장이라도 여준휘를 차버리고 싶었다.평소에 쓸모없는 것도 모자라 중요한 타이밍에도 실수했으니. 이제는 도망치고 싶어도 나와 민우가 이미 문 앞에 도착해 노크하고 있는 탓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그 시각.“수호야. 연승호가 문 열까?”민우는 문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안 열면 차라리 더 좋아.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되니까. 증거도 있는데 무서울 거 뭐 있어?”어찌 됐든 연승호는 이번에 도망칠 수 없다.연승호도 계속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다.그 순간 나는 우리가 잡은 높을 발로 걷어차 우리 넘어뜨렸다.“네 사람이야!”연승호는 겉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 사람이라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계속 잡아떼. 이 자식이 이미 다 불었어. 네가 우리 가게 앞에 쓰레기 터러와 똥 테러를 해서 우리 가게 이미지를 망치라고 지시했다고. 여기 영상 증거도 있는데 볼래?”민우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재생했다.영상 속에서 놈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걸 확인한 연승호는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내가 지시했다고 하는데 증거 있어? 이 개자식이. 너 지금 나 모함하는 거지?”연승호는 말하면서 민우에게 달려들어 일부러 과장된 동작으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그 순간 나는 얼른 민우를 뒤로 잡아끌었다.연승호는 때리는 척하면서 기회를 노려 민우 핸드폰을 뺏으려는 수작이었다.민우도 그걸 눈치채고 신속히 연승호와 거리를 두었다.“연승호, 증거 인멸하려고? 잘 들어. 소용없어. 이 자식이 네가 송금한 기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