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고? 네가 관련이 없다고 아무리 우겨도 안왕부 사람이 벌인 일이니 너도 책임이 있어! 짐은 네가 억울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네 아랫사람이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다고? 웃기는 소리!”명원제는 성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부황의 말씀이 맞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소자는 정말 몰랐습니다. 부황께서 철저한 조사로 이 일의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안왕이 말했다.“믿기 힘들다는 것은 아느냐?”안왕은 흐르는 피를 닦으며 명원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부황,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후가 혜선생이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다섯째에게 알려줬는데, 다섯째는 왜 그 사실을 바로 부황께 알리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태손에게 갔겠습니까? 태손에게 가는 것보다 부황께 이 일을 알리고 처리하는 게 훨씬 빨랐을 텐데요. 다섯째가 설마 자신이 벌인 일을 부황에게 들킬까 봐 그런 게 아닐까요?”“……”“게다가 혜선생은 안왕부의 사람은 맞지만 최근 그와 왕래도 적었고, 소자는 그를 신임하지 않아 중요한 일을 맡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부황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소자가 언제 혜선생을 통해 일을 처리했습니까? 만약 소자가 이 일을 꾸몄다고 해도, 소자는 절대 혜선생에게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부황, 소자 너무 억울하옵니다!”“그러니까, 네 말은 다섯째가 자작이라도 하는 거라고?”“부황,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소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섯째가 이런 일을 꾸민 게 한두 번이 아니잖습니까? 전에도 자해를 하지 않았습니까?”“무슨 헛소리야? 짐이 언제 그놈이 자해를 했다고 말했던가?” 명원제가 노하여 탁자를 쳤다.안왕은 고개를 들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명원제를 보았다.“자해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을 리 없잖아요.”안왕의 말을 듣고 명원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명원제는 순간 기왕이 떠올랐다. 그는 첫째인 기왕을 처벌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암살 사건의 결론을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었
태상황이 어서방으로 들어오자 명원제는 자리를 비켜 태상황의 옆에 섰다. 태상황은 안왕을 노려보며 “네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무슨 할 말 없느냐?”라고 물었다. 안왕은 최근까지 태상황과 교류가 없었다. 안왕은 지금까지 태상황과 관련된 일은 모두 외조부인 적위명(狄魏明)을 통해서 들었다. 안왕은 태상황의 등장에 잔뜩 긴장했다.“황조부, 손자는 정말 억울합니다.” 안왕이 말했다.“뭐가 억울한가?” 태상황이 물었다.“황조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손자가 어떻게 다섯째의 아들을 가지고 모험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정후는 다섯째의 장인이니……”태상황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표정으로 안왕의 말을 끊었다.“쓸데없는 말은 삼가거라. 네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조사하면 다 나오게 되어있다! 게다가 네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데 네가 전혀 몰랐을 리가 없지 않아? 어디서 뻔뻔하게 거짓을 말하느냐!”명원제는 태상황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태상황께서도 저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저 몹쓸 넷째에게 하마터면 내가 속을 뻔했어.’안왕은 태상황의 말을 듣고 입술이 벌벌 떨렸다. “그건……”태상황은 앞에 놓인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했다.“지금 네 태도를 보아라! 네 말대로 넌 이 일에 관련이 없고, 네 아랫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치자, 그럼 그를 잘 돌보지 못한 너에게는 잘못이 하나도 없느냐?”“손자…… 죄가 있습니다.” 태상황의 무서운 눈빛에 안왕이 고개를 속였다. 태상황은 차갑게 웃으며 “그래, 오늘은 사람을 잘 가르치지 못한 죄를 묻겠다. 과인이 직접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만약 이 일에 네가 연루되어 있다는 게 확인되면, 과인은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안왕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황조부! 왜 손자를 믿지 못하십니까? 태상황께서는 다섯째의 말은 믿으시고 왜 같은 친왕인 제 말을 믿지 않으십니까? 너무 편파적이신 거 아닙니까? 이 일은 정말 제가 꾸민 게 아닙니다! 막말로 다섯
안왕은 태상황의 결정에 반박을 하려고 했으나, 태상황의 엄한 표정을 보고 고개를 푹 숙이고 물러갔다.안왕은 자신의 계획과는 정반대의 결과에 충격을 먹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안왕부로 돌아온 그는 사람을 시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조사하라고 했다. 잠시 후, 안왕은 조사 결과를 듣고 외조부인 적위명(狄魏明)을 청해 왕부로 모셨다.‘귀영위인 나장군이 개입됐군.’그는 귀영위가 외조부인 적위명의 손아귀에 있다고 착각하고 방심했다. 그는 지금까지 초왕부를 향해 두 번의 화살을 당겼지만 모두 실패했다. 첫 번째 실패는 원경릉 때문이고, 두 번째 실패는 태상황 때문이다. 그는 모든 변수를 계산했고, 혜선생을 앞세워 주도면밀하게 행동했다. 안왕은 혜선생을 위해 판 무덤에 자신이 들어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모두 귀영위를 간과하고 방심했기 때문이다. *적위명이 안왕부에 다다르자 안왕의 하인이 그를 서재로 안내했다. 안왕의 말을 전해 들은 적위명은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귀영위가 관련 됐다고? 그럴 리 없어. 그랬다면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느냐? 혹시 잘못 알아본 것 아니냐?”“외조부, 귀영위가 맞습니다. 나장군이 직접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그럴 리가 없어. 나장군의 업무는 태자비를 보호하는 것 외에는 없어. 이는 태상황께서 친히 명령하신 것으로 나장군은 매일 태자비의 관련된 사항만 보고했어. 태자비 관련 일 말고는 모두 나에게 맡기셨는데 말이야……”안왕은 적위명이 믿지 않자 넌지시 “태상황께서 외조부를 의심하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뭐라고?” 적위명의 표정이 굳었다.적위명은 태상황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 없었다. 이전에 제왕이 원경릉을 암살하려고 했을 때, 그는 몰래 자객들을 보내 나장군이 가지 못하게 방해했다. 하지만 자객들은 귀영위에게 신분이 노출된 적이 없었기에 아무도 그가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적위명은 놀란 표정으로 안왕을 보았다.“태상황께서 나를 의심하신다면…… 그렇
안왕은 태상황이 이렇게 나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태상황의 표정이 얼마나 섬뜩했는지 안왕은 그의 잔상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외조부, 황조부께서 조정 일에 관여하지 않은지 꽤 됐지 않습니까? 혹시 이번 일로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기강을 잡으려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다섯째의 일에 이렇게 노발대발하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안왕의 말을 듣고 적위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네 말을 들으니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구나. 비록 태상황께서 몇 년 동안 조정에 관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귀영위를 통해 조정 내외로 모든 일을 꿰뚫고 있었으니 말이다. 경계를 하고 있어야겠어. 방심하다 뒤통수 맞을 수 있으니까.” 적위명이 말했다.안왕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부황은 매일 많은 일을 처리하기에 이깟 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상황은 천성이 꼼꼼하고 할 일이 없어 시간도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이 일의 진범을 찾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안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늙은이가 죽지도 않고 명이 참 기네요.” 라고 말했다. 순간 적위명이 눈을 번뜩이며 그를 보았다.“안왕, 방금 그 말 뜻은……?”안왕은 한숨을 내쉬며 외조부를 보았다. “외조부, 잘만 처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적위명은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가 입을 열었다.“그건 마지막 패로 남겨두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뿐 아니라, 우리 집안까지 모두 다 죽는 거야.” 적위명이 말했다.“예, 알겠습니다. 뭐든 외조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안왕은 고개를 숙였다.*초왕부.시간이 흐르자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우문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취해서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소로는 세 번이나 토를 했으며 전진장군도 몇 번이나 바닥에 고꾸라졌고, 술이라면 환장을 하는 냉정언도 하인 두 명이 그를 부축해 마차에 실었다. 우문호와 탕양은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겼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며 손님
희상궁과 기상궁이 우문호를 도와 원경릉을 밖으로 빼냈다. “드디어 나오셨네요! 태자, 태자비님을 씻겨야 할 것 같습니다. 옷에 술을 쏟으셔서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합니다.” 희상궁이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지저분한 옷과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먼지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술을 마신 거야? 아니면 술독에 빠졌던 거야?” 우문호의 목소리가 떨렸다.“오늘은 기쁜 날이니 태자비께서도 술을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까 다른 하인들의 말을 들으니 의자에 다리를 하나 올리고는 손으로 술이 담긴 항아리를 들어 벌컥벌컥 마시다가 머리가 항아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기상궁이 말했다.우문호는 한숨을 내쉬며 원경릉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은 것을 참았다. 그는 오늘 연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같이 경사스러운 날,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설마 원경릉이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야?’우문호는 원경릉을 보며 혀를 찼다.“어쩌죠. 황친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태자비께서 그런 흉한 모습을 보이셨으니, 내일이면 소문이 파다하게 날 텐데 말입니다.” 기상궁이 말했다.우문호는 소문이 나는 것보다 지금 당장이 중요했다. 그는 바지 쪽을 내려다보며 오늘도 글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어의를 불러라! 무슨 수를 써도 태자비를 깨워야 한다!” 조어의는 오늘 같은 날 호출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연회에서 술을 마셨기에 얼굴이 붉었다. 하지만 그는 어의로서 술에 쉽게 취하지 않는 안주만 골라 먹어 취하지는 않았다.어의는 태자의 급한 부름에 태자비가 사고라도 난 줄 알고 약상자를 짊어지고 빠르게 소월각으로 달렸다.“무슨 일입니까?” 조어의가 물었다.“태자비께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취하셨습니다!” 기상궁이 말했다.우문호는 조어의의 옷깃을 잡고 “조어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태자비가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놓거라!” 라고 말했다.‘왕야께서 왜 이렇게 조급하신 거지? 설마……’ 조어의는 우문
우문호는 조어의를 보며 “방법을 생각해 내거라.” 라고 말했다.조어의는 고심 끝에 이를 악물었다.“토를 하셔야겠다면 목구멍에 손을 넣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그건 안 돼. 억지로 하면 몸 상해.” 우문호는 원경릉의 몸이 상하는 것은 싫었다.“그럼 태자비를 모시고 바깥바람을 쐬는 것은 어떠십니까? 땀이 좀 나면 술이 빨리 깹니다. 그 후에 뜨거운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 숙취가 좀 사라질 겁니다.”어의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에 두 사람이 나오자 다바오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몸에 기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별이 보였으며, 속이 울렁거렸지만 토해내지 못했기에 견디기 힘들었다.원경릉이 헛구역질을 하자 우문호는 그녀를 번쩍 안고 소월각으로 들어와 희상궁에게 따듯한 물을 가져오라 했다. 희상궁은 따듯한 물과 수건을 가지고 와서 원경릉의 옷을 벗기고 몸을 닦았다. 희상궁은 상처가 있는 복부를 닦으며 원경릉이 안쓰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만약 삼둥이를 낳는 날에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희상궁은 황실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희상궁에게 원경릉이란 딸과 같은 존재였다.‘왕야께서는 몸이 성치도 않은 왕비를 데리고 그걸 꼭 해야겠는가? 남자란 참……’희상궁은 우문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녀는 원경릉의 몸을 닦고 이불을 덮어 주고 나서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었다. 꼬질꼬질한 물이 뚝뚝 떨어지자 원경릉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고비가 많았지만, 지금 왕비는 전처럼 건강해졌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얼굴을 보고 마치 사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그는 원경릉을 볼 때마다 추녀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당시 원경릉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원경릉은 그때와 다르다. 얼굴도 마음도 너무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나에게 세 아이를 낳아주다니…… 앞으로 난
“경릉아. 왜 여기서 자고 있느냐? 어후, 술 냄새!”원경릉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아, 어지러워.”“누구랑 마셨길래 이렇게 된 거야. 술 마시지 말라니까 진짜 말 안 듣네.”원경릉은 눈을 감고 아픈 머리를 감쌌다. 잠시 후, 따듯한 수건이 이마에 닿았다. 순간 원경릉은 익숙한 향에 눈을 떴다.“엄마?”“응, 왜 갑자기 새삼스럽게 그래? 너 어제 누구랑 술 마셨어?” 원경릉은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켜 자신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소파, 티브이, 탁자, 장롱, 유리창……‘세상에, 내가 지금 집 거실에 와있잖아?’원경릉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익숙한 옷장과 거울이 있었다.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청바지에 티셔츠, 포니테일, 엄마가 생일에 선물해 준 백금 목걸이……‘세상에, 세상에!’원경릉이 놀라서 침대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돌아온 건가? 그럼 다섯째는? 삼둥이는?’그녀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에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경릉아, 왜 울어! 누가 널 괴롭혔어?” 원경릉의 엄마가 놀라서 그녀에게 물었다.원경릉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껴안았다. “엄마,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원경릉의 엄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엄마는 항상 여기 있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았다. 그녀는 이게 꿈이 아닌가 하며 손을 뻗어 엄마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진짜 같은데 진짜인가?.’그녀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 벽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주의 깊게 보았다. 졸업식에 박사모를 쓰고 있는 원경릉의 얼굴.그 사진은 졸업사진을 고를 때 아빠가 가장 예쁘다고 골라준 사진이었다.그녀는 소파에 누워 탁자 위에 놓은 열다섯 살때 사진을 보았다. 열다섯 번째 생일에 아빠가 그녀를 위해 찍은 사진으로 그녀는 그네를 타고 있고, 뒤에는 그녀의 오빠가
원경릉의 엄마는 원경릉을 안고 울었다. 그녀는 엄마를 보며 “아빠는? 오빠는? 할머니는?” 이라고 물었다.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아빠랑 오빠는 출근했지.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어. 네가 간 후로 할머니께서 몸이 계속 편찮으셨거든. 1년 내내 병원 신세셔.” 라고 말했다.“세상에. 나 빨리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어. 할머니 어디 병원에 계셔?” 원경릉이 물었다.“시립병원이야. 준비해 엄마가 데리고 갈 테니.”원경릉의 엄마는 핸드폰을 들었다.“네 아빠랑 오빠한테 전화해서 네가 돌아왔다고 말해야 하니까 좀 기다려봐.”원경릉은 순간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경릉아! 어디 갔니 경릉아!” 원경릉은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엄마!” *“경릉아! 일어나 봐! 왜 울어? 설마 악몽이라도 꾼 거야?” 눈을 뜨자 그녀의 앞에는 우문호가 보였다. “우리 엄마는? 엄마 어디 갔어?”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밀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아냐…… 또 여기야? 나 방금까지 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할머니 병원도 가야 하는데…… 다섯째 안되겠어 나 돌아가야 해.”우문호는 놀라서 그녀를 껴안았다.“경릉아, 너 악몽을 꿨나 봐. 걱정 마 내가 여기 있잖아.”“아니야! 나 방금 엄마를 봤다고! 엄마가 내가 없어져서 매우 슬퍼하셨어…… 그래서 우울증 약도 먹고…… 내가 엄마를 아프게 했어. 할머니도…… 이거 놔! 나 돌아가야 해. 나 집으로 가야 한다고!”원경릉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경릉아 일단 진정 좀 해.” 우문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나 가야 한다고!”“넌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나와 우리 삼둥이 곁에 있어야지.” 원경릉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보았다.“넌 몰라. 하나도 모른다고. 우리 엄마가 아프다고! 그렇게 강했던 사람이 나 때문에 아프다고! 지금 엄마가 나를 찾고 있을 거야. 나 빨리 돌아가야 해.”우문호는 처음 보는 원경릉의 모습에 놀라서 그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