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조어의를 보며 “방법을 생각해 내거라.” 라고 말했다.조어의는 고심 끝에 이를 악물었다.“토를 하셔야겠다면 목구멍에 손을 넣는 게 가장 빠른 길입니다.”“그건 안 돼. 억지로 하면 몸 상해.” 우문호는 원경릉의 몸이 상하는 것은 싫었다.“그럼 태자비를 모시고 바깥바람을 쐬는 것은 어떠십니까? 땀이 좀 나면 술이 빨리 깹니다. 그 후에 뜨거운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 숙취가 좀 사라질 겁니다.”어의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그녀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에 두 사람이 나오자 다바오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원경릉은 우문호의 몸에 기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별이 보였으며, 속이 울렁거렸지만 토해내지 못했기에 견디기 힘들었다.원경릉이 헛구역질을 하자 우문호는 그녀를 번쩍 안고 소월각으로 들어와 희상궁에게 따듯한 물을 가져오라 했다. 희상궁은 따듯한 물과 수건을 가지고 와서 원경릉의 옷을 벗기고 몸을 닦았다. 희상궁은 상처가 있는 복부를 닦으며 원경릉이 안쓰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만약 삼둥이를 낳는 날에 원경릉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희상궁은 황실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희상궁에게 원경릉이란 딸과 같은 존재였다.‘왕야께서는 몸이 성치도 않은 왕비를 데리고 그걸 꼭 해야겠는가? 남자란 참……’희상궁은 우문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녀는 원경릉의 몸을 닦고 이불을 덮어 주고 나서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었다. 꼬질꼬질한 물이 뚝뚝 떨어지자 원경릉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고비가 많았지만, 지금 왕비는 전처럼 건강해졌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얼굴을 보고 마치 사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그는 원경릉을 볼 때마다 추녀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당시 원경릉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원경릉은 그때와 다르다. 얼굴도 마음도 너무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나에게 세 아이를 낳아주다니…… 앞으로 난
“경릉아. 왜 여기서 자고 있느냐? 어후, 술 냄새!”원경릉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아, 어지러워.”“누구랑 마셨길래 이렇게 된 거야. 술 마시지 말라니까 진짜 말 안 듣네.”원경릉은 눈을 감고 아픈 머리를 감쌌다. 잠시 후, 따듯한 수건이 이마에 닿았다. 순간 원경릉은 익숙한 향에 눈을 떴다.“엄마?”“응, 왜 갑자기 새삼스럽게 그래? 너 어제 누구랑 술 마셨어?” 원경릉은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켜 자신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소파, 티브이, 탁자, 장롱, 유리창……‘세상에, 내가 지금 집 거실에 와있잖아?’원경릉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익숙한 옷장과 거울이 있었다.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청바지에 티셔츠, 포니테일, 엄마가 생일에 선물해 준 백금 목걸이……‘세상에, 세상에!’원경릉이 놀라서 침대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돌아온 건가? 그럼 다섯째는? 삼둥이는?’그녀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에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경릉아, 왜 울어! 누가 널 괴롭혔어?” 원경릉의 엄마가 놀라서 그녀에게 물었다.원경릉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껴안았다. “엄마,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원경릉의 엄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엄마는 항상 여기 있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았다. 그녀는 이게 꿈이 아닌가 하며 손을 뻗어 엄마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진짜 같은데 진짜인가?.’그녀는 엄마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 벽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주의 깊게 보았다. 졸업식에 박사모를 쓰고 있는 원경릉의 얼굴.그 사진은 졸업사진을 고를 때 아빠가 가장 예쁘다고 골라준 사진이었다.그녀는 소파에 누워 탁자 위에 놓은 열다섯 살때 사진을 보았다. 열다섯 번째 생일에 아빠가 그녀를 위해 찍은 사진으로 그녀는 그네를 타고 있고, 뒤에는 그녀의 오빠가
원경릉의 엄마는 원경릉을 안고 울었다. 그녀는 엄마를 보며 “아빠는? 오빠는? 할머니는?” 이라고 물었다.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아빠랑 오빠는 출근했지.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어. 네가 간 후로 할머니께서 몸이 계속 편찮으셨거든. 1년 내내 병원 신세셔.” 라고 말했다.“세상에. 나 빨리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어. 할머니 어디 병원에 계셔?” 원경릉이 물었다.“시립병원이야. 준비해 엄마가 데리고 갈 테니.”원경릉의 엄마는 핸드폰을 들었다.“네 아빠랑 오빠한테 전화해서 네가 돌아왔다고 말해야 하니까 좀 기다려봐.”원경릉은 순간 하늘과 땅이 빙빙 도는 것을 느꼈다. “경릉아! 어디 갔니 경릉아!” 원경릉은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엄마!” *“경릉아! 일어나 봐! 왜 울어? 설마 악몽이라도 꾼 거야?” 눈을 뜨자 그녀의 앞에는 우문호가 보였다. “우리 엄마는? 엄마 어디 갔어?” 원경릉이 다급하게 물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밀치고 침상에서 내려왔다.“아냐…… 또 여기야? 나 방금까지 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할머니 병원도 가야 하는데…… 다섯째 안되겠어 나 돌아가야 해.”우문호는 놀라서 그녀를 껴안았다.“경릉아, 너 악몽을 꿨나 봐. 걱정 마 내가 여기 있잖아.”“아니야! 나 방금 엄마를 봤다고! 엄마가 내가 없어져서 매우 슬퍼하셨어…… 그래서 우울증 약도 먹고…… 내가 엄마를 아프게 했어. 할머니도…… 이거 놔! 나 돌아가야 해. 나 집으로 가야 한다고!”원경릉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경릉아 일단 진정 좀 해.” 우문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나 가야 한다고!”“넌 아무 데도 가면 안 돼. 나와 우리 삼둥이 곁에 있어야지.” 원경릉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보았다.“넌 몰라. 하나도 모른다고. 우리 엄마가 아프다고! 그렇게 강했던 사람이 나 때문에 아프다고! 지금 엄마가 나를 찾고 있을 거야. 나 빨리 돌아가야 해.”우문호는 처음 보는 원경릉의 모습에 놀라서 그녀
불길하고 아픈 꿈“그건 분명 악몽이야, 생각하지 마.” 우문호가 얼른 말했다.원경릉이 ‘응’하더니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서, “가서 우리 떡들 좀 보고 올 게.”“나도 같이 가.” 우문호도 얼른 내려와서 한 손으로 원경릉 팔을 잡고, “기다려.”원경릉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우문호에게, “자기를 또 기다려야 해? 그냥 오면 되잖아, 바로 옆방인데.”우문호가: “그래도 같이 가, 너 아직 세수도 안 했잖아, 당신 몸에 술냄새때문에 우리 떡들 훈제 되겠어.”원경릉이 웃으며: “그렇기는 하네, 당신은 어젯밤 어떻게 참았어? 취했던 거야?”“반쯤, 괜찮아.” 우문호가 말했다.만아가 문을 두드리며, “전하, 태자비 마마, 시중들어 드릴까요?”“가서 물 좀 길어다 줘.” 우문호가 말했다.“예!” 만아가 물러났다.원경릉의 습관에 따르면 옷을 입을 때는 시중들 필요가 없어서, 우문호 이 쟁쟁하신 분도 혼자 옷을 입으시는데 오늘따라 헤롱헤롱 해서 입는데 오래 걸리고 심지어 속옷도 입지 않았다.원경릉이 웃으며 다가와, “그러고도 안 취했다고 할 거야, 어젯밤에 나보다 더 심하게 취했나 봐? 옷도 제대로 못 입고.”원경릉이 우문호의 속옷 끈을 매 주고 겉옷을 걸쳐 주는데 비단 옷감에 우문호의 쭉 뻗은 몸매가 드러나고 조각 같은 얼굴로, “왜 계속 날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눈빛이 또렷한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얼굴을 더듬어 봤다.우문호가 고개를 가로 젓더니 원경릉을 안으며 작은 소리로: “자기야,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널 불러도, 아니 네가 어디 있어도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곁으로 돌아오기로, 우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기로 말이야.”“내가 어디를 가는데 어디?” 원경릉이 어이가 없는듯 웃었다.“어디를 가든.” 우문호가 강조하며,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곁으로 돌아와야 해. 난 당신 없으면 안돼.”원경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았어, 술 좀 취했다고 어떻게 바로 들러붙
정정 대장군을 만나러원경릉의 머릿속에 꿈속의 광경이 천천히 떠올랐고,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또렷해 지더니 꿈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오히려 지금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숙취때문에 몽롱해서 그런지 땅을 밟고 있는게 구름이나 안개를 밟고 있는 것처럼 붕 뜬 느낌이다.우문호를 대하는 원경릉의 미소는 전부 생기 없이 창백했다. 억지로 만들어내서 어색할 수밖에.문득 귓가에 엄마의 애끓는 부르짖음이 들리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허리를 숙이고 가슴을 감싸 쥐어야 겨우 멈췄다.그리고 그런 원경릉을 우문호는 쭈그리고 앉아 살포시 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침통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원경릉은 우문호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꿈 속에 다시 꿈이 있고 그녀가 엄마를 찾아 뛰어내렸지만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녀가 가도록 보내지 않았다.우문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경악을 발견하고 원경릉은 아픔과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우문호도 원경릉도 아무 말이 없다. 마치 그렇게 술이 취한 적이 없었다는 듯.하지만 원경릉은 이날 저녁 우문호에 기대 정자에서 별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자기가 전에 그랬지 내가 만약 당신 곁을 떠나가게 되면 자기를 찾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럴 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난 만드시 자기와 아이들을 찾아 돌아 오고 말 거야. 절대로 당신과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아.”우문호가 원경릉을 꼭 끌어 안고 목이 메어 그저 몇 번이고 ‘응’하고 말했다.원경릉의 마음은 여전히 묵직하게 아프지만 어떻게 이 마음을 가눠야 하는지 배웠다.아이들의 한달 축하를 마친 다음은 북당의 태자 책봉 의식이다.명원제는 전에 국서를 보내 각국의 사신들을 초대했고, 지금 사신들이 줄지어 도착하고 있다.우문호도 기쁜 것이 파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보고하길 정정대장군이 내일 경성에 도착한다는 것이다.우문호는 들뜬 나머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원경릉을 안고 계속 자신과
정정대장군을 기다리며원경릉이 사기이 말에 웃으며, “사람이 어떻게 초능력이 있어? 너무 과장한 거 아냐?”“초능력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체격이 건장하고 무공이 느껴질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여 장군이라니 까요.” 사식이가 받아 치며 말했다.원경릉이 ‘풉’하고 웃으며, “사식아, 너희 원씨 집안도 여장부 집안이라고 하던데 원씨 집안 사람도 다들 체격이 건장하고 무공이 느껴지는가 보지?”자기 집안 얘기를 하니 사식이도 자랑스럽지만: “우리 원씨 집안은 당연히 대단하죠. 하지만 진근영 군주만큼은 아니예요. 진근영 군주는 직접 병사를 데리고 내란을 평정했을 뿐 아니라, 여러차례 선비족과 싸우는 지휘관이 여장군인 거니까요. 그리고 단번의 전투로 이름을 날리다니 남자들도 못하지 않을까요?”단번의 전쟁으로 명성을 얻는 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원경릉도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에 진대장군 부인에게 상당히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성문 입구에 도착하자 예부의 영접 인력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요 며칠 타국의 사신들이 줄지어 도착하므로 영접을 담당하는 예부는 일찍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파견했던 사람의 보고에 따르면 오늘 도착하는 사람은 대주의 사신이라고 한다.우문호가 오자마자 예부 시랑에게: “오늘 사신단은 내가 맞으면 되니 다들 돌아가시게.”시랑 대인이 웃으며: ‘태자 전하, 같이 맞으시지요. 소신은 사절을 접대하러 보내야 하거든요.”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고 말하려다 말고 우물쭈물했다.원경릉이 보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우문호가 원경릉을 끌고 한쪽으로 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만약 내가 정정을 초왕부에 초대해도 당신 괜찮겠어? 싫지 않을까?”원경릉이, “싫지 않아요. 초왕부에 머물 곳도 있잖아요. 만약 초왕부로 초대하고 싶으면 초대하면 되죠.”가까이 있으면 더 좋지, 적어도 좀더 볼 수 있고.우문호가 뛸 듯 기뻐하며, 좋아서: “원 선생, 진짜 최고야.”원경릉은 우문호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정신차려 정후원경릉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 사식이에게, “왜 그렇게 생각해?”사식이가: “그냥 느낌이요, 지금 정화군주의 유일한 짐이라면 위왕 전하일텐데, 정말 다 벗어 던지려면 위왕 전하를 찾아가서 얘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얘기할 게 뭐가 있다고?” 원경릉은 위왕이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을 생각하고 위왕이 정화군주의 인생에 더이상 얽히지 말기를 바랬다.“모르죠.” 사식이는 남녀 간의 사랑을 모르고 그저 생각하길, 여자 혼자 갈 데가 어디 있어?원경릉이 한걸음 앞으로 나가자 사식이가 얼른: “원 언니, 앞으로 가시면 안돼요, 위험해요.”원경릉이 사식이를 돌아보며, “괜찮아, 바람 좋아, 바람 좀 맞고 싶어.”“희상궁이 있으면 분경 또 그랬을 거예요, 이제 막 산후조리하고 나왔는데 바람 맞으시면 안된다고.” 사식이가 말했다.“괜찮아, 날씨가 따듯해.” 원경릉이 말했다.사식이가 웃으며, “따듯한 것까지는 아니죠, 어제 탕대인이 옥중에 이불 넣어드렸다고요, 정후께서 감옥이 춥다고.”황제는 계속 조사중이다. 정후가 최선을 다해 변명을 했지만 어디 황제를 속여 넘길 리가 있나? 황제는 일단 정후를 경조부 관아에 있는 감옥에 투옥 시켰다. 하지만 황제가 깊이 파고들 리가 없다는 게 우문호 생각이다. 혜선생(惠先生)이 혀를 깨물고 죽은 것은 자신의 의사였다는 조사결과 때문이다. 그리고 혜선생이 날조하길 우문호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싶어서 안왕의 말투를 흉내내 정후와 연락을 취하고. 관직을 미끼로 찰떡이를 안고 나오라고 했다는 것이다.황제가 정후를 압송해 투옥한 이유는 아마 그게 본인에게 교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천자의 어심을 감히 누가 가벼이 속여넘길 수 있을까? 철저히 조사하라는 성지를 내리지 않았지만 안왕이 이미 남영(南營)까지 조사했으나, 정후의 꺼림칙한 일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정후는 태자비의 친정이고, 태자비가 되자마자 친정에서 문제가 터지면 보기 좋지 않다. 이것도 다 원경릉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정정 대장군의 첫인상엄마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친 엄마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하지만 이건 다르지.“온 거 아닌가요?” 사식이가 갑자기 말했다.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과연 도로에 말과 마차를 이끈 무리가 서서히 오는게 보인다. 앞에서 말을 달리는 것은 척 보니 팔기군(八騎軍)이고, 뒤에 마차 2대를 끌고 오는데 대주(大周)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진짜 왔어!” 우문호가 기뻐하며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내버려두고 혼자 ‘두다다다’ 달려가서 아래에 있는 예부 사람들에게 “왔네, 왔어. 붉은 양탄자 준비하고 귀빈을 맞을 예포를 준비하라.”원경릉은 우문호가 아이처럼 폴짝폴짝 신난 걸 보고, “저 사람이 정정 대장군이야? 태자는 어째서 갈수록 ‘바부탱’ 같아 질까?”“바부탱이 뭔데요?” 사식이가 물었다. 원경릉이 재밌다는 듯이 “바부탱은 말이야, 귀엽기도 하고 바보짓도 하는 사람이란 뜻이야.”사식이 생각에 바부탱은 구체적인 느낌이라 원경릉과 같이 내려가면서 “정사를 보실 땐 ‘바부탱’이신 걸 본 적이 없으니 우리 태자 전하는 역시 총명하세요.”원경릉이 성문으로 내려가자, 사식이가 총명하다고 했던 그 태자 전하께서 말을 달려 맞으러 가셨다. 말발굽이 ‘다다다’ 울리고 하늘이 온통 모래바람으로 가득해서 우문호와 말이 거의 모래 바람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거의 도착할 무렵 우문호는 이젠 아예 말에서 뛰어 내려 곧바로 달려갔다.원경릉이 얼굴을 가리며, 맙소사, 자기는 좀 자중하면 안돼?하지만 손가락 사이 벌어진 틈사이로 똑같은 모습으로 진중하지 못하게 말에서 뛰어내려서 우문호에게 달려가는 사람이 보였다.원경릉은 순식간에 둘이 끌어 안는 줄 알았다.다행히 끌어안지는 않고 그저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이글이글 쳐다봤을 뿐이다.사식이도 감동해서, “태자 전하와 정정 대장군이 정말 이렇게 사이가 좋으셨군요?”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보아하니 적어도 나랑 보다는 좋은 거 같네.”사식이가 원경릉을 의식하며 솔직하게: “확실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