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 대장군의 첫인상엄마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친 엄마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하지만 이건 다르지.“온 거 아닌가요?” 사식이가 갑자기 말했다.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과연 도로에 말과 마차를 이끈 무리가 서서히 오는게 보인다. 앞에서 말을 달리는 것은 척 보니 팔기군(八騎軍)이고, 뒤에 마차 2대를 끌고 오는데 대주(大周)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진짜 왔어!” 우문호가 기뻐하며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내버려두고 혼자 ‘두다다다’ 달려가서 아래에 있는 예부 사람들에게 “왔네, 왔어. 붉은 양탄자 준비하고 귀빈을 맞을 예포를 준비하라.”원경릉은 우문호가 아이처럼 폴짝폴짝 신난 걸 보고, “저 사람이 정정 대장군이야? 태자는 어째서 갈수록 ‘바부탱’ 같아 질까?”“바부탱이 뭔데요?” 사식이가 물었다. 원경릉이 재밌다는 듯이 “바부탱은 말이야, 귀엽기도 하고 바보짓도 하는 사람이란 뜻이야.”사식이 생각에 바부탱은 구체적인 느낌이라 원경릉과 같이 내려가면서 “정사를 보실 땐 ‘바부탱’이신 걸 본 적이 없으니 우리 태자 전하는 역시 총명하세요.”원경릉이 성문으로 내려가자, 사식이가 총명하다고 했던 그 태자 전하께서 말을 달려 맞으러 가셨다. 말발굽이 ‘다다다’ 울리고 하늘이 온통 모래바람으로 가득해서 우문호와 말이 거의 모래 바람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거의 도착할 무렵 우문호는 이젠 아예 말에서 뛰어 내려 곧바로 달려갔다.원경릉이 얼굴을 가리며, 맙소사, 자기는 좀 자중하면 안돼?하지만 손가락 사이 벌어진 틈사이로 똑같은 모습으로 진중하지 못하게 말에서 뛰어내려서 우문호에게 달려가는 사람이 보였다.원경릉은 순식간에 둘이 끌어 안는 줄 알았다.다행히 끌어안지는 않고 그저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이글이글 쳐다봤을 뿐이다.사식이도 감동해서, “태자 전하와 정정 대장군이 정말 이렇게 사이가 좋으셨군요?”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보아하니 적어도 나랑 보다는 좋은 거 같네.”사식이가 원경릉을 의식하며 솔직하게: “확실히
진근영과 일행의 첫 인상마차에 탄 여인도 내렸는데 아름답고 영웅의 기세가 얼굴에서 풍겨 나왔다. 헐렁한 비단 옷을 입고 있는 게 배가 불러 있는 듯 했고 자기가 스스로 마차에서 뛰어 내리더니 여전히 멍하니 대장군을 바라봤다.마차에서 한 명 더 내렸는데 대략 스무 살 남짓 된 여자로 포니 테일 머리에 입고 있는 옷도 비교적 헐렁하고 허름한 것이 약간 피곤한 기색이다.원경릉의 눈은 두번째로 내린 여자에게 쏠렸는데 특히 그녀의 머리스타일이나 옷,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는 걸 자세히 보니 긴 치마 밑에 드러난 그녀의 구두는 무려 토오픈 슈즈다.원경릉은 그녀의 전체적인 차림을 보니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몇 번이고 보게 되었다.이 사람은 예쁘게 생긴 건 아니지만 깔끔하고 시원스런 느낌으로, 이런 느낌은 진정정 부인 진근영에게서도 느껴졌지만 약간 다르다.일종의 말할 수 없는 친숙한 느낌이다.“진근영이 태자비를 뵙습니다!”원경릉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진근영이 나와서 예를 취하자 원경릉도 얼른 답례하며 진근영의 손을 잡고, “군주 예는 됐어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죠?”진근영도 원경릉을 훑어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아뇨, 태자비를 만나 뵈니 기뻐요.”“군주를 뵙게 돼서 저도 기뻐요.”두 여인은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일행은 우문호가 앞장을 서서 위풍 당당하게 입성하여 바로 초왕부로 갔다.예부에서 원래 객잔을 마련해 사람들이 도착하자 마자 우선 객잔에서 쉬게 하려고 했으나 태자가 조급하게 초왕부로 이끌고 가니 예부에서도 대처하기 난감해서 우문호를 쫓아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우문호가 크게 손을 흔들며: “우선 초왕부로 모셔갈 테니 자네는 입궁해서 그렇게 보고하도록.”예부 시랑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 “예!”우문호는 오늘 나오면서 탕양에게 대장군이 여독을 풀도록 연회를 준비하라고 시켜 놨다.그래서 초왕부에 도달하자 음식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아직 점심때라 일단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우문호가 상당히
질투에 불타는 제왕“사람은 계속 그 사람인데……” 우문호가 이리저리 생각하더니,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니기도 해.”진정정이 웃으며, “우문 형(宇文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우문호가 웃으며 손을 내젓더니, “나중에 다시 이 일에 대해 설명할 게. 이리 와, 우리 아들 보러 가자.”진정정이 흥미롭다는 듯 기뻐하며: “그래.”그리고 이때 원경릉도 진근영을 데리고 아이를 보러 가서 네 사람이 같이 똑같은 세 녀석을 보더니 대주의 진정정 부부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세 아가도 대주의 손님을 보고도 표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 이렇게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저녁 연회 때 제왕 부부가 왔다.원용의가 오고 싶다고 해서 제왕은 하는 수없이 따라온 거지만 말이다.원용의는 진근영을 존경해서 자연스럽게 와서 봤다.서로 안면을 트고 원용의가 계속 정정 대장군을 바라보며 개인적으로 제왕에게 “대장군이 이렇게 젊고 잘생기셨을 줄 몰랐어요, 우리 북당에도 대장군에 견줄 만한 남자가 드물 거 같은데요? 잘 사귀어 두셔야 할 거예요.”제왕이 삐쳐서 입을 실룩거리며, “누가 젊지 않다는 말 같네, 잘 생긴 것도 남자한테는 절대 칭찬이 아니거든. 난 오히려 저 사람 여자 같기만 하네.”원용의가 의아하다는 듯 제왕에게, “여자 같다고요? 뭘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여요? 심지어 당신보다 키도 크고, 당신보다 건장한데. 숨소리 좀 들어보세요, 침착하고 내향적인 것이 딱 봐도 내공의 고수인 데다 이 뿐만이 아니에요, 저 무쇠 같은 팔뚝 봐요, 무공이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잖아요.”제왕이 비웃으며, “무공이 높으면 팔이 잘리지 않았겠지, 무공이 안되니까 잘린 거 아냐.”원용의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그건 저 사람이 그만큼 많은 전쟁을 겪어왔다는 거예요, 듣자 하니 아주 어릴 때부터 전장에 나가기 시작해서 수십 차례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대단해요.”“다섯째 형도 아주 어릴 때부터 전장을 누볐잖아? 왜 다
대장군 환영 술자리그리고 제왕이 도발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진정정이 힘도 들이지 않고 대충 한 사발을 마셨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게 물 한 사발 들이킨 것 같다.제왕이 입술을 깨물며 진정정이 겉으로만 그렇게 꾸미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사발을 따라, “존경의 의미는 자고로 세 잔 아니겠습니까, 또 마십니다!”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더니 또 꿀떡꿀떡 한 사발을 마셨다.진정정은 제왕을 칭찬하며, “제왕 전하 주량이 좋으십니다!”제왕은 약간 비틀거린 게 너무 급하게 마셔서 벌써 하늘이 뱅뱅 돌았지만 사발에 술을 가리키며, “대장군 차례입니다, 제 체면을 봐서 드시지요.” “제왕께서 정성을 다해 주시는데 어찌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진정정이 또 술 한사발을 마셨지만 여전히 얼굴색도 안 변하고 심지어 실실 웃고 있다.제왕은 이번엔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자만심에 차서 상대방의 주량이 이렇게 센 줄 상상도 못했다.하지만 방금 세 잔을 약속했으니 아직 한 사발 남았다. 그러나 그 한 사발을 마시면 취할 게 틀림없다. 사내대장부는 눈 앞에 손해를 절대 보지 않는 법이라고, 제왕은 눈을 굴리더니 우문호에게 “다섯째 형, 와서 대장군에게 건배 안하고 뭐해.”제아무리 진정정도 건배를 돌다 보면 취하지 않을 리 없다.우문호가 어찌 제왕의 꿍꿍이를 모를 수가 있을까? 곧 아무렇지도 않게 “술은 천천히 마셔야 제 맛이지. 넌 술고래라 밑 빠진 독에 술 붓기도 아니고. 우선 요리부터 먹고 있다가 다시 마시자.”“그건 안 돼지, 세 잔이라고 약속했으니 한 잔이라도 빼 먹으면 쓰나.” 제왕이 고집을 부렸다.진정정이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술을 따르니 맑은 액체가 잔에 가득한 게 반 근은 족히 넘을 양이다. 웃으며 사발을 들더니, “제왕 전하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소장이 왕야께 한 잔 올립니다!”진정정은 말을 마치고 단숨에 비우고 술잔을 아래로 털더니 웃으며 제왕을 바라봤다.제왕은 순간 경악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그…..그 너무 급하게 드시는 거
주연의 하이라이트말하는 사람이 더 흥분해 있고, 듣는 사람은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진근영이 아예 “두 분이 싸우기 전엔 몰랐다가 맞서 싸운 뒤 서로를 알아보게 되셨으니, 그때 기분을 되살려 한바탕 싸워 보시는 게 어떠 신지요.”우문호와 진정정이 듣더니 안성맞춤 제의라는 생각에 얼른 마당을 치우고 장검 두 개를 가져오라고 해서 옛날의 꿈을 되살리고자 했다.마당에는 풍등이 여럿 걸려 있어 몽롱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우문호는 흰색 옷을 입었고 진정정은 푸른 색 옷을 입었는데 두 사람이 날아올라 장검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검무가 꽃처럼 피어나는 가운데 살기는 한 가닥도 없이 오직 말할 수 없는 진심만이 오고 갔다.원경릉이 나지막하게, “그만 좀 하라고!”마침 진근영이 쳐다보자 원경릉은 뻘쭘한데 진근영은 오히려 회심의 일소를 날리며, “진짜 그만 좀 하라고.” 사식이와 원용의는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비무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어라, 줄곧 두 사람의 검무를 봐도 누가 더 우아하게 춤을 추나 같은 느낌이라 전혀 흥이 나질 않았다.결국 진근영이 참다 못해 탁자를 치고 일어나 사식이의 허리에 찬 칼을 들고 날아오르며, 두 사람을 떼어놓고 낭랑하게 “제가 어떻게 싸우는지 두 분께 알려드리죠.”진근영의 장검이 우문호를 향하자 진정정이 얼른 칼을 뻗어 막아 서고 진근영이 뒤를 돌아 진정정을 찌르려고 하자 우문호가 얼른 앞으로 나와 진정정을 돕는데 이렇게 주고 받는 게 오히려 두 사람과 진근영이 대결하는 것처럼 보였다.진근영이 화가 치밀어서 한풀이라도 하듯이 아이를 벤 것도 잊고 입신의 경지로 검을 휘두르는데 두 사람은 그저 피하기만 할 뿐이라 진근영은 우위를 점했다.이렇게 몇 초식을 하다 보니 흥이 올라서 두 사람이 실력 발휘를 시작해 맹렬한 검법과 내공이 넘쳐흘렀다. 검법이 스쳐지나는 곳마다 낙엽이 미친듯이 춤을 추고 검에 차가운 빛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순간 오르락 내리락 했다.진근영이 칼을 거두고 내려오자
썸 타는 두 사람제왕은 두 사발을 마신 후 사실 밤새 골아 떨어졌다.원용의는 제왕을 마차에 태우고 “마차에 타세요, 제가 말 탈 게요.” 둘이 외출할 때는 대체로 이렇다. 원용의는 말 타는 걸 좋아하지 막힌 마차안에 갇혀 있는 건 질색이다.원용의가 가리개를 젖히고 나가려 하자 제왕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고, “기다려.”원용의가 고개를 돌려, “왜요?”원용의는 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그저 어슴푸레 눈빛만 반짝였다. 제왕은 용기를 끌어 모았지만 순식간에 푸시시 꺼지며, “아, 아니 그냥 좀 어지러워서.”원용의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누가 그렇게 마시라고 했어요? 세 사발 권한다고 큰 소리 치더니, 만약 제가 대신 한 사발 안 마셨으면 당신은 오늘밤 업혀갔어요.”“넌 왜 내 대신 마셨어?” 제왕이 원용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원용의가 손을 펼치며, “어쨌든 당신이 취해서 쓰러지는 걸 볼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진대장군의 적수가 아닌 게 분명하거든요.”제왕이 욱해서, “넌 왜 항상 날 무시해?”원용의가 놀라며, “그랬다고요? 제가 언제 무시했는데요?”“그럼 아니야?” 제왕이 반문했다.원용의가 “당연이 아니죠, 제가 어떻게 당신을 무시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제왕이 옆에 빈 자리를 툭툭 치며, “여기 앉아 봐, 오늘밤 너랑 얘기하고 싶으니까.”원용의는 술을 마셔서 바람을 쐬며 술기운을 좀 날리고 싶어서 “제왕부 가서 얘기해요, 저 답답해요.”말을 마치고 바로 말을 타려고 마차에서 뛰어 내렸다.제왕은 자기가 성심성의껏 오라고 했는데, 원용의가 조금도 체면을 살려주지 않은 점에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얘기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누가 신경 쓴데.”마차가 움직이자 휘날리는 가리개 사이로 말을 달리는 원용의의 자태가 보이는데, 자세에서 영웅의 기백이 느껴지는 것이 제왕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제왕은 화난 것도 잊고 몰래 가만히 원용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러다 원용의가 부득부득 가려고 한 게
제왕의 고백원용의는 화장대 앞에 앉아 온통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가슴도 쿵쾅쿵쾅 뛰어 댔다.작게 한숨을 쉬고 얼굴을 만지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설렘은 한순간일 뿐 원용의가 원한 것은 이런 느낌이 아니다.제왕에게 시집올 땐 아직 어리석고 순진해서 이 일을 마치면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며 마음대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제왕 곁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원용의의 마음 상태도 천천히 변해갔다.원용의는 남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성실한 보증과 진실한 사랑이 필요했다.주명취는 그들에게 큰 난제를 남겨준 셈이다.주명취는 계속 제왕의 마음 깊은 곳에서 떠나지 않아 제왕과 원용의 두 사람은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원용의는 자신이 제왕에게 설레고 있는 걸 인정했다.하지만 원용의는 이성적이라 설렌다고 일생을 맡겨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안다. 일생을 맡기는 것은 말 그대로 평생이 달린 문제니까 말이다.원용의는 원경릉과 태자의 감정 같은 것을 지향했다. 둘의 마음속에 오직 서로만 있고 다른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 것 말이다.원용의는 자신의 감정과 혼인도 이렇기를 바랬다. 제왕의 마음 속에 아주 옅게 라도 주명취의 자리가 남아있어서는 안된다.원용의의 사랑에 타협이란 없으며, 대충 참고 견디지도 않을 것이다.이때 밤바람을 몰고 커다란 사람 그림자가 성큼성큼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제왕이다.제왕은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한참동안 자기비하를 해도 여전히 마음이 안정되질 않는 것이 한가지 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곁으로 가서 자신의 큰 그림자 안에 원용의를 가두더니 그윽한 눈초리로, “원용의, 우리 얘기 좀 해.”제왕은 그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이름을 부른다는 건 제왕이 심각하다는 뜻이다.원용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들어 제왕을 보지 않고 작은 소리로 “앉으세요.”제왕은 의자 하나를 옮겨와서 원용의 옆에 앉아 사람을 짓누를 기세로, “고개를 들고 나를 봐.”원용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비비 꼬며 천천
제왕이 무술을?원용의는 마음이 어지러워 밤새 거의 한숨도 못 자고 날이 밝아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하지만 오늘 원경릉 언니와 외출하기로 해서 졸려 죽을 것 같지만 꼭두새벽부터 일어났다.아채가 들어와 시중을 드는데 이상하다는 듯이 “왕야께서 오늘 일찌감치 일어나셔서 지금 마당에서 무술 연습을 하시지 뭐예요.”원용이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리며, “며칠이나 가는지 두고 보자, 3일을 넘기면 왕야께서 이긴 거로 하지.”절대로 제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단지 제왕은 무술을 연마할 재목이 아니며, 고생도 못하고 과로도 못하는 체질이라 서책을 보고 시를 짓거나 산수화나 그리게 하는 편이 그나마 쉽지 계속 무공을 수련하게 하는 건 목숨을 갉아먹는 짓이다.원용의는 옷을 갈아 입고 나가보니 과연 제왕이 마당에서 권법을 연습하고 있었다.보아하니 벌써 상당 시간 수련을 해서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마엔 구슬땀이 배어 나와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주먹을 뻗는 힘이 상당해서 말뚝을 때릴 때 ‘팍팍’ 소리가 나고 주먹과 관절이 푸르스름한 흙빛에서 붉게 부어 오른 게 꽤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원용의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미소를 짓는데, 땀방울이 맺힌 벌건 얼굴에 하얗게 빛나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것이 이상하리 만치 매력적이다.“나가는 거야?” 제왕이 무공을 거두고 물었다.“네, 초왕부에 원 언니 보러요.” 원용의가 어젯밤 얘기가 떠올라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그래, 그럼 조심하고, 일찍 돌아와.” 제왕이 웬일로 따라오겠다고 하지 않는다.원용의가 대답하고 제왕의 손가락을 보며 “손이 부었어요, 좀 쉬세요.”제왕이 손을 흔들어 보더니 웃으며 “괜찮아, 무공 수련이 그렇지 뭐, 안 아파, 그리고 땀을 쫙 흘리고 나니까 기분이 상쾌해지고 활력이 생기는데.”원용의가 웃으며 “그럼 계속 하세요.”“좋아!” 제왕이 원용의를 보고, “넌 먼저 가 난 네가 가는 거 볼 게.”원용이가 돌아서서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 보니 제왕이 주먹에 호호 바람을 불며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