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하고 아픈 꿈“그건 분명 악몽이야, 생각하지 마.” 우문호가 얼른 말했다.원경릉이 ‘응’하더니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서, “가서 우리 떡들 좀 보고 올 게.”“나도 같이 가.” 우문호도 얼른 내려와서 한 손으로 원경릉 팔을 잡고, “기다려.”원경릉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우문호에게, “자기를 또 기다려야 해? 그냥 오면 되잖아, 바로 옆방인데.”우문호가: “그래도 같이 가, 너 아직 세수도 안 했잖아, 당신 몸에 술냄새때문에 우리 떡들 훈제 되겠어.”원경릉이 웃으며: “그렇기는 하네, 당신은 어젯밤 어떻게 참았어? 취했던 거야?”“반쯤, 괜찮아.” 우문호가 말했다.만아가 문을 두드리며, “전하, 태자비 마마, 시중들어 드릴까요?”“가서 물 좀 길어다 줘.” 우문호가 말했다.“예!” 만아가 물러났다.원경릉의 습관에 따르면 옷을 입을 때는 시중들 필요가 없어서, 우문호 이 쟁쟁하신 분도 혼자 옷을 입으시는데 오늘따라 헤롱헤롱 해서 입는데 오래 걸리고 심지어 속옷도 입지 않았다.원경릉이 웃으며 다가와, “그러고도 안 취했다고 할 거야, 어젯밤에 나보다 더 심하게 취했나 봐? 옷도 제대로 못 입고.”원경릉이 우문호의 속옷 끈을 매 주고 겉옷을 걸쳐 주는데 비단 옷감에 우문호의 쭉 뻗은 몸매가 드러나고 조각 같은 얼굴로, “왜 계속 날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원경릉이 우문호의 눈빛이 또렷한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기 얼굴을 더듬어 봤다.우문호가 고개를 가로 젓더니 원경릉을 안으며 작은 소리로: “자기야,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널 불러도, 아니 네가 어디 있어도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곁으로 돌아오기로, 우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기로 말이야.”“내가 어디를 가는데 어디?” 원경릉이 어이가 없는듯 웃었다.“어디를 가든.” 우문호가 강조하며,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곁으로 돌아와야 해. 난 당신 없으면 안돼.”원경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알았어, 술 좀 취했다고 어떻게 바로 들러붙
정정 대장군을 만나러원경릉의 머릿속에 꿈속의 광경이 천천히 떠올랐고,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또렷해 지더니 꿈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오히려 지금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숙취때문에 몽롱해서 그런지 땅을 밟고 있는게 구름이나 안개를 밟고 있는 것처럼 붕 뜬 느낌이다.우문호를 대하는 원경릉의 미소는 전부 생기 없이 창백했다. 억지로 만들어내서 어색할 수밖에.문득 귓가에 엄마의 애끓는 부르짖음이 들리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허리를 숙이고 가슴을 감싸 쥐어야 겨우 멈췄다.그리고 그런 원경릉을 우문호는 쭈그리고 앉아 살포시 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침통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원경릉은 우문호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꿈 속에 다시 꿈이 있고 그녀가 엄마를 찾아 뛰어내렸지만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죽는 한이 있어도 그녀가 가도록 보내지 않았다.우문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경악을 발견하고 원경릉은 아픔과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우문호도 원경릉도 아무 말이 없다. 마치 그렇게 술이 취한 적이 없었다는 듯.하지만 원경릉은 이날 저녁 우문호에 기대 정자에서 별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자기가 전에 그랬지 내가 만약 당신 곁을 떠나가게 되면 자기를 찾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럴 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난 만드시 자기와 아이들을 찾아 돌아 오고 말 거야. 절대로 당신과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아.”우문호가 원경릉을 꼭 끌어 안고 목이 메어 그저 몇 번이고 ‘응’하고 말했다.원경릉의 마음은 여전히 묵직하게 아프지만 어떻게 이 마음을 가눠야 하는지 배웠다.아이들의 한달 축하를 마친 다음은 북당의 태자 책봉 의식이다.명원제는 전에 국서를 보내 각국의 사신들을 초대했고, 지금 사신들이 줄지어 도착하고 있다.우문호도 기쁜 것이 파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보고하길 정정대장군이 내일 경성에 도착한다는 것이다.우문호는 들뜬 나머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원경릉을 안고 계속 자신과
정정대장군을 기다리며원경릉이 사기이 말에 웃으며, “사람이 어떻게 초능력이 있어? 너무 과장한 거 아냐?”“초능력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체격이 건장하고 무공이 느껴질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여 장군이라니 까요.” 사식이가 받아 치며 말했다.원경릉이 ‘풉’하고 웃으며, “사식아, 너희 원씨 집안도 여장부 집안이라고 하던데 원씨 집안 사람도 다들 체격이 건장하고 무공이 느껴지는가 보지?”자기 집안 얘기를 하니 사식이도 자랑스럽지만: “우리 원씨 집안은 당연히 대단하죠. 하지만 진근영 군주만큼은 아니예요. 진근영 군주는 직접 병사를 데리고 내란을 평정했을 뿐 아니라, 여러차례 선비족과 싸우는 지휘관이 여장군인 거니까요. 그리고 단번의 전투로 이름을 날리다니 남자들도 못하지 않을까요?”단번의 전쟁으로 명성을 얻는 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원경릉도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에 진대장군 부인에게 상당히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성문 입구에 도착하자 예부의 영접 인력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요 며칠 타국의 사신들이 줄지어 도착하므로 영접을 담당하는 예부는 일찍부터 나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파견했던 사람의 보고에 따르면 오늘 도착하는 사람은 대주의 사신이라고 한다.우문호가 오자마자 예부 시랑에게: “오늘 사신단은 내가 맞으면 되니 다들 돌아가시게.”시랑 대인이 웃으며: ‘태자 전하, 같이 맞으시지요. 소신은 사절을 접대하러 보내야 하거든요.”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고 말하려다 말고 우물쭈물했다.원경릉이 보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우문호가 원경릉을 끌고 한쪽으로 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만약 내가 정정을 초왕부에 초대해도 당신 괜찮겠어? 싫지 않을까?”원경릉이, “싫지 않아요. 초왕부에 머물 곳도 있잖아요. 만약 초왕부로 초대하고 싶으면 초대하면 되죠.”가까이 있으면 더 좋지, 적어도 좀더 볼 수 있고.우문호가 뛸 듯 기뻐하며, 좋아서: “원 선생, 진짜 최고야.”원경릉은 우문호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정신차려 정후원경릉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 사식이에게, “왜 그렇게 생각해?”사식이가: “그냥 느낌이요, 지금 정화군주의 유일한 짐이라면 위왕 전하일텐데, 정말 다 벗어 던지려면 위왕 전하를 찾아가서 얘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얘기할 게 뭐가 있다고?” 원경릉은 위왕이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을 생각하고 위왕이 정화군주의 인생에 더이상 얽히지 말기를 바랬다.“모르죠.” 사식이는 남녀 간의 사랑을 모르고 그저 생각하길, 여자 혼자 갈 데가 어디 있어?원경릉이 한걸음 앞으로 나가자 사식이가 얼른: “원 언니, 앞으로 가시면 안돼요, 위험해요.”원경릉이 사식이를 돌아보며, “괜찮아, 바람 좋아, 바람 좀 맞고 싶어.”“희상궁이 있으면 분경 또 그랬을 거예요, 이제 막 산후조리하고 나왔는데 바람 맞으시면 안된다고.” 사식이가 말했다.“괜찮아, 날씨가 따듯해.” 원경릉이 말했다.사식이가 웃으며, “따듯한 것까지는 아니죠, 어제 탕대인이 옥중에 이불 넣어드렸다고요, 정후께서 감옥이 춥다고.”황제는 계속 조사중이다. 정후가 최선을 다해 변명을 했지만 어디 황제를 속여 넘길 리가 있나? 황제는 일단 정후를 경조부 관아에 있는 감옥에 투옥 시켰다. 하지만 황제가 깊이 파고들 리가 없다는 게 우문호 생각이다. 혜선생(惠先生)이 혀를 깨물고 죽은 것은 자신의 의사였다는 조사결과 때문이다. 그리고 혜선생이 날조하길 우문호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싶어서 안왕의 말투를 흉내내 정후와 연락을 취하고. 관직을 미끼로 찰떡이를 안고 나오라고 했다는 것이다.황제가 정후를 압송해 투옥한 이유는 아마 그게 본인에게 교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천자의 어심을 감히 누가 가벼이 속여넘길 수 있을까? 철저히 조사하라는 성지를 내리지 않았지만 안왕이 이미 남영(南營)까지 조사했으나, 정후의 꺼림칙한 일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정후는 태자비의 친정이고, 태자비가 되자마자 친정에서 문제가 터지면 보기 좋지 않다. 이것도 다 원경릉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정정 대장군의 첫인상엄마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친 엄마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하지만 이건 다르지.“온 거 아닌가요?” 사식이가 갑자기 말했다.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과연 도로에 말과 마차를 이끈 무리가 서서히 오는게 보인다. 앞에서 말을 달리는 것은 척 보니 팔기군(八騎軍)이고, 뒤에 마차 2대를 끌고 오는데 대주(大周)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진짜 왔어!” 우문호가 기뻐하며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내버려두고 혼자 ‘두다다다’ 달려가서 아래에 있는 예부 사람들에게 “왔네, 왔어. 붉은 양탄자 준비하고 귀빈을 맞을 예포를 준비하라.”원경릉은 우문호가 아이처럼 폴짝폴짝 신난 걸 보고, “저 사람이 정정 대장군이야? 태자는 어째서 갈수록 ‘바부탱’ 같아 질까?”“바부탱이 뭔데요?” 사식이가 물었다. 원경릉이 재밌다는 듯이 “바부탱은 말이야, 귀엽기도 하고 바보짓도 하는 사람이란 뜻이야.”사식이 생각에 바부탱은 구체적인 느낌이라 원경릉과 같이 내려가면서 “정사를 보실 땐 ‘바부탱’이신 걸 본 적이 없으니 우리 태자 전하는 역시 총명하세요.”원경릉이 성문으로 내려가자, 사식이가 총명하다고 했던 그 태자 전하께서 말을 달려 맞으러 가셨다. 말발굽이 ‘다다다’ 울리고 하늘이 온통 모래바람으로 가득해서 우문호와 말이 거의 모래 바람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거의 도착할 무렵 우문호는 이젠 아예 말에서 뛰어 내려 곧바로 달려갔다.원경릉이 얼굴을 가리며, 맙소사, 자기는 좀 자중하면 안돼?하지만 손가락 사이 벌어진 틈사이로 똑같은 모습으로 진중하지 못하게 말에서 뛰어내려서 우문호에게 달려가는 사람이 보였다.원경릉은 순식간에 둘이 끌어 안는 줄 알았다.다행히 끌어안지는 않고 그저 서로 어깨를 부여잡고 이글이글 쳐다봤을 뿐이다.사식이도 감동해서, “태자 전하와 정정 대장군이 정말 이렇게 사이가 좋으셨군요?”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보아하니 적어도 나랑 보다는 좋은 거 같네.”사식이가 원경릉을 의식하며 솔직하게: “확실히
진근영과 일행의 첫 인상마차에 탄 여인도 내렸는데 아름답고 영웅의 기세가 얼굴에서 풍겨 나왔다. 헐렁한 비단 옷을 입고 있는 게 배가 불러 있는 듯 했고 자기가 스스로 마차에서 뛰어 내리더니 여전히 멍하니 대장군을 바라봤다.마차에서 한 명 더 내렸는데 대략 스무 살 남짓 된 여자로 포니 테일 머리에 입고 있는 옷도 비교적 헐렁하고 허름한 것이 약간 피곤한 기색이다.원경릉의 눈은 두번째로 내린 여자에게 쏠렸는데 특히 그녀의 머리스타일이나 옷, 그리고 마차에서 내리는 걸 자세히 보니 긴 치마 밑에 드러난 그녀의 구두는 무려 토오픈 슈즈다.원경릉은 그녀의 전체적인 차림을 보니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몇 번이고 보게 되었다.이 사람은 예쁘게 생긴 건 아니지만 깔끔하고 시원스런 느낌으로, 이런 느낌은 진정정 부인 진근영에게서도 느껴졌지만 약간 다르다.일종의 말할 수 없는 친숙한 느낌이다.“진근영이 태자비를 뵙습니다!”원경릉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진근영이 나와서 예를 취하자 원경릉도 얼른 답례하며 진근영의 손을 잡고, “군주 예는 됐어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죠?”진근영도 원경릉을 훑어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아뇨, 태자비를 만나 뵈니 기뻐요.”“군주를 뵙게 돼서 저도 기뻐요.”두 여인은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일행은 우문호가 앞장을 서서 위풍 당당하게 입성하여 바로 초왕부로 갔다.예부에서 원래 객잔을 마련해 사람들이 도착하자 마자 우선 객잔에서 쉬게 하려고 했으나 태자가 조급하게 초왕부로 이끌고 가니 예부에서도 대처하기 난감해서 우문호를 쫓아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우문호가 크게 손을 흔들며: “우선 초왕부로 모셔갈 테니 자네는 입궁해서 그렇게 보고하도록.”예부 시랑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 “예!”우문호는 오늘 나오면서 탕양에게 대장군이 여독을 풀도록 연회를 준비하라고 시켜 놨다.그래서 초왕부에 도달하자 음식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아직 점심때라 일단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우문호가 상당히
질투에 불타는 제왕“사람은 계속 그 사람인데……” 우문호가 이리저리 생각하더니,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니기도 해.”진정정이 웃으며, “우문 형(宇文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우문호가 웃으며 손을 내젓더니, “나중에 다시 이 일에 대해 설명할 게. 이리 와, 우리 아들 보러 가자.”진정정이 흥미롭다는 듯 기뻐하며: “그래.”그리고 이때 원경릉도 진근영을 데리고 아이를 보러 가서 네 사람이 같이 똑같은 세 녀석을 보더니 대주의 진정정 부부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세 아가도 대주의 손님을 보고도 표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 이렇게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저녁 연회 때 제왕 부부가 왔다.원용의가 오고 싶다고 해서 제왕은 하는 수없이 따라온 거지만 말이다.원용의는 진근영을 존경해서 자연스럽게 와서 봤다.서로 안면을 트고 원용의가 계속 정정 대장군을 바라보며 개인적으로 제왕에게 “대장군이 이렇게 젊고 잘생기셨을 줄 몰랐어요, 우리 북당에도 대장군에 견줄 만한 남자가 드물 거 같은데요? 잘 사귀어 두셔야 할 거예요.”제왕이 삐쳐서 입을 실룩거리며, “누가 젊지 않다는 말 같네, 잘 생긴 것도 남자한테는 절대 칭찬이 아니거든. 난 오히려 저 사람 여자 같기만 하네.”원용의가 의아하다는 듯 제왕에게, “여자 같다고요? 뭘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보여요? 심지어 당신보다 키도 크고, 당신보다 건장한데. 숨소리 좀 들어보세요, 침착하고 내향적인 것이 딱 봐도 내공의 고수인 데다 이 뿐만이 아니에요, 저 무쇠 같은 팔뚝 봐요, 무공이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잖아요.”제왕이 비웃으며, “무공이 높으면 팔이 잘리지 않았겠지, 무공이 안되니까 잘린 거 아냐.”원용의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그건 저 사람이 그만큼 많은 전쟁을 겪어왔다는 거예요, 듣자 하니 아주 어릴 때부터 전장에 나가기 시작해서 수십 차례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대단해요.”“다섯째 형도 아주 어릴 때부터 전장을 누볐잖아? 왜 다
대장군 환영 술자리그리고 제왕이 도발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진정정이 힘도 들이지 않고 대충 한 사발을 마셨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게 물 한 사발 들이킨 것 같다.제왕이 입술을 깨물며 진정정이 겉으로만 그렇게 꾸미는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사발을 따라, “존경의 의미는 자고로 세 잔 아니겠습니까, 또 마십니다!”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더니 또 꿀떡꿀떡 한 사발을 마셨다.진정정은 제왕을 칭찬하며, “제왕 전하 주량이 좋으십니다!”제왕은 약간 비틀거린 게 너무 급하게 마셔서 벌써 하늘이 뱅뱅 돌았지만 사발에 술을 가리키며, “대장군 차례입니다, 제 체면을 봐서 드시지요.” “제왕께서 정성을 다해 주시는데 어찌 감히 거절하겠습니까?” 진정정이 또 술 한사발을 마셨지만 여전히 얼굴색도 안 변하고 심지어 실실 웃고 있다.제왕은 이번엔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자만심에 차서 상대방의 주량이 이렇게 센 줄 상상도 못했다.하지만 방금 세 잔을 약속했으니 아직 한 사발 남았다. 그러나 그 한 사발을 마시면 취할 게 틀림없다. 사내대장부는 눈 앞에 손해를 절대 보지 않는 법이라고, 제왕은 눈을 굴리더니 우문호에게 “다섯째 형, 와서 대장군에게 건배 안하고 뭐해.”제아무리 진정정도 건배를 돌다 보면 취하지 않을 리 없다.우문호가 어찌 제왕의 꿍꿍이를 모를 수가 있을까? 곧 아무렇지도 않게 “술은 천천히 마셔야 제 맛이지. 넌 술고래라 밑 빠진 독에 술 붓기도 아니고. 우선 요리부터 먹고 있다가 다시 마시자.”“그건 안 돼지, 세 잔이라고 약속했으니 한 잔이라도 빼 먹으면 쓰나.” 제왕이 고집을 부렸다.진정정이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술을 따르니 맑은 액체가 잔에 가득한 게 반 근은 족히 넘을 양이다. 웃으며 사발을 들더니, “제왕 전하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소장이 왕야께 한 잔 올립니다!”진정정은 말을 마치고 단숨에 비우고 술잔을 아래로 털더니 웃으며 제왕을 바라봤다.제왕은 순간 경악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그…..그 너무 급하게 드시는 거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
일곱째 아가씨는 산 입구에서 지옥의 불꽃을 보자마자 순간 홀린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꿈속에서 본 그 꽃이 눈앞에 펼쳐지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 같았다.탕양이 손을 뻗어 꽃을 따려 하자, 일곱째 아가씨가 급히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당장 멈추십시오!"하지만 탕양은 이미 지옥의 불꽃을 손에 쥔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것이 바로 해독제입니다."그는 손바닥에서 꽃을 비벼 즙을 내고는 일곱째 아가씨의 손을 잡아 즙을 그녀의 손등에 묻혔다. 즙은 선혈처럼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있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에 피가 묻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입니까? 이렇게 신기하단 말입니까…?"그제야 그녀는 과거 산속에서 넘어졌을 때, 얼굴이 지옥의 불꽃에 닿아 꽃 즙이 묻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강한 의지로 깨어난 것인줄 알고 있었다."이걸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묻자, 탕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안풍친왕이 말해준 것입니다. 예전에 독산에 와서 방 장군의 유해를 찾을 때 산을 드나든 적이 있었는데,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독산을 드나드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손등에 지옥의 불꽃 즙을 바른 이상, 산에 들어가도 환각에 휘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독산의 절경을 마음껏 감상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렇습니까? 독산의 비밀을 푸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쉽게 지옥의 불꽃으로 독성을 없앨 수 있었다니요…!"일곱째 아가씨가 중얼거리며 탄식하자, 탕양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예. 겉보기엔 어려운 일도, 걷기 힘든 길도, 내리기 힘든 결정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답니다.""어찌 말 속에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그러자 탕양이 당황한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독산은 약도성에서 ‘귀역’이라고도 불린다.약도성 백성들은 거의 독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마다 보물을 찾아 벼락부자가 되길 꿈꾸며 산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무사히 나오는 사람은 극소수였기 때문이다.심지어 살아서 나온 사람 중에서도 정신이 나가거나 미쳐버린 자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조정 신하가 독산에 들어가겠다는 소식은 백성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일부는 관저로 직접 찾아와 독산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요괴와 귀신이 들끓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며 충고까지 했다.그러자 탕양은 그들에게 독산에 요괴나 귀신이 있는 곳이 아닌, 신령과 신선들이 지내는 신성한 곳이라 말했다. 그동안 산에 들어갔던 백성들이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신령을 거슬렀기에 독산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경외심을 품고 신앙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무사히 나올 수 있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 말은 당대 국사가 직접 언급한 것이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탕양 또한 이 말을 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사실은 이 이야기 모두 황제가 부유한 이들과 이웃 나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독산의 풍경은 북당에서의 유일무이한 절경이었기에 탕양은 결국 독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개방하자는 제안에 동의했던 것이다. 탕양의 말을 믿는 사람은 그저 소수에 불과했고, 믿지 않는 사람, 의심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에 들어가기 전, 탕양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물었다.“정말 나와 함께 들어갈 셈입니까?”일곱째 아가씨는 젊은 시절 한 번 독산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멀리 가기도 전, 산속에서 만난 지옥의 불꽃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꽃밭에서 넘어진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산을 빠져나왔던 것이다.하지만 산을 떠난 후에도 그 붉은 색의 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았고, 마치 주문에 걸린 듯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다시 독산에 오자, 과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