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에 대한 주명양의 생각기왕비와 쓸데없는 얘기를 더 하기 싫어서 원경릉은 말을 마치고 갔다.사실 기왕비가 이런 말을 한 건 신분을 망각했거나, 지능을 상실했거나 둘 중 하나다.기왕비도 실은 알고 있었다. 주명양이 초왕부에 시집 올 수 없다는 것에 기왕비와 원경릉의 분석은 완전히 일치했다.하지만 기왕비가 주명양의 소식을 접하고 마음 속에 남모르는 기쁨과 희망의 불꽃이 타올라, 원경릉의 입에서 동병상련의 호응을 얻고 싶었다. 원경릉 말이 맞았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동조해 줄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기왕비는 자신이 이런 처지까지 내몰렸다는 생각에 비애를 금할 수 없었다.주명양은 이미 사흘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초왕 우문호가 와서 시끄럽게 한 그날 이래 주명양은 초왕과 결혼하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굳혔다.이런 집요함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주명양은 우문호가 원경릉을 지키고 원경릉을 총애하는 모습을 봤고, 원경릉을 보는 눈빛을 봤다. 그 눈빛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쁨이 넘쳐 하늘을 나는 듯했다. 주명양은 우문호가 자기도 모르게 원경릉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 것을 봤다. 그건 마치 아이가 몰래 훔친 사탕을 먹는 것처럼 달콤해 보였다.그게 바로 주명양이 갈망하는 남자다.주명양은 우문호를 사모한 적이 있다. 당시엔 우문호가 정말 뛰어난 무장이고 황실의 자손이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원경릉과 결혼한 뒤 주명양은 우문호를 무시했다.하지만 원래 주명양이 무시한 건 원경릉 뿐이었다. 주명양은 우문호의 화를 돋울 심산이었지 우문호를 마음 속에 품은 적이 없다.우문호에게 후궁으로 시집을 가야한다고 두 번 얘기가 오갔으나 주명양은 그렇게 바라지 않았다.하지만 우문호가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열 받았다. 자기는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문호가 감히 뭘 믿고?결국 기왕으로 결정되어 주명양은 잠시 기뻤다. 왜냐면 연모하는 것을 제외하면 권세와 서열이 기왕 쪽이 훨씬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다 우연히 아무 생각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
주명양은 3일 동안 물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마시거나 먹지 않았다.지금까지 그녀는 무엇인가를 쟁취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 주대부인은 그녀의 침상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너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 우문호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조부의 화를 돋우는 것이야? 기왕비가 죽고 나면 정비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텐데 기왕에게 시집을 가면 얼마나 좋냐는 말이다! 네가 초왕부로 시집을 간다고 쳐! 만약에 초왕비가 아들을 낳기라도 해봐 그 하늘을 찌르는 기세에 네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주대부인은 딸에게 화도 내보고 설득도 해보고 욕도 해봤지만 주명양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아프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주명양의 꺾이지 않은 기세를 보고 주대부인이 다급하게 옆에 있던 주명취를 보았다.“네 동생을 좀 말려라!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주명취는 사실 여기에 오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세 번이나 간곡하게 서신을 전하지 않았다면 주명취는 주명양의 규방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모친의 성화에 주명취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설득한다고 쟤가 듣겠습니까? 어머니 말도 귓등으로 안 듣는 애를 제가 무슨 수로……”“나가.” 주명양이 차가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나도 오고 싶지 않았거든? 어머니께서 와달라고 사정하지 않았으면 누가 여길 왔을 줄 알아? 그리고 너 정말 웃긴다? 이런다고 초왕이 너랑 혼인할 거라고 생각해? 어림없는 소리! 지금이라도 마음접고 기왕하고 혼사를 끝내. 그렇지 않으면 기왕도 마음이 바뀔 수 있어.”“입 닥치고 꺼지라고!” 주명양이 고개를 들고 독기가득 한 눈으로 주명취를 노려보았다.주명취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주명양을 보았다.“내가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할게. 네가 여기서 굶어 죽더라도 조부께서는 절대 너를 초왕과 혼인시키지 않을 거야. 이전에 희상궁이 와서 조부를 만났을 때, 조부께서 초왕부에 주씨 집안의 여인은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희상궁과 약속
“망할 상궁, 천한 신분 주제에…… 조부를 꾀어 내 인생을 망치다니! 모친께서는 이 수모를 참을 수 있으십니까? 딸이 이렇게 아파하는 데도 말입니다!” 주명양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알겠어! 알겠으니까 일단 뭘 좀 먹어라. 내가 희상궁을 찾아가 보마.” 주대부인은 주명양을 다독였다.“모친께서는 지금 당장 가서 희상궁을 만나세요. 만났다고 소식을 들어야 제가 밥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주대부인은 참으로 난감했다.희상궁은 태상황의 심복인데다가 주수보와도 각별한 사이인데, 과연 그녀를 찾아가도 되는 것일까?주명양 말대로 희상궁을 위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은화를 써서 매수한다? 과연 이게 맞을까? 지나치게 도를 넘은 게 아닐까?주대부인이 희상궁을 만나고 싶다고 서신을 보내자 희상궁은 매우 당황했다. 서신에는 주대부인이 체면을 봐서라도 꼭 나와달라는 말만 있을 뿐 다른 말을 적혀있지 않았다.희상궁은 이를 원경릉에게 알렸다.원경릉은 서신을 보더니 단번에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희상궁을 보았다.“주명양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안 가겠습니다.”“다녀오세요. 지피지기 백전백승 아닙니까?” 원경릉이 웃었다.“저는 이런 소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왕야께서는 주씨 집안과 절대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왕비께서는 걱정 마십시오.” 희상궁이 단호하게 말했다.“다섯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주씨 집안이 염려가 됩니다. 희상궁께서 주대부인을 만나 그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희상궁은 원경릉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요. 그럼 만나보겠습니다.”“상궁님! 사식이를 데리고 가세요. 주씨 집안은 도통 믿을 수 없으니…… 주수보를 제외하고 주씨 집안 사람들은 속이 시커 메서 방심할 수 없습니다.”“맞습니다. 주수보 빼고는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죠.”다른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칭찬하자 희상궁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마음
희상궁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대부인께서도 앉으세요.”주대부인이 앉자 희상궁도 자리에 앉았다. ‘시녀를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사내를 데리고 왔네?’주대부인은 사식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사식이에게 손짓했다. “너는 밖에 나가 있어라.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마.”“아뇨. 희상궁님 옆에 있겠습니다.” 사식이가 말했다.주대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너……”라며 말을 잇지 못하자 희상궁이 미소를 지었다.“저 아이를 신경 쓰지 마세요. 원씨 집안의 계집인데 성격이 보통이 아닙니다.”주대부인은 계집이라는 말을 듣고도 안색이 좋아지지 않았다. ‘원후궁도 제왕부에서 보통이 아니더니…… 성가신 집안의 사람이네.’사식이는 허리춤의 꽂힌 칼집을 꼭 잡고는 당당하게 서있었다. 그런 사식이 때문에 주대부인은 희상궁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그들은 차를 몇 모금 마셨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대화만 했다.사식이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잠을 깨기 위해 밖에 나와 바람을 쐤다. 찻집의 작은방 안에는 주대부인을 모시는 시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밖에 있었다. 주대부인은 사식이가 나가는 것을 보고 눈이 반짝였다. “마마님.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소인에게 부탁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부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주대부인은 희상궁의 손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마마님 지금 제 딸 명양이가 3일째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초왕하고 꼭 혼인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지금 기왕부와 혼사도 나눴는데 어휴… 제 딸이지만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대부인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말인데, 마마님 제가 부탁드릴 일은…… 마마님께서 집안 어른을 만나 몇 마디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마님 아니면 제 딸은 죽습니다. 사람 살리는 셈 치시고 딱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희상궁은 주대부인의 말 뜻을 단박에 알아챘다. ‘초왕과 혼인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
“알죠. 처음에 기왕비가 후궁을 들이지 않겠다고 해서 초왕을 택했죠. 그러고는 마마님께서 집안 어르신을 찾아오셨잖아요. 그래서 혼인이 엎어졌고…… 아차! 마마님 제 말을 오해해 듣지 마세요. 제가 그렇다고 마마님을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맞습니다. 소인이 이 혼인을 막았습니다. 근데 제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을까요? 황실 내에 주수보의 위치를 대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높은 직위라도 한낱 조정의 관원에 불과합니다. 황제의 신하이기에 절대로 황실의 뜻을 거역할 수 없겠죠. 현재 주씨 집안이 굶을 걱정 않고 영화롭게 사는 것도 모두 황실의 은총이요, 백성들의 공양입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되겠지요. 소인은 몇 년간 조정에 관여하는 일은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황실의 신하라는 것을 망각한 자들이 가끔 황실을 넘어 왕위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주대부인께서도 생각을 바꾸시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하실 겁니다.”희상궁의 말을 들은 주대부인은 화가 났다. “도와주고 싶지 않다면 그냥 싫다고만 하면 될 것이지. 신하라는 것을 망각했다느니 화를 당할 거라느니 그런 말을 하는 속셈이 뭡니까?”“속셈이요? 저는 그저 주씨 집안이 대대손손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입니다.”희상궁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주대부인은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희상궁을 보았다.“제가 잠깐 흥분을 했습니다. 마마님께서 저희 가문을 걱정해 주시는 것도 모르고…… 좀 더 마시다가 가세요. 급할 게 뭐 있습니까.”유모는 손을 흔들며 “아닙니다. 여기 있어봤자 도울 일도 없고 전 그만 일어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주대부인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주머니에서 은화 한 묶음을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이것은 희상궁님이 나와주신 값입니다. 일만 잘 처리해 주시면 두 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자세히 보지 않아도 은화는 족히 만 냥은 되어 보였다. 희상궁은 한숨을 내쉬며 주대부인을 보았다.“주대부인, 어머니의 마음으로 둘째 아
희상궁은 화가 나서 입술이 덜덜 떨렸다.“주씨 가문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파렴치합니까? 그 못된 핏줄은 어쩔 수 없다는 겁니까? 경박하게 어디서 협박을…… 지금 이 고비만 넘어가면 초왕부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 그런 꿈은 진작 접는 게 좋을 겁니다.”희상궁을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사식이는 희상궁이 노발대발하며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왜 그러십니까? 설마 맞으셨습니까?”희상궁은 부들부들 떨며 “가자!”라고 말했다.사식이는 고개를 돌려 표독스럽게 주대부인을 노려보았다. 주대부인이 찻잔을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있었다. 주대부인은 희상궁이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지 않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잠깐!” 주대부인이 벌떡 일어났다.사식이가 뒤를 돌아보았다.“왜요? 또 뭘 하시려고요!”“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마마님 정말 도와주지 않으실 겁니까?”희상궁은 주대부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식이를 끌고 초왕부로 향했다.주대부인은 화가 나서 찻잔을 밖으로 던졌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네, 저 노인네가 저렇게 완고한 태도로 나오다니! 오만방자한 것……’주대부인은 희상궁이 주씨 가문을 얕보는 것 같아서 본때를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희상궁은 초왕부로 돌아와 이 일은 원경릉에게 보고했다.원경릉은 희상궁의 말을 듣고 화가 났다.“상궁을 협박했다고요? 주씨 가문은 눈에 뵈는 게 없답니까?”“주대부인은 소인이 은화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주씨 가문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고 끔찍합니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소인을 협박했습니다.”“설마 주대부인이 그 일은 밖으로 퍼뜨리겠습니까?” 젊은 여자건 나이가 많은 여자건 구설수에 오르고 싶은 여자가 있겠는가. 원경릉은 희상궁이 걱정됐다.“그렇지는 못할 겁니다. 주수보도 걸린 일이니 쉽게 소문을 내지는 못 할 겁니다.”“그렇죠. 주수보가 그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으니까요.” 원경
사식이가 허둥지둥하며 서일의 가슴팍을 밀고 일어났다.“미안해요! 다바오랑 달리기를 하다가 못 봤습니다. 서일이 너무 작으니까 제 시야에 안 보였습니다!”“누구보고 키가 작대? 사식아 거기 서있지 말고 나 좀 일으켜 줘. 나 허리가 부러진 것 같아.”서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내가 그렇게 무겁다고요? 허리가 부러지기는 무슨! 아픈 척 말고 일어나죠?”“진짜 아프다고! 됐다. 나 혼자 일어나야지.” 서일은 오만상을 쓰고 사식이를 올려다보았다.서일은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천천히 일어섰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네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몰라. 이게 얼마나 아픈지!”사식이는 그를 부축하며 “미안해요. 화내지 마요. 일단 저기까지 갑시다. 이따가 약 발라줄게요.”라고 말했다.“천천히 움직여!” 서일은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었다.“그러게 서일도 눈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겁니까? 제가 달려오면 피해야지!”“새로 들어온 시녀가 있다던데 걔 찾다가 못 봤어!”“어휴! 그새를 못 참고! 하여간 남자들이란!” 사식이가 한심하다는 듯 서일을 쳐다봤다.서일은 허리가 아프다며 사식이를 재촉했다. “아 맞다! 그 시녀가 주부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다는데, 서일은 어떻게 그녀를 만났어요? 주부에 갔었어요?”서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사식이를 바라보았다.“생각났어. 그날 주씨네 둘째 아가씨랑 함께 관아에 갔던 노부인이야! 내가 왕야와 주부에 갔을 때, 왕야가 그 여자를 때리려고 했다니까?”“잘 못 본건 아니고요? 주명양을 모시는 사람이라고요?” 사식이가 놀라서 물었다.“맞아! 내 기억이 맞다니까! 그 여자가 맞아! 못 믿겠으면 왕야께 물어보세요. 그날 왕야께서 때리려고 했는데 그 시녀가 무술을 연마하는지 왕야도 힘들었다니까?” 서일은 말을 하다가 흥분을 했는지 허리가 더 아픈 것 같았다.서일의 말을 듣고 사식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세상에. 그렇다면 주명양에서 보낸 첩자가 분명합니다. 내가 가서 처리해야겠습니다.
희상궁은 원경릉의 제지에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왕비님 왜 진상을 파악하지 않으십니까? 설마 주명양의 시녀를 초왕부에 두려고 하시는 겁니까?”“그 시녀가 주부 출신이라고 해서 우리를 속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부에서 온 시녀에게 꿍꿍이가 없다고는 장담 못 하죠. 그 시녀가 변장술에 능하지만 그렇다고 신분이나 나이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도 않잖아요. 우리는 일단 시녀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 보자고요.”“어쩌면 여기가 초왕부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어요.” 희상궁이 말했다.“모른다고요? 어떻게 모를 수 있죠? 분명 계약서도 체결했잖아요.” 원경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고만아는 글을 몰라요. 그 여자는 신장 사람이라 글을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날 제가 이곳이 초왕부라고 말했더니 안색이 변하더라고요. 그때 내쫓을까 했는데 기회는 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냥 두었습니다.”“초왕부인줄 모르고 왔다? 그 여자가 연기를 하는 건 아닐까요?” 원경릉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희상궁을 보았다.“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위험한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당장 그 여자를 내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희상궁이 말했다.“그래요. 너무 위험합니다! 그녀는 마술도 할 수 있대요!” 사식이가 말했다.“마술이 라니라 최면술이야.” 원경릉이 사식이의 말을 고쳐주었다.“본래 신장 사람들이 최면술에 능합니다.” 사식이가 말했다.“맞아요. 어쩌면 그 시녀가 왕비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습니다.” 희상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최면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있기에 최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일단 그 여자가 음식이나 소월각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시하고, 그 시녀가 도대체 무슨 속셈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주명양이 마음먹고 사람을 보낸 거라면 고만아를 제거해도 또 사람을 보낼 테니까요. 고만아의 신분이 밝혀졌으니 우리가 그녀를 주시합시다.”원경릉의 말을 들은 사식이는 곰곰이 생각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