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에 대한 주명양의 생각기왕비와 쓸데없는 얘기를 더 하기 싫어서 원경릉은 말을 마치고 갔다.사실 기왕비가 이런 말을 한 건 신분을 망각했거나, 지능을 상실했거나 둘 중 하나다.기왕비도 실은 알고 있었다. 주명양이 초왕부에 시집 올 수 없다는 것에 기왕비와 원경릉의 분석은 완전히 일치했다.하지만 기왕비가 주명양의 소식을 접하고 마음 속에 남모르는 기쁨과 희망의 불꽃이 타올라, 원경릉의 입에서 동병상련의 호응을 얻고 싶었다. 원경릉 말이 맞았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동조해 줄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기왕비는 자신이 이런 처지까지 내몰렸다는 생각에 비애를 금할 수 없었다.주명양은 이미 사흘간 음식을 먹지 않았다.초왕 우문호가 와서 시끄럽게 한 그날 이래 주명양은 초왕과 결혼하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굳혔다.이런 집요함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주명양은 우문호가 원경릉을 지키고 원경릉을 총애하는 모습을 봤고, 원경릉을 보는 눈빛을 봤다. 그 눈빛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쁨이 넘쳐 하늘을 나는 듯했다. 주명양은 우문호가 자기도 모르게 원경릉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 것을 봤다. 그건 마치 아이가 몰래 훔친 사탕을 먹는 것처럼 달콤해 보였다.그게 바로 주명양이 갈망하는 남자다.주명양은 우문호를 사모한 적이 있다. 당시엔 우문호가 정말 뛰어난 무장이고 황실의 자손이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원경릉과 결혼한 뒤 주명양은 우문호를 무시했다.하지만 원래 주명양이 무시한 건 원경릉 뿐이었다. 주명양은 우문호의 화를 돋울 심산이었지 우문호를 마음 속에 품은 적이 없다.우문호에게 후궁으로 시집을 가야한다고 두 번 얘기가 오갔으나 주명양은 그렇게 바라지 않았다.하지만 우문호가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열 받았다. 자기는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문호가 감히 뭘 믿고?결국 기왕으로 결정되어 주명양은 잠시 기뻤다. 왜냐면 연모하는 것을 제외하면 권세와 서열이 기왕 쪽이 훨씬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다 우연히 아무 생각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
주명양은 3일 동안 물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마시거나 먹지 않았다.지금까지 그녀는 무엇인가를 쟁취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 주대부인은 그녀의 침상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너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 우문호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조부의 화를 돋우는 것이야? 기왕비가 죽고 나면 정비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텐데 기왕에게 시집을 가면 얼마나 좋냐는 말이다! 네가 초왕부로 시집을 간다고 쳐! 만약에 초왕비가 아들을 낳기라도 해봐 그 하늘을 찌르는 기세에 네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주대부인은 딸에게 화도 내보고 설득도 해보고 욕도 해봤지만 주명양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아프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주명양의 꺾이지 않은 기세를 보고 주대부인이 다급하게 옆에 있던 주명취를 보았다.“네 동생을 좀 말려라!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주명취는 사실 여기에 오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세 번이나 간곡하게 서신을 전하지 않았다면 주명취는 주명양의 규방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모친의 성화에 주명취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설득한다고 쟤가 듣겠습니까? 어머니 말도 귓등으로 안 듣는 애를 제가 무슨 수로……”“나가.” 주명양이 차가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나도 오고 싶지 않았거든? 어머니께서 와달라고 사정하지 않았으면 누가 여길 왔을 줄 알아? 그리고 너 정말 웃긴다? 이런다고 초왕이 너랑 혼인할 거라고 생각해? 어림없는 소리! 지금이라도 마음접고 기왕하고 혼사를 끝내. 그렇지 않으면 기왕도 마음이 바뀔 수 있어.”“입 닥치고 꺼지라고!” 주명양이 고개를 들고 독기가득 한 눈으로 주명취를 노려보았다.주명취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주명양을 보았다.“내가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할게. 네가 여기서 굶어 죽더라도 조부께서는 절대 너를 초왕과 혼인시키지 않을 거야. 이전에 희상궁이 와서 조부를 만났을 때, 조부께서 초왕부에 주씨 집안의 여인은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희상궁과 약속
“망할 상궁, 천한 신분 주제에…… 조부를 꾀어 내 인생을 망치다니! 모친께서는 이 수모를 참을 수 있으십니까? 딸이 이렇게 아파하는 데도 말입니다!” 주명양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알겠어! 알겠으니까 일단 뭘 좀 먹어라. 내가 희상궁을 찾아가 보마.” 주대부인은 주명양을 다독였다.“모친께서는 지금 당장 가서 희상궁을 만나세요. 만났다고 소식을 들어야 제가 밥이 넘어갈 것 같습니다.”주대부인은 참으로 난감했다.희상궁은 태상황의 심복인데다가 주수보와도 각별한 사이인데, 과연 그녀를 찾아가도 되는 것일까?주명양 말대로 희상궁을 위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은화를 써서 매수한다? 과연 이게 맞을까? 지나치게 도를 넘은 게 아닐까?주대부인이 희상궁을 만나고 싶다고 서신을 보내자 희상궁은 매우 당황했다. 서신에는 주대부인이 체면을 봐서라도 꼭 나와달라는 말만 있을 뿐 다른 말을 적혀있지 않았다.희상궁은 이를 원경릉에게 알렸다.원경릉은 서신을 보더니 단번에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희상궁을 보았다.“주명양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안 가겠습니다.”“다녀오세요. 지피지기 백전백승 아닙니까?” 원경릉이 웃었다.“저는 이런 소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왕야께서는 주씨 집안과 절대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왕비께서는 걱정 마십시오.” 희상궁이 단호하게 말했다.“다섯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주씨 집안이 염려가 됩니다. 희상궁께서 주대부인을 만나 그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희상궁은 원경릉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요. 그럼 만나보겠습니다.”“상궁님! 사식이를 데리고 가세요. 주씨 집안은 도통 믿을 수 없으니…… 주수보를 제외하고 주씨 집안 사람들은 속이 시커 메서 방심할 수 없습니다.”“맞습니다. 주수보 빼고는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죠.”다른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칭찬하자 희상궁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마음
희상궁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대부인께서도 앉으세요.”주대부인이 앉자 희상궁도 자리에 앉았다. ‘시녀를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사내를 데리고 왔네?’주대부인은 사식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사식이에게 손짓했다. “너는 밖에 나가 있어라.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마.”“아뇨. 희상궁님 옆에 있겠습니다.” 사식이가 말했다.주대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너……”라며 말을 잇지 못하자 희상궁이 미소를 지었다.“저 아이를 신경 쓰지 마세요. 원씨 집안의 계집인데 성격이 보통이 아닙니다.”주대부인은 계집이라는 말을 듣고도 안색이 좋아지지 않았다. ‘원후궁도 제왕부에서 보통이 아니더니…… 성가신 집안의 사람이네.’사식이는 허리춤의 꽂힌 칼집을 꼭 잡고는 당당하게 서있었다. 그런 사식이 때문에 주대부인은 희상궁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그들은 차를 몇 모금 마셨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대화만 했다.사식이는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잠을 깨기 위해 밖에 나와 바람을 쐤다. 찻집의 작은방 안에는 주대부인을 모시는 시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밖에 있었다. 주대부인은 사식이가 나가는 것을 보고 눈이 반짝였다. “마마님.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소인에게 부탁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부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주대부인은 희상궁의 손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마마님 지금 제 딸 명양이가 3일째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초왕하고 꼭 혼인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지금 기왕부와 혼사도 나눴는데 어휴… 제 딸이지만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주대부인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말인데, 마마님 제가 부탁드릴 일은…… 마마님께서 집안 어른을 만나 몇 마디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마님 아니면 제 딸은 죽습니다. 사람 살리는 셈 치시고 딱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희상궁은 주대부인의 말 뜻을 단박에 알아챘다. ‘초왕과 혼인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
“알죠. 처음에 기왕비가 후궁을 들이지 않겠다고 해서 초왕을 택했죠. 그러고는 마마님께서 집안 어르신을 찾아오셨잖아요. 그래서 혼인이 엎어졌고…… 아차! 마마님 제 말을 오해해 듣지 마세요. 제가 그렇다고 마마님을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맞습니다. 소인이 이 혼인을 막았습니다. 근데 제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을까요? 황실 내에 주수보의 위치를 대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높은 직위라도 한낱 조정의 관원에 불과합니다. 황제의 신하이기에 절대로 황실의 뜻을 거역할 수 없겠죠. 현재 주씨 집안이 굶을 걱정 않고 영화롭게 사는 것도 모두 황실의 은총이요, 백성들의 공양입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되겠지요. 소인은 몇 년간 조정에 관여하는 일은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황실의 신하라는 것을 망각한 자들이 가끔 황실을 넘어 왕위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주대부인께서도 생각을 바꾸시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하실 겁니다.”희상궁의 말을 들은 주대부인은 화가 났다. “도와주고 싶지 않다면 그냥 싫다고만 하면 될 것이지. 신하라는 것을 망각했다느니 화를 당할 거라느니 그런 말을 하는 속셈이 뭡니까?”“속셈이요? 저는 그저 주씨 집안이 대대손손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입니다.”희상궁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주대부인은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희상궁을 보았다.“제가 잠깐 흥분을 했습니다. 마마님께서 저희 가문을 걱정해 주시는 것도 모르고…… 좀 더 마시다가 가세요. 급할 게 뭐 있습니까.”유모는 손을 흔들며 “아닙니다. 여기 있어봤자 도울 일도 없고 전 그만 일어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주대부인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주머니에서 은화 한 묶음을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이것은 희상궁님이 나와주신 값입니다. 일만 잘 처리해 주시면 두 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자세히 보지 않아도 은화는 족히 만 냥은 되어 보였다. 희상궁은 한숨을 내쉬며 주대부인을 보았다.“주대부인, 어머니의 마음으로 둘째 아
희상궁은 화가 나서 입술이 덜덜 떨렸다.“주씨 가문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파렴치합니까? 그 못된 핏줄은 어쩔 수 없다는 겁니까? 경박하게 어디서 협박을…… 지금 이 고비만 넘어가면 초왕부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 그런 꿈은 진작 접는 게 좋을 겁니다.”희상궁을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사식이는 희상궁이 노발대발하며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왜 그러십니까? 설마 맞으셨습니까?”희상궁은 부들부들 떨며 “가자!”라고 말했다.사식이는 고개를 돌려 표독스럽게 주대부인을 노려보았다. 주대부인이 찻잔을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있었다. 주대부인은 희상궁이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지 않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잠깐!” 주대부인이 벌떡 일어났다.사식이가 뒤를 돌아보았다.“왜요? 또 뭘 하시려고요!”“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마마님 정말 도와주지 않으실 겁니까?”희상궁은 주대부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식이를 끌고 초왕부로 향했다.주대부인은 화가 나서 찻잔을 밖으로 던졌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네, 저 노인네가 저렇게 완고한 태도로 나오다니! 오만방자한 것……’주대부인은 희상궁이 주씨 가문을 얕보는 것 같아서 본때를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했다.희상궁은 초왕부로 돌아와 이 일은 원경릉에게 보고했다.원경릉은 희상궁의 말을 듣고 화가 났다.“상궁을 협박했다고요? 주씨 가문은 눈에 뵈는 게 없답니까?”“주대부인은 소인이 은화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주씨 가문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고 끔찍합니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소인을 협박했습니다.”“설마 주대부인이 그 일은 밖으로 퍼뜨리겠습니까?” 젊은 여자건 나이가 많은 여자건 구설수에 오르고 싶은 여자가 있겠는가. 원경릉은 희상궁이 걱정됐다.“그렇지는 못할 겁니다. 주수보도 걸린 일이니 쉽게 소문을 내지는 못 할 겁니다.”“그렇죠. 주수보가 그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으니까요.” 원경
사식이가 허둥지둥하며 서일의 가슴팍을 밀고 일어났다.“미안해요! 다바오랑 달리기를 하다가 못 봤습니다. 서일이 너무 작으니까 제 시야에 안 보였습니다!”“누구보고 키가 작대? 사식아 거기 서있지 말고 나 좀 일으켜 줘. 나 허리가 부러진 것 같아.”서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내가 그렇게 무겁다고요? 허리가 부러지기는 무슨! 아픈 척 말고 일어나죠?”“진짜 아프다고! 됐다. 나 혼자 일어나야지.” 서일은 오만상을 쓰고 사식이를 올려다보았다.서일은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천천히 일어섰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네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몰라. 이게 얼마나 아픈지!”사식이는 그를 부축하며 “미안해요. 화내지 마요. 일단 저기까지 갑시다. 이따가 약 발라줄게요.”라고 말했다.“천천히 움직여!” 서일은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었다.“그러게 서일도 눈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겁니까? 제가 달려오면 피해야지!”“새로 들어온 시녀가 있다던데 걔 찾다가 못 봤어!”“어휴! 그새를 못 참고! 하여간 남자들이란!” 사식이가 한심하다는 듯 서일을 쳐다봤다.서일은 허리가 아프다며 사식이를 재촉했다. “아 맞다! 그 시녀가 주부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다는데, 서일은 어떻게 그녀를 만났어요? 주부에 갔었어요?”서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사식이를 바라보았다.“생각났어. 그날 주씨네 둘째 아가씨랑 함께 관아에 갔던 노부인이야! 내가 왕야와 주부에 갔을 때, 왕야가 그 여자를 때리려고 했다니까?”“잘 못 본건 아니고요? 주명양을 모시는 사람이라고요?” 사식이가 놀라서 물었다.“맞아! 내 기억이 맞다니까! 그 여자가 맞아! 못 믿겠으면 왕야께 물어보세요. 그날 왕야께서 때리려고 했는데 그 시녀가 무술을 연마하는지 왕야도 힘들었다니까?” 서일은 말을 하다가 흥분을 했는지 허리가 더 아픈 것 같았다.서일의 말을 듣고 사식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세상에. 그렇다면 주명양에서 보낸 첩자가 분명합니다. 내가 가서 처리해야겠습니다.
희상궁은 원경릉의 제지에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왕비님 왜 진상을 파악하지 않으십니까? 설마 주명양의 시녀를 초왕부에 두려고 하시는 겁니까?”“그 시녀가 주부 출신이라고 해서 우리를 속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부에서 온 시녀에게 꿍꿍이가 없다고는 장담 못 하죠. 그 시녀가 변장술에 능하지만 그렇다고 신분이나 나이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도 않잖아요. 우리는 일단 시녀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 보자고요.”“어쩌면 여기가 초왕부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어요.” 희상궁이 말했다.“모른다고요? 어떻게 모를 수 있죠? 분명 계약서도 체결했잖아요.” 원경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고만아는 글을 몰라요. 그 여자는 신장 사람이라 글을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날 제가 이곳이 초왕부라고 말했더니 안색이 변하더라고요. 그때 내쫓을까 했는데 기회는 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냥 두었습니다.”“초왕부인줄 모르고 왔다? 그 여자가 연기를 하는 건 아닐까요?” 원경릉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희상궁을 보았다.“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위험한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당장 그 여자를 내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희상궁이 말했다.“그래요. 너무 위험합니다! 그녀는 마술도 할 수 있대요!” 사식이가 말했다.“마술이 라니라 최면술이야.” 원경릉이 사식이의 말을 고쳐주었다.“본래 신장 사람들이 최면술에 능합니다.” 사식이가 말했다.“맞아요. 어쩌면 그 시녀가 왕비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습니다.” 희상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최면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있기에 최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일단 그 여자가 음식이나 소월각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시하고, 그 시녀가 도대체 무슨 속셈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주명양이 마음먹고 사람을 보낸 거라면 고만아를 제거해도 또 사람을 보낼 테니까요. 고만아의 신분이 밝혀졌으니 우리가 그녀를 주시합시다.”원경릉의 말을 들은 사식이는 곰곰이 생각했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
미색은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방법은 왕비 마마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면 안 되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한 자는 괴롭히지만, 강한 자에게는 굴복한다고 하셨지요.”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맞는 말 같았다.이틀 후, 원경릉은 청우헌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왕비가 사람을 보내 약이 도착했으니, 원경릉에게 추 할머니의 방으로 오라고 전했다.원경릉은 급히 추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왕비와 다른 두 사람이 추 할머니의 침대 옆에 있었다.두 사람은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짧은 머리에 센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잘생긴 생김새에 이리 나리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깨끗하고 강인한 기운을 느낀 원경릉은 그가 현대 군인임을 직감했다.그리고 여자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외모가 왕비와 매우 닮았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단정하고 유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도 역시... 군인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강한 기를 보아, 계급이 낮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원경릉은 그들이 왕비의 두 자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소 흥분했다.그 순간, 왕비가 담담하게 한 마디 소개했다.“이쪽은 나의 아들 진예와 딸 진리다.”원경릉의 흥분된 마음은 단번에 깨져버렸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 악수하였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원경릉이라고 합니다...”세 사람은 악수하며 웃었다.“들어봐서 자네를 알고 있네.”“정말입니까? 그럼 제가... 삼촌과 이모라고 불러야겠습니다.”원경릉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호칭은 중요하지 않네!”진예가 말했다.“약을 갖고 왔다.“왕비가 원경릉에게 귀띔해 주었다.“예, 알겠습니다. 어디 보지요!”원경릉은 서둘러 돌아서서 약을 확인했다. 약은 한 상자 가득했고, 반 해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이기에, 그녀의 약 상
추 할머니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사실, 추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고, 그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치료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도 추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과 이별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원경릉은 그저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 또한 평생을 함께해온 이들이 드디어 모였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도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고, 걱정 없이, 짐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요즘 미색도 자주 숙왕부에 들러 작은 일들을 도와주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노력했다. 미색은 오기 전, 손왕비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손왕비는 무상황을 겁내며 오려 하지 않았다.그는 미색에게 원경릉은 이제 더 이상 초왕비나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황후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며, 혼자서 궁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 한다고 당부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손왕비의 말은 선의였지만, 미색은 늘 그래왔듯 그녀를 반박했다."신분이라니요? 신분으로 따지면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황후 못지않게 귀한 분들입니다!"숙왕부에 도착한 미색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그대로 전했다.원경릉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둘째 형수도 선의로 말한 것이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소. 신분이 뭐가 중요하오? 신분으로 따지면 나는 원래 의원이라네. 황후는 그저 자리일 뿐, 결코 내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전적으로 동의합니다!"미색이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왕비였지만, 황실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대흥 군주라고 여기지 않고 늑대파 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녀는 험난한 강호에서 버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미색은 앞으로 손왕비에게도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
황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은 큰일이었기에, 서둘러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이전에 원 할머니는 숙왕부에서 자주 연회를 열면 안 된다며 경고한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데 연회라 그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같이 마시게 되니 절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할머니는 큰 경사가 아니면 고기를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었다.하지만 제왕 부부가 딸을 낳은 지금은 큰 경사였기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 할머니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차례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원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술과 고기의 양은 반드시 자신이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었다.그녀는 이제 숙왕부의 집사처럼 보일 정도로 나서서 제지했고, 그녀도 이 역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노후 생활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추 할머니의 병세는 약물 치료 후 조금 호전되었다.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았고, 진통제 주사의 빈도도 줄어들었다.사실 원경릉이 사용하는 약물이 병세를 억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격려와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병세를 멈춘 이유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숙왕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또 한 번 연회를 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원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연회가 열리는 날, 원경릉도 참석했다. 그녀는 숙왕부의 활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고, 그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나이 든 늙은이들이 마련한 연회가 젊은 그녀조차도 활기를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고기의 양은 엄히 제한되었고, 채식 요리가 늘어났다. 원 할머니는 야채를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다들 원 할머니의 말을 따르듯 채소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주했다. 모닥불이 모든 사람의 기쁨 어린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직접 고기를 구워 열기를 더했다.식사가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