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아(古蠻兒)는 왜 처음부터 변장을 하지 않았을까? 초왕부에 들어오기 전에 변장을 했으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 했을 텐데 말이야.”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원경릉을 쳐다봤다. “경릉아 아무리 생각해도 네 생각은 너무 위험한 것 같아. 난 반대야. 그 여자 빨리 쫓아내자.”“아니 그게 아니라……”우문호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더는 안 돼. 나 진짜 화낸다?”원경릉은 인상을 찌푸리며 “왜 이렇게 독단적으로 결정하려고 해? 좀 더 상의해 보고 며칠 관찰해 보면 안 돼?”라고 말했다.“상의? 관찰? 이게 시간을 가져야 할 문제야?” 우문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가 당장 끌어낼 거니까 말리지 마.”라고 말했다.“내 말 좀 들어봐.” 원경릉이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너 제발 정신 좀 차려! 주씨 집안은 널 해치려고 했어!” “엄밀히 말하자면……”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며 “그 시녀는 날 해친 적이 없어. 단지 주명양을 도와서 너에게 뽀뽀 한 번 한 것뿐이잖아. 사실 최대 수혜자는 너 아냐?”라고 말했다.우문호는 눈을 부릅뜨고 “뭐? 무슨 헛소리야!”라고 말했다.“왜 그렇게 화를 내. 어휴 알겠어 그래, 내가 잘 못 말했어.”원경릉은 사과의 의미로 우문호의 손을 잡았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너 설마 내가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너도 공주부 사건으로 나한테 시집왔잖아.”우문호의 말에 원경릉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함부로 말하면 안 돼. 기회를 줄 테니까 빨리 사과해.”우문호는 원경릉이 만아(蠻兒)를 감싸고 있는 것 때문에 화가 나서 홧김에 원경릉에게 막말을 했다.“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주명양이 네 수법을 배운 거잖아. 그렇게 하면 나와 혼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정비(正妃)인 너도 그렇게 나와 혼인을 했으니까 말이야.”원경릉은 화가 치밀었지만 이성을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 “나가서 화 좀 식혀.
원경릉은 우문호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만아를 감싸려거나 그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만아가 왜 왕부로 들어왔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이 일을 애매하게 처리하면 추후에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다.원경릉도 임신 후에 수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그래서 원경릉은 매사에 긴장을 하고 살았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빨리 아이가 나와서 이 긴장을 해소해 주었으면 했다.‘임신 한 번 더 했다가는 정신병에 걸릴지 몰라……’그녀는 고만아의 소식을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우문호는 밖으로 나온 원경릉을 보고도 무시했다. 그는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경릉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사식이를 쳐다보았다.“고만아는?”“서일이 데리러 갔습니다.” 사식이가 조용히 말했다.만아는 서일이 오는 것을 보고 이미 정체가 들통났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초연한 얼굴로 말했다.“서일 나으리.”서일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왕야께서 너를 보자고 한다. 가서 목숨만은 구해달라고 비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했다.“나으리 앞장 서시지요.”고만아가 말했다.“내가 네 뒤에서 걸을 거야. 네가 뒤에서 나를 공격할지 누가 알아?”만아는 서일의 앞에서 뚜벅뚜벅 걸었다.원경릉은 저만치에서 고만아와 서일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만아는 초연한 표정으로 이미 예상한다는 눈빛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행동에서 약간의 불안함이 보였지만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 태연했고 그녀의 이마에는 붉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만아는 무릎을 꿇고 “왕야를 뵈옵니다!” 라고 크게 외쳤다.그녀는 우문호 오른쪽에 아무도 없어서 원경릉은 오지 않은 줄 알고 우문호에게만 인사를 했다.우문호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네가 초왕부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무슨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야!”“쇤네 스스로 온 것입니다. 누군가의 명을 받았거나 사주를 받아 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일을 할 곳이 필요했고, 먹고
우문호는 탁자를 내리쳤다.“그럼 넌 아직도 주인을 섬기는 마음이 갸륵하여 초왕부에 들어와 왕비를 해하려고 한 것이냐!”만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며 두 손을 빠르게 저었다.“아니, 아닙니다! 왕야 쇤네가 어떻게 감히 어찌 그러겠습니까! 쇤네는 이미 주부를 나왔고, 둘째 아가씨는 더 이상 제 주인이 아닙니다. 저는 일을 하고 싶어서 초왕부에 온 것입니다!”“방금 네가 초왕부에 온 이유가 네 뜻이라고?” 사식이가 물었다.“쇤네는 정말로 그 누구의 명을 받거나 사주를 받고 온 게 아닙니다……”“쇤네가 주부에서 쫓겨난 뒤 거리를 헤매다가 절름발이 거지 소년을 만났는데, 그가 서집(西集)에서 무예를 잘하는 계집을 찾는다고 하기에 저보고 한 번 가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곳이 초왕부인줄 꿈에도 몰랐습니다.”“그 거지는 어디에 있어?” 사식이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고만아를 노려보았다.“서집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그 거지 이름이 뭔데?” 사식이가 물었다.만아는 거지 소년의 떠오를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입술을 물어뜯더니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들었다.“호명(胡名)입니다!”우문호는 서일을 보며 “서집은 여기서 멀지 않으니 나가서 호명이라는 사람을 데려오거라!”라고 명했다.만아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왕야! 그 자는 이 일과 전혀 상관 없습니다! 그 자가 처음엔 쇤네를 부둣가에 짐을 나르는 사람에게 소개했지만 부둣가에서 쇤네를 필요 없다고 하자 여기로 소개해 준 겁니다. 그도 좋은 마음으로 한 겁니다…… 왕야께서는 부디 그를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당장 그 자를 데리고 오거라!”우문호가 큰 소리로 외쳤다.고만아는 벌떡 일어나 서일을 가로막았다.“아니! 그 자는 이 일과 상관이 없다고요!”“비켜!” 서일이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안됩니다! 그는 절대 이 일과 관련이 없다고요! 제발!”고만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일이 바짓가랑이를 잡았다.“잠깐! 그 절름발이 거지가 회색 옷
원경릉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차갑게 굳었다.“우문호…… 너 여태까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취급한 거야?”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희상궁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 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뭐가 문젭니까? 저 자를 쫓아내면 그만 아닙니까!”고만아는 여기서 자신의 편은 초왕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원경릉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왕비님! 쇤네가 잘 못했습니다! 쇤네가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그녀는 바닥에 머리를 세 번 찢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고만아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는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그냥 저렇게 간다고? 주부에 있을 때부터 내가 너를 벼르고 있었어. 이제 기회가 왔구나. 거기 누구 없느냐! 저 자를 잡아 곤장 50대를 때려 밖으로 내던져라!”우문호의 호령에 시위들이 들어와 그녀를 쫓았다.이 모습을 본 원경릉은 벌떡 일어나 우문호를 보며 “그냥 가게 둬!”라고 외쳤다.“무엇 하느냐! 빨리 잡아 곤장을 치거라!”“멈추거라!” 원경릉이 버럭 했다.시위는 둘 중의 누구의 명령에 따라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서있었다.그러자 희상궁이 우문호를 설득했다.“왕야 쫓아내면 그만입니다. 그냥 내보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비의 말을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우문호는 희상궁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시위들을 보았다.“본왕은 명을 거두지 않겠다. 뭣들 하느냐! 당장 곤장을 치거라!”시위들이 그녀를 끌고 가자 원경릉이 빠르게 달려가 머리에 있던 비녀를 뽑아 고만아의 목에 대었다.“가거라!”“왕비……!”고만아는 놀란 눈으로 원경릉을 보았다. “원경릉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 우문호가 크게 노했다. 원경릉이 고만아를 위해 저렇게까지 하다니 우문호는 원경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가만히 서서 무엇 하느냐! 곤장 50대를 맞으면 넌 죽는다. 당장 가거라!” 원경릉이 소리 질렀다.고만아는 왕비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왕비의 말이 맞았다. 곤장 50대를 맞고 살아남은
“왕비님께서는 왜 저 자를 감싸는 겁니까?”사식이는 이해할 수 없는 왕비의 행동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원경릉은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들어 사식이를 보았다.“곤장 50대는 너무 하잖아……”“자업자득이죠.” 사식이가 말했다.“그 아이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그래?” 원경릉이 되물었다.“왕비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왕야에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주명양이 그런 몹쓸 짓을 한 게 아닙니까! 저는 저 자를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사식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그렇다고 꼭 죽어야 해?” 원경릉이 물었다.사식이는 멍하니 그녀를 보며 “저 여자가…… 초왕부에 들어왔잖아요.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왔을지 어떻게 압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희상궁은 원경릉의 안색이 좋지 않자 사식이를 밖으로 내보냈다.사식이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밖으로 나가며 원경릉을 한 번 보았다.“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세요.”“사식아 너는 왕부로 온 손님이다. 넌 내 말 벗으로 왕부에 온 거야.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가서 밥이라도 먹어라.” 원경릉이 말했다.“왕비께서는 식사 안 하십니까?” “나는 입맛이 없다.”사식이는 희상궁을 보았다. 희상궁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가라고 손짓했다.그녀도 별 수 없다는 듯 원경릉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식이는 소월각을 나서자마자 먼발치에서 서일이 절름발이 소년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았다.사식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만아가 말한 게 모두 거짓부렁은 아니었네?”라고 말했다.“왕비도 얘를 아셔. 예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다고 하셨어.” 서일이 말했다.“왕비께서 이 자를 안다고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라고 해요. 왕비께서 안에 계시니까.” 사식이는 고만아의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구나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서일은 절름발이 소년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왕비. 소인이 이 자에게 물었는데, 고만아
“이것이 내가 만아를 보내준 이유입니다. 생명에는 귀함과 천함이 없는데 왜 어떤 이들의 삶은 버러지만도 못하게 죽음을 맞이한단 말입니까? 밥 한 끼를 먹자고 하는데도 덜덜 떠는 저 자를 보세요. 저 사람이 배가 불러서 저러겠습니까? 저 자는 배가 고파서 던져주는 음식을 얻어맞으면서도 달려가 받아먹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배를 곯았으면 사람이 그러겠습니까? 근데 지금을 보세요! 곤장을 맞을지언정 자신의 신분이 천하다고 느껴져 저와 밥 한 끼도 먹지 않겠다고 하지 않습니까.”원경릉은 희상궁을 보며 울분을 토했다.“왕비님께서는 저 자와 같지 않습니다. 왕비께서는 존귀한 신분입니다.” 희상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원경릉을 타일렀다.원경릉은 이 세상은 자유와 평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서부터 신분이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 나고 자랐으니 당연히 저럴 수 있다.하지만 원경릉은 공평한 사회에서 태어나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모든 사람은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배웠다. 눈 떠보니 왕비였던 원경릉은 왕부의 모든 하인들이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것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잡초 뽑듯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혼자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금도 마찬가지다. 원경릉은 고만아가 초왕부로 온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 고만아에게 곤장 50대를 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문호와 원경릉의 생각 차이로 다투면서 상황이 이렇게 크게 번졌다.원경릉은 우문호가 고만아를 벌주기 위해 곤장 50대를 때리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원경릉이 그녀를 감싸는 게 화가 나서 화풀이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둘 중 어떤 이유라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정말 고만아 말대로 악의 없이 초왕부에 일을 하러 왔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왕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원경릉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자신을 불안
이 시대에 온 이상 예전의 나는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쉽지 않다.이곳에 온 지 오래됐다. 가만 생각해 보아도 원주인 원경릉도 지금의 그녀도 그렇게 자상하거나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어떻든 지금의 그녀는 생명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쉽게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사식이는 고만아 때문에 우문호와 말다툼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어찌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을 쉽게 결정하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희상궁이 들어와서는 침상에 올려진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왕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몸 상하십니다.”“호명은?”원경릉은 몸을 추스르며 물었다.“녹주가 데리고 가서 밥을 먹였습니다. 왕비께서 호명이 눈에 밟히신다면 왕부에 사소한 일이라도 도맡아 하게끔 하겠습니다.”희상궁이 원경릉의 어깨를 다독였다.“상궁께서 전에 제게 물으셨죠. 왜 자신을 죽이지 않고 곁에 두었냐고요. 그때 제가 태상황님께서 희상궁이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대답했죠.”“예 기억합니다. 왕비님께서 그렇게 대답하셨습니다.”원경릉은 잠시 침묵했다. “태상황님께서 희상궁을 어여삐 여기는 것은 맞으나 최종 결정은 제가 했습니다. 저는 제가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심판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그래서 희상궁을 살려두었습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희상궁은 원경릉이 고만아를 살려둔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허나 왕비……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이 또한 왕비께서 어쩔 방도가 없습니다.”“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사람은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꼬투리 잡아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버린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척박해지겠습니까.”“그래도 너무 위험한 선택입니다. 고만아를 죽인다면 적어도 왕비께서는 두 다리 뻗고 주무실 수 있잖습니까.”원경릉은 속절없이 한숨만 내뱉었다.“왕비의 마음이 여리고 착한 것…… 소인이 잘 압니다. 하지만 왕비께서는 단 한 번이라도
우문호가 탁자를 내리치자 술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왕비를 믿으라고? 자신의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여인을 어떻게 믿겠어?”그는 술잔을 새로 꺼내 술을 가득 담아 마시고는 입을 닦았다.“나도 이렇게 말다툼하는 거 지겨워. 왕비가 본왕에게 주명취가 달려들었을 때 즐겼지 않았냐고 하더라…”“왕야, 주명취가 아니라 주명양 아닙니까?” 냉정언이 그의 말을 고쳐주었다.우문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냉정언을 보며“주명취가 누구야? 아! 아!”라고 말했다.그는 다시 탁자를 내리치며 “주명양이지! 내가 방금 주명취라고 했느냐? 아닌데?”라고 말하자 냉정언이 그의 말실수를 지나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주명취라고 했습니다.”우문호는 그를 노려보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그렇게 말이 많아?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원경릉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봐.”냉정언은 손을 저으며 “아니, 왕야께서 말을 해보세요.”라고 말했다.“몰라… 본왕은 모르겠다…” 그는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저으며 “본왕이 미쳐버릴 것 같아. 왕비가 나를 화나게 해서 미쳐버리겠다고! 오늘 왕부에 돌아가면 내가 반드시 뺨을 올려부칠 것이야!”라고 말했다.그는 두 손으로 탁자의 가장자리를 잡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술에 취해 혀가 꼬였지만 그는 오늘 있었던 일은 냉정언에게 모두 말했다.우문호의 말을 듣고 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얘기를 들어보니 왕야가 일을 괜히 크게 키우셨군요. 초왕비가 무슨 말을 했든 제 생각엔 별 뜻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왕야가 과민반응한 것 같네요. 으휴…… 거기서 공주부 얘기는 왜 꺼내가지고…… 원래 지난 일은 덮어두는 것이지 자꾸 꺼내면 독이 됩니다. 왕야의 말대로 고만아를 살려둔 일은 왕비께서 지나치게 자애로웠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전쟁 나가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만약 왕야 뜻대로 고만아에게 곤장을 내리쳤다면 초왕부의 뜰에서 사람이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감옥에서 처형당한 수빈이 자결했다는 소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