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을 적어 두려고. 만약 나중에 네가 없어져도 내가 찾아갈 수 있게 말이다.”우문호의 진지한 얼굴에 원경릉이 쓴웃음을 지었다.“어느 날 내가 정말 사라진다면 넌 나를 찾지 못할 거야. 그러니 그렇게 적어둬도 의미 없어.”“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너를 찾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라도 쓸 테니, 지금 내 옆에 있을 때, 실마리라도 남겨둬.”한밤중, 우문호는 그녀의 손목을 끌어 서재로 갔다.원경릉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의 전생을 모두 털어놓았다.전에 귀담아듣지 않았던 그녀의 이야기를 우문호는 처음으로 열심히 들었다.“네 말대로라면…… 경릉이 너는 하늘이 내게 준 보물이구나.”“그래서 넌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줘야 해.”“당연하지.”우문호는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사실 그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전에는 없던 두려움이 생겼다. 하지만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우리 두 사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구나……’그는 원경릉이 말한 내용에서 지역의 이름 그리고 시간을 전부 기록하여 소중히 간직하였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원경릉이 밤 사이에 사라질까 무서워 꼭 껴안고 잤다. ‘말도 없이 이곳으로 온 원경릉이 갈 때도 말도 없이 가지 않을까? 혹시 알아?’*이튿날 아침.옷차림을 단정히 입은 우문호가 원경릉과 함께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그는 어제보다 오늘따라 훨씬 대범해졌다. 그는 할머니 앞에서 원경릉에게 잘해주겠다고 약속하며 할머니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원경릉은 가볍게 떨리는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매우 긴장했다는 것을 알아챘다.할머니는 그의 말을 듣고 다른 걱정은 안 됐지만, 이 시대의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러 명의 아내를 들이는 점이 걱정됐다. 특히 그는 태자이며 장차 황제가 될 텐데, 지금처럼 후궁이나 첩을 들이는 것을 공공연히 마다할 수 있을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걱정이 됐다.우문호가 관아에 돌아간 후, 원 할머니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자신이 걱정되는
원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그런 일들은 어린 너희들 사이에서 재밌는 거지. 난 가지 않겠다.”원경릉은 할머니의 얼굴이 아직 피곤해 보이는 것을 보고 오느라고 지쳐있다고 생각되었다.“그럼 저도 가지 않을래요. 할머니랑 집에서 같이 있을 겁니다.”“그러지 말고 갔다 오거라. 가서 미색을 좀 도와줘야지. 숙친왕이 미색을 괴롭히면 어쩌려고 그래.”원 할머니는 미소를 머금고 그녀의 손등을 두드렸다.“네, 할머니 쉬고 계세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미색은 혼인을 맺은 후 이틀 동안은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궁중의 일들은 노비 선에서 처리되었고, 회왕의 하인들도 미색에게 호의적이었다. 미색은 혼인 후 이튿날 입궁하여 태상황과 태후에게 알현을 드렸으며 황상과 황후에게도 알현함으로써 정식으로 황실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사흘째가 되는 지금, 왕부를 나서기도 전에 벌써 한숨이 나왔다.‘혼인을 하니까 다 좋은데…… 친정이 문제네. 사람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구나.’회왕은 미색의 친정 방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어제부터 하인들을 찾아다니며 빠짐없이 준비를 하라고 분부했다. 혼인 후 3일이 넘었으니 친정에 가야 하는데, 미색은 침상에서 뭉그적거리며 가기를 꺼려 하고 있었다.회왕은 미색과 숙친왕 사이에 일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미색도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그녀에게 숙친왕에 대해 묻지 않았다.회왕은 그녀가 좀처럼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자 웃으면서 말했다.“그렇게 누워만 있는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 있겠소?”미색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가 대흥으로 돌아갈 때까지 피할 겁니다.”라고 말했다.“그렇다고 가족을 평생 안 보고 살 수 있겠소?”회왕은 침상 옆에 앉아서 그녀를 끌어당겼다.“빨리 일어나시오.”“알겠어요. 일어날게요.”미색은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탄식하였다.‘저렇게 잘생긴 얼굴로 일으켜 세우는데 안 일어날 여자가 어딨겠어?’이리 집안에서는는 미색을 맞이할 준비로 한창이었다. 대흥은 혼인 후, 사위가 처음 친정에 올 때
회왕에게 술을 권하는 시종 보고 미색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더니 한 손으로 술을 빼앗고는 무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회왕께서는 술을 드시지 못한다! 설마 황실의 자제를 위협하려는 것이냐!”“새신랑이 마시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요. 누군가가 대신해서 마셔야 하는 수밖에!” 술을 들고 있던 시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회왕은 시종의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고, 회왕이 데리고 온 하인들도 시종의 당돌함에 깜짝 놀랐다.“그래, 네가 그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미색이 차갑게 웃으며 시종을 보더니 손에 들린 술을 빼앗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회왕은 아까보다 더 당황한 표정으로 미색의 소매로 흐르는 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미색아 그만 마시거라.” 회왕이 말했다. 미색은 술잔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는 손으로 거칠게 입을 닦았다.“또 뭐가 있어? 내가 다 상대해 줄 테니까!”그러자 십여 명의 사람이 긴 몽둥이를 들고 회왕을 에워쌌다. 미색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회왕을 뒤로 세우고 그들과 맞설 준비를 했다.십여 명의 사람들이 미색과 회왕에게 몽둥이를 휘둘렀고 미색은 칼집에 있던 장검을 꺼내 하나 둘 상대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회왕은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는 그녀를 보며 한 떨기의 장미가 꽃잎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수많은 사람이 들고 있던 몽둥이가 모두 반 토막이 되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미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넘겼다.“또 있어? 덤벼!”그녀의 우렁찬 소리에 이리 댁의 시종들이 움찔했다. 잠시 후, 책을 들고 있던 책벌레들 다섯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저건 또 뭐람? 설마 학문을 시험하겠다는 거야?’그 모습을 본 회왕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미색의 앞에 섰다.“이번엔 내가 나서겠네!”회왕은 오랜 병을 앓는 바람에 무공에는 약하나 그 덕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친왕들 중에서도 그의 학문이 가장 뛰어났다.다섯 명의
숙친왕은 두 사람이 모든 관문을 통과하자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린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이리 댁에 들어올 수 있었다. 숙친왕은 미색에게 황실 사람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조신하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으며 아무리 화가 나도 남편을 존중하라고 했다. 미색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거렸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잔소리는 귀찮지만, 저 말 뜻은 회왕을 사위로 받아들인다는 말이군.’원경릉은 숙친왕과 미색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이리 댁에 잠시 머물다가 왕부로 돌아왔다. 미색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왕부에 혼자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마차가 초왕부에 도착하자 군중들이 마차를 에워쌌다. “태자비는 물러나라!”“물러나라! 물러나라!”전까지는 잠잠하던 백성들이 다시 나타나 초왕부 대문을 향해 욕을 해댔다.수위와 하인들이 그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몇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그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서일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차를 뒷문으로 몰았다.“태자비께서는 뒷문으로 들어가세요. 일단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나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냥 내버려 두면 잠잠해질 것을……”“태자비, 저들을 저대로 둬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게 진압하지 않으면 내일 또 올 겁니다!”“오늘 해산시켰다고 해도 내일 오지 않으라는 법은 없네. 저들 중에 분명 나를 암살하려고 온 자객들도 숨어있을 것이야. 백성들은 그들에 의해 선동됐을 거고.”“자객이라니요? 혹시 대흥의 귀빈이 부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태자와 태자비의 명성을 더럽히려는 겁니까?”원경릉은 서일에게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일단 뒷문으로 들어가 보자고. 마차는 근처에 세우고.”원경릉은 이런 광경을 처음 봤을 할머니가 걱정됐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군중 속에 한 사람이 원경릉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태자비가 저기 있다!”“태자가 태자비와 이혼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직도 초왕부에
서일은 고개를 돌리고 원경릉을 보았다.“태자비, 왜 말리시는 겁니까? 다른 건 다 참아도 내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은 초장에 확 휘어잡아야 합니다!”원경릉은 손으로 머리에 붙은 계란 껍데기를 떼내었다. 썩은 계란도 섞여 있어 악취가 어마어마했다.“서일, 일단 진정하고 이 일은 태자가 왕부로 돌아온 후에 처리하는 게 좋겠어. 지금 탕대인이 왕부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그와 상의를 해봐. 난 돌아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만아는 원경릉의 목과 뒤통수가 빨갛게 부어오른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태자비님 계란에 맞으신 곳이 다 부어올랐는데 아프지 않으십니까?”“아픈 건 괜찮은데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오는구나, 빨리 가서 옷을 갈아입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어. 왕부가 소란스러우니 놀라셨을 거야.”원경릉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봉의각으로 걸어갔다.만아는 원경릉의 뒤를 바짝 따르며 “정말 저 몰상식한 사람들은 싹 다 잡아다가 혼쭐을 내어줘야 합니다! 문둥산에 있는 환자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겁니까? 왜 저렇게 이기적인 겁니까?” 라고 화를 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만아를 보고 온화하게 웃었다.“사람의 마음이란 참 어려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심보인 거지. 사람이 죽든 아프든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가족 중에 누구 하나라도 문둥병에 걸려 문둥산에 있는 백성들은 저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을 거야.”“그렇지만……”“만아야,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이성을 되찾고 더 강해져야 해.”“그래도…… 태자비님께서는 화가 나지 않으십니까?”“당연히 화가 나지! 하지만 화를 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야.”원경릉은 빠른 걸음으로 대청을 지나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할머니가 있었고 원경릉은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살짝 흔들었다.“다녀왔습니다.”“꼴이 그게 무엇이냐……”“아, 이거 새로 연구하는 약이 있어서…… 계란에 단백질이 두피에 좋다길래 먼저 실험해 본 겁니다!”원경릉은
원 할머니는 약상자 안에 현대 약들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한참을 약상자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뿌리는 파스를 집어 원경릉의 목에 뿌렸다.“그래도 이곳에 약상자가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서 네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싶구나. 오늘 기상궁과 녹주(綠荷)가 지난 네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원경릉은 깜짝 놀라 천천히 몸을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할머니, 혹시 희상궁과 녹주가 무슨 말을 했어요?”원경릉은 두 사람이 자신이 예전에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까지 할머니에게 얘기를 했을까 봐 겁났다.“기상궁한테 물어보니 잘 얘기를 하지 않아서, 녹주한테 물어봤지. 녹주는 내가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대답을 해줬어. 처음부터 다섯째가 너에게 살갑지는 않았다면서? 그 말을 들으니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프더라. 그리고 전에 궁에 가서……”원경릉은 녹주가 쓸데없는 얘기를 할머니께 전한 것에 화가 났지만 할머니가 걱정하는 것이 싫어 애써 평온한 척했다.“할머니, 이미 다 지난 일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곤장 서른 대가 무슨 대수라고요.”할머니는 들고 있던 파스를 탁자에 쾅 내려놓으며 원경릉을 노려보았다.“그게 무슨 소리야? 곤장을 맞았다니? 다섯째가 너를 때렸다는 거야?”“예? 녹주가 그 얘기는 하지 않던가요……?”“감히 내 손녀를 때려? 남자가 여자를 때리다니 그게 얼마나 비겁하고 모자란 짓이야?”“……”“아이고, 경릉아……”할머니는 원경릉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왜 얘기를 안 했어? 이러고 사는 줄 알았으면 당장이라고 끌고 나갔을 것이야! 어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느냐! 게다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원경릉은 할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쓸었다.“할머니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셔서 제 말을 들어보세요.”“너 설마 세뇌라도 당한 거야?”“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까지 있는데
“할머니 제가 몸에 원주(原主) 원경릉이 있었을 때, 다섯째는 원래 죽마고우이자 첫사랑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원주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본래 좋아하던 사람과의 혼인이 깨지고 말았어요. 게다가 원주는 혼인 후 초왕부에서도 기고만장한 태도로 매번 하인들을 괴롭히고 늘 구설수에 올랐지요. 그래서 다섯째는 그녀를 혐오했고, 그때 무슨 이유인지 제가 원주의 몸에 들어온 겁니다.”원경릉은 당시 원주가 했던 만행들은 원 할머니에게 하나하나 세세히 말했다. 원 할머니도 원주의 만행을 듣고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원주가 열이에게 한 행동은 용서가 안 되는구나. 현대로 따지자면 열이는 초등학교 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그런 아이에한테 뭔 짓을 한 거야?”원경릉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할머니가 우문호가 왜 원주를 미워했고, 곤장을 내리친 것인지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다섯째가 저녁에 왕부로 돌아왔을 때, 밖에서 소란을 피우던 백성들은 이미 없었고, 탕양은 그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그에게 알렸다. 우문호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으며, 탕양에게 내일 부병을 파견하여 태자비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체포해 경조부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걱정 마세요, 오늘 밤 서일에게 오늘 소란을 일으킨 무리 중에 태자비를 암살하려는 자객들을 찾으라고 했으니 내일은 무서워서라도 왕부에 오지 못할 거예요.”암살이라는 말에 우문호의 얼굴이 싸늘해졌다.“이대로 가면 문둥산의 환자들을 치료하기는커녕 태자비의 목숨만 위태로울 수 있겠네요. 보아하니 자객들이 백성들을 이용해 정세를 어지럽힌 후 태자비를 공격하려는 모양입니다.”“예, 태자비께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왜 경릉이를 괴롭히는 건지…… 게다가 여섯째까지 들먹이며 형제 관계까지 망가뜨리려는 것을 보니 보통 머리가 좋은 자객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서일이 자객들을 추려낸다면 훈계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꼭 알아내야 해요.”우문호의 말을
우문호는 소월각 안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며 원경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소월각의 문이 열리고 원경릉이 들어오자마자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할머님께서 내가 곤장을 때린 일을 알고 계신 거야? 화가 많이 나셨어?”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쉿-’이라며 눈짓으로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우문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눈에 뭐가 들어갔어? 녹주가 무슨 얘기를 한 거야?”라고 물었다.“큼……”때마침 누군가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며 소월각 안으로 들어왔다.백발에 가려진 할머니의 얼굴은 엄숙하고 굳어져있었다. 우문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원경릉의 손목을 놓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보았다.“하하, 조모님께서 오셨습니까?”원경릉은 거의 울다시피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탕대인이 태자가 아프다고 하길래 어떤지 와보았네.”“조모! 감사합니다!”원 할머니도 덜덜 떠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졌다.“사위가 이렇게 내 눈치를 보니 내가 편히 있을 수 없겠네, 아프다는 건 괜찮은 것 같으니 늙은이는 가보겠네.”“조모, 살펴 가십시오!” 우문호는 서둘러 앞으로 나가 배웅했다. 원 할머니는 배웅 나온 그를 가만 보고 있다가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을 두드렸다. “사위, 내가 나이가 많다고 고지식할 거라는 생각은 말게.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 앞으로가 중요하네. 부디 지금처럼만 손녀에게 잘 해주게.”“네. 그것이야 당연한 것이니 걱정 마세요. 조모!”그의 우렁찬 대답을 듣고 할머니는 내심 흐뭇했다.“그럼 들어가서 쉬게.”우문호는 봉의각으로 걸어가는 조모의 뒷모습을 보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으며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 귀에서 심장소리가 들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배웅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툴툴댔다.“너도 참, 내가 너만 오라고 했지, 왜 조모를 모시고 온 거야? 조모께서 화가 나셨다니까 나도 상황
원경릉은 못내 조금 흥분했지만, 이내 다시 차분해졌다.약상자에 어떤 약이 나타났든, 지금 상황에는 여전히 위험이 컸다. 그리고 그 약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요부인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게다가 두 번째 층에는 출산 중 사용할 응급 약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다 그들의 팔자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우문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어찌 고민할 때마다 이마를 찡그리는 것이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리프팅을 해야 하네.""당신은 리프팅 안 했소."원경릉은 웃으면서 말했다."난 괜찮소. 리프팅을 했든 안 했든, 예전보다 확실히 젊어 보이니 괜찮소."우문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어쨌든, 원경릉이 좋아하면 되었다."정말 리프팅 안 했소. 다 그 약 덕분이오."원경릉이 말했다."정말이오?"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행이오. 난 당신이 내가 늙었다고 싫어할 줄 알았소."원경릉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소? 사랑하는 사람의 흰머리를 볼 수 있다는 건, 사실 행복한 일이네."우문호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맞소."원경릉이 그의 품에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아마 오늘 밤 요부인과 훼천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정말 그러했다.모두가 나가자마자, 요부인이 약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훼천은 그녀 곁에 있었지만, 위로는 서투른 사람이라,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곁에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슬픔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삶도 잘 흘러갔을 것이다.왔지만 떠나니, 정말 상처가 될 뿐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이다."어르신을 찾으러 가겠네."요부인이 갑자기 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훼천은 누구를 말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숙왕부에 가려 하니, 함께 가시게."요부인이 벌
원경릉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약을 다 처방한 후에 원경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일부터 약을 드시게. 잊을 수도 있으니, 며칠 동안 자주 올 것이네. 게다가 또..."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바로 그녀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약을 먹는 과정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이 나이에 아이를 낳든, 낙태하든, 모두 위험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당부를 마친 후, 훼천이 그녀들을 배웅했다.모두 지금은 그들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아이와 함께, 셋이 하루를 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오늘 하루만이 남아 있었다.미색은 집을 나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참 뒤 눈물을 닦고 나서 원경릉에게 물었다."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그저 지지하기로 하지 않았느냐."미색 또한 이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원경릉은 더 이상 위험에 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요부인의 목숨이 더 중요한 법이지요."미색은 말을 마친 후, 말을 타고 그곳을 떠났다."며칠 동안 계속 그녀의 곁을 지킬 셈 같아 보이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원용의가 말했다."그래. 나도 올 것이다."그러자 손왕비가 덧붙였다.한편, 궁에 돌아온 원경릉은 바로 실험실로 가지 않고,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슬픔에 가득 찬 요부인의 얼굴만이 떠올랐다.강한 여자의 눈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저녁 무렵, 다섯째가 돌아왔다. 그는 원경릉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는 대충 눈치챘다. 그는 다가가서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요부인의 상태가 좋지 않소?""알아챈 것이오?""나이가 나이인지라."우문호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결국 아이를 포기하기로 했소?""그렇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원경릉은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