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할머니는 약상자 안에 현대 약들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한참을 약상자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뿌리는 파스를 집어 원경릉의 목에 뿌렸다.“그래도 이곳에 약상자가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서 네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싶구나. 오늘 기상궁과 녹주(綠荷)가 지난 네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원경릉은 깜짝 놀라 천천히 몸을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할머니, 혹시 희상궁과 녹주가 무슨 말을 했어요?”원경릉은 두 사람이 자신이 예전에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까지 할머니에게 얘기를 했을까 봐 겁났다.“기상궁한테 물어보니 잘 얘기를 하지 않아서, 녹주한테 물어봤지. 녹주는 내가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대답을 해줬어. 처음부터 다섯째가 너에게 살갑지는 않았다면서? 그 말을 들으니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프더라. 그리고 전에 궁에 가서……”원경릉은 녹주가 쓸데없는 얘기를 할머니께 전한 것에 화가 났지만 할머니가 걱정하는 것이 싫어 애써 평온한 척했다.“할머니, 이미 다 지난 일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곤장 서른 대가 무슨 대수라고요.”할머니는 들고 있던 파스를 탁자에 쾅 내려놓으며 원경릉을 노려보았다.“그게 무슨 소리야? 곤장을 맞았다니? 다섯째가 너를 때렸다는 거야?”“예? 녹주가 그 얘기는 하지 않던가요……?”“감히 내 손녀를 때려? 남자가 여자를 때리다니 그게 얼마나 비겁하고 모자란 짓이야?”“……”“아이고, 경릉아……”할머니는 원경릉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왜 얘기를 안 했어? 이러고 사는 줄 알았으면 당장이라고 끌고 나갔을 것이야! 어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느냐! 게다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원경릉은 할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쓸었다.“할머니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셔서 제 말을 들어보세요.”“너 설마 세뇌라도 당한 거야?”“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까지 있는데
“할머니 제가 몸에 원주(原主) 원경릉이 있었을 때, 다섯째는 원래 죽마고우이자 첫사랑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원주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본래 좋아하던 사람과의 혼인이 깨지고 말았어요. 게다가 원주는 혼인 후 초왕부에서도 기고만장한 태도로 매번 하인들을 괴롭히고 늘 구설수에 올랐지요. 그래서 다섯째는 그녀를 혐오했고, 그때 무슨 이유인지 제가 원주의 몸에 들어온 겁니다.”원경릉은 당시 원주가 했던 만행들은 원 할머니에게 하나하나 세세히 말했다. 원 할머니도 원주의 만행을 듣고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원주가 열이에게 한 행동은 용서가 안 되는구나. 현대로 따지자면 열이는 초등학교 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그런 아이에한테 뭔 짓을 한 거야?”원경릉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할머니가 우문호가 왜 원주를 미워했고, 곤장을 내리친 것인지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다섯째가 저녁에 왕부로 돌아왔을 때, 밖에서 소란을 피우던 백성들은 이미 없었고, 탕양은 그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그에게 알렸다. 우문호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으며, 탕양에게 내일 부병을 파견하여 태자비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체포해 경조부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걱정 마세요, 오늘 밤 서일에게 오늘 소란을 일으킨 무리 중에 태자비를 암살하려는 자객들을 찾으라고 했으니 내일은 무서워서라도 왕부에 오지 못할 거예요.”암살이라는 말에 우문호의 얼굴이 싸늘해졌다.“이대로 가면 문둥산의 환자들을 치료하기는커녕 태자비의 목숨만 위태로울 수 있겠네요. 보아하니 자객들이 백성들을 이용해 정세를 어지럽힌 후 태자비를 공격하려는 모양입니다.”“예, 태자비께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왜 경릉이를 괴롭히는 건지…… 게다가 여섯째까지 들먹이며 형제 관계까지 망가뜨리려는 것을 보니 보통 머리가 좋은 자객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서일이 자객들을 추려낸다면 훈계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꼭 알아내야 해요.”우문호의 말을
우문호는 소월각 안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며 원경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소월각의 문이 열리고 원경릉이 들어오자마자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할머님께서 내가 곤장을 때린 일을 알고 계신 거야? 화가 많이 나셨어?”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쉿-’이라며 눈짓으로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우문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눈에 뭐가 들어갔어? 녹주가 무슨 얘기를 한 거야?”라고 물었다.“큼……”때마침 누군가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며 소월각 안으로 들어왔다.백발에 가려진 할머니의 얼굴은 엄숙하고 굳어져있었다. 우문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원경릉의 손목을 놓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보았다.“하하, 조모님께서 오셨습니까?”원경릉은 거의 울다시피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탕대인이 태자가 아프다고 하길래 어떤지 와보았네.”“조모! 감사합니다!”원 할머니도 덜덜 떠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졌다.“사위가 이렇게 내 눈치를 보니 내가 편히 있을 수 없겠네, 아프다는 건 괜찮은 것 같으니 늙은이는 가보겠네.”“조모, 살펴 가십시오!” 우문호는 서둘러 앞으로 나가 배웅했다. 원 할머니는 배웅 나온 그를 가만 보고 있다가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을 두드렸다. “사위, 내가 나이가 많다고 고지식할 거라는 생각은 말게.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 앞으로가 중요하네. 부디 지금처럼만 손녀에게 잘 해주게.”“네. 그것이야 당연한 것이니 걱정 마세요. 조모!”그의 우렁찬 대답을 듣고 할머니는 내심 흐뭇했다.“그럼 들어가서 쉬게.”우문호는 봉의각으로 걸어가는 조모의 뒷모습을 보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으며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 귀에서 심장소리가 들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배웅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툴툴댔다.“너도 참, 내가 너만 오라고 했지, 왜 조모를 모시고 온 거야? 조모께서 화가 나셨다니까 나도 상황
서일은 밤에 부병 몇 명을 데리고 소란을 일으킨 자들을 수색해 모두 초왕부로 데려왔다. 서일은 그들을 흠씬 두들겨 팼고, 참다못한 한 사람이 항복을 외치며 안왕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실토했다.“안왕부의 짓이라고? 안왕이 지금 남영에 가있는데, 어떻게 이런 짓을 지시할 수 있겠어?” “나리 잘 생각해보세요. 안왕이 직접 지시를 내렸겠습니까?”“그런 누군데?”“그…… 안왕부에 예쁘장하게 생긴 안왕의 뜻을 받드는 여인 하나가 있는데, 그 여인이 우리에게 소란을 피우라고 지시했습니다!”“예쁘장하게 생겼다면…… 설마 그 여인의 이름이 아라가 맞느냐?”“예! 그런 것 같습니다.”서일은 안왕부에서 안왕의 뜻을 받드는 여인이라면 아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서일은 우문호와 원경릉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그 말을 듣고 우문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일, 아라가 그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조사해 보아라.”“예!”“참, 아라와 안왕의 애매모호한 관계가 지금 3년 정도 되었지? 근데 이 사실을 넷째 형수는 알고 있어? 형수는 알고 있는데도 아무 말이 없느냐?”“안왕비께서 워낙 싸움을 싫어하시고, 온화한 성격이라…… 잘 모르겠습니다.”원경릉은 황실에서 만났던 조용하고 차분하며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던 안왕비 모습을 떠올렸다.우문호는 지긋이 원경릉을 보았다.“오늘 일 없으면 조모를 모시고 기왕비에게 가 봐.”기왕비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기에 친왕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나 내정 소식이 빨랐다. 우문호는 기왕비가 어쩌면 각 왕부마다 심복을 심어놨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기왕비의 심복이 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 안 그래도 할머니랑 도성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겸사겸사 다녀와야겠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우문호는 바삐 왕부를 나갔고 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를 데리고 기왕부로 갔다.기왕이 옥에 갔다 온 후로 기왕부는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옥에 들어가기 전
기왕비는 왕부 안에 있던 시녀들을 모두 내보낸 후, 원경릉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오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별일은 아니고요. 노부인께서 너무 초왕부에만 계신 것 같아서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는 겁니다.”원경릉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이 번쩍 떠졌다.“차가 정말 향긋하네요. 어디서 사신 겁니까?”“정원에 꽃을 따서 직접 말린 겁니다. 괜찮으면 이따가 돌아갈 때 포장해 드리지요.”“예, 고맙습니다.”“태자비, 어제 계란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괜찮습니까?”“그 소식이 여기까지 퍼졌습니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딱 맞네요.”기왕비는 미소를 지으며 “초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제가 모를 리가 없지요.” 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기왕비의 두 눈을 응시했다.“그 뜻은 어느 왕부든 기왕비의 소식통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기왕비는 입을 가리고 하하하 크게 소리 내어 웃더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원경릉을 지긋이 바라보았다.“기왕비, 우리 왕부에 소식통이 있든 없든 그게 누군지 묻지 않는 대신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 주시지요. 안왕부에 아라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무엇인지, 안왕과 아라는 무슨 관계인지 알고 싶네요.”“전에 태자비에게 말했을 땐 귀 기울여 듣지도 않더니, 지금 와서 왜 그게 궁금합니까?”“제가 언제요? 기왕비도 아시다시피 본 태자비가 얼마나 바빴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습니까? 기왕이 기왕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도 얘기할 겨를이 없었잖아요.” 기왕비는 정원에서 정성스럽게 원 할머니를 모시는 기왕을 바라보았다.“저 사람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나한테 잘 해야 한다는 걸 알았겠지요. 하지만 저 사람은 믿을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은 자신이 준 게 있으면 그걸 꼭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기왕은 아직도 태자 자리를 포기하지 않은 겁니까?”기왕비는 기왕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포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원경릉은 안왕비의 임신 소식에 깜짝 놀랐다.“안왕은 군영에 있잖아요? 근데 임신을 어떻게……”“순진한 척하는 겁니까 아님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안왕은 군영에 있지만 가끔 안왕부로 옵니다.”원경릉은 안왕비가 순진하고 연약한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아라가 정말로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뱃속에 애를 떨어뜨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안왕은 쓰레기지만, 안왕비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기왕비는 원경릉을 보며 “왜요? 안왕비가 걱정이라도 됩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안왕비가 걱정됐지만, 안왕부의 일은 자신의 능력 밖이기에 기왕비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도 화가 나는데, 삼둥이의 어머니인 태자비는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원경릉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기왕비,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처음엔 나 자신도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했지요. 내가 진후궁(秦側妃)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아이는 이 세상에 나와선 안 됐고, 설사 태어났더라도 매일이 고통이었을 겁니다. 우문군(宇文君) 성격으로는 그 아이를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거니까요.”“예, 맞습니다.”“아무튼 안왕부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도 해결이 안 될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이 일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안왕부 일에 신경을 쓸 여력도 시간도 없으니까요.”기왕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원에서 원 할머니를 모시고 여러 식물들을 소개하는 기왕을 보았다.*잠시 후, 원 할머니가 왕부 안으로 들어왔다.“기왕 전하께서 정원에 있는 꽃들을 직접 심은 거라고 하시던데, 정말 대단하십니다.”기왕은 원 할머니를 부축하며 겸손하게 말했다.“노부인, 과찬이십니다. 내세울 게 없으니 정원이라도 잘 돌봐야죠. 그나저나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데 노부인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오히려 본왕이 더 고맙습니다. 노부인, 앞으로 기왕부에 자주 오셔야 합니다.”“예, 늙은이
원경릉과 원 할머니가 기왕부를 나오자 기왕비가 직접 그들을 문밖으로 배웅하였다. 원경릉은 기왕비를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잡아끌어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기왕비, 정신 똑바로 차려요. 기왕이 지금 막다른 길에 몰려서 잠시 기왕비에게 잘하는 것이니, 그를 너무 믿지 마세요.”기왕비는 원경릉의 반응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왜요? 내가 기왕에게 기회라도 줄 거라고 생각합니까?”“방금 기왕이 기왕비에게 차를 따라줬을 때, 기왕비 눈에 비치는 행복감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보아하니 제가 연기에 소질이 있나 봅니다. 다음 생에는 마당꾼으로 태어나야겠어요.”기왕비의 호탕한 대답을 들은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돌아오는 길에도 원 할머니는 원경릉 귀에 못이 박히게 기왕을 찬양했다. 원경릉은 기왕이 어떤 사람인지 할머니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랜만에 기분 좋아 보이는 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기왕의 음침하고 더러운 과거를 마주할 필요가 없잖아.’*마차를 타고 왕부로 돌아오는 내내 안왕비를 생각하면 원경릉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안왕비는 심지어 위왕비만도 못하다. 적어도 위왕비는 현실을 알고 그에 맞서 싸워보기라도 했다. 하지만 안왕비는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장미꽃이었다. 누군가가 비닐을 벗기고 비바람을 맞히면 바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질 수밖에 없었다.‘아라…… 너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다음 날, 초왕부 앞에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나 소란이 잠시 잠잠해졌다고 해서 이 일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원경릉을 잘 알았다.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북당에는 감기 환자가 많이 생겼고, 혜민서(惠民署)에 환자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환자가 많아지자 일손이 부족한 것은 둘째고, 장사꾼들은 이때다 싶어 약 값을 올려 백성들의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백성들은 이 분노를 모두 태자비에게 전가시켰다. 백성의 원성이 사방에서 일어나자 명
위태부가 원경릉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문둥산에 올라가자 궁 앞에서 황제에게 간곡히 태자비를 엄하게 다스리라고 부탁하였으나, 황제의 답이 없자 그는 궁 안에 반룡원주(蟠龍圓柱)에 머리를 박아 황제의 관심을 끌었다.위태부는 죽지 않았지만 황제의 스승이 머리를 박는다는 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위태부는 북당에서 덕망이 높았고, 조정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으므로 이 일로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태자비를 성토하고 있는 데다가 태자가 수사한 사건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자 형부에서도 태자를 질책하였다. 심지어 항간에서는 태자가 무능하여 북당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했다.게다가 원경릉이 짓고 있던 의학원도 백성들에 의해 부서지고 불까지 났다. 막대한 은화를 쓴 세운 기둥도 모두 타버리자 원경릉은 허탈함이 밀려왔다.백성들은 원경릉의 뜻도 모른 채 불타버린 의학원 자리를 보며 태자비가 별채를 지어 자신의 향락을 도모하려 한다고 했다.이때가 기회라는 듯 백성들은 회왕이 덕과 인심이 후하여 가장 좋은 태자감이라는 소리를 했다.문둥산에 가족을 두고 있는 백성들은 원경릉이 문둥산에 올라 병을 치료하는 것을 찬성하며 이에 대하여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마저도 원경릉이 문둥산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문둥병 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과 폭력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원제는 우문호를 책망하며 원경릉을 왕부에 감금하고 외출하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했다.우문호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부황, 그렇게는 못 합니다.”우문호의 말을 듣고 명원제가 크게 분노했다.“한 가지만 제대로 하면 백성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태자비가 문둥산에 오르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멈추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모든 사람이 반대를 한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자기 행동이 가치 있는 것인지, 지킬 만한 것인지 너도 태자비도 반성해야 해.”“부황, 이 혼란에는 배후가 있습니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