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안왕비의 임신 소식에 깜짝 놀랐다.“안왕은 군영에 있잖아요? 근데 임신을 어떻게……”“순진한 척하는 겁니까 아님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안왕은 군영에 있지만 가끔 안왕부로 옵니다.”원경릉은 안왕비가 순진하고 연약한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아라가 정말로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뱃속에 애를 떨어뜨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안왕은 쓰레기지만, 안왕비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기왕비는 원경릉을 보며 “왜요? 안왕비가 걱정이라도 됩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안왕비가 걱정됐지만, 안왕부의 일은 자신의 능력 밖이기에 기왕비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도 화가 나는데, 삼둥이의 어머니인 태자비는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원경릉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기왕비,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처음엔 나 자신도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했지요. 내가 진후궁(秦側妃)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아이는 이 세상에 나와선 안 됐고, 설사 태어났더라도 매일이 고통이었을 겁니다. 우문군(宇文君) 성격으로는 그 아이를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거니까요.”“예, 맞습니다.”“아무튼 안왕부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도 해결이 안 될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이 일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안왕부 일에 신경을 쓸 여력도 시간도 없으니까요.”기왕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원에서 원 할머니를 모시고 여러 식물들을 소개하는 기왕을 보았다.*잠시 후, 원 할머니가 왕부 안으로 들어왔다.“기왕 전하께서 정원에 있는 꽃들을 직접 심은 거라고 하시던데, 정말 대단하십니다.”기왕은 원 할머니를 부축하며 겸손하게 말했다.“노부인, 과찬이십니다. 내세울 게 없으니 정원이라도 잘 돌봐야죠. 그나저나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데 노부인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오히려 본왕이 더 고맙습니다. 노부인, 앞으로 기왕부에 자주 오셔야 합니다.”“예, 늙은이
원경릉과 원 할머니가 기왕부를 나오자 기왕비가 직접 그들을 문밖으로 배웅하였다. 원경릉은 기왕비를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를 한쪽으로 잡아끌어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기왕비, 정신 똑바로 차려요. 기왕이 지금 막다른 길에 몰려서 잠시 기왕비에게 잘하는 것이니, 그를 너무 믿지 마세요.”기왕비는 원경릉의 반응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왜요? 내가 기왕에게 기회라도 줄 거라고 생각합니까?”“방금 기왕이 기왕비에게 차를 따라줬을 때, 기왕비 눈에 비치는 행복감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보아하니 제가 연기에 소질이 있나 봅니다. 다음 생에는 마당꾼으로 태어나야겠어요.”기왕비의 호탕한 대답을 들은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돌아오는 길에도 원 할머니는 원경릉 귀에 못이 박히게 기왕을 찬양했다. 원경릉은 기왕이 어떤 사람인지 할머니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랜만에 기분 좋아 보이는 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기왕의 음침하고 더러운 과거를 마주할 필요가 없잖아.’*마차를 타고 왕부로 돌아오는 내내 안왕비를 생각하면 원경릉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안왕비는 심지어 위왕비만도 못하다. 적어도 위왕비는 현실을 알고 그에 맞서 싸워보기라도 했다. 하지만 안왕비는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장미꽃이었다. 누군가가 비닐을 벗기고 비바람을 맞히면 바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질 수밖에 없었다.‘아라…… 너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다음 날, 초왕부 앞에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나 소란이 잠시 잠잠해졌다고 해서 이 일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원경릉을 잘 알았다.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북당에는 감기 환자가 많이 생겼고, 혜민서(惠民署)에 환자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환자가 많아지자 일손이 부족한 것은 둘째고, 장사꾼들은 이때다 싶어 약 값을 올려 백성들의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백성들은 이 분노를 모두 태자비에게 전가시켰다. 백성의 원성이 사방에서 일어나자 명
위태부가 원경릉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문둥산에 올라가자 궁 앞에서 황제에게 간곡히 태자비를 엄하게 다스리라고 부탁하였으나, 황제의 답이 없자 그는 궁 안에 반룡원주(蟠龍圓柱)에 머리를 박아 황제의 관심을 끌었다.위태부는 죽지 않았지만 황제의 스승이 머리를 박는다는 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위태부는 북당에서 덕망이 높았고, 조정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으므로 이 일로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태자비를 성토하고 있는 데다가 태자가 수사한 사건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자 형부에서도 태자를 질책하였다. 심지어 항간에서는 태자가 무능하여 북당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했다.게다가 원경릉이 짓고 있던 의학원도 백성들에 의해 부서지고 불까지 났다. 막대한 은화를 쓴 세운 기둥도 모두 타버리자 원경릉은 허탈함이 밀려왔다.백성들은 원경릉의 뜻도 모른 채 불타버린 의학원 자리를 보며 태자비가 별채를 지어 자신의 향락을 도모하려 한다고 했다.이때가 기회라는 듯 백성들은 회왕이 덕과 인심이 후하여 가장 좋은 태자감이라는 소리를 했다.문둥산에 가족을 두고 있는 백성들은 원경릉이 문둥산에 올라 병을 치료하는 것을 찬성하며 이에 대하여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마저도 원경릉이 문둥산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문둥병 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과 폭력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원제는 우문호를 책망하며 원경릉을 왕부에 감금하고 외출하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했다.우문호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부황, 그렇게는 못 합니다.”우문호의 말을 듣고 명원제가 크게 분노했다.“한 가지만 제대로 하면 백성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태자비가 문둥산에 오르지 않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멈추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모든 사람이 반대를 한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야. 자기 행동이 가치 있는 것인지, 지킬 만한 것인지 너도 태자비도 반성해야 해.”“부황, 이 혼란에는 배후가 있습니
명원제는 우문호의 고집스러움에 몹시 화가 났다.“만일 태자비가 문둥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어찌하겠느냐? 짐이 무슨 낯으로 북당의 백성들을 대하겠는가? 네가 간과한 게 있는데, 너는 백성들의 피와 땀을 먹고 사는 조정의 관료다. 왜 사사건건 백성들을 실망시키는 거야! 게다가 경조부는 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온 신경이 태자비에게 쏠려있어서 그런 것 아냐?”“부황…… 그게 아니라……”“너는 짐을 계속해서 실망시키고 있구나. 경조부에서 세 번이나 쫓겨났으니, 한 번 더 쫓겨나도 별 타격은 없겠지?”명원제의 말을 들은 우문호는 마음이 급해졌다.“부황, 최근 일어난 사건을 소자 최선을 다해 조사하고 있습니다만……”명원제는 손을 뻗어 그의 말을 막았다.“더 말할 필요 없다. 경조부윤 자리가 부담이 되면, 넷째에게 맡기면 된다.”“예?”우문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부황, 이 경조부윤 자리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원하니 너를 쫓아내지 않겠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넌 앞으로 태자비가 문둥산을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명원제는 온화한 어조로 말하였다.“부황, 보름이 길면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정말 소자와 태자비를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믿어주십시오. 지금 백성들이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우문호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명원제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백성들이 몰라서 그렇다고? 다섯째, 넌 백성 위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천만에 결코 그렇지 않아. 백성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지금 너와 태자비의 잘못을 백성들의 무지로 치부하는 것은 네 생각이 잘못됐어.”“……”“북당의 태자가 되었으면 모든 언행에 더 신중해야 하고,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하기 전에 민심을 살펴야 한다. 그게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길이다. 지금 네가 문둥산에 있는 수백 명의 병자들을 구하겠다고 북당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소탐대실이다.”“부황께서 하시는 말씀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북당 백성들은 문둥병이라는 단어조차 쓰기 꺼
원경릉 문둥산 금지?원경릉도 우문호에게, “자신 있어, 하지만 자기가 이런 압박을 버틸 수 있겠어?”우문호가 소탈하게 웃으며, “당연히 가능하지, 당신의 허락 한마디가 필요했을 뿐이야,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방법이 있어.”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엔 여전히 일말의 근심이 어려 있다.우문호가 나가서 사람을 시켜 냉정언을 재상의 집으로 오라 하고 자신도 바로 갔다.우문호가 가고 할머니는 원경릉에게, “사위가 괜찮구나.”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며, “할머니, 일이 이렇게 크게 소문이 났는데 할머니 생각에 제가 여전히 가도 될까요?”원경릉은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 궁지에 몰린 상태라 약간 동요되지 않을 수 없었다.만약 경성이 계속 이렇게 어지럽고, 한달만 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이고, 일련의 사회 연쇄반응을 일어날 수도 있다.할머니가 생각해 보더니, “네 생각은 어떠니?”원경릉은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고 낙담하며, “전 포기하고 싶지 않죠, 하지만 대가가 너무 커요. 만약 아바마마께서 하신 말씀이 맞아서 모든 사람이 네 반대편에 서 있을 때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맞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게 맞을지 도요?”할머니는 부드럽게, “요 바보 녀석,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는 법이야. 네가 당초에 산에 가는 걸 고집한 건 수백명의 생명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질병에 집어 삼켜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네 초심은 옳았다. 그럼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났다 치더라도 초심을 의심해서는 안돼. 지금 모든 사람이 네 반대편에 서있다고 했는데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구나.”원경릉 본인도 멍하니, “그럼 누가 저와 태자를 지지한다고요?”할머니가 원경릉의 손을 당기며 작은 소리로, “아니, 너와 사위는 다 관건이 아니야, 지금 반대하는 목소리는 네 반대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산 위에 있는 수백명의 병자들의 반대쪽에 서 있는 거지. 그리고 네가 생각해야 하는 건 너와 사위가 과연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선택하는 거야
안왕 대응책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지혜로운 미소로, “응, 가볍게 포기한다는 말 하는 게 아니지. 하지만 우리도 굳이 딱딱하게 마주할 필요는 없어, 내일 임 선생을 만나러 널 데리고 나가마. 임 선생은 매화장(梅花莊)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을 거야, 우리가 먼저 가서 한달 보름간 묵고 있으라고 초대했단다.”원경릉이 바로 알아 듣고 기쁘게, “할머니는 역시 스마트하시다니까.”할머니가 호호 웃으며, “할미가 스마트한 게 아니라 할미가 겪은 세월이 긴 거지, 이런 일을 대처한 경험이 풍부하니까, 천하에 많은 일은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지만 우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야지.”주재상의 집.세 사람이 초보적인 소통만 한 후 모두 침묵에 빠졌다.냉정언이 먼저 입을 열어, “안왕의 야심을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만약 폐하께서 일시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안왕을 경성으로 불러들여 경조부 부윤을 맡기신다면 큰 화를 자초하시게 될 겁니다.”냉정언은 주재상을 보고,. “재상 생각엔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 하실 것 같으십니까?”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실 수 있으시지요!”우문호도 무겁게 입을 떼며, “저도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바마마께서 넷째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정말 원치 않으신다고 할 수만은 없지요. 아바마마께서 자신이 넷째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방법으로 절 압박하거나 징벌하려고 하시는 겁니다.”주재상이, “태자 전하 절반만 맞습니다. 폐하께서는 확실히 자신이 안왕 전하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태자 전하를 징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하께서 고집스럽고 완고하시다고 생각하셔서 입니다. 고집스런 태자가 북당의 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냉정언이 놀라서, “재상의 뜻은 폐하께서 정말 폐태자를 생각하신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재상이 의미심장하게, “적어도, 폐하께서는 태자를 상호 제어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맞습니다.”냉정언이 약하게, “그렇군요, 지금 많은 사람
전화위복우문호가 초왕부로 돌아온 뒤 원경릉이 할머니의 제안을 애기하자, 우문호가 찬성했으나 그러면 임 선생님께 거짓말을 도와 달라고 부탁드려야 했다.원경릉이, “그건 가능해, 미색한테 자세한 걸 도와 달라고 하면 돼.”우문호가 원경릉을 앞으로 와락 앉으며 피곤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파와, “단지 산에서 한달을 지내야 해, 위에선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도 부실하고 당신이 고생할 거야.”원경릉이 방실방실 웃으며, “고생은 무슨? 마침 산 위에서 꾸준히 경공을 수련할 수 있는 걸, 어쩌면 산을 내려올 때 즈음엔 내가 무림 고수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우문호도 따라 웃었으나 이 웃음으로도 석연치 않은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원경릉을 품에 꼭 안고, “그래, 기다릴 게.”다음날 숙친왕이 아침 조례 때 입궁해 귀국 인사를 하자 만조백관들이 당연히 아쉬워했다.명원제도 애석해 하며 숙친왕에게 며칠 더 묵으라고 했다.숙친왕은 군대 일이 바쁨을 핑계로 거절하고 대신 작은 청을 하나 올렸다.숙친왕이 작은 청을 올리겠다고 하자 명원제와 조정 관리들의 경계와 이목을 끌었는데 명원제는 안색도 변하지 않고, “왕야는 말씀하시게.”숙친왕이 예를 취하더니, “폐하, 이번에 소신이 회왕 전하와 미색의 혼례에 참석하는데 선배 한 분이 같이 왔습니다. 지금 선배는 매화장에서 안풍 친왕비 마마와 같이 계시는데 만약 한 두 달 머무실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어제 제가 작별 인사를 드리니 선배가 태자비 마마께서 매화장으로 오셔서 당분간 같이 계실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숙친왕의 이 제안은 비록 다소 예의를 벗어난 것으로 숙친왕의 선배가 황실 사람이란 법은 없으며 숙친왕의 외가 쪽 어른일 수도 있다. 어떤 신분이든지 간에 북당의 태자비에게 매화장으로 와서 같이 있어 달라는 건 예의를 한참 벗어난 것이 도가 지나쳤다.하지만 만조 백관들은 의외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것이 태자비가 매화장으로 가면 문둥산에 가지 않을 것이니 그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이다.명원제도 동의했으나
매화장 가는 길대흥국 성안 태황태후 마마의 초청에 따라 원경릉은 일시에 당장 죽여 마땅한 공공의 적에서 인기가 드높은 귀하신 존재로 탈바꿈했다.성지가 초왕부에 내려지자 원경릉은 바로 짐을 꾸려 만아와 사식이를 데리고 출발했고,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따라가시니 마차 두대로 나눠서 서일과 탕양이 각각 모시고 갔다.매화장은 경성의 서북쪽 산 위에 있는데 지금 초겨울에 막 접어들어서 산 위엔 이미 하얀 서리가 내렸고 날씨도 추웠다.마차가 산허리쯤 도착했을 때 산으로 올라가는 큰 길이 없어지고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이번 외출은 적어도 보름은 보낼 요량으로 가져온 물건이 많고 할머니는 산길을 걸을 수 없어 서일이 업고 산을 올랐다. 짐 부담은 만아와 탕양, 사식이에게 떨어졌고 원경릉이 옮기는 걸 돕겠다고 했으나 죽어도 안된다며 본인 스스로나 숨 안 차고 가면 다행이라고 했다.그들도 원경릉을 무시했는데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닌지 꽤 되었다.비록 무공은 아직 여물지 못했지만 경공은 수련을 좀 한 편이다. 경공이 좋은 게 다리에 부담이 덜 가고 적어도 걸음이 경쾌해 져서 힘쓸 때를 알게 된다. 이렇게 반시진(1시간)을 걸었는데도 원경릉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탕양까지 원경릉에게 크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산을 오르는 동안 경치가 좋았는데 이곳이 매화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길이 온통 매화나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온통 꽃망울로 뒤덮여 어떤 건 연분홍색으로 피어나 매화향이 확 끼쳐오니 마음이 탁 트이면서 기쁨이 밀려왔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임 선생님은 만나봤지만 안풍 친왕비는 만나 뵌 적이 없고, 말씀만 여러 번 들었는데 줄곧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꿈이 이뤄질 줄 몰랐다.기대감에 발걸음이 더욱 빨라져 사식이조차 원경릉을 따라잡을 수 없어 뒤에서, “원 언니, 너무 급하게 가지 마세요, 길이 미끄러워요.”원경릉이 멈춰서 사식이와 만아를 기다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어진 산봉우리가 경성의 번잡함을 병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