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는 우문호의 고집스러움에 몹시 화가 났다.“만일 태자비가 문둥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어찌하겠느냐? 짐이 무슨 낯으로 북당의 백성들을 대하겠는가? 네가 간과한 게 있는데, 너는 백성들의 피와 땀을 먹고 사는 조정의 관료다. 왜 사사건건 백성들을 실망시키는 거야! 게다가 경조부는 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온 신경이 태자비에게 쏠려있어서 그런 것 아냐?”“부황…… 그게 아니라……”“너는 짐을 계속해서 실망시키고 있구나. 경조부에서 세 번이나 쫓겨났으니, 한 번 더 쫓겨나도 별 타격은 없겠지?”명원제의 말을 들은 우문호는 마음이 급해졌다.“부황, 최근 일어난 사건을 소자 최선을 다해 조사하고 있습니다만……”명원제는 손을 뻗어 그의 말을 막았다.“더 말할 필요 없다. 경조부윤 자리가 부담이 되면, 넷째에게 맡기면 된다.”“예?”우문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부황, 이 경조부윤 자리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원하니 너를 쫓아내지 않겠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넌 앞으로 태자비가 문둥산을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명원제는 온화한 어조로 말하였다.“부황, 보름이 길면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정말 소자와 태자비를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믿어주십시오. 지금 백성들이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우문호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명원제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백성들이 몰라서 그렇다고? 다섯째, 넌 백성 위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천만에 결코 그렇지 않아. 백성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지금 너와 태자비의 잘못을 백성들의 무지로 치부하는 것은 네 생각이 잘못됐어.”“……”“북당의 태자가 되었으면 모든 언행에 더 신중해야 하고,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하기 전에 민심을 살펴야 한다. 그게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길이다. 지금 네가 문둥산에 있는 수백 명의 병자들을 구하겠다고 북당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소탐대실이다.”“부황께서 하시는 말씀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북당 백성들은 문둥병이라는 단어조차 쓰기 꺼
원경릉 문둥산 금지?원경릉도 우문호에게, “자신 있어, 하지만 자기가 이런 압박을 버틸 수 있겠어?”우문호가 소탈하게 웃으며, “당연히 가능하지, 당신의 허락 한마디가 필요했을 뿐이야,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방법이 있어.”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엔 여전히 일말의 근심이 어려 있다.우문호가 나가서 사람을 시켜 냉정언을 재상의 집으로 오라 하고 자신도 바로 갔다.우문호가 가고 할머니는 원경릉에게, “사위가 괜찮구나.”원경릉이 미간을 찌푸리며, “할머니, 일이 이렇게 크게 소문이 났는데 할머니 생각에 제가 여전히 가도 될까요?”원경릉은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 궁지에 몰린 상태라 약간 동요되지 않을 수 없었다.만약 경성이 계속 이렇게 어지럽고, 한달만 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이고, 일련의 사회 연쇄반응을 일어날 수도 있다.할머니가 생각해 보더니, “네 생각은 어떠니?”원경릉은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고 낙담하며, “전 포기하고 싶지 않죠, 하지만 대가가 너무 커요. 만약 아바마마께서 하신 말씀이 맞아서 모든 사람이 네 반대편에 서 있을 때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맞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게 맞을지 도요?”할머니는 부드럽게, “요 바보 녀석,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는 법이야. 네가 당초에 산에 가는 걸 고집한 건 수백명의 생명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질병에 집어 삼켜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네 초심은 옳았다. 그럼 지금 어떤 문제를 만났다 치더라도 초심을 의심해서는 안돼. 지금 모든 사람이 네 반대편에 서있다고 했는데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구나.”원경릉 본인도 멍하니, “그럼 누가 저와 태자를 지지한다고요?”할머니가 원경릉의 손을 당기며 작은 소리로, “아니, 너와 사위는 다 관건이 아니야, 지금 반대하는 목소리는 네 반대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산 위에 있는 수백명의 병자들의 반대쪽에 서 있는 거지. 그리고 네가 생각해야 하는 건 너와 사위가 과연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선택하는 거야
안왕 대응책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지혜로운 미소로, “응, 가볍게 포기한다는 말 하는 게 아니지. 하지만 우리도 굳이 딱딱하게 마주할 필요는 없어, 내일 임 선생을 만나러 널 데리고 나가마. 임 선생은 매화장(梅花莊)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을 거야, 우리가 먼저 가서 한달 보름간 묵고 있으라고 초대했단다.”원경릉이 바로 알아 듣고 기쁘게, “할머니는 역시 스마트하시다니까.”할머니가 호호 웃으며, “할미가 스마트한 게 아니라 할미가 겪은 세월이 긴 거지, 이런 일을 대처한 경험이 풍부하니까, 천하에 많은 일은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지만 우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야지.”주재상의 집.세 사람이 초보적인 소통만 한 후 모두 침묵에 빠졌다.냉정언이 먼저 입을 열어, “안왕의 야심을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만약 폐하께서 일시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안왕을 경성으로 불러들여 경조부 부윤을 맡기신다면 큰 화를 자초하시게 될 겁니다.”냉정언은 주재상을 보고,. “재상 생각엔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 하실 것 같으십니까?”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실 수 있으시지요!”우문호도 무겁게 입을 떼며, “저도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바마마께서 넷째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정말 원치 않으신다고 할 수만은 없지요. 아바마마께서 자신이 넷째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방법으로 절 압박하거나 징벌하려고 하시는 겁니다.”주재상이, “태자 전하 절반만 맞습니다. 폐하께서는 확실히 자신이 안왕 전하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태자 전하를 징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전하께서 고집스럽고 완고하시다고 생각하셔서 입니다. 고집스런 태자가 북당의 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냉정언이 놀라서, “재상의 뜻은 폐하께서 정말 폐태자를 생각하신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재상이 의미심장하게, “적어도, 폐하께서는 태자를 상호 제어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맞습니다.”냉정언이 약하게, “그렇군요, 지금 많은 사람
전화위복우문호가 초왕부로 돌아온 뒤 원경릉이 할머니의 제안을 애기하자, 우문호가 찬성했으나 그러면 임 선생님께 거짓말을 도와 달라고 부탁드려야 했다.원경릉이, “그건 가능해, 미색한테 자세한 걸 도와 달라고 하면 돼.”우문호가 원경릉을 앞으로 와락 앉으며 피곤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파와, “단지 산에서 한달을 지내야 해, 위에선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도 부실하고 당신이 고생할 거야.”원경릉이 방실방실 웃으며, “고생은 무슨? 마침 산 위에서 꾸준히 경공을 수련할 수 있는 걸, 어쩌면 산을 내려올 때 즈음엔 내가 무림 고수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우문호도 따라 웃었으나 이 웃음으로도 석연치 않은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원경릉을 품에 꼭 안고, “그래, 기다릴 게.”다음날 숙친왕이 아침 조례 때 입궁해 귀국 인사를 하자 만조백관들이 당연히 아쉬워했다.명원제도 애석해 하며 숙친왕에게 며칠 더 묵으라고 했다.숙친왕은 군대 일이 바쁨을 핑계로 거절하고 대신 작은 청을 하나 올렸다.숙친왕이 작은 청을 올리겠다고 하자 명원제와 조정 관리들의 경계와 이목을 끌었는데 명원제는 안색도 변하지 않고, “왕야는 말씀하시게.”숙친왕이 예를 취하더니, “폐하, 이번에 소신이 회왕 전하와 미색의 혼례에 참석하는데 선배 한 분이 같이 왔습니다. 지금 선배는 매화장에서 안풍 친왕비 마마와 같이 계시는데 만약 한 두 달 머무실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어제 제가 작별 인사를 드리니 선배가 태자비 마마께서 매화장으로 오셔서 당분간 같이 계실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숙친왕의 이 제안은 비록 다소 예의를 벗어난 것으로 숙친왕의 선배가 황실 사람이란 법은 없으며 숙친왕의 외가 쪽 어른일 수도 있다. 어떤 신분이든지 간에 북당의 태자비에게 매화장으로 와서 같이 있어 달라는 건 예의를 한참 벗어난 것이 도가 지나쳤다.하지만 만조 백관들은 의외로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것이 태자비가 매화장으로 가면 문둥산에 가지 않을 것이니 그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이다.명원제도 동의했으나
매화장 가는 길대흥국 성안 태황태후 마마의 초청에 따라 원경릉은 일시에 당장 죽여 마땅한 공공의 적에서 인기가 드높은 귀하신 존재로 탈바꿈했다.성지가 초왕부에 내려지자 원경릉은 바로 짐을 꾸려 만아와 사식이를 데리고 출발했고,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따라가시니 마차 두대로 나눠서 서일과 탕양이 각각 모시고 갔다.매화장은 경성의 서북쪽 산 위에 있는데 지금 초겨울에 막 접어들어서 산 위엔 이미 하얀 서리가 내렸고 날씨도 추웠다.마차가 산허리쯤 도착했을 때 산으로 올라가는 큰 길이 없어지고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이번 외출은 적어도 보름은 보낼 요량으로 가져온 물건이 많고 할머니는 산길을 걸을 수 없어 서일이 업고 산을 올랐다. 짐 부담은 만아와 탕양, 사식이에게 떨어졌고 원경릉이 옮기는 걸 돕겠다고 했으나 죽어도 안된다며 본인 스스로나 숨 안 차고 가면 다행이라고 했다.그들도 원경릉을 무시했는데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닌지 꽤 되었다.비록 무공은 아직 여물지 못했지만 경공은 수련을 좀 한 편이다. 경공이 좋은 게 다리에 부담이 덜 가고 적어도 걸음이 경쾌해 져서 힘쓸 때를 알게 된다. 이렇게 반시진(1시간)을 걸었는데도 원경릉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탕양까지 원경릉에게 크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산을 오르는 동안 경치가 좋았는데 이곳이 매화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길이 온통 매화나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온통 꽃망울로 뒤덮여 어떤 건 연분홍색으로 피어나 매화향이 확 끼쳐오니 마음이 탁 트이면서 기쁨이 밀려왔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임 선생님은 만나봤지만 안풍 친왕비는 만나 뵌 적이 없고, 말씀만 여러 번 들었는데 줄곧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꿈이 이뤄질 줄 몰랐다.기대감에 발걸음이 더욱 빨라져 사식이조차 원경릉을 따라잡을 수 없어 뒤에서, “원 언니, 너무 급하게 가지 마세요, 길이 미끄러워요.”원경릉이 멈춰서 사식이와 만아를 기다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어진 산봉우리가 경성의 번잡함을 병풍처럼
매화장“여자분이요?” 서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듯 웃으며, “저랑 사식이는 좋은 친구죠.”“그럼 둘은 언제 혼인하나요?” 할머니가 물었다.서일이 순간 어쩔 줄 몰라 하며 즉시 이를 드러내고 헤헤 웃으며, “우리가 혼인을? 저랑 사식이가 혼인할 리 없죠, 저는 반하지 않았거든요.”할머니가 서일의 어깨를 치며, “여자분 괜찮아요, 진주 같은 아가씨예요.”“진주요? 돼지 목에 진주겠죠.” 서일이 ‘크크’ 웃으며 흘끔 사식이를 보니 순간 정이 뚝 떨어지는 게 여성스러움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우악스러운 것이 ‘마음에 안 들어. 완전 안 들어.’원경릉이 할머니를 부축해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몸을 풀어드리더니, “서일과 사식이는 한 쌍이 아니예요, 할머니는 중매하지 마세요.”“아니야? 둘을 보고 있으면 꽤 잘 어울리는데.” 할머니가 손을 휘휘 젓더니 천천히 머리를 돌리며 목 운동을 했다.서일 집안이 그렇게 떨어지는 집안은 아니지만 사식이와 비하면 역시 상당히 기우는 게 사실이다. 사식이는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을 거고, 원씨 집안도 신경 쓸 리 없지만 서일은 건성건성 한 척 하지만 사실 그 일에 상당히 민감하다.서일이 사식이를 싫다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사식이와 이루어질 수 없는 걸 알아 서다. 서일이 보기에 자신과 사식이는 집안의 차이가 너무 나니, 아예 미리부터 싫다고 해서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심산이다.잠시 쉬고 다시 출발했다.반 시진(1시간) 남짓 걸어 매화장 입구에 도착했다.매화장은 넓은 부지를 점유하고 있었는데 장원(莊園) 문 앞에는 수많은 복숭아나무,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고 문지기는 눈 늑대로 원경릉은 눈 늑대가 익숙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두 마리 눈 늑대는 전신이 연 그레이로 약간 나이가 든 것을 알 수 있었고 눈은 갈색이고 눈빛이 상당히 예리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는 듯 원경릉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눈 늑대들이 먼저 문을 밀었다.양쪽으로 된 문은 육중해서 열 때 ‘끼익’하는 소리가
늑대와 안풍 친왕비사식이가 갑자기 매화나무가 빽빽한 곳을 가리키며, “어? 저쪽에 녹매(綠梅)아녜요? 꽃이 피었나?”원경릉이 사식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멀리 숲 속에 ‘퍼틋퍼틋’ 녹색이 보이긴 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인지 알아볼 수가 없고, 다만 원경릉이 보기엔 매화 같지는 않았다.녹매는 이렇게 녹색이지 않기 때문이다.“매화가 아니라 저건 눈입니다.” 그 여자가 미소를 머금고, “저것들은 매화 숲을 지키고 있는 늑대 호위들로 겁내실 필요 없습니다. 저쪽으로 안가시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거든요.”“파수 늑대요?” 사식이라 놀라서 넋이 나갔고, 부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세상에, 너무 근사해요, 늑대들을 부려서 파수를 보도록 가르치다니, 이걸 전부 안풍 친왕비 마마께서 하신 거예요?”“예, 왕비 마마께서 늑대를 좋아하세요!” 여자는 원경릉 등을 데리고 계속 앞으로 갔다.서일도 심하게 놀라서 걸으면서 여기저기 돌아보느라 실수로 사식이 몸에 부딪혔는데 사식이도 그쪽을 보고 있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갑자기 딱 부딪히니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무의식적으로 소리치길, “서일, 눈이 안 보여요?”“저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닙니다.” 서일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손을 뻗어 사식이를 끌어당겼다.이때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자세히 보니 매화 나무 숲에서 10여 마리의 늑대가 튀어나와 맹렬하고 포악하게 사식이와 서일에게 달려들었다.우두머리 늑대는 귀에 노란 끈을 묶어서 달려들 때 귀가 쫑긋하며 노란 끈이 펄럭이는 게 만약 어금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지 않았으면 귀여워서 ‘심쿵’하겠다.십여 마리 늑대가 사식이 앞으로 달려왔다. 늑대의 몸통에선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코를 찌르는데다 희번덕거리는 늑대의 이빨이 마치 당장이라도 사식이를 덮쳐 갈가리 찢어발길 것 같았다. 사식이가 어디서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나봤을까, 놀라서 모골이 송연해지고 전신이 덜덜 떨렸다.서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식이의 앞을 막아 서
안풍 친왕비의 등장서일은 늑대 무리가 물러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심장이 겨우 제자리를 찾아갔고, 손을 뻗어 사식이를 일으켜 둘이 서로 기대서 안으로 들어갔다.본채 안으로 들어가자 가구는 전부 평범한 것들로 탁자, 의자, 다구, 옷장, 병풍 등 있을 건 다 있고 전부 참신한 것들이나 원경릉은 이 가구들은 전부 갈라진 틈이나 칼 자국이 나 있는 것에 주의했다. 게다가 바로 맞은편의 태사의는 심지어 다리가 한쪽 없었다.그리고 안풍 친왕비는 그 절름발이 태사의에 앉았는데 다리가 3개다 보니 자연스럽게 삐그덕거렸지만 안풍 친왕비는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사람들의 당황스런 눈빛을 보고 노 왕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왕야께서 성정이 불 같으신 지라 이런 사물에 화풀이 하곤 하세요, 그래서 늘 바꾸니 안심하세요. 전부 앉을 수 있습니다.”원경릉이 보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의자를 골랐는데 그 의자는 다리는 4개 다 있고 한쪽 팔걸이가 없는데 잘린 부분이 깨끗해서 누군가에게 단칼에 베인 것 같았다.원경릉이 손을 뻗어 만져보니 나뭇결이 거친 부분이 없어서 안심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앉혀 드렸다.노 왕비는 사람을 시켜 사식이, 서일 등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데 탕양도 같이 따라갔다. 여인들끼리 얘기를 나누는데 혼자 청일점인 게 불편했을 것이다.임 선생님은 여전히 부드러운 눈빛으로 할머니에게, “사는 데는 좀 익숙하십니까?”임 선생이 원경릉을 보고 감개무량한 듯, “할머니가 여기 오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데 할머니 연세나 몸상태를 생각해서 찬성하지 않았는데 하도 고집을 피우셔서 나도 방법이 없었어, 앞으로 할머니께 효도해야 해.”원경릉이 감격해서, “할머니께 효도할 게요, 임선생님 도와 주셔서 감사해요.”임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할 필요 없어, 인연이 그런 거지.”왕비가 원경릉에게 약간 흐뭇한 눈빛으로, “듣자 하니 문둥산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다 던데, 태자비의 패기와 어진 마음에 탄복했네.”원경릉이 좀 머쓱해서, “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