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친왕은 두 사람이 모든 관문을 통과하자 더 이상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린 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이리 댁에 들어올 수 있었다. 숙친왕은 미색에게 황실 사람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조신하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으며 아무리 화가 나도 남편을 존중하라고 했다. 미색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거렸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잔소리는 귀찮지만, 저 말 뜻은 회왕을 사위로 받아들인다는 말이군.’원경릉은 숙친왕과 미색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이리 댁에 잠시 머물다가 왕부로 돌아왔다. 미색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왕부에 혼자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마차가 초왕부에 도착하자 군중들이 마차를 에워쌌다. “태자비는 물러나라!”“물러나라! 물러나라!”전까지는 잠잠하던 백성들이 다시 나타나 초왕부 대문을 향해 욕을 해댔다.수위와 하인들이 그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몇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그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서일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차를 뒷문으로 몰았다.“태자비께서는 뒷문으로 들어가세요. 일단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나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그냥 내버려 두면 잠잠해질 것을……”“태자비, 저들을 저대로 둬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게 진압하지 않으면 내일 또 올 겁니다!”“오늘 해산시켰다고 해도 내일 오지 않으라는 법은 없네. 저들 중에 분명 나를 암살하려고 온 자객들도 숨어있을 것이야. 백성들은 그들에 의해 선동됐을 거고.”“자객이라니요? 혹시 대흥의 귀빈이 부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태자와 태자비의 명성을 더럽히려는 겁니까?”원경릉은 서일에게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일단 뒷문으로 들어가 보자고. 마차는 근처에 세우고.”원경릉은 이런 광경을 처음 봤을 할머니가 걱정됐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군중 속에 한 사람이 원경릉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태자비가 저기 있다!”“태자가 태자비와 이혼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직도 초왕부에
서일은 고개를 돌리고 원경릉을 보았다.“태자비, 왜 말리시는 겁니까? 다른 건 다 참아도 내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은 초장에 확 휘어잡아야 합니다!”원경릉은 손으로 머리에 붙은 계란 껍데기를 떼내었다. 썩은 계란도 섞여 있어 악취가 어마어마했다.“서일, 일단 진정하고 이 일은 태자가 왕부로 돌아온 후에 처리하는 게 좋겠어. 지금 탕대인이 왕부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그와 상의를 해봐. 난 돌아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네.”만아는 원경릉의 목과 뒤통수가 빨갛게 부어오른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태자비님 계란에 맞으신 곳이 다 부어올랐는데 아프지 않으십니까?”“아픈 건 괜찮은데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오는구나, 빨리 가서 옷을 갈아입고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어. 왕부가 소란스러우니 놀라셨을 거야.”원경릉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봉의각으로 걸어갔다.만아는 원경릉의 뒤를 바짝 따르며 “정말 저 몰상식한 사람들은 싹 다 잡아다가 혼쭐을 내어줘야 합니다! 문둥산에 있는 환자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겁니까? 왜 저렇게 이기적인 겁니까?” 라고 화를 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만아를 보고 온화하게 웃었다.“사람의 마음이란 참 어려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심보인 거지. 사람이 죽든 아프든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가족 중에 누구 하나라도 문둥병에 걸려 문둥산에 있는 백성들은 저렇게 소란을 피우지 않을 거야.”“그렇지만……”“만아야,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이성을 되찾고 더 강해져야 해.”“그래도…… 태자비님께서는 화가 나지 않으십니까?”“당연히 화가 나지! 하지만 화를 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야.”원경릉은 빠른 걸음으로 대청을 지나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할머니가 있었고 원경릉은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살짝 흔들었다.“다녀왔습니다.”“꼴이 그게 무엇이냐……”“아, 이거 새로 연구하는 약이 있어서…… 계란에 단백질이 두피에 좋다길래 먼저 실험해 본 겁니다!”원경릉은
원 할머니는 약상자 안에 현대 약들을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한참을 약상자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뿌리는 파스를 집어 원경릉의 목에 뿌렸다.“그래도 이곳에 약상자가 있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서 네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싶구나. 오늘 기상궁과 녹주(綠荷)가 지난 네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원경릉은 깜짝 놀라 천천히 몸을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할머니, 혹시 희상궁과 녹주가 무슨 말을 했어요?”원경릉은 두 사람이 자신이 예전에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까지 할머니에게 얘기를 했을까 봐 겁났다.“기상궁한테 물어보니 잘 얘기를 하지 않아서, 녹주한테 물어봤지. 녹주는 내가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대답을 해줬어. 처음부터 다섯째가 너에게 살갑지는 않았다면서? 그 말을 들으니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프더라. 그리고 전에 궁에 가서……”원경릉은 녹주가 쓸데없는 얘기를 할머니께 전한 것에 화가 났지만 할머니가 걱정하는 것이 싫어 애써 평온한 척했다.“할머니, 이미 다 지난 일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곤장 서른 대가 무슨 대수라고요.”할머니는 들고 있던 파스를 탁자에 쾅 내려놓으며 원경릉을 노려보았다.“그게 무슨 소리야? 곤장을 맞았다니? 다섯째가 너를 때렸다는 거야?”“예? 녹주가 그 얘기는 하지 않던가요……?”“감히 내 손녀를 때려? 남자가 여자를 때리다니 그게 얼마나 비겁하고 모자란 짓이야?”“……”“아이고, 경릉아……”할머니는 원경릉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왜 얘기를 안 했어? 이러고 사는 줄 알았으면 당장이라고 끌고 나갔을 것이야! 어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느냐! 게다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원경릉은 할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고 있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쓸었다.“할머니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셔서 제 말을 들어보세요.”“너 설마 세뇌라도 당한 거야?”“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까지 있는데
“할머니 제가 몸에 원주(原主) 원경릉이 있었을 때, 다섯째는 원래 죽마고우이자 첫사랑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원주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본래 좋아하던 사람과의 혼인이 깨지고 말았어요. 게다가 원주는 혼인 후 초왕부에서도 기고만장한 태도로 매번 하인들을 괴롭히고 늘 구설수에 올랐지요. 그래서 다섯째는 그녀를 혐오했고, 그때 무슨 이유인지 제가 원주의 몸에 들어온 겁니다.”원경릉은 당시 원주가 했던 만행들은 원 할머니에게 하나하나 세세히 말했다. 원 할머니도 원주의 만행을 듣고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원주가 열이에게 한 행동은 용서가 안 되는구나. 현대로 따지자면 열이는 초등학교 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그런 아이에한테 뭔 짓을 한 거야?”원경릉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할머니가 우문호가 왜 원주를 미워했고, 곤장을 내리친 것인지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다섯째가 저녁에 왕부로 돌아왔을 때, 밖에서 소란을 피우던 백성들은 이미 없었고, 탕양은 그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그에게 알렸다. 우문호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으며, 탕양에게 내일 부병을 파견하여 태자비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체포해 경조부로 보낼 것을 명령했다.“걱정 마세요, 오늘 밤 서일에게 오늘 소란을 일으킨 무리 중에 태자비를 암살하려는 자객들을 찾으라고 했으니 내일은 무서워서라도 왕부에 오지 못할 거예요.”암살이라는 말에 우문호의 얼굴이 싸늘해졌다.“이대로 가면 문둥산의 환자들을 치료하기는커녕 태자비의 목숨만 위태로울 수 있겠네요. 보아하니 자객들이 백성들을 이용해 정세를 어지럽힌 후 태자비를 공격하려는 모양입니다.”“예, 태자비께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왜 경릉이를 괴롭히는 건지…… 게다가 여섯째까지 들먹이며 형제 관계까지 망가뜨리려는 것을 보니 보통 머리가 좋은 자객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서일이 자객들을 추려낸다면 훈계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꼭 알아내야 해요.”우문호의 말을
우문호는 소월각 안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며 원경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후 소월각의 문이 열리고 원경릉이 들어오자마자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할머님께서 내가 곤장을 때린 일을 알고 계신 거야? 화가 많이 나셨어?”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쉿-’이라며 눈짓으로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우문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눈에 뭐가 들어갔어? 녹주가 무슨 얘기를 한 거야?”라고 물었다.“큼……”때마침 누군가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며 소월각 안으로 들어왔다.백발에 가려진 할머니의 얼굴은 엄숙하고 굳어져있었다. 우문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원경릉의 손목을 놓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보았다.“하하, 조모님께서 오셨습니까?”원경릉은 거의 울다시피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탕대인이 태자가 아프다고 하길래 어떤지 와보았네.”“조모! 감사합니다!”원 할머니도 덜덜 떠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졌다.“사위가 이렇게 내 눈치를 보니 내가 편히 있을 수 없겠네, 아프다는 건 괜찮은 것 같으니 늙은이는 가보겠네.”“조모, 살펴 가십시오!” 우문호는 서둘러 앞으로 나가 배웅했다. 원 할머니는 배웅 나온 그를 가만 보고 있다가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을 두드렸다. “사위, 내가 나이가 많다고 고지식할 거라는 생각은 말게.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 앞으로가 중요하네. 부디 지금처럼만 손녀에게 잘 해주게.”“네. 그것이야 당연한 것이니 걱정 마세요. 조모!”그의 우렁찬 대답을 듣고 할머니는 내심 흐뭇했다.“그럼 들어가서 쉬게.”우문호는 봉의각으로 걸어가는 조모의 뒷모습을 보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으며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 귀에서 심장소리가 들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배웅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온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툴툴댔다.“너도 참, 내가 너만 오라고 했지, 왜 조모를 모시고 온 거야? 조모께서 화가 나셨다니까 나도 상황
서일은 밤에 부병 몇 명을 데리고 소란을 일으킨 자들을 수색해 모두 초왕부로 데려왔다. 서일은 그들을 흠씬 두들겨 팼고, 참다못한 한 사람이 항복을 외치며 안왕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실토했다.“안왕부의 짓이라고? 안왕이 지금 남영에 가있는데, 어떻게 이런 짓을 지시할 수 있겠어?” “나리 잘 생각해보세요. 안왕이 직접 지시를 내렸겠습니까?”“그런 누군데?”“그…… 안왕부에 예쁘장하게 생긴 안왕의 뜻을 받드는 여인 하나가 있는데, 그 여인이 우리에게 소란을 피우라고 지시했습니다!”“예쁘장하게 생겼다면…… 설마 그 여인의 이름이 아라가 맞느냐?”“예! 그런 것 같습니다.”서일은 안왕부에서 안왕의 뜻을 받드는 여인이라면 아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서일은 우문호와 원경릉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그 말을 듣고 우문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일, 아라가 그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조사해 보아라.”“예!”“참, 아라와 안왕의 애매모호한 관계가 지금 3년 정도 되었지? 근데 이 사실을 넷째 형수는 알고 있어? 형수는 알고 있는데도 아무 말이 없느냐?”“안왕비께서 워낙 싸움을 싫어하시고, 온화한 성격이라…… 잘 모르겠습니다.”원경릉은 황실에서 만났던 조용하고 차분하며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던 안왕비 모습을 떠올렸다.우문호는 지긋이 원경릉을 보았다.“오늘 일 없으면 조모를 모시고 기왕비에게 가 봐.”기왕비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기에 친왕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나 내정 소식이 빨랐다. 우문호는 기왕비가 어쩌면 각 왕부마다 심복을 심어놨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기왕비의 심복이 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 안 그래도 할머니랑 도성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겸사겸사 다녀와야겠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우문호는 바삐 왕부를 나갔고 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를 데리고 기왕부로 갔다.기왕이 옥에 갔다 온 후로 기왕부는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옥에 들어가기 전
기왕비는 왕부 안에 있던 시녀들을 모두 내보낸 후, 원경릉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오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별일은 아니고요. 노부인께서 너무 초왕부에만 계신 것 같아서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는 겁니다.”원경릉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이 번쩍 떠졌다.“차가 정말 향긋하네요. 어디서 사신 겁니까?”“정원에 꽃을 따서 직접 말린 겁니다. 괜찮으면 이따가 돌아갈 때 포장해 드리지요.”“예, 고맙습니다.”“태자비, 어제 계란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괜찮습니까?”“그 소식이 여기까지 퍼졌습니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딱 맞네요.”기왕비는 미소를 지으며 “초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제가 모를 리가 없지요.” 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기왕비의 두 눈을 응시했다.“그 뜻은 어느 왕부든 기왕비의 소식통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기왕비는 입을 가리고 하하하 크게 소리 내어 웃더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원경릉을 지긋이 바라보았다.“기왕비, 우리 왕부에 소식통이 있든 없든 그게 누군지 묻지 않는 대신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 주시지요. 안왕부에 아라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무엇인지, 안왕과 아라는 무슨 관계인지 알고 싶네요.”“전에 태자비에게 말했을 땐 귀 기울여 듣지도 않더니, 지금 와서 왜 그게 궁금합니까?”“제가 언제요? 기왕비도 아시다시피 본 태자비가 얼마나 바빴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습니까? 기왕이 기왕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도 얘기할 겨를이 없었잖아요.” 기왕비는 정원에서 정성스럽게 원 할머니를 모시는 기왕을 바라보았다.“저 사람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나한테 잘 해야 한다는 걸 알았겠지요. 하지만 저 사람은 믿을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은 자신이 준 게 있으면 그걸 꼭 받아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기왕은 아직도 태자 자리를 포기하지 않은 겁니까?”기왕비는 기왕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는 포기하지 못했을 겁니다.
원경릉은 안왕비의 임신 소식에 깜짝 놀랐다.“안왕은 군영에 있잖아요? 근데 임신을 어떻게……”“순진한 척하는 겁니까 아님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안왕은 군영에 있지만 가끔 안왕부로 옵니다.”원경릉은 안왕비가 순진하고 연약한 여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아라가 정말로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뱃속에 애를 떨어뜨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안왕은 쓰레기지만, 안왕비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기왕비는 원경릉을 보며 “왜요? 안왕비가 걱정이라도 됩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안왕비가 걱정됐지만, 안왕부의 일은 자신의 능력 밖이기에 기왕비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도 화가 나는데, 삼둥이의 어머니인 태자비는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원경릉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기왕비,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처음엔 나 자신도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했지요. 내가 진후궁(秦側妃)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아이는 이 세상에 나와선 안 됐고, 설사 태어났더라도 매일이 고통이었을 겁니다. 우문군(宇文君) 성격으로는 그 아이를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거니까요.”“예, 맞습니다.”“아무튼 안왕부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도 해결이 안 될 일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이 일은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안왕부 일에 신경을 쓸 여력도 시간도 없으니까요.”기왕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원에서 원 할머니를 모시고 여러 식물들을 소개하는 기왕을 보았다.*잠시 후, 원 할머니가 왕부 안으로 들어왔다.“기왕 전하께서 정원에 있는 꽃들을 직접 심은 거라고 하시던데, 정말 대단하십니다.”기왕은 원 할머니를 부축하며 겸손하게 말했다.“노부인, 과찬이십니다. 내세울 게 없으니 정원이라도 잘 돌봐야죠. 그나저나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데 노부인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오히려 본왕이 더 고맙습니다. 노부인, 앞으로 기왕부에 자주 오셔야 합니다.”“예, 늙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