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의 물음에 미색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미색아 숨길 필요 없어. 소홍천이 이미 두 사람의 과거를 모두 알아보았다고 전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소홍천? 홍매문(紅梅門)이 문주(門主)인 소홍천?”우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색의 반응을 살폈다. “두 사람이 우리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왕부에 있는 동안 우리가 신세를 많이 졌다. 오늘도 그렇고…… 만약 네가 적위명의 부하들이 문둥산 아래에 있다는 것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 조회에 내가 끌려갔을 것이야.”원경릉이 미색에게 말했다.어제 미색은 적위명과 부하들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순식간에 가면을 만들어 원경릉 행색을 했다. 적위명이 미색에게 속아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 진짜 원경릉은 사식이와 만아와 함께 산을 내려왔다. “우리를 도와주는 걸 보니,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두 사람의 정체가 무엇이냐.” 우문호가 물었다. “그래, 네가 말을 해줘야지. 앞으로 우리는 동서지간이 될 텐데. 지금 말하지 않아도 소홍천이 와서 우리에게 말해줄 거야.”원경릉이 옆에서 거들었다.미색은 원경릉의 말에 귀가 쫑긋 섰지만, 그녀 역시 원경릉이 일부러 저렇게 말해 자신의 수를 읽으려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조금 더 시간을 끌며 고민했다.“이리 나리는 늑대파의 문주이고, 저는 늑대파의 호법(護法)입니다.”미색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격노했다. “뭐? 두 사람이 늑대파라고?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초왕부에 온 것이야!”미색은 버럭 하는 우문호를 보고 당황했다.“가장 기본인 걸 몰랐다고요? 소홍천이 말하지 않았습니까?”“소홍천은 내가 던진 미끼였어. 그래, 늑대파인건 알겠고, 초왕부에는 왜 온 것이야! 목적을 말하거라.” 미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낚였구나. 그래도 태자비를 암살하러 왔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어……’그 순간 미색은 서일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사실…… 이리 나리께서 태자를 사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태자와 친해지기 위해
“당연히 물어봐야지! 이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야?” 원경릉이 물었다. “넘어가서는 안 돼. 하지만……” 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차는 왕부에 도착했고, 우문호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얼굴을 살폈다. 원경릉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 우문호가 외모치장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뭐야 갑자기 왜 가꿔?”“손님은 손님이잖아. 초라한 용모로 마주할 수는 없지.”“어휴…… 왜 저래.”원경릉은 화가 치밀었다.우문호는 슬그머니 소월각을 나와 서재로 향했다. 서재 안에는 이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미색이 서있었다. 그 순간 이리가 고개를 돌려 미색이 얼굴을 때렸다. 우문호는 당황한 얼굴로 문을 닫고 조용히 이리의 맞은 편에 앉았다. 하지만 잠깐 얘기를 나눌 것인데 문을 닫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우문호는 다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전하!” 이리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예.” 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이리는 우문호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피했다.‘불러놓고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우문호는 어색한 공기가 싫어 헛기침을 했다.“듣자 하니, 늑대파의 문주라고 하시던데 맞습니까?”우문호가 물었다.이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 맞습니다. 일부러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사실 밝힐 필요를 크게 못 느끼고 살았기에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그렇군요. 방금 마차를 타고 오는데 미색이 말하길 나리께서 저를…… 다 전해 들으셨겠지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이리는 두 손으로 의자 양 옆 팔걸이를 꽉 잡고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는 복잡한 마음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애만 탔다.잠시 후 이리는 아무 표정도 말도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이판사판이다…… 남색이라고 오해하게 두는 게 낫지. 태자비를 암살하러 왔다고 말했다가는 미색이나 나나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 할 거야.’우문호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무
우문호는 한참 후 이리를 보며 묻고 싶은 말을 물었다. “늑대파가 태자비를 암살하기 위해 왔다는 말도 있던데, 그건 아닙니까?”“늑대파는 무공을 모르는 여인을 죽이지 않습니다.”“그러니까, 나리는 원경릉을 죽이러 온 게 아니라는 거지요?”이리 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태자, 안심하십시오. 태자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신답니까?”“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본 태자는 늑대파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늑대파의 문주가 직접 아니라고 했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그럼 미색의 말대로 본 태자와 친해지기 위해 왕부로 온 겁니까?”이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사실 본 태자는 이리 나리와 나눌 말이 많습니다. 다음에 날 잡고 한번 얘기를 해 봅시다. 조정에서는 이리 나리와 합심해 북당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하려고 합니다. 나리께서도 이 얘기는 흥미가 있으실 겁니다.”“……” 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리는 북당이라는 두 글자가 우문호의 심장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 보면 볼수록 참 괜찮은 남자구나. 원경릉 결혼 한번 잘 했네.’이리는 우문호를 보며 “예, 다음에 얘기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예, 그럼 다음에 봅시다.” 우문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뒷짐을 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소월각으로 돌아갔다. 그는 소월각 문을 열고 의기양양하게 원경릉에게 다가가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경릉아, 나 왔어.”원경릉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들떠 있는 우문호가 수상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뭐야? 왜 신났어?”“이리 나리가 북당에 힘을 보탤 것 같아!”“정말이야?” 원경릉은 기뻤지만 이리가 우문호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금방 풀이 죽었다.“응!”“근데 다섯째, 너 이리 나리가 널 좋아한다고 그의 감정을 이용해서는 안 돼.”“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게다가 늑대파의 문주인 이리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이런 큰 결정을 아무렇게나 할 사람으로 보여?
회왕에게 미색을 중매하려는 원경릉발자국 소리를 듣고 회왕이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얼른 일어나 예를 취하며, “다섯째 형수님 오셨습니까, 실례했습니다.” 원경릉이 미소 지으며, “책 보셨어요?”회왕이 책을 내려놓고, 웃으며, “시간 때우기 죠.”“무슨 책 보세요?” 원경릉과 사식이가 올라가서 돌 탁자 옆에 의자에 앉자 하인들이 차를 내 왔다.회왕이 부끄러워 하며 겸연쩍은 듯, “강호 견문록인데 성현의 글귀는 아닙니다.”원경릉이 눈을 반짝이며, “강호 견문록이요?”회왕도 앉아서 원경릉이 모르는 줄 알고 설명하며, “고수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건데 진짜 재미있어요.”“재미있겠네요!” 원경릉이 회왕을 보고 본론에 들어가며, “여섯째 도련님, 올해 나이도 적지 않으시고, 전에 노비 마마께서 전하가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을 바라셨잖아요, 그땐 몸상태가 허락치를 않았지만. 지금 병도 괜찮아 지셨으니 인륜지 대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회왕의 창백한 얼굴에 한줄기 발그스레한 기운이 감돌고 눈을 어디 둘지 몰라 하는 것이 마치 이 화제는 원경릉이 얘기하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그건 급하지 않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회왕이 작은 소리로 답하며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더니 상당히 어색해 했다.원경릉은 아기 토끼 같은 이 남자와 패기가 넘치는 미색을 보면서 외유내강, 두 사람이 의외로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미색처럼 박력이 넘치는 여자의 보호가 필요하고, 회왕부에도 억척스런 여주인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원경릉은 아예 흉금을 터놓고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늘 제가 중매를 서려고 왔어요.”“아!” 회왕이 당황해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며, “중매요? 다섯째 형수님, 어느 집 아가씨를 말씀하시는 지?”“명문세가의 금지옥엽은 아니고 거상 이리 나리의 동생으로, 두 분 만난 적이 있어요, 이름은 미색인데 회왕 전하가 초왕부에 왔을 때 문 앞에
회왕 중매원경릉은 바로 입궁해 황제를 찾아갔다.사식이가, “원 언니, 이시기에 입궁해서 폐하를 찾아 뵈면 분명 꾸지람을 하실 거예요.”원경릉이 자신의 볼을 두드리며, “괜찮아, 내가 얼굴이 두껍잖아, 꾸지람이 안 먹히지, 맘대로 꾸짖으시라고 해.”이런 중요한 시점에 황제를 찾아가는 건 혼나는 걸 자초하는 짓임을 알지만 미색이 중매인에게 내건 포상금이 엄청나고 이 일을 빨리 이루면 미색의 인맥을 원경릉이 쓸 수 있어, 잘하면 의대에서 가르칠 의사 선생님을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교수와 제자는 반드시 서로에게 자발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태자가 강력한 권력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어쨌든 앞으로 학생이 나와서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해야 하기때문에 만약 일부러 잘못 가르치기라도 하면 목숨을 해치기 때문이다.역시 입궁하자 원경릉이 자신의 신분과 위험을 생각치 않고 문둥산에 갔다고 명원제에게 한바탕 혼이 났다.원경릉이 착실하게 죄를 인정하는 태도로 몇 번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만 반복하는 바람에 명원제가 더 화를 내기도 민망했다.게다가 이번 분란은 적위명이 일으켰는데, 오히려 자신이 소란의 장본인이 되어 멋대로 직무를 이탈해 태자비를 모함한 죄로 대장군의 이름을 박탈당했다. 대장군에서 장군이 되었는데 ‘대’자가 하나 없는 게 천지차이 였다.그리고 만약 태자비를 구금한 죄목이 성립되었으면 적위명을 서민으로 강등하고 옥살이를 몇 년 시키고도 남았다.하지만 사실 갇힌 것은 태자비가 아니라 미색이어서 이 죄목은 성립하지 않았다.이와 같은 행동은 명원제의 의도대로인 셈으로 결국 넷째와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적씨 집안의 앞니부터 뽑아 놓은 것이다.명원제는 줄곧 고도의 이성을 발휘해 잘나가는 것으로 자만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 따위 없었다. 그리고 안왕의 생각을 명원제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명원제도 원경릉과 다섯째는 마음대로 혼을 낸다는 걸 안다. 다섯째를 태자로 책봉한 이래 이 녀석이 이전보다 더
미색을 회왕에게원경릉이, “혼수는 별로 안되요, 고작 은자 500만냥 정도.”“혼수로 500만냥?” 명원제는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 했다.원경릉이 계속, “당연하죠, 황실의 혼인이니 중요한 건 은자가 아니라 인품과 생김새가 중요하죠, 가장 중요한 건 이리 나리가 자선사업을 즐겨하고 틀림없이 조정이 하려는 민생건설을 돕고 싶을 겁니다.”명나라에 심만삼(沈萬三)이라는 거상이 있었는데 당시 황제 주원장(朱元璋)이 남경성(南京城)을 세우고자 해서 심만삼이 도성의 1/3을 축조하며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주원장과 혜택을 나누며 민생을 일으킬 조치를 취했다. 그러다가 심만삼은 뒤에 초심을 잃고 자만하여 감히 황제를 대신해 삼군을 포상하는 바람에 주원장의 역린을 건드렸다.이뒤로 조정과 민간의 합작 사례가 사라졌다. 원경릉은 그래서 이리 나리와 공동으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론 국영기업을 운영하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더욱이 조정이 이렇게 가난할 때 선례를 시정하는 건 상황을 봐서 아니겠나.이런 건 원경릉이 말할 수도 물을 수도 없는 것이 정치에 간섭한다는 혐의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명원제는 이미 미색이 500만냥을 혼수로 가져온다는 얘기에 완전 놀라서 속으로 말로 할 수 없는 기분이 올라왔다. 황실의 공주가 시집을 가도 이렇게 혼수를 못해주는 구나, 북당의 빈부격차가 심각하구나, 한쪽은 돈이 차고 넘쳐서 썩어 나가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가난해서 구걸하는 처지니 말이다.명원제는 구걸하는 황제다.명원제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심사숙고 하더니, “이 일은 우선 노비와 상의하고 얘기 하지.”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이 일은 70~80%는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명원제가 문둥산 상황을 묻길래 원경릉이 사실대로, “상황이 잠시 제어가 되는 상태이나 낫게 하려면 계속 돈을 써야 합니다.”“낫게 한다고? 정말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명원제가 물었다.“할 수 있습니다.” 원경릉은 한 마디로 별다른 보장도
회왕의 배필은 누구?명원제가 간 뒤 노비는 마음에 근심이 쌓였다.노비는 황제가 이 결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와서 자신에게 묻지 않고 직접 거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황제가 회왕을 상인의 여식과 혼인 시키려 하다니, 틀림없이 여러 사람에게 혼사를 물어봤지만 마땅한 상대가 없어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리라.회왕은 좋은 아내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야?마음이 괴로워 다음날 사람을 시켜 친정 동서들을 입궁 시켜 얘기를 나눴다.노비는 복도 없지, 친정 조카들은 전부 시집을 가서 겹사돈을 맺고 싶어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동서 둘은 노비의 오빠와 경성에 온지 오래 돼서 경성에서 이름이 통하는 사람으로 아는 사람이 많아서 동서들에게 신경을 좀 써 달라고 부탁했다.노비의 동서 둘이 하나는 조씨(刁氏), 하나는 오씨(伍氏)로 둘다 경성 사람이 아닌데 남편을 따라 경성에 와서 경성에 산지 오래 되었다.노비의 친정은 대단히 힘이 있는 가문은 아니었다. 힘만 있었어도 요 몇 년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노비가 회왕의 혼사를 얘기하자 조씨가 먼저, “마마, 소위 정숙한 여자를 아내로 맞는 데는 출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품이 좋고, 성격이 좋고,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면 되지 않을까요.”오씨도, “맞아요,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뭘 바라나요? 뜻대로 순조롭고 평안하길 바라지 않습니까? 왕야는 큰 병을 앓으셔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 쉽지 않으니 만약 고관대작의 명문 귀족의 딸을 원하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요구사항을 조금만 낮춰 보세요, 어떤 지방관이 합당할지 보시고 결혼을 시키세요.”노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방관의 딸은 고려할 필요도 없는 것이 명문세가를 빼면 근본을 알 수 없는데 어디 안심할 수 있어? 어쨌든 시집을 오면 방대한 회왕부를 꾸려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오씨가, “마마, 마침 제가 아는 여인이 있는데, 찬주(攅州) 지부의 딸로 올해 막 15살로 미모가 뛰어나고 성격도 좋은데다 아는 것도 많아서 찬주에서도
자해공갈 태상황“태상황 폐하 쪽에서 어쩌면 약간……” 명원제가 머리를 굴려보더니 태상황의 비밀 금고가 떠올랐다.……저 늙은이는 최저 생계비 수준에서 발버둥치는 열악한 황제의 동아줄이다……건곤전.“몇 번이지?” 태상황이 작은 의자에 앉아 뻑뻑 담배를 피우며 상선에게 차갑게 물었다.상선이 조심스럽게 손가락 세 개를 들더니, “3번 입니다.” “며칠이지?”상선이 세 보더니, “한달 정도 될 걸요? 한 달 보름은 안 되고요.”태상황이 수염을 날리고 눈을 부라리며, “과인을 죽은 셈 치는 거 아냐?”상선이 얼른 다독거리며, “역정 내지 마세요, 아마 최근 많이 바빠서 일 겁니다. 잠시 폐하께 문안 드리는 것을 살피지 못했지만 마음에 걸리시면 내일 어명을 내리시지요.”태상황이 화가 잔뜩 나서, “바빠? 3번 입궁하면서 과인에게 오지 않다니, 한번 오는데 얼마나 힘이 든다고? 무슨 엄청난 일을 한다고? 그리고 방금 한 달을 안 왔다고 했지? 한 달이 한달 인줄 알아? 과인이 느끼기엔 못 되도 반년은 된 느낌이라고, 그래 이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쌔고 쌔서 짐은 필요 없어졌으니 늙은이 상대할 필요 없다 이거지. 성지를 보내면 뭘 해, 그런 마음이면 성지를 가져가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몸만 오고 마음이 안 오는데, 과인은 그런 거 필요 없으니 앞으론 오지 말라고 해.”말을 마치고 한 발로 옆 의자를 걷어 찼는데 젠장, 헛발질이다. 열 받아서 뒤를 돌아 방금 앉았던 의자를 걷어찼더니 의자가 날아가서 문에 맞고 튀어서 다시 태상황의 종아리에 부딪히며 태상황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상선이 잡으려고 했으나 놓치는 바람에 ‘꽈당’하며 백옥 마루에 넘어지고 말았다.상선이 놀라서 심장이 멎는 줄 알고 정신없이 태상황을 부축했는데, 이마가 부딪혀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목이 째져라, “이리 오너라, 어의를 불러라!”태상황이 부축을 받고 의자에 앉아 놀랍도록 어두침침한 얼굴로 이마를 만져보더니 손에 흥건히 피가 떨어지는데 냉랭하게, “어의를 부르지 마라!”“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