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왕 중매원경릉은 바로 입궁해 황제를 찾아갔다.사식이가, “원 언니, 이시기에 입궁해서 폐하를 찾아 뵈면 분명 꾸지람을 하실 거예요.”원경릉이 자신의 볼을 두드리며, “괜찮아, 내가 얼굴이 두껍잖아, 꾸지람이 안 먹히지, 맘대로 꾸짖으시라고 해.”이런 중요한 시점에 황제를 찾아가는 건 혼나는 걸 자초하는 짓임을 알지만 미색이 중매인에게 내건 포상금이 엄청나고 이 일을 빨리 이루면 미색의 인맥을 원경릉이 쓸 수 있어, 잘하면 의대에서 가르칠 의사 선생님을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교수와 제자는 반드시 서로에게 자발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태자가 강력한 권력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어쨌든 앞으로 학생이 나와서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해야 하기때문에 만약 일부러 잘못 가르치기라도 하면 목숨을 해치기 때문이다.역시 입궁하자 원경릉이 자신의 신분과 위험을 생각치 않고 문둥산에 갔다고 명원제에게 한바탕 혼이 났다.원경릉이 착실하게 죄를 인정하는 태도로 몇 번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만 반복하는 바람에 명원제가 더 화를 내기도 민망했다.게다가 이번 분란은 적위명이 일으켰는데, 오히려 자신이 소란의 장본인이 되어 멋대로 직무를 이탈해 태자비를 모함한 죄로 대장군의 이름을 박탈당했다. 대장군에서 장군이 되었는데 ‘대’자가 하나 없는 게 천지차이 였다.그리고 만약 태자비를 구금한 죄목이 성립되었으면 적위명을 서민으로 강등하고 옥살이를 몇 년 시키고도 남았다.하지만 사실 갇힌 것은 태자비가 아니라 미색이어서 이 죄목은 성립하지 않았다.이와 같은 행동은 명원제의 의도대로인 셈으로 결국 넷째와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적씨 집안의 앞니부터 뽑아 놓은 것이다.명원제는 줄곧 고도의 이성을 발휘해 잘나가는 것으로 자만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 따위 없었다. 그리고 안왕의 생각을 명원제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명원제도 원경릉과 다섯째는 마음대로 혼을 낸다는 걸 안다. 다섯째를 태자로 책봉한 이래 이 녀석이 이전보다 더
미색을 회왕에게원경릉이, “혼수는 별로 안되요, 고작 은자 500만냥 정도.”“혼수로 500만냥?” 명원제는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 했다.원경릉이 계속, “당연하죠, 황실의 혼인이니 중요한 건 은자가 아니라 인품과 생김새가 중요하죠, 가장 중요한 건 이리 나리가 자선사업을 즐겨하고 틀림없이 조정이 하려는 민생건설을 돕고 싶을 겁니다.”명나라에 심만삼(沈萬三)이라는 거상이 있었는데 당시 황제 주원장(朱元璋)이 남경성(南京城)을 세우고자 해서 심만삼이 도성의 1/3을 축조하며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주원장과 혜택을 나누며 민생을 일으킬 조치를 취했다. 그러다가 심만삼은 뒤에 초심을 잃고 자만하여 감히 황제를 대신해 삼군을 포상하는 바람에 주원장의 역린을 건드렸다.이뒤로 조정과 민간의 합작 사례가 사라졌다. 원경릉은 그래서 이리 나리와 공동으로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론 국영기업을 운영하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더욱이 조정이 이렇게 가난할 때 선례를 시정하는 건 상황을 봐서 아니겠나.이런 건 원경릉이 말할 수도 물을 수도 없는 것이 정치에 간섭한다는 혐의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명원제는 이미 미색이 500만냥을 혼수로 가져온다는 얘기에 완전 놀라서 속으로 말로 할 수 없는 기분이 올라왔다. 황실의 공주가 시집을 가도 이렇게 혼수를 못해주는 구나, 북당의 빈부격차가 심각하구나, 한쪽은 돈이 차고 넘쳐서 썩어 나가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가난해서 구걸하는 처지니 말이다.명원제는 구걸하는 황제다.명원제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심사숙고 하더니, “이 일은 우선 노비와 상의하고 얘기 하지.”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이 일은 70~80%는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명원제가 문둥산 상황을 묻길래 원경릉이 사실대로, “상황이 잠시 제어가 되는 상태이나 낫게 하려면 계속 돈을 써야 합니다.”“낫게 한다고? 정말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명원제가 물었다.“할 수 있습니다.” 원경릉은 한 마디로 별다른 보장도
회왕의 배필은 누구?명원제가 간 뒤 노비는 마음에 근심이 쌓였다.노비는 황제가 이 결혼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와서 자신에게 묻지 않고 직접 거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황제가 회왕을 상인의 여식과 혼인 시키려 하다니, 틀림없이 여러 사람에게 혼사를 물어봤지만 마땅한 상대가 없어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리라.회왕은 좋은 아내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야?마음이 괴로워 다음날 사람을 시켜 친정 동서들을 입궁 시켜 얘기를 나눴다.노비는 복도 없지, 친정 조카들은 전부 시집을 가서 겹사돈을 맺고 싶어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동서 둘은 노비의 오빠와 경성에 온지 오래 돼서 경성에서 이름이 통하는 사람으로 아는 사람이 많아서 동서들에게 신경을 좀 써 달라고 부탁했다.노비의 동서 둘이 하나는 조씨(刁氏), 하나는 오씨(伍氏)로 둘다 경성 사람이 아닌데 남편을 따라 경성에 와서 경성에 산지 오래 되었다.노비의 친정은 대단히 힘이 있는 가문은 아니었다. 힘만 있었어도 요 몇 년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노비가 회왕의 혼사를 얘기하자 조씨가 먼저, “마마, 소위 정숙한 여자를 아내로 맞는 데는 출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품이 좋고, 성격이 좋고, 시어머니에게 효도하면 되지 않을까요.”오씨도, “맞아요,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뭘 바라나요? 뜻대로 순조롭고 평안하길 바라지 않습니까? 왕야는 큰 병을 앓으셔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 쉽지 않으니 만약 고관대작의 명문 귀족의 딸을 원하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요구사항을 조금만 낮춰 보세요, 어떤 지방관이 합당할지 보시고 결혼을 시키세요.”노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방관의 딸은 고려할 필요도 없는 것이 명문세가를 빼면 근본을 알 수 없는데 어디 안심할 수 있어? 어쨌든 시집을 오면 방대한 회왕부를 꾸려 나가야 하는데 말이다.오씨가, “마마, 마침 제가 아는 여인이 있는데, 찬주(攅州) 지부의 딸로 올해 막 15살로 미모가 뛰어나고 성격도 좋은데다 아는 것도 많아서 찬주에서도
자해공갈 태상황“태상황 폐하 쪽에서 어쩌면 약간……” 명원제가 머리를 굴려보더니 태상황의 비밀 금고가 떠올랐다.……저 늙은이는 최저 생계비 수준에서 발버둥치는 열악한 황제의 동아줄이다……건곤전.“몇 번이지?” 태상황이 작은 의자에 앉아 뻑뻑 담배를 피우며 상선에게 차갑게 물었다.상선이 조심스럽게 손가락 세 개를 들더니, “3번 입니다.” “며칠이지?”상선이 세 보더니, “한달 정도 될 걸요? 한 달 보름은 안 되고요.”태상황이 수염을 날리고 눈을 부라리며, “과인을 죽은 셈 치는 거 아냐?”상선이 얼른 다독거리며, “역정 내지 마세요, 아마 최근 많이 바빠서 일 겁니다. 잠시 폐하께 문안 드리는 것을 살피지 못했지만 마음에 걸리시면 내일 어명을 내리시지요.”태상황이 화가 잔뜩 나서, “바빠? 3번 입궁하면서 과인에게 오지 않다니, 한번 오는데 얼마나 힘이 든다고? 무슨 엄청난 일을 한다고? 그리고 방금 한 달을 안 왔다고 했지? 한 달이 한달 인줄 알아? 과인이 느끼기엔 못 되도 반년은 된 느낌이라고, 그래 이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쌔고 쌔서 짐은 필요 없어졌으니 늙은이 상대할 필요 없다 이거지. 성지를 보내면 뭘 해, 그런 마음이면 성지를 가져가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몸만 오고 마음이 안 오는데, 과인은 그런 거 필요 없으니 앞으론 오지 말라고 해.”말을 마치고 한 발로 옆 의자를 걷어 찼는데 젠장, 헛발질이다. 열 받아서 뒤를 돌아 방금 앉았던 의자를 걷어찼더니 의자가 날아가서 문에 맞고 튀어서 다시 태상황의 종아리에 부딪히며 태상황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상선이 잡으려고 했으나 놓치는 바람에 ‘꽈당’하며 백옥 마루에 넘어지고 말았다.상선이 놀라서 심장이 멎는 줄 알고 정신없이 태상황을 부축했는데, 이마가 부딪혀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목이 째져라, “이리 오너라, 어의를 불러라!”태상황이 부축을 받고 의자에 앉아 놀랍도록 어두침침한 얼굴로 이마를 만져보더니 손에 흥건히 피가 떨어지는데 냉랭하게, “어의를 부르지 마라!”“그럼
문안을 준비하는 원경릉목여태감이 초왕부에 왔을 때 우문호가 막 도착해 목여태감과 마주쳤다.만약 아무 일도 없으면 밤중에 목여태감이 올 리 없으니 우문호가 얼른, “태감, 무슨 일인가?”목여태감이 정신없이 마차에서 내려 달려가, “아이고, 왕야, 어쩌자고 이렇게 늦게까지 바쁘십니까, 그래도 시간을 내서 태상황 폐하께 문후 여쭈셔야 지요. 전하와 태자비 마마께서 얼마나 오래 문안인사를 안 오셨는지 아십니까?”우문호가 생각해보더니,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텐데, 지난번 입궁한 게……” 대략, 진짜 꽤 오래 되었다.목여태감이 발을 구르며, “태상황 폐하께서 역정을 내시다가 실수로 상처를 입으셨어요.”우문호가 흠칫 놀라며 얼른, “상처는 위중한가?”목여태감이, “위중한 걸로 치면 그렇게 위중한 건 아니지만,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자비 마마도 오시라고 하세요.”우문호는 그렇게 위중하지 않다는 말에 안심하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원경릉을 본관으로 오라고 사람을 시켰다. 원경릉이 나오길 기다리며 우문호가, “태상황 폐하께서는 무엇때문에 역정을 내셨지? 어쩌다 자해까지 하시게 된 건가?”목여태감이 원경릉에게, “태자비 마마, 이번에 입궁하시면서 서둘러 왔다가 서둘러 가시느라 건곤전에 문안인사는 못 오셨지요?”방금 서일이 원경릉을 데리러 갔을 때 태상황이 다쳤다는 얘기에 원경릉이 이번에도 초조한 와 중에 목여태감의 질문을 듣고 어리둥절하다가, “확실히 못 가긴 했어, 급작스러워서 건너가보지 않았지.”목여태감이, “태상황 폐하께서 앙심을 품으셨어요, 오늘 입궁하시고도 건곤전에는 안 들르신 걸 알고 역정을 내시며, 상선 말로는 의자를 차서 넘어지며 머리를 다쳤다고 하더군요. 내일 시간이 나든 안 나든 무조건 가보세요. 황제 폐하께서 출궁해서 마마께 전한 일은 비밀로 하라고, 마마 스스로 태상황 폐하를 그리워해서 입궁해 문안 드리는 것으로 하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역시 제일 좋고요.”원경릉은 부끄러움에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지금이라도
태상황을 달래는 원경릉원경릉은 손을 뻗어 옆에 있는 찰떡이 얼굴을 만졌다. 사실 요즘 소홀히 한 게 어찌 태상황 뿐일까, 아이들도 소홀히 여겨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돌아오면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으니 원경릉과 우문호는 방에 가서 ‘씀벅’ 보고는 바로 갔다.생각해보니 확실히 후레자식이었다. 세번이나 입궁해서 태상황을 보러 갈 수 있었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길 까봐 안 갔다.이번에 큰 일이 안 생겨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원경릉은 정말 평생을 두고 후회할 뻔했다.태상황은 어제 밤새 화를 내다가 한밤중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상처가 아파서 깊이 잠들지 못하고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났지만 몸이 피곤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황제는 조회 전에 와서 보고는 바로 갔다.태상황은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마음이 영 불쾌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잘 들어보니 찰떡이 울음소리다.태상황이 놀라며, 입궁했나? 하더니 곧 경멸의 웃음을 띠고 ‘오랄 땐 안 오더니 누가 아쉬워할 까봐? 잠자는 거나 방해하지 마셔.’태상황은 한사코 안 일어났다.하지만 밖에 찰떡이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며 예전처럼 숨 넘어가게 우는데 초조해서 듣고 있을 수가 없는데 ‘달래는 사람이 없나? 사람 다 죽었어?’ 태상황이 화가 나서 침대를 탁 치더니, “시중을 들어라!”의관을 정제하고 상선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오니 원경릉이 얼른 웃는 얼굴로 맞는데 태상황의 얼굴을 보더니 미소 띤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화들짝 놀라더니, “세상에, 황조부, 이마가 어떻게 된 거예요? 다치셨어요?”태상황이 차갑게 원경릉을 보고, “이렇게 아침 일찍 다들 데리고 과인의 잠을 방해하러 왔느냐? 누가 널 들여보냈어?”원경릉이 앞으로 나와 옆에 있던 상선을 엉덩이로 밀쳐내고 태상황의 팔을 잡고 꽃처럼 웃는 얼굴로, “제가 직접 황조부를 위해 과자도 좀 만들고, 인삼팔보 오리탕도 끓였어요. 마침 딱 맞게 기침하셨네요, 와서 제 솜씨 좀 봐주세요.”태상황이
태상황과의 대화붕대를 풀어 상처가 드러나자 원경릉은 잠시 숨을 멈췄다. 상처가 상당히 깊어서 약상자를 곁에 두고 소독약을 꺼내 세밀하게 상처를 닦아낸 뒤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다시 상처를 동여맸다.태상황은 움직이지 않고 원경릉이 처리하는 대로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품에 안겨 있는 찰떡이를 보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만두와 경단이를 한번씩 곁눈질했다. 두 분 꼬마 나리들께서는 찰떡이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쳐도 여전히 꼬마돼지처럼 솔솔 단잠에 빠져 있다.태상화의 마음에 비로소 현실감이 들면서 어지럽고 시끄러운 건곤전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다.상처를 잘 싸매고 원경릉은 찰떡이를 안아서 희상궁에게 준 뒤 태상황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눈물을 흘리며, “황조부, 죄송해요, 제가 오랫동안 뵈러 오지 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태상황은 진작 마음이 풀렸지만 지금 원경릉이 꿇어 앉은 것을 보니 고집이 좀 남아서 씩씩거리며, “오랄 땐 안 오더니 누가 반갑데? 비켜 과인이 아침 먹는데 방해돼.”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열심히 아침 식사 시중을 들었다.비록 아침을 먹는 내내 태상황은 참깨 과자가 덜 부드럽네, 강낭콩 떡이 덜 다네, 인삼칠보 오리탕이 좀 쓰네 하면서도 적지 않게 먹더니 원경릉에게 탕 한그릇에 과자 두 개를 하사하기까지 했다.다 먹은 뒤 원경릉이 태상황을 부축하고 어화원을 산책하는데 유모들도 아가들을 안고 따라왔다.조손 두 사람이 조곤조곤 얘기하는데 원경릉이 최근 바빴던 일을 늘어놓았다. 태상황은 사실 다 아는 얘기지만 아무 말없이 듣고 있었다.걷다가 지쳐서 둘은 정자에 앉았는데, 원경릉은 내친 김에 회왕의 혼사를 거론하며 태상황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태상황이 다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너랑 같이 문둥산에 가고자 한 걸 보면 따로 속셈이 있었거나 정말 선의가 있었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하지만 어떤 쪽이던 용감하고 세속에 얽매인 사람은 아니다. 문둥산은 일반 사람들이 감히 가지 못하는데, 아직 시집도
날 죽이러 왔지?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눈을 흘기며, “인간들이 다 이렇다니까, 별 것도 아닌데 요구하고 싶어하니 말이야. 라만이 소요공을 먼저 제자로 받아서 눈늑대 한 무리를 떼 주고, 늑대파는 회색 늑대를 얻었을 게 틀림없어.”원경릉은 미색이 그날 회색 늑대 어쩌고 했던 것 같아, “아마 그럴 거예요, 전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늑대파가 소요공과 같은 사부를 모시는 문파라니, 그럼 말씀대로 별 문제 없겠네요.”태상황이, “그대론 별 문제 없지, 늑대파에는 3가지 살인의 규칙이 있는데, 현 천자와 태자는 죽이지 않는다,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 단 고수 순위 100명 안에 들거나 남편과 아이를 버린 경우는 예외로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이게 늑대파가 설립되던 때 정해진 규칙으로 일단 규칙을 어기면 늑대파는 해산하는 거지.”원경릉이 태상황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고 얼굴에 알듯 말듯 한 미소를 지으며, “고수 백명 안에 들거나 남편과 아이를 버린 경우란 말이죠?”태상황이, “흠, 분명 그렇지, 이 일은 운영(雲影)에게 물어봐도 돼, 운영도 알거든, 늑대파가 성립되던 날 운영도 초대를 받아서 참석했거든.”운영은 귀영위의 노장으로 전에 명을 받들어 원경릉을 보호한 적이 있으나 실수를 저질러 뒤에 나장군이 귀영위를 이어받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다.원경릉은 해괴한 웃음을 지으며, “됐어요, 알겠어요.”보아하니 이리 나리와 미색은 처음에 원경릉을 목적으로 왔다가 비록 끝내 손을 쓰진 않았지만 확실히 원경릉을 죽이려던 마음이 있었다.어쩐지 이리 나리가 전에 원경릉에게 어떻게 하면 우문호와 헤어질 거냐고 묻고 헤어지지 않겠다고 하자 이리 나리는 곧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하질 않나, 원경릉이 문둥산에 가기 시작했을 때 원경릉이 무공 수련을 안 한다고 성질을 부렸었던 것이다.정말 이리 나리를 난감하게 했구나, 위풍당당한 늑대파의 장문인과 대호법이 같이 출동해서 원경릉을 죽이러 오다니, 원경릉 일생을 통틀어 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