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과의 대화붕대를 풀어 상처가 드러나자 원경릉은 잠시 숨을 멈췄다. 상처가 상당히 깊어서 약상자를 곁에 두고 소독약을 꺼내 세밀하게 상처를 닦아낸 뒤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다시 상처를 동여맸다.태상황은 움직이지 않고 원경릉이 처리하는 대로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품에 안겨 있는 찰떡이를 보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만두와 경단이를 한번씩 곁눈질했다. 두 분 꼬마 나리들께서는 찰떡이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쳐도 여전히 꼬마돼지처럼 솔솔 단잠에 빠져 있다.태상화의 마음에 비로소 현실감이 들면서 어지럽고 시끄러운 건곤전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다.상처를 잘 싸매고 원경릉은 찰떡이를 안아서 희상궁에게 준 뒤 태상황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눈물을 흘리며, “황조부, 죄송해요, 제가 오랫동안 뵈러 오지 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태상황은 진작 마음이 풀렸지만 지금 원경릉이 꿇어 앉은 것을 보니 고집이 좀 남아서 씩씩거리며, “오랄 땐 안 오더니 누가 반갑데? 비켜 과인이 아침 먹는데 방해돼.”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열심히 아침 식사 시중을 들었다.비록 아침을 먹는 내내 태상황은 참깨 과자가 덜 부드럽네, 강낭콩 떡이 덜 다네, 인삼칠보 오리탕이 좀 쓰네 하면서도 적지 않게 먹더니 원경릉에게 탕 한그릇에 과자 두 개를 하사하기까지 했다.다 먹은 뒤 원경릉이 태상황을 부축하고 어화원을 산책하는데 유모들도 아가들을 안고 따라왔다.조손 두 사람이 조곤조곤 얘기하는데 원경릉이 최근 바빴던 일을 늘어놓았다. 태상황은 사실 다 아는 얘기지만 아무 말없이 듣고 있었다.걷다가 지쳐서 둘은 정자에 앉았는데, 원경릉은 내친 김에 회왕의 혼사를 거론하며 태상황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태상황이 다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너랑 같이 문둥산에 가고자 한 걸 보면 따로 속셈이 있었거나 정말 선의가 있었거나 둘 중 하나일 거야, 하지만 어떤 쪽이던 용감하고 세속에 얽매인 사람은 아니다. 문둥산은 일반 사람들이 감히 가지 못하는데, 아직 시집도
날 죽이러 왔지?태상황이 원경릉에게 눈을 흘기며, “인간들이 다 이렇다니까, 별 것도 아닌데 요구하고 싶어하니 말이야. 라만이 소요공을 먼저 제자로 받아서 눈늑대 한 무리를 떼 주고, 늑대파는 회색 늑대를 얻었을 게 틀림없어.”원경릉은 미색이 그날 회색 늑대 어쩌고 했던 것 같아, “아마 그럴 거예요, 전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늑대파가 소요공과 같은 사부를 모시는 문파라니, 그럼 말씀대로 별 문제 없겠네요.”태상황이, “그대론 별 문제 없지, 늑대파에는 3가지 살인의 규칙이 있는데, 현 천자와 태자는 죽이지 않는다,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 단 고수 순위 100명 안에 들거나 남편과 아이를 버린 경우는 예외로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이게 늑대파가 설립되던 때 정해진 규칙으로 일단 규칙을 어기면 늑대파는 해산하는 거지.”원경릉이 태상황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고 얼굴에 알듯 말듯 한 미소를 지으며, “고수 백명 안에 들거나 남편과 아이를 버린 경우란 말이죠?”태상황이, “흠, 분명 그렇지, 이 일은 운영(雲影)에게 물어봐도 돼, 운영도 알거든, 늑대파가 성립되던 날 운영도 초대를 받아서 참석했거든.”운영은 귀영위의 노장으로 전에 명을 받들어 원경릉을 보호한 적이 있으나 실수를 저질러 뒤에 나장군이 귀영위를 이어받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했다.원경릉은 해괴한 웃음을 지으며, “됐어요, 알겠어요.”보아하니 이리 나리와 미색은 처음에 원경릉을 목적으로 왔다가 비록 끝내 손을 쓰진 않았지만 확실히 원경릉을 죽이려던 마음이 있었다.어쩐지 이리 나리가 전에 원경릉에게 어떻게 하면 우문호와 헤어질 거냐고 묻고 헤어지지 않겠다고 하자 이리 나리는 곧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하질 않나, 원경릉이 문둥산에 가기 시작했을 때 원경릉이 무공 수련을 안 한다고 성질을 부렸었던 것이다.정말 이리 나리를 난감하게 했구나, 위풍당당한 늑대파의 장문인과 대호법이 같이 출동해서 원경릉을 죽이러 오다니, 원경릉 일생을 통틀어 최
미색의 임기응변원경릉이 미색에게 평소처럼, “미색, 다 알아요, 감출 필요 없어요.”“감추는 거 아니예요, 우린 광명정대한 사람들인데 왜 태자비 마마를 죽이겠어요? 마마와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세요?”“늑대파가 하는 일이 사람의 머리를 사고파는 일이잖아요? 누군가 은자를 줬겠죠.” 원경릉이 말했다.미색이 웃으며, “그게 이상한 거죠, 제아무리 마마께서 현 왕조의 태자비라, 마마의 머리가 몇 만 냥이라고 해도 자객 업계에선 천정부지의 가격일 텐데, 우리가 경성에 와서 써 재낀 돈만 해도 은자 이백만 냥이 넘어요. 어떤 바보가 은자 몇 만 냥을 벌겠다고 이백만 냥을 써요? 우리 늑대파는 바보를 키우지 않는데다 돈계산이 확실한 사람들이라고요, 늑대파 자객이 이렇게 많은데 마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고 이리 나리와 제가 나설 필요가 있겠어요?”원경릉이 듣고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그래서 이리 나리는 정말 태자 전하 때문에 오셨다? 나리는 진짜 동성애 취향이시고?”미색이 문 쪽을 보더니 원경릉 곁에 바짝 다가 앉아 목소리를 낮춰, “이리 나리의 지금 신분과 지위에서 이런 말 원래는 하면 안되는데 태자비 마마는 입이 무거우시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리 나리는 확실히 여자는 안 좋아하시고, 직례에 계실 때도 잘 생긴 공자들이 시침을 들었죠.”원경릉이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그렇다면 왜 또 태자 전하를 찾아 온 거예요? 정말 태자 전하와 같이 있으려고요?”미색이 고개를 흔들며, “아뇨, 나리는 태자 전하를 감상하세요, 태자 전하와 사귀고 싶으실 뿐이에요, 태자비 마마 안심하셔도 되는 게 나리는 마마의 위협이 못 돼요, 태자전하를 감상하시는 거라 자연스럽게 태자 전하의 행복을 바라시니, 두 분 관계를 해치실 리가 없어요.”원경릉은 미색의 말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게, 그 말대로라면 우문호는 이리 나리의 아이돌 같은 존재로 나리가 이번에 경성에 온 건 아이돌 보러 온 거고, 그래서 은자 200만냥을 척 하고 내놓은 게 되는데 이리
사사 의식원경릉이 계속 앓는 소리를 했다. 자기가 비록 차를 따라주고 이리 나리가 마셨지만 사부로 모시는 게 어떻게 이렇게 간단할 일인가? 향을 피워 놓고 천지에 고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원경릉은 사부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한 적이 없는데 늑대파 2대 계승자라니 아서라 말아라. 저들의 일은 자신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게 원경릉은 염라대왕에게 가던 사람을 다시 빼앗아 오는 게 일이고, 늑대파는 염라대왕에게 사람의 목을 보내주는 게 일인 존재가 아닌가. 원경릉은 계승자가 되고 싶지 않다.원경릉이 어찌 알겠어, 이게 이리 나리와 미색이 밤새 상의한 결과로 기왕에 원경릉을 죽일 수 없고 늑대파도 해산할 수 없으니 원경릉으로 하여금 늑대파의 미래 계승자가 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늑대파는 자신의 장문인을 죽일 수 없으므로 십만 냥은 정정당당하게 물릴 수 있다.또 지금 소답화가 이미 죽었으므로 이리 나리가 소답화에게 십만 냥 액면가의 지전을 태워줘도 아무 문제없다.이리 나리는 이 매매로 큰 손해를 봤고 오히려 200만냥을 더 보태 주다 못해 늑대파가 계율을 지키지 못해 해산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다행히도 이 ‘풍전등화’ 같은 시국에도 늑대파를 보존했다.원경릉은 반쯤 엉거주춤하게 쭈그린 자세로 주먹을 쥐고 두 손을 뻗는 자세를 취했다. 미색이 백 번쯤 바로 잡아준 덕분에 마침내 기준에 합격했으나 두 다리는 덜덜 떨고 두 손도 떨고 전신을 떨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미색이 고개를 흔들며, “태자비 마마, 골격과 체력이 너무 약해요, 앞으로 위험이 닥치면 어떻게 버틸 거예요? 정말 무공수련 열심히 하셔야 돼요, 절정 고수가 되는 건 안 바래도 최소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은 있어야죠.”원경릉은 미색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어?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원경릉은 다른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하지만 원경릉을 무공 수련 시키겠다는 이리 나리의 결정이 초왕부 모든
사사 의식 예물 교환이번 사사 의식은 이리 나리 입장에선 소박하게 진행하고자 늑대파 호법 몇 명과 장로를 오라고 했을 뿐으로, 장로와 호법은 모두 젊어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도 마흔이 되지 않았다.늑대파 사람이 초왕부에 도착해서 사적으로 회의를 열어 차기 계승자가 과연 자격에 부합하는지 토론을 벌였다.결국 만장일치로 태자비는 무공에 열심이지 않으므로 늑대파의 다음 장문인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리 나리가 의견을 바꾸길 바랬다.이리 나리는 줄곧 그들의 토론을 듣고도 아무 말 없다가 마지막으로 모두가 결론을 내리자 느긋하게, “흠, 다음 장문인 선출은 그렇게 결정하는 것으로 하지, 사사 의식을 준비하게.”사람들은 자기들이 아무리 반대를 해도 이리 나리가 밀고 나가는 습관이 있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반대해도 입으로만 큰 소리칠 뿐이고 이리 나리가 일단 결단한 것은 누구 말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 나리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고 순종할 뿐이었다.나중에 미색이 사람들에게 이리 나리가 반한 건 태자비가 아니라 세분 황손이라고 해명했다.황손은 눈늑대가 있으니 앞으로 어떤 황손이 늑대파 장문인 자리를 계승하더라도 늑대파 세 글자는 이름을 그야말로 드높이는 것이니, 이리 나리의 바램은 그것이었다.세분 황손 중에 만두는 이미 황태손으로 내정되어서 만두는 늑대파 다음 장문인이 될 수 없고, 경단이와 찰떡이만 남는다.이렇게 경단이는 세상도 알기 전부터 미래 인생 경로가 정해져 늑대파 3대 계승자가 되었으니 어처구니가 없어도 한참 없지 않겠어?사사 의식은 간단하고 성대했으며 엄숙했다. 간단했던 건 모두 모여서 같이 밥 한끼를 먹고, 원경릉이 몇 번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차를 올린 뒤 공손하게 ‘사부님’이라고 한 번 부른 게 다 이기 때문이다.성대하고 엄숙했던 건 사부의 금일봉은 진심으로 엄청났기 때문인데, 다름 아닌 경성 초두취의 매매문서였다. 즉, ‘원경릉이 경성 초두취의 주인이 되었다’는 말이나 태자비 신분
미색의 변신원경릉 마음이 바뀔까봐 이리 나리는 다음날 수도권으로 돌아가야겠다며 눈늑대를 데리고 갔다.이리 나리는 불식에게 눈늑대를 안아서 마차에 태우라고 하더니, 눈늑대가 마차를 타자 꽉 끌어안고 몇 번이나 뽀뽀하며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냉담함은 완전 사라지고 없다.이리 나리가 갔지만 미색은 초왕부에 남았다. 핑계는 불식이 경성에서 움직이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여기 남아 불식을 도와 초두취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당연히 최대의 목적은 자신의 혼사였다.미색은 사실 다급한 나머지 원경릉 앞에서 일부러 한숨을 푹푹 쉬며 자기가 곧 스무 살이 되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꽃 같은 시절에 혼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을 마치 존속살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극악무도한 일로 생각했다.원경릉은 당연히 말뜻을 알아차렸지만 바로 문둥산에 가야하고, 황제는 여전히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 재촉하기가 뭐했다.하지만 문둥산에 가기 전에 갑자기 궁에서 전갈이 와서, 노비가 회왕부로 갔으니 원경릉에게 와서 차나 한잔 하자는 것이다. 말을 전하는 사람이 원경릉에게 미색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우선 사람을 시켜 물어보니 노비가 회왕부로 갔는데 친정 동서도 같이 오라고 청했다는 걸 보니 미색을 본 뒤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미다.원경릉이 얼른 미색에게 알리니, 미색이 이 말을 듣고 너무 좋아서 바람처럼 날아가 화장을 하고 불식에게 예물을 준비하라고 했다.불식은 빈틈 없는 성격으로 미색의 혼사도 늑대파의 대사로 미색이 순조롭게 시집가는 건 늑대파의 큰 경사다.노비가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미색을 만나겠다고 결정한 건 회왕의 혼사를 더이상 미룰 수 없기 때문으로 반드시 연말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해를 넘기면 한 살을 더 먹으니 궁 안팎으로 회왕이 폐병 귀신이라 아무도 시집오려 하지 않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노비가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도 사실 이런 괴상망측한 말을 참을 수 없어서다. 원경릉은 미색이 예물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눈알이
회왕부로 가는 미색미색이 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게, “사식 아가씨, 아직 젊으셔서 제 곤경을 이해 못하시겠지만 제 나이가 되면 다급한 게 뭔 지 알게 되실 거예요, 그땐 척정도가 아니라 전신을 전부 뜯어고치라고 해도 혼사에 도움이 되기만 하면 얼씨구나 하고 할 겁니다.”사식이가 혀를 날름 내밀며, “전 걱정 안 해요, 17살이 되면 할머니가 제 혼사를 도와 주실 게 틀림없거든요.”미색이 한숨을 쉬더니, “가족이 있으니 좋겠어요.”사식이가 깜짝 놀라며, “미색 아가씨는 가족이 없어요?”“아버지가 너뎃 있는데 제 혼사를 망치기만 했어요, 늘 남자치고 좋은 놈 없다며 저더러 혼인하지 말라고 했죠.” 미색이 말을 꺼내니 또 열 받는다.원경릉과 사식이는 서로 마주보고, 아버지가 너뎃?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떻게 너뎃이지?원경릉과 사식이가 묻지 않아도 미색이 이야기를 시작했다.“제 친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아내로 맞고, 또 계속 두 명의 첩을 맞아들였는데 우리 엄마가 분을 못 참고 저를 임신한 채로 나왔어요. 저를 낳았을 때 낡은 절간 안이었는데 밖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어서 마침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비를 피해 들어왔죠. 저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저녁에 태어났고, 엄마는 저를 낳고 ‘꼴까닥’ 해서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제가 가엾다며 저를 거두기로 했어요. 서로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싸우다가 한 사람이 1년씩 키우기로 했죠. 그래서 저에게 아버지가 너뎃 계신 거예요.”원경릉과 사식이가 듣더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게, 낡은 절간에 버려진 아기를 상상 외로 네 사람이 서로 키우겠다고 싸웠다고? 그 사람들 아내는 자기가 아이를 못 낳나? 만약 불쌍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면 아무나 한 사람이 맡아서 키우는 게 맞지, 왜 돌아가면서 한 명이 1년씩 키우지?미색이 키득키득 웃더니 두 사람을 째려보며, “달리 말하는 방법도 있죠, 저는 대흥국의 군주로 제 아버지는 대흥국의 왕야인데 우리 엄마는 첩에게 살해당하고 저는 북당으로 도망왔죠. 그래서 제 아버지는
미색과 노비의 첫 만남노비는 이번 출궁 행장을 소박하게 하고, 내명부의 부인들도 거진 초대하지 않은 게, 당분간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아서다. 그 여자는 전면에 내세우기에 부족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동안 황제는 태자비가 이 여자를 소개했다는 말을 안 하더니, 노비가 계속 물어보니 마지못해 태자비가 좋게 봤다는 걸 실토했다.당초에 원경릉이 회왕의 병을 치료한 것과 회왕의 자금단을 원경릉에게 준 것에, 노비는 양가 감정이 들었으나 두 가지 일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가 언제나 가장 큰 법이다. 그래서인지 원경릉에게는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그런 원경릉이 보증하고 추천하는 여자라니 원경릉에 대한 마음과 여러 원인이 겹쳐서 노비도 일단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노비는 조각해 놓은 듯한 아들을 바라보며,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관에 한발짝을 넣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너무 큰 바램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저 회왕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않나. 만약 회왕이 그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면 이대로 정하면 그만이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에 회왕을 상처 입히지 않아도 된다.이렇게 생각하자 노비의 눈빛은 다시 굳건해 졌다.태자비가 왔다는 보고들 듣고 회왕이 일어나 맞으러 나갔다.회왕이 막 도착하니 원경릉이 절세 미인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옷자락이 살랑거리는 것이 마치 선녀가 하강한 듯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얼른 예를 취하며, “시동생 다섯째 형수를 뵙습니다.”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여섯째 도련님 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 여긴 바람이 차니 어서 들어가요.”회왕은 감히 미색을 쳐다보지 못하고, 미색의 눈동자는 회왕의 얼굴을 향해 굳어버린 듯 떨어질 줄을 모른다. 전에 그를 한 번 봤을 때도 잘생긴 게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