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의식원경릉이 계속 앓는 소리를 했다. 자기가 비록 차를 따라주고 이리 나리가 마셨지만 사부로 모시는 게 어떻게 이렇게 간단할 일인가? 향을 피워 놓고 천지에 고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원경릉은 사부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한 적이 없는데 늑대파 2대 계승자라니 아서라 말아라. 저들의 일은 자신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게 원경릉은 염라대왕에게 가던 사람을 다시 빼앗아 오는 게 일이고, 늑대파는 염라대왕에게 사람의 목을 보내주는 게 일인 존재가 아닌가. 원경릉은 계승자가 되고 싶지 않다.원경릉이 어찌 알겠어, 이게 이리 나리와 미색이 밤새 상의한 결과로 기왕에 원경릉을 죽일 수 없고 늑대파도 해산할 수 없으니 원경릉으로 하여금 늑대파의 미래 계승자가 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늑대파는 자신의 장문인을 죽일 수 없으므로 십만 냥은 정정당당하게 물릴 수 있다.또 지금 소답화가 이미 죽었으므로 이리 나리가 소답화에게 십만 냥 액면가의 지전을 태워줘도 아무 문제없다.이리 나리는 이 매매로 큰 손해를 봤고 오히려 200만냥을 더 보태 주다 못해 늑대파가 계율을 지키지 못해 해산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다행히도 이 ‘풍전등화’ 같은 시국에도 늑대파를 보존했다.원경릉은 반쯤 엉거주춤하게 쭈그린 자세로 주먹을 쥐고 두 손을 뻗는 자세를 취했다. 미색이 백 번쯤 바로 잡아준 덕분에 마침내 기준에 합격했으나 두 다리는 덜덜 떨고 두 손도 떨고 전신을 떨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미색이 고개를 흔들며, “태자비 마마, 골격과 체력이 너무 약해요, 앞으로 위험이 닥치면 어떻게 버틸 거예요? 정말 무공수련 열심히 하셔야 돼요, 절정 고수가 되는 건 안 바래도 최소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은 있어야죠.”원경릉은 미색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어?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원경릉은 다른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하지만 원경릉을 무공 수련 시키겠다는 이리 나리의 결정이 초왕부 모든
사사 의식 예물 교환이번 사사 의식은 이리 나리 입장에선 소박하게 진행하고자 늑대파 호법 몇 명과 장로를 오라고 했을 뿐으로, 장로와 호법은 모두 젊어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도 마흔이 되지 않았다.늑대파 사람이 초왕부에 도착해서 사적으로 회의를 열어 차기 계승자가 과연 자격에 부합하는지 토론을 벌였다.결국 만장일치로 태자비는 무공에 열심이지 않으므로 늑대파의 다음 장문인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리 나리가 의견을 바꾸길 바랬다.이리 나리는 줄곧 그들의 토론을 듣고도 아무 말 없다가 마지막으로 모두가 결론을 내리자 느긋하게, “흠, 다음 장문인 선출은 그렇게 결정하는 것으로 하지, 사사 의식을 준비하게.”사람들은 자기들이 아무리 반대를 해도 이리 나리가 밀고 나가는 습관이 있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반대해도 입으로만 큰 소리칠 뿐이고 이리 나리가 일단 결단한 것은 누구 말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 나리의 말에 사람들은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고 순종할 뿐이었다.나중에 미색이 사람들에게 이리 나리가 반한 건 태자비가 아니라 세분 황손이라고 해명했다.황손은 눈늑대가 있으니 앞으로 어떤 황손이 늑대파 장문인 자리를 계승하더라도 늑대파 세 글자는 이름을 그야말로 드높이는 것이니, 이리 나리의 바램은 그것이었다.세분 황손 중에 만두는 이미 황태손으로 내정되어서 만두는 늑대파 다음 장문인이 될 수 없고, 경단이와 찰떡이만 남는다.이렇게 경단이는 세상도 알기 전부터 미래 인생 경로가 정해져 늑대파 3대 계승자가 되었으니 어처구니가 없어도 한참 없지 않겠어?사사 의식은 간단하고 성대했으며 엄숙했다. 간단했던 건 모두 모여서 같이 밥 한끼를 먹고, 원경릉이 몇 번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차를 올린 뒤 공손하게 ‘사부님’이라고 한 번 부른 게 다 이기 때문이다.성대하고 엄숙했던 건 사부의 금일봉은 진심으로 엄청났기 때문인데, 다름 아닌 경성 초두취의 매매문서였다. 즉, ‘원경릉이 경성 초두취의 주인이 되었다’는 말이나 태자비 신분
미색의 변신원경릉 마음이 바뀔까봐 이리 나리는 다음날 수도권으로 돌아가야겠다며 눈늑대를 데리고 갔다.이리 나리는 불식에게 눈늑대를 안아서 마차에 태우라고 하더니, 눈늑대가 마차를 타자 꽉 끌어안고 몇 번이나 뽀뽀하며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냉담함은 완전 사라지고 없다.이리 나리가 갔지만 미색은 초왕부에 남았다. 핑계는 불식이 경성에서 움직이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여기 남아 불식을 도와 초두취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당연히 최대의 목적은 자신의 혼사였다.미색은 사실 다급한 나머지 원경릉 앞에서 일부러 한숨을 푹푹 쉬며 자기가 곧 스무 살이 되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꽃 같은 시절에 혼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을 마치 존속살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극악무도한 일로 생각했다.원경릉은 당연히 말뜻을 알아차렸지만 바로 문둥산에 가야하고, 황제는 여전히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 재촉하기가 뭐했다.하지만 문둥산에 가기 전에 갑자기 궁에서 전갈이 와서, 노비가 회왕부로 갔으니 원경릉에게 와서 차나 한잔 하자는 것이다. 말을 전하는 사람이 원경릉에게 미색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우선 사람을 시켜 물어보니 노비가 회왕부로 갔는데 친정 동서도 같이 오라고 청했다는 걸 보니 미색을 본 뒤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미다.원경릉이 얼른 미색에게 알리니, 미색이 이 말을 듣고 너무 좋아서 바람처럼 날아가 화장을 하고 불식에게 예물을 준비하라고 했다.불식은 빈틈 없는 성격으로 미색의 혼사도 늑대파의 대사로 미색이 순조롭게 시집가는 건 늑대파의 큰 경사다.노비가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미색을 만나겠다고 결정한 건 회왕의 혼사를 더이상 미룰 수 없기 때문으로 반드시 연말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해를 넘기면 한 살을 더 먹으니 궁 안팎으로 회왕이 폐병 귀신이라 아무도 시집오려 하지 않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노비가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도 사실 이런 괴상망측한 말을 참을 수 없어서다. 원경릉은 미색이 예물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눈알이
회왕부로 가는 미색미색이 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게, “사식 아가씨, 아직 젊으셔서 제 곤경을 이해 못하시겠지만 제 나이가 되면 다급한 게 뭔 지 알게 되실 거예요, 그땐 척정도가 아니라 전신을 전부 뜯어고치라고 해도 혼사에 도움이 되기만 하면 얼씨구나 하고 할 겁니다.”사식이가 혀를 날름 내밀며, “전 걱정 안 해요, 17살이 되면 할머니가 제 혼사를 도와 주실 게 틀림없거든요.”미색이 한숨을 쉬더니, “가족이 있으니 좋겠어요.”사식이가 깜짝 놀라며, “미색 아가씨는 가족이 없어요?”“아버지가 너뎃 있는데 제 혼사를 망치기만 했어요, 늘 남자치고 좋은 놈 없다며 저더러 혼인하지 말라고 했죠.” 미색이 말을 꺼내니 또 열 받는다.원경릉과 사식이는 서로 마주보고, 아버지가 너뎃?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떻게 너뎃이지?원경릉과 사식이가 묻지 않아도 미색이 이야기를 시작했다.“제 친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아내로 맞고, 또 계속 두 명의 첩을 맞아들였는데 우리 엄마가 분을 못 참고 저를 임신한 채로 나왔어요. 저를 낳았을 때 낡은 절간 안이었는데 밖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어서 마침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비를 피해 들어왔죠. 저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저녁에 태어났고, 엄마는 저를 낳고 ‘꼴까닥’ 해서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제가 가엾다며 저를 거두기로 했어요. 서로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싸우다가 한 사람이 1년씩 키우기로 했죠. 그래서 저에게 아버지가 너뎃 계신 거예요.”원경릉과 사식이가 듣더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게, 낡은 절간에 버려진 아기를 상상 외로 네 사람이 서로 키우겠다고 싸웠다고? 그 사람들 아내는 자기가 아이를 못 낳나? 만약 불쌍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면 아무나 한 사람이 맡아서 키우는 게 맞지, 왜 돌아가면서 한 명이 1년씩 키우지?미색이 키득키득 웃더니 두 사람을 째려보며, “달리 말하는 방법도 있죠, 저는 대흥국의 군주로 제 아버지는 대흥국의 왕야인데 우리 엄마는 첩에게 살해당하고 저는 북당으로 도망왔죠. 그래서 제 아버지는
미색과 노비의 첫 만남노비는 이번 출궁 행장을 소박하게 하고, 내명부의 부인들도 거진 초대하지 않은 게, 당분간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아서다. 그 여자는 전면에 내세우기에 부족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동안 황제는 태자비가 이 여자를 소개했다는 말을 안 하더니, 노비가 계속 물어보니 마지못해 태자비가 좋게 봤다는 걸 실토했다.당초에 원경릉이 회왕의 병을 치료한 것과 회왕의 자금단을 원경릉에게 준 것에, 노비는 양가 감정이 들었으나 두 가지 일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가 언제나 가장 큰 법이다. 그래서인지 원경릉에게는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그런 원경릉이 보증하고 추천하는 여자라니 원경릉에 대한 마음과 여러 원인이 겹쳐서 노비도 일단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노비는 조각해 놓은 듯한 아들을 바라보며,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관에 한발짝을 넣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너무 큰 바램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저 회왕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않나. 만약 회왕이 그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면 이대로 정하면 그만이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에 회왕을 상처 입히지 않아도 된다.이렇게 생각하자 노비의 눈빛은 다시 굳건해 졌다.태자비가 왔다는 보고들 듣고 회왕이 일어나 맞으러 나갔다.회왕이 막 도착하니 원경릉이 절세 미인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옷자락이 살랑거리는 것이 마치 선녀가 하강한 듯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얼른 예를 취하며, “시동생 다섯째 형수를 뵙습니다.”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여섯째 도련님 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 여긴 바람이 차니 어서 들어가요.”회왕은 감히 미색을 쳐다보지 못하고, 미색의 눈동자는 회왕의 얼굴을 향해 굳어버린 듯 떨어질 줄을 모른다. 전에 그를 한 번 봤을 때도 잘생긴 게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일반적으로 선물이라고 하면 금은보화나 도자기, 그림, 골동품 등을 뜻하며, 그런 비싼 선물들은 많이 가져올 수 없기에 곱게 포장을 해 시녀를 시켜 들고 오게 하면 된다. 하인이 미색이 선물을 가지고 들어온다고 하자 조씨와 오씨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미색이 가지고 온 선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봤다.그런데 놀랍게도 선물이 담긴 상자가 하나같이 다 저렴한 목재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평소 백성들이 쓰는 흔히 볼 수 있는 포장 상자였다. 조씨와 오씨는 소리를 내어 웃더니 서로 눈을 맞추며 조롱의 목소리를 내었다.“설마 이부자리 따위를 혼수라고 가져온 것은 아니겠지요?”“누가 선물을 저런 상자에 담아 옵니까?”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성의없다고 욕할 수 있는 상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색도 어쩔 수 없었다. 수많은 보석들을 담으려면 큰 상자가 필요했고, 그만한 크기의 상자는 가장 저렴한 것뿐이 없었다. 노비(魯妃)는 투박하고 평범한 상자를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선물이라더니 이렇게 후려치는 것이야? 하긴 별 볼일 없는 가문의 여식이 황실의 예의범절을 어떻게 알겠어?’노비는 상자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미색은 노비를 보고 한달음에 걸어 나와 인사를 했다.“노비 마마, 이것은 제 오라버니가 마마님께 보내는 선물입니다. 마마님의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정성껏 준비했습니다.”조씨는 깔깔 웃으며 미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무슨 선물까지 준비를 해요? 그나저나 상자가 무식하게 큰 것을 보니 뭐가 들어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히네. 호호.”원경릉은 조씨가 미색이 준비한 성의를 비꼬는 듯한 말을 하자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미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선물까지 바리바리 준비한 사람에게 저렇게 함부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원경릉이 미색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그녀를 보니, 이미 미색의 눈동자에서도 분노가 치미는 듯했다.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궁금하다는 뜻으로 알고, 한번 열어봐드리지요.”미색이
미색은 조롱 섞인 말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이러한 선물은 저희 가문에 차고 넘치기에 노비 마마께서는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십시오. 게다가 저희 오라버니께서는 이 정도를 혼수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이 정도를 혼수품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미색의 말을 듣고 조씨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어디서 이런 비싼 것들이 났다는 말이냐? 게다가 마마님은 이런 사치스러운 물건에 넘어가실 분이 아니다!”조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미색은 고개를 돌려 노비 마마를 바라보았다.“마마, 소인 마마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조금씩 많은 종류를 가져와 본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마마님을 뵙는 게 기뻐서 성의 표시라고 조금 가져온 것인데, 이게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줄은 소인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마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조씨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노비 옆에 딱 붙어 말했다.“마마님께서는 이런 사치스러운 것들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도로 가져가라!”사실 노비는 조씨와 오씨가 나대는 모습을 보고 매우 불쾌했다.‘세상에 보물을 싫어하는 여인이 어디 있단 말이야? 게다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보물 아니겠느냐?’노비는 매번 귀걸이며 목걸이며 하던 것만 해서 지루하던 참에 이렇게 예쁘고 세련된 것들 보니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팔과 목에 둘러보고 싶었다.조씨와 오씨의 오지랖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던 노비는 차라리 미색에게 이 상황을 맡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미색은 조씨가 뱉은 ‘사치스럽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부인, 제 출신 때문에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이 선물을 준비하면서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그저 마마님께서 좋아하시길 바라는 단순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다들 얼굴도 예쁜 미색이 돈까지 많은 부러워서 저러는구먼, 사람은 왜 저리 솔직하지 못할까?
노비는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다시 한번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얼굴도 예쁘고, 집안에 돈도 좀 있는 것 같고…… 저렇게 내 아들을 사랑해주다니 저런 사람이 내 아들에게 또 나타날 수 있겠는가?’노비는 손짓으로 하인을 불렀다.“여보게, 미색을 데리고 가 옷을 갈아입히거라! 그리고 여섯째야 넌 같이 가서 운동도 할겸 미색을 데리고 왕부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거라.”미색은 고개를 들어 노비를 바라보았다. “제 모친께서는 저를 낳다가 돌아가셨는데…… 만약 모친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격하셨을까요! 망극하옵니다 노비 마마!”미색의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노비의 긍정적인 대답에 회왕의 새하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모친.”미색과 회왕이 나간 후 노비는 오씨와 조씨에게도 돌아가라고 분부했다. 두 사람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노비를 화나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저희가 있으면 방해만 되는 것 같으니 가보겠습니다. 마마님 실례가 많았습니다.”두 사람은 문밖을 나가는 순간까지 금은보화가 가득찬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 저렇게 귀한 물건을 상자에 가득담아주다니…… 만약 회왕이 미색과 혼인이라도 한다면 지참품을 얼마나 많이 가져오겠는가?’조씨는 생각만으로도 노비가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있던 원경릉은 속으로 조씨와 오씨가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미색은 출신을 제외하고는 여기에 있는 어느 부인보다 나은 금전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외모는 월등하게 빼어났으며 심지어 똑똑하고 배려심이 깊다. 조씨와 오씨는 미색보다 나은 것이 출신 뿐이니 그것만 믿고 미색을 얕보는 것이다. ‘자격지심 때문에 사람이 저렇게 흉해지기도 하는 구나……’조정에 은화 융통이 되지 않으니 이리 나리가 이백만 냥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한 게 아니겠는가? 조정에 어느 부인의 집안이 한번에 이백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