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실력이 좀 있는 것 같네요. 구양회혼 침술도 아시니 말입니다.”서강빈은 덤덤히 웃었다.“저도 우연히 고서를 읽다가 그 침술에 관한 기록을 본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서강빈은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저희가 사제지간이라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네, 네. 알겠습니다.”손인수는 서강빈의 곁에 서면서 정중하게 말했다.이때 권영우도 앞으로 나서며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서 선생님, 저희 아버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저희 권씨 가문의 은인입니다.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일이라면 저희 권씨 가문은 능력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권 가주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별거 아닌데요, 뭘.”서강빈은 덤덤히 말하다가 화제를 돌렸다.“그런데 정말 권 가주님께서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권씨 가문은 상업계에서 지위가 대단하고 전국에 산업이 분포되어 있으며 약재 쪽으로도 사업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권 가주님께서 약재 몇 가지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편하게 말씀하세요. 저희가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구하겠습니다.”곧이어 서강빈은 필요한 약재를 권영우에게 얘기했다.위에 적힌 약재들을 보며 권영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중 일부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서강빈은 별로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 약재들은 저마다 특별한 용도가 있었다.송해인에게 무능하고 평범한 것이 일종의 죄라면, 서강빈은 그녀의 눈에 먼지만큼이나 쓸모없는 존재였던 자신이 정작 그녀가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는 대단한 존재가 되는 걸 보여줄 셈이었다.5분 뒤, 권정무가 정신을 차렸다. 안색도 한결 좋아진 듯했다.권영우의 제안에 따라 서강빈은 그의 집에 남아 식사를 했다.손인수는 너무 창피하여 도저히 그들과 같이 식사할 수 없었기에 빠르게 저택을 떠났다.밖으로 나온 뒤 손인수는 전화 한 통을 받았
“지, 지금 날 욕한 거예요?”이세영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래. 당신이 비오 그룹을 대표한다고? 당신이 뭐라고 비오 그룹을 대표한다는 거지? 당신이 그리 잘났어? 정말 뻔뻔하네.”이세영은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녀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서강빈 씨, 서강빈 씨가 지금 이혼한 일 때문에 불쾌한 건 알겠는데 당신과 우리 대표님은 같이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서강빈 씨가 우리 대표님 곁에 있으면 우리 대표님 발목만 잡을 거라고요! 그리고 지금 미안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지 우리 대표님이 아니에요. 서강빈 씨도 그랬잖아요? 그 금오단은 3주년 결혼기념일에 대표님께 드리려 했다고. 그런데 이젠 이혼했으니까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 이거예요? 당신 남자 맞아요?”“오늘 똑똑히 말해둘게요. 그 금오단의 처방은 반드시 우리에게 줘야 해요. 정 안 되면 대표님께 서강빈 씨를 고소하라고 하면 되니까요. 그 처방 공동 재산에 속하죠?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면 두 사람이 반씩 나눠 갖겠네요. 그리고 우리 대표님에게 줄 생각이었다는 말은 서강빈 씨가 했잖아요? 우리가 조금만 손 보면 그 처방은 결국 우리 대표님, 우리 비오 그룹의 것이 될 거예요. 지금은 서강빈 씨 체면을 봐서 좋게 말로 하는 거니까 괜히 일 크게 키우지 마요. 눈치 있으면 얼른 그 처방 내놔요.”서강빈은 그녀의 건방진 태도에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게다가 공동 재산이라고? 내 체면을 봐서 이러는 거라고?’이혼합의서에 사인할 때 그는 차도, 집도, 돈도 받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이세영은 그를 찾아와서 처방을 내놓으라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게다가 그가 송해인 곁에 남아있으면 그녀의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이고, 처방을 주지 않는다면 고소할 거라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서강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세영이 계속 도도하게 말했다.“2,000만 원으로 부족하면 4,000만 원 줄게요. 서강빈 씨,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예요.
송해인은 시선을 올리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손 선생님을 모셨어?”이세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뇨, 손인수 선생님은 앞으로 의술을 연구하는 데에만 전념할 거래요.”그 말에 송해인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손인수를 비오 그룹의 명예 신의로 두는 것은 비오 그룹 발전 전략 중 하나였는데 지금 당장은 그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것 같았다.“하지만 대표님, 저 금오단 처방을 얻었어요.”이세영은 자랑하듯 서강빈이 보내줬던 처방을 송해인의 휴대전화에 보냈다.송해인은 예쁜 미간을 구겼다.“금오단 처방이라고? 이게 뭔데?”이세영은 곧바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인수와의 통화 내용을 녹음했던 파일을 들려줬다.“이 금오단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손인수 선생님도 감탄할 정도로?”송해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이 금오단을 대량 생산해 시중에 팔고 거기에 손인수 선생님의 녹음 파일까지 같이 쓴다면 홍보 효과가 엄청날 거예요. 저희 회사가 송주 의약계를 크게 뒤흔들 수 있을 거라고요.”송해인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손인수도 감탄해 마지않는 금오단이라니 그것의 가치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정말 금오단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비오 그룹은 송주 의약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의약 회사가 될 것이다.그리고 송해인은 송주 상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왕이 될 것이다.심지어 그 금오단으로 전국이 주목하는 한의학 대회 입장 자격을 얻고 거기에서 1등을 해서 크게 명성을 떨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되면 송해인의 이름은 송주, 더 나아가 전국에 널리 퍼질 것이다.“네 말대로 하자. 우선 연구팀 직원들에게 약 효과를 알아보라고 하고 합격이면 회사의 다른 프로젝트들은 전부 뒤로 미뤄두고 금오단 프로젝트부터 시작하는 거야.”송해인은 결정을 내렸다.“좋아요.”이세영이 웃으며 말했다.이번에 비오 그룹은 물론이고 송해인까지 유명해지면 이세영은 자신도 이 기세를 빌어 업계에서 가
“그만해!”송해인은 버럭 화를 냈다.“서강빈,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나더러 포기하라고?”“그래.”서강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그러고 나서는?”송해인이 따져 물었다.“너처럼 매일 그 작은 가게에만 빠져있으라고? 서강빈, 정말 실망이야!”“지금 비오 그룹이 네게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강빈이 물었다.송해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서강빈, 넌 정말 우물 안 개구리야. 난 금오단 프로젝트를 최선을 다해 추진할 거야. 네가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일수록 더 열심히 해서 성공할 거라고. 난 이 비오 그룹에 네가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일 거야. 나 송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아주 긴 침묵이 이어졌다.서강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난 경고했어.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겨도 내게 도와달라고 찾아오지 마.”“난 평생 너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 거야!”송해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탁’ 소리와 함께 유쾌하지 못했던 통화가 끊겼다.송해인은 씩씩거리면서 휴대전화를 책상에 던졌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창밖의 철창 같은 도시를 바라보았다.‘서강빈, 넌 날 전혀 몰라. 금오단이 있으면 난 더 높이 날 수 있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야. 비오 그룹은 내 손에서 송주의 첫째가는 기업이 될 거라고. 그때가 되면 너 서강빈은 그냥 일반 시민에 불과할 거야. 서강빈, 역시 우물 안 개구리답네. 네 눈에는 그 작은 하늘이 세상의 전부겠지. 이 송주 밖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서강빈, 내가 증명해 내겠어.”송해인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이 비서, 지금 당장 기자회견 추진해. 난 기자회견에서 정식으로 금오단 프로젝트를 소개할 거야.”...작은 가게 안, 전화를 끊은 뒤 서강빈은 소파에 앉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서강빈은 자신과 송해인 사이가 지난 1년간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지금 송해인의 눈에는 오직 비오 그룹과 권력, 지위만 있었다
게다가 강지원은 연속 4년 동안 송주 상업계에서 잠재력이 가장 많고, 가치가 가장 높으며, 영향력이 가장 강한 여성으로 뽑혔다.강지원을 송주 상업계의 여왕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았다.지난 1년 동안 송해인은 항상 강지원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다.강지원은 송해인의 목표였고 송주 상업계 모든 여성의 우상이었다.강지원이 바로 송해인을 달라지게 한 장본인이다.서강빈은 미간을 구겼다.‘또 심 회장님이 소개해서 온 분이라니.’“5분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미 확인 마쳤습니다. 치료할 수 있어요.”서강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강지원은 당황했다.그녀의 병은 송주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기저기 명의를 찾아다녔지만 지금껏 치료하지 못했다.심지어 20억이라는 거액의 치료비용을 내걸었으나 소용이 없었다.결국 강지원은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여자만 아니라면, 외모가 어떻든, 얼마나 나이가 들었든 그와 결혼할 것이라는 조건도 내걸었다.그 소식에 한때 전국이 떠들썩했고 수많은 명의들이 그녀를 찾아와 치료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엔 다 실패했다.그 병 때문에 강지원은 아주 골치가 아팠다.그녀의 병은 바로 남자 혐오증이다.강지원은 남성과 조금이라도 피부가 접촉한다면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성을 잃거나, 초조해하거나, 심지어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했고 토하기도 했다. 심할 땐 정신을 잃기도 했다.이런 이상한 병 때문에 강지원은 줄곧 송주 상업계에서 식사 후 가십거리가 되었고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몸값이 20조에 달하는 송주 상업계 여왕에게 남성 혐오증이라는 병이 있다고 말이다.‘설마 평생 결혼도 못하고 노처녀로 외롭게 살아야 하는 걸까?’강지원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강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확신해요?”“그럼요.”서강빈은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이 병은 오직 저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강지원의 표정이 살짝 차가워졌다. 그녀는 서강빈이 오버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또 서강빈을 가벼운 남자라
“다 벗으라고요?”강지원은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서강빈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요구할 줄은 몰랐다. 상의와 속옷까지 전부 다 벗으라니.강지원은 유능한 여성이었고 영예도 있고 재산도 많았다.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고, 지난 4년 동안 남자의 손도 잡아본 적이 없다.물론 남자 앞에서 옷을 다 벗어본 적도 없다.강지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서강빈을 등진 채로 원피스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그녀의 등은 우유처럼 하얬다.그녀의 아름다운 어깨와 목선, 그리고 얇은 허리를 보자 서강빈은 잠깐 넋을 놓으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이때 강지원은 너무 긴장되고 부끄러운 나머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천천히 벗은 뒤 재빨리 침대에 누웠다.그러나 가슴이 워낙 풍만한 탓에 타원형으로 눌렸다.“다 됐어요.”강지원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감히 그를 볼 수 없어 고개를 홱 돌렸다.얼굴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서강빈은 침대 위에 누운 아름다운 몸을 힐끗 보았다. 가녀린 허리에 힙업된 엉덩이는 완벽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참지 못했을 것이다.“엉덩이 조금만 들어요.”서강빈이 명령을 내렸다.강지원은 머리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정말 치료하는 게 맞아? 설마 더러운 짓거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엉덩이 조금만 들라니까요? 내가 도와줄까요?”강지원은 빨간 입술을 깨물면서 그의 말에 따랐다.그녀의 엉덩이는 완벽했다.서강빈은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따뜻한 물에 넣은 뒤 강지원의 매끈한 등 위에 다시 올리고 그녀의 등에 있는 십여 개의 혈자리를 마사지 하기 시작했다.강지원의 피부는 아주 매끈했고 몸매도 완벽했다.강지원은 엎드린 채로 빨간 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고 귀도 아주 뜨거웠다.그녀는 처음으로 남자에게 만져지는 것이라 기분이 이상하고 몸이 찌릿찌릿했다.잠시 뒤 서강빈이 말했다.“몸을 돌려요.”‘몸을
“시간 있죠?”말을 마친 뒤 강지원은 떠났다.차에 오른 후 강지원은 비서에게 연락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람 좀 조사해 줘요. 이 사람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해요. 4년 이래 처음으로 내 몸에 손을 댄 남자고 내 알몸을 본 남자예요. 앞으로 얼굴 볼 날이 많다고요.”...같은 시각, 비오 그룹 대표 사무실.송해인이 물었다.“기자회견 준비는 어떻게 됐어?”“준비 마쳤습니다.”이세영이 대답했다.송해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가자. 기자회견 현장으로.”이번 기자회견은 아주 중요했기에 송해인은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비오 그룹 2층 홀, 기자회견 현장에는 이미 수십 개의 언론매체들이 현장 중계를 진행하고 있었다.커다란 배경 판에는 금오단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폭발적인 박수 소리와 함께 송해인은 웃는 얼굴로 무대 위에 올라 말했다.“우선 바쁘신 와중에 저희 비오 그룹 신제품 발표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전 오늘 소개할 이 제품이 저희 시대에 한 획을 그을 상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입니다. 그럼 지금 여러분들께 정중하게 발표하겠습니다. 금오단은 미래 비오 그룹이 연구, 개발할 핵심 프로젝트로서 만약 시중에 판매가 된다면 송주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전국 국민에게 이익이 될 겁니다.”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금오단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에 대해 송해인은 그저 간단한 설명만 했다. 이로 인해 금오단은 한층 비밀스러워졌고 아주 빨리 송주 의약계와 상업계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송해인은 손인수가 금오단을 높게 평가하는 녹음 파일까지 풀었다.“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단약이예요. 아주 대단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죠.”그 녹음 파일에 기자회견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송주의 각 업계에서도 모두 금오단에 대
작은 가게 안.서강빈은 기자회견 라이브 방송을 끄고 허탈한 듯 웃었다.마지막에 송해인이 한 말은 그를 들으라고 한 얘기가 분명했다.그러나 서강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번에 비오 그룹은 금오단 프로젝트로 크게 실패할 것이다.어쩌면 그 때문에 비오 그룹은 아주 큰 곤경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서강빈은 더는 그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그는 이미 그녀에게 경고했고 그 경고를 듣지 않은 건 송해인이니 말이다.“서강빈 씨.”권효정이 뒷짐을 지고 방방 뛰면서 달려왔다.“권효정 씨, 뭐 볼일 있으신가요?”서강빈이 물었다.권효정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왜요? 저랑 있는 게 싫으세요?”‘응?’서강빈은 당황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닙니다.”“정말요? 그러면 모레 저녁에 저희 권씨 가문이 주최하는 송주 파티에 저랑 같이 참석하실래요?”권효정이 기대에 찬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파티요?”서강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가 미처 거절하기도 전에 권효정이 그의 팔을 잡고 흔들더니 앙증맞게 애교를 부렸다.“서강빈 씨, 저랑 같이 가주면 안 돼요, 네?”그 순간 서강빈은 마음이 흔들렸다.그리고 팔뚝에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권효정은 의외로 가슴이 작지 않았다.게다가 그녀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알겠어요.”서강빈이 대답했다.“서강빈 씨, 정말 최고예요.”권효정은 기뻐서 콩콩 뛰었다. 그녀의 올망졸망한 눈동자에 웃음기가 가득했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이틀이 지났고 권씨 가문이 주최한 파티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제영 펜션은 호화롭고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고 여기저기 건물과 인공산이 가득했다.소문에 의하면 펜션을 짓는데 무려 2,000억이 들었다고 한다.그리고 그 펜션의 주인은 더 대단했다. 그는 어느 시의 거물이라고 한다.펜션 입구에는 각양각색의 비싼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BMW, 벤츠는 어디에나 있었고 포르쉐, 페라리, 벤틀리, 롤스로이스도 많았다.이때 아주 멋진 빨간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